지난주 ‘동물국회’ 사건 선고가 있었다. 사고가 난지 6년 7개월 만이다. 2019년 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 벌어진 일이다. 여야 간 물리적 충돌로 ‘동물국회’라는 오명이 붙었다. 피소된 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과 당직자 26명이 모두 유죄판결 받았다. 그러나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기대에 차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정치판을 보면 기대는커녕 민주주의의 숨통이 끊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온 미국부터 정치가 정상궤도를 이탈해 폭주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발전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회의가 생긴다.
국회 선진화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신속처리법안은 ‘동물국회’를 피하려는 고민의 산물이다. 그런 2019년 사건을 계기로 신사협약은 사실상 죽어버렸다. 국회를 ‘선진화’하겠다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절제도, 타협도, 심지어 대화조차도 없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의원과 원내부대표였던 송언석·김정재·이만희 의원은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을 집무실 밖으로 못 나오게 감금하고, 민주당의원들이 법안을 의안과에 접수하지 못하게 방해한 혐의다. 이들을 포함해 대부분 피고는 정개특위 회의장과 사개특위 회의장을 점거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국회의원은 국회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 원 이상, 일반 형사사건에선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이날 일반 형사사건 혐의로는 모두 금고형 아래인 벌금형이 나왔고, 국회법 위반과 관련해서는 벌금 400만 원 이하였다. 국회의원직을 유지시켜주면서, 법을 어긴 데 대해서는 엄중히 경고한 것이다. 판결문에는 이런 충고도 담았다.
국회법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만든 규칙이다. 스스로 만든 규칙을 훼손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의원직을 박탈하지 않는 선에서 멈춘 것은 아직도 우리 정치에 대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절망하고, 포기하기에는 우리의 미래, 우리 다음 세대의 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자제’다. 민주주의는 부서지기 쉬운 제도다. 자기가 가진 힘을 모두 쓰게 되면 원래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 다수결이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핵심 의사 결정 방법이다. 하지만, 다수가 횡포를 부리면 민주주의는 정반대인 전체주의의 모습으로 변질된다.
재판부는 이 ‘동물국회’ 사태의 책임이 민주당에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수결은 대화와 타협으로 절차적 정당성이 뒷받침될 때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다수결로 밀어붙였다. 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위가 실제 활동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대화와 타협은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을 살리려는 시민사회나 소수 야당의 진정성까지 뒷거래로 끌어들이고는, 뒤통수를 쳤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의 이해를 반영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깔고 있는 제도다. 그럼에도 자제를 포기하고, 정치적 이해에 혈안이 돼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국회와 정치가 실종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런 저질 정치판을 만들어놓고도, 경쟁자를 발밑에 깔아뭉개는 승자의 자만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무슨 숭고한 이념가인양 머리 위에 내걸었던 명분조차 깡그리 외면하고, 승리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게 작금의 정치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의 대표성을 침해하고, 권력간 견제 기능을 약화했다고 판결문은 지적했다.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입법 독주하면 사회적 합의가 무용해진다. 특정 정치세력의 의지만 국정에 반영된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치다. 다수의 의견만 반영하면, 소수는 살 수 없는 사회가 된다. 민주정치는 다른 의견을 대화와 타협으로 절충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 다수가 사회의 모든 재화를 약탈해, 전리품처럼 나눠 갖는 전쟁놀이가 아니다. 가진 자의 절제, 자제가 너무 아쉽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