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여론조사가 발표된다. 지난주에는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조사가 많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이 대책이 ‘적절하다’라는 응답이 37%, ‘부적절하다’라는 응답이 44%였다. 여론조사 공정의 조사에서는 김현지 부속실장이 국정 감사에 출석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출석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56.3%로‘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응답 28.2%보다 갑절이나 많았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렇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모든 문제를 다수결로 처리한다. 그게 민주주의라고 한다. 법사위에서 추미애 위원장은 야당 의원의 발언을 중단시키고, 야당을 대변할 간사 선임도 민주당 뜻대로 강요한다.
국회 운영에서 야당이 없다. 민주당의 일방 독주다. 그런데도 ‘다수결’이라며,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란 것이다. 정말 그런가. 플라톤은 다수결이 대중의 어리석음을 낳는 ‘중우(衆愚)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굳이 고대 철학자나 저명한 정치학자를 소환할 것도 없다. 여론조사는 어떤가. 여론조사에서 다수가 김현지 실장에게 국회에 출석하라면 출석할 것인가. 부동산 대책은 어쩔 건가.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훨씬 많으니, 취소할 건가. 다수결이 민주주의라면 그게 옳다. 국민의 다수보다 국회 의석의 다수가 더 우선이라고 주장할 건가.
아무리 따져봐도 국민 다수가 더 존중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국민은 주권 그 자체이지만, 국회의원은 위임받은 권력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참여 민주주 의’를 강조해 왔다. 요즘처럼 사회적 소통망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국회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국민에게 바로 물어보고, ‘다수결’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무 엇 하러 ‘국회’를 만드나. 수많은 혈세를 낭비하며, 저질 막말 경연을 참고 들어야 하나.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전부라면 국회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발상지에서부터 모범국들이 모두 의회를 중요한 제도적 장치로 삼는 것은 다수결만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다수가 소수의 권리를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한나 아렌트도 다수의 지배는 “소수자를 제거해 버리는 것”으로 다수결의 타락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비판했 다.
다수결은 분명히 효율적인 의사결정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토론과 타협이다. 다수결이 오히려 이를 잠식하고, 훼손하고 있다.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가 충돌하는 공간이다. 이질적인 의견들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최근 한국의 정치에서는, 이러한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 강조된다. 다수의 표를 확보한 쪽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소수의 목소리는 묵살된다. 다수결이 절대적인 기준인 양 착각하고, 정당성의 근거로 악용되면서, 정치는 점점 더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전쟁터로 변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세력이 ‘국민의 뜻’을 내세워 모든 결정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인다. 과연 그 ‘국민’은 누구인가? 선거에서 승리한 다수는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승자가 모든 권한을 독식한다. 패자는 철저히 배제된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포용’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학자 월터 리프만은 “소수파의 합의를 얻지 못한 민주주의적 결의는 위선과 무법상태를 가져올 따름”이라고 경고했다. 다수결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 서는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정치는 이러한 ‘합의의 정치’를 외면한 채, 수의 우위를 앞세운 ‘힘의 정치’로 변질됐다.
다수결은 최종적인 결정 방식일 수는 있어도, 그 이전의 과정—즉, 충분한 토론과 소수 의견의 존중—없이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된 독단에 불과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숫자의 힘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데서 출발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