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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정치에 예속되어야 하나

등록일 2025-09-14 19:17 게재일 2025-09-1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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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했다. 진행이 서툴렀지만, 오히려 짜고 하는 문답이 아니라는 믿음을 줬다. 답변들이 대부분 솔직하고, 국정 현안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인의 주장대로 실용주의자라는 느낌도 반가웠고, 걱정한 것보다는 이념에서 벗어나 보여 좋았다.

 

그러나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그게 뭐가 위헌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건 입법부 권한”이라며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헌법상 정의된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지 사법부 구조를 사법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훈시했다.

 

이러한 논리의 배경으로 그는 ‘직접 선출 권력’과 ‘간접 선출 권력’으로 구분했다. 국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해 주권을 위임한 공직자이고, 판사는 국민이 선출한 주권 위임자로부터 임명돼, 간접적으로 주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삼권분립이라도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직접 선출 권력-간접 선출 권력 순이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가 위에 있고, 사법부는 그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과 국회는 어떨까.

 

그는 “국민 주권 의지가 발현되는 장치가 정치”라며 “사법이란 정치로부터 간접적으로 권한을 받은 건데 어느 날 전도됐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가 사법에 종속”돼 “위험한 나라가 됐다”라는 것이다. 종속이란 게 뭔가. 불법 행위에 대해 재판하는 것이 종속이고, 반민주적인가. 임명된 권력은 선출된 권력을 수사하고, 재판하면 안 되는 건가. 불법을 저질러도 눈을 감아야 하나. 수사와 재판도 선출된 권력의 지시를 받아야 하나.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대통령, 혹은 일당 독재를 합리화하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논리다.

 

정당한 수사와 재판은 정치를 종속시키는 게 아니다. 정치는 가장 부패하기 쉬운 부분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불·탈법을 다 저지른다. 공권력을, 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쓴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권력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 사법의 역할이다. 그래서 삼권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 교과서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정치의 사법부 종속’이 위험하다면서, ‘사법의 정치 종속’을 주장하고 있다. 사법이 정치에 종속되면, 권력의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정권을 잡으면 반대 정파를 탄압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의 말은 국민이 집권 세력에게 이런 횡포를 부릴 권한까지 위임했다는 뜻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선출된 권력뿐 아니라, 국민이란 이름으로 동원된 홍위병이 모든 권력기관을 파괴하고, 휘저었다. 우리로 치면 입법부와 사법부도 모두 부수고, 자신들이 그것을 대신했다. 난데없는 폭도들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유일한 절대권력자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쿠데타 실패에서 태어났다.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비상계엄권이 있다는데 매달렸다. 나치가 바이마르 헌법 48조의 긴급명령권과 동일시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긴급상황에서 군대를 배치하고, 기본적 시민권을 통제할 수 있었다. 히틀러는 총리로 임명된 지 이틀 만에 이를 이용해 제국의회를 해산하고, 총선 뒤에는 공산당과 사민당을 불법화하고, 독일국가인민당까지 해산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한 뒤에는 국민투표로 대통령과 총리 직무를 통합해, 나치 독재를 완성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잘못이라는 사실은 국민의힘조차 인정한다. 그 재판을 굳이 정치재판으로 끌고 가 좋을 것이 무언가. 오히려 극우세력에게나마 반발할 명분을 만들어줄 뿐이다. 그것이 또 다른 ‘비상계엄권’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절제·자제가 사법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특별재판부’는 민주당이 정해놓은 방향으로 재판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 절제와 자제는커녕 적극적인 재판을 하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절제·자제하는 사법부를 원한다면 민주당부터 자제해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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