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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끝난 뒤에 재판해야 하나

등록일 2025-11-09 19:49 게재일 2025-11-1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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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검수완박’이라는 말이 이렇게 그럴 듯하게 들릴 줄은 미처 몰랐다. 민주당은 일찍이 검찰이 권력의 하수인이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검찰은 지난 7일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항소를 포기했다. 1주일 전 1심 판결을 받은 다섯 명이다.

 

피고들은 모두 항소했다. 형사소송법상 ‘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형량이 더 높아질 수는 없게 됐다. 검찰은 대장동 일당이 7886억원의 부당 이익을 얻었다고 파악했다. 공사에 끼친 손해도 4895억원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에게 물린 추징금, 473억원이외에는 회수할 수 없게 됐다.

 

나머지 돈은 그들 것이다. 형기를 마치면 떵떵거리며 쓸 수 있다. 그마저 항소심에서 더 줄어들 수 있다. 늘어날 수는 없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에 대해 1심이 ‘액수 산정이 불가능하다’면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이를 다시 뒤집을 수는 없다.

 

김만배 씨는 징역 8년에 추징금 428억원, 유동규 전 성남시 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징역 8년에  벌금 4억원, 추징금 8억1천만원, 공사전략실에 근무한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과 벌금 38억원 및 추징금 37억원을 받았다.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형이 더 늘어날 수는 없지만, 줄어들 수는 있다. 추징금도 줄어들 수 있다. 그것조차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임기 중에 감형이나 사면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 때문이다. 검찰은 이 대통령이 이 사건의 최고 결정권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보고,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법원이 재판을 중단했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현직 대통령이 형을 받을 경우 유죄건, 무죄건,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배려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결정이다. 그 탓에 법원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민주당은 아예 틀어막으려고 안간힘이다. 이 정부 출범 이후 집권당이 한 일이라고는 이재명 대통령 방탄 갑옷을 세 겹, 네 겹, 겹겹이 둘러싸는 일이 전부다.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파기 환송된 선거법 위반 재판을 막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추진했다.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 재판을 ‘이론적으로는 언제든 재개할 수 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대통령 임기 중에는 재판을 못하게 강제하는 법안을 준비했다.
거센 반발여론에 밀려 철회했다. 민주당은 거기에 ‘국정 안정법’,  ‘국정 보호법’,  ‘헌법 84조 수호법’이라는 거창한 별명을 붙였다. 대장동 재판을 겨냥해 ‘배임죄’를 폐지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이재명 대통령 수사를 막기 위해서다. 분리해야 한다던 수사권, 기소권을 이 정부가 임명한 특검에는 모두 부여했다. 강압 수사라고 항변하며, 목숨을 끊는 피의자가 나와도, 자체 조사로 덮었다. 외부 감사도, 견제도 할 수 없는 특검이다. 그 칼날은 모두 정치적 반대세력을 향해 있다.

 

‘항소 포기’는 그나마 남은 검찰의 기소권마저 빼앗은 셈이다. 수사 검사가 항소를 요구하고, 중앙지검장이 항소를 결정하고, 대검에서까지 항소하겠다고 법무부에 보고했다. 그런데 재판을 포기했다. 수사검사는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항소를 막았다고 폭로했다. 무죄가 자신있다는 이 정부가 정식 재판은 두려워한다.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 환송’ 같은 일을 미리 틀어막겠다는 속셈이다.

 

정진우 중앙지검장이 사의를 밝혔다. 항소 포기 하룻만이다. 그럴거라면 부당한 지시에 왜 맞서지 못했을까. 이게 법무부장관의 정상적인 수사지휘권 행사인가. 항소 요건에 맞지 않다는 법무부의 항변이 야당 정치인에게도 적용될까. 일반 국민에게도 같은 기준을 들이댈까.

 

어차피 신뢰는 포기했다. 정권이 바뀌지 않고는 정상적인 재판이 불가능하다. 이럴 바에야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동안은, 집권당 정치인에 대한 공소시효를 무기한 정지시키는 건 어떤가. 정권이 교체된 뒤 수사고, 재판이고, 다시 하는 건 어떤가.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코웃음 치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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