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JP) 신민주공화당 총재를 좌우에 세워놓고 민주자유당(민자당) 창당을 발표했다. 5공 신군부가 만든 민주정의당(민정당)과 두 야당의 ‘3당 합당’을 선언한 것이다.
당시 민정당은 궁지에 몰렸다. 1985년 2·12 총선에서 참패했다. 야당까지 정보기관이 만들어준 1, 2, 3중대 체제가 무너진 건 물론이다. 제1당 프리미엄 덕분에 겨우 과반을 유지했다. 서울에서 민정당이 27.3%를 얻은 데 반해 신민당은 43.9%를 얻었다.
거센 민주화 요구에 몰려 1987년 직선제를 도입했다. 그래도 양 김 씨가 표를 쪼개면 민정당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해 대선에서 조직과 돈을 모두 동원한 노태우 후보가 36.64%로 당선했다. 그러나 국회는 달랐다. 이듬해 4월 총선에서 민정당이 33.96%를 얻어 사상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만들어졌다. ‘5공비리조사특위’와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위’ 등이 설치됐다. 청문회가 열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 불려 나온 뒤 백담사로 쫓겨갔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됐다. 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이 확정됐다. 김 대통령은 하나회를 숙청해 쿠데타 가능성을 봉쇄했다.
까마득한 과거사가 된 그 시절을 돌아본 것은 최근 국민의힘 정체성 때문이다. 신군부 주역이었던 전·노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자고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친위쿠데타에 실패했다. 법 규정을 따질 것도 없다. ‘친위쿠데타’라는 사실은 정치학의 기초만 배우면 안다. 히틀러나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경험했다.
패장은 말이 없다고 한다. ‘패군지장 불어병’(敗軍之將 不語兵). 패배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말라고 한다.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느니, 국회의 횡포 때문이라느니, 우매한 국민을 깨우기 위한 ‘계몽령’이었다느니 하는 말은 모두 구질구질한 변명이다.
신군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격하 운동을 벌였다. “정당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민 불신을 초래한 체제”라며, ‘유신잔당’이라고 비판했다.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등으로 정의의 사도 행세를 했다.
5공을 청산한 이후 보수 정당은 참회와 변신의 노력을 해왔다. 민주화 세력을 수혈하고,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집어넣었다. 천막당사의 고난도 견뎠다. 그런데 다시 전두환을 복권하자는 소리가 나오니 어리둥절하다. 경제민주화를 빼고, 반공을 넣는다는 말도 나온다. 쿠데타에 실패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중심에 모시자는 ‘윤 어게인’이 주류가 되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윤 전 대통령을 비판한 죄를 물어 제명하고, 그 징계를 반대하면 같이 자리를 걸고 당원 투표를 해보자고 겁박했다.
윤 전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잘못됐다는 데는 장 대표도 동의했다. 해제 투표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갑자기 ‘윤 어게인’으로 치닫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정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라고 해도,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소명을 잊으면 안 된다. 친위쿠데타를 했어도, 정권을 지키기 위해 탄핵하면 안 된다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YS의 아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국민의힘 당사에서 YS 사진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과거 군사정권 후예라고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더 이상 그곳에 걸어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장 대표와 가까운 최고위원이 최근 영입한 한 유튜버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논의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반윤은 자리를 걸고 응징하면서, 극우 목소리에는 관대하다.
보수 정당을 바로 세우기 위해 힘들게 노력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아들은 5·18 묘지에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사람이 재판과 수형 생활을 거쳤다. 그런데 모든 걸 다시 되돌리자는 세력이 있다. 민정당의 34%로 돌아가자는 건가. 그보다 더 쪼그라들어도 당권만 쥐면 된다는 건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