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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의 뿌리는 정치권이다

등록일 2023-04-30 20:06 게재일 2023-05-0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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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미국이 왜 이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마다 미국을 모범 사례로 인용해왔다. 그런데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이게 미국 민주주의야?’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역시 미국이다. 보수·극우의 선봉이었던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터커 칼슨이 전격 해고됐다. 그는 트럼프 당선을 위해 막말과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가 대선 불복의 근거로 든 투·개표 부정이 있었다고 거짓 방송해 폭스뉴스가 투·개표기 회사에 약 1조 원을 물어주게 했다. 칼슨의 메일과 메신저에서는 투·개표 부정이 없었다고 믿고 있었던 사실까지 드러나 더 충격이다.

반대 진영의 CNN도 간판 앵커 돈 레몬을 같은 날 해고했다. 그도 트럼프가 패배하자 방송 중 기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편파적이었다.

우리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다. 한국 언론의 진영화가 심각하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한 1인 방송이 등장하면서 편파성이 더 심각해졌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가짜 뉴스 경쟁을 벌인다. 공공방송까지 ‘아니면 말고’식으로 무책임하게 내지른다. 그럴수록 오히려 팬덤이 생기고, 수익이 오른다. 청담동 술자리가 전형적이다. 거짓으로 밝혀졌는데도 억지 의혹을 계속 쏟아내며 후원금 풍선을 주워 담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일 가짜 뉴스 퇴치 대책을 발표했다.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하고, AI 가짜 뉴스 감지 시스템을 개발하겠다고 한다. 국민통합위원회과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도 허위 정보, 뉴스 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그러나 이런 대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두고 볼 일이다. 민주당 정부 때도 가짜뉴스 처벌법을 추진했다. 한쪽 진영의 잣대를 들이대면 역시 실패한다.

진짜 악성 가짜 뉴스들은 정치권에서 만들어낸다.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다. 한눈에 진위를 알 수 있는 문제도 정치권이 나서면 진실이 감춰진다. 자기 진영에 유리한 것만 진실이라고 우긴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으로 떠나자마자 가짜 뉴스가 나왔다. 윤 대통령을 만난 넷플릭스 대표가 앞으로 4년간 K-콘텐츠에 25억 달러를 투자하겠고 밝혔다. 그러자 민주당의 양이원영 의원이 이 말을 거꾸로 알아듣고, “지금 해외에 투자할 때냐”며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비난이 쏟아지자 이 글을 내렸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결정된 투자 건으로 넷플릭스와 사진 찍으러 가신 거 아닌가”라고 다시 비틀었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은 윤 대통령이 화동 볼에 입을 맞추며 답례한 것을 두고 “미국에서는 성적 학대 행위로 간주된다”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부시 전 대통령이 화동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으로 반박했다. 장 의원은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에서 심장병 어린이와 찍은 사진을 ‘빈곤 포르노’라며, 조명을 설치하고 설정 사진을 찍었다고 비난했다가 고발당했다. 전문가가 조명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이재명 대표도 “나도 조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고발해라”라고 조롱했다.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다. 하지만 비난을 위한 비난, 트집을 위한 트집은 보기에 영 불편하다.

정부·여당도 별로 나아 보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파문이 일자 국민의힘은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다가 녹취록이 공개되는 바람에 망신당했다. 가짜 뉴스를 공격하면서 사실 확인도 안 했다.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브리핑했다가 미국 측이 부인하는 일도 자초했다. 똑같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하고 옥신각신하더니, 또다시 설화(舌禍)를 만들었다. 사과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윤 대통령의 생각에 공감한다. 하지만 정치지도자의 말은 진중해야 한다.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국민을 설득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 혼자 서두르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국민을 쫓아만 가서는 안 되지만, 정말 자기 생각을 실현하고 싶다면 외고집으로 돌진만 해서도 안 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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