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구설에 올랐다. 그는 지난달 30일 청년좌담회에서 “남은 수명에 비례해서 투표해야 한다”라는 말을 해 ‘노인 폄하’라고 비난받았다. 중학생 시절 아들의 말을 인용했다지만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며 본인의 의지를 실었다.
대한노인회를 중심으로 거세게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사과를 거부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 지도부가 사과를 종용하자, 그는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자존심상 허락되지 않는다”라며 버텼다고 한다. 답답한 당지도부가 나서 사과했지만 거절당했다. 나흘이 지난 3일에야 김 위원장이 대한노인회를 찾아가 사과했다.
혁신위를 만든 건 당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변화의 진심이 있건 없건, 변화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기왕에 변화한다면 국민이 불신하는 기성 정치인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자는 생각으로 외부 인사를 모셔 왔다. 그러나 혁신위 활동을 보면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게 흘러간다.
혁신은 나라를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민주당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당내 문제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 알고 있지만 건드리지 못한다. 국민의 불만을 풀어줄 만한 새로운 생각을 보여준 게 없다. 안에서 지지부진한 처지를 밖에서 풀어보려다 설화만 일으켰다. 본인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불가능한 제도라고 말한, 반민주적인 ‘제한선거’가 합리적이라는 사람이 무슨 혁신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미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헛발질했다. 이재명 대표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벌인 이낙연 전 대표를 겨냥해 “자기 계파를 살리려 (정치적 언행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계파 대변인 같은 말을 해 반발을 샀다. 초선의원 간담회에서는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다”라고 말해 분란을 일으켰다.
김 위원장은 노인 폄하 발언과 관련해 “교수라서 철없이 지내서 정치 언어를 잘 모르고 깊이 숙고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있었다”라고 말했지만, 교수라고 다그런 건 아니다. 노인 폄하를 변명하다 또다시 교수들을 모욕한 셈이다. 국민의 지지를 끌어오기 위해 만든 혁신위가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도부가 혁신위의 사고를 수습하느라 바쁘게 만들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대위를 만들어도 대부분 임시방편으로 끝났다. 혁신위도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사법 리스크에 걸린 이재명 대표 대신 욕을 먹어주는 방탄 효과 외에는 존재 이유가 이미 사라졌다. 김 위원장은 사과 성명에서도 이름도 ‘민주당 혁신위’가 아니라 ‘김은경혁신위’라고 붙였다. 그만큼 ‘자존심’을 내건 모양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김은경혁신위’ 전체가 무력화됐다. 당내에서조차 해체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판국에 혁신위가 어떤 안을 내놓은들 박수받을 수 있겠는가.
김은경 위원장은 나흘 만에 사과했다. 버티다 사과했다. 더구나 그는 사과하지 않고 버티는 동안 “윤석열 밑에서 (금융감독원 부원장) 임기를 마치는 게 치욕스러웠다”라고 새로운 분쟁 거리를 만들었다. 윤 대통령을 ‘대통령’이란 직함을 빼고 맨이름으로 불렀다. 조국 사태 때처럼 개인적 잘못을 진영싸움으로 바꿔 극성 지지자들로부터 지원받으려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개딸’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다는 말이다. 철없이 정치를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너무나 ‘정치적’인 행보다.
전임 이래경 혁신위원장은 임명한 지 10시간 만에 낙마했다. 김 위원장도 낙마하건 않건, 이미 실패했다. 혁신위원장 자리에 의외의 인물들이 임명되고, 추락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재명 대표가 기존 여의도 정치와는 다른 길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표의 책임이다. 두 사람의 실패는 이 대표가 생각하는 새로운 길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개딸정치’로는 정권 교체가 어렵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