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고문
잘못을 인정하기는 참 어렵다. 제 눈의 들보는 보기 힘들다고 성경은 말한다. 자기 잘못을 아는 것이 어려우니 인정하는 게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자기 잘못을 알면서 고백하는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감을 감수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자기 잘못을 몰라 우기는 이보다는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몰라서 생긴 갈등이야 이야기하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 알면서 우기는 사람은 대책이 없다. 풀어야 할 숙제는 제쳐놓고 엉뚱한 문제로 시비를 벌인다. 시시비비는 이미 알고 있으니 새로운 문제로 돌려 말꼬리를 잡고, 모욕한다.김정숙 여사의 옷 문제도 그렇다. 사실 대통령 부인은 공식 행사가 많다. 공무원이 아니면서도 공무를 수행한다. 옷으로 국격을 대변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정 정도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이 받아들일 수준 안에서다.우리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진다. 이제까지 청와대 살림이 비공개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발전이다. 모욕을 주고, 수치심을 느끼고, 국정에 지장을 줄 정도로 소란을 피울 일은 아니다. 지나친 부분이 있다면 솔직히 털어놓고 사과하고 넘어가는 게 옳다.답답한 건 문재인 정부는 무조건 부인만 한다는 점이다. 안보를 저해하지 않고도 의전비용을 공개할 방법은 많다. 개인 비용으로 쓴 부분을 밝혀도 저절로 확인된다. 대통령 기록물로 밀봉해 법원 판결을 무효로 만드는 건 대통령이 선택할 방법이 아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특별감찰관 제도를 만들었지만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임명하지 않았다.20년 집권, 50년 집권을 외치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놨다. 10년 주기도 못 채웠다. 사실 경쟁자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확인됐지만, 민주당이 싫어서다. 믿지 못해서다. 가장 큰 원인이 ‘내로남불’이다. 핵심이 조국 사건이다. 조국 사건으로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비난받고, 윤석열 후보도 만들었다. 국민이 그 사건의 희생자로 그 사건을 바로잡은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조국 사건이 불거졌다. 대선 과정에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사과했던 일이다. 배경이니, 의도니,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사건만 보자. 분명히 잘못한 점이 있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는 엄두도 못 낼 일을 했다. 상류층 모두 하던 일인지, 상류층 일부만 한 일인지 몰라도 일반 국민은 피해를 봤다. 특권층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기 자식을 대신 올려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그것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친 정부에서, 수없이 트위터로 ‘특권층의 부도덕’을 폭로해온 ‘정의의 상징’이.그때 사과하고 끝냈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철저히 부인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히스테리를 보였다. 임기 내내 질 수밖에 없는 진실게임을 벌였다. 오히려 조국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상대를 공격하고, 진영 결집의 계기로 삼았다. 법질서도, 상식도 부인했다. 맞는 말도 못 믿게 신뢰를 잃었다.윤미향 사건, 박원순 사건…. 돌이켜 보면 하나 같이 어이가 없다. 개인의 일탈을 진영의 도덕성으로 감쌌다. 우리 편에겐 티끌만한 잘못도 없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우리 ○○이는 화장실도 안 가’ 식으로 아이돌 놀이를 벌였다. ‘개딸놀이’, ‘개준스기’ 덕질로 발전했다. 정치에 즐겁게 참여하는 데는 희망이 보이지만, 나라 운명을 놀이로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소환하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고, 노발대발 바로 잡으려 했다. 그렇다고 시계가 없었던 것도, 기업인의 돈을 받지 않은 것도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뿐이다. 이제 와 없었던 일처럼 말하는 건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일 뿐이다.정치인은 얼굴이 두꺼운 게 미덕인가. 반성 없이는 발전이 없다. 그런 태도로는 극렬지지자만 뭉친다. 결국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 판단을 받게 돼 있다. /김진국 본사고문
2022-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