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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적 파국 위기를 반복할 건가

위태위태하다. 정치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흔히 허니문 기간이라고 하는 인수위 단계에 선거 기간보다 더 격렬하게 정치권이 부딪쳤다. 주고받는 말도 협상 파트너의 대화가 아니다. 육탄전을 벌이는 병사를 연상시킨다.겨우 지난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검수완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검수완박)는 구호를 검찰총장 출신인 대통령 당선인과의 전쟁으로 생각한다.사실 경찰이건 중수처(중대범죄수사처)건 윤석열 대통령이 지휘한다. 검찰보다 더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에서 독립적인 수사 가능성을 봤다. 1차 ‘검수완박’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위장 탈당하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서두르는지 알 수 없다.여야 지도부가 정치력이 없다. 그저 ‘돌격 앞으로’만 외친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중재안이 적절한지는 차치하고, 중재안 없이 벌어졌을 일을 생각하면 파국이다.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드는 게 정치다. 그런데 왜 국회의장이 나설 때까지 그런 시도도 하지 않았나.정치의 주도권을 정치 팬덤에게 빼앗겼다. 이번 사태도 팬덤 정치 탓이다. 팬덤에 편승만 할 뿐 설득할 리더십이 없다. 팬덤 정치는 타협이 없다. 타협은 내 것을 내줘야 한다. 그런데 팬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는 협상할 수 없다.팬덤 정치의 싹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지금도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주의에 번번이 무너지던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최대의 공로자들이다. 이전 정치인들의 지지 모임과는 다른 팬덤 현상을 보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이 ‘노빠’다.노 전 대통령은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았다. 필요하면 설득했다. 임기 중 이라크 파병, 강정기지, 한미FTA 등 지지층의 여론과 일치하지 않는 결단도 내렸다.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지지자를 설득했다.그 이후로 정치인들에게 그런 결단력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586에 얹혀 간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다. 정치인만 달라진 게 아니다. 지지자들도 변했다. ‘노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를 버리고 가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를 공세로부터 지켜주지 못해 비극을 겪었다는 생각이다.그 반성이 ‘노빠’를 ‘문빠’로 만들었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이름은 시시비비에 대한 팬덤의 태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우리 이니(문재인)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말도 무조건 지지하겠다는 표시다. 정치적 아젠다를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덤들의 놀이처럼 다루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비속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합리성과 자제를 포기하고, 전투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보인다.팬덤 현상이 정치 참여를 끌어올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전체주의적 성향이다.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고, 타도 대상으로 삼는다. 내부에서도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여야 의원 중에 이런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합리적 접근보다 승리 지상주의에 매몰돼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자 폭탄이 겁나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나치나 중국 문화대혁명기에 경험했던 실패를 반복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발붙일 여지가 없다.대선 결과 심각한 여소야대에 직면했다. 13대 국회의 여소야대와도 다르다. 그때는 4당 체제였다. 합종연횡할 수 있었다. 각당의 리더십도 확실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국민통합, 협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그러나 ‘개딸’(개혁의 딸들) 등 민주당 팬덤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24만 표 차만 생각한다. 새 정부는 경험이 부족하다. 정치력도 없으면서 국회를 우회해 돌진하려 한다. 서로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 가진 제도적 힘을 자제해야 한다. 팬덤을 무서워하면 정치를 할 수 없다.위기는 기회다. 극단적인 여소야대는 잘못된 선거제도 탓이다. 이참에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04-24

최순실, 조국, 정호영뿐인가

윤석열 정부가 선보인 인사에 감동이 없다. 윤석열 당선인은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 국민을 잘 모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능력주의’를 인사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간단치 않다.윤 당선인은 “공동정부라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함께 찾아서 임무를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식의 내각 할애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관심을 보인 보건복지부 장관에도 정호영 후보자를 내정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40년 지기’에 대한 ‘의리 인사’다. ‘아빠 찬스’ 의혹도 제기됐다.정권 교체의 가장 큰 배경이 ‘공정’이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내내 정권 교체 여론이 절반을 넘었던 것은 ‘공정’ 가치를 훼손한 ‘내로남불’ 탓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를 2년이 넘도록 끌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조국 장관을)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윤석열 당선인도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의혹만으로 교체하라는 건 사실 무리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정 후보자의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의혹을 검증할 책임은 임명권자에게 있다.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면 결국 임명권자가 짐을 떠안아야 한다. 조국 전 장관의 의혹은 법원이 사실이라고 확정했다. 문 대통령이 개인적 ‘마음의 빚’에 얽매여 망설이다 ‘20년 집권론’은커녕 ‘10년 주기설’도 채우지 못했다.윤석열 정부는 민주당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정부다. 문재인 정부가 ‘최순실 사건’의 충격으로 정권을 거저 주운 것과 비슷하다. 그럴수록 민심을 잘 살펴야 한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민심이다. 정호영 후보자에게 쏟아진 의혹은 조국 전 장관의 경우와 너무 닮았다는 게 부담이다.박근혜 정부를 뒤집는 결정적인 방아쇠는 최순실 씨 딸의 대학 입학 특혜 의혹이었다. 공정 문제를 건드려 젊은 층이 일어섰다. 전 국민이 국정 농단 의혹을 ‘내 문제’로 실감하게 됐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조국 전 장관 의혹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반성하지 않으면 동정심을 가진 사람조차 돌아선다.그 덕분에 정권을 잡은 윤석열 정부도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혹이 제기되면 바로 공직 후보자를 교체했다. 그러했기에 후보자의 도덕성이 정권에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 정 후보자는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상당히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느냐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면 억울해도 그만둬야 한다. 그게 정 후보자를 발탁해준 윤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야당이나 언론의 문제 제기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로 검증하고, 책임을 물을 때 정권의 도덕성이 유지된다.사실 더 큰 문제는 제도다. 어떻게 내리 세 번의 정권에서 비슷한 의혹이 불거지나. 전임 정권이 민심을 잃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일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의 첫 번째 인사를 위해 철저히 검증해도 막지 못한다. 정 후보자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상류층의 고질적인 적폐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일반 서민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좁은 진학과 취업의 문 앞에 선 젊은이들이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하지도 않은 봉사활동을 했다고 증명하고, 쓰지도 않은 논문을 썼다고 이름을 올리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정 후보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기 싫어서 포기하는 건가. ‘돈도 실력’이고, ‘아빠 찬스’ ‘엄마 찬스’도 실력이라고 인정하고, 좌절해야 하는가.입시제도는 흙수저가 계층 상승할 유일한 사다리다. 사교육이 판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복잡한 제도들이 결국은 ‘찬스’를 위한 샛길로 이용된 꼴이다. 최순실, 조국, 정호영 씨의 의혹이 사실이건 아니건,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가 개입할 여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겨우 남은 이 사다리마저 걷어차지 말아야 한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04-17

부인 문제부터 숨통을 틀 수는 없을까

김진국 고문 우크라이나에서 여성과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잔혹상이 세계의 분노를 자아낸다. 죽음과 학대와 모욕…. 전쟁이 벌어지면 여성과 어린이가 가장 비참하게 희생된다. 정치판도 비슷한 면이 있다. 폭력에 무방비한 약자고, 선전 효과도 크다.지난 대선에서도 최대 쟁점이 여성이었다. 후보보다 후보 부인의 과거가 더 큰 논란이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분노와 증오와 조롱과 흑색선전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당선인 부인 김건희 씨의 쥴리 의혹, 주가조작 의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정부 법인카드 유용 의혹, 공무원 사적 이용 의혹….거기에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의상과 액세서리 구매에 청와대 특활비를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는 부산대 의전원과 고려대 입학이 취소됐다. 최서원(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처럼 고졸자다. 그들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이 본인의 잘못이 크다. 법의 심판을 피할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편이나 부모가 정쟁의 중심에 있어 더 가혹한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남편이나 부모가 사과 대신 정치 반격에 이용해 수습의 기회를 놓치고, 사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선거는 평화적인 전쟁이다. 선거 때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된다. 이제 대통령선거는 끝났다. 물론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일부 보궐선거도 함께 치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언제까지 후보도 아닌 가족을 진영 대결의 희생물로 삼을 순 없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선거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했다. 그 배경을 두고 여러 주장이 있지만 첫 여야 정권 교체에 도움을 준 건 틀림없다. 후보의 잘잘못을 가려야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가 선거 결과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나쁜 관행은 바꿔야 한다. 진심을 담은 사과도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인에 대해 정치적 이유로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갑옷론이 나온다. 대장동 사건, ‘법카’ 수사를 앞두고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정치 재개를 서두른다고 한다. 대선이 끝난 지 겨우 한 달 만에 조기 등판하는 명분을 검찰수사에서 찾은 것이다.국회는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다. 민주당 의석이 172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지만, 현재는 국민의힘 110명, 무소속 1명, 국민의당 3명을 제외한 186명이 반(反) 국민의힘이다. 개헌을 제외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아무것도 못 하게 표류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과 3분의 1씩 비슷하게 득표한 선거 결과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왜곡된 결과다. 대통령선거도 24만7천77표 차이로 승자가 모두 갖는다.이런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감정으로 푼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민심도 쪼개졌다. 선동세력은 선거 불복을 부추긴다.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승자의 시간을 주던 미덕이 사라졌다. 선거가 끝나도 당선인의 지지율은 그대로다.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동화 ‘여우와 두루미’는 모두 아는 이야기다. 둘이 함께 식사하려면 음식의 종류, 그릇을 의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서로 배려해야 한다. 여우에게 호로병에 든 음식을 주는 건 먹지 말고 굶으라는 말이다. 국민의힘 정부에 민주당 정책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정부 조직을 강요하면 국민의힘은 일을 못 한다. 발목을 잡는 꼴이다.민주당이 국민의힘 정책을 지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면 적어도 임기 초 당선인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여유는 줘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꽁꽁 묶어놓고, 검찰과 경찰은 뒤늦게 이재명 후보 쪽에 칼을 겨눈다. 협치를 위해선 출구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지만 당장 숨통부터 터야 한다. 가족 문제는 가장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다. 퇴로가 없다. 국민의힘은 대장동과 ‘법카’를 제외하고, 고소·고발 대부분을 취하했다. 여기에 더해 부인들 문제도 진정한 사과와 함께 빨리 털어낼 방법이 없는가.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김진국 본사 고문

2022-04-10

정치인은 얼굴이 두꺼운 게 미덕인가

김진국 고문 잘못을 인정하기는 참 어렵다. 제 눈의 들보는 보기 힘들다고 성경은 말한다. 자기 잘못을 아는 것이 어려우니 인정하는 게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자기 잘못을 알면서 고백하는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감을 감수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자기 잘못을 몰라 우기는 이보다는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몰라서 생긴 갈등이야 이야기하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 알면서 우기는 사람은 대책이 없다. 풀어야 할 숙제는 제쳐놓고 엉뚱한 문제로 시비를 벌인다. 시시비비는 이미 알고 있으니 새로운 문제로 돌려 말꼬리를 잡고, 모욕한다.김정숙 여사의 옷 문제도 그렇다. 사실 대통령 부인은 공식 행사가 많다. 공무원이 아니면서도 공무를 수행한다. 옷으로 국격을 대변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정 정도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이 받아들일 수준 안에서다.우리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진다. 이제까지 청와대 살림이 비공개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발전이다. 모욕을 주고, 수치심을 느끼고, 국정에 지장을 줄 정도로 소란을 피울 일은 아니다. 지나친 부분이 있다면 솔직히 털어놓고 사과하고 넘어가는 게 옳다.답답한 건 문재인 정부는 무조건 부인만 한다는 점이다. 안보를 저해하지 않고도 의전비용을 공개할 방법은 많다. 개인 비용으로 쓴 부분을 밝혀도 저절로 확인된다. 대통령 기록물로 밀봉해 법원 판결을 무효로 만드는 건 대통령이 선택할 방법이 아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특별감찰관 제도를 만들었지만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임명하지 않았다.20년 집권, 50년 집권을 외치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놨다. 10년 주기도 못 채웠다. 사실 경쟁자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확인됐지만, 민주당이 싫어서다. 믿지 못해서다. 가장 큰 원인이 ‘내로남불’이다. 핵심이 조국 사건이다. 조국 사건으로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비난받고, 윤석열 후보도 만들었다. 국민이 그 사건의 희생자로 그 사건을 바로잡은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조국 사건이 불거졌다. 대선 과정에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사과했던 일이다. 배경이니, 의도니,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사건만 보자. 분명히 잘못한 점이 있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는 엄두도 못 낼 일을 했다. 상류층 모두 하던 일인지, 상류층 일부만 한 일인지 몰라도 일반 국민은 피해를 봤다. 특권층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기 자식을 대신 올려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그것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친 정부에서, 수없이 트위터로 ‘특권층의 부도덕’을 폭로해온 ‘정의의 상징’이.그때 사과하고 끝냈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철저히 부인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히스테리를 보였다. 임기 내내 질 수밖에 없는 진실게임을 벌였다. 오히려 조국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상대를 공격하고, 진영 결집의 계기로 삼았다. 법질서도, 상식도 부인했다. 맞는 말도 못 믿게 신뢰를 잃었다.윤미향 사건, 박원순 사건…. 돌이켜 보면 하나 같이 어이가 없다. 개인의 일탈을 진영의 도덕성으로 감쌌다. 우리 편에겐 티끌만한 잘못도 없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우리 ○○이는 화장실도 안 가’ 식으로 아이돌 놀이를 벌였다. ‘개딸놀이’, ‘개준스기’ 덕질로 발전했다. 정치에 즐겁게 참여하는 데는 희망이 보이지만, 나라 운명을 놀이로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소환하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고, 노발대발 바로 잡으려 했다. 그렇다고 시계가 없었던 것도, 기업인의 돈을 받지 않은 것도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뿐이다. 이제 와 없었던 일처럼 말하는 건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일 뿐이다.정치인은 얼굴이 두꺼운 게 미덕인가. 반성 없이는 발전이 없다. 그런 태도로는 극렬지지자만 뭉친다. 결국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 판단을 받게 돼 있다. /김진국 본사고문

2022-04-03

대통령과 당선인이 국민 통합 중심돼야

김진국 고문 정부 이양이 소란하다. 어떤 자리도 전·후임자 사이가 좋기는 쉽지 않다. 비교당하고, 궂은일의 책임과 좋은 일의 공덕이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제왕적’이라는 말을 듣는 대통령 자리는 오죽할까. 같은 정당 내에서 정권을 넘겨도 전·후임자 사이에 앙금이 남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니 정권 교체에서는 어느 정도 잡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이번에는 좀 지나치다.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일도 대통령과 당선인이 대립할 문제는 아니다. 집무실은 쓸 사람이 결정할 몫이다. 여론을 물어보고, 정치권이 논란을 벌일 수는 있지만 방을 비워줄 전임 대통령이 왈가왈부하는 건 남의 집 제사상 간섭하는 꼴이다.물론 그 일이 현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참견한다면 거기까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자마자 청와대를 시민에게 공개하려면 후임 대통령이 입주할 때와는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일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 그렇게까지 서두를 이유는 없다.최근 여론조사마다 과반수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반대한다. 이런 탓인지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정 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55%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87%, 박근혜 전 대통령은 78%, 이명박 전 대통령은 84%였다.선거가 끝나면 새 대통령에게 기대가 모이는 게 정상이다. 저조한 기대치는 선거전이 격렬했던 탓도 있지만, 그 후유증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윤 당선인이 ‘국민 통합’을 강조했지만, 실행이 더디다는 말이다. 당선인과 그 측근들이 던지는 말들이 너무 날카롭다. 반대 진영에서 승복하지 않는 언행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 통합의 책임은 결국 국정을 이끌어갈 윤 당선인에게 있다. 전임자, 경쟁 정당을 끌어안아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데도 실패했다.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오래 못 간다.임기 초 지지율은 국정의 틀을 잡아나가는 동력이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가 특히 악재다. ‘밀월 기간’도 날려버렸다. 선거가 끝났는데도 정치권이 전투 모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리서치 조사를 보면 대구·경북(찬성 61.4%, 반대 34.3%)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반대 의견이 많다. 서울은 반대 55.8%, 찬성 39.3%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호남과 세종·인천·경기·제주에서 이겼다. 그런데 민주당에 호재가 생긴 것이다. 대통령 선거의 여파가 남아 있어 판세를 뒤집기 어려웠는데, 대선 득표 차가 크지 않은 서울·충청에서 의욕이 생겼다.문 대통령은 18일 참모진들에게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개별적인 의사 표현은 하지 말라”고 입 단속했다. 그런데 21일 “촉박한 시일에 국방부·합참·대통령비서실 등 이전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며 반대했다. 급반전의 배경이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이라고 의심받을 만하다.대통령 선거 때도 문 대통령은 투표 하루 전인 8일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의도했건 아니건, 여성 표가 이재명 후보로 모이게 도왔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에는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문제를 차치해도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선거 때문에 협력하지 못한다면 비극이다.윤석열 당선인은 당선되는 순간 국민의힘이나 지지자들의 당선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당선인이다. 집무실을 하루 일찍 옮기는 것보다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 현 대통령과 경쟁 정당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상대가 그 손을 잡지 않더라도, 포용하는 노력을 보이고, 국민이 거기서 진심을 느껴야 통합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취임하면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분열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대 대통령은 불행했다. 이제라도 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하루빨리 전·후임자가 손을 잡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김진국 본사 고문

2022-03-27

국민의 눈으로 판단하라

김진국 고문 정치에 왜 명분이 필요한가. 무조건 싸워 이기면 되는 것 아닌가. 이기면 진 쪽을 다시는 덤벼들지 못하게 짓밟고, 지면 불복하고, 발목을 잡으며 호시탐탐 복수 기회를 노리고…. 국민이 먹잇감이고, 그걸 차지하려는 맹수의 싸움이라면 그래도 된다. 제왕들의 전쟁도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다. 대통령 후보들도 스스로 ‘머슴’이라고 부르지 않았나.주인인 국민의 눈으로 보면 달라진다. 부정하지 않고, 일 잘할 머슴을 선택할 권리가 주인에게 있다. 좋은 머슴을 고르려면 경쟁시켜야 한다. 어느 한 쪽도 없앨 수 없다. 선택권이 사라지면 머슴이 횡포를 부린다. 지고도 불복해 일을 못 하게 발목을 잡으면 피해가 국민에게 간다.새 대통령 취임식이 50일도 안 남았다. 정권 이양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알력이 심하다. ‘레임덕’의 유래가 된 시기다. 이름과 실제 힘 사이의 거리가 고통을 준다. 넘기는 쪽은 아쉽고, 불만이다. 넘겨받는 쪽은 의욕이 과잉이다. 과격한 일부 지지자들의 아우성은 논외로 치자. 그렇더라도 정권의 핵심 정치인들까지 불복(不服)하는 것은 걱정스럽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시시비비가 분명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냉정하게 볼 수 있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건국 이후 정권 교체가 많았다. 하지만, 정상적인 교대는 드물다. 불행한 퇴임이 많은 탓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해외로 쫓겨갔고, 박정희 대통령은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감옥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위기로 확실한 레임덕을 맞아, 김대중 당선인이 취임 전부터 수습에 나섰다.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가족의 뇌물 수수 의혹으로 수사받았다. 문서 반출 논란도 있었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봉인한 것으로 알려진 전임 대통령 문서들을 어디선가 찾아내 임기 내내 ‘적폐 청산’ 칼날로 삼았다.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고 순탄한 건 아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친구를 믿고 권력을 넘겼지만, 백담사로 유배됐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함께 감옥에 갔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송금 수사로 집권당이 쪼개지는 곡절을 겪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사람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사람을 썼다.이번 정권 이양도 덜컥거린다. 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16일 회동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이 18일 윤 당선인을 빨리 만나고 싶다며 실마리를 풀었지만, 언제 돌부리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임기 말 공공기관장 인사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여전히 팽팽하다. 한쪽에선 “대통령의 인사권에 왈가왈부하지 말아라”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오만한 내 사람 챙기기”라고 으르렁댄다.간발의 득표 차이가 갈등을 증폭시킨다. 24만7077표. 역대 최소인 0.73%포인트 차이다. 올인한 도박판에서 한 끗 차이로 모두 빼앗긴 꼴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총선에서는 50%에 못 미치는 득표로 3분의 2 의석을 차지했다. 우리 제도의 문제지만 선거 결과는 승복해야 한다.자기를 부정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문빠’는 자기 진영의 잘못을 인정해본 적이 없다. 패배 원인의 하나인 ‘내로남불’이 승복을 가로막는다. 신념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선거 직전까지 정권 교체 여론이 50%를 넘었다. 상대 정당이 잘한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졌다. 반성하지 못하면 달라질 수 없다.왕권 이양이 아니다. 국민의 눈으로 판단해야 한다. 공기업 사장의 89%가 임기 절반을 다음 대통령과 같이 일한다. 임기 마지막까지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책 방향도 다르다. 청와대 근무자나 민주당 당직자들이다. 이런 보은 인사는 국정 방해다. 그렇다고 선거가 끝났는데 패배 정당을 모욕하는 건 피해야 한다. 정치는 전리품을 얻는 전투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 봉사다. 정권 교체는 반복해 일어난다. ‘블랙리스트’도 안 되지만 넘겨주는 측의 금도도 필요하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정치하는 자는 그 정도의 명분은 세워야 한다./본사 고문

2022-03-20

전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으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한다. 두 달 정도 남았다. 대통령 임기를 통틀어도 이때만큼 희망에 부풀고, 기세가 오를 때가 없다. 후임 대통령이 정해지고, 퇴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면 아쉬움과 후회가 파도처럼 몰려온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윤 당선인의 10일 기자회견은 그런 희망과 의욕이 넘쳤다. 과거 대통령들도 취임할 때는 다 좋은 말만 했다. 취임사만 보면 어떤 대통령이 한 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심보다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잉크보다 빠르게 취임사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대통령들의 취임사는 국민이 원하지만, 대통령이 하기 싫거나, 할 수 없었던 일들의 집합이다. ‘ABM’(A nything But Moon, 문재인 지우기)은 아니라도 일종의 반면교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가장 먼저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진영 갈등이 어느 때보다 극심했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은 소외감을 느꼈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누어 군중 집회를 열었다.윤 당선인도 당선 배경을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말했다. 또 “오로지 국익만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보수와 진보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쉽다. 실천하려면 힘들고 고통스럽다.윤 당선인이 마주한 정치 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진영 갈등에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이 더하고, 사라질 것 같던 지역 갈등도 아직 남았다. 국회는 여소야대(與小野大)다. 국민의당과 합당해도 113석이다. 5분의 3 의석(180석)이면 개헌을 제외하고는 뭐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선 득표 차이도 역대 가장 적은 24만7천77표다. 취임하고 한 달도 안 돼 지방선거가 닥친다. 허니문 없이 바로 대결로 치닫는다.윤 당선인은 “여소야대 상황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가 훨씬 성숙해 나갈 기회”라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1988년 여소야대 국회는 4당 체제였다. 야당도 어느 한 당이 독주할 수 없었다. 보수당인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캐스팅보트 역할도 했다. 지금은 민주당이 독주하는 국회다. 선거 도중 민주당이 약속한 다당제로 갈 수 있다면 협치가 쉬워진다.문 대통령은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거대 야당을 마주한 윤 당선인의 대화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쪼개는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경선 과정의 갈등으로 민주당이 스스로 갈라설 수는 있다. 권력이 개입하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민주당 인사를 발탁하더라도 와해 공작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13대 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여준 인내의 협치가 필요하다.“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주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코드 인사’로 일관했다. 윤 당선인이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아 빚이 적다는 건 오히려 장점이다. 과감한 결단이 가능하다.윤 당선인은 “기자 여러분과 간담회를 자주 갖겠다”고 약속했다. “퇴근길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은 빈말이 됐다. 기자회견도 10번이 안 된다. 정부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정직한 정부가 되겠다는 윤 당선인의 약속도 문 대통령 말과 같다. 말보다 실천이다. ‘내로남불’이 정권교체의 가장 큰 동력이 된 걸 잊어선 안 된다.윤 당선인은 공정의 상징으로 소환됐다. 문 대통령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말을 하면 박수받는다. 문제는 실천이다. 더 좋은 지도자는 박수받지 못해도 힘든 일을 해내자는 주문을 하는 사람이다./본사 고문

2022-03-13

새 대통령, 위기일수록 기대도 크다

김진국 고문 36.93%. 지난 4~5일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결과다. 과거 다른 선거와 비교가 안 되게 높다. 5년 전 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율은 26.06%. 그보다 무려 10.87%가 높다. 코로나19, 각 정당의 사전투표 독려를 고려해도 뜨거운 열기다.가장 큰 배경은 정치에 대한 갈증이다. 사전투표 직전 넥스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53.2%였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정치 교체’를 선거 막판 반전 카드로 내밀었다. 현재의 정치에 불만,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이 국민 마음에 크게 물결치고 있다는 뜻이다.선거 열기가 뜨거운 만큼 그 이후가 걱정이다. 대결이 치열할수록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하자마자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또 치러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2년 남았지만, 국회 상황이 만만치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도가 38%로 같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잘못된 선거제도 탓이긴 하지만 그 괴리에서 오는 갈등은 고질적인 정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국회의 협조는 받겠지만 여론과 의석의 불일치에서 오는 갈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 민주당의 독주가 여야 대치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협조를 받기가 어렵다. 협치로 나아가면 다행이겠지만 행정부와 국회의 대립, 민주당 흔들기, 정계 개편 등 정치 혼란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더구나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과 유세 때 쏟아놓은 말들에는 설익은 약속이 많다. 윤 후보는 준비 기간이 짧았다. 일단 전문가들의 제안을 학습하기 바빴다. 이 후보는 선거 기간 중 기존에 내놓은 정책을 많이 바꾸었다. 이 후보는 이를 실용주의라고 하지만 표를 따라다닌 결과다. 누가 되건 정책의 불확실성이 크다. 빨리 정리해야 한다.여기에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의 대립 격화가 가져온 국제 무역 질서의 혼란, 코로나19로 죽어가는 중소상공인과 방만한 재정 운용의 후유증이 다음 정부로 부담을 떠넘기게 돼 있다. ‘취업 포기’, ‘평생 알바’라는 딱지는 젊은 층에 평생 짐을 지워놓았다. ‘일자리 대통령’이 만든 사라진 세대다.새로운 비전보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재명 후보까지 지난 5년을 ‘반성한다’, ‘사죄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먼저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 문 정부에서는 오른쪽 깜빡이를 켜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일이 너무 잦다.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선거 중에 후보가 한 말은 당선을 위한 안간힘이라고 이해한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내 말을 진짠 줄 안다’고 뒤집어서는 안 된다. 말이 분명해야 정책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진다.빨리 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선거 막바지에 약속한 다당제의 상생 정치를 이행해야 한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지만 그 정신대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기를 기대한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 의회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힘들어도 최대한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영을 뛰어넘는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상대 후보에 대한 비난을 들으면 모두 범죄자다. 죄가 있으면 조사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는 게 좋다. 또다시 임기 내내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사법제도를 정치에 이용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임기 중 거대한 업적을 쌓으려는 욕심도 금물이다.통일이건, 탈원전이건 좋은 목표라고 서두르면 뱁새 꼴이 난다.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패권국인 미국도 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함께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개인 취향 따라 움직이면 국민만 불행하다. 임기는 5년이다. 그렇다고 서두르면 안 된다.    /본사고문

2022-03-06

정치 신뢰, 해답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김진국 고문 옛날 정치를 들먹이는 사람을 많이 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온갖 욕을 하던 사람이 그를 소환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으려던 사람이 ‘그래도 그분은…’이라고 추모한다. 추억이 현실보다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그때는 그래도 정치 도의라는 게 있었다. 속으로야 음험한 꿍꿍이셈을 품어도 겉으로는 아닌 체 명분으로 포장했다. 요즘은 명분이고, 체면 따위는 내팽개치고, 낯 뜨거운 언행을 거침없이 배설한다. 말 뒤집고, 거짓말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다.후보끼리도 ‘같잖다’, ‘겁대가리’ 같은 상스러운 표현이 거침없이 오간다. 정치 현안을 다루는 언행들도 상식을 벗어난다.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3일 국민의당과의 막후대화를 폭로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 후보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측 관계자에게 ‘안철수 후보를 접게 만들겠다’는 등 제안을 해 온 것도 있다. 안 후보는 아시는지 모르지만….”‘안 후보가 아시는지 모르지만’이란 말은 “당신 측근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안 후보와 그 측근들을 이간질한 것이다. 물밑 대화를 공개하면 본인의 협상만 중단되지 않는다. 윤석열-안철수 사이의 모든 대화 통로가 다 막혀 버린다. 정치 도의도 신뢰도 모두 포기한 행동이다. 단일화보다는 안 후보 진영의 와해를 노린 수다. 적을 이기는 잔꾀를 잘 낸다고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는 게 아니다.윤석열 후보도 단일화가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단일화 없이도 이긴다는 생각 같다. 민심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마지막 투표함을 열기 전에는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자만하다 뒤집힌 선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최근에 다시 지지율이 박빙으로 좁혀지고 있다.안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단일화를 생각했다면, 윤 후보는 군소후보들을 흡수하는 단일화를 말하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이 아니라도 적어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같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안 후보가 포기할까. 당선 가능성이 윤석열·이재명 후보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안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380만 명(8.5%)에서 660만 명(15%) 정도가 있다. 500만 명 정도의 그 지지자들이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진지한 제안에 외면하고, 조롱하면 모욕이다. 힘으로 누르면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 종국에 표의 쏠림이 생기더라도 굴욕감을 느낀 표가 어디로 움직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언제나 힘으로 굴복시키는 정치를 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양강이 아닌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체제를 선거구제 개혁을 통해 만들겠다” “위성정당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총리 국회 추천, 중대선거구제, 결선투표제 등을 제안했다.그러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말보다 행동”이라고 말했다. 불과 2년 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부터 치명적인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처리에 협조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을 만들었다. 막상 선거 때는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군소정당들은 기존 선거법에서보다 더 불리한 선거를 치렀다. 안철수 후보도 “그렇게 소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행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이재명 후보는 토론에서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성정당 없어도 압승했을 선거였다. 민주당이 뺏어간 의석은 정의당 등 군소정당이 가져갈 의석이었다. 민주당이 만든 법이다. 아쉬운 일이 해결되자 입을 씻었다. 이번에도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어제는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결의까지 했다. 그렇지만 불과 며칠 전 새벽에 날치기로 추경을 통과한 정당이다. 숫자의 힘으로 독주하는 그 체질이 갑자기 바뀔까.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국민의힘이건 민주당이건 소수당의 싹을 없애려고 한다. 자신들과 비슷한 색깔일수록 더 짓밟는다. 그것마저 빼앗으려 한다.분권형은 말뿐,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 제왕적 대통령을 향해 질주한다. 그래도 겁내는 건 국민이다. 해법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본사 고문

2022-02-27

선거 이후가 걱정이다

김진국 고문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잔치다. 기간을 정해 미래의 꿈을 설계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나아가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아무래도 미래와 꿈이란 단어가 그리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무속과 신천지, 초밥과 합숙소가 최대 쟁점이다. 워낙에 비호감이 높은 후보들끼리 싸우는 선거였다. 그런데 상대 약점을 파헤치고, 없는 의혹까지 만들어 덮어씌우는 선거전략이다 보니 혐오감이 더 커진다. 이렇게 해서 선출한 대통령을 존경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후보들 스스로 신뢰를 까먹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지지자들이 반발하자 “그렇게 말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라고 조롱했다.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재난 지원금…. 거듭 말이 오락가락하면서 ‘표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왜 나왔는지 알게 됐다. 이 후보는 여론이 바뀌면 언제든 의견을 바꿀 수 있는 ‘실용주의’라고 한다. 대단한 장점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너무 지나쳐 어떤 약속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준비가 안 됐다. 그의 대통령 출마는 상황이 만들어줬다. 조국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없었다면 윤석열 후보는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학습하고, 적응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기 속성 과외로 하는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그는 ‘적폐 청산’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전력을 보면 그냥 하는 말 같지 않다. 해온 일이 그렇고, 원한도 많다. 지난 정권 5년 내내 지겹도록 정치보복 쇼를 지켜봤다. 또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는 것은 두렵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그 후유증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코로나 속에 감췄다. 유세나 후보 단일화에서 내뱉는 말을 보면 많이 윤 후보도 오만해졌다.지난 5년 워낙 상식이 무너졌으니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준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윤 후보는 어퍼컷 세리머니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발차기로 응수했다. 재미있는 퍼포먼스다. 그렇지만 몸싸움 시늉이 앞으로 전개될 우리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선거가 막바지로 갈수록 진영화도 점점 강고해진다. 상대를 공격할 소재가 엿보이면 억지 프레임을 씌운다. 자기편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는커녕 막무가내로 감싼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외눈박이 진영논리는 선거판에서 더 심해졌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누가 되건 다음 정권 초기는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갈등이 불을 보듯 하다. 3개월 뒤 지방선거를 향해, 2년 뒤 총선을 겨냥해서, 또 5년 뒤 다음 대통령 선거를 목표로 돌진할 게 뻔하다.지도자는 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없이 오늘날의 중국을 생각할 수 있겠나. 대처 영국 총리나 메르켈 독일 총리 대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놓아보라. 한국인은 신이 많다. 마음만 내키면 하루아침에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독립해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유일한 나라다. 더구나 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고통까지 이겨냈다. 그 힘을 진영으로 나눠 싸우는데 탕진하는 건 비극이다.민주당이 선거를 치르는 판에도 날치기했다. 정권을 연장하게 되면 개헌선까지 확보한 국회를 이용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겠다. 우당(友黨)인 정의당의 뒤통수까지 치며 확보한 개헌선이다. 이해찬 전 의원의 ‘20년 집권론’, 그 이상의 변화를 각오해야 한다.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앞으로 2년간 심각한 여소야대(與小野大) 속에 일해야 한다. 정치보복과 정계 개편 바람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노태우 정부 때도 여소야대였지만 4당 체제였다. 모범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 국회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제1야당이 버티는 여소야대와는 다르다.소수 정파를 인정할 때 상생의 정치가 가능하다. 다음 정부는 힘의 정치가 아니라 협력의 정치가 돼야 한다. 인위적 정계 개편보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 기형적 국회와 비호감 대통령이 상생하는 길이다. /본사고문

2022-02-20

단일화는 빠를수록 효과적이다

김진국 고문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 정신은 뭘까. 11일 저녁 대선후보 토론을 보면 딱히 잡히는 것이 없다. 서로 약점을 공격한 게 전부다. 미래 비전을 말하는 사람이 없고, 관심을 두는 사람도 드물다. 당장 관심사는 정권교체냐 정권 유지냐다.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주 리서치뷰 조사에서 정권교체 지지(56%)가 정권 재창출 의견(36%)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평가에 대해서도 긍정 평가(40%)보다 부정 평가(57%)가 훨씬 많다.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비슷한 추세다.문 대통령은 지난주 “아무리 선거 시기라고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진영 간의 적대를 증폭시키고, 심지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적대와 증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진영 간 적대를 키운 게 누군가.문 대통령은 지난달 종교 지도자들에게 “(통합과 화합은)당연히 정치가 해냈어야 할 몫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정치권이)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국민 분열을 인정했지만, 그 책임은 정치권 전체로 희석했다.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던 취임사는 그냥 좋은 말을 붙여놓은 데 불과했다.촛불 이후 국민통합의 기회를 진영정치로 몰아갔다. 상식이 사라졌다. 임기 내내 정적에게는 잔인할 만큼 용서가 없었고, 같은 진영에는 봄바람이었다. 비서실에 선물한 ‘춘풍추상’(春風秋霜)도 그저 멋있는 글귀일 뿐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 그나마 남은 가능성까지 깡그리 무너졌다. 총선 때는 위성정당으로 협력 세력의 몫까지 약탈했다.공정이 무너지고, 견제할 세력은 없고, 헌정 제도도 마비됐다. 검찰, 법원, 국회…. 일자리는 마르고, 새 특권층이 설쳤다. 청년층이 절망했다. 그나마 지지율이 받쳐주는 건 극심한 편 가르기로 ‘대깨문’을 만든 덕분이다. 정권교체만 하면 이 상황이 나아질까. 또다시 보복과 뒤집기를 반복하지 않을까.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준비된 후보가 아니다. 정권교체를 위해 선택됐을 뿐이다. 집권하면 적폐 청산하겠다는 윤 후보의 말에 문 대통령이 발끈했다. 의도된 오독으로 보인다.하지만 ‘적폐 청산’은 집권 뒤 예상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윤 후보 지지에는 그런 기대도 많이 깔려 있지 않을까.거기에 그치면 불행이다. 냉엄한 국제 환경이 집안싸움만 할 때가 아니다. 경제 상황도 살얼음이다. 촛불은 국민 다수를 하나로 만들었지만 문 정권이 전리품을 독식했다. 정권교체 열망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적폐’ 청산뿐 아니라 진영정치 타파와 상식의 회복, 미래의 비전이 함께 녹아 있다. ‘연합정부’, ‘공동정부’를 생각하게 된다.국민은 현명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지지도는 윤석열(37%)-이재명(36%)-안철수(13%)다. 그러나 호감도는 안철수(37%)-윤석열(34%)-이재명(34%)이다. 윤 후보를 지지하는 건 정권교체를 실현할 가능성이 큰 거대 정당 후보이기 때문이다. 겸손해야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김종필 전 총리(JP)의 협조를 얻으려 정성을 다했다. JP의 청구동 자택까지 찾아갔다. DJ가 여론조사에서 선두였을 때다. 이회창 후보 측은 ‘숨어 있는 5%’를 꿈꾸며 승리를 자신했다. DJ는 끝까지 최선의 수를 찾았다. 그는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사력을 다한다’라고 말했다. ‘샤이 이재명’ 주장도 있다. 자만해서 이긴 선거는 보지 못했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어제 선관위에 등록하고, 윤 후보에게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후보는 명분 없이 철수하기 어렵다. 다당제로 ‘새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그런데도 단일화를 제안한 것은 국민의힘 논평대로 상당히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제시가 단일화를 깨려는 생각보다 명분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명분을 살려야 이탈 표를 줄일 수 있다. 단일화는 투표 직전까지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본사 고문

2022-02-13

상식과 진실에 승복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나는 문재인 정권 후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잘못되고 부족한 정책”이라고 혹평했다. 문 대통령이나 ‘문빠’들이야 섭섭하겠지만 그러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무엇이 그렇게 잘못된 걸까? 지난달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정권교체’ 의견(56.0%)이 ‘정권 유지’ 의견(36.7%)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불만이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한 일을 꼽자면 한도 없다. 그중에서도 사법 신뢰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법원은 힘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다. 돈 있고, 권력 가진 사람이 많다. 주먹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엔 법이 옳고 그름을 가려주리라 믿는다. 그 믿음마저 없다면 힘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그런데 그게 무너졌다. 민감한 재판이 있을 때마다 판사 성향부터 따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사건이 판사에 따라 유죄도 되고, 무죄도 되는 일이 벌어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 범죄는 진영 대결의 축이 되어 진실은 사라져버렸다. 대통령까지 ‘마음의 빚’을 얹었다. 서울·부산시장, 충남지사가 줄줄이 성폭행 사건을 일으킨 것도 기이한 일인데, 여성 인권을 외치던 사람들이 ‘피해 호소인’이란 희한한 조어로 감싸는 데는 탄식만 나온다. 치외법권 특권층인 셈이다.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씨는 유죄 확정됐지만, 사법 저울을 믿기에는 신뢰가 너무 바닥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법원이 ‘제왕적 대통령’을 받드는 부속기관쯤으로 인식된다. 경찰은 원래 상명하복의 조직이지만, ‘검찰 개혁’은 검찰과 공수처까지 정권의 하청기관으로 몰았다.진실을 가리는 또 하나의 보루는 언론이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 통신… 정부 힘이 미치는 매체들은 ‘어용’이란 딱지가 낯설지 않다. ‘공정’은 언론계에서 추억이 되어간다. ‘선전 선동’을 언론의 소명처럼 주장한다. 진실은 숨어버렸다.“거짓말도 반복하면 사람들이 믿게 된다”는 요설을 거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북한은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한다. 천안함도,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아웅산 폭탄테러, 김정남 살해도 모두 뒤집는다. 그게 북한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불리한 것은 무조건 뒤집는다. 진실을 뒤집는 기술자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선거는 진실과 거짓을 마구 섞어 야바위판이 됐다. 궤변가들이 전문가 행세다.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은 ‘도청’보다 ‘거짓말’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일이다. 닉슨의 거짓말을 드러낸 것은 언론과 엄정한 사법 체계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집요한 수사로 닉슨을 궁지에 몰았다. 닉슨이 콕스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법무부 장관과 차관 모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범죄를 감추어주면서까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문재인 정부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1년이 넘도록 다투고, 지청장이 사건 수사를 방해한다. 주요 사건 증인이 줄줄이 자살하는데, 진실은 정권이 끝나도록 감춰진다. 범죄자가 큰소리치고, 고발한 사람은 두려움에 떤다. 경험은커녕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라다.이게 차기 대통령 선거에까지 이어진다. 투자금의 1000배가 넘는 이익을 몰아줬지만 “너는 깨끗하냐”라며 덮어버린다. 정부 공금으로 가족 부식을 사고, 공무원이 민간인의 수행비서, 살림 비서 역할을 한 녹음과 사진이 나와도 아랫사람 탓만 한다. 개인 왕국 같다.사실을 시인하지도,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았다. 반성 없이 고쳐지지 않는다. 시의회에서 지적당한 일이 10년간 이어졌다. 수시로 뒤집는 공약이 어떻게 바뀔지 믿을 수 없다. 진심 어린 시인과 사과가 먼저다. 가뜩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한계에 이르렀다. 상식이 통하고, 진실에는 승복하는 사회가 정말 그립다./본사고문

2022-02-06

희망을 찾아가는 선거

김진국 고문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대통령 선거전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과거만 있고, 미래가 없다. 득표를 위한 사탕발림과 홍보 기술이 늘었지만 꿈과 희망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내는 선심 공약을 보면 나라 곳간이 거덜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우크라이나 국민은 정치 풍자 드라마 ‘인민의 종’에서 사이다 발언을 한 코미디 배우 볼로디미르 젤린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로 끝났다. 젤린스키는 코미디언 친구와 친척들을 정부 요직에 앉혔다. 전문가 없는 아마추어 국정은 표류하고, 내분이 격화됐다. 러시아가 군대를 국경에 집결해 무력 위협을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젤린스키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우리는 그보다 나은가.뽑을 후보가 없다는 사람이 많다. 대선 후보의 비호감도가 더 높다. 지난 연말 한국리서치 조사를 보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호감도가 39.3%인데, 비호감도는 59.1%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호감도 38.0%에 비호감도 60.5%.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좋아서 찍는 게 아니라 더 싫은 후보를 떨어뜨려야 하는 투표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축제가 나라를 걱정하는 선거가 됐다.후보들이 추경 액수 올리기를 경쟁한다. 도박판에서 판돈을 내지르는 모양새다. 올해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게 겨우 지난달이다.그뿐 아니다. 후보마다 돈 나눠주는 공약을 쏟아낸다. 장년 수당, 청년 기본소득, 아동수당, 문화예술인 연금…(이재명 후보),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확대, 무상급식 확대, 부모 급여…(윤석열 후보). 결국 세금 올리고, 나랏빚 얻어야 할 약속들이다. 막걸리, 고무신 선거와 무엇이 다른가.북한이 새해 들어서만 4번이나 미사일을 쏘아대는데 이재명 후보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고 한다.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책, 사이버 안보를 위한 예산은 언급 없이 사병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는 것을 서로 자기 공약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표에 대한 아부다.선거 쟁점들이 미래보다 과거에 쏠려 있다. 후보와 후보 가족의 과거를 뒤지는 일이 미디어를 뒤덮었다. 아무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지만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 집권 뒤에도 정적의 뒤를 파고, 공격하는 일에만 몰두할 거라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그는 새 시대를 준비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결단했고,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착수했다. 에너지도 내부 토론을 거쳐 원자력발전이 당분간 불가피한 대안이라고 결론 내렸다.문재인 대통령은 “나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과거만 쫓아다니다 끝나간다. 임기 내내 적폐 청산에 매달렸다. 그런데도 조국·윤미향 사건과 잇단 성 추문에서 자기 진영 사람은 철저히 감쌌다. “극우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장기 집권’ 발언은 적폐 청산의 숨은 의도를 말해준다. 오죽하면 이재명 후보마저 조국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국민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훼손하고 실망시켜 드리고 아프게 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사과했을까.정치적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의회 정치가 불가능하다. 정적을 적폐로 몰고, 반일 감정을 이용해 진영 단합을 도모한다. 심지어 우당(정의당)의 뒤통수까지 치며 의회를 장악했다. 선거에 잠시 유리할 수 있지만 국가 앞날은 깜깜하다.중앙선관위 전 직원이 들고일어나 상임위원 유임을 반대했다. 검찰과 법원, 선관위…. 선수들이 심판을 맡는 나라가 정상적인 민주국가인가. 선거가 끝나면 또다시 복수혈전, 과거 집착을 반복하지 않을까. 제왕적 대통령 당선이라는 ‘한방’에 모든 운명을 거는 정치, 그런데도 최선(후보)을 찾을 수 없는 선거…. 이걸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그래도 우리는 투표장에 가겠지. 차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하기 위해. 우리까지 내일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 /본사 고문

2022-01-23

여론은 이번에도 양자 대결로 몰아갈까

대선이 3파전이 됐다. 한국갤럽이 14일 발표한 대통령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37%, 윤석열 31%, 안철수 17%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확실한 3자 구도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15%는 선거에서 중요한 고비다. 이 선을 넘으면 선거비용을 모두 돌려받는다. ‘한 달 평균 지지율 5%’를 넘으면 법정 토론회에 참가할 자격도 생긴다. 이 기준은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늪에 빠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당내 갈등과 20대의 이탈, 부인 리스크 등이 차례로 윤 후보를 덮치면서 정권교체의 새로운 대안을 찾는 유권자가 늘어났다.덕분에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앞섰다. (이 37%, 윤 31%, 안 17%) 그러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이 후보를 오차범위 밖(7%포인트)으로 이긴다. (안 45%, 이 38%) 윤 후보가 단일후보가 돼도 2%포인트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윤 42%, 이 40%)1987년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지만,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에 실패한 탓이다. 김대중 후보 진영에서는 ‘4자 필승론’도 나왔다.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함께 출마해야 김대중 후보가 이긴다는 주장인데, 참혹한 실패(3위)로 끝났다.그 교훈인지 1997년 15대 대선에선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성공시켰다. 선거 두 달 전 김대중 후보는 30~35% 박스권이지만 선두였다. 그런데도 과감한 양보로 DJP연합을 만들었다. 총리와 내각의 절반을 JP에게 넘겼다. 내각제 개헌도 약속했다. 선거 40여 일을 앞둔 시점이다.덕분에 김대중 후보는 충청지역에서만 이회창 후보를 무려 43만 표 이겼다. 39만 표 차 대선 승리의 화룡점정이다. 그렇게 시달리던 색깔론을 극복하고, 대구·경북(TK) 지역에서 14대보다 5% 더(13%) 얻은 것도 그 덕분이다.바로 그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이인재 후보의 492만 표 가운데 12분의 1만 가져갔어도 승패는 뒤집혔다. 저울추는 작은 무게에 기운다. 캐스팅보트 한 표는 한 표가 아니다.물론 단일화가 박수받을 일만은 아니다. 유권자의 뜻이나 정치적 이상 실현보다 자리 나눠 먹기를 위한 야합이 많다.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자기 정책을 일부라도 반영하기 위해 치밀한 공동정부 합의서를 만든다. 윤 후보가 ‘분권형 책임장관제’, 안 후보가 ‘권력 축소형 대통령제’를 언급한 것은 공동정부로 갈 수 있는 작은 길을 연 것은 아닌가. 단일화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평균 지지율이 5%를 넘은 후보는 법정 토론 기회가 생긴다. 적어도 선거 막판까지 목소리를 내면서 지지율 상승을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선거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번 선거비용 상한은 513억 원. 15%를 득표하면 지출 비용 전액을, 10%만 넘어도 절반을 보전받는다. 중간에 포기하면 그동안 쓴 게 모두 빚으로 남는다.단일화 룰을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렵다. 여론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앞선다. 윤 후보 측은 민주당 지지자의 역선택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윤 후보 뒤에는 국민의힘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있다. 이준석 대표처럼 안 후보에게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다. 3석짜리 정당 후보에게 양보하는 결론은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단일화에 성공해도 끝이 아니다. 안 후보로 단일화하면 윤 후보 지지자의 78%가 안 후보에게 가지만, 윤 후보로 단일화하면 안 후보 지지자의 49%만 윤 후보로 간다. (한국갤럽) 이탈표 단속이 어려운 과제다.아직 52일이 남았다. 지지율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막판 작은 실수 하나가 판세를 뒤엎을 수도 있다. 18대 대선에서 두 달 전까지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앞섰으나 갑자기 지지율이 급속히 빠지면서 사퇴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단일화해줬다. 19대 대선에서도 안 후보는 선거 한 달 전까지 문재인 후보와 1, 2위를 다퉜지만 3등에 그쳤다. 인위적으로 단일화하지 못해도 국민이 힘을 몰아줄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본사 고문

2022-01-16

여론은 ‘정권교체’… 담을 그릇이 없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강력한 ‘정권교체’ 열망으로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정권 재창출’이 아닌 ‘정권교체’를 원했다. 지난 12월 초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55.1%가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37.8%였다. (이하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 가치에 대한 결핍감이 절박하다.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 이후 공정 문제는 시대적 화두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후원금 유용 의혹은 ‘가재·붕어·개구리’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부동산 가격 폭등, 취업 대란이 그 근본적인 배경이다.서울·부산·충남 광역자치단체장의 잇따른 성 추문은 도덕적 타락상까지 노출했다. 오죽하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마저 ‘4기 민주 정부’보다 ‘이재명 정부’라고 부르고, “정권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 교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하겠는가.그런데 후보 지지도는 다르게 움직인다. 알앤써치의 지난 4~5일 조사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3%로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윤 후보 지지율은 34.2%에 그쳤다. 정권교체 하려는 열망을 담아줄 정당도, 후보도 찾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5일 45.8%(PNR)에서 불과 두 달 사이에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지경으로 추락했다.처음부터 윤 후보에게 쉬운 승부가 아니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당에는 선거 전문가가 많다. 전략적 사고에 익숙하다. 목표 지향적으로 작전해왔다. 그에 반해 윤 후보는 정치 초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국민의힘에 치밀한 전략가도 부족하다. 후보감이 없어 밖에서 초보운전자를 데려오고, 전략가가 아쉬워 나쁜 기억이 남아있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다시 모셔 왔다.어느 정도 풍파는 예상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난장판일 줄은 몰랐다. ‘민주당에 갖다 바친다’는 표현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민감한 부인 문제를 아무 준비 없이 불쑥불쑥 외부로 토로했다. 사과는 시간도 놓치고, 진정성 전달도 실패했다. 후보와 총괄선대위원장, 당 대표는 불통했다. 냉소와 가시 돋친 메시지만 난무했다. 노력해서 얻은 표가 없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 열망마저 4할은 실망과 좌절 속에 던져버렸다.축구 선수가 서로 슈팅을 욕심내면 이길 수 없다. 민주당은 ‘머리’가 많다. 후보가 있고, 대통령, 당 대표도 있다. 그러나 모두 이재명 후보가 빛나게 물러섰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라고 선언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모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노태우 후보를 위해 ‘6.29 항복선언’을 연출해줬다.국민의힘은 거꾸로 움직인다. 다 주인공이고, 다 잘났다. 윤 후보가 초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정치 비전이나 정책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말을 할 때마다 설화다. 하지만 그런 줄 다 알고 데려온 것 아닌가. 당에서 다듬고 챙겨줄 수밖에 없다. 생색을 낼 일도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선거를 앞두면 누구나 화장한다. 중간 표를 노려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동운동가이던 이재호·김문수 전 의원을 영입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와 손을 잡았다. 그렇다고 후보가 정체성을 버렸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노력이 후보 간 대결이 되기도 전에 당내 분란으로 번진다. 윤 후보가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혼란스럽다.지금은 후보의 시간이다. 국민의힘 당헌은 “대통령 후보자는…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제74조)고 규정하고 있다. 당내에서 갈등할 시간이 없다. 국민의힘이 무능해 국민의 지지를 못 받고 자멸하는 것이야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민심은 분명한데 그것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상황은 비극이다. 엉뚱한 다툼에 정작 필요한 미래 비전을 둘러싼 후보 간 대결이 실종된 것도 안타깝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