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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건희 여사의 외출을 허하라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일 입길에 오른다. 한 마디로 “조용히 내조만 한다더니 왜 나서느냐”고 한다. 김 여사의 사생활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문제라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전례를 봐도 윤 대통령의 성공 여부에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민주당 소속인 한 방송 토론자는 “내조만 한다더니 과거 영부인들은 왜 예방하느냐”라고 비난했다. 김 여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까지 차례로 찾아갔다. 김정숙 여사도 만났다. 같은 자리를 경험한 원로는 찾아 뵙는 게 예의고, 그분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모범으로 삼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이것까지 선거 때 발언을 들먹이며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모는 데는 “꼴 보기 싫으니 보이지 마라”는 날 선 감정이 느껴진다.아무리 근신하더라도 대통령 부인이 골방에 갇혀 있을 순 없다. 외국 정상 부인이 왔는데 일도 없이 안 만나는 건 실례다. 상식에 맞고, 예의에 맞는 일을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시비하는 건 옹졸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김 여사에게 “정상의 자리는 평가받고 채찍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참으셔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까지 헤아린 게 아닐까.물론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불안한 구석도 있다. 윤호중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건 예의가 아니다. 윤 전 위원장을 궁지로 몰았다. 이런 식으로는 야당의 협조를 얻어낼 수 없다. 윤 전 위원장의 ‘잇몸 사진’을 공개한 것이나, 대통령집무실에서 찍은 사진 등을 팬카페에서 공개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사과하는 게 옳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라오스 공항에서 대통령보다 앞장서 카펫 위를 걸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통령 선거 뒤 “경인선 가자”라고 한 말이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대통령 없이 혼자 공식 외교 목적으로 인도를 방문하고, ‘버킷리스트’가 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애 시절 ‘새마음 운동’에 앞장선 일이 있다. 최태민 목사가 영애를 앞세워 전국적 조직을 만들어 영향력을 휘둘렀고, 여러 가지 의혹과 구설을 낳았다.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보기관까지 나서 단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다. 모두 되새겨보아야 할 선례다.힘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꼬인다.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모리배가 더 많다. 전직 대통령의 가족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많이 봤다. 본인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정의감과 애국심에 이름만 얹어놓았다 이용당하기 일쑤다. 본인이 청탁하지 않아도 이름을 팔고, 명함 한 장으로 호가호위하는 세상이다.세간에는 벌써 ‘김 여사 줄을 잡아 영전했다’라는 식의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도는 형편이다. 권양숙 여사가 “(윤 대통령) 뒤에서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도 너무 잘하셨다”라고 한 칭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는 아무리 몸을 사려도 지나치지 않다.김 여사가 제 역할을 하려면 두 가지를 당장 정리해야 한다. 첫째 보좌조직을 둬야 한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옳은지 여야가 다 동의하는데 후보 시절 내뱉은 한 마디에 매달릴 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핵심은 ‘최순실’이라는 ‘비선’이다. 어릴 때부터 도와준 사람이라 당연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은 투명한 공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투명하게 통제할 수도 있다.둘째, 외부의 사적 지원 조직은 정리해야 한다. 야당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무속인 문제는 최태민 목사를 연상시킨다. ‘건희사랑’이라는 팬클럽은 회장의 욕설로 구설에 올랐다. 윤 대통령을 돕는다는 게 부담만 되고 있다. 코바나컨텐츠는 사기업이다. 그 직원에게 공적인 업무를 맡길 순 없다. 적어도 대통령 임기 동안은 이런 사적 인연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크게 억울한 일을 각오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6-19

괴롭히는 시위는 폭력이다

김진국 고문 양산 평산마을이 시위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증오와 쌍욕만을 배설하듯 외친다”라면서 “이게 과연 집회인가? 총구를 겨누고 쏴대지 않을 뿐 코너에 몰아서 입으로 총질해대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라고 비난했다. 마을 주민들도 욕설과 소음으로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시위를 이어온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렇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허용 범위 안에서 집회를 진행해 경찰도 단속이 쉽지 않은 듯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비난하고, 평산마을에서 시위를 못 하도록 막는 집시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제출했다.문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 ‘잊혀진 삶’을 살겠다고 말했었다.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보통 시민으로 살겠다는 의미”라며 “통도사에 가고, 영남 알프스 등산을 하며, 텃밭을 가꾸고 개·고양이·닭을 키우며 살 것”이라고 했다. 평산마을 사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시설들보다 규모가 작다. 그렇지만 생활 공간만 따지면 그리 다르지 않다. 봉하마을이 커진 건 부엉이바위와 묘소 등 추모 시설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퇴임 생활에 성공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데 이런 구상이 처음부터 어긋나고 있다.대도시, 특히 서울에서는 수시로 시위대를 만난다. 청와대 앞쪽 광화문에서 용산에 이르는 거리는 상설시위 장소가 된 지 오래다. 국회와 대기업 본사 앞에도 플래카드와 확성기 소리를 항상 보고 들을 수 있다. 문 전 대통령 이전 퇴임한 대통령들도 시위대를 피하지 못했다. 주변 주민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문 전 대통령 덕분에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민주화 과정에 우리 사회는 시위에 대해 매우 관대했다. 시위는 힘없는 사람이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이고, 이것을 막는 것은 독재 정부나 하던 시민 탄압이라고 생각해왔다. 심지어 화염병 같은 위험한 장비를 사용한 과격한 시위마저 정당한 시위로 감쌌다. 민주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 시위대는 의인으로 보호되고, 경찰은 문책당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법을 어기지 않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웠다. 요구사항을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시선을 집중시키려 과격한 수단을 쓰기도 했다.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집회와 시위는 법으로 보장되고, 시위가 아니라도 의견을 전달할 수단이 많아졌다. 소셜미디어는 넘쳐난다. 물론 대면 다중 집회로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들의 힘을 눈으로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고 스피커 볼륨이 세력의 크기는 아니다. 법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법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경찰이 불법을 수수방관하기 때문이다. 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집단의 힘으로 억지를 부려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조용한 다수가 피해를 본다.권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경찰의 법 집행이 많이 위축됐다. 정당한 법 집행도 과잉 진압 시비를 피하지 못했다. 모르는 척 불법을 눈감아주는 게 습관이 됐다. 적극적으로 나서다 징계받은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집회는 자기 의견을 밝히는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를 괴롭혀 자기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변질해왔다.그동안 각종 시위를 무조건 감싸왔던 민주당이 시위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세 건이나 국회에 제출했다. 윤영찬 의원은 1인 방송이 원색적 욕설 방송으로 수익을 올리는 ‘1인 시위’도 금지하는 법안을 내놨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골프장까지 쫓아가 카메라를 들이댄 방송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청산 과정에서도 비슷한 방송을 많이 봤다.표현의 자유가 남을 괴롭히는 자유는 아니다. 괴롭히는 시위는 폭력이다. 이 기회에 집시법을 보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법을 손질도 하지 않고 ‘법대로’만 외칠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을 위한 법 개정이어서는 안 된다.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바로 보인다. /본사고문

2022-06-12

오만한 정치, 국민의힘도 경계해야

김진국 고문 민주당이 시끄럽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참패한 뒤끝이다. 4년 전 제7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광역단체장 14곳을 모두 차지했다. 이번에는 경기·제주와 호남, 5곳에 그쳤다. 기초단체장도 145 대 63, 절반도 안 된다. 서울에서만 서초구청장을 제외한 24개 구청장을 싹쓸이했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17 대 8로 완패했다.이게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정당 지지도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4월까지만 해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런데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6월 첫째 주 전국지표조사를 보면 48% 대 27%로 벌어졌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선거 패배의 책임을 놓고 서로 손가락질이다. 크게는 친 이재명파와 반 이재명파로 갈라져 비난을 퍼붓고 있다. 선거에서 참혹하게 패배하고도 그 원인을 찾고, 반성하기는커녕 네 탓 공방이다. 당권 욕심이 앞선다. 먹을 것이 거덜 난 집에서 남은 부스러기를 놓고 다투는 꼴이다.대선에서 국민은 분명히 민주당을 심판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고, 지방선거에서 다시 심판받았다. 2년 전 총선에서 183석(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을 얻은 뒤 오만했다. 민주당 강경파는 이 힘을 사용하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했다.국회 원 구성부터 독식하며 압박했다. 여론조사는 반대하는 ‘검수완박’을 밀어붙였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응원했다. 국정은 동화 속 이념의 포로가 됐다. 민생 현장보다 ‘우리 정책’은 무조건 옳다고 우겼다. 지난 5년만큼 국민이 분열하고, 진영대결이 극심했던 때가 없다. 조국·추미애 전 장관의 오만이 대통령까지 만들었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받은 지지율은 38.77%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얻은 표는 33.35%로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얻은 33.84%보다 적다. 여기에 열린민주당(5.42%)을 합쳐야 겨우 조금 더 많다. 그래봐야 40%가 안 된다.그런데도 민주당에 감당 못할 많은 의석을 몰아준 건 엄청난 사표를 만들어내는 선거제도, 위성정당을 이용한 속임수다. 그런 자기 속임수에 스스로 넘어가 오만의 길을 걸었다. 제도의 허점 덕에 다수 의석을 확보해놓고, 적은 대선 표 차이는 인정하지 못하고, 불복하는 듯한 행보를 해왔다. 대선 뒤 하루도 허니문을 허용하지 않았다.정권을 넘기는 순간까지 대못질을 계속했다. 여론은 분명히 반대했다. 그런데도 2차 ‘검수완박’ 법을 밀어붙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기 직전 못을 박았다. 물러나는 순간까지 임기 2년, 3년의 공직을 ‘내 권리’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대통령의 권한은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것이지 개인의 권리가 아니다. 퇴직금은 더욱 아니다. 정부를 ‘머리 따로, 손발 따로’로 만드는 건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잘못된 행태를 사과했지만, 비난 폭탄만 맞았다. 강경파 의원들은 조롱을 반복한다.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만의 진실을 만든다. 정치를 게임처럼 한다. 진심은 보이지 않고, ‘작전’만 있다. 국민은 대상이지 상전이 아니다. 이런 식의 정치가 전투력은 강하다. 정치의 팬덤화가 대중화에는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약자와 소수자를 인정하고, 정치적 경쟁자를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톨레랑스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없다.이건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심이 조금만 움직여도 전체 의석수는 크게 차이 난다. 인구와 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은 아주 적은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다. 미풍만 불어도 선거 결과에는 태풍이 된다. 이번 승리로 오만하면 국민의힘도 회초리를 맞는다. 대선이건, 지선이건,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 상대가 스스로 무너져 얻은 승리다. ‘하고 싶은 대로’하면 또 뒤집힌다. 역대 선거를 봐도 승부는 지는 쪽이 결정한다. 2년 뒤 총선, 또 그다음 선거는, 바람이 어디로 불지 모른다. 겸손해야 한다. 권력을 쥐었을 때 더 잘해야 한다. /본사 고문

2022-06-06

독주하려는 게 아니라면 합의 지켜야

김진국 고문 어제 박병석 국회의장 임기가 끝났다. 지난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장단을 초청해 위로 만찬을 베풀었다. 전반기 의장단의 역할이 끝났다는 말이다. 그러나 후반기 원 구성은 보류다. 여야 협상에 진전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24일 김진표 의원과 김영주 의원을 국회의장과 부의장 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여야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이 합의를 번복해 법사위원장을 넘기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전반기 원 구성을 하던 행태를 보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 국회의장이 되면 민주당 당적을 버려야 하는 김진표 의원은 “내 몸에는 민주당 피가 흐른다”라고 주장했다. 중립성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방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 미뤄두고 있을 뿐, 선거만 끝나면 큰 소리가 날 수 있다.1988년 13대 원 구성부터 국회 상임위는 여야가 의석 비례로 나누어왔다. 그 이전에는 제1당이 모두 가졌다. 노태우 정부 때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다수결로 하면 야 3당이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갈 형편이었다. 이 바람에 의석 비례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나누어 맡기로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적극적으로 주장한 대로다.국회 법사위원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면서 주목받았다. 탄핵소추의 검사 역할을 김기춘 법사위원장이 맡았다. 법사위는 그 밖에도 법원·헌법재판소와 법무부·법제처·감사원·공수처 등 사법 관련 정부 기관은 물론 다른 상임위에서 만든 법률의 체계·형식·자구를 심사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에서 붙들고 있거나, 수정하는 일도 빈번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상임위의 상전, 상원 역할을 해왔다.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 후폭풍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제1당과 제2당이 나누어 맡는 관행을 만들어 다수당의 입법 폭주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를 보장했다. 행정부 견제가 아니라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76석의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생겼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 등을 국민의힘과 합의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하겠다고 버텼다. 이 바람에 합의가 어려워졌고, 민주당은 그 핑계로 국회의장과 18개 상임위원장을 몽땅 독식해버렸다.지난해 7월에서야 국민의힘에 7개 상임위원장을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법사위원장은 올해 후반기 원 구성할 때 넘겨주겠다고 미뤘다. 이제 그 약속마저 뒤집겠다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기 일주일 전 2차 ‘검수완박’ 관련 법률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했다. 법사위원장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드러난 셈이다. 후반기도 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차지해 합의와 상관없이 국회를 운영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법사위원장은 검찰 수사와 대통령의 탄핵소추까지 담당하고 있다.윤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려면 국회의장으로 충분하다.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사위원장을 가져봐야 다수당의 전횡에 저항하는 방어적 역할이다. 법사위원장이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까지 막을 수는 없다. 결국 대통령 견제보다 국회 독주를 위한 독식이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국회에서 다수결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도 옳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합의제 운영의 전통을 쌓아왔다. 민주당의 대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앞장서 세운 전통이다. 모든 책임을 제1당이 지는 완전 다수결로 돌아가려는 게 아니라면 중요 길목을 나누어 맡는 전통은 살려야 한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면 협상이 필요 없다. 소수 의견은 무시되고, 다수의 독재가 된다. 독주에는 역풍이 따른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대통령 탄핵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라면 법사위원장을 넘기겠다는 합의는 지키는 게 옳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5-29

검찰개혁, 말 잘 듣는 검찰 만들기 아니다

김진국 고문 검찰총장 임기제는 1988년 12월 만들어졌다. 그해 13대 총선 결과 출범한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는 정치개혁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검찰총장 임기제다. 그만큼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이 사건이 폭로되고, 실상이 드러나는데 검찰의 역할이 컸다. 경찰이 곧바로 사체를 화장하고 은폐하려 했으나, 최환 부장검사가 중앙일보 기자에게 흘려 기사화했고, 사체를 보존해 부검토록 했다. 이런 배경 속에 평민당 등 야당과 대한변협이 임기제를 밀어붙였다.그때는 검찰총장이 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것도 비판받았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장관으로 기용됐다.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한 데 대한 보은으로 비쳤다. 비판 논리의 하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상하관계로 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검찰총장이 재임 시절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사하고, 영전을 노리게 만드는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제 이런 문제를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적 압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만들어냈을 정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총장이) “내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다”, “(윤 총장이)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해가지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고 한 음절씩 조롱하듯 강조해 말했다. 검찰총장을 정권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이 없는 상태에서 취임 하루 만에 검찰 인사를 대대적으로 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요직으로 복귀시켰다. 문재인 정부에 가까웠던 검사들은 모두 한직으로 쫓겨났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적 충성을 강요하며 인사권을 휘두른 걸 생각하면 왜곡됐던 검찰을 정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한 장관은 “정치검사가 출세한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지난 3년이 가장 심했다”고 반박했다. 추 장관 시절 검찰 인사에 대해 언론은 ‘윤석열 사단 대학살’, ‘윤석열 사단 학살 넘어 전멸’이라는 제목들을 달았다. 박범계 법무 때도 ‘윤석열 사단 거리두기와 친정권 검사 요직 배치’라는 제목이 나왔다. 윤석열 총장도 “나는 식물총장”이라고 했다.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제공했다 하더라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는 나쁜 선례를 쌓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한꺼번에 냉탕과 온탕으로 보직을 바꾸게 되면,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보이지 않게 정치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하다. 수사권을 박탈한다면 그것이 검찰이건 아니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경찰의 성격상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 또 통제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검찰에 대해 우려하는 이상으로 위험하다.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오랫동안 지적됐다. 정치의 중심을 국회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도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이뤄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통령의 힘을 수평적으로 국회에, 수직적으로 지방정부에 더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는 만들어져 있다. 의회 중심 정치에서 가장 우려하는 게 부패다. 가뜩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더 큰 권력을 넘기려면 정치인의 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을 줄이지 못하면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라는 식으로 조롱을 듣는 한 정치보복을 반복할 위험도 있다.윤석열 정부는 검찰이나 수사기관을 잘 안다. 검찰 권력을 되찾는 작은 조직의 이익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패를 막을 수사제도 전반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진정한 ‘검찰 개혁’, ‘경찰 개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본사고문

2022-05-22

김대중의 길, 이회창의 길

김진국 고문 보름 뒤 지방선거다. 그런데 무슨 선거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대통령 후보였던 이재명 후보, 안철수 후보도 나섰다.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같이한다. 이 상임고문은 “권력은 집중되면 부패한다는 명확한 진실이 있다”라며 윤석열 견제론을 재등판 명분으로 삼았다.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오늘로 겨우 일주일째. 그런데 민주당 공격이 윤 대통령에게 집중했다. 취임사도 비판 대상이다. 새 정부의 출범부터 부정했다. 이 상임고문이 총괄선대위원장으로 그 선봉에 섰다. 선거 불복(不服)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선거 불복은 많았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1963년 대선에서 역대 가장 적은 15만 6026표 차이로 떨어진 뒤 “나는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71년 선거에 대해 “나는 선거에서 이기고, 투·개표에서 졌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87년 선거도 “명백한 부정선거였다”면서, “단일화했어도 (선거 부정을 막을 수 없어)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라고 ‘김대중 자서전’에 적었다. 단일화 책임론을 그렇게 뒤집었다. 그러나 선거에 불복해 이익을 본 예는 없다. 국민의 눈이 차갑다.이재명 후보 출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대통령 선거에서 졌으면 반성하고, 자숙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근거지이고, 성남 시장과 경기도 지사를 거치며 정치적 뿌리를 박은 분당갑에 나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민주당에 유리한 인천 ‘계양을’을 선택한 것도 비판 대상이다. DJ가 13대 총선에서 전국구 11번, 15대 총선에서 14번을 자청한 것과 비교된다. ‘대장동 비리’ 등 수사를 막을 불체포 특권 갑옷을 입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반드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켜내겠다”라고 외친 게 이런 의심을 굳혀준다.선거가 끝나도 대결 구도를 풀지 않고, 바로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면 국민 통합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민주당이 집권한들 국민의힘 지지자가 승복할까. 지방선거가 코앞이라 일시적이고, 불가피한 현상이라 믿고 싶다.대선을 재수하는 길이 여러 가지다. DJ는 대통령 선거 뒤 곧바로 정계 은퇴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선거가 국민의 심판이라면,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DJ와 이 상임고문은 다르다. DJ가 세 번째 떨어진 뒤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져 단일화 실패 책임까지 모두 떠안을 처지였다. 또 권위주의 시대의 끝자락이라 정치보복을 피하려면 불체포 특권만으론 불안했다. 해외 피신 경험도 있었다. DJ도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뒤에는 당권 장악을 시도했다. 대선 한 달 뒤에 있었던 총선 때 진산 파동이 터졌다. 이를 이용해 총재 대행을 맡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87년 대선에서 졌을 때도 평민당 총재로 여소야대 정국의 중심이 됐다. 97년 말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후보도 이듬해 당권을 장악했다.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이번 선거에서 전임 정부 실패가 정권교체에 큰 변수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당내 경쟁 후보 진영을 온전히 끌어안지 못해 고전했다. 확실한 당 장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을 것이다. 정당과 국회 경험이 없는 점도 큰 약점이다. 불복만 아니라면 자리와 사람은 일치하는 것이 좋다. 권한과 책임이 일치해야 정상이다. 박완주 의원 문제 대응이 흔들리는 것도 자리와 사람이 일치하지 않은 탓이다.97년 대선에서 실패한 이회창 총재는 원내 과반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을 이끌며 총리 임명안을 비롯해, 새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 반대만 했다. 새 정부에 기대하는 민심과 멀어졌다. 뒤이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다음 대선도 실패했다. 따라갈 만한 길이 아니다.어차피 지방선거는 곧 끝난다. 윤 대통령은 이 상임고문의 경쟁자가 아니다. 법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법대로 장관을 임명했다. 이 ‘법대로’가 대화와 타협을 막고, 정치를 실종시킨다. 책임 있는 사람이 나서야 결단하고, 협치할 수 있다. 그런 성숙한 여야 관계로 국민의 신뢰를 쌓아가기를 기대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5-15

퇴임하는 대통령, 취임하는 대통령

김진국 고문 오늘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난다. 그는 취임하면서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5년 임기를 마친 오늘 그는 어떤 마음으로 걸어 나올까. 5년 전 그는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닷새 전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해서 자부하고 있다”는 그의 자평은 진심일 것이다.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지금 국민은 유례없이 갈라져 있다. 옳고 그름도 없다. 누구 편이냐가 기준이다. 그는 또 “승자도 패자도 없다…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5년 내내 적폐 청산에 매달렸다. 퇴임 직전에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저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공과 과가 있는데…그 역사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문 대통령 말처럼 적어도 취임 초에는 새 정부가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정상이다. 국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 운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쟁이다. 민주당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는 윤 당선인을 ‘0.73%포인트짜리’라고 깎아내렸다. 적은 표 차로 당선됐다는 말이다.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33.4%)은 미래통합당(33.8%)보다 적었다. 지역구 득표율도 과반에 못 미쳤다. 그런데도 대선 직후 다수의 힘을 더 휘두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가로막고, ‘검수완박’ 법안을 온갖 꼼수로 밀어붙이고, 법사위원장 배정 합의도 뒤집으려 한다. 민주당 정부 총리였던 한덕수 후보까지 발목을 잡아, 내각 없이 취임하고, 한동안 그렇게 굴러갈 판이다. 문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 소금을 뿌리고 있다.윤석열 당선인도 굽히지 않는다. 당장 급한 건 당선인이다. 그런데도 강수로 밀어붙인다. 마주 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당장 한미 정상회담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핵 도발을 어떻게 대처하며, 빅스텝 파도는 견뎌낼 수 있을까. 결국은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 시행령 정부, 공안 정국이 이어지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까.민주주의는 상생이다. 상대에 대한 인정,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존중이다. 나만 옳다면 정당이 여러 개 있을 이유가 없다. 서로 다른 처지와 생각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우리 정치가 일당 독재의 승리 지상주의, 독선에 빠졌다. 모의법정의 변호사와 검사처럼 이기는 데만 몰두한다. 정말 민주주의가 걱정이다.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당내에 생각이 달라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드는 진영논리와 학연·지연·혈연에 따라 내 편을 챙기는 온정주의가 팽배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조문, 부동산 등 대선 패배 책임론, 최강욱 의원 성적 비속어 발언…. 곳곳에서 내 편 감싸기를 보였다. 20대 위원장의 쓴소리에 기성 정치인 반응은 시큰둥하다. 나잇값을 못 한다.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겨야 한다. 그래야 소수도 숨을 쉴 수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공격하는 요즘 정치가 두렵다. 정치적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청산, 박멸, 척결하자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독일의 나치나 중국의 문화대혁명, 스탈린의 대학살에서나 보던 태도다. 유일사상에 대한 신앙이다.지금 이 나라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정부와 국회 정부, 국민의힘 정부와 민주당 정부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에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대선에서) 졌을지라도 국민께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치지도자들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야 하지 않나.문 대통령은 5년 내내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다. 물러나는 날까지 ‘남 탓’했다. 부동산도, 경기도, 고용도 이전 정부, 야당, 국민 탓이다. 남 탓의 유효 기간은 짧다. 잘못이 쌓여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적어도 자세는 그래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5-08

끝까지 ‘내로남불’인가

김진국 고문 결국 난장판이 됐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욕설이 오갔다. 민주당은 숫자로 밀어붙여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국민의힘은 악을 썼다. 국가 공권력이 전리품인가. 차기 행정부와 의회 권력의 힘겨루기가 막장극을 연출했다. 전문가들과 숙의도 공론화도 없다. 꼼수와 편법이 야바위꾼 뺨친다. 이게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다.‘검수완박’이 뭔가.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고 한다. 검찰 권력이 너무 커서 횡포를 부린다는 이유다. 다른 견제 수단은 없는 걸까. 수사와 기소를 어느 정도 분리하는 게 효율적인가. 검찰이 하던 수사는 모두 누가 하나.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란이 계속된다. 아직도 혼란이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판단뿐이다. 이미 대부분 수사권을 경찰로 넘겼다. 공수처도 출범했다. 1차 수사권 조정에 따라 개정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에 적응도 하기 전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서두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동원된 편법들이 ‘사사오입 개헌’과 ‘10월 유신’ 등 혼란스럽던 헌정사를 떠올린다. 민주당은 윤석열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하기 전에 공포 절차까지 마치려고 한다. 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게 그렇게 중대한 사안일까.‘검수완박’에 반대한 양향자 의원(무소속)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지은 죄가 많아선가. 아니면 검찰의 공정성을 의심해서인가. 어느 쪽이든 정권 교체 이후 안전이 문제인 건 틀림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억도 있다.그렇지만 검찰만 수사하는 게 아니다. 검찰은 독립을 보장하는 장치라도 있다. 다른 수사기관은 윤석열 정부가 직접 통제한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한국형 FBI)도 법무부 장관이 지휘한다. 더 어이가 없는 일은 법무부 장관에 한동훈 후보자가 지명되자 개정안에서 중수청 설치 조항까지 넣었다 뺐다 촌극을 벌였다. 다른 사람이 지명되면 윤석열 정부 각료가 아닌가. 이럴 참이면 아예, 검찰과 경찰을 모두 없애는 정부조직법을 만들어버리는 건 어떤가.원안과 법사위안과 본회의안이 수시로 바뀌었다. 그렇게 중대한 법안을 이렇게 조령모개(朝令暮改)하나.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합당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정상이다. 몰아치는 모양이 선거 패배의 분풀이 같다. ‘윤석열=검찰’이라 생각하는 건 아닌가.제도의 횡포는 검찰이 아니라 국회가 하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기 위해 회기를 쪼갰다. 국회 선진화법과 필리버스터 제도가 무력해졌다. 중수청도 없이 검찰 수사권부터 없앴다. 정상적인 법체계를 짜는 게 아니라 검찰 수사권 해체가 목적이다. 안건 조정위를 무력화하는데 민주당 출신 무소속을 활용해왔다. 양향자 의원마저 ‘검수완박’을 반대하자 민형배 민주당 의원을 거짓 탈당시켜 무소속 의원으로 위장했다. 비례대표용 가짜정당을 만들어 선거법을 우롱하더니, 이제 가짜 탈당으로 국회법을 조롱한다.문 대통령 임기 안에 공포하려고 국무회의 시간까지 변칙으로 바꿨다. 민주당 단독으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 결의안도 통과했다. 히틀러는 민간 돌격대(SA)를 이용해 테러로 합법을 가장한 권력 장악을 했다. 그리고는 친위대(SS)를 이용해 돌격대를 제거했다. 독립적인 판결을 하는 판사들이 일당 독재에 걸리적거리자 반역죄를 전담하는 인민재판소, 정치범을 처벌하는 특별재판소를 따로 설치했다. 가장 민주적이었던 바이마르공화국은 그렇게 무너졌다. 히틀러는 시스템의 합리성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 하는 피아(彼我) 구분으로 존폐를 판단했다. 지금이 그 꼴이다.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청산할 때는 검찰 특수수사를 강화했다가, 그 칼날이 나에게 돌아올 때가 되자 그 칼을 빼앗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마구 휘두르면 나도 다칠 각오를 해야 한다. 처지가 바뀌면 자기가 뱉은 말과 싸워야 한다. 그게 ‘내로남불’이다. /본사고문

2022-05-01

정치적 파국 위기를 반복할 건가

위태위태하다. 정치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흔히 허니문 기간이라고 하는 인수위 단계에 선거 기간보다 더 격렬하게 정치권이 부딪쳤다. 주고받는 말도 협상 파트너의 대화가 아니다. 육탄전을 벌이는 병사를 연상시킨다.겨우 지난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검수완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검수완박)는 구호를 검찰총장 출신인 대통령 당선인과의 전쟁으로 생각한다.사실 경찰이건 중수처(중대범죄수사처)건 윤석열 대통령이 지휘한다. 검찰보다 더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윤석열 검찰총장에서 독립적인 수사 가능성을 봤다. 1차 ‘검수완박’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위장 탈당하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서두르는지 알 수 없다.여야 지도부가 정치력이 없다. 그저 ‘돌격 앞으로’만 외친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중재안이 적절한지는 차치하고, 중재안 없이 벌어졌을 일을 생각하면 파국이다.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드는 게 정치다. 그런데 왜 국회의장이 나설 때까지 그런 시도도 하지 않았나.정치의 주도권을 정치 팬덤에게 빼앗겼다. 이번 사태도 팬덤 정치 탓이다. 팬덤에 편승만 할 뿐 설득할 리더십이 없다. 팬덤 정치는 타협이 없다. 타협은 내 것을 내줘야 한다. 그런데 팬덤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는 협상할 수 없다.팬덤 정치의 싹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지금도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주의에 번번이 무너지던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최대의 공로자들이다. 이전 정치인들의 지지 모임과는 다른 팬덤 현상을 보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이 ‘노빠’다.노 전 대통령은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았다. 필요하면 설득했다. 임기 중 이라크 파병, 강정기지, 한미FTA 등 지지층의 여론과 일치하지 않는 결단도 내렸다.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지지자를 설득했다.그 이후로 정치인들에게 그런 결단력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586에 얹혀 간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다. 정치인만 달라진 게 아니다. 지지자들도 변했다. ‘노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를 버리고 가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를 공세로부터 지켜주지 못해 비극을 겪었다는 생각이다.그 반성이 ‘노빠’를 ‘문빠’로 만들었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이름은 시시비비에 대한 팬덤의 태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우리 이니(문재인) 하고 싶은 것 다 해’라는 말도 무조건 지지하겠다는 표시다. 정치적 아젠다를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덤들의 놀이처럼 다루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비속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합리성과 자제를 포기하고, 전투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보인다.팬덤 현상이 정치 참여를 끌어올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전체주의적 성향이다.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고, 타도 대상으로 삼는다. 내부에서도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여야 의원 중에 이런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합리적 접근보다 승리 지상주의에 매몰돼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자 폭탄이 겁나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나치나 중국 문화대혁명기에 경험했던 실패를 반복하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발붙일 여지가 없다.대선 결과 심각한 여소야대에 직면했다. 13대 국회의 여소야대와도 다르다. 그때는 4당 체제였다. 합종연횡할 수 있었다. 각당의 리더십도 확실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국민통합, 협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그러나 ‘개딸’(개혁의 딸들) 등 민주당 팬덤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24만 표 차만 생각한다. 새 정부는 경험이 부족하다. 정치력도 없으면서 국회를 우회해 돌진하려 한다. 서로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 가진 제도적 힘을 자제해야 한다. 팬덤을 무서워하면 정치를 할 수 없다.위기는 기회다. 극단적인 여소야대는 잘못된 선거제도 탓이다. 이참에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고민해야 한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 고문

2022-04-24

최순실, 조국, 정호영뿐인가

윤석열 정부가 선보인 인사에 감동이 없다. 윤석열 당선인은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 국민을 잘 모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능력주의’를 인사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간단치 않다.윤 당선인은 “공동정부라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함께 찾아서 임무를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식의 내각 할애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관심을 보인 보건복지부 장관에도 정호영 후보자를 내정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40년 지기’에 대한 ‘의리 인사’다. ‘아빠 찬스’ 의혹도 제기됐다.정권 교체의 가장 큰 배경이 ‘공정’이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내내 정권 교체 여론이 절반을 넘었던 것은 ‘공정’ 가치를 훼손한 ‘내로남불’ 탓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를 2년이 넘도록 끌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조국 장관을) 임명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윤석열 당선인도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의혹만으로 교체하라는 건 사실 무리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정 후보자의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의혹을 검증할 책임은 임명권자에게 있다.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면 결국 임명권자가 짐을 떠안아야 한다. 조국 전 장관의 의혹은 법원이 사실이라고 확정했다. 문 대통령이 개인적 ‘마음의 빚’에 얽매여 망설이다 ‘20년 집권론’은커녕 ‘10년 주기설’도 채우지 못했다.윤석열 정부는 민주당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정부다. 문재인 정부가 ‘최순실 사건’의 충격으로 정권을 거저 주운 것과 비슷하다. 그럴수록 민심을 잘 살펴야 한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민심이다. 정호영 후보자에게 쏟아진 의혹은 조국 전 장관의 경우와 너무 닮았다는 게 부담이다.박근혜 정부를 뒤집는 결정적인 방아쇠는 최순실 씨 딸의 대학 입학 특혜 의혹이었다. 공정 문제를 건드려 젊은 층이 일어섰다. 전 국민이 국정 농단 의혹을 ‘내 문제’로 실감하게 됐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조국 전 장관 의혹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반성하지 않으면 동정심을 가진 사람조차 돌아선다.그 덕분에 정권을 잡은 윤석열 정부도 같은 길을 가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의혹이 제기되면 바로 공직 후보자를 교체했다. 그러했기에 후보자의 도덕성이 정권에 부담을 주지는 않았다. 정 후보자는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상당히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느냐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면 억울해도 그만둬야 한다. 그게 정 후보자를 발탁해준 윤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 야당이나 언론의 문제 제기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로 검증하고, 책임을 물을 때 정권의 도덕성이 유지된다.사실 더 큰 문제는 제도다. 어떻게 내리 세 번의 정권에서 비슷한 의혹이 불거지나. 전임 정권이 민심을 잃는데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일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의 첫 번째 인사를 위해 철저히 검증해도 막지 못한다. 정 후보자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상류층의 고질적인 적폐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일반 서민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좁은 진학과 취업의 문 앞에 선 젊은이들이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하지도 않은 봉사활동을 했다고 증명하고, 쓰지도 않은 논문을 썼다고 이름을 올리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정 후보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기 싫어서 포기하는 건가. ‘돈도 실력’이고, ‘아빠 찬스’ ‘엄마 찬스’도 실력이라고 인정하고, 좌절해야 하는가.입시제도는 흙수저가 계층 상승할 유일한 사다리다. 사교육이 판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복잡한 제도들이 결국은 ‘찬스’를 위한 샛길로 이용된 꼴이다. 최순실, 조국, 정호영 씨의 의혹이 사실이건 아니건,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가 개입할 여지가 너무 많다는 사실은 확인했다. 겨우 남은 이 사다리마저 걷어차지 말아야 한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본사고문

2022-04-17

부인 문제부터 숨통을 틀 수는 없을까

김진국 고문 우크라이나에서 여성과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잔혹상이 세계의 분노를 자아낸다. 죽음과 학대와 모욕…. 전쟁이 벌어지면 여성과 어린이가 가장 비참하게 희생된다. 정치판도 비슷한 면이 있다. 폭력에 무방비한 약자고, 선전 효과도 크다.지난 대선에서도 최대 쟁점이 여성이었다. 후보보다 후보 부인의 과거가 더 큰 논란이었다.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분노와 증오와 조롱과 흑색선전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당선인 부인 김건희 씨의 쥴리 의혹, 주가조작 의혹….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정부 법인카드 유용 의혹, 공무원 사적 이용 의혹….거기에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의상과 액세서리 구매에 청와대 특활비를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는 부산대 의전원과 고려대 입학이 취소됐다. 최서원(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처럼 고졸자다. 그들이 잘했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여기서 다시 거론할 필요도 없이 본인의 잘못이 크다. 법의 심판을 피할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남편이나 부모가 정쟁의 중심에 있어 더 가혹한 비난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남편이나 부모가 사과 대신 정치 반격에 이용해 수습의 기회를 놓치고, 사태가 점점 더 나빠졌다.선거는 평화적인 전쟁이다. 선거 때는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된다. 이제 대통령선거는 끝났다. 물론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일부 보궐선거도 함께 치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언제까지 후보도 아닌 가족을 진영 대결의 희생물로 삼을 순 없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선거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했다. 그 배경을 두고 여러 주장이 있지만 첫 여야 정권 교체에 도움을 준 건 틀림없다. 후보의 잘잘못을 가려야 유권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가 선거 결과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나쁜 관행은 바꿔야 한다. 진심을 담은 사과도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인에 대해 정치적 이유로 모든 책임을 떠안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갑옷론이 나온다. 대장동 사건, ‘법카’ 수사를 앞두고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정치 재개를 서두른다고 한다. 대선이 끝난 지 겨우 한 달 만에 조기 등판하는 명분을 검찰수사에서 찾은 것이다.국회는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다. 민주당 의석이 172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지만, 현재는 국민의힘 110명, 무소속 1명, 국민의당 3명을 제외한 186명이 반(反) 국민의힘이다. 개헌을 제외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2년간 윤석열 정부가 아무것도 못 하게 표류시킬 수 있다. 국민의힘과 3분의 1씩 비슷하게 득표한 선거 결과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왜곡된 결과다. 대통령선거도 24만7천77표 차이로 승자가 모두 갖는다.이런 제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감정으로 푼다. 정치권만이 아니라 민심도 쪼개졌다. 선동세력은 선거 불복을 부추긴다.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승자의 시간을 주던 미덕이 사라졌다. 선거가 끝나도 당선인의 지지율은 그대로다.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동화 ‘여우와 두루미’는 모두 아는 이야기다. 둘이 함께 식사하려면 음식의 종류, 그릇을 의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서로 배려해야 한다. 여우에게 호로병에 든 음식을 주는 건 먹지 말고 굶으라는 말이다. 국민의힘 정부에 민주당 정책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정부 조직을 강요하면 국민의힘은 일을 못 한다. 발목을 잡는 꼴이다.민주당이 국민의힘 정책을 지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면 적어도 임기 초 당선인이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여유는 줘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꽁꽁 묶어놓고, 검찰과 경찰은 뒤늦게 이재명 후보 쪽에 칼을 겨눈다. 협치를 위해선 출구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지만 당장 숨통부터 터야 한다. 가족 문제는 가장 감정을 건드리는 문제다. 퇴로가 없다. 국민의힘은 대장동과 ‘법카’를 제외하고, 고소·고발 대부분을 취하했다. 여기에 더해 부인들 문제도 진정한 사과와 함께 빨리 털어낼 방법이 없는가. 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김진국 본사 고문

2022-04-10

정치인은 얼굴이 두꺼운 게 미덕인가

김진국 고문 잘못을 인정하기는 참 어렵다. 제 눈의 들보는 보기 힘들다고 성경은 말한다. 자기 잘못을 아는 것이 어려우니 인정하는 게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게 자기 잘못을 알면서 고백하는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감을 감수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자기 잘못을 몰라 우기는 이보다는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몰라서 생긴 갈등이야 이야기하면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 알면서 우기는 사람은 대책이 없다. 풀어야 할 숙제는 제쳐놓고 엉뚱한 문제로 시비를 벌인다. 시시비비는 이미 알고 있으니 새로운 문제로 돌려 말꼬리를 잡고, 모욕한다.김정숙 여사의 옷 문제도 그렇다. 사실 대통령 부인은 공식 행사가 많다. 공무원이 아니면서도 공무를 수행한다. 옷으로 국격을 대변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정 정도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이 받아들일 수준 안에서다.우리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진다. 이제까지 청와대 살림이 비공개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발전이다. 모욕을 주고, 수치심을 느끼고, 국정에 지장을 줄 정도로 소란을 피울 일은 아니다. 지나친 부분이 있다면 솔직히 털어놓고 사과하고 넘어가는 게 옳다.답답한 건 문재인 정부는 무조건 부인만 한다는 점이다. 안보를 저해하지 않고도 의전비용을 공개할 방법은 많다. 개인 비용으로 쓴 부분을 밝혀도 저절로 확인된다. 대통령 기록물로 밀봉해 법원 판결을 무효로 만드는 건 대통령이 선택할 방법이 아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특별감찰관 제도를 만들었지만 문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임명하지 않았다.20년 집권, 50년 집권을 외치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놨다. 10년 주기도 못 채웠다. 사실 경쟁자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확인됐지만, 민주당이 싫어서다. 믿지 못해서다. 가장 큰 원인이 ‘내로남불’이다. 핵심이 조국 사건이다. 조국 사건으로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비난받고, 윤석열 후보도 만들었다. 국민이 그 사건의 희생자로 그 사건을 바로잡은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조국 사건이 불거졌다. 대선 과정에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사과했던 일이다. 배경이니, 의도니,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사건만 보자. 분명히 잘못한 점이 있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는 엄두도 못 낼 일을 했다. 상류층 모두 하던 일인지, 상류층 일부만 한 일인지 몰라도 일반 국민은 피해를 봤다. 특권층이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기 자식을 대신 올려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그것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친 정부에서, 수없이 트위터로 ‘특권층의 부도덕’을 폭로해온 ‘정의의 상징’이.그때 사과하고 끝냈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철저히 부인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히스테리를 보였다. 임기 내내 질 수밖에 없는 진실게임을 벌였다. 오히려 조국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상대를 공격하고, 진영 결집의 계기로 삼았다. 법질서도, 상식도 부인했다. 맞는 말도 못 믿게 신뢰를 잃었다.윤미향 사건, 박원순 사건…. 돌이켜 보면 하나 같이 어이가 없다. 개인의 일탈을 진영의 도덕성으로 감쌌다. 우리 편에겐 티끌만한 잘못도 없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우리 ○○이는 화장실도 안 가’ 식으로 아이돌 놀이를 벌였다. ‘개딸놀이’, ‘개준스기’ 덕질로 발전했다. 정치에 즐겁게 참여하는 데는 희망이 보이지만, 나라 운명을 놀이로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소환하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고, 노발대발 바로 잡으려 했다. 그렇다고 시계가 없었던 것도, 기업인의 돈을 받지 않은 것도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뿐이다. 이제 와 없었던 일처럼 말하는 건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일 뿐이다.정치인은 얼굴이 두꺼운 게 미덕인가. 반성 없이는 발전이 없다. 그런 태도로는 극렬지지자만 뭉친다. 결국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 판단을 받게 돼 있다. /김진국 본사고문

2022-04-03

대통령과 당선인이 국민 통합 중심돼야

김진국 고문 정부 이양이 소란하다. 어떤 자리도 전·후임자 사이가 좋기는 쉽지 않다. 비교당하고, 궂은일의 책임과 좋은 일의 공덕이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제왕적’이라는 말을 듣는 대통령 자리는 오죽할까. 같은 정당 내에서 정권을 넘겨도 전·후임자 사이에 앙금이 남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니 정권 교체에서는 어느 정도 잡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이번에는 좀 지나치다.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일도 대통령과 당선인이 대립할 문제는 아니다. 집무실은 쓸 사람이 결정할 몫이다. 여론을 물어보고, 정치권이 논란을 벌일 수는 있지만 방을 비워줄 전임 대통령이 왈가왈부하는 건 남의 집 제사상 간섭하는 꼴이다.물론 그 일이 현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참견한다면 거기까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자마자 청와대를 시민에게 공개하려면 후임 대통령이 입주할 때와는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일하는 데 지장을 줄 수 있다. 그렇게까지 서두를 이유는 없다.최근 여론조사마다 과반수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반대한다. 이런 탓인지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정 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55%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87%, 박근혜 전 대통령은 78%, 이명박 전 대통령은 84%였다.선거가 끝나면 새 대통령에게 기대가 모이는 게 정상이다. 저조한 기대치는 선거전이 격렬했던 탓도 있지만, 그 후유증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윤 당선인이 ‘국민 통합’을 강조했지만, 실행이 더디다는 말이다. 당선인과 그 측근들이 던지는 말들이 너무 날카롭다. 반대 진영에서 승복하지 않는 언행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 통합의 책임은 결국 국정을 이끌어갈 윤 당선인에게 있다. 전임자, 경쟁 정당을 끌어안아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는 데도 실패했다.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오래 못 간다.임기 초 지지율은 국정의 틀을 잡아나가는 동력이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가 특히 악재다. ‘밀월 기간’도 날려버렸다. 선거가 끝났는데도 정치권이 전투 모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리서치 조사를 보면 대구·경북(찬성 61.4%, 반대 34.3%)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반대 의견이 많다. 서울은 반대 55.8%, 찬성 39.3%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호남과 세종·인천·경기·제주에서 이겼다. 그런데 민주당에 호재가 생긴 것이다. 대통령 선거의 여파가 남아 있어 판세를 뒤집기 어려웠는데, 대선 득표 차가 크지 않은 서울·충청에서 의욕이 생겼다.문 대통령은 18일 참모진들에게 “당선인 측의 공약이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개별적인 의사 표현은 하지 말라”고 입 단속했다. 그런데 21일 “촉박한 시일에 국방부·합참·대통령비서실 등 이전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며 반대했다. 급반전의 배경이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이라고 의심받을 만하다.대통령 선거 때도 문 대통령은 투표 하루 전인 8일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의도했건 아니건, 여성 표가 이재명 후보로 모이게 도왔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에는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문제를 차치해도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선거 때문에 협력하지 못한다면 비극이다.윤석열 당선인은 당선되는 순간 국민의힘이나 지지자들의 당선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당선인이다. 집무실을 하루 일찍 옮기는 것보다 국민 통합이 중요하다. 현 대통령과 경쟁 정당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상대가 그 손을 잡지 않더라도, 포용하는 노력을 보이고, 국민이 거기서 진심을 느껴야 통합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취임하면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분열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대 대통령은 불행했다. 이제라도 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하루빨리 전·후임자가 손을 잡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김진국 본사 고문

2022-03-27

국민의 눈으로 판단하라

김진국 고문 정치에 왜 명분이 필요한가. 무조건 싸워 이기면 되는 것 아닌가. 이기면 진 쪽을 다시는 덤벼들지 못하게 짓밟고, 지면 불복하고, 발목을 잡으며 호시탐탐 복수 기회를 노리고…. 국민이 먹잇감이고, 그걸 차지하려는 맹수의 싸움이라면 그래도 된다. 제왕들의 전쟁도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이다. 대통령 후보들도 스스로 ‘머슴’이라고 부르지 않았나.주인인 국민의 눈으로 보면 달라진다. 부정하지 않고, 일 잘할 머슴을 선택할 권리가 주인에게 있다. 좋은 머슴을 고르려면 경쟁시켜야 한다. 어느 한 쪽도 없앨 수 없다. 선택권이 사라지면 머슴이 횡포를 부린다. 지고도 불복해 일을 못 하게 발목을 잡으면 피해가 국민에게 간다.새 대통령 취임식이 50일도 안 남았다. 정권 이양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알력이 심하다. ‘레임덕’의 유래가 된 시기다. 이름과 실제 힘 사이의 거리가 고통을 준다. 넘기는 쪽은 아쉽고, 불만이다. 넘겨받는 쪽은 의욕이 과잉이다. 과격한 일부 지지자들의 아우성은 논외로 치자. 그렇더라도 정권의 핵심 정치인들까지 불복(不服)하는 것은 걱정스럽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시시비비가 분명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냉정하게 볼 수 있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건국 이후 정권 교체가 많았다. 하지만, 정상적인 교대는 드물다. 불행한 퇴임이 많은 탓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해외로 쫓겨갔고, 박정희 대통령은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감옥에 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위기로 확실한 레임덕을 맞아, 김대중 당선인이 취임 전부터 수습에 나섰다.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가족의 뇌물 수수 의혹으로 수사받았다. 문서 반출 논란도 있었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봉인한 것으로 알려진 전임 대통령 문서들을 어디선가 찾아내 임기 내내 ‘적폐 청산’ 칼날로 삼았다.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고 순탄한 건 아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친구를 믿고 권력을 넘겼지만, 백담사로 유배됐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함께 감옥에 갔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송금 수사로 집권당이 쪼개지는 곡절을 겪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사람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사람을 썼다.이번 정권 이양도 덜컥거린다. 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16일 회동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이 18일 윤 당선인을 빨리 만나고 싶다며 실마리를 풀었지만, 언제 돌부리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임기 말 공공기관장 인사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여전히 팽팽하다. 한쪽에선 “대통령의 인사권에 왈가왈부하지 말아라”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오만한 내 사람 챙기기”라고 으르렁댄다.간발의 득표 차이가 갈등을 증폭시킨다. 24만7077표. 역대 최소인 0.73%포인트 차이다. 올인한 도박판에서 한 끗 차이로 모두 빼앗긴 꼴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총선에서는 50%에 못 미치는 득표로 3분의 2 의석을 차지했다. 우리 제도의 문제지만 선거 결과는 승복해야 한다.자기를 부정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문빠’는 자기 진영의 잘못을 인정해본 적이 없다. 패배 원인의 하나인 ‘내로남불’이 승복을 가로막는다. 신념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선거 직전까지 정권 교체 여론이 50%를 넘었다. 상대 정당이 잘한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졌다. 반성하지 못하면 달라질 수 없다.왕권 이양이 아니다. 국민의 눈으로 판단해야 한다. 공기업 사장의 89%가 임기 절반을 다음 대통령과 같이 일한다. 임기 마지막까지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고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정책 방향도 다르다. 청와대 근무자나 민주당 당직자들이다. 이런 보은 인사는 국정 방해다. 그렇다고 선거가 끝났는데 패배 정당을 모욕하는 건 피해야 한다. 정치는 전리품을 얻는 전투가 아니다. 국민을 위한 봉사다. 정권 교체는 반복해 일어난다. ‘블랙리스트’도 안 되지만 넘겨주는 측의 금도도 필요하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정치하는 자는 그 정도의 명분은 세워야 한다./본사 고문

2022-03-20

전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으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한다. 두 달 정도 남았다. 대통령 임기를 통틀어도 이때만큼 희망에 부풀고, 기세가 오를 때가 없다. 후임 대통령이 정해지고, 퇴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면 아쉬움과 후회가 파도처럼 몰려온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윤 당선인의 10일 기자회견은 그런 희망과 의욕이 넘쳤다. 과거 대통령들도 취임할 때는 다 좋은 말만 했다. 취임사만 보면 어떤 대통령이 한 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심보다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잉크보다 빠르게 취임사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대통령들의 취임사는 국민이 원하지만, 대통령이 하기 싫거나, 할 수 없었던 일들의 집합이다. ‘ABM’(A nything But Moon, 문재인 지우기)은 아니라도 일종의 반면교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가장 먼저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진영 갈등이 어느 때보다 극심했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은 소외감을 느꼈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누어 군중 집회를 열었다.윤 당선인도 당선 배경을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말했다. 또 “오로지 국익만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보수와 진보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쉽다. 실천하려면 힘들고 고통스럽다.윤 당선인이 마주한 정치 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진영 갈등에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이 더하고, 사라질 것 같던 지역 갈등도 아직 남았다. 국회는 여소야대(與小野大)다. 국민의당과 합당해도 113석이다. 5분의 3 의석(180석)이면 개헌을 제외하고는 뭐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선 득표 차이도 역대 가장 적은 24만7천77표다. 취임하고 한 달도 안 돼 지방선거가 닥친다. 허니문 없이 바로 대결로 치닫는다.윤 당선인은 “여소야대 상황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가 훨씬 성숙해 나갈 기회”라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1988년 여소야대 국회는 4당 체제였다. 야당도 어느 한 당이 독주할 수 없었다. 보수당인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캐스팅보트 역할도 했다. 지금은 민주당이 독주하는 국회다. 선거 도중 민주당이 약속한 다당제로 갈 수 있다면 협치가 쉬워진다.문 대통령은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거대 야당을 마주한 윤 당선인의 대화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쪼개는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경선 과정의 갈등으로 민주당이 스스로 갈라설 수는 있다. 권력이 개입하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민주당 인사를 발탁하더라도 와해 공작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13대 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여준 인내의 협치가 필요하다.“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주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코드 인사’로 일관했다. 윤 당선인이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아 빚이 적다는 건 오히려 장점이다. 과감한 결단이 가능하다.윤 당선인은 “기자 여러분과 간담회를 자주 갖겠다”고 약속했다. “퇴근길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은 빈말이 됐다. 기자회견도 10번이 안 된다. 정부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정직한 정부가 되겠다는 윤 당선인의 약속도 문 대통령 말과 같다. 말보다 실천이다. ‘내로남불’이 정권교체의 가장 큰 동력이 된 걸 잊어선 안 된다.윤 당선인은 공정의 상징으로 소환됐다. 문 대통령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말을 하면 박수받는다. 문제는 실천이다. 더 좋은 지도자는 박수받지 못해도 힘든 일을 해내자는 주문을 하는 사람이다./본사 고문

2022-03-13

새 대통령, 위기일수록 기대도 크다

김진국 고문 36.93%. 지난 4~5일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결과다. 과거 다른 선거와 비교가 안 되게 높다. 5년 전 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율은 26.06%. 그보다 무려 10.87%가 높다. 코로나19, 각 정당의 사전투표 독려를 고려해도 뜨거운 열기다.가장 큰 배경은 정치에 대한 갈증이다. 사전투표 직전 넥스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53.2%였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정치 교체’를 선거 막판 반전 카드로 내밀었다. 현재의 정치에 불만,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이 국민 마음에 크게 물결치고 있다는 뜻이다.선거 열기가 뜨거운 만큼 그 이후가 걱정이다. 대결이 치열할수록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하자마자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또 치러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2년 남았지만, 국회 상황이 만만치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도가 38%로 같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잘못된 선거제도 탓이긴 하지만 그 괴리에서 오는 갈등은 고질적인 정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국회의 협조는 받겠지만 여론과 의석의 불일치에서 오는 갈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 민주당의 독주가 여야 대치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협조를 받기가 어렵다. 협치로 나아가면 다행이겠지만 행정부와 국회의 대립, 민주당 흔들기, 정계 개편 등 정치 혼란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더구나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과 유세 때 쏟아놓은 말들에는 설익은 약속이 많다. 윤 후보는 준비 기간이 짧았다. 일단 전문가들의 제안을 학습하기 바빴다. 이 후보는 선거 기간 중 기존에 내놓은 정책을 많이 바꾸었다. 이 후보는 이를 실용주의라고 하지만 표를 따라다닌 결과다. 누가 되건 정책의 불확실성이 크다. 빨리 정리해야 한다.여기에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의 대립 격화가 가져온 국제 무역 질서의 혼란, 코로나19로 죽어가는 중소상공인과 방만한 재정 운용의 후유증이 다음 정부로 부담을 떠넘기게 돼 있다. ‘취업 포기’, ‘평생 알바’라는 딱지는 젊은 층에 평생 짐을 지워놓았다. ‘일자리 대통령’이 만든 사라진 세대다.새로운 비전보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재명 후보까지 지난 5년을 ‘반성한다’, ‘사죄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먼저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 문 정부에서는 오른쪽 깜빡이를 켜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일이 너무 잦다.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선거 중에 후보가 한 말은 당선을 위한 안간힘이라고 이해한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내 말을 진짠 줄 안다’고 뒤집어서는 안 된다. 말이 분명해야 정책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진다.빨리 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선거 막바지에 약속한 다당제의 상생 정치를 이행해야 한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지만 그 정신대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기를 기대한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 의회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힘들어도 최대한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영을 뛰어넘는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상대 후보에 대한 비난을 들으면 모두 범죄자다. 죄가 있으면 조사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는 게 좋다. 또다시 임기 내내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사법제도를 정치에 이용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임기 중 거대한 업적을 쌓으려는 욕심도 금물이다.통일이건, 탈원전이건 좋은 목표라고 서두르면 뱁새 꼴이 난다.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패권국인 미국도 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함께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개인 취향 따라 움직이면 국민만 불행하다. 임기는 5년이다. 그렇다고 서두르면 안 된다.    /본사고문

2022-03-06

정치 신뢰, 해답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김진국 고문 옛날 정치를 들먹이는 사람을 많이 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온갖 욕을 하던 사람이 그를 소환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으려던 사람이 ‘그래도 그분은…’이라고 추모한다. 추억이 현실보다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그때는 그래도 정치 도의라는 게 있었다. 속으로야 음험한 꿍꿍이셈을 품어도 겉으로는 아닌 체 명분으로 포장했다. 요즘은 명분이고, 체면 따위는 내팽개치고, 낯 뜨거운 언행을 거침없이 배설한다. 말 뒤집고, 거짓말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다.후보끼리도 ‘같잖다’, ‘겁대가리’ 같은 상스러운 표현이 거침없이 오간다. 정치 현안을 다루는 언행들도 상식을 벗어난다.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3일 국민의당과의 막후대화를 폭로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 후보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측 관계자에게 ‘안철수 후보를 접게 만들겠다’는 등 제안을 해 온 것도 있다. 안 후보는 아시는지 모르지만….”‘안 후보가 아시는지 모르지만’이란 말은 “당신 측근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안 후보와 그 측근들을 이간질한 것이다. 물밑 대화를 공개하면 본인의 협상만 중단되지 않는다. 윤석열-안철수 사이의 모든 대화 통로가 다 막혀 버린다. 정치 도의도 신뢰도 모두 포기한 행동이다. 단일화보다는 안 후보 진영의 와해를 노린 수다. 적을 이기는 잔꾀를 잘 낸다고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는 게 아니다.윤석열 후보도 단일화가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단일화 없이도 이긴다는 생각 같다. 민심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마지막 투표함을 열기 전에는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자만하다 뒤집힌 선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최근에 다시 지지율이 박빙으로 좁혀지고 있다.안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단일화를 생각했다면, 윤 후보는 군소후보들을 흡수하는 단일화를 말하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이 아니라도 적어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같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안 후보가 포기할까. 당선 가능성이 윤석열·이재명 후보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안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380만 명(8.5%)에서 660만 명(15%) 정도가 있다. 500만 명 정도의 그 지지자들이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진지한 제안에 외면하고, 조롱하면 모욕이다. 힘으로 누르면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 종국에 표의 쏠림이 생기더라도 굴욕감을 느낀 표가 어디로 움직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언제나 힘으로 굴복시키는 정치를 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양강이 아닌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체제를 선거구제 개혁을 통해 만들겠다” “위성정당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총리 국회 추천, 중대선거구제, 결선투표제 등을 제안했다.그러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말보다 행동”이라고 말했다. 불과 2년 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부터 치명적인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처리에 협조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을 만들었다. 막상 선거 때는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군소정당들은 기존 선거법에서보다 더 불리한 선거를 치렀다. 안철수 후보도 “그렇게 소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행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이재명 후보는 토론에서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성정당 없어도 압승했을 선거였다. 민주당이 뺏어간 의석은 정의당 등 군소정당이 가져갈 의석이었다. 민주당이 만든 법이다. 아쉬운 일이 해결되자 입을 씻었다. 이번에도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어제는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결의까지 했다. 그렇지만 불과 며칠 전 새벽에 날치기로 추경을 통과한 정당이다. 숫자의 힘으로 독주하는 그 체질이 갑자기 바뀔까.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국민의힘이건 민주당이건 소수당의 싹을 없애려고 한다. 자신들과 비슷한 색깔일수록 더 짓밟는다. 그것마저 빼앗으려 한다.분권형은 말뿐,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 제왕적 대통령을 향해 질주한다. 그래도 겁내는 건 국민이다. 해법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본사 고문

2022-02-27

선거 이후가 걱정이다

김진국 고문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잔치다. 기간을 정해 미래의 꿈을 설계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나아가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아무래도 미래와 꿈이란 단어가 그리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무속과 신천지, 초밥과 합숙소가 최대 쟁점이다. 워낙에 비호감이 높은 후보들끼리 싸우는 선거였다. 그런데 상대 약점을 파헤치고, 없는 의혹까지 만들어 덮어씌우는 선거전략이다 보니 혐오감이 더 커진다. 이렇게 해서 선출한 대통령을 존경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후보들 스스로 신뢰를 까먹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지지자들이 반발하자 “그렇게 말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라고 조롱했다.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재난 지원금…. 거듭 말이 오락가락하면서 ‘표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왜 나왔는지 알게 됐다. 이 후보는 여론이 바뀌면 언제든 의견을 바꿀 수 있는 ‘실용주의’라고 한다. 대단한 장점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너무 지나쳐 어떤 약속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준비가 안 됐다. 그의 대통령 출마는 상황이 만들어줬다. 조국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없었다면 윤석열 후보는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학습하고, 적응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기 속성 과외로 하는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그는 ‘적폐 청산’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전력을 보면 그냥 하는 말 같지 않다. 해온 일이 그렇고, 원한도 많다. 지난 정권 5년 내내 지겹도록 정치보복 쇼를 지켜봤다. 또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는 것은 두렵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그 후유증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코로나 속에 감췄다. 유세나 후보 단일화에서 내뱉는 말을 보면 많이 윤 후보도 오만해졌다.지난 5년 워낙 상식이 무너졌으니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준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윤 후보는 어퍼컷 세리머니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발차기로 응수했다. 재미있는 퍼포먼스다. 그렇지만 몸싸움 시늉이 앞으로 전개될 우리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선거가 막바지로 갈수록 진영화도 점점 강고해진다. 상대를 공격할 소재가 엿보이면 억지 프레임을 씌운다. 자기편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는커녕 막무가내로 감싼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외눈박이 진영논리는 선거판에서 더 심해졌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누가 되건 다음 정권 초기는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갈등이 불을 보듯 하다. 3개월 뒤 지방선거를 향해, 2년 뒤 총선을 겨냥해서, 또 5년 뒤 다음 대통령 선거를 목표로 돌진할 게 뻔하다.지도자는 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없이 오늘날의 중국을 생각할 수 있겠나. 대처 영국 총리나 메르켈 독일 총리 대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놓아보라. 한국인은 신이 많다. 마음만 내키면 하루아침에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독립해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유일한 나라다. 더구나 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고통까지 이겨냈다. 그 힘을 진영으로 나눠 싸우는데 탕진하는 건 비극이다.민주당이 선거를 치르는 판에도 날치기했다. 정권을 연장하게 되면 개헌선까지 확보한 국회를 이용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겠다. 우당(友黨)인 정의당의 뒤통수까지 치며 확보한 개헌선이다. 이해찬 전 의원의 ‘20년 집권론’, 그 이상의 변화를 각오해야 한다.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앞으로 2년간 심각한 여소야대(與小野大) 속에 일해야 한다. 정치보복과 정계 개편 바람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노태우 정부 때도 여소야대였지만 4당 체제였다. 모범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 국회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제1야당이 버티는 여소야대와는 다르다.소수 정파를 인정할 때 상생의 정치가 가능하다. 다음 정부는 힘의 정치가 아니라 협력의 정치가 돼야 한다. 인위적 정계 개편보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 기형적 국회와 비호감 대통령이 상생하는 길이다. /본사고문

2022-02-20

단일화는 빠를수록 효과적이다

김진국 고문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 정신은 뭘까. 11일 저녁 대선후보 토론을 보면 딱히 잡히는 것이 없다. 서로 약점을 공격한 게 전부다. 미래 비전을 말하는 사람이 없고, 관심을 두는 사람도 드물다. 당장 관심사는 정권교체냐 정권 유지냐다.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주 리서치뷰 조사에서 정권교체 지지(56%)가 정권 재창출 의견(36%)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평가에 대해서도 긍정 평가(40%)보다 부정 평가(57%)가 훨씬 많다.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비슷한 추세다.문 대통령은 지난주 “아무리 선거 시기라고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진영 간의 적대를 증폭시키고, 심지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적대와 증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진영 간 적대를 키운 게 누군가.문 대통령은 지난달 종교 지도자들에게 “(통합과 화합은)당연히 정치가 해냈어야 할 몫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정치권이)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국민 분열을 인정했지만, 그 책임은 정치권 전체로 희석했다.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던 취임사는 그냥 좋은 말을 붙여놓은 데 불과했다.촛불 이후 국민통합의 기회를 진영정치로 몰아갔다. 상식이 사라졌다. 임기 내내 정적에게는 잔인할 만큼 용서가 없었고, 같은 진영에는 봄바람이었다. 비서실에 선물한 ‘춘풍추상’(春風秋霜)도 그저 멋있는 글귀일 뿐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 그나마 남은 가능성까지 깡그리 무너졌다. 총선 때는 위성정당으로 협력 세력의 몫까지 약탈했다.공정이 무너지고, 견제할 세력은 없고, 헌정 제도도 마비됐다. 검찰, 법원, 국회…. 일자리는 마르고, 새 특권층이 설쳤다. 청년층이 절망했다. 그나마 지지율이 받쳐주는 건 극심한 편 가르기로 ‘대깨문’을 만든 덕분이다. 정권교체만 하면 이 상황이 나아질까. 또다시 보복과 뒤집기를 반복하지 않을까.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준비된 후보가 아니다. 정권교체를 위해 선택됐을 뿐이다. 집권하면 적폐 청산하겠다는 윤 후보의 말에 문 대통령이 발끈했다. 의도된 오독으로 보인다.하지만 ‘적폐 청산’은 집권 뒤 예상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윤 후보 지지에는 그런 기대도 많이 깔려 있지 않을까.거기에 그치면 불행이다. 냉엄한 국제 환경이 집안싸움만 할 때가 아니다. 경제 상황도 살얼음이다. 촛불은 국민 다수를 하나로 만들었지만 문 정권이 전리품을 독식했다. 정권교체 열망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적폐’ 청산뿐 아니라 진영정치 타파와 상식의 회복, 미래의 비전이 함께 녹아 있다. ‘연합정부’, ‘공동정부’를 생각하게 된다.국민은 현명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지지도는 윤석열(37%)-이재명(36%)-안철수(13%)다. 그러나 호감도는 안철수(37%)-윤석열(34%)-이재명(34%)이다. 윤 후보를 지지하는 건 정권교체를 실현할 가능성이 큰 거대 정당 후보이기 때문이다. 겸손해야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김종필 전 총리(JP)의 협조를 얻으려 정성을 다했다. JP의 청구동 자택까지 찾아갔다. DJ가 여론조사에서 선두였을 때다. 이회창 후보 측은 ‘숨어 있는 5%’를 꿈꾸며 승리를 자신했다. DJ는 끝까지 최선의 수를 찾았다. 그는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사력을 다한다’라고 말했다. ‘샤이 이재명’ 주장도 있다. 자만해서 이긴 선거는 보지 못했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어제 선관위에 등록하고, 윤 후보에게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후보는 명분 없이 철수하기 어렵다. 다당제로 ‘새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그런데도 단일화를 제안한 것은 국민의힘 논평대로 상당히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제시가 단일화를 깨려는 생각보다 명분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명분을 살려야 이탈 표를 줄일 수 있다. 단일화는 투표 직전까지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본사 고문

2022-02-13

상식과 진실에 승복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나는 문재인 정권 후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잘못되고 부족한 정책”이라고 혹평했다. 문 대통령이나 ‘문빠’들이야 섭섭하겠지만 그러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무엇이 그렇게 잘못된 걸까? 지난달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정권교체’ 의견(56.0%)이 ‘정권 유지’ 의견(36.7%)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불만이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한 일을 꼽자면 한도 없다. 그중에서도 사법 신뢰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법원은 힘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다. 돈 있고, 권력 가진 사람이 많다. 주먹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엔 법이 옳고 그름을 가려주리라 믿는다. 그 믿음마저 없다면 힘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그런데 그게 무너졌다. 민감한 재판이 있을 때마다 판사 성향부터 따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사건이 판사에 따라 유죄도 되고, 무죄도 되는 일이 벌어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 범죄는 진영 대결의 축이 되어 진실은 사라져버렸다. 대통령까지 ‘마음의 빚’을 얹었다. 서울·부산시장, 충남지사가 줄줄이 성폭행 사건을 일으킨 것도 기이한 일인데, 여성 인권을 외치던 사람들이 ‘피해 호소인’이란 희한한 조어로 감싸는 데는 탄식만 나온다. 치외법권 특권층인 셈이다.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씨는 유죄 확정됐지만, 사법 저울을 믿기에는 신뢰가 너무 바닥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법원이 ‘제왕적 대통령’을 받드는 부속기관쯤으로 인식된다. 경찰은 원래 상명하복의 조직이지만, ‘검찰 개혁’은 검찰과 공수처까지 정권의 하청기관으로 몰았다.진실을 가리는 또 하나의 보루는 언론이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 통신… 정부 힘이 미치는 매체들은 ‘어용’이란 딱지가 낯설지 않다. ‘공정’은 언론계에서 추억이 되어간다. ‘선전 선동’을 언론의 소명처럼 주장한다. 진실은 숨어버렸다.“거짓말도 반복하면 사람들이 믿게 된다”는 요설을 거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북한은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한다. 천안함도,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아웅산 폭탄테러, 김정남 살해도 모두 뒤집는다. 그게 북한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불리한 것은 무조건 뒤집는다. 진실을 뒤집는 기술자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선거는 진실과 거짓을 마구 섞어 야바위판이 됐다. 궤변가들이 전문가 행세다.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은 ‘도청’보다 ‘거짓말’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일이다. 닉슨의 거짓말을 드러낸 것은 언론과 엄정한 사법 체계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집요한 수사로 닉슨을 궁지에 몰았다. 닉슨이 콕스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법무부 장관과 차관 모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범죄를 감추어주면서까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문재인 정부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1년이 넘도록 다투고, 지청장이 사건 수사를 방해한다. 주요 사건 증인이 줄줄이 자살하는데, 진실은 정권이 끝나도록 감춰진다. 범죄자가 큰소리치고, 고발한 사람은 두려움에 떤다. 경험은커녕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라다.이게 차기 대통령 선거에까지 이어진다. 투자금의 1000배가 넘는 이익을 몰아줬지만 “너는 깨끗하냐”라며 덮어버린다. 정부 공금으로 가족 부식을 사고, 공무원이 민간인의 수행비서, 살림 비서 역할을 한 녹음과 사진이 나와도 아랫사람 탓만 한다. 개인 왕국 같다.사실을 시인하지도,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았다. 반성 없이 고쳐지지 않는다. 시의회에서 지적당한 일이 10년간 이어졌다. 수시로 뒤집는 공약이 어떻게 바뀔지 믿을 수 없다. 진심 어린 시인과 사과가 먼저다. 가뜩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한계에 이르렀다. 상식이 통하고, 진실에는 승복하는 사회가 정말 그립다./본사고문

202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