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조를 보면 대개 스스로 무너진다. 외침으로 멸망한 나라도 먼저 안에서부터 곪아갔다. 조선 시대 당쟁을 변명하는 주장에 솔깃하다가도 반성하게되는 이유다. 외세에 휘둘리던 구한말 정세도 숨이 막힌다. 어찌 그리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고, 권력다툼에 눈이 멀었을까.
지금 우리 정치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자기가 잘해서 당선되는 정치인보다 경쟁 후보 실수로 당선되는 후보가 더 많다. 윤석열 대통령도 문재인 정부의 실패 덕을 크게 봤다. ‘내로남불’과 조국 사태로 공정 가치를 갈망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여론에 업혀 당선됐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가 탄핵 소추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는데, 당시 야권과 무소속 의원은 172명. 이들만으론 탄핵소추가 불가능했다.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234명이 찬성해 가결됐으니,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적어도 62명이 힘을 보탰다.
탄핵의 첫 번째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의 실정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집권당의 분열이 결정적이다. 그해 4월 13일 실시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 누가 진짜 친박인지 가리는 ‘진박 감별사’가 설쳤다. 당 대표가 공천장 날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도피하는 희극이 벌어졌다. 선거에 지고 한 달 만에 당이 두 쪽 났다.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도 비슷하다. 대선 뒤 친노 의원들이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도 탈당해 17대 총선 직전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라고 말한 것이 탄핵 사유가 됐다.
‘버려진’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을 자극했다. 이들이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탄핵을 추진했다. 재적 271명 중 193명이 찬성했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집권당을 쪼개 탄핵 사태를 초래한 셈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시끄럽다. 다음 총선 공천을 좌우할 당 대표를 뽑는 경쟁이니 치열할 수밖에 없다. 과열되면 조금 지나친 말이 오갈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행태는 유치하기 짝이 없고, 다시는 안 볼 사람들 같다.
‘윤핵관’들이 경쟁후보를 집단 린치하고 있다. 이철규 의원은 안철수 후보를 ‘반윤’으로 규정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밝히고 심판받으라”라고 했다. “대통령의 인사와 국정 수행에 태클을 걸었다”라느니 “대통령이 한 번도 밥도 차도 안 마셨다”라고 비난했다. 경쟁을 하더라도 유력후보를 모두 ‘반윤’으로 몰아세우는 건 지나치다. 전당대회가 분당대회는 아니다.
윤핵관들은 그동안 대표 경쟁 후보가 될만한 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나경원 전 의원을 차례로 주저앉혔다. 모두 ‘반윤’, ‘악당’으로 낙인찍었다.
이제 안철수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앞서니, 또다시 그를 표적으로 삼았다. 본인들에게 그럴만한 빌미가 없었던 건 아니라 해도, 선거를 함께 치러야 할 동지아닌가. ‘탈당이라도 할 거야? 나가주면 우리만 좋지.’ 이런 배짱마저 느껴진다.
더구나 대통령은 왜 끌어들이나.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국정을 이끌어가려면 ‘비윤’은 물론 야당의 협조까지 필요한 처지다. 그런데 청와대 참모까지 나서서 대표 후보들을 모욕하고, 적으로 만든다. 나 전 의원을 저출산 고령화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해임해 주저앉게 하더니, 안철수 후보 선거대책 위원장을 맡은 김영우 전 의원은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직에서 해촉했다. 익명으로 “안 의원은 윤심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안 의원을 불신하고 있다”라고 흘리고 있다.
윤 대통령과 누가 더 가까운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게 우리 집권당의 수준이다. 양파 까듯 다 까서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다음 총선에서는 윤핵관만 공천하겠다는 건가. 공산당도 아니고 어떻게 단일 색이길 바라고, 충성심 경쟁만하나. 돈과 시간 들여 당을 쪼개고, 지지율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일이다. 대통령의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고 그를 호해로 만들어선 안 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