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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5년 정권이… 겁이 없나’

등록일 2023-02-19 20:08 게재일 2023-02-2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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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사는 과정이 아귀다툼이다. 그런데도 사회가 유지되는 건 탐욕을 규제할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지배한다. 특히 힘있는 사람들의 절제가 필요하다. 힘이 세다고 거들먹거리면 더 센 사람에게 굴욕을 당한다. 군주민수(君舟民水)다. ‘군(君)’은 딱히 최고 권력자뿐 아니다. 권력 집단 모두에 해당한다. 그나마 법이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대등하게 보호한다.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고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대안적 진실’을 받아들인다. 우리 사회도 전형적인 탈진실의 경향을 보인다. 진영으로 쪼개져 다투기만 할 뿐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다. 진영의 이익을 위해 대안적 진실을 끌어안는다. ‘뻔뻔한 진실’이다. 그러니 대화도, 통합도 어렵다.

그런데도 진실은 필요하다. 진실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 법 집행과 정의도 사라진다. 그러면 무엇으로 진실을 가려야 하나. 힘으로 진실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건 ‘뻔뻔한 진실’이다. 상식에 맞아야 한다. 법으로 가릴 수밖에 없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있다. 바둑에서 큰 말은 잘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힘 있는 사람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 거물이라고 처벌받지 않는다면 그건 민주주의도 아니고, 정의로운 사회도 아니다. 진실은 힘이 아니라 법과 상식으로 가려져야 한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이 퇴직금이란 이름을 붙여 50억 원을 받았는데,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30대 초반 평범한 직장인이 6년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았다. 터무니없는 돈이다. 누가 봐도 뇌물이다. 곽 의원이 50억 원을 달라고 조른다는 녹음도 있다. 그런데도 증거가 없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경제단위란다. 증여세 없이 자식에게 재산을 넘겨 주려고 온갖 편법을 쓰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걸 완전히 외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최순실 씨와 ‘경제공동체’라고 묶어 뇌물죄를 적용한 검찰과 법원은 어디 갔나.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다고 믿기 어렵다. ‘50억 클럽’의 다른 혐의자들은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명백히 돈이 전달된 곽 전 의원이 무죄라면 나머지는 안 봐도 뻔하다. 법은 어렵다. 일반인은 겁부터 난다. 서민들도 ‘높은 분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 법 논리를 아무리 정교하게 세워도 평범한 우리 입에서는 “놀고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그깟 5년 정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 겁이 없나”라며 검찰을 비난했다. ‘그깟 5년’이라니. 겁이 나면 검찰이 수사하지 말아야 하나. ‘5년 뒤 내가 집권하면 어쩌려고 겁도 없이 감히 나를 수사하느냐’는 말로 들린다.

힘으로 진실을 가릴 수 없다. 그는 민주당 지역위원장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수사의 대상이 된 피의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거나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헌법상, 법률상 권리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이 대표도 법률에 허용된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수 있다. 그러려면 국회 1당 대표로서 검찰을 위협하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수사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정치인이다. 침묵을 지키는 권리 행사에 앞서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다. 일반인으로서 권리는 다 찾아 누리고, 정치 지도자로서 도덕적 의무는커녕 힘으로 검찰수사를 방해하려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7일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서를 발부했다. 이 요구서는 정부를 거쳐 국회에 전달되고, 국회가 동의하면 구속 영장이 발부된다. 또 이때 법원이 영장실질심사를 하게 된다. 검찰이 일방적으로 구속하는 게 아니다. 법원이 동의서 발부, 영장실질심사를 한다.

더군다나 최종적인 진실은 법원이 가린다. ‘감히 나를…’이 아니라 당당하게 진실을 가리고, 법 해석으로 다투는 것이 정도다. 국민은 진실을 원한다. 또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부터 솔직한 고백을 듣고 싶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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