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떠올랐다. 검푸른 동해를 뚫고 2023년의 해가 떠올랐다. 이 해에 우리의 꿈이 담겼다. 우리의 희망이 새겨져 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코로나19에 시달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 경제를 흔들어놓았다. 금리·환율·물가가 한꺼번에 오르는 ‘3고 현상’에 무역수지 적자와 가계부채 증가까지 더한 불황이 덮쳤다. 그렇지만 주변 여건이 어렵다고 좌절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를 단련시키는 자양분으로 삼아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한다.
이제 그 긴 터널의 끝에 이를 때가 됐다. 개구리가 뛰어오르려면 움츠려야 하듯, 지난 3년을 발판 삼아 이제 토끼처럼 새로 도약할 때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시킨 DNA가 우리에게 있다.
계묘년(癸卯年)은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영리하다. 우리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맞고 있다. 힘으로만 밀어붙여 풀릴 형편이 아니다. 좀 더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교토삼굴·狡兎三窟)고 한다. 간을 산에 두고 왔다고 속이고 살아난 토끼처럼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해답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판을 뒤집는 창의력이 필요하다.
토끼는 온순하고, 평화의 상징이다. 지난 한 해는 무한 대결의 시간이었다. 안으로는 정치가 실종됐다. 대통령은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야당 대표와 밥 한번 먹은 적이 없다. 마주 앉아 대화해본 일도 없다. 야당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취임 직후부터 사사건건 발목만 잡았다. 스토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비틀고, 비아냥대고, 시빗거리로 삼았다. 한나라 두 정부의 내전 상황을 연상케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의혹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혐의를 덮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서둘러 결론을 내고,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불법적인 침략과 인명피해를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국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 심각하다. 국제 공조가 조기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매달리는 북한 정권의 무모한 도발을 끝내는 것도 올해 이루어야 할 목표다.
토끼는 겁이 많고, 온순하다. 분에 넘치게 욕심내지 않는 것이 토끼의 미덕이다. 정의가 실현되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대를 안고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렇게 움직일 때 지지율도 올라갔다. 윤석열 정부는 빚이 적다.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가 좁은 인재 풀에 갇혀 ‘윤핵관’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문을 좀 더 넓게 열어야 한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고, 모든 자리를 내 사람으로 채우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토끼가 마음 놓고 풀을 뜯는 안전한 나라를 원한다. 북한의 도발로부터 안전한 나라, 핵으로 위협해도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미사일을 거꾸로 쏘고, 드론이 서울 상공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모습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노동이 안전해야 한다. 자본도 노조도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튼튼한 사회안전망으로 굶주림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거북이가 전령으로 일하는 게 공정이 아니다. 전령은 발 빠른 토끼가 맡아 역할을 잘해 내야 모두 안전해진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공정하다.
권력자의 성질대로 휘두르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 경쟁자의 손을 잡고, 상생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틀을 다시 짜야 한다. 현행 선거법은 위성정당을 낳은 법이다. 선거법과 헌법을 10여 년째 만지고 있다. 이제는 매듭을 지을 때다.
토끼는 생명력이 뛰어나다. 임신기간이 30일에 불과하다. 한배에 새끼 4~12마리를 낳는다. 새끼는 6~7개월만 자라면 임신할 수 있다. 놀라운 번식력이다. 지혜와 생존력은 현 정세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토끼의 기운을 빌려 어려운 국내외 환경을 이겨내고, 경제가 부활하고 재도약하는 기회의 해로 만들자.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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