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땃벌떼에 포위당한 국회

등록일 2023-03-05 19:50 게재일 2023-03-0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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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1995년 7월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 복귀와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92년 12월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민주당 의원 95명 가운데 65명이 탈당했다. 은밀한 작업 끝에 신당 창당이 공개되자 민주당은 어수선했다.

다수 의원이 빠져나간 국회 민주당 의원실 소파에서 노무현 최고위원과 유인태·원혜영 의원이 바둑을 두며 개탄하는 말을 들었다. 정당이 한 사람에 좌지우지되는 꼴에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만들어 독자적 길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3김 정치 타파를 정치적 목표로 삼았다. 3김의 대권욕이 민주화운동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집권 야망 탓에 지역할거 정치를 주도해, 민주화를 왜곡한다고 생각했다. 조순형·제정구·유인태·원혜영·김부겸 등이 88년 한겨레민주당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다. 양김씨(김영삼·김대중)가 후보단일화에 실패해 정권 교체를 실패한 직후다. 대권욕에 사로잡힌 한 사람의 정당 장악을 저지하려던 이들이 만든 민주당에 민주주의는 남아 있는가.

요즘 민주당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의 개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과 관련해 ‘배신자’ 색출이 거세다. 이낙연 전 대표 영구 제명 청원은 게시 나흘째인 3일 오후 동의자가 6만 명이 넘었다. 민주당혁신위원회는 총선과 전당대회 등 당내 경선에서 ‘개딸’(개혁의 딸이란 이름의 이재명 친위세력)들의 목소리를 크게 반영하도록 규정들을 고치려 한다. 이 대표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현역의원들을 물갈이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이 ‘개××’라느니 ‘수박(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라는 뜻) 깨기’라는 말로 공공연히 선동한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나치 시대에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려고 십자가 밟기를 강요”한 것과 같은 짓이라고 개탄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갈등이 심한 정당을 버리고 나간 적이 있다. 신민당을 버리고 나가 민추협과 통일민주당을 만들었다. 그때는 독재정권의 공작정치에 맞서기 위해 야권 세력을 결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지금은 당이 가진 재산이 아깝고, 선거에서 거저먹기인 제1야당의 간판이 아까워 나갈 생각은 못 한다. 그때는 민주화라는 명분이 있었다. 지금은 사법 심판 회피 이외에 무슨 명분이 있나.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이 없으면 양아치나 다름없다.

1971년 10월 2일 공화당의 4인 체제는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화가 난 박정희 대통령은 이후락 정보부장을 시켜 김성곤 의원의 코털을 뽑고, 의원직에서 쫓아냈다. 민주당이 50년 전의 공화당처럼 절대자 1인의 정당인가.

이승만 전 대통령은 2대 국회를 야당이 압도해 간선제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회에서는 의원 내각제 개헌을 시도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 의원들을 의사당에서 연행했다. 백골단, 땃벌떼 등 정치 깡패집단, 마차·우마차에 마의(馬意)·우의(牛意)를 실어 날라 국회를 포위하고, 공개투표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수박 깨기’ 한다며 투표 내용을 공개하라고 압박한다. 또 체포동의안이 오면 불참하는 방식으로 의사 표시를 드러나게 만들려 한다. 문자 폭탄을 날리고, 청원압력을 가하는 ‘개딸’은 ‘땃벌떼’와 다를 게 없다.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일부 과격분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만 과잉 대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험한 적이다. 소수파였던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는 선동정치 과정이 그러했다.

국민의힘이 흘러가는 꼴도 비슷하다. ‘친윤’을 선언하지 않으면 모두 배신자로 낙인찍는다. 물갈이가 거론된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제된 소식만 전달하던 시대와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누구나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가짜뉴스가 범람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보다 자극적인 선동이 더 잘 먹히는 시대다. 민주주의가 위태롭다. 당 대표와 다른 의견에는 침묵을 강요하는 것도 명백한 민주주의 파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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