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또 조국의 늪에 빠질 건가

등록일 2022-10-23 19:30 게재일 2022-10-24 3면
스크랩버튼
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지난 주말 서울 중심가. 광화문에서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까지 중심 도로가 인파로 꽉 막혔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특검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 구속을 요구하는 맞불집회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내 교통은 마비됐다. 필자의 시내 중심가 사무실 창문 너머로 함성이 탱크 소리처럼 몰려온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갈등이 망국병이라고 했다. 옳고 그른 합리적인 판단보다 우리 지역 출신이냐 아니냐로 편을 갈랐다. 지역감정만 극복하면 국민 통합이 될 거라고 믿었다. 김 전 대통령은 “춘향이의 한(恨)은 이 도령을 만나면 풀어진다”라고 말했다. 호남 출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여야의 국정 경험으로 책임정치를 하리라 기대했다.

기대는 기대에 그쳤다. 집권의 단맛을 본 뒤 선거 불복을 반복했다. 대선이 끝난 지 5개월 반.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고성능 스피커 소리가 서울 하늘을 찢어놓았다. 수만 명이 촛불을 흔들었다.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한 제1야당 소속 국회의원 일부도 참석했다. 반대쪽 집회에는 더 많이 모였다. 나라가 완전히 두 쪽이다. 합리적인 이성은 사라졌다.

불과 3년 전,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조국 사태 때다.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을 내건 집권당 지지 세력은 서초동에, 그 반대 세력은 광화문에 모여 세 대결을 벌였다. 옳은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진실은 진흙탕 속에 내팽개쳐지고, 진영의 구호를 복창하는 깃발과 완장만 가득하다. 객관성이 생명인 언론사 사장마저 “딱 보니 100만 명”이라고 흥분했다.

진실은 무시되고, 공정은 무너졌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화려한 수사는 공허했다. 그 대가는 분명했다. 배신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돌아섰다. 20년 집권론이 무너지고, 10년 주기 정권 교체의 흐름도 끊어졌다. 조국의 짐을 민주당이 대신 짊어지고 자멸했다.

이제 다시 민주당이 이재명 수호대가 됐다. 당 대표이기 때문이다. 대표 경선 때부터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 민주당 안에는 불만이 있다. 조국 사태의 전철을 밟는다는 것이다. 김해영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님,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주시라”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이런 의견이 소수가 아니다.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압수 수색하도록) 민주당을 풀어줘야 한다”라며 “이런 생각이 민주당 의원의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016년 10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주말마다 서울 시내에서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2020년 총선까지 매주 계속했다. 그렇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호하지도 못했고, 민심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소수 시위 세력끼리만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했다. 선거 결과는 허망했다. 태극기 세력이 참패했다. 집권당에 5분의 3 의석을 허용했다. 국민의힘이 무너지는 데도 일조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받은 22년 형 가운데 15년은 뇌물죄다. 대기업이 공익스포츠 재단 출연하고, 최순실 씨의 딸이 대기업 소유로 등기된 말을 탄 것을 뇌물이라고 인정했다. 국민 다수가 그것까지 권력형 범죄라고 생각했다. 태극기 집회가 고립된 이유다.

이재명 대표는 그보다 나은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김용 부원장 혐의는 최순실 씨의 혐의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사업권과 허가라는 명확한 이권 관계가 있다. 금전 거래가 있었다면 범죄 혐의가 더 분명하다. 박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면서 탄핵당하고, 수사받았다. 없는 죄로 야당 정치인을 탄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야당 대표라는 것이 무조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닉슨 미국 대통령이나 다나카 일본 총리의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대신 싸울 건가.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려면 결백을 밝혀야 한다. 진실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수긍하기 어렵다. 조국 사태 때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강경파의 선동에 휘말려 늪에 빠졌다. 선거를 치른 뒤에야 후회했다. 이제 대선에 이어 총선마저 망칠 수 있는 기로에 섰다. /본사고문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