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을 제기했다. 연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선거법은 헌법보다 개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선거법을 개정할 국회의원들의 당락에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2020년 4·15총선에 적용된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의 실패도 의원들의 기득권 탓이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반대했다. 연동형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위성정당을 만들어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압승만 거들었다.
선거법을 개정할 때 의원들은 정당보다 자기 이해부터 생각한다. 의원직을 걸고 당의 이익을 챙기려는 의원은 없다. 연동형은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 의원을 늘려야 제대로 작동한다. 다수인 지역구 의원들이 반대다.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처리에 정의당을 이용했다. 선거법을 미끼로 이용했다. 그런 뒤에 자기들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의 뒤통수를 쳤다. 미래통합당을 핑계로 삼았지만, 욕심이 지나쳤다. 배신의 정치로 정치적 신뢰를 팽개쳤다.
현행 제도는 실패했다. 연동형이 잘못이 아니다. 의원들 욕심 때문이다. 위성정당을 막지 못했다. 어설픈 반쪽 연동형을 했다. 이대로 다음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다음 총선은 내년 4월 10일이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21대 총선을 보자. 서울에서 민주당은 유효투표의 53.5%를 얻었다. 그런데 의석은 83.7%인 41석을 가져갔다. 미래통합당은 41.9%를 얻었지만, 의석은 16.3%인 8석에 불과했다. 경기도에서도 53.9%를 얻은 민주당이 51석(86.4%)을, 41.1%를 얻은 미래통합당이 7석(13.7%)을 가져갔다. 그런데도 비례성을 보완하기는커녕 ‘부익부’(富益富)로 법 취지와 거꾸로 갔다.
20대 총선 서울에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각각 12석, 35석, 2석을 얻었다. 정당 투표 비율대로라면 16석, 14석, 15석에 정의당 4석으로 바뀐다. 민주당 40석, 국민의당 0석이었던 경기도도 득표 비율대로라면 두 당이 각각 17석을 얻었어야 했다. 수도권만 보면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이 국민의힘에 절대 유리하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선거법 개정에 더 부정적이었다. 정권을 민주당에 넘기고, 대통령 선거에 이기고도 민주당의 절대다수 의석에 발목이 잡혀 맥을 못 추면서 개별 의원의 당선만 생각한다.
윤 대통령이 말한 중대선거구제도 해결해야 할 약점이 있다. 2인 선거구에서는 양대 정당 후보자가 나눠 먹을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보다 정당이 당선을 결정한다. 유신 체제에서 경험해봤다. 몇 인(3~5)선거구로, 어떻게 획정하느냐가 의석수를 좌우한다. 정치적 구획이 될 소지가 크다. 지역별 차이도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3~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시험 시행했다. 9명을 뽑는 광주 시범지역에서 민주당 6명, 진보당 2명, 정의당 1명이 당선됐다. 대구에서는 국민의힘 7명, 민주당 2명이 당선됐다. 민주당은 영남지역에 진출했지만, 국민의힘은 호남으로 가지 못했다.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은 과거 농촌지역은 소선거구제, 도시 지역은 중대선거구제로 하는 도농복합형을 주장했다. 한나라당(국민의힘)을 설득하고, 지역 대표성도 살리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면 영호남 지역 갈등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
기존 선거 제도에 대한 문제 인식은 분명하다. 승자독식에 따른 사표(死票)와 의석 분포의 극단적인 널뛰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중간층과 소수 목소리도 정당하게 반영돼야 한다. 위성정당을 막고, 유권자가 당선 순서를 정하는 개방형으로 하면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가장 적합하다.
그렇지만 정파적 이해가 얽힌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중대선거구제도 좋은 대안이다. 표의 등가성을 높이고, 유권자의 뜻에 맞춰 국회를 구성한다는 원칙만 지킨다면 어느 쪽이든 진전이다. 문제는 현행 제도에서 당선된 의원들 손에 결정권이 있다. 정치적 담합이 아니라 국회 밖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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