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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청산, 오래 끌지 마라

등록일 2022-10-30 20:36 게재일 2022-10-3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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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얼어붙었다. 여야 협조를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검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거침없이 몰아가고 있다. 민주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야당탄압, 보복 수사 중단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민주 정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민주당은 국회 의석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한 절대다수 정당이다. 민주당 협조가 없으면 임기 절반을 허송세월할 수도 있다. 대통령으로선 어떻게든 여야 관계를 풀어야 할 처지다. 그렇다고 이미 드러난 혐의를 덮으라고 하는 것도 부당한 수사 개입이다. 윤 대통령이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률이 6주 만에 30%를 넘었다. 아직 지지율이 심각하게 바닥이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회복 조짐을 보이는 건 윤 대통령에게 고무적이다. 지지 이유에 대해 ‘국방·안보’(10%) 외에 ‘공정·정의·원칙’(9%)과 ‘부정부패·비리 척결’(5%) 등을 꼽았고, ‘공정·정의·원칙’은 지난주보다 6%포인트나 올랐다. 특히 보수층에서 지지가 오른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를 지지한 결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윤 대통령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기대다. 그는 검사 이외에 다른 경험이라고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총장에 임명할 때도 외골수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정치력이 없다는 말이다. 좋게 보면 수사에 내 편, 네 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잘하는 것은 바로 이 범죄 수사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이 기대한 것도 그것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의 정통성을 건드리는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맡아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사건 수사팀장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 수사로 정권과 부딪쳐 검찰총장에서 쫓겨났다. 이 바람에 이념과 관계없이 수사에 엄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평가가 대선 당시 국민의 불만과 맞아떨어졌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해 정권을 내놨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그만큼 ‘내로남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컸다.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이다. 그게 윤 대통령에게 맡겨진 소명이다. 경제나 다른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그 일은 잘할 것이라는 기대다. 물론 다른 분야를 맡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권력자가 겸손해야 하고,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정적을 수사한다고 무조건 정치보복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혐의는 민주당 내부에서 먼저 제기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법을 정치 탄압 수단으로 이용했다. 정치자금도 집권 세력이 독점했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 정치인 범죄라고 눈 감으면 권력형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진실을 밝혀야 정치보복인지 가릴 수 있다. 지금 거론되는 혐의들만 보면 지방정부의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다. 여야를 떠나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임기 초는 중요하다. 이때를 놓치면 어려운 일을 처리하기 힘들다. 그 황금기를 여야 대치로 허비하고 있다. 그 힘을 국가 비전이 아니라 과거 청산에 쏟는 것도 안타깝다. 굳이 피할 수 없는 수사라면 속전속결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빨리 반전을 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혐의가 명확한 것만 손대는 게 옳다. 사소한 트집 잡기나 부풀리기, 견강부회는 피해야 한다.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될 정치권 논란까지 끼어들거나, 전선을 확장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년 경제가 매우 어둡다. 야당 협조가 없으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어차피 지지율이 바닥이니 눈치 보지 말고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내년 총선까지 수사를 끌고 가자는 유혹도 있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순간 수사는 역풍을 맞는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계속된 ‘적폐 청산’만으로도 지겹다. 확실하게 혐의가 입증되는 것만으로 빨리 끝내지 않으면 박수가 야유로 변할 수 있다.

 

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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