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법률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

등록일 2022-11-20 20:05 게재일 2022-11-21 3면
스크랩버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귀국하면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라고 격려했다. 윤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순방을 떠나면서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돌아오는 길에도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것이다.

해외 순방으로 며칠씩 나라를 비우면서 내치 담당 장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158명의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된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문제가 불거진 시점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하다.

윤 대통령은 법률적 책임론에 치우쳐 있다. 법적으로 잘못이 없는데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난 7일 국가안전 시스템 점검 회의에서도 그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이 철저히 이뤄지도록 하겠다”라면서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 살아왔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결백하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법적으로야 당연하다. 그러나 예로부터 비가 안 와도 임금님 탓이었다.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돌아도 임금님이 부덕해서라고 생각했다. 천재지변을 나라님 탓한 것은 미신에 가깝다고 해도, 수자원 관리나 보건 위생은 정부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일이다.

책임 소관을 따지기 힘든 일이 무수히 많다. 천재지변이 아니라도 그렇다. 그런 문제는 당한 사람만 억울한가. 사회의 그런 빈 곳을 찾아 메우고, 대비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인명 피해가 생기고, 바람이 불고, 가물어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병원균이 우리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유능한 정부라면 대비해야 한다. 하물며 군중이 몰려 교통이 마비되고, 막대한 인명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을 정부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법 조항이 있든 없든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정부다. 대비가 안 돼 문제가 생기면 정부 책임이다. 정부 조직을 정비하지 못한 잘못이다. 체제가 돼 있었다면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실무자는 물론 관리·감독을 잘못한 사람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큰 참사를 빚어놓고 일선 파출소에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면 어느 국민이 이해하겠나. 이번 참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재다. 윤 대통령도 경찰을 향해 흥분하며 질타했다. 그 어이없는 행정력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안전 문제의 최고 행정책임자인 이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떠안아야 윤 대통령의 짐이 덜어진다.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아니라 국민을 설득하는 길이다.

이 장관은 여론에 불을 지른 책임도 있다. 참사 직후 그는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말해 기겁하게 했다. 사퇴 여론이 높아지자 그는 또 “누군들 폼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고 말해 다시 여론에 불을 질렀다. 참담한 사고의 책임자로서 사퇴하는 것을 어떻게 ‘폼나게’라고 표현할 수 있나.

윤 대통령은 ‘의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품이다. 사법시험 직전에도 조문을 가고, 친구 함 팔이를 갈 정도다. 검찰총장 시절에도 자신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데 조문을 거르지 않았다. 이 장관 같은 가까운 지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는 이 의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왜 무너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논란을 외면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키려다 정권을 넘겨줬다. 사적 의리에 얽매이면 공적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조 전 장관 파문 때도 법률적 유무죄에 매달렸다. 그러나 고위공직자는 법률적으로 죄를 묻기 어려워도 도덕적·정치적 책임이 더 무거운 때가 있다. 이번 논란의 가장 핵심 인물인 용산경찰서장이 “보고를 못 받았다” “기동대 추가 파견을 요청했었다”라고 말하는 것도 법적 책임을 의식한 말이다. 형사사건으로만 보면 책임을 떠넘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더 큰 부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앞장서서 처리하지 않으면 밀려서 하게 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 필요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본사 고문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