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이 비틀거린 지 한참 됐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압박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힘겹다. 법안 처리가 어렵고, 예산도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
국정을 정상화하려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사와 내년 총선을 잘 넘어야 한다. 임기 중반 총선은 중간평가다. 패배하면 국회 주도권만 놓치는 게 아니다. 대통령 임기 전반기의 실패를 의미하고, 레임덕을 앞당길 각오를 해야 한다.
총선을 지나면 당내 세력 판도가 완전히 바뀐다. 이기려면 좋은 후보를 내야 하지만, 정파적 이해는 좋은 후보보다 ‘내 편 후보’다. 그러니 공천권을 쥔 당대표에 목을 맨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이 불안하다. 취임 이후 줄곧 ‘배제의 정치’를 한다. 국정 지지도가 조금 올랐다고 만족할 일이 아니다. 기존 지지층을 조금 회복한 정도다. 그것만으로는 총선 승리가 불확실하다. 물론 이준석 전 대표의 ‘내부 총질’은 참기 힘들었으리라.
유승민 의원이 또 그 길을 갈까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렇더라도 최근의 행보는 지나치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이준석 전 대표를 밀어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승민 전 의원을 겨냥해 선출 방식을 바꿨다. 그것도 부족해 이제 당내 지지율이 가장 높은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히려 한다.
지난 11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전체 유권자 지지 1위는 유승민 의원,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1위는 나경원 전 의원이었다. 다른 조사도 대부분 비슷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참조)
결국 윤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대표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총재를 겸하고, 당 대표를 임명하던 민정당 시절을 떠올린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나 전 의원 처신이 옳다는 건 아니다. 당 대표로 나서려면, 석 달 만에 물러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맡지 않았어야 했다. 당헌을 바꾼 뒤 지지율이 앞서가자 갑자기 욕심이 생겼겠지만, 저출산 고령화는 그렇게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그렇더라도 나 전 의원을 대놓고 저격하는 대통령실 언행은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중앙일보에 “나 전 의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애정이 여전히 크다. 사의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다”라고 말한 지 이틀 만에 나 전 부위원장을 전격 해임했다. 애정을 가졌는데, 나 전 의원이 자기 구상을 내놓자마자 공개 반박하나. 그런데도 그 일을 계속하라는 건 뭐며, 그만둔다고 발끈해 해임하는 건 또 뭔가. 공개적인 모욕 대신 윤 대통령이 직접 만날 수는 없었나.
이중재 평민당 수석부총재는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한 양김씨(김영삼·김대중)의 통합을 추진했다. 평민당 회의 도중 쫓겨난 이 부총재가 당료들의 구타와 야유를 받으며 9층에서 옥외 비상계단으로 쫓겨 내려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6대 국회에서부터 무려 25년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한 정치적 동지였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친박’, ‘진박’은 어디로 갔나. 위기의 순간 어떤 역할을 했나. 가진 것이 많을 때는 쉽게 버린다. 그러다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다.
정치에서는 51대 49에서 49대 51로 바뀌는 건 쉽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건강한 정당은 여러 가지 의견을 품는다. (和而不同) 다른 의견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정치다.
이준석 사태의 충격이 정치 초보 윤 대통령에게 힘겨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손아귀에 쥐려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쪼개고 버리면 ‘윤핵관’만 남는다. 의견이 조금 다르다고 ‘반윤’으로 만들 이유가 뭔가. 안아야 한다.
나 부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여, 절대 화합”을 공개적으로 외쳤다. 굳이 사정이 있다면 ‘제2의 이준석’으로 낙인찍을 게 아니라 대화로 풀었어야 한다. 그게 정치다. 자신이 낙점한 사람 이외에는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다.
당장 껄끄러워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지도자다. 경쟁자를 다 쫓아내고 낙점받은 후보가 당 대표가 된다면 그 모양은 또 어떻게 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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