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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와 비교, 그만하라

등록일 2022-11-13 20:09 게재일 2022-11-1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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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퇴임한 뒤에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주 소환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여권 인사들은 조건반사처럼 문 전 대통령을 거론한다. “그때는 더했다.” 윤 대통령을 변호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논리다.

윤 대통령도 조각(組閣)할 때부터 이 방법을 썼다. 도어스테핑에서 기자가 비판 여론을 전하자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세요”라고 반박했다. 국회에서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장관 임명에 대해서도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그렇게 임명한 장관이 31명”이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민주당이 홀대 논란을 제기하자, 국민의힘은 문 전 대통령의 베이징 ‘혼밥’ 논란을 들어 반격했다.

김건희 여사의 의상과 액세서리가 논란이 되자 김정숙 여사의 의상으로 맞불을 놓았고, 김건희 여사의 대통령 동행과 지인의 전용기 동승을 비판하자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 등 ‘버킷리스트’, 지인인 디자이너 딸의 청와대 근무를 꼬집었다. 알박기 인사에 대한 압박 감사·수사 논란에도 “문 정부는 청와대 캐비닛까지 뒤져 수사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문제가 된 일을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는 처음부터 논외다. 너도 한 일이니 입을 다물라니, 유치한 어린애들 싸움 같다.

비판하는 사람에 아무래도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 그러니 조건반사적으로 그런 논박이 튀어나오는 게 이해는 된다. ‘× 묻은 개’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진 사람의 말은 사사로운 언쟁과 다르다. 언쟁 당사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들려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런 대응이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태원 참사처럼 거대한 비극을 두고 이런 입씨름은 더더욱 곤란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경찰 간부들을 지목해 “문재인 정권 퇴임 3개월 전 알박기 인사에서 영전된 인물”이라고 떠미는 식이다. 취임한 그 날부터 국정의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설령 실제로 알박기였다 해도 바로 잡지 않고, 지휘·감독을 제대로 못 한 윤 정부 책임이다.

정권마다 업적도 있지만, 잘못도 있다. 집권하겠다고 표를 구하는 것은 그 모든 짐을 떠맡겠다는 약속이다. 영광의 역사, 오욕의 역사를 모두 짊어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역사의 한 토막을 잘라낼 수는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정부 탓만 하면 국정은 누가 이끌고, 책임을 지나.

지난 8일 국회 운영위에서 주호영 위원장이 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퇴장시켰다.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에 민주당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한 언론은 윤 대통령도 이 일에 대해 ‘역정을 냈다’라고 보도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소설을 쓰시네” “어이가 없다”라는 발언을 소환하며 일부 여권 인사들도 주 위원장을 비판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민주당 행태를 보면 이런 반박도 나무라기가 조심스럽다. 특히 ‘처럼회’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지만, 번번이 되잡혔다. 김의겸 의원의 청담동 술집 이야기는 젊은 남녀의 알리바이 만들기에 놀아난 것으로 보여 어이가 없다. 정말 국정을 걱정한 비판인지 꼬투리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격투기를 보듯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 이기면 보는 사람도 신이 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 국정이다. 때려 부수고, 망가뜨려도 리셋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정부를 따라 한다고 무조건 용인될 수 없다. 유치한 입씨름일 뿐, 국민에게 할 말이 아니다. 지난 정부가 한 일이라도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사과부터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을 지겨워 한 유권자가 만들었다. 같은 꼴을 보려고 정권을 바꾼 게 아니다. 당장은 미운 놈 혼내는 것만으로도 손뼉을 치겠지만, 결국은 불만이 되어 돌아온다. 욕하면서 배운다. 과거 정부를 소환하고, 비교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국정을 맡은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과거의 적폐로, 누적된 부채로 힘들어도 그것을 해결할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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