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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으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월 10일 취임한다. 두 달 정도 남았다. 대통령 임기를 통틀어도 이때만큼 희망에 부풀고, 기세가 오를 때가 없다. 후임 대통령이 정해지고, 퇴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면 아쉬움과 후회가 파도처럼 몰려온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윤 당선인의 10일 기자회견은 그런 희망과 의욕이 넘쳤다. 과거 대통령들도 취임할 때는 다 좋은 말만 했다. 취임사만 보면 어떤 대통령이 한 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좋은 말은 다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심보다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잉크보다 빠르게 취임사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대통령들의 취임사는 국민이 원하지만, 대통령이 하기 싫거나, 할 수 없었던 일들의 집합이다. ‘ABM’(A nything But Moon, 문재인 지우기)은 아니라도 일종의 반면교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가장 먼저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진영 갈등이 어느 때보다 극심했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은 소외감을 느꼈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누어 군중 집회를 열었다.윤 당선인도 당선 배경을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말했다. 또 “오로지 국익만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보수와 진보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쉽다. 실천하려면 힘들고 고통스럽다.윤 당선인이 마주한 정치 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진영 갈등에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이 더하고, 사라질 것 같던 지역 갈등도 아직 남았다. 국회는 여소야대(與小野大)다. 국민의당과 합당해도 113석이다. 5분의 3 의석(180석)이면 개헌을 제외하고는 뭐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선 득표 차이도 역대 가장 적은 24만7천77표다. 취임하고 한 달도 안 돼 지방선거가 닥친다. 허니문 없이 바로 대결로 치닫는다.윤 당선인은 “여소야대 상황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가 훨씬 성숙해 나갈 기회”라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1988년 여소야대 국회는 4당 체제였다. 야당도 어느 한 당이 독주할 수 없었다. 보수당인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캐스팅보트 역할도 했다. 지금은 민주당이 독주하는 국회다. 선거 도중 민주당이 약속한 다당제로 갈 수 있다면 협치가 쉬워진다.문 대통령은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며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거대 야당을 마주한 윤 당선인의 대화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쪼개는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경선 과정의 갈등으로 민주당이 스스로 갈라설 수는 있다. 권력이 개입하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다. 민주당 인사를 발탁하더라도 와해 공작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13대 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여준 인내의 협치가 필요하다.“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주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코드 인사’로 일관했다. 윤 당선인이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아 빚이 적다는 건 오히려 장점이다. 과감한 결단이 가능하다.윤 당선인은 “기자 여러분과 간담회를 자주 갖겠다”고 약속했다. “퇴근길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은 빈말이 됐다. 기자회견도 10번이 안 된다. 정부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정직한 정부가 되겠다는 윤 당선인의 약속도 문 대통령 말과 같다. 말보다 실천이다. ‘내로남불’이 정권교체의 가장 큰 동력이 된 걸 잊어선 안 된다.윤 당선인은 공정의 상징으로 소환됐다. 문 대통령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말을 하면 박수받는다. 문제는 실천이다. 더 좋은 지도자는 박수받지 못해도 힘든 일을 해내자는 주문을 하는 사람이다./본사 고문

2022-03-13

새 대통령, 위기일수록 기대도 크다

김진국 고문 36.93%. 지난 4~5일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결과다. 과거 다른 선거와 비교가 안 되게 높다. 5년 전 19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율은 26.06%. 그보다 무려 10.87%가 높다. 코로나19, 각 정당의 사전투표 독려를 고려해도 뜨거운 열기다.가장 큰 배경은 정치에 대한 갈증이다. 사전투표 직전 넥스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53.2%였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정치 교체’를 선거 막판 반전 카드로 내밀었다. 현재의 정치에 불만,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이 국민 마음에 크게 물결치고 있다는 뜻이다.선거 열기가 뜨거운 만큼 그 이후가 걱정이다. 대결이 치열할수록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하자마자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또 치러야 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2년 남았지만, 국회 상황이 만만치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도가 38%로 같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잘못된 선거제도 탓이긴 하지만 그 괴리에서 오는 갈등은 고질적인 정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국회의 협조는 받겠지만 여론과 의석의 불일치에서 오는 갈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 민주당의 독주가 여야 대치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협조를 받기가 어렵다. 협치로 나아가면 다행이겠지만 행정부와 국회의 대립, 민주당 흔들기, 정계 개편 등 정치 혼란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더구나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과 유세 때 쏟아놓은 말들에는 설익은 약속이 많다. 윤 후보는 준비 기간이 짧았다. 일단 전문가들의 제안을 학습하기 바빴다. 이 후보는 선거 기간 중 기존에 내놓은 정책을 많이 바꾸었다. 이 후보는 이를 실용주의라고 하지만 표를 따라다닌 결과다. 누가 되건 정책의 불확실성이 크다. 빨리 정리해야 한다.여기에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의 대립 격화가 가져온 국제 무역 질서의 혼란, 코로나19로 죽어가는 중소상공인과 방만한 재정 운용의 후유증이 다음 정부로 부담을 떠넘기게 돼 있다. ‘취업 포기’, ‘평생 알바’라는 딱지는 젊은 층에 평생 짐을 지워놓았다. ‘일자리 대통령’이 만든 사라진 세대다.새로운 비전보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이재명 후보까지 지난 5년을 ‘반성한다’, ‘사죄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문재인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먼저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 문 정부에서는 오른쪽 깜빡이를 켜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일이 너무 잦다.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선거 중에 후보가 한 말은 당선을 위한 안간힘이라고 이해한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내 말을 진짠 줄 안다’고 뒤집어서는 안 된다. 말이 분명해야 정책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진다.빨리 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선거 막바지에 약속한 다당제의 상생 정치를 이행해야 한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지만 그 정신대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기를 기대한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 의회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힘들어도 최대한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진영을 뛰어넘는 인재를 발굴하고 등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상대 후보에 대한 비난을 들으면 모두 범죄자다. 죄가 있으면 조사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는 게 좋다. 또다시 임기 내내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사법제도를 정치에 이용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임기 중 거대한 업적을 쌓으려는 욕심도 금물이다.통일이건, 탈원전이건 좋은 목표라고 서두르면 뱁새 꼴이 난다.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패권국인 미국도 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함께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도자의 개인 취향 따라 움직이면 국민만 불행하다. 임기는 5년이다. 그렇다고 서두르면 안 된다.    /본사고문

2022-03-06

정치 신뢰, 해답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김진국 고문 옛날 정치를 들먹이는 사람을 많이 본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온갖 욕을 하던 사람이 그를 소환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으려던 사람이 ‘그래도 그분은…’이라고 추모한다. 추억이 현실보다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그때는 그래도 정치 도의라는 게 있었다. 속으로야 음험한 꿍꿍이셈을 품어도 겉으로는 아닌 체 명분으로 포장했다. 요즘은 명분이고, 체면 따위는 내팽개치고, 낯 뜨거운 언행을 거침없이 배설한다. 말 뒤집고, 거짓말하면서 오히려 큰소리다.후보끼리도 ‘같잖다’, ‘겁대가리’ 같은 상스러운 표현이 거침없이 오간다. 정치 현안을 다루는 언행들도 상식을 벗어난다.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3일 국민의당과의 막후대화를 폭로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 후보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측 관계자에게 ‘안철수 후보를 접게 만들겠다’는 등 제안을 해 온 것도 있다. 안 후보는 아시는지 모르지만….”‘안 후보가 아시는지 모르지만’이란 말은 “당신 측근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안 후보와 그 측근들을 이간질한 것이다. 물밑 대화를 공개하면 본인의 협상만 중단되지 않는다. 윤석열-안철수 사이의 모든 대화 통로가 다 막혀 버린다. 정치 도의도 신뢰도 모두 포기한 행동이다. 단일화보다는 안 후보 진영의 와해를 노린 수다. 적을 이기는 잔꾀를 잘 낸다고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되는 게 아니다.윤석열 후보도 단일화가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단일화 없이도 이긴다는 생각 같다. 민심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마지막 투표함을 열기 전에는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 자만하다 뒤집힌 선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최근에 다시 지지율이 박빙으로 좁혀지고 있다.안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단일화를 생각했다면, 윤 후보는 군소후보들을 흡수하는 단일화를 말하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이 아니라도 적어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같은 명분을 갖추지 못하면 안 후보가 포기할까. 당선 가능성이 윤석열·이재명 후보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안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380만 명(8.5%)에서 660만 명(15%) 정도가 있다. 500만 명 정도의 그 지지자들이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진지한 제안에 외면하고, 조롱하면 모욕이다. 힘으로 누르면 굴욕감을 느낄 수 있다. 종국에 표의 쏠림이 생기더라도 굴욕감을 느낀 표가 어디로 움직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언제나 힘으로 굴복시키는 정치를 한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양강이 아닌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체제를 선거구제 개혁을 통해 만들겠다” “위성정당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총리 국회 추천, 중대선거구제, 결선투표제 등을 제안했다.그러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말보다 행동”이라고 말했다. 불과 2년 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으로부터 치명적인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처리에 협조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을 만들었다. 막상 선거 때는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군소정당들은 기존 선거법에서보다 더 불리한 선거를 치렀다. 안철수 후보도 “그렇게 소신이 있으면 그렇게 실행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이재명 후보는 토론에서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성정당 없어도 압승했을 선거였다. 민주당이 뺏어간 의석은 정의당 등 군소정당이 가져갈 의석이었다. 민주당이 만든 법이다. 아쉬운 일이 해결되자 입을 씻었다. 이번에도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어제는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결의까지 했다. 그렇지만 불과 며칠 전 새벽에 날치기로 추경을 통과한 정당이다. 숫자의 힘으로 독주하는 그 체질이 갑자기 바뀔까.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국민의힘이건 민주당이건 소수당의 싹을 없애려고 한다. 자신들과 비슷한 색깔일수록 더 짓밟는다. 그것마저 빼앗으려 한다.분권형은 말뿐,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 제왕적 대통령을 향해 질주한다. 그래도 겁내는 건 국민이다. 해법은 유권자가 쥐고 있다. /본사 고문

2022-02-27

선거 이후가 걱정이다

김진국 고문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잔치다. 기간을 정해 미래의 꿈을 설계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나아가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아무래도 미래와 꿈이란 단어가 그리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무속과 신천지, 초밥과 합숙소가 최대 쟁점이다. 워낙에 비호감이 높은 후보들끼리 싸우는 선거였다. 그런데 상대 약점을 파헤치고, 없는 의혹까지 만들어 덮어씌우는 선거전략이다 보니 혐오감이 더 커진다. 이렇게 해서 선출한 대통령을 존경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후보들 스스로 신뢰를 까먹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지지자들이 반발하자 “그렇게 말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라고 조롱했다.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재난 지원금…. 거듭 말이 오락가락하면서 ‘표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왜 나왔는지 알게 됐다. 이 후보는 여론이 바뀌면 언제든 의견을 바꿀 수 있는 ‘실용주의’라고 한다. 대단한 장점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너무 지나쳐 어떤 약속도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준비가 안 됐다. 그의 대통령 출마는 상황이 만들어줬다. 조국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없었다면 윤석열 후보는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학습하고, 적응하고 있다. 그렇지만 단기 속성 과외로 하는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염려되는 것도 사실이다.그는 ‘적폐 청산’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전력을 보면 그냥 하는 말 같지 않다. 해온 일이 그렇고, 원한도 많다. 지난 정권 5년 내내 지겹도록 정치보복 쇼를 지켜봤다. 또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는 것은 두렵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그 후유증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코로나 속에 감췄다. 유세나 후보 단일화에서 내뱉는 말을 보면 많이 윤 후보도 오만해졌다.지난 5년 워낙 상식이 무너졌으니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준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윤 후보는 어퍼컷 세리머니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발차기로 응수했다. 재미있는 퍼포먼스다. 그렇지만 몸싸움 시늉이 앞으로 전개될 우리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선거가 막바지로 갈수록 진영화도 점점 강고해진다. 상대를 공격할 소재가 엿보이면 억지 프레임을 씌운다. 자기편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는커녕 막무가내로 감싼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외눈박이 진영논리는 선거판에서 더 심해졌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누가 되건 다음 정권 초기는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갈등이 불을 보듯 하다. 3개월 뒤 지방선거를 향해, 2년 뒤 총선을 겨냥해서, 또 5년 뒤 다음 대통령 선거를 목표로 돌진할 게 뻔하다.지도자는 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이다. 덩샤오핑(鄧小平) 없이 오늘날의 중국을 생각할 수 있겠나. 대처 영국 총리나 메르켈 독일 총리 대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놓아보라. 한국인은 신이 많다. 마음만 내키면 하루아침에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 독립해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유일한 나라다. 더구나 전쟁으로 폐허가 되는 고통까지 이겨냈다. 그 힘을 진영으로 나눠 싸우는데 탕진하는 건 비극이다.민주당이 선거를 치르는 판에도 날치기했다. 정권을 연장하게 되면 개헌선까지 확보한 국회를 이용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겠다. 우당(友黨)인 정의당의 뒤통수까지 치며 확보한 개헌선이다. 이해찬 전 의원의 ‘20년 집권론’, 그 이상의 변화를 각오해야 한다.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앞으로 2년간 심각한 여소야대(與小野大) 속에 일해야 한다. 정치보복과 정계 개편 바람이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노태우 정부 때도 여소야대였지만 4당 체제였다. 모범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 국회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제1야당이 버티는 여소야대와는 다르다.소수 정파를 인정할 때 상생의 정치가 가능하다. 다음 정부는 힘의 정치가 아니라 협력의 정치가 돼야 한다. 인위적 정계 개편보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 기형적 국회와 비호감 대통령이 상생하는 길이다. /본사고문

2022-02-20

단일화는 빠를수록 효과적이다

김진국 고문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 정신은 뭘까. 11일 저녁 대선후보 토론을 보면 딱히 잡히는 것이 없다. 서로 약점을 공격한 게 전부다. 미래 비전을 말하는 사람이 없고, 관심을 두는 사람도 드물다. 당장 관심사는 정권교체냐 정권 유지냐다.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주 리서치뷰 조사에서 정권교체 지지(56%)가 정권 재창출 의견(36%)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평가에 대해서도 긍정 평가(40%)보다 부정 평가(57%)가 훨씬 많다.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비슷한 추세다.문 대통령은 지난주 “아무리 선거 시기라고 하더라도, 정치권에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겨서는 통합의 정치로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진영 간의 적대를 증폭시키고, 심지어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적대와 증오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진영 간 적대를 키운 게 누군가.문 대통령은 지난달 종교 지도자들에게 “(통합과 화합은)당연히 정치가 해냈어야 할 몫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정치권이)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국민 분열을 인정했지만, 그 책임은 정치권 전체로 희석했다.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던 취임사는 그냥 좋은 말을 붙여놓은 데 불과했다.촛불 이후 국민통합의 기회를 진영정치로 몰아갔다. 상식이 사라졌다. 임기 내내 정적에게는 잔인할 만큼 용서가 없었고, 같은 진영에는 봄바람이었다. 비서실에 선물한 ‘춘풍추상’(春風秋霜)도 그저 멋있는 글귀일 뿐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 그나마 남은 가능성까지 깡그리 무너졌다. 총선 때는 위성정당으로 협력 세력의 몫까지 약탈했다.공정이 무너지고, 견제할 세력은 없고, 헌정 제도도 마비됐다. 검찰, 법원, 국회…. 일자리는 마르고, 새 특권층이 설쳤다. 청년층이 절망했다. 그나마 지지율이 받쳐주는 건 극심한 편 가르기로 ‘대깨문’을 만든 덕분이다. 정권교체만 하면 이 상황이 나아질까. 또다시 보복과 뒤집기를 반복하지 않을까.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준비된 후보가 아니다. 정권교체를 위해 선택됐을 뿐이다. 집권하면 적폐 청산하겠다는 윤 후보의 말에 문 대통령이 발끈했다. 의도된 오독으로 보인다.하지만 ‘적폐 청산’은 집권 뒤 예상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윤 후보 지지에는 그런 기대도 많이 깔려 있지 않을까.거기에 그치면 불행이다. 냉엄한 국제 환경이 집안싸움만 할 때가 아니다. 경제 상황도 살얼음이다. 촛불은 국민 다수를 하나로 만들었지만 문 정권이 전리품을 독식했다. 정권교체 열망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적폐’ 청산뿐 아니라 진영정치 타파와 상식의 회복, 미래의 비전이 함께 녹아 있다. ‘연합정부’, ‘공동정부’를 생각하게 된다.국민은 현명하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지지도는 윤석열(37%)-이재명(36%)-안철수(13%)다. 그러나 호감도는 안철수(37%)-윤석열(34%)-이재명(34%)이다. 윤 후보를 지지하는 건 정권교체를 실현할 가능성이 큰 거대 정당 후보이기 때문이다. 겸손해야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김종필 전 총리(JP)의 협조를 얻으려 정성을 다했다. JP의 청구동 자택까지 찾아갔다. DJ가 여론조사에서 선두였을 때다. 이회창 후보 측은 ‘숨어 있는 5%’를 꿈꾸며 승리를 자신했다. DJ는 끝까지 최선의 수를 찾았다. 그는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사력을 다한다’라고 말했다. ‘샤이 이재명’ 주장도 있다. 자만해서 이긴 선거는 보지 못했다.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어제 선관위에 등록하고, 윤 후보에게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후보는 명분 없이 철수하기 어렵다. 다당제로 ‘새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 그런데도 단일화를 제안한 것은 국민의힘 논평대로 상당히 긍정적이다. 여론조사 제시가 단일화를 깨려는 생각보다 명분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명분을 살려야 이탈 표를 줄일 수 있다. 단일화는 투표 직전까지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본사 고문

2022-02-13

상식과 진실에 승복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나는 문재인 정권 후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잘못되고 부족한 정책”이라고 혹평했다. 문 대통령이나 ‘문빠’들이야 섭섭하겠지만 그러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무엇이 그렇게 잘못된 걸까? 지난달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정권교체’ 의견(56.0%)이 ‘정권 유지’ 의견(36.7%)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불만이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한 일을 꼽자면 한도 없다. 그중에서도 사법 신뢰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법원은 힘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다. 돈 있고, 권력 가진 사람이 많다. 주먹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엔 법이 옳고 그름을 가려주리라 믿는다. 그 믿음마저 없다면 힘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그런데 그게 무너졌다. 민감한 재판이 있을 때마다 판사 성향부터 따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사건이 판사에 따라 유죄도 되고, 무죄도 되는 일이 벌어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 범죄는 진영 대결의 축이 되어 진실은 사라져버렸다. 대통령까지 ‘마음의 빚’을 얹었다. 서울·부산시장, 충남지사가 줄줄이 성폭행 사건을 일으킨 것도 기이한 일인데, 여성 인권을 외치던 사람들이 ‘피해 호소인’이란 희한한 조어로 감싸는 데는 탄식만 나온다. 치외법권 특권층인 셈이다.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씨는 유죄 확정됐지만, 사법 저울을 믿기에는 신뢰가 너무 바닥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법원이 ‘제왕적 대통령’을 받드는 부속기관쯤으로 인식된다. 경찰은 원래 상명하복의 조직이지만, ‘검찰 개혁’은 검찰과 공수처까지 정권의 하청기관으로 몰았다.진실을 가리는 또 하나의 보루는 언론이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 통신… 정부 힘이 미치는 매체들은 ‘어용’이란 딱지가 낯설지 않다. ‘공정’은 언론계에서 추억이 되어간다. ‘선전 선동’을 언론의 소명처럼 주장한다. 진실은 숨어버렸다.“거짓말도 반복하면 사람들이 믿게 된다”는 요설을 거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북한은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한다. 천안함도,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아웅산 폭탄테러, 김정남 살해도 모두 뒤집는다. 그게 북한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불리한 것은 무조건 뒤집는다. 진실을 뒤집는 기술자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선거는 진실과 거짓을 마구 섞어 야바위판이 됐다. 궤변가들이 전문가 행세다.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은 ‘도청’보다 ‘거짓말’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일이다. 닉슨의 거짓말을 드러낸 것은 언론과 엄정한 사법 체계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집요한 수사로 닉슨을 궁지에 몰았다. 닉슨이 콕스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법무부 장관과 차관 모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범죄를 감추어주면서까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문재인 정부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1년이 넘도록 다투고, 지청장이 사건 수사를 방해한다. 주요 사건 증인이 줄줄이 자살하는데, 진실은 정권이 끝나도록 감춰진다. 범죄자가 큰소리치고, 고발한 사람은 두려움에 떤다. 경험은커녕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라다.이게 차기 대통령 선거에까지 이어진다. 투자금의 1000배가 넘는 이익을 몰아줬지만 “너는 깨끗하냐”라며 덮어버린다. 정부 공금으로 가족 부식을 사고, 공무원이 민간인의 수행비서, 살림 비서 역할을 한 녹음과 사진이 나와도 아랫사람 탓만 한다. 개인 왕국 같다.사실을 시인하지도,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았다. 반성 없이 고쳐지지 않는다. 시의회에서 지적당한 일이 10년간 이어졌다. 수시로 뒤집는 공약이 어떻게 바뀔지 믿을 수 없다. 진심 어린 시인과 사과가 먼저다. 가뜩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한계에 이르렀다. 상식이 통하고, 진실에는 승복하는 사회가 정말 그립다./본사고문

2022-02-06

희망을 찾아가는 선거

김진국 고문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대통령 선거전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과거만 있고, 미래가 없다. 득표를 위한 사탕발림과 홍보 기술이 늘었지만 꿈과 희망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내는 선심 공약을 보면 나라 곳간이 거덜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우크라이나 국민은 정치 풍자 드라마 ‘인민의 종’에서 사이다 발언을 한 코미디 배우 볼로디미르 젤린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로 끝났다. 젤린스키는 코미디언 친구와 친척들을 정부 요직에 앉혔다. 전문가 없는 아마추어 국정은 표류하고, 내분이 격화됐다. 러시아가 군대를 국경에 집결해 무력 위협을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젤린스키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우리는 그보다 나은가.뽑을 후보가 없다는 사람이 많다. 대선 후보의 비호감도가 더 높다. 지난 연말 한국리서치 조사를 보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호감도가 39.3%인데, 비호감도는 59.1%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호감도 38.0%에 비호감도 60.5%.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좋아서 찍는 게 아니라 더 싫은 후보를 떨어뜨려야 하는 투표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축제가 나라를 걱정하는 선거가 됐다.후보들이 추경 액수 올리기를 경쟁한다. 도박판에서 판돈을 내지르는 모양새다. 올해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게 겨우 지난달이다.그뿐 아니다. 후보마다 돈 나눠주는 공약을 쏟아낸다. 장년 수당, 청년 기본소득, 아동수당, 문화예술인 연금…(이재명 후보),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확대, 무상급식 확대, 부모 급여…(윤석열 후보). 결국 세금 올리고, 나랏빚 얻어야 할 약속들이다. 막걸리, 고무신 선거와 무엇이 다른가.북한이 새해 들어서만 4번이나 미사일을 쏘아대는데 이재명 후보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고 한다.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책, 사이버 안보를 위한 예산은 언급 없이 사병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는 것을 서로 자기 공약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표에 대한 아부다.선거 쟁점들이 미래보다 과거에 쏠려 있다. 후보와 후보 가족의 과거를 뒤지는 일이 미디어를 뒤덮었다. 아무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지만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 집권 뒤에도 정적의 뒤를 파고, 공격하는 일에만 몰두할 거라는 걱정을 떨칠 수 없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그는 새 시대를 준비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결단했고,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착수했다. 에너지도 내부 토론을 거쳐 원자력발전이 당분간 불가피한 대안이라고 결론 내렸다.문재인 대통령은 “나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과거만 쫓아다니다 끝나간다. 임기 내내 적폐 청산에 매달렸다. 그런데도 조국·윤미향 사건과 잇단 성 추문에서 자기 진영 사람은 철저히 감쌌다. “극우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장기 집권’ 발언은 적폐 청산의 숨은 의도를 말해준다. 오죽하면 이재명 후보마저 조국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국민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훼손하고 실망시켜 드리고 아프게 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사과했을까.정치적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의회 정치가 불가능하다. 정적을 적폐로 몰고, 반일 감정을 이용해 진영 단합을 도모한다. 심지어 우당(정의당)의 뒤통수까지 치며 의회를 장악했다. 선거에 잠시 유리할 수 있지만 국가 앞날은 깜깜하다.중앙선관위 전 직원이 들고일어나 상임위원 유임을 반대했다. 검찰과 법원, 선관위…. 선수들이 심판을 맡는 나라가 정상적인 민주국가인가. 선거가 끝나면 또다시 복수혈전, 과거 집착을 반복하지 않을까. 제왕적 대통령 당선이라는 ‘한방’에 모든 운명을 거는 정치, 그런데도 최선(후보)을 찾을 수 없는 선거…. 이걸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그래도 우리는 투표장에 가겠지. 차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도 선택하기 위해. 우리까지 내일을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 /본사 고문

2022-01-23

여론은 이번에도 양자 대결로 몰아갈까

대선이 3파전이 됐다. 한국갤럽이 14일 발표한 대통령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37%, 윤석열 31%, 안철수 17%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확실한 3자 구도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15%는 선거에서 중요한 고비다. 이 선을 넘으면 선거비용을 모두 돌려받는다. ‘한 달 평균 지지율 5%’를 넘으면 법정 토론회에 참가할 자격도 생긴다. 이 기준은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늪에 빠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당내 갈등과 20대의 이탈, 부인 리스크 등이 차례로 윤 후보를 덮치면서 정권교체의 새로운 대안을 찾는 유권자가 늘어났다.덕분에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앞섰다. (이 37%, 윤 31%, 안 17%) 그러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이 후보를 오차범위 밖(7%포인트)으로 이긴다. (안 45%, 이 38%) 윤 후보가 단일후보가 돼도 2%포인트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윤 42%, 이 40%)1987년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지만,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에 실패한 탓이다. 김대중 후보 진영에서는 ‘4자 필승론’도 나왔다.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함께 출마해야 김대중 후보가 이긴다는 주장인데, 참혹한 실패(3위)로 끝났다.그 교훈인지 1997년 15대 대선에선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성공시켰다. 선거 두 달 전 김대중 후보는 30~35% 박스권이지만 선두였다. 그런데도 과감한 양보로 DJP연합을 만들었다. 총리와 내각의 절반을 JP에게 넘겼다. 내각제 개헌도 약속했다. 선거 40여 일을 앞둔 시점이다.덕분에 김대중 후보는 충청지역에서만 이회창 후보를 무려 43만 표 이겼다. 39만 표 차 대선 승리의 화룡점정이다. 그렇게 시달리던 색깔론을 극복하고, 대구·경북(TK) 지역에서 14대보다 5% 더(13%) 얻은 것도 그 덕분이다.바로 그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이인재 후보의 492만 표 가운데 12분의 1만 가져갔어도 승패는 뒤집혔다. 저울추는 작은 무게에 기운다. 캐스팅보트 한 표는 한 표가 아니다.물론 단일화가 박수받을 일만은 아니다. 유권자의 뜻이나 정치적 이상 실현보다 자리 나눠 먹기를 위한 야합이 많다. 그렇지만 유럽에서는 자기 정책을 일부라도 반영하기 위해 치밀한 공동정부 합의서를 만든다. 윤 후보가 ‘분권형 책임장관제’, 안 후보가 ‘권력 축소형 대통령제’를 언급한 것은 공동정부로 갈 수 있는 작은 길을 연 것은 아닌가. 단일화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평균 지지율이 5%를 넘은 후보는 법정 토론 기회가 생긴다. 적어도 선거 막판까지 목소리를 내면서 지지율 상승을 기다릴 가능성이 크다.선거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번 선거비용 상한은 513억 원. 15%를 득표하면 지출 비용 전액을, 10%만 넘어도 절반을 보전받는다. 중간에 포기하면 그동안 쓴 게 모두 빚으로 남는다.단일화 룰을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렵다. 여론조사에서는 안 후보가 앞선다. 윤 후보 측은 민주당 지지자의 역선택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윤 후보 뒤에는 국민의힘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있다. 이준석 대표처럼 안 후보에게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다. 3석짜리 정당 후보에게 양보하는 결론은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단일화에 성공해도 끝이 아니다. 안 후보로 단일화하면 윤 후보 지지자의 78%가 안 후보에게 가지만, 윤 후보로 단일화하면 안 후보 지지자의 49%만 윤 후보로 간다. (한국갤럽) 이탈표 단속이 어려운 과제다.아직 52일이 남았다. 지지율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막판 작은 실수 하나가 판세를 뒤엎을 수도 있다. 18대 대선에서 두 달 전까지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앞섰으나 갑자기 지지율이 급속히 빠지면서 사퇴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단일화해줬다. 19대 대선에서도 안 후보는 선거 한 달 전까지 문재인 후보와 1, 2위를 다퉜지만 3등에 그쳤다. 인위적으로 단일화하지 못해도 국민이 힘을 몰아줄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본사 고문

2022-01-16

여론은 ‘정권교체’… 담을 그릇이 없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강력한 ‘정권교체’ 열망으로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정권 재창출’이 아닌 ‘정권교체’를 원했다. 지난 12월 초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55.1%가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37.8%였다. (이하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 가치에 대한 결핍감이 절박하다.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 이후 공정 문제는 시대적 화두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후원금 유용 의혹은 ‘가재·붕어·개구리’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부동산 가격 폭등, 취업 대란이 그 근본적인 배경이다.서울·부산·충남 광역자치단체장의 잇따른 성 추문은 도덕적 타락상까지 노출했다. 오죽하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마저 ‘4기 민주 정부’보다 ‘이재명 정부’라고 부르고, “정권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 교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하겠는가.그런데 후보 지지도는 다르게 움직인다. 알앤써치의 지난 4~5일 조사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3%로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윤 후보 지지율은 34.2%에 그쳤다. 정권교체 하려는 열망을 담아줄 정당도, 후보도 찾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5일 45.8%(PNR)에서 불과 두 달 사이에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지경으로 추락했다.처음부터 윤 후보에게 쉬운 승부가 아니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당에는 선거 전문가가 많다. 전략적 사고에 익숙하다. 목표 지향적으로 작전해왔다. 그에 반해 윤 후보는 정치 초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국민의힘에 치밀한 전략가도 부족하다. 후보감이 없어 밖에서 초보운전자를 데려오고, 전략가가 아쉬워 나쁜 기억이 남아있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다시 모셔 왔다.어느 정도 풍파는 예상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난장판일 줄은 몰랐다. ‘민주당에 갖다 바친다’는 표현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민감한 부인 문제를 아무 준비 없이 불쑥불쑥 외부로 토로했다. 사과는 시간도 놓치고, 진정성 전달도 실패했다. 후보와 총괄선대위원장, 당 대표는 불통했다. 냉소와 가시 돋친 메시지만 난무했다. 노력해서 얻은 표가 없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 열망마저 4할은 실망과 좌절 속에 던져버렸다.축구 선수가 서로 슈팅을 욕심내면 이길 수 없다. 민주당은 ‘머리’가 많다. 후보가 있고, 대통령, 당 대표도 있다. 그러나 모두 이재명 후보가 빛나게 물러섰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라고 선언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모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노태우 후보를 위해 ‘6.29 항복선언’을 연출해줬다.국민의힘은 거꾸로 움직인다. 다 주인공이고, 다 잘났다. 윤 후보가 초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정치 비전이나 정책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말을 할 때마다 설화다. 하지만 그런 줄 다 알고 데려온 것 아닌가. 당에서 다듬고 챙겨줄 수밖에 없다. 생색을 낼 일도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선거를 앞두면 누구나 화장한다. 중간 표를 노려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동운동가이던 이재호·김문수 전 의원을 영입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와 손을 잡았다. 그렇다고 후보가 정체성을 버렸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노력이 후보 간 대결이 되기도 전에 당내 분란으로 번진다. 윤 후보가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혼란스럽다.지금은 후보의 시간이다. 국민의힘 당헌은 “대통령 후보자는…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제74조)고 규정하고 있다. 당내에서 갈등할 시간이 없다. 국민의힘이 무능해 국민의 지지를 못 받고 자멸하는 것이야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민심은 분명한데 그것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상황은 비극이다. 엉뚱한 다툼에 정작 필요한 미래 비전을 둘러싼 후보 간 대결이 실종된 것도 안타깝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