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댄다. 대포는 수백 발씩 쏘고, 군용기 180대를 출동시켰다. 곧 제7차 핵실험이 예상된다.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는 공동성명에서 ‘김정은 정권 종말’을 거론하며 경고했다. 공포로 주저앉을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남의 일처럼 여기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은 안 된다.
지난 2일 울릉도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하루 미사일 25발을 쏜 날이다. 북한이 6·25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너머 울릉도 방향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았다. 다행히 미사일은 속초 앞 바다에서 더 비행하지 않고 떨어졌다. 그렇지만 실전 경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설마 하는 마음에 민방위 훈련이거나 이태원 참사 추모 사이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대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업을 계속하는 학교도 있었다. 울릉군도 우왕좌왕했다. 공습경보를 발령한 지 24분이 지나서야 대피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재난 주관방송사인 KBS는 100분이 넘어서야 공습경보 자막을 내보냈다. 정해진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미사일이 실제로 육지까지 날아왔다고 상상하면 아찔하다. 2010년 연평도 포격에서 보았듯이 ‘설마’는 없다.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했을 때는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실전 배치 단계에 와서는 무신경하다. 북한이 연일 도발해도 전쟁은 없다고 믿는다. 왜 위기를 조장하느냐며 방어체계 구축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 이태원에서는 아까운 젊은이 156명이 사망했다. 어처구니없는 참사다. 여기서도 ‘설마’ 하고 안이했다. 경찰은 훈련 없는 울릉도 주민만도 못했다. 관할지인 용산경찰서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50분이 지난 밤 11시 5분 이태원 파출소에 도착했다. 소방 당국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경찰에 15번이나 지원을 요청했다. 요청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기동대 배치 지시가 떨어졌다. 사전 예방은커녕 사후 긴급 요청에도 먹통이었다. 나사가 풀렸다.
112치안종합상황실에는 사고 3시간 전부터 시민 신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상황실장은 참사가 난 뒤에도 1시간 24분이나 상황실을 비웠다. 집에 있던 서울경찰청장은 이때 상황실장으로부터 처음 보고받았다. 경찰청장은 서울이 아닌 제천에서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전화도, 문자도 연락이 되지 않다 다음날 0시15분에야 전화를 받았다.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 고향인 의령 축제에 갔다 돌아와 이태원에 인파가 많다고 걱정하면서도 지역구 의원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에게 알렸다. 구청이나 경찰, 소방 같은 공식 조직에 연락하고, 사고 예방에 나서지 않고, 집으로 갔다. 같은 당파끼리만 놀던 조선시대도 아니고….
군의 준비 태세도 불안하다. 북한이 미사일 25발을 쏜 2일 대응 사격한 미사일 3발 중 2발이 실패했다. 패트리엇 1발은 발사에 실패했다. 천궁은 날아가다 자폭했다. 지난달 4일 밤에 대응 발사한 현무-2C 탄도미사일은 뒤로 날아가 군부대에 떨어졌다. 그다음 날 쏜 에이태큼스 미사일 2발 중 1발은 표적으로 가지 못하고 추적 신호가 끊어졌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이 훌륭해도 실전연습만 못 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수도 키이우에 핵 공격용 특별방공호 425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피 훈련의 땀이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 심폐소생술(CPR)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쓰러진 사람을 방치할 수는 없다. 적어도 공습경보가 울릴 때 내가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화생방 상황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경북 봉화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두 명이 무사히 구조됐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최선의 조치를 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평소 매뉴얼을 잘 익히고, 그대로 한 덕분이다. ‘징비록’에 일본 사신이 기생을 동원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준 상주 목사를 이렇게 조롱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늙은이는 여러 해 전쟁을 치르느라 수염과 머리가 다 하얘졌지만, 귀공은 기생들의 춤과 노래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지냈는데 머리칼이 왜 하얘졌소?” 서애(西厓)가 남긴 충고대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본사 고문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