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쪼개지면 망한다

등록일 2023-02-12 20:22 게재일 2023-02-13 3면
스크랩버튼
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2000년 연말.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차기 권력’ 후보들의 정치 발언을 단속했다. 김 대통령은 그해 6월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을 했다. 12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01년 1월부터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받은 구제금융을 상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잘 달리던 그가 ‘차기’가 부상하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블랙홀’이었던 개헌처럼 ‘차기’라는 단어는 역대 대통령의 역린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언급했다. 노 장관의 정치 발언은 처음이 아니었다. 한광옥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노 장관을 불러 “제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는 김 대통령의 경고를 전달했다.

그렇지만 질책받으러 호출됐다는 노 장관의 표정은 당당했다. 청와대 비서실을 여기저기 인사하며 돌아다녔다. 그때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여권 차기 주자로서 노 장관은 5~7번째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하며 합의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김영삼 당 대표는 ‘노란 봉투’를 던지고, 눈 덮인 지리산을 오르며, 노 대통령을 굴복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현재 권력’과 동거했던 대표적 ‘미래 권력’이다.

‘레임덕’이란 단어는 역대 정부에서 금기어였다. 그런데 집권 세력 안에서 ‘레임덕’과 ‘탈당’을 먼저 끄집어내는 건 의외다. 김기현 당 대표 후보의 후원 회장을 맡았던 신평 변호사는 ‘미래 권력’인 안철수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수 있고, ‘탈당’해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멘토라는 그의 발언은 당 대표 경선에 얼마나 목을 매는지를 말해준다. 그래도 너무 거칠다. 금도가 필요하다.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당 대표가 된다고 바로 ‘미래 권력’이 되는 건 아니다. 차기 후보는 당 대표가 되기보다 훨씬 어렵다. 대통령이 지명해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스스로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제에서 임기 마지막까지 남는 과제가 정권 재창출이다. 정권이 넘어가면 5년 치적이 모두 뒤집힐 수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차기 후보에게 굴복하는 모양까지 연출했다. 그래도 ‘말 잘 듣는 후계자’는 환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랬다.

준비하지 않은 후보는 이기지 못한다. 임기 초반부터 ‘현재 권력’과 대립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후보가 될만한 사람의 손발을 모두 묶어 버리면 차기 경쟁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 자칫 정권을 넘겨줄 수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열린우리당이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경선이 결선보다 더 치열했고, 정작 본선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경선 이후 줄곧 ‘문빠’의 공격 대상이었다 후보가 되었지만 실패했다.

물론 ‘현재 권력’이 실패하면 정권 재창출이 없다. IMF 사태가 벌어진 김영삼 정부, 집권당이 쪼개지고, 탄핵에 시달리고, 국론 분열됐던 노무현 정부 뒤에는 정권이 넘어갔다. 조그만 이견마저 ‘배신자’로 낙인찍고, 공천 파동이 벌어진 박근혜 정부도 결국 정권을 넘겨줬다. 바닥을 치는 ‘현재 정권’ 아래서는 정권을 재창출할 ‘미래 권력’도 없었다. 문제는 권력 주변 인사들이다. 현재 권력도, 미래 권력도 쪼개면 망한다. 현재 권력이라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쪼개지면 아무것도 못 한다.

지지 정당을 쪼개놓고 당선될 미래 권력도 없다. 권력 주변 인사들은 다르다. 자리는 언제나 모자란다. 공직은 한정돼 있고, 지역구는 오히려 줄어든다. 앉힐 사람은 넘친다. 경쟁자를 줄일수록 자기 패거리 몫이 커진다. 당과 나라의 미래보다 패거리가 먹을 게 급하다. 이런 자들의 말에 현혹되면 현재 권력도, 미래 권력도 망하는 길로 간다. 집권당이 혼란하면 국민도 불행하다. 더이상 무리해선 안 된다. 전당대회 이후를 생각하면, 금도가 필요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