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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70년, 무엇이 두려운가

등록일 2023-07-30 20:01 게재일 2023-07-3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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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70년이 지났다. 1953년 7월 27일 동족 간에 총을 겨눈 3년간의 비극을 끝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전협정은 체결됐고, 그렇게 70년을 살아왔다. 70년간 전쟁이 없으면 사실상 종전이다. 그런데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적대 상태다. 서로 통일을 최대과제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항구적인 평화 체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은 말로 하지 않는다. 문서보다 위험한 건 끝없이 고조되는 긴장이다. 남북한은 평화를 약속하는 문서를 여러 번 합의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 3원칙을 담았다. 이를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8월 15일 ‘한반도 평화 정착→ 상호 문호개방과 신뢰 회복→ 남북한 자유 총선거’라는 ‘평화통일 3단계 기본원칙’을 발표했다.

1991년 12월 13일에는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비방·중상하지 않고, 파괴·전복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한 것도 의미가 크다. 통일헌장의 기초와 같은 문서다. 이와 함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도 합의해, 핵무기는 물론 핵 재처리시설이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로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노무현)으로 평화가 왔다고 당시 대통령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문서는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비핵화선언을 해놓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잠시도 중단한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는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그렇다. 체제가 다른 나라 사이의 합의는 더 위험하다. 국제정치는 냉혹하다. 합의를 강제할 힘이 있어야 지켜진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침략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주입된 두려움은 미국의 북침이다. 그것을 핵 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다. 핵무기로 그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나. 전쟁의 참극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분단은 아픔이다. 그러나 통일하려고 전쟁까지 할 수는 없다. 한반도가 방사능이 가득찬 죽음의 폐허가 된다. 조금 더 기다려도 좋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쟁을 피하려고 북한 체제로 통일 당할 수는 없다. 양측이 동의하지 않는 통일은 전쟁의 구실이 된다.

북한은 끊임없이 도발해왔다. 청와대로 무장 공비를 보내고, KAL기를 공중 폭파했으며, 미얀마의 아웅산에서 남측 대통령 살해를 시도했다. 민간인이 사는 연평도로 포탄을 퍼부었고, 천안함을 격침했다. 북한은 한반도는 물론 미국 전역을 사정거리에 넣은 핵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김정은은 중국과 러시아의 대표단과 함께 전승절(정전협정 기념일) 열병식을 사열했다. 한·미·일 정상은 다음 달 18일 미 대통령 전용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담할 예정이다. 신냉전체제로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어떤 시나리오로 갈 것 같은가. 미국의 북침인가, 북한 정권의 도발인가. 아니면 미국이 새로운 애치슨 라인 뒤로 물러나는 것인가.

핵 경쟁이라는 공포의 균형보다 평화의 균형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핵무기는 절대무기다. 비대칭 전력이다. 재래식 무기를 아무리 많이 쌓아도 견제할 수 없다. 때리면 몇 배로 보복당한다는 두려움만이 공포의 균형을 이룬다. 핵무기가 아니면 국제 공조밖에 없다.

6·25 때 우리는 아무 대비가 없었다. 북한이 중국·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침략을 준비할 때, 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긋고, 한반도를 버렸다. 국군 장교들은 주말을 맞아 무더기로 외출했다. 단숨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무방비가 오히려 전쟁을 부른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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