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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다 잃었을 때를 생각하라

등록일 2023-04-09 20:05 게재일 2023-04-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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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내년 총선에서 야당을 찍겠다고 한다. 지난주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다.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라고 답한 사람이 50%로 ‘정부 지원을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36%)는 사람보다 14%포인트 많았다. 3월 초 ‘정부 지원론’이 42%, ‘정부 견제론’이 44%였던 데 비하면 한 달 사이에 견제론으로 확 기울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주 울산시 교육감과 울산 남구 구의원 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이겼다. 울산 남구는 국민의힘이 유리한 지역이다. 구의원 선거, 한곳이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년 총선을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유리한 지역을 더 뺏기면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더 어려워질까. 가뜩이나 야대(野大) 국회에 눌려 있다. 내년 총선이 같은 결과면 바로 레임덕이다.

여론은 원래 조변석개(朝變夕改)다. 그렇지만 짧은 기간에 급격히 바뀔 때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국민의힘 전당대회, 한일 정상회담, 근로 시간 개편안 혼선,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국민의힘 최고위원 잇단 설화(舌禍), 여권 도지사 산불 때 골프, 술자리…. 모두 한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이다.

전당대회는 컨벤션 효과를 기대하는 행사다. 그런데 역주행했다. 후보끼리 격렬하게 총질한 것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대통령 핵심 측근을 제외하고는 모두 몹쓸 인간으로 만들고, 주저앉혔다. ‘우리 세상’이라고 기고만장했는지, 이해 못할 언행들이 이어졌다. 그러고도 여론이 바뀌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많은 사람이 매운맛을 좋아한다. 정치에서도 화끈한 것을 바란다. 그렇지만 잠시 기분뿐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水至淸則無魚)라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청빈한 공직자에게 부패를 유혹하는 되지도 않은 말”이라고 폄훼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보다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흑백논리를 경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양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민주당에서는 자기 반성적인 의견을 내면 ‘수박’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국민의힘은 대표 선출 규정에서 여론조사 30%를 없애버렸다. ‘윤핵관’이 아니면 배신자, 나쁜 놈으로 몰아세웠다. 그렇게 다 쫓아내면 무엇이 남나. 극단적인 주장을 정체성이라고 강조한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미련한 짓이다. 스스로 지지세력을 줄이고 있다. 당장 재·보궐선거 성적표를 받아봤다. 윤석열 정부의 명운이 걸린 총선이 바로 내년 4월이다.

당내에서 이 모양인데, 여야 관계가 잘될 리 만무하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대화로 타협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경쟁 정당을 파트너가 아니라 무찔러야 할 오랑캐로 규정하는데, 무슨 타협이 가능하겠는가.

2020년 총선은 치욕적인 선거다. 법을 만드는 거대 양당이 선거법의 취지를 대놓고 무시하고, 편법으로 의석을 훔쳤다. 어차피 다시 이 법으로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의석을 도둑질한 두 정당도 다 안다. 그런데도 어느 당도 사과하지 않았다. 또다시 선거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안간힘이다.

선거법을 먼저 무력화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는 완패다.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 그냥 두었으면 민주당이 과반도 못 가져갔다. 민주당만이라도 자기가 밀어붙인 법을 지켰다면 도덕적 명분을 얻고, 반(反) 국민의힘 연대를 주도할 수 있었다. 정권을 지켰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양대 정당은 모두 완승을 꿈꾼다. 선거법 개정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득표율을 존중하는 상생의 길은 피한다. 두 정당끼리만 나누어 먹으면 파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 아니면 도다. 야당일 때를 생각하고, 완패했을 때도 염두에 둬야 한다. 지면 윤 대통령 처지가 된다. 민주주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생이다. 선거법은 그렇게 고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생의 기반부터 닦아야 한다. 민주당은 다수당의 횡포를 포기하고, 정부·여당은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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