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다섯 명의 죽음, 피하기만 할 건가

등록일 2023-03-12 19:47 게재일 2023-03-13 3면
스크랩버튼
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앞이 깜깜했다.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2009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문 비서관으로부터 부인 권양숙 여사가 돈을 받아 수사받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렇게 기록해놨다.

그는 곧바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희 집(권 여사)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자서전에서 그는 “의혹 제기 차원을 넘어 실제 수사가 시작된 만큼 이제 사실을 밝히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그 뒤에 특수활동비 횡령 혐의 수사도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다시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죽어, 자기 부하와 진보 진영을 살리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실인정으로 위기를 넘겼다.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지 한 달째였다.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대중 총재에게 노태우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을 수사한다는 보고가 날아왔다. 김총재는 몹시 당황했다. 그렇지만 그는 사실을 시인하기로 결심했다. 공식회견을 통해 20억 원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결국 그는 다음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길은 전혀 다르다. 그의 혐의에 연루된 사람 다섯 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지난 9일에도 이 대표가 경기도 지사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전형수씨(64)가 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이 대표) 본인이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하는데 항상 뒤로 물러나 있어 그렇다”라며 “그분도 책임질 건 책임져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모두 떠안았지만, 이 대표는 혼자 빠져나간다.

전 씨는 이 대표가 성남 시장일 때부터 측근이었다. 그러나 그의 혐의는 이 대표의 지시를 이행한 게 전부다. 그는 성남시 행정기획국장 시절 네이버 관계자들로부터 성남FC 후원금 40억 원을 받아낸 혐의를 받았다.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으로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에 관여했고, 경기도주택도시공사 경영기획본부장 시절에는 이 대표 바로 옆집을 위장 합숙소로 임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검찰의 미친 칼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라고 분개했다. 그러나 그가 받는 혐의는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 주변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할 때마다 이 대표는 “고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위직이라 몰랐다”라고 선을 그었다. 유동규 씨는 자신에게 모두 떠넘긴다는 배신감에 이 대표와 결별을 선언했다. 적어도 극단 선택을 한

측근들은 이 대표의 혐의를 없는 사실이라고 방어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부하 직원의 잘못까지 떠안지는 못하더라도 본인의 혐의를 해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도리다.

이 문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 불거졌다. 지난달 말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도 체포 찬성(139표)이 반대(138표)보다 더 많았다. 기권 9표와 무효 11표도 찬성에 가까운 의사 표시라고 봐야 한다. 전체 의원 299명 가운데 민주당 소속이 169명이고, 무소속 의원 7명도 모두 민주당 색이다. 이 대표의 결백을 민주당 의원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는 방법도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전형수 씨는 유서에서 이 대표에게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라”라고 말했다고한다. 또 “현재 진행되는 검찰 수사 관련 본인 책임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정치지도자는 법적으로 유죄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니다. O.J. 심슨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대통령이 되려던 사람 아닌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