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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러고도 나라가 안 망하나

김진국 고문 국회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암컷들이 설친다’라고 말해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최 의원 발언이 최근 문제가 됐지만, 여(與)고, 야(野)고, 평소 쏟아내는 말들이 거칠기 짝이 없다. 국민대표로서의 품격을 찾아보기 어렵다.이러니 정치가 잘될 리 없다. 정치는 ‘전부냐 빈손이냐’의 싸움이 아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의원도 일정한 유권자들이 선택했다. 모두 존중받아야 할 국민대표다. 그러니 정글의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 의견을 골고루 반영하여 정리할 의무가 있다.그런데 요즘 국회는 자신이 대변하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인, 심지어 국민도 짓뭉개고, 제거하는 것이 임무인 양 움직인다. 정치가 아니라 승리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사이버 전쟁터 같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 추구한다. 나라의 미래는 보지 않는다.더구나 총선을 4개월여 남겨둔 요즘 온통 선거와 자리 이야기다. 용산이나 정부에서 출마를 노리는 사람, 출마하는 사람의 빈 자리를 노리는 사람…. 대화도 하마평뿐이고, 어수선하다.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소는 정말 누가 키우나.국회 예산 심의는 더 한심하다. 민주당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산 심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원자력발전 분야 예산 1천831억원을 깎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4천500억 원이나 늘렸다. 이 정부와 이 예산으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지 걱정이다.예산안을 던져놓고, 다수당인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정부도 대책이 없고, 누가 이기나 해보자며 어깃장을 놓는 야당도 답이 없다. 아무리 야당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취임한 지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만남을 거부하는 게 말이나 되나.이 대표가 재판받고 있어도 그렇다. 국민감정이 나쁘다고, 일본 총리를 안만나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외면하지는 않는 것 아닌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난다면 그게 무슨 정치인가.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해 국정을 이끌어야 할 수임자로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법률안은 무조건 거부하고, 인사청문회는 무시하고 밀어붙였지만 이제 예산은 어떻게 할 건가.민주당이 깎아 놓은 예산도 기가 막힌다. 이율배반이지만 문재인 정부도 원자력 수출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도 직접 세일즈에 나섰다. 그런데 원전 수출 기반 구축 예산 1천112억 원, 원전 수출 보증 예산 250억 원을 깎아 버렸다. 당장 이집트·루마니아 등에서 따낸 원전 건설사업이 위험해졌다. 폴란드·체코 등에서 추진 중인 원전 수출 협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그뿐 아니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 개발 예산 333억 원도 전액 없앴다. 민주당이 추진한 사업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전에는 무조건 윤석열 딱지를 붙여 삭감한 결과다. 원전만이 아니다. 청년 취업 지원 사업도 윤석열 표는 모두 삭감했다. 이재명 표가 붙은 지역화폐 예산, 재생에너지 투자, 새만금사업 등은 늘려놓았다.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 문제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다. 원전은 많은 약점을 안고 있다. 좋기만 한 게 아니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옳은 방향이다. 그렇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 필요 전력을 충당하기는 어렵다. 매우 조심스럽게 조율할 문제다. 그런데 전문가들마저 진영으로 쪼개져 있으니 이성적인 토론이 안 된다. 찬반과 상호 비난뿐이다. 자기 이익이 걸린 전문가도 많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선다.정치권은 더하다. 대화와 타협으로 미래를 논의한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변화가 제한적이어야 한다. 국가 미래 전략의 큰 방향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선거 한 번 할 때마다 정책이 180도 뒤집히는 정부를 어떤 나라가 믿고, 협상하겠나. 미래를 위한 장기 전략은 외면하고, 선거를 위해 과거 정부 정책은 무조건 뒤집어버리기를 5년마다 반복한다. 적성국의 이간책이라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을까. 유권자라도 깨어있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26

윤핵관, 왜 여론이 외면하나

김진국 고문 험지(險地) 출마, 퇴진이란 말이 쏟아진다. 여야가 따로 없다. 총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동안 다져온 지역구를 포기하고 낯선 곳에 출마하는 건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험지 출마는 정계 은퇴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렇지만 정치신인은 아직 선거판에 명함도 못 내밀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있다면 지금 시작하는 게 굳이 늦은 건 아니다. 따뜻한 온실에 있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들판에 나서려니 서러울 뿐이다. 이런 판 갈이가 낯설지는 않다. 카리스마가 있는 당 총재나 대통령이 흔히 밟아온 과정이다.선거 때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도 흔들었다. 3김 청산도 요구했다. 대통령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3김이 이끄는 정당에서 다른 목소리는 파묻혔다.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도 정(釘)을 맞았다. 지역주의에 기초한 줄 세우기,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 여기에 반발한 젊은 정치인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했다.그렇지만 3김씨 가운데 두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다른 한 사람은 내내 이인자로서 힘을 유지했다. 이들은 지역주의 정치의 책임을 벗어나기 어렵지만, 한편으론 지역의 정서, 한(恨)을 대변하는 정치적 상징이기도 했기에 이루어낸 성과다.그들은 ‘대통령 병(病)’에 걸렸다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경쟁을 벌이느라 의정 활동을 독려하는 역할도 했다. 호남과 영남이라는 온실에서 편하게 당선된 의원들 가운데 나태하고, 지역민들의 원성을 받는 의원들은 과감하게 교체하는 카리스마도 있었다. 지역할거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이철승 전 의원처럼 지역에 뿌리가 깊은 거물 정치인들도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물갈이의 긍정 효과와 함께 비주류는 발을 못 붙이고, 총재에게 충성경쟁을 하는 비민주적 정당 문화를 뿌려놓았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권위가 그때만은 못하다 해도 극심한 진영화의 영향으로 양대 정당의 공천이 당락의 필수조건처럼 작용한다. 유권자보다 공천위원이 당락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의힘에서 나오는 ‘윤핵관’과 영남 다선 의원의 험지 출마론, 민주당의 86정치인 용퇴론, 친명(親明) 험지 출마론이 본선보다 더 치열한 싸움판이 되고 있다. 사실 권력자와의 친소(親疏) 관계, 출신 지역이나 나이, 성별을 이유로 선거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건 옳지 않다. 나이가 어려도 생각이 고리타분한 인사가 있는가 하면 나이가 많아도 합리적이고, 활동적이며, 사고가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 정치권을 취재하다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절감할 때가 많다.문제는 ‘윤핵관’이나 86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말이 왜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문제는 모두 윤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렇지만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 가까이에서 조언을 해온 ‘윤핵관’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소통이 막히고, 독단적으로 흘러간 임기 초반의 시행착오는 사실 정치를 모르는 윤 대통령보다 조언자들의 책임이 크다. 적어도 윤 정부의 정치 향방을 좌우할 요직에서는 물러나라는 여론이 비등한 이유다.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평민당 의원들에 대한 호남의 불만이 팽배했었다. 평민당 공천만 받으면 말뚝을 꽂아놔도 당선된다고 하던 시절이다. 나를 안 뽑으면 누구를 뽑을 거냐는 오만하고 나태한 의정 활동이 지역민의 감정을 건드렸다. 김 전 총재도 과감하게 물갈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이 되려면 더 열렬한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남도 마찬가지다. 일부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지역도 있지만 국민의힘 공천은 본선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정치 행보에 변화가 생겼다. 선거가 가까워졌다는 절박감,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받은 충격, 지지부진한 여론 지지율 등 바뀌지 않을 수 없는 요인들이 많았다. 어떤 요인에 따른 것이든 바뀌는 만큼 지지율이 움직인다. 선거 전략은 따져봐야 하지만, ‘윤핵관’이건, 영남 지역 의원이건, 여론이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주목하는 이유를 새기고, 반성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19

사법 절차 보호해야 부패 정치 막는다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는 불안한 제도다. 주권자가 맑은 눈을 가져야 제대로 작동한다. 눈을 감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도 눈이 밝은 사람이 더 많다는 믿음 위에 민주주의가 서 있다. 그래도 위험은 찾아온다. 집단적인 편견이 있다. 숫자는 적어도 목소리가 커 과대 대표되는 세력도 있다.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비극으로 끝났다. 집단 편견은 여러 형태로 우리를 덮친다. 오랜 숙제인 지역감정도 그런 것이다.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추종하는 문화의 확산도 영향을 미친다. 열성 팬은 노래가 나올 때마다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 냉정하게 비교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가수는 무조건 1등이다.축구·야구팬이 1등 팀에만 몰리지는 않는다. 팬의 사랑을 받는 다양한 가수와 팀이 무대에 올라 다양성을 유지한다. 거기까지가 정상이다. 그러나 상대팀을 공격하는 훌리건으로까지 나가면 스포츠와 문화·예술을 파괴한다. 더구나 정상적인 숫자로만 비교되는 것도 아니다. 앨범 사재기가 있다. 소수라도 목소리가 큰 악착같은 세력이 있다. 억지를 부리는 세력이 과대 대표된다면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민주주의의 중심은 의회다. 민주주의의 요체인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문제는 부패다. 가장 부패하기 쉬운 곳이 정치권이다. 주권을 위임한 것은 국민의 이익을 지켜달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이 권한을 사익을 추구하는 데 쓰는 정치인이 많다. 선출된 권력이지만 사법제도가 막아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공수처를 만든 명분도 그런 것이다. 부패 정치인의 눈에는 이것이 눈엣가시다. 정치가 사법 질서를 흔들면 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 사법의 신뢰도도 추락한다.1976년 2월 4일 미국 상원 공청회에서 록히드사가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일본 정계에 뿌린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에게 5억 엔(약 50억 원)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총리이던 74년 자기 가족 기업 땅에 건설성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땅값이 수십 배 폭등하는 등 비리가 드러나 사임한 상태였다. ‘청렴한 미키’라는 별명이 붙은 후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총리는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다수파였던 다나카파는 ‘표적수사’, “너무 까분다”라고 비난했다.도쿄지검 특수부는 다나카를 체포해 정치부패를 막는 보루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6개월 수감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다나카는 여전히 정계의 배후 실력자로 활동했다. 83년 1심 재판에서 다나카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상고가 진행 중이던 93년 사망하면서 재판이 끝났다. 최대의 파벌을 형성한 다나카는 ‘금권정치’, 파벌정치의 한계를 보여줬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정적에 대해 불법 침입·도청을 한 ‘워터게이트사건’을 수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려 했다. 그러나 해임을 지시받은 법무부 장관과 차관이 차례로 이를 거부하며 사임했다. 결국 장관 직무대행인 차관보를 통해 특검을 해임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사법 방해행위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민주당은 9일 이재명 대표 수사를 총괄하는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10일 공수처에도 고발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해 표결이 무산되고, 자동 폐기될 처지였는데, 이를 철회하고, 30일 본회의에서 꼼수로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편법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사법 방해다. 이 차장검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 심판 전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하지 않더라도 그때까지는 ‘쌍방울 대북송금 대납’ 의혹, ‘경기도청 법인카드 사적 유용 묵인’ 의혹 등 이 대표 수사가 모두 중단될 수밖에 없다. 명백한 사법 방해다. 민주당이 탄핵 이유라고 적시한 의혹을 보면 처가 고용인 범죄기록 조회, 스키장 리조트 이용 청탁, 처가 운영 골프장 부정 부킹, 위장전입 등이다. 이게 국회가 나서서 검사를 탄핵할 이유가 되나. 팬심에 매달리면 극단 정치로 갈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눈을 뜨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12

서울공화국은 곤란하다

김진국 고문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 문제로 정가가 어수선하다. 경기도 분도(分道) 시민공청회에서 이런 제안이 처음 나온 것은 이해할 만하다.김포시민이야 서울 편입을 원할 수 있다. 그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당론으로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김포골드라인 교통 대책 시민 간담회에서 김포시민이 의견을 모은다면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김 대표는 “생활권·통학권, 직장과 주거지 간 통근 등을 봐서 서울시와 같은 생활권이라면 행정 편의가 아니라 주민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원칙적으로 서울과 출퇴근이 공유되는 곳은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하고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김포뿐 아니라 고양·부천·광명·구리·하남 등 서울 인근 도시들이 모두 들썩인다.김 대표 논리대로라면 수도권 전체가 서울이다. 대구·부산·광주 등 전국에서 중환자는 서울 대형병원으로 간다. 콘크리트 아파트 한 채에 30억~40억 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편치 않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렇다고 전국을 서울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 집중도를 낮춰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경기(京畿)’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 현종(1018) 때다. 고려 초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왕도(王都) 주위 오백 리에 ‘적현(赤縣·京縣)’과 ‘기현(畿縣)’을 설치했는데, 이를 통합하면서 경기라고 부른 것이다.경기도는 원래 서울과 한덩어리다. 조선 시대 이후 서울 중심이 더 강화됐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국토교통부 균형발전현황판을 보면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6%다. 1960년 20.8% 수준이었던 수도권 인구 비중이 80년 35.5%, 90년 42.8%으로 치솟더니 2019년 말 드디어 절반을 넘어섰다. 면적은 서울이 전체 국토의 0.6%, 인천 1.1%, 경기 10.6%로, 합쳐서 11.8%, 10분에 1에 불과하다.그런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서울이 4만9천680원으로 대구(2만 5천543원)의 두 배에 이른다. 수도권은 4만703원, 비수도권은 3만9천212원이다. 청년 실업률도 수도권이 4.67%인데, 비수도권은 6.36%다. 그러니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뭘 더 가져다 붙이겠다는 건가.김포의 서울 편입 정책은 선거용이라는 정황이 분명하다.내년 4월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절체절명의 고비다. 레임덕이냐, 힘 있는 임기 시작이냐를 가르는 선거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통해 수도권 민심을 확인했다. 그대로라면 수도권에서 지난 총선 결과인 103 대 16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안간힘을 쓰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대계를 좌우할 문제를 선거용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린벨트를 설정하고, 수도 이전을 구상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다급해도 그런 꼼수를 부렸을까.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 이전 공약으로 선거 때 ‘재미 좀 봤다’라고 말했다.좋은 구상이라도 선거에 연결하면 왜곡되기 마련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지역 특성과 전체 연결을 고려하지 않은 나누어 먹기가 되면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거래, 그 이후 선거 때마다 이용되면서 표류하고 있는 새만금은 전형적인 득표 미끼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코로나 지원금도 선거 전 현금 살포에 이용됐다.선거를 계기로 기발한 정책들이 발굴된다.평소 관료 조직의 경직성을 뚫기 힘든 과감한 정책도 선거를 계기로 실현되는 일도 있다. 미국의 뉴딜정책도 선거를 통해 나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국가 미래에 대한 거대한 디자인에 맞춰져야 한다. 당장 기존의 지역 발전 구상은 어떻게 할 건가. 여야를 막론하고 비전은 없고, 잔꾀만 느는 것 같아 걱정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05

정치 팬덤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김진국 고문 정치인이 고약한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의 고향이라는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는 어디로 갔나. 민주주의의 전범처럼 들먹이는 미국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에서 선거가 가짜뉴스에 휘둘리고, 선거 결과에 불복(不服)하고,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를 난입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개딸’이니, ‘문빠’니, ‘태극기’니 하는 극단 세력들이 정치판을 휘젓는다. 비타협적인 ‘탈레반’ 세력이다. 무조건 자기편만 드니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이 빠지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원시 시대부터 작동해온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다. 힘이 센 자가 이기고, 이기면 무조건 다 갖는 게임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사기다. 합의해놓고 뒤집고, 규칙에 따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 역시 민주주의라고 하기 어렵다.근본적인 대변혁이 필요하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가능한 것 하나라도 고쳐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여야 원내대표들이 국회 회의장에 비난 팻말을 붙이지 않기로 합의한 것은 작지만 칭찬할 만하다.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주 월요일(23일) 먼저 제안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적극적으로 찬성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우선 “국회가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된 모습을 보인다”라며 국회 회의장 분위기부터 개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윤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본회의장과 상임위 회의장에서 팻말을 부착하거나 고성·야유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라고 공개했다.그동안 국회를 보면 기가 찼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모두 말이 열려 있는 공간이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소위 면책특권이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모든 회의가 생중계된다.그런데도 회의장 책상 앞에 피켓을 줄줄이 세워놨다. 국회 참관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한국을 선진국으로 아는 외국인에게도 창피하다. 본회의장, 상임위 회의장을 놔두고, 국회 본관 계단에 서서 학생들처럼 팔을 흔들며 구호를 외친다. 피켓이나 집단 시위는 자기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특권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국회의원 몫이 아니다. 박완서의 소설 ‘도둑맞은 가난’이 떠오른다.상대를 비난하는 팻말을 붙여놓고,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처음부터 국회를 싸움판으로 만드는 짓이다. 복잡한 현안을 단순한 구호로 압축해 공영 방송에 지속해서 노출하는 것은 여론을 왜곡한다. 일부 의견을 과다 대표하고, 국정현안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헷갈리게 한다. 더구나 겨우 팻말이나 들고, 구호나 외치라고 국회로 보내준 게 아니다. 유권자에 대한 모욕이다.일부 과격파 의원은 이를 무시한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 수석 부대표는 방송인터뷰에서 “솔직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 참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조금 지나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국민의힘은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야당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정쟁(政爭)성 현수막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문제 현수막들을 철거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기에 호응하지 않았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비난성 문자 폭탄을 “민주주의를 위한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한 일이 있다. 당장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민주주의 파괴를 선동해서는 안 된다. 아이돌의 열성 팬 문화에서는 지지하는 가수 외에 다른 가수는 없다. 우호 세력은 물론 반대 진영의 정치적 경쟁자마저 인정하고 의견을 조정해야 하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역사적으로 정치에서 가장 적극적인 팬덤은 나치였다. 팻말과 고성, 야유 등 돌출행동은 카메라의 주목을 받는다. 나쁜 짓을 즐기는 이유다. 적어도 책임 있는 언론만이라도 이런 행동을 외면하면 안 될까.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29

민생 현장만 다니면 소통이 될까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반성 모드다. 그는 19일 충북대에서 “저보고 소통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분이 많아, 많이 반성하고 소통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17일 저녁에는 국민통합위원회·국민의힘 지도부 등을 청와대로 불러 “얼마나 정책집행으로 이어졌는지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라면서 ‘반성’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직진만 해온 윤 대통령으로선 매우 낯선 모습이다.그러면서 그는 민생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18일 참모들에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19일도 다시 참모들에게 “나도 어려운 국민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라며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라고 지시했다. 당 지도부와 참모만이 아니라 스스로 바뀌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김은혜 대통령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민심은 천심이다. 국민은 왕이다’라고 늘 새기고 받드는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평소 생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칫 “선거에 졌다고 윤 대통령의 태도가 바뀐 건 아니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모습을 보이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말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행동이 중요하다. 과거 정치인들도 좋은 말은 많이 했다. 멋진 말, 대중에게 인기 있는 표현에 욕심을 내고, 자기 이미지를 포장하려 했다. 그러면서 행동은 거꾸로 하는 이상한 사람이 많았다. 윤 대통령은 “소통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추진하면서 소통해야 한다”라며 실행을 강조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평가는 아직 이르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삼성전자를 방문해 투자와 고용을 부탁하면서 이재용 회장을 구속하고, “기업의 노력을 확실히 뒷받침하겠다”라며 ‘반도체 특별법’을 약속하고는 실제로 만든 법에서 ‘반도체’라는 단어를 쏙 빼버렸다. 그는 취임사에서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조국 사태는 반전이었다.윤 대통령도 멋진 표현을 좋아하는 편이다. 실제로 앞뒤 재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다. 취임 초에 무리하다고 주변에서 말리는 ‘도어 스테핑’을 실행한 것도 그의 용기와 결단력이다. 따라서 그의 발언이 빈말은 아니라고 믿는다.윤 대통령은 단임이다. 본인이 다시 선거에 나설 일이 없다. 그는 인기가 없는 정책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대일(對日) 외교나 긴축 재정 등은 박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의대 증원 추진과 관련해서도 그는 “이런 것을 추진한다고 선거에 손해를 보지 않겠느냐고 걱정하시기도 한다”라며 “그러나 우리는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그러면 윤 대통령은 정권이 넘어가건 말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걸까. 물론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결국 민심을 얻는다는 믿음이다. 보수진영으로선 윤석열 정권의 성공 이상으로 차기 정권 창출이 중요하다. 정권이 교체되면 윤 정부에서 했던 정책이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국가 간 약속인데도 뒤집혔다.내년 총선이 6개월도 안 남았다. 총선에서 지면 야당은 물론 여당도 차기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공무원도 태도가 달라진다. 바로 레임덕이다. 더구나 그는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옥에 보낸 경험이 있다. 정권을 넘겨주면 퇴임 이후도 불안하다. 윤 대통령도 남의 일일 수 없다.그런데 윤 대통령 발언에는 대통령과 측근 참모, 그리고 국민의 관계만 있다. 민생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민생 현장만 뛰어다닌다고 불통이 해소될까. 과거 독재자들은 정치적 경쟁자 대신 국민을 직접 상대하려 했다. 대통령은 민생을 위해 애쓰는데,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자기 생각을 증명해 보이려 했다. 요즘처럼 진영정치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반쪽 소통이 될 가능성이 크다.민주주의의 본질인 관용의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권력자가 정성을 다해도 정치가 풀리지 않을 때 그 책임이 야당으로 넘어간다. 눈과 귀를 조금은 더 열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22

모두 대통령 책임이다

김진국 고문 직접 당해봐야 아는 사람은 하수(下手)다. 당하고도 모르는 사람은 하지하수(下之下手)다. 지난주 서울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는 예상했던 결과다. 보수 지지자들도 “용산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안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13일 한국갤럽 조사를 봐도 내년 총선에서 정부 견제론(48%)이 정부 지원론(39%)보다 9%포인트 더 많다.그런데도 국민의힘 선거 전략이나 인사청문회 대응은 따로 놀았다. 자신만만한 것을 넘어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런 참사를 예견하였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그렇지만 사후 수습이라도 제대로 해, 하지하수는 면해야 하지 않나.서울의 한 구청장 선거에 불과하다. 그런데 선거 결과가 던진 충격은 전국선거급이다. 서울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여야가 모두 나서 전국적 선거로 키웠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하나의 시험대로 여겼다. 윤석열 정부를 일차 평가하는 기회이기도 했다.구청장 선거지만 진교훈 후보나 김태우 후보는 뒷전이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결이었다. 앞장서 의미를 키운 건 윤 대통령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김태우 후보가 유죄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잃으면서 치러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관으로서 민간인 불법 사찰, 여권 인사 비리 묵인 의혹 등을 폭로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윤 대통령은 김 후보를 사면·복권하고, 사실상 강서구청장 후보로 낙점했다.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그를 공천하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보궐선거를 앞두고 복권한 그의 의도를 국민의힘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공익 제보에 가까운 김 후보의 폭로 야기된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려는 윤 대통령의 뜻이 충분히 이해된다.하지만, 정치에서 정답과 오답이 없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을 떠나서는 아무리 좋은 결정이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선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독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지도자들에게 국민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라고 한 이유다. 강서구는 국민의힘에 불리한 ‘험지(險地)’라고 한다. 그러나 역대 선거를 따져보면 험지라는 말로 털어버릴 문제는 아니다. 22년 3월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46.97%, 이재명 후보는 49.17%였다. 이재명 후보가 이기기는 했지만 2.2%에 불과했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56.09%를 얻어 송영길 민주당 후보(42.10%)를 14% 차이로, 김태우 구청장 후보는 51.3%로 김승현 민주당 후보(48.69%)를 2.61% 차이로 이긴 곳이다.이번 득표율, 56.25%(민주당)대 39.19%(국민의힘)는 20년 4월 21대 총선과 비슷하다. 당시 강서 갑·을구를 합친 득표율은 민주당이 55.40%,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39.95%였다. 그때 서울 49개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41석,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8석을 차지했다. 경기도에서는 51석 대 7석, 인천에서는 11석 대 1석으로 수도권에서만 103석 대 16석으로 국민의힘이 참패했다.강서구가 험지건 아니건, 수도권 민심이 21대 총선과 비슷하다는 건 확인됐다. 그대로 대입한다면 내년 총선에서도 지역구 의석의 44.3%인 서울·인천·경기에서 103 대 16에 가깝게 국민의힘이 참패한다는 말이다. 그 뒷일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레임덕이 시작되고,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된다. 단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가장 힘이 세다. 그런데도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가로막혀 쩔쩔맸다. 총선 참패 이후의 모습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뒤늦게 후회했다. 중앙일보 인터뷰를 보면 측근들의 비리를 살피지 못했다고 한다. 당 지도부가 만나려고 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대통령의 의지가 너무 강하고,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그 눈치를 살피는 사람만 꼬이게 된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0-15

줄세우기 정치의 한계

김진국 고문 더불어민주당이 쪼개지기 직전이다. 국회 의석 분포를 보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기 어려운 구도다.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민주당이 168명(56.4%). 무소속 9명 가운데 7명도 사실상 민주당이다. 그러니 통과된 뒤 서로 ‘네 탓’으로 폭발 직전이다.이재명 대표는 “국민을 믿고 굽힘 없이 정진하겠다”라고 말했다. 사퇴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더 개혁적인 민주당, 더 유능한 민주당, 더 민주적인 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하겠다”라고도 했다. 친명(친이재명)계가 말해온 대로 옥중 공천까지 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더 개혁적…’이란 자신을 더 잘 따르는 후보들을 공천하겠다는 의지다.의원총회가 난장판이 됐다.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비명계인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했다. 비명계 송갑석 최고위원도 쫓아냈다. 이참에 친명계가 독주하겠다는 계산이다. ‘배신자’를 색출한다고 열을 올린다. 의원들 모두 실명으로 이 대표 영장 기각 탄원서를 내라고 한다. 국회에서 가결해놓고, 그 소속인 의원들에게 반대 탄원서를 내라니 이런 희극이 없다. 공산 전체주의에서나 보던 인민재판식 양심 고문이다. 위태위태하다.‘개딸’(개혁의 딸을 줄인 말로 극렬 이재명 지지자들)들이 부결 투표를 공언하지 않은 의원, 부결 여부를 묻는 문자에 답하지 않은 의원,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의원, 불체포특권 포기에 참여한 의원들을 ‘배신자’라고 공격한다. 그러자 어기구 의원은 부결 투표 인증사진을 공개했다. 비밀투표에 어긋나는 어이없는 행동이다. 고민정 의원도 웃는 사진으로 공격받자 부결 표를 던졌다고 해명했다. 의정활동이 인민재판을 받고 있다.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아온 건 이재명 대표다. 자신의 짐을 민주당에 떠안기고,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특히 이 대표의 신뢰가 무너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그는 지난 6월 19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표결 하루 전 불체포특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당당하게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던 약속을 석 달 만에 뒤집었다.검찰이 체포한다고 끝이 아니다. 법원에서 구속적부심을 거쳐야 한다. 최종적인 유무죄는 법원에서 가린다. 그런데도 부결을 호소한 데서 이 대표의 두려움이 느껴진다. 법원도 검찰과 판단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겁을 먹은 행동이다.이날 부결 호소로 ‘방탄 국회’, ‘방탄 단식’이 아니라는 그의 말도 신뢰를 잃었다. 결백하다는 그의 주장을 믿던 사람들마저 흔들린다. 국회 표결이 필요없는 비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하라고 요구해온 그의 의도를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동안 그의 혐의와 관련한 모든 언행에 부정적인 색칠을 해버렸다.신뢰는 한꺼번에 무너진다. 회기, 비회기라는 잔수, 단식을 해가며까지 구속을 피하려는 안간힘…, 큰 정치 지도자의 의연함보다 잡초 같은 생존력만 보여줬다. 이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며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한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식의 이유로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 파괴와 민주주의 훼손, 일본 핵 오염수 방류, 국정 쇄신과 개각 등을 꼽았다. 그렇지만 체포동의안 통과 뒤 그런 요구는 모두 잊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민주당의 비판마저 방탄의 핑계로 희화화했다.반란표가 나온 더 큰 원인은 공천 협박이다. 원외 친명 인사인 강위원 더민주 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은 투표 이틀 전 “이번에 가결 표 던지는 의원들은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친명계의 독주를 통해 이런 압박은 계속돼왔다. 이날협박 발언이 내부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내년 총선 공천이 친명계 일색으로 갈 것이라고 확신하게 했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집권당의 분열로 가능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도 결국은 민주당의 분열이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여야 모두 강경 노선으로만 달린다. 장악력을 높이려고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선거의 승패는 몇십표, 심지어 한두 표로 갈린다. 선거 때마다 후회하면서도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24

짜깁기한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

김진국 고문 부끄럽고, 부끄럽다. ‘윤석열 커피’ 보도는 명백한 잘못이다. 기자도 실수한다. 그러나 실수와 알고도 잘못 보도하는 것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윤석열 커피’ 기사는 훈련받은 기자가 할 수 있는 실수가 아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의도가 개입했다고 의심해도 할 말이 없다.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두고 뉴스타파는 ‘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대장동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김만배 씨의 녹취에서 윤석열 후보를 의심하기 좋게 짜깁기해 보도했다. 요지는 김만배 씨가 박영수 전 특검을 통해 윤석열에게 로비해 조우형 씨를 수사하지 않고 풀어주게 했다는 내용이다.검찰은 초대형 금융비리사건인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조사하면서 조우형 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조 씨는 뒤에 대장동 사업 자금을 조성하는 데도 관여했다. 민주당은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이 조 씨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대장동사건이 터졌다며, ‘커피게이트’라고 이름 붙이고, 윤 대통령이 대장동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대선 후보 토론에서 “조우형에게 커피는 왜 타 줬느냐”고 조롱했다.뉴스타파 기사가 보도에 인용한 한 대목을 보자.(신학림)누가? 박○○검사가?(김만배)윤석열이가 ‘니가 조우형이야?’ 이러면서….(신)윤석열한테서? 윤석열이가 보냈단 말이야?(김)응. 박○○(검사가) 커피 주면서 몇 가지를 하더니(물어보더니) 보내주더래. 그래서 사건이 없어졌어.(신)박영수 변호사가 윤석열 검사와 통했던 거야?(김)윤석열은 (박영수가) 데리고 있던 애지.(신)데리고 있었기 때문에?(김)통했지. 그냥 봐줬지. 그러고서 부산저축은행 회장만 골인(구속)시키고, 김양 부회장도 골인(구속)시키고 이랬지.이 대목을 읽어보면 어떤가? 윤 검사가 부하 검사에게 커피 타 주게 하고, 사건을 덮어버렸다고 읽히지 않는가? 그 뒤에 붙은 다음 대화는 보도에서 빼버렸다.(신)조우형은 박○○하고 커피 마시고 온 거야? 윤석열하고 마시고 온 거야?(김)아니 혼자. 타주니까 직원들이…. 어떻게 검사와 마시겠어.(신)검사? 검사 누구 만났는데?(김)박○○ 만났는데. 박○○가 얽어 넣지 않고 그냥 봐줬지….이게 뭔가. 조우형은 윤석열 검사를 만나지도 않았다. 커피를 타 준 것도 검사가 아닌 직원이라고 말한다. 정상적인 기자라면 의미가 분명하지 않으면 다시 물어 확인한다. 들었다고 그대로 보도하지도 않는다. 사건 관련자와 증거들을 교차 검증해 확인한 뒤 보도한다. 그런데 다 나와 있는 말도 자르고, 왜곡했다.JTBC는 대선 직전 두 번이나 “윤석열 후보가 검사 시절 조우형 씨에게 커피를 타 주고 대장동 관련 조사를 하지 않았다”라는 남욱 씨의 말을 보도했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보도 전에 조우형 씨로부터 “윤석열 검사를 만난 적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그 기자는 “의혹 당사자인 조 씨보다 제삼자인 남 씨 진술이 더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라고 주장했다. 최소한 같이 보도했어야 한다. 그는 곧 뉴스타파로 옮겼다.기자는 진실이 생명이다. 사건 윤곽이 뚜렷해도 꼭 반론을 듣고, 기사에 붙인다. 이들은 녹취한 대로 보도했으니 ‘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을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하면 이미 진실이 아니다. 같은 기자로서 낯이 뜨겁다. 아니 그들을 기자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더구나 신 씨는 인터뷰 직후 김만배 씨로부터 1억6천500만 원을 받았다. 책값으로 받았다고 한다. 돈은 정직하다. 신 씨는 책값이라고 자신을 속였는지 모르지만, 김 씨 생각은 달랐다고 확신한다.JTBC는 그나마 사과했다. 뉴스타파는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가난해도 자존심과 사명감을 먹고사는 직업이다. 진실을 포기하면 기자가 아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17

민심에 길이 있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단식 농성장에서 지난 5일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방문해 극단 정치를 자제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맥락을 보면 단식을 그만두라는 말로도 들린다. 이 대표의 표정이 굳어졌다.‘개딸’이 무서워서도 이런 충고를 하는 정치인이 거의 없다. 곧 총선이다. 공천도 받아야 한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대표를 비난한 게 아니다. 이 대표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조언이다. 김 의장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자 정치원로다. 국회의장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게 관례다. 그런 점에서 사심(私心) 없는 그만이 할 수 있는 고언(苦言)이다.그의 말을 길게 인용한다. 김 의장은 “정치라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라며 “국민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하고, 잘못한다고 보질 않는다”라고 말을 꺼냈다.“벌써 두 번이나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사전에 예고되거나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한 사안인데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법안) 단독 처리를 반복하는 것이 과연 민주당을 위해서도 옳은 것인가. 여당이 아예 대안을 안 내놓으면 어쩔 수 없지만, 대안이 있는 경우엔 민주당이 주장하는 10개 중 5~6개만 살릴 수 있으면, 그래서 국민의 70~80%가 ‘그만하면 됐다’고 할 수 있으면, 그것이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가 아니겠나. 그래서 어떤 것이든 일방적으로 처리하기 전에 조정 작업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민주당에서도 좀 협력해달라.”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는 불안하다. 정치인의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다수결이 원칙이다. 그렇지만 다수결로만 선택한다면 대통령 한 사람만 뽑으면 된다. 국회는 왜 구성하나. 국회의원들이 무조건 당론 투표만 하고, 대화도 타협도 없다면 정치는 극한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같은 단점(單占) 정부에서는 국회가 거수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분점(分占) 정부에서는 사사건건 정부와 국회가 충돌해 파국으로 갈 수 있다. 민주주의 제도를 설계한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가면 결국 양측이 모두 손해고,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 정치인의 윤리와 소명 의식을 믿은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대화와 타협은 꼭 필요한 덕목이 다.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미리 경고한 법안을 여당과 협의 없이 단독으로 밀어 붙이면 법안이 국회로 돌아올 게 뻔하다. 그렇다고 거부권을 무력화할 만큼 재적의원 3분의 2 의석을 확보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고, 그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노림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굳이 법안 단독 처리만이 아니다. 인사청문회도 야당은 반대, 정부는 임명 강행이 관행처럼 굳어간다. 여야의 대화가 실종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의 수사를 받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야당과 대화를 포기하고, 야당 요구를 일체 외면하는 일방통행은 그가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다.내년 총선은 또 하나의 고비다. 지금의 여소야대(與小野大)는 떠안은 것이지만 내년 총선 결과는 윤 대통령 임기 전반기에 대한 심판이다. 선거에서 지면바로 레임덕이다.현행 헌법이 제정된 1987년 이후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7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6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 1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 2건, 윤 대통령이 2건이다. 여대야소였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적은 건 당연하다. 군인 출신이고, 권위주의 정부의 관성이 남아 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횟수는 가장 많지만 가장 타협적으로 국회를 운영했다. 야당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국회에 정치가 살아 있었다. 민심이 야 3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요즘 같은 정치로는 격렬한 지지자만 동조할 뿐 중간층은 외면한다. 단식으로는 뒤집을 수 없다. 김 의장의 지적대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얻어내려고노력할 때 민심도 얻게 된다. 중요한 것은 민심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10

당론으로 징계감 아니라고 말해보라

김진국 고문 가재는 게 편이었다. 국회 윤리위원회 제1 소위가 지난달 30일 거액의 암호화폐(코인) 보유와 국회 회의 중 투자로 비난받은 김남국 의원 제명안을 부결했다. 거센 여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시간을 끌다 결국 유야무야(有耶無耶) 끝나가는 셈이다. 국회 윤리위가 늘 그런 식이다.21대 국회 들어 49건의 징계안이 제출됐지만, 실제로 징계받은 사람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하나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한 덕분이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 때 법사위원장석을 점거했다고 징계했다. 20대 국회 47건, 19대 국회 39건도 모두 흐지부지됐다. 그 가운데 75건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처리하지 않고 뭉개다 저절로 사라졌다.김남국 의원은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 도중 수백 차례 코인 거래를 했다. 코인에는 젊은이들의 피눈물이 담겨 있다. 부동산과 취업 문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코인 열풍이 불었다. 대부분 큰 손실을 봤다. 의원들에게 백지신탁을 요구하는 건 공직을 이용한 불공정 게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코인은 주식보다 더 불공정한 게임이다. 그것도 국정을 수행하는 중에 투자해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20일 김 의원의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다. 외부 인사 8명으로 구성돼 그런 결론을 냈다. 그러나 윤리위 소위원회는 국민의힘 3명, 민주당 3명, 6명이다. 표결 결과 3 대 3이었다. 민주당 소속 의원 3명이 모두 반대한 것이다. 김남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으나 코인 논란으로 지난 5월 탈당했다. 그러나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지시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남국 의원의 부도덕성은 결국 민주당의 책임, 이재명 대표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김 의원이 탈당한 것도 결국 눈속임이다.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위장 탈당했던 민형배 의원을 다시 복당시킨 데 이어 재산 축소 신고로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선고를 받은 김홍걸 의원을 출당했다가 복당시켰다. 명분이 없다. 지금도 성추행 혐의를 받는 박완주 의원, 정대협 공금 유용과 관련한 윤미향 의원, 돈 봉투 살포와 관련한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지만 모두 민주당 의원처럼 움직인다. 탈당과 제명이 민주당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것도 몇 달을 못 참고 복당시킨다. 국민의 눈만 잠시 속이자는 거다.민주당 의원들은 코인을 보유한 다른 의원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사람도 문제가 있으면 처벌하면 된다. 추가로 코인 거래 조사를 하겠다던 김상희·김홍걸·전용기 의원도 문제없다며 최근 조용히 끝내버렸다. 도긴개긴이니 모두 눈감아주자는 건 결국 의원들의 짬짜미다. 분노한 국민을 또다시 속이는 일이다. 더군다나 김남국 의원은 코인 보유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 법무부 장관 청문회처럼 심각한 국정 논의 중에도 수백 차례 코인 거래를했다. 가난 코스프레를 하고, 진상 조사 과정에도 수없이 거짓말을 했다.또 김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핑계다. 민주당 의원들은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는 있나. 지금 탈당하고, 불출마 선언을 하는 것은 의원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임기는 왜 채우려 하나. 내년 4월 총선까지 무엇을 할 생각인가. 활동을 못 해도 억대 세비는 챙기겠다는 욕심인가.결국 국민 여론보다 의원끼리 의리가 중요하다. 다른 의원들도 그 정도 약점은 안고 있다는 고백일 수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징계감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정직하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자문위는 의원직 제명을 권고했는데, 의원으로 구성된 윤리위는 아무 이유도 없이 뭉개버렸다. 무용지물인 이런 윤리위로는 부패 정치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표결 의원들도 비공개회의에 숨어서 오물을 덮지 마라. 당당하다면 공개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밝혀라. 그리고 책임을 져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9-03

쪼잔해 보이면 큰 정치 못한다

김진국 고문 오늘(28일)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취임 1주년이다. 1년 전 그는 대선 패배 5개월 만에 77.77%를 얻어 당 대표에 취임했다. 그러나 지난 1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그 사이 민주당의 지지율은 고전하고 있다. 이 대표의 ‘리스크’가 그대로 민주당에 부담을 주고 있다.대선에 패배하자마자 대표로 복귀한 건 이례적이다. 경쟁자들은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 ‘갑옷’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가 아니었다면 수사의 진척이 더 빨랐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절대 방패’는 아니었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를 네 번 받았다. 곧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으로도 소환될 예정이다. 구속 영장 청구가 임박했다. 내년 4월 총선이라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에서도 논란이다.검찰이 정치의 주체가 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정치가 사법의 치외법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정치에는 부패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국민의 불만도, 걱정도 거기 있다. 분명한 증거만 있다면 정치 부패는 엄단해야 한다는 게 다수 국민의 희망이다.그런 점에서 이 대표의 대응은 적절하지 않다. 정치지도자다운 당당함보다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어떻게든 처벌을 피하려는 안간힘 같은 인상을 준다. 어떤 탤런트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라고 말했다. 국민의 믿음을 먹고, 희망을 대변하는 지도자라면 쪼잔한 행보는 피해야 한다.검찰이 30일 소환한다고 하자 이 대표는 (이번 주에는)“일정상 도저히 제가 시간을 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일(24일) 오전에 바로 조사받으러 가겠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거부해 24일 출석은 무산됐다. 또 8월 31일까지 소집해놓은 임시국회 회기를 ‘25일까지’로 단축했다. 비회기 중 영장을 청구하라는 것이다.검찰도 소환하려면 준비해야 한다. “내일 오전 가겠다”라는 통고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해보라는 뜻이다. 이 대표 조사에 반영해야 할 이화영 전경기도 부지사의 재판이 이 대표 지지자들의 방해로 지체되고 있다. 이 대표는‘불체포 특권’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회기 중에 구속하려면 본회의에서 투표해야 한다. 민주당이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면 민주당 의원들에게 찬성하라고 말하면 된다.당당하면 소환 날짜가 무슨 상관인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에서 조사받겠다고 신경전을 펼치는 것은 쪼잔해 보인다. 불체포 특권을 던지기로 했으면 부를 때 나가면 된다. 한 사람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피하려고 국회의 회기를 줄이고, 날짜로 씨름하는 것 역시 좀스럽다.이 대표는 변호사다. 재판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게 체질일 수 있다. 그럴수록 국민 눈에는 혐의가 짙어진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범죄 혐의의 사실 여부다. 대장동 개발에서 1000억 원이 넘는 이익을 삼킨 민간 업자들로부터 특혜의 대가가 없었나. 백현동 특혜의 대가는 없었나. 쌍방울의 대북 송금을 이용해 방북하려 한 것은 아닌가.이런 의혹들에 정면으로 답변해달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증거를 대라’,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라며 ‘법비’(法匪)나 쓰는 법 기술로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무죄 가능성이 1%만 있어도 일반 국민은 보호받는다. 일반 국민은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으면 무죄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는 다르다.검찰이 어떻게 하든, 국민이 무죄라고 믿어야 한다. 더구나 출석 시기나 국회투표의 유불리를 따지는 건 국민을 답답하게 만든다. 가장 좋은 방어는 ‘진실’이다.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과 이화영 전 부지사가 모두 쌍방울 대납을 인정했다. 김 전 회장이 조폭 출신이라고 공격한다고 뒤집을 수 없다. 더구나 경기도 법인카드로 음식을 사 먹고, 생활용품을 사들인 것을 모른다는 말로 넘어갈 수는 없다. 공무원을 머슴이나 하녀처럼 부리고도 모른다고 해서는 믿음을 주기 어렵다. 해외여행, 골프를 함께 한 부하직원을 모른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설령 그렇게 재판은 넘길 수 있어도, 국민이 나라의 운명을 맡기겠나. 공직자의 가장 큰 악덕은 거짓말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27

다양성을 존중해서 자유민주주의다

김진국 고문 한·미·일, 3국이 19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발표했다. 이로써 동북아의 신냉전 구도가 더욱 뚜렷해졌다. 북한 핵무기 등을 겨냥한 군사 안보는 물론 신흥 기술을 보호하는 경제 안보까지 3국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매년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안보실장, 외교·국방·재무·산업부 장관 사이에도 협의 틀을 만들었다.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동맹이 아니라고 했지만, 오히려 더 굳건하게 발전할 수 있는 구조다.국제 정세와 3국의 리더십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한반도는 강대국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지점이다. 게다가 적대적으로 분단 상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위험하게 불장난한다. 중국 굴기(5D1B起)로 미·중 대결이 날카롭다.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미·러 갈등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북·중·러, 세 나라가 더 가까워졌다. 미국은 태평양 건너 한국과 일본의 협조가 절실하다. 북한 핵 위협이라는 당면 위기가 한국과 일본을 미국에 밀착하도록 몰아간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 리더십, 윤석열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력이 돌파구를 만들었다.한·미·일 협력체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한·일 관계였다. 북·중·러가 흔들기 쉬운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국내 정치에서 큰 부담을 각오하고, 과감한 결단을 했다. 더구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 전반기를 마치고, 내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한다. 임기 후반의 승패가 걸려 있다. 일본 문제는 언제나 비인기 정책이다. 그런데도 정면 돌파했다.8·15 경축사에서 그 기초를 깔았다. 우리 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의 대결로 압축해, 세계의 자유·평화·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국가 과제로 설정했다. 한·미 동맹 70년의 연장으로 한·미·일 3국 협력체제를 그리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캠프 데이비드 3국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던 셈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대통령의 단호한 결기를 평가한다. 그렇지만 몇 가지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포용이다. 윤 대통령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라고 말했다. 그말이 맞는다. 하지만 민주주의·인권·진보 가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가치에 적대적 선을 긋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또 그는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라면서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프레임 전쟁으로 비칠 수도 있다. ‘빨갱이’, ‘종북’, ‘토착왜구’처럼 총선을 겨냥한 또 다른 ‘딱지’ 붙이기여서는 안 된다.최근 한국 외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을 뛰고 있다. 3국 협력체제는 역내안보 질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내부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 없이 밀어붙였다. 정권과 관계없이 효과를 지속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최근 윤 대통령을 조문한 노사연 씨에게 ‘개딸’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멀쩡한 배에 구멍이나 내는 승객은 승선할 수 없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온 사회가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윤 대통령과 참모들의 대화가 일방통행이고,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못 한다는 말이 아직도 들린다.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 분들만 한 게 아니다.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공산주의에 기대한 분들도 있다. 북한의 선동, 심리전, 통일전선 전략이 계속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시민운동, 야당 활동에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된다.윤 대통령 지지도는 30%대에 머물러 있다. 귀를 닫고 극단적인 편향성으로 스스로 고립되면,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훌륭하다. 관용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파를 포용하기 때문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20

“내 새끼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내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 말해라.” 한 교육부 사무관이 자식의 담임교사에게 이런 메일을 보내 충격을 던졌다. 보도에 따르면 한 사설 자녀 교육 지도 단체가 부모들에게 가르친 내용과 유사하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다고 생각하고 양육하라고 부모를 교육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그렇지만 ‘왕의 DNA’를 가진 아이가 그 공무원의 자식만이 아니다. 그 반에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그런데 “또래의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 달라”고 요구했다니 자기가 실천할 것을 교사에게 요구하는 난독증(難讀症)인가. 자기 아이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새끼 지상주의’를 전파하는 건가. 그는 “나는 담임을 교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압박하고, 실제로 직전 담임교사를 직위해제 시켰다. 이런 사람이 교육부 고급공무원이라니 더 어이가 없다.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정황상 학부모의 갑질 때문이라고 교사들은 의심한다. 전국의 교사가 분노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영화 제목에나 써먹는 말이 됐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건 케케묵은 잔소리다. 스승에게 주먹질하는 세상이다. 버릇없는 학생을 훈계하지 못하고 참으며, “내 새끼 아니다”라고 주문을 왼다고 한다. 스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우리 사회에 분노가 가득하다. 취업이 안 되는 사회적 원인이 크다. 휴대폰에 갇혀 가족이고, 친구고, 대면 소통이 단절된 기술적 요인도 있다. 그렇지만 의사가 치료해야 할 부분은 논외로 하더라도, 누군가는 사회 규범을 가르쳐야 할 것 아닌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개인의 쾌락만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고, 작은 어려움은 이겨내는 인내심도 길러야 한다. ‘왕의 DNA’를 가지고, 안하무인인 아이들만 설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겠나.자식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고위공직자들도 가장 큰 약점이 자식이다. 몰래 자식에게 재산을 넘기려는 사람, 자식의 교육·병역·국적·취업을 위해 편법을 쓰는 사람…. 아득바득 불법으로 재산을 불리는 것도 결국 자식을 황제로 살게 하겠다는 욕심 아닌가.대통령들도 예외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 김현철 씨가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재임 중 아들을 구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러려고 대통령 됐느냐”라며 울었다고 한다. 그는 회고록에서 “진작 해외에 내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라고 썼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아들 삼 형제를 모두 비리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야당 총재 시절에도 아들에게는 엄하게 하지 못했다. 장남 홍일을 권노갑 전 의원 지역구이던 목포에 공천하면서,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라며 반대 의견에 입을 막았다.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아간 것도 자식 문제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어느 날 정상문 비서관이 권양숙 여사와 돌처럼 굳어진 얼굴로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아들) 건호가 관련되었다는 500만 달러, 아내가 받아 쓴 3억 원과 100만 달러’(자서전 ‘운명이다’) 문제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그때만 해도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쓴 것인지 몰랐다”라고 썼다. 역시 자식 문제였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집안이 풍비박산한 가장 큰 배경도 자식 사랑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 때 최순실 씨의 딸 사랑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왔는지를 보고 배운 이후다. 그런데도 자식 문제에는 눈이 멀어버린다.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평생 두 딸에게 재산을 다 쏟아부었지만, 가난뱅이가 되자 외면당하는 노인 이야기다. 두 딸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뒤늦게 고리오는 “부모는 자식에게 생명을 주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죽음을 준다”라며 정곡을 찌른다.자식 사랑을 나무랄 순 없다. 하늘이 정한 본능이다. ‘딸 바보’, ‘아들 바보’가 미담일 수 있다. 그래도 내 새끼밖에 안 보이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으로 존경받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13

김은경혁신위가 민주당 미래인가

김진국 고문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구설에 올랐다. 그는 지난달 30일 청년좌담회에서 “남은 수명에 비례해서 투표해야 한다”라는 말을 해 ‘노인 폄하’라고 비난받았다. 중학생 시절 아들의 말을 인용했다지만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며 본인의 의지를 실었다.대한노인회를 중심으로 거세게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사과를 거부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 지도부가 사과를 종용하자, 그는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자존심상 허락되지 않는다”라며 버텼다고 한다. 답답한 당지도부가 나서 사과했지만 거절당했다. 나흘이 지난 3일에야 김 위원장이 대한노인회를 찾아가 사과했다.혁신위를 만든 건 당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변화의 진심이 있건 없건, 변화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내년 총선에서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기왕에 변화한다면 국민이 불신하는 기성 정치인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자는 생각으로 외부 인사를 모셔 왔다. 그러나 혁신위 활동을 보면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게 흘러간다.혁신은 나라를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민주당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당내 문제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 알고 있지만 건드리지 못한다. 국민의 불만을 풀어줄 만한 새로운 생각을 보여준 게 없다. 안에서 지지부진한 처지를 밖에서 풀어보려다 설화만 일으켰다. 본인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불가능한 제도라고 말한, 반민주적인 ‘제한선거’가 합리적이라는 사람이 무슨 혁신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이미 김 위원장은 여러 차례 헛발질했다. 이재명 대표와 대통령 후보 경선을 벌인 이낙연 전 대표를 겨냥해 “자기 계파를 살리려 (정치적 언행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계파 대변인 같은 말을 해 반발을 샀다. 초선의원 간담회에서는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다”라고 말해 분란을 일으켰다.김 위원장은 노인 폄하 발언과 관련해 “교수라서 철없이 지내서 정치 언어를 잘 모르고 깊이 숙고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있었다”라고 말했지만, 교수라고 다그런 건 아니다. 노인 폄하를 변명하다 또다시 교수들을 모욕한 셈이다. 국민의 지지를 끌어오기 위해 만든 혁신위가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도부가 혁신위의 사고를 수습하느라 바쁘게 만들었다.여야를 막론하고 비대위를 만들어도 대부분 임시방편으로 끝났다. 혁신위도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사법 리스크에 걸린 이재명 대표 대신 욕을 먹어주는 방탄 효과 외에는 존재 이유가 이미 사라졌다. 김 위원장은 사과 성명에서도 이름도 ‘민주당 혁신위’가 아니라 ‘김은경혁신위’라고 붙였다. 그만큼 ‘자존심’을 내건 모양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김은경혁신위’ 전체가 무력화됐다. 당내에서조차 해체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판국에 혁신위가 어떤 안을 내놓은들 박수받을 수 있겠는가.김은경 위원장은 나흘 만에 사과했다. 버티다 사과했다. 더구나 그는 사과하지 않고 버티는 동안 “윤석열 밑에서 (금융감독원 부원장) 임기를 마치는 게 치욕스러웠다”라고 새로운 분쟁 거리를 만들었다. 윤 대통령을 ‘대통령’이란 직함을 빼고 맨이름으로 불렀다. 조국 사태 때처럼 개인적 잘못을 진영싸움으로 바꿔 극성 지지자들로부터 지원받으려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개딸’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다는 말이다. 철없이 정치를 잘 모르는 게 아니라 너무나 ‘정치적’인 행보다.전임 이래경 혁신위원장은 임명한 지 10시간 만에 낙마했다. 김 위원장도 낙마하건 않건, 이미 실패했다. 혁신위원장 자리에 의외의 인물들이 임명되고, 추락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재명 대표가 기존 여의도 정치와는 다른 길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표의 책임이다. 두 사람의 실패는 이 대표가 생각하는 새로운 길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개딸정치’로는 정권 교체가 어렵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8-06

정전협정 70년, 무엇이 두려운가

김진국 고문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70년이 지났다. 1953년 7월 27일 동족 간에 총을 겨눈 3년간의 비극을 끝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전협정은 체결됐고, 그렇게 70년을 살아왔다. 70년간 전쟁이 없으면 사실상 종전이다. 그런데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적대 상태다. 서로 통일을 최대과제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항구적인 평화 체제가 필요하다.그러나 전쟁은 말로 하지 않는다. 문서보다 위험한 건 끝없이 고조되는 긴장이다. 남북한은 평화를 약속하는 문서를 여러 번 합의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 3원칙을 담았다. 이를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8월 15일 ‘한반도 평화 정착→ 상호 문호개방과 신뢰 회복→ 남북한 자유 총선거’라는 ‘평화통일 3단계 기본원칙’을 발표했다.1991년 12월 13일에는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다.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비방·중상하지 않고, 파괴·전복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한 것도 의미가 크다. 통일헌장의 기초와 같은 문서다. 이와 함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도 합의해, 핵무기는 물론 핵 재처리시설이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이후로도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노무현)으로 평화가 왔다고 당시 대통령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문서는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비핵화선언을 해놓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잠시도 중단한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는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도 그렇다. 체제가 다른 나라 사이의 합의는 더 위험하다. 국제정치는 냉혹하다. 합의를 강제할 힘이 있어야 지켜진다.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침략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주입된 두려움은 미국의 북침이다. 그것을 핵 개발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이다. 핵무기로 그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나. 전쟁의 참극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분단은 아픔이다. 그러나 통일하려고 전쟁까지 할 수는 없다. 한반도가 방사능이 가득찬 죽음의 폐허가 된다. 조금 더 기다려도 좋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전쟁을 피하려고 북한 체제로 통일 당할 수는 없다. 양측이 동의하지 않는 통일은 전쟁의 구실이 된다.북한은 끊임없이 도발해왔다. 청와대로 무장 공비를 보내고, KAL기를 공중 폭파했으며, 미얀마의 아웅산에서 남측 대통령 살해를 시도했다. 민간인이 사는 연평도로 포탄을 퍼부었고, 천안함을 격침했다. 북한은 한반도는 물론 미국 전역을 사정거리에 넣은 핵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김정은은 중국과 러시아의 대표단과 함께 전승절(정전협정 기념일) 열병식을 사열했다. 한·미·일 정상은 다음 달 18일 미 대통령 전용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회담할 예정이다. 신냉전체제로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어떤 시나리오로 갈 것 같은가. 미국의 북침인가, 북한 정권의 도발인가. 아니면 미국이 새로운 애치슨 라인 뒤로 물러나는 것인가.핵 경쟁이라는 공포의 균형보다 평화의 균형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핵무기는 절대무기다. 비대칭 전력이다. 재래식 무기를 아무리 많이 쌓아도 견제할 수 없다. 때리면 몇 배로 보복당한다는 두려움만이 공포의 균형을 이룬다. 핵무기가 아니면 국제 공조밖에 없다.6·25 때 우리는 아무 대비가 없었다. 북한이 중국·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침략을 준비할 때, 미국은 애치슨 라인을 긋고, 한반도를 버렸다. 국군 장교들은 주말을 맞아 무더기로 외출했다. 단숨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무방비가 오히려 전쟁을 부른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30

지도층은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

김진국 고문 중국의 역사는 치수(治水)로 시작한다.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왕은 치수에 성공해 선양(禪讓) 받았다. 나라를 경영하는 근본이 치수였다. 4천 년 전에 세워진 지도자의 역할이니, 지금은 당연히 많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4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치수에 실패하는 건 아이러니다.조선시대에는 가뭄·홍수·지진 같은 재해를 임금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고 생각했다. 세종도 즉위하고 몇 년간 가뭄에 시달렸다. 고기를 좋아하던 세종도 수라상을 줄이며(減膳) 근신했다. 임금이 소박하게 먹는다고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굶주리는 백성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 군주의 덕목이다.경주 최부자댁의 가훈은 이런 군자의 도덕을 담고 있다. 재산이 불어나면 소작료를 줄여서라도 만석 이상은 하지 않고,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않고,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했다. 며느리가 시집오면 3년 동안은 무명옷을 입혔다. 높은 벼슬을 마다한 최 부자댁이 그러한데, 지도자를 자처하면서도 이런 공감(共感) 능력이 결핍된 사람들이 있다. 사방이 물난리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고개를 치켜들고, 그게 왜 내 책임이냐고 소리친다. 농민이 죽건 말건, 산사태가 나고, 집이 부서지건 말건, 남의 일이다. 가뭄이 들어 논밭을 헐값에 내놓을 때 곳간을 열어 사들이면 땅은 계속 불어난다. 그러나 어려운 이들 형편을 헤아리지 않고,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불린 부(富)는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다고 선현들은 생각했다. 공감이 없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고, 그런 사회 체제는 오래가지도 못한다.그래도 이번 물난리 중에 집을 잃은 이웃을 재워주고, 밥을 먹이고, 위험을 무릅쓰고 인명을 구하고, 내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복구를 도운 사람이 많다. 그런 따뜻한 이웃들이 살아갈 희망을 준다. 국회 윤리특위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주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에 대해 제명을 권고했다. 김 의원은 상임위 중에만 200번이 넘게 코인 거래를 했다고 한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민생을 논의하는 상임위에서 청년들의 눈물이 묻은 ‘흉년 땅’을 사고도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김 의원과 생각이 비슷한 의원들이 많아 제명안이 본회의를 통과할지 의문이다.홍준표 대구시장은 물난리 중에 골프 친 일로 사과했다. 처음에는 “주말에 테니스를 치면 되고 골프를 치면 안 되느냐”, “공직자들의 주말은 비상근무 외에는 자유”라며 트집 잡지 말라고 반발했다. 더구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라고 사과한 뒤에도 이를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고 표현했다. 한신이 큰 뜻을 위해 불량배의 사타구니 사이를 긴 것을 말한다. 국민이 불량배인가. 국민에게 사과한 것이 그렇게 치욕스러웠나.2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가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수백억 원의 잔고증명서를 여러 차례 위조한 혐의다. 최씨는 공범에게 속았다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이라면 아무리 큰 이익이 돌아온다고 해도 그런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속았다 하더라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최 씨가 그 일을 저지른 건 사위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다. 그렇지만 그때도 사위가 검찰의 고위층이었지 않나.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12일 리투아니아에서 명품 가게 5곳을 들어가 논란이 됐다. 명품을 샀다, 아니다. 매장 직원의 호객 행위에 끌려 잠시 들렀다, 아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화·예술계에 전문성이 있는 대통령 부인이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 시장을 둘러볼 수도 있다. 그러면 떳떳하게 공식 일정에 넣을 일이다.때를 가리고, 장소를 가려야 한다. 물난리가 나기 직전이지만 큰비가 예보된 때다. 더구나 김 여사는 국민의 주목을 받고, 민심에 큰 영향을 주는 대통령의 부인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메시지다. 서민의 삶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나라 살림이 위태위태하다. 환난이 닥친 유대 왕처럼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지는 않더라도, 최 부자 댁 며느리처럼 무명옷을 입지는 않더라도 근신할 때다. 명품매장은 임기 뒤에 얼마든지 갈 수 있지 않은가.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23

스스로 판단해야 좋은 정치 만든다

김진국 고문 정치에 대한 불만이 많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정부 기관 중 가장 국민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24.1%)였다. 4명 중 3명은 국회를 못 믿는다는 말이다.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유권자가 30%였다. 국민의힘 지지가 33%, 더불어민주당 32%, 정의당 5%다. 보수층의 72%는 국민의힘을, 진보층의 59%는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도층은 25%가 국민의힘을, 32%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가 37%였다.그렇다고 이것만 믿고 제3당을 만들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다. 무당층이 50%를 웃돌 때도 제3당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성공 신화로 거론하는 사례가 88년 4당 체제다. 소위 ‘1노 3김’ 체제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분열한 양 김 씨(김영삼·김대중)와 김종필 총재까지 4당 체제가 만들어졌다.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민당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김대중 고문은 필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 국민의 80% 이상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서울대 연구소 조사를 인용해 중산층·서민·노동자·농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며 분당(分黨) 논리를 다듬었다.그러나 그 체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지역 할거였기 때문이다. 호남과 영남을 쪼개고, 영남을 다시 경남과 경북으로 나누었다. 그러자 ‘핫바지’론을 들먹이며 충청도당도 만들어졌다. 독재와 반독재라는 구분을 보수와 진보, 지역대결로 바꾼 셈이다. 그 정도 강력한 구심력이 없는 한 쪼개기가 쉽지 않다.4당 체제도 오래 가지 못했다. 3당 합당 탓만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최고목표는 집권이고, 대통령선거승리다. 내가 좋아하는 후보보다 ‘내가 싫어하는 후보를 떨어뜨리고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찍는 양상이 벌어진다. 차악(次惡)의 선택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봐도 비호감도가 호감도를 압도했다.양극화된 증오 정치에서는 불만이 넘칠 수밖에 없다. 한때 ‘안철수 현상’이 풍미하고, 국민의힘이 이준석을 선택했던 것도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탈출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기대와 차이가 있었다. 정치 혐오가 가득 찬 이 상황에는 유권자의 책임이 크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유권자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와 지연·혈연·학연이 얽힌다고 무조건 지지하고, 감싸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 한 가지가 마음에 든다고 무조건 응원해서도 안 된다. 눈을 감고 따라가는 추종자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 편도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건강해진다. 유권자를 무시하지 않는다.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과대 대표된다. 사회통신망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증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영향력은 더 부풀려진다. ‘킹크랩’ 사건이 그런 경각심을 던져줬다. 최근 ‘개딸’에 휘둘리는 민주당도 그렇다. 국회의원조차 조직적인 온라인 테러에 꼼짝을 못 한다. 유권자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선동가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4당 체제가 공고하던 시절, 호남에서는 김대중 총재가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있었다. 칠곡 출신인 이수인 영남대 교수를 전남 함평-영광에 공천해 당선시킨 일도 있다. 무조건 당선은 정치인을 타락시켰고, 지역 주민들은 당선시키면서도 불만이 커졌다. 무조건 지지의 당연한 결과다.1등만 목표로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차악을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는 양극적 양당제로 가게 된다. 당선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 틈에 극단세력이 목소리를 높인다. ‘개딸’이나 조국 사태, 태극기 부대, 괴담…. 합리적 주장은 힘을 잃고, 극단적이고, 과장된 선동이 설친다. 결국 부패하고, 쇠망으로 가는 길이다. 유권자가 무조건 지지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되어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어야 정치도 건전해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16

주민에게 피해를 떠넘길 순 없다

김진국 고문 나랏일이 공깃돌보다 가볍다. 1조 7천억 원이 넘는 사업이 하루아침에 이리저리 뒤집히고, 생겼다 사라진다.공자는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배움에도 단단함이 없다”(君子不重 則不威 學則不固)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도 옥포해전에 앞서 부하들에게 “망동하지 말고 태산처럼 침착하고, 무겁게 행동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라고 당부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민주당은 특위까지 만들어 조사에 나섰다. 그러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노선 검토뿐만 아니라 도로 개설 사업 추진 자체를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됐던 모든 사안을 백지화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무슨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지 기가 찬다.2017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이후 추진돼 오던 사업이 그냥 사라졌다. 지역 주민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책임을 다 떠안아야 하나. 결국은 정치 싸움 탓이다. 야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땅 때문에 고속도로 노선을 바꿨다며 정치 공세에 나섰고, 원 장관은 “그러면 다 하지 말자”라고 어깃장을 놓았다.사실 다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고속도로 노선이 갑자기 바뀌었는데, 바뀐 종점 부근에 대통령 부인 일가의 땅이 축구장 5개 크기가 될 정도로 많다고 한다. 그러면 당연히 의문을 품을 만하다. 야당 정치인이라면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해야 마땅하다. 사실 옥신각신하는 여야 공방을 보면서 필자도 그 인과관계를 깔끔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호불호에 따라 어느 쪽을 편들 수는 있겠지만,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된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물론 정부나 집권당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취임 이후 야당은 한 번도 협조한 적이 없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특히 대통령 부인은 야당이 공격을 집중하는 표적이다. 한번 문제를 제기하면 합리적인 해명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일부 네티즌은 무속 문제 등을 제기하며 사진을 조작하는 등 가짜뉴스도 만들었다. 심지어 13년이 지난 천안함 피격사건조차 아직 의혹을 제기하는 세력이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나. 해명을 해봐야 내년 총선까지는 의혹을 끌고 갈 것이라는 걱정이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그렇지만 국정을 계속 이런 식으로 끌고 가야 하는지 걱정이다. 야당은 온갖 의심과 의혹을 부풀리고는 합리적 조사와 정리, 대안 만들기는 회피하고, 정부·여당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수조 원짜리 국가사업을 기분에 따라 마구 뒤집고…. 다 할 말은 많겠지만,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에 죽어나는 건 국민이다. 차라리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처럼 이종격투기라도 하는 게 국민에게 피해는 덜 주지 않겠나.원 장관이 백지화하겠다는 건 사태를 수습하는 속임수에 가깝다. 그 정도의 충격적 요법이 아니면 야당의 공세를 막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욕하면서 같은 길을 간다. 국민의 공포, 두려움, 혐오감을 창과 방패 삼아 정치적 이익, 총선 의석을 지키려는 것이다.문제는 절차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양서면으로 그어졌던 노선을 갑자기 강상면으로 바꾸려면 합당한 과정을 거쳤어야 옳다. 그렇게 바뀐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먼저다. 나들목이 아니라도 서울 가는 시간이 단축되는 건 사실이다. 억지 해명은 오히려 의혹을 부풀린다. 또 해명대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라면, 왜 다른 대안들을 추가로 검토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사업 백지화로 의혹을 해소할 수는 없다.야당도 무조건 과거 노선으로 돌아가자고 할 건 아니다. 원래 노선과 대안 노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따져봐야 한다. 전략환경영향 평가 결과를 보면 대안 노선이 우수한 이유를 많이 설명해놓았다. 김 여사 가족 땅이라고 무조건 피해 갈 수는 없다. 공청회를 열든 여론 수렴을 거쳐 노선을 정리하고, 사업은 다시 진행하도록 정치권이 합의하는 게 옳다. 애먼 주민들에게 피해를 감당하라고 할 수는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09

한국 정치에서 대화가 사라졌다

김진국 고문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특히 그 말을 자주 했다. 신호등처럼 빨간불은 정지, 파란불은 통행이라는 식으로 분명하게 규정하는 게 쉽다. 특히나 착한 사람, ‘범생’일수록 가타부타를 분명히 해주는 게 선택을 편하게 한다.법은 분명하게 규정돼 있다. 그렇지만 들여다보면 사안마다 사연이 다르고, 복잡하다. 같은 법으로 같은 죄를 심판하는 재판 결과가 모두 다르다. 좁은 골목길에 마주 달리는 자동차가 서로 자기주장만 하면 모두 손해를 본다. 이해가 부딪칠 때 어떻게든 꼬인 매듭을 풀어낼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정치다.그래서 정치권 농담 가운데 하나로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게 정치’라고 한다.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라고 한다. 어물쩍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을 ‘정치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다. 그렇지만, 정치인은 욕을 먹더라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능소능대(能小能大)해야 한다.공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논어 위정편)라고 말했다. 특정 재능에 얽매인 한정된 용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실용적이고, 창의적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요즘 우리 정치는 어떤가. 거꾸로 행진하고 있다. 뻔히 아는 것도 청개구리 심보로 정적(政敵)과는 반대로 간다. 정치인이 청개구리처럼 움직이니 진영에 갇힌 지지 세력은 눈을 감고 뒤따라 돌진한다. 과거 당쟁이 심하던 시절을 빼닮았다. 한쪽이 생선을 홀수로 올리면, 다른 쪽은 짝수로 올리고, 한쪽이 생선 머리를 오른쪽으로 놓으면 다른 쪽은 왼쪽으로 놓았다. 정치인이야 오기 싸움인지 몰라도 그걸 음양으로 풀어 해설까지 붙여놓으니, 그 진영에 있는 백성은 금과옥조로 여긴다. 그걸 지키지 못하면 조상 모독이요, 대죄라고 여긴다.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이다. 그중에서도 대화다. 타협이건 대결이건, 대화를 해야 정치가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 정치에서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일방적으로 내지르는 말만있지, 대화는 없다.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말은 독이다. 서로 상처를 내고, 죽이는 무기다. 타협과 합의는커녕 적의만 쌓고, 골만 깊게 한다.정치가 사라진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묻기는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힘이 있는 쪽, 권력을 쥔 쪽 책임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국민을 통합하고, 국정을 원활하게 풀어갈 책임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았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선된 지 310일째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는 420일째다. 대통령 선거를 한 지도 벌써 478일이 지났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두 사람이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두 사람만 만나는 것은 물론 여러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없었다.검사나 판사는 사건 당사자를 따로 만나는 게 금기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청탁 의심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재판처럼 선과 악, 이기고 지는 것을 반드시 가릴 필요가 없다. 상생, 윈-윈이 최선이다. 더군다나 정치는 정치고, 재판은 재판이다. 외국 정부와 국제소송이 걸려 있다고 정상회담이나 외교부 장관 회담을 피하지 않는다.대통령과 야당 대표만 안 만나는 게 아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대표도 말로만 서로 만나자고 떠든다. 그래 놓고는 이 구실, 저 핑계로 만나지 않고 있다. 우선 만나야 조건이고, 주제고, 이야기를 풀어가지, 만나기도 전에 무슨 핑계와 비난만 그리 많은가. 그러고 무슨 대화를 하나.야당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귀국하자 이재명 대표와 만나는 문제로 신경전이다. 같은 당에서 전·현 대표 사이에 먼저 만나자고 나서기가 그렇게 어렵나. 대통령 후보 경선한 지는 630일이 지났다. 골은 더 깊어졌다. 한번 경쟁하면 영원한 원수가 되는 건가.정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되는 게 없다. 무능한 탓이다. 민주주의는 착한제도다. 그렇지만 운영은 영악해야 한다. 정치인이 때를 묻히더라도 착한 결과를 만들어야 국민이 편안하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