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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에 자만하지 마라

김진국 고문 여론조사가 이상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뒤집혔다. 오차 범위 안이니까 뒤집혔다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당장 망할 것 같았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한 건 의외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9%, 민주당은 36%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 탄핵 직후인 지난해 12월 셋째 주에 국민의힘이 24%로 바닥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15%포인트가 올랐다. 48%였던 민주당은 12%포인트가 떨어졌다. 여론조사에는 오차가 있다. 그렇지만 큰 흐름은 틀리지 않는다. 다른 조사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지난주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은 35%, 민주당은 33%였다. “내가 잘해서 당선되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로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0가지를 잘하기는 어려워도, 한 가지 실수는 순식간에 저지른다. 선거는 그 한번의 실수가 결정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도 다르지 않다. 거부감이 여론의 흐름을 주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찍은 유권자도 많지만, 결국 승부를 가른 건 비호감을 피하려고 떠도는 표다. 윤석열 후보가 좋아서 찍은 사람보다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 선택한 유권자가 많다. 비상계엄의 중심은 윤 대통령이다. 그를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비상계엄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뚱딴지같이 터졌다. 법리 다툼을 벌이고는 있지만, 국민 마음속에서는 일찌감치 판결이 내려졌다. 생중계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어렵게 쌓은 민주화 성과를 한꺼번에 허물었다. 한 사람이 잘못 판단하면,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민의 분노는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뒤 윤석열의 시간이 지나간다. 이재명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주목 대상이 옮겨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동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지지율이 압도적 1위다. ‘이재명 포비아’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조급한 언행, 절제하지 않는 발언, 집권당이 다 된 것 같은 오만함이 그런 우려를 부채질했다. 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이 대표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계엄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혹은 탄핵을 찬성하느냐, 반대느냐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좋으냐 싫으냐로 여론이 나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열성 지지자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어느쪽도 잘한다고 칭찬받는 상황이 아니다. 상대방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을 호감도로 착각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탄핵의 강’을 건너느라 고생했다. 민주당은‘조국의 강’을 넘어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의리’, ‘배신’ 논란도 있었다. 조국혁신당이 성공해 조국의 강이 옳은 길인지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결집은 강력하지만, 강성 지지자만으로는 큰 판에서 이길 수 없다. 국민의힘은 반성과 혁신보다 ‘의리’를 선택했다. 책임을 따지고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몫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여야가 협력해 가능했다. 보수·진보가 함께 촛불을 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를 쓰겠다”고 선전했지만, 가장 폐쇄적으로 인선했다. 함께 촛불혁명에 성공했는데, 보수 세력에게 돌아온 것은, 포상이 아니라 ‘적폐 청산’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리품을 독식했다. 모든 분야에서 반대 세력은 몰아냈다. 대법원장까지 ‘적폐’로 몰았지만 모두 무죄였다. 진영정치의 골을 깊이 팠다.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정치는 사라지고, 보복만 남았다. 검찰총장 대통령의 길을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의 행동이 이번 탄핵 과정에서 보수 세력이 주저하게 했다.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은 문재인 후보 때보다 더 크다. 남의 실수로 얻은 표는 내 표가 아니다. 여도 야도 돌아보고, 반성할 줄을 모른다. 남의 실수로 얻은 득점에 자만할 때가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19

한 번쯤 뒤집어 생각하고 판단하라

김진국 고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과격한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파고드는 표현을 잘했다. 그는 여러 유행어를 남겼다. 가장 유명한 게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그 이전 ‘로맨스와 스캔들’이라는 비유가 있었다. 이문열의 ‘구로아리랑’(1987)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기사 지가 하믄 로맨스고 남이 하믄 스캔달이라 카기도 하고…” 문재인 정부는 ‘내로남불’ 정부라 불렸다. 검찰총장이 갑자기 대통령이 된 것은 그 덕분이다.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만 본다. 성경에도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적혀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야당의 입법 독주로 이재명 정부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화가 난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고, 독재하려고 한다. 운이 좋게도 국회가 비상계엄을 해제해, 이재명 대통령은 탄핵소추되고, 수사받게 됐다. 당신은 어떤 느낌인가. 국민의힘 지지자라면, 비상계엄이 성공했기를 바랄 건가. 그래야 나라가 잘 됐을까. 그게 민주주의인가. 나훈아 식으로 “니는 잘했나”라고 빈정댈 건가. 물론 이 기회에 잇속을 챙기려는 민주당 태도도 문제가 있다. 이재명 대표 재판과 속도 경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비상계엄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정략 차원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꼴이다. 선거 국면에서는 수사가 어려워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야당 총재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중단시켰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검찰 수사도 당선 이후 모두 취소됐다. 그러니 오히려 ‘이재명 포비아(공포증)’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보수 세력도 비상계엄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상상을 하니 그건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40~50년 뒤로 돌렸는데도, 이대표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이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옮겨가면서 여론이 뒤집힌다. 보수 세력은 민주당이 탄핵을 서두는 이유가 선거를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의심한다. 진보 세력은 윤 대통령이 시간을 끌면서 탄핵과 수사망을 빠져나가려 한다고 의심한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선거를 앞당기는 게 목표겠지만, 야당 지지자가 모두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중도층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길이 열릴까 봐 두려워한다. 헌법재판소 심리 정족수는 7명이다. 한때 국회 몫 3명을 임명해 주지 않아 헌법재판관이 6명밖에 없었지만, 헌재 스스로 헌법 효력을 정지시키면서까지 심리를 이어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문제도 6명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다행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 추천 2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9명 중 8명을 채웠다. 그런데 4월 18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한다. 두 사람은 대통령 추천 몫이다.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돼 후임 임명이 어렵다. 헌법재판관 6명이 남는다. 다시 심리 정족수 문제가 제기된다. 더구나 2명이 퇴임하면 남은 6명이 모두 찬성해야 탄핵이 인용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기각된다. 최근 국민의힘이 추천한 재판관까지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 추천 2명과 국회 추천 몫 1명은 공석이다. 국회 몫 한 명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이유다. 역지사지해 보자. 탄핵을, 수사를, 무리하게 서두르지는 말자.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를 오래 끄는 건 국정에 큰 타격이다. 그렇더라도 논란의 소지는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재명 포비아’ 때문에 탄핵 심판과 수사 자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정권은 수시로 교대한다. 그때 민주당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국회를 마비시켰을 때를 생각하라. 역사는 반복된다. ‘내로남불’을 생각하라.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12

O. J. 심슨은 돈도 명예도 다 잃었다

김진국 고문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는데 1차 실패했다. 윤 대통령이 경호처와 경호부대를 동원해 철벽을 쳤기 때문이다. 계엄이나 마찬가지로 TV로,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해외에도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한남동 일대를 시위군중이 점령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나라 망신이다. 1994년 미국 LA 경찰이 한 살인 혐의자가 차로 도주하는 것을 추격하는 상황이 중계됐다. 뉴스 전문 채널인 CNN은 물론 지상파 방송들도 생중계했다. 방송국은 헬기까지 동원했다. 한국 TV도 CNN을 그대로 보여줬다. 고속도로로 달아나는 차를 보면서 곧 그를 체포해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인 O. J. 심슨이다. 그와 이혼한 전처와 식당 종업원이 피살된 채 발견됐고, 혈흔을 비롯한 여러 증거가 그를 지목하고 있었다. 검찰이 소환한 날 친구에게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편지를 남기고 잠적했다. 이틀 뒤 경찰이 그를 찾아냈으나 도주극을 펼쳤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 건 그가 무죄 평결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는 300만~600만 달러(약 44억~88억 원)로 쟁쟁한 변호인들을 고용했다. 통계와 확률까지 동원해 그를 무죄로 만들었다.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사건이다. 뒤에 그는 탈세로 체포되기도 하고, 강도 혐의로 33년 형을 받아 수감되기도 했다. 심슨이 떠오른 것은 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의 말 때문이다. 그때 비싼 수임료를 챙긴 변호인들이 온갖 요설로 배심원을 헷갈리게 했다. 이번 사건은 온국민이 TV로 지켜봤다. 수사당국이 발표한 것이라면 조작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국회를 포위하고, 정치인을 체포하기 위해 나섰던 특수부대 사령관들이 직접 TV에서 증언했다. 변호사들의 현란한 법 논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상식으로 판단할 때 헌법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분명하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위기 시 나라를 보호하라고 계엄령을 발동할 권한을 부여했다. 국회에는 해제권을 주어 대통령의 독단을 견제하도록 했다. 그런데 무력으로 국회를 무력화해 헌법상 권한인 해제를 막았다. 헌법 질서를 파괴했고, 무력으로 국민이 위임한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쥐려 했다. 명백한 친위쿠데타다. 그런데도 물리력에 막혀 법을 집행하지 못한다면, 심슨보다 더한 사례로 인용될 게 뻔하다. 당당하다면 법정에서 다투는 게 옳다. 부하를 희생시키고, 국론과 국민을 쪼개고, 국정과 국법 질서를 마비시키고… 그런다고 없는 일이 될 수 있나.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를 보는 것같아 낯이 뜨겁다. 수사 주체를 둘러싼 논란도 어이가 없다. 특정인을 위해 졸속으로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다 이런 꼴이 됐다. 그렇지만 혼선이 생기면 결국 누가 정리해야 하나. 법원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도 법원의 영장마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물리력으로 집행을 막았다.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의 예외로 했다는 부분이다. 보안시설 책임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항이다. 관저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 본인이다. 법원이 영장에 예외를 명시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스스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체포할 수 없다. 말장난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출두해 조사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힘없고, 불쌍한 국민만 법을 지켜야 하나. 그게 나라냐. 기묘사화 때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을 써놓고, 조광조를 모함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도 반복하면, 믿고 싶은 사람은 빠져든다. 총선 민심은 윤 대통령이 뒤집어놨다. 이제 와 부정선거 탓으로 돌려 그때의 행동을 칭찬이라도 받을 건가. 부정이라는 핑계로 선거 결과를 투표가 아닌 총칼로 뒤집으려는 건가. 선거 부정이 있었다면 법 절차로 해결해야 한다.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 더 큰 불법행위를 한다는 건 명분이 되지 못한다. 전직 검찰총장이 법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불법으로 무장 군인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믿어야 하나. 이번 사태도 숨어서 큰소리칠 게 아니라 법정에서, 헌법재판소에서 따지면 될 일이다. 합법적 절차를 포기하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05

‘반민주세력’ 간판이라도 걸고 싶은가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가 보낸 서류를 계속 거부한다. 지난 주말까지 다섯 차례다. 수사기관들의 출석 요구서도 받지 않는다. 대통령 비서실도, 관저의 경호원들도 ‘수취’를 거절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란 직위 때문에 경호의 벽을 넘지 못한다. 계엄 해제 직후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라고 한 약속은 팽개쳐 버렸다. 당당하지 못하다. 쪼잔한 잔꾀로 배달원을 돌려보내는 분이 우리 대통령이라는 게 창피하다. 소송에서 유리하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쓰는 게 왜 나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만 가진 특권을 활용해 꼼수를 부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공정’을 실현할 대통령으로 기대했던 국민으로서 허탈하다. 법적 소송만 해결하면 끝나는 일인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 신뢰다. 국민이 믿지 못하면 정치인으로서 생명이 끝난다. 윤 대통령의 처신도 개인적으로 초라하고 궁상맞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를 지지한 국민까지 참담하고 부끄럽게 만든다. 윤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내란죄 소송이 걸려 있다. 말을 아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TV카메라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았나. 그 많은 말 가운데 정작 국민이 기대한 사과는 없었다. 계엄 모의자를 제외한 온 국민이 충격받았다. 역사가 다시 1960년대, 80년대로 역주행했나 당황했다. 무장한 군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사과는 없었다. 반성하는 말도 없었다.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정직하게 털어놓지도 않았다. 그의 지시를 받은 지휘관들의 증언과는 전혀 상반된 변명만 늘어놨다. 모든 책임을 정적에게, 부하에게 떠넘겼다. 5천만 국민이 TV로, 유튜브로, 실시간으로 다 지켜봤다. 이제 와서 그것을 어떻게 뒤집겠다는 건가. 국민의힘은 또 어떤가.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데 동참한 동료의원을 ‘색출’하겠다고 한다. 다시 군사 독재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인가. 스스로 쿠데타 세력이라고 자복하는 꼴이다. 그 입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나. 대통령에게 의리를 지키려는 마음은 이해한다. 윤상현 의원은 그래야 의리 있다고 하고, 표도 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게 의리로 따질 문제인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흔들었다.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릴뻔했다. 아무리 자기 편이라도 감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데…. 근대화 업적을 인정하는 것과 민주주의 체제를 뒤집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보수의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비판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보수라야 지킬 가치가 있다. 무조건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것은 왕조시대나 북한, 조폭들이 더 잘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먼저다.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나라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물려줄 건가. 당장 우리 편의 잘못을 지적하고, 처벌하면 쓰리고 아프다. 그렇지만 곪은 것은 짜고,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 그래야 건강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다. 어느 정당이나 연상되는 상징이 있다. 보수 정당에 쿠데타 정당, 군사정부 정당, 반의회주의 정당이라는 낙인이라도 찍고 싶은가. 야당을 외면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당 대표는 모두 쫓아냈다. 쿠데타를 위한 준비로 보지 않겠나. 선거 부정 의혹이 있다면 헌법 질서 속에서 합법적으로 해결하는 게 옳다. 부정선거가 있었던들 무력으로 탈취한 서버는 증거로 쓸 수도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게 제정신인가.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폭락했다. 이제 국민의힘 지지율마저 민주당의 반토막으로 추락했다. 여론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아직도 모를까. 내 국회의원 배지만 지키면 된다는 건가. 소수 극우세력끼리 의리로 똘똘 뭉쳐 봐야 무엇을 할 수있나. 어차피 곧 치러야 할 대선은 어떻게 할 건가. 이러다가 다음 총선은 개헌선까지 내주기 십상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22

잘못된 한 사람을 따라가면 미래가 없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보수 대통령이 잇달아 탄핵 심판을 받는다. 보수 유권자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믿고 뽑아 놓았더니 보수 세력을 파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러다 차기는커녕 차차기도 기대를 접어야 할 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가까운 사람을 너무 믿은 탓이다. 직접 돈을 착복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본인이 자초했다. 비상계엄 상황을 만들어 선포했다. 법에 정해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계엄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국회를 폐쇄하려 했다. 국회의원을 끌어내고, 정치인들을 감금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조국 전 의원은 12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가만히 있었으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도 심각한 상태다. 선거법 위반 사건 1심에서는 10년 동안 공직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엉뚱한 일을 벌여 모든 걸 망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보수인사도 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미국 검찰은 트럼프에 대한 기소를 모두 취소했다. 이런 큰일을 저질러놓고도 반성하지 않는다. 평균적인 국민 정서와는 공감하지 못한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도는 11%였다. 85%는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수 세력의 기반인 대구·경북만 놓고 봐도 지지도가 16%에 불과하다. 비상계엄이 내란이라는 의견이 71%, 탄핵하라는 응답도 75%였다. 대구·경북에서도 62%가 탄핵에 찬성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하야(下野)는 없다며, 차라리 탄핵하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85%가 잘못한다고 답하는데, 탄핵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라고 요구하는데, 누구와 싸우겠다는 건가. 윤 대통령은 14일 저녁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고도 소송으로 이기려는 생각이 기가 막힌다. 개인적인 망상을 위해 보수 세력을 궤멸시키려는 꼴이다. 그런데도 이에 동조하고, 부추기는 정치인들은 또 뭔가. 목적이 옳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용납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다. 믿지 않아도 그렇게 합리화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엄창록 씨를 모델로 한 ‘킹메이커’란 영화가 그런 내용이다.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할 만큼 대단한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 자기가 권력을 쥐는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은 반헌법적 친위 쿠데타로 무엇을 하려 했나. 선거를 하면 국민이 표를 줬을까. 선거가 없는 정치체제를 국민이 용납할까. 철부지 같은 망상이다.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이 있다. 판사들은 확실한 증거라도 그것을 얻는 과정이 잘못됐으면 인정하지 않는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번거롭고 불편해도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쉽게 부서진다. 법조용어에 ‘별건(別件)수사’라는 말도 있다.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우면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다른 혐의를 이용해 피의자를 압박하는 수사방식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그런 식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세우려 했다고 주장했다. 자유민주주의야말로 법을 존중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참고, 대화해야 한다. 그는 탄핵소추 뒤 담화에서 “숙의와 배려의 정치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헛웃음이 났다. 그가 취임 초, 아니 그 뒤 어느 한순간이라도 ‘숙의와 배려의 정치’를 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야당 정치인은 물론 여당 정치인도 피의자 보듯 했다.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에게 충성하고, 그 외 인물을 논 속의 피 취급해 모두 뽑아버리면 미래가 없다. 윤 대통령이 갑자기 보수정당 후보가 된 것은 후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또 그 전철을 밟고 있다. 잘못된 길을 가는 한 사람에게 끌려다니면 미래가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15

닉슨을 따라가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무산됐다.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에 부쳤으나,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퇴장해 ‘투표 불성립’으로 처리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한때 탄핵안이 통과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일단 탄핵을 저지하는데 힘을 모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비상계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민주당에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결과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대통령 선거가 촉박하게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앞으로 5개월 정도면 확정판결이 나온다. 벌금 100만원 이상 형만 확정되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한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피선거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재판도 줄줄이 걸려 있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연이어 탄핵당하는 기록을 남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 염치가 없다. 표를 달라고 해봐야 이런 분위기에서는 백전백패다. 국민의힘 계산으로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 처지다. 그렇지만 버텨서 해결될 일인가.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은 정치인의 당리당략에 있지 않다. 국민의 이익, 국민의 눈높이에 있다. 국민의힘이 아닌 국민의 손익으로 따져보면 윤 대통령의 명분이 너무 밀린다. 북한 위협이라느니, 야당의 폭주라느니 하는 건, 국회를 봉쇄할 핑계가 되지 못한다. 헌법이 그렇게 막아 놨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 ‘비상계엄’은 너무 즉흥적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비밀 유지를 해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격노’, ‘폭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듣는다. 정신적 불안만이 아니다. 비상계엄이란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면서 일을 도모하는 수준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위험’하면서 ‘무능’하기까지 하다. 군 통수권자의 심리적 불안은 정말 위험하다. 순간적인 판단 실수는 나라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늘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과거 독재자들이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잘 써먹던 수단이다. 윤 대통령은 국제적 신뢰를 잃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 사전 통보도 없이 계엄을 발동한 데 불쾌해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내년 1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방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최저치인 16%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계엄 발령 뒤 조사한 표본은 지지도가 13%에 불과했다. 국내외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통치력과 신뢰를 잃어버렸다. 의회를 총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후진국 독재자에게나 있는 행태다. 민주주의 진영의 지도자로서는 자폭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는 언감생심이다. 가뜩이나 민주당은 법과 예산을 틀어쥐고, 발목을 잡아 왔다. 이제 민주당의 그런 무리수가 국민의 박수를 받는 기가 막힌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라를 이런 꼴로 2년 5개월 방치해야 하나. 국민의힘이 정권을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를 망쳐야하나. 무슨 낯으로 다음 정권을 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멍청한 사람은 남 탓만 한다. 집무실 책상 위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명패를 놓아두었다. 야당이 반대해도 설득해 국정을 이끌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설득 노력 한번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건 핑계다. 잠시 탄핵을 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할건가. 왜, 무엇을 위해.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 혼란을 끝내야 한다. 탄핵에 앞서 스스로 진퇴를 결정한 닉슨의 길도 있다. 그렇게 해서 사면받았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마지막 충성이다. 국회도 함께 조기 수습할 길을 찾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08

정치권의 치킨 게임, 책임은 안 지나

김진국 고문 미친 짓이다. 여의도에 정치는 없다. 상대를 죽이려는 전쟁만 있다. ‘치킨게임’이 있다. 자동차가 전속력으로 마주 달린다. 그대로 달리면 두 자동차 운전자가 모두 죽는다. 공포를 이기지 못한 운전자가 옆으로 피하면 ‘치킨’(겁쟁이라는 뜻)이 된다. 둘 다 버티면 목숨을 잃게 된다. 이런 미친 게임은 없어졌다. 학술용어로나 쓰인다. 그런 치킨게임이 여의도에서는 벌어진다. 정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술이다. 타협과 양보가 미덕이다. 여의도는 완전히 거꾸로다. 공멸뿐이다. 문제는 국민이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치킨게임은 미친 짓을 한 사람이 책임진다. 정치인들의 치킨게임에서는 본인들이 멀쩡하다. 마주 달리는 건 정치인들인데, 피를 흘리는 건 국민이다. 무슨 나라 꼴이 이 모양인가. 솔로몬의 재판에서는 자기 욕심보다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이 진짜 부모다. 여의도와 용산에서 국민을 더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법대로’가 문제다. 상앙과 이사가 한국 정치를 장악했다. 대통령도, 야당 대표도, 여당 대표도 모두 법률가다. 법은 정치를 풀어가는 마지막 수단이다. 정치로 풀 것을 법에 넘기면 직무 유기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오기다. 양보하느니 함께 죽겠다는 무모함이다. 법은 최소한이 규칙이다. 법으로 다 풀 수 없다.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서로 ‘내 권한’만 내세운다.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가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건 말건, 후보가 부적격이라고 하건 말건, 임명장을 준다. 대통령이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절대다수 야당도 아무 고민 없이 무조건 부적격 판정을 내린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견을 들어보려고도 않는다. 법안을 결정하고, 청문회를 결정하고, 증인을 소환하는 일은 혼자서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는 배짱이다. 미국 대통령은 배짱이 없어 야당 의원에게 전화하고, 백악관으로 초청해 밥을 먹나.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할 법률과 예산도 통과하지 못한다. 애먼 국민만 피해다.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논란이다. 언제는 대통령이 당무에서 손을 뗐었나. 민주당 정부라고 달랐나. 어림도 없는 소리다. 여론도 무시한다. 지지율이 바닥을 쳐도 모르쇠다. 야당은커녕 국민에게 사과도 해명도 거부한다. 탄핵하려면 해보라는 배짱이다. 국민의힘 대표들을 줄줄이 쫓아냈다. 권위주의 시절 당총재를 능가한다. 민주당은 한술 더 뜬다.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무더기로 탄핵 소추하더니, 이제 감사원장까지 탄핵한다고 한다. 입에 올리는 것도 조심하던 탄핵이 감초 다루듯 한다. 21대 국회에서 13건, 22대 국회 들어 11건을 소추했다.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결정한다. 그렇지만 국회가 소추만 해도 직무가 정지된다. 엄연한 사법 방해다. 감사원이 지난 정부가 벌인 일들을 감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제통계 조작, 사드 배치 지연, 북한 GP 철수 부실 검증, 탈원전정책…. 감사원의 국정 바로잡기에 제동을 걸려고 또 탄핵이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핑계다. 방송통신위원장은 일을 하기도 전에 임명하자마자 바로 탄핵을 추진했다. 이제 직무대행까지 탄핵한다고 한다. 2인 방통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국회몫 방통위원은 추천하지 않는다. 방통위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다. MBC 등 공영 방송의 운영체계를 민주당에 유리하게 유지하겠다는 욕심이다. 내년 예산안에서 대통령비서실·검찰·경찰·감사원 특활비를 모두 삭감했다. 정부 예비비도 절반인 2조 4천억 원을 깎았다. “헌법이 보장한 대로” 심사했다고 한다. 지난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의 임원들이 윤석열 정부 임기가 절반이 지나도 버티고 있다. 대통령이 오른쪽으로 가는데, 공공기관은 왼쪽으로 간다. 정부가 마비되면 대통령 책임이다. 법대로만 하면 책임이 없나. 민주당이 소추한 탄핵안이 줄줄이 헌재에서 기각됐다. 정부 기능이 마비된다. 치킨게임은 미친 짓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 목숨을 건다. 국민을 걸고 치킨게임을 벌이는 정치인은 비겁하다. 무모한 탄핵이 기각돼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2-01

정치가 간섭하면, 재판이 ‘아수라’ 된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애처롭다. 1심에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2심, 3심이 남아 있다지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1심 형량을 고려하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벌금 100만 원 이상만 받아도 다음 선거에 나갈 수 없다. 아무리 감형 노력을 해도, 그 아래로 내려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게 끝이 아니다. 오늘(25일)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가 있다. 지난해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영장전담 판사는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됐다고 적시했다. 검찰 기소에서 유죄는 입증됐다는 말이다. 그 밖에도 3건의 재판을 더 치러야 한다. 갈수록 무거운 혐의들이다. ‘대장동·백현동·성남FC 특혜 의혹’을 묶은 재판과 대북 송금 혐의, 경기도 예산 1억여 원을 배임한 혐의도 있다. 며칠 전 부인 김혜경 씨가 유죄 판결을 받은 법인카드 유용 사건과 관련해 추가 기소됐다. 마지막 사건은 상대적으로 작아도 수치스러운 혐의다. 세금으로 이 대표 부부가 쇠고기·초밥·복요리 등을 시켜 먹고, 과일 등 제사용품, 샌드위치 등 아침식사, 세탁비까지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재했다는 내용이다. 경기도 의전용이라고 산 차를 김 여사 개인용으로 썼다는 부분도 있다. 이 대표는 정치보복이라고 분개한다. 하지만 권력형 부패를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표 대응도 바빠졌다. 이 대표는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 탄핵을 추진했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하건 말건, 탄핵 소추된 검사는 일단 직무가 정지된다.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에서는 이 대표 사건을 변호한 변호사들이 대거 공천받았다. 민주당 텃밭에서 모두 당선됐다. 민주당이 이 대표 변호용 로펌처럼 움직인다. 국회 법사위가 법원과 검찰을 흔든다. 국정감사, 국정 조사는 물론 특별검사까지 동원한다. 입법과 예산으로 방탄막을 친다.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해 가능해졌다. 검사를 무고죄로 처벌하는 형법 조항을 새로 만든다고 한다.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위증을 강요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는 자신에게 불리한 혐의가 모두 검찰의 무고요, 증거 조작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들을 향한 협박이다. 내년 예산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 80억 원, 특정업무경비 506억 원을 모두 깎아버렸다. 경찰청 특활비 32억 원·특경비·6481억 원과 감사원 특활비 15억원·특경비 45억 원도 민주당 단독으로 모두 삭감했다. 누가 봐도 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이다. 민주당은 국회 전체 의석의 5분의 3 가까이 차지했다. 전무후무하게 강력한 힘을 가진 야당이다. 권리와 의무는 함께 간다. 거대한 의석을 차지했으면 국회 활동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회가 특정 개인의 불법행위를 두둔하기 위해 정책을 추진하고, 예산을 배정하고, 법을 만들어도 괜찮은가. 허위 사실 공표와 관련해 이 대표에게 징역형이 떨어지자, 민주당은 아예 선거법의 관련 조항을 지울 궁리까지 한다. 공직선거법에서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원의 중형을 못 막을 거면 그 근거가 되는 조항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당선무효형 기준도 벌금 1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올려 고치기로 했다. 여기에 오비이락(烏飛梨落)이느니, 오얏나무와 갓끈 얘기는 너무 진부하게 들린다. 노골적인 방탄 입법인데, 포장은 민주주의다. 개정 제안서를 보면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라면서 “선거 과정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은 사법 자제(自制)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유권자에게 거짓말 좀 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는 말이다. 그런 거짓말 정도는 허용해야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고 한다. 살아남는 게 민주주의인지, 이 대표인지 헷갈린다. 공직 후보에게 거짓말을 허용하면 국민은 무슨 기준으로 표를 찍나. 민주당은 이재명 지키기에 올인한다. 정책도 예산도 거기에 맞춘다. 정의의 심판은 법정에서 가려야 한다. 정치가 끼어드는 순간 정의는 사라진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24

대선 불복 넘어 사법 불복인가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지난 금요일 선거법 위반 1심 재판 결과다. 집행유예라고 가벼운 처벌이 아니다. 선거법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으면 10년간,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5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제266조) 대법원에서 이대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가 앞으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현역 의원이 피선거권을 잃으면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국회법 제136조 제2항) 이 대표가 국회의원직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또 당선무효의 형이 확정되면, 그 사람이 선거 때 보전받은 비용을 모두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65조의2 제1항)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434억 원을 보전받았다. 이 대표가 못 내면 민주당이 물어내야 한다. 징역형은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여권도 마찬가지다. 여당 의원이 100만 원 이하 벌금을 예측해 비난받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형량일까. 아니다. 허위 사실 공표는 엄중하게 처벌해 왔다. 국민의 선택을 방해하고,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1야당의 대표이니 봐주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관측이 퍼져 있었다. 정치권에 불러올 엄청난 파장이 부담스러울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우리는 정치를 욕한다. 해마다 신뢰도 조사를 하면 언제나 정치 분야가 꼴찌다. 욕을 하면서도 정치인에 대한 특별 대우는 묵인한다. 정치인을 보는 자세가 ‘팬덤’으로 변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기준이 너무 감정적이다. ‘내로남불’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은 무엇을 해도 응원한다. 음주 운전을 한 연예인을 두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빠’(문 전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만 ‘우리이니(문재인 전 대통령)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외치는 게 아니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이 법을 조롱하면 그 법을 누가 지키나. 지지 정치인을 무조건 응원하는 유권자도 책임이다. 민주당 김동아 의원은 대장동 사건 변호를 하고 벼락 공천받았다. 그는 선거 직후 “4·10 총선 전날 이 대표를 굳이 재판에 불러 세워 놓은 것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며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적’이라는 말만 붙였지,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사법부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말이다.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민주당 독재’다. 민주주의가 건강해지려면 정치권력이 사법 권력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사법 권력이 정치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민주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부패다. 그냥 두면 돈과 자리를 나눠 먹는다. 어느 나라에서나 다나카 총리, 닉슨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사람을 구속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무지막지한 정치권력을 견제할 마지막 보루가 사법부다. 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을 두고 ‘정치의 사법화’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로 풀 것을 사법부로 떠넘기는 걸 의미한다.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권 내에서 풀어야 할 것을 재판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승자와 패자로 가르는 것은 최악의 정치다. 불법행위를 사법부가 심판하는 것과는 다르다. 불법행위를 사법부가 아닌 정치권이 어물쩍 처리하는 것은 ‘사법의 정치화’다. 정치의 ‘사법 방해’다. 무법 사회를 만든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라고 외쳤다. “손가락 하나라도 놀리고, 전화라도 한 통 하고, 댓글이라도 쓰고…” “손을 잡고 싸우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의 변호사들에게 공천을 줘 민주당을 로펌처럼 만들었다. 모든 당력을 방탄에 모았다. 재판을 지연하고, 위증했다. 수사 검사를 탄핵하고, 검찰 예산을 깎았다. 이제 법원과 판사를 협박한다. 대선 불복을 넘어 재판 불복이다. ‘사법의 민주적 통제’가 이런 건가. 정치가 사법을 쥐고 흔들면 사악한 정치인만 살아남는다. 정치의 사법 방해를 방치하면 불법과 사기가 지배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우둔하지만, 정치의 사법 통제는 훨씬 더 위험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17

민심과 업고 가려는 노력이 없었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기자회견후 여론이 더 안 좋아졌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17%로 한 주 사이에 2% 떨어졌다. 기자회견 전에 조사한 것인데도 그렇다. 실제로 듣는 여론은 더 나쁘다. 당장 보수 언론들조차 모두 윤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윤 대통령 ‘어찌 됐든’ 사과”라는 냉소적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가 “저와 아내 처신 올바르지 못해 사과드린다”라고 가장 우호적으로 붙였다. 그런 조선일보의 양상훈 주필도 칼럼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좀 더 많은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의 회견에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가득하다. 그는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 제 처를 많이 악마화” 한다며 “본인도 억울함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휴대폰에 온 문자에 답하느라 밤을 새운 부인에게 “미쳤냐”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나 “순진한 면이 있다”는 답변에서는 애잔함이 배어있다. 이게 무슨 잘못이냐는 항변으로 들린다. 끝부분에서 “무엇을 사과한다는 말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면 답하겠다”라고 버럭 화를 냈다. 국민의 분노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가 육영수 여사처럼 대통령을 도운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다르다. 공동통치자, 심하게는 대통령보다 더 위에서 인사와 정책을 흔들었다고 의심한다. 김 여사는 전화 녹취에서 “멍청해도 말을 잘 들으니까 내가 데리고 살지”라며 국정을 자신이 주무르는 듯한 말을 쏟아냈다. ‘김건희 라인’ 행정관이 수석비서관의 말도 무시하고, 공적 위계질서를 파괴한다고 걱정한다. 최근 주요 공직에 대통령이 내정한 사람을 제치고 뒤늦게 김 여사가 추천한 인사가 차지했다는 소문까지 나온다. 한국일보 한희원 논설위원이 “우리는 김건희 여사를 뽑지 않았다”라며 날을 세운 이유다. 물론 대통령제 국가에서 영부인의 역할에 대해 논란이 많다. 존 로버츠 2세는 ‘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에서 “백악관의 여성들은 국가의 대소사와 선거, 대통령의 인사정책에서 항상 분명한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라며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던 퍼스트레이디들조차 어느 정도의 정치적 개입을 했다”라고 말했다. 내조형이었던 낸시 레이건의 부속실장 제임스 로즈부시는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라며 “대통령직 수행은 두 사람의 직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을 “우리나라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고 미화했다. 관광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영부인이 ‘단독 외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역할 범위가 넓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통령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각에) 기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 인수 과정에 매우 깊게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부자처럼 정치적 역할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기 때는 딸 이방카와 사위가 공개적으로 활동했다. 그렇다고 “선출되지 않은 아들과 딸이 왜 설치느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억울해하는 것도 한편 이해가 된다. 그는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서 선거도 좀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 하길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 국민이 용납할 범위를 넘어섰다. 역할을 넓히려면 민심부터 얻어야 한다. 믿음이 있으면 일을 할수록 칭찬받는다. 미국에서도 영부인 역할 기준은 고무줄이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천공’이네 ‘미륵’이네…수준 미달인 사람을 가까이하고, 풍수를 따져 집무실을 옮기고…. 이런 소문부터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다. 그런 의심을 풀어주지 못하면 영부인의 역할을 완전히 접어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10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지난 1일 문화일보가 발표한 창간 기념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17%였다. 반면 부정 평가는 78%였다. 같은날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19%, 부정 평가는 72%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두 여론조사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한 의혹을 담은 녹음 파일이 공개되기 직전 실시됐다. 조사가 끝난 직후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하는 윤 대통령 육성이 처음 공개됐다. 김건희 여사는 “오빠, 이거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라며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요구를 빨리 들어주라고 재촉했다는 명태균 씨의 목소리 녹음도 공개됐다. 지지율 10%대는 심리적 탄핵상태라고 한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놀랍지도 않다. 앞으로 녹음 내용에 실망한 여론이 어디까지 더 떨어질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직전 보인 현상과 비슷하다. 당시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9월까지 30%대 지지율을 지키다, 10월 들어 20%대로 떨어졌다. 그러다 10월 셋째 주 25%에서 넷째 주 17%로 떨어지더니, 11월 곧바로 5%로 추락하면서 탄핵당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일탈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계속 여론을 자극했다.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건 대구·경북(TK) 여론이다. 폭로로 의혹이 부풀어 오르면서 최후의 보루인 TK마저 지지를 거둬들였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지자, 지지율이 10%대로 급전직하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TK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18%였다. 직전 조사의 26%에서 8%나 빠지면서 10%대로 곤두박질했다. 부정 평가는 69%였다. 보수 세력의 지지기반인 60대 이상에서도 부정 평가가 높았다. 60대는 긍정 평가가 24%, 부정 평가 66%, 70대 이상은 긍정 평가 41%, 부정 평가 47%였다. 국민의힘 지지자도 긍정 평가(44%)와 부정평가(44%)가 같다. 정당 지지율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32%로 같은 점을 고려하면 지지층도 윤 대통령에게 실망한 것이다. 선거 때는 별별 사람이 다 달려든다. 후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진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정치 초보다. 화술 좋은 사람이 그럴듯하게 해설하면 빠져들 수 있다. ‘윤핵관’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명태균 씨가 풀어냈다고 한다. 편법이건, 불법이건, 정치입문자의 눈에는 능력자로 보였을 법하다. 그런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선거 때는 작은 힘이라도 보탠다. 잘못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사실대로 털어놓고 국민의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대통령 내외는 명 씨를 잘 모르는 사람 취급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가. 어떤 경우든 양파나 살라미처럼 야금야금 비리가 드러나는 것만큼 나쁜 방법은 없다.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나씩 터져 나올 때마다 변명과 거짓말로 일을 키운다. 윤 대통령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이라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대응이다. 이제라도 단칼에 잘라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아내를…”처럼 다시는 그 말이 안 나올 선까지 뒤집어야 한다. 선거 때는 후보 주변 사람이 당연히 총동원된다. 배우자는 가장 훌륭한 참모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아무리 큰 역할을 했어도, 당선된 사람은 후보 한 사람이다. 선거가 끝난 즉시 뒤로 물러났어야 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많은 일이 있었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모두 던져 사죄하고, 스스로 위리안치하는 것이 본인도 살고, 대통령도 사는 길이다. 대통령 주변은 아직도 법률을 따진다. 불법이 아니라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법률만 따지면 불법의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한다. 살라미의 덫에 걸린 이유다. 무서운 건 신뢰 상실이다. 재판이 아닌 정치로 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그 질문을 할 때다. “오빠, 대통령 자격 있는 거야?”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1-03

대통령은 영부인 의혹을 어떻게 풀 작정인가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바닥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20%. 9월 2주 차에 이어 윤 정부 출범 이후 최저점을 다시 찍었다. 부정 평가는 70%에 이르렀다. 4대 여론조사기관의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22%를 기록했고, 리얼미터 조사도 24.1%로 가장 낮은 기록을 세웠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 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취임 이후 곧바로 30%대에 묶인 지지율은 지난 4월 총선 이후 20%대에 갇혔다. 마침내 20%의 벽마저 깨질 기미를 보인다. 호전될 것 같지 않다. 부정 평가한 첫 번째 이유로 ‘김건희 여사 문제’를 꼽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김 여사 문제’가 14%로 1위다. 그다음이 ‘경제·민생·물가’(14%), ‘소통 미흡’(12%), ‘전반적으로 잘 못한다’(6%), ‘독단적 일방적’(6%) 등이다. 경제 문제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두 김 여사 문제와 얽혀 있다. 소통 미흡, 독단….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준 가장 큰 배경이 김 여사 문제다. 야당은 물론 집권당과의 관계도 모두 김 여사 문제에서 부딪치고 있다. NBS조사에서는 김 여사가 대외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73%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지자 57%, 대구·경북 응답자 61%도 김 여사의 활동 중단을 요구했다. 김 여사 문제에 관한 의견이 출신 지역이나 지지 정당과 관계없이 비슷하다는 말이다. 국정 평가는 영남권에서도 저조하다. 보수세력의 지지기반이라 할 대구·경북(TK)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26%로 부정 평가 60%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긍정 평가 27%, 부정 평가 59%로 TK와 비슷하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국정 수행지지율이 대구·경북은 35.2%에서 27.1%로 일주일 만에 무려 8.1%포인트, 부·울·경에서는 33.1%에서 26%로 7.1%포인트 추락했다. 그런데도 김 여사 문제는 여야 대립을 넘어 여야 갈등으로 비화했다. ‘친윤’은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정략적이라고 생각한다. 한동훈 대표에 대해서도 ‘차기에 대한 욕심’에 눈이 어두워 자기를 키워준 대통령 내외를 배신했다고 주장한다. 정치를 하려는 한 대표에게 그런 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민심이 먼저다. TK와 PK에까지 나타난 민심은 무엇인가. 이 민심이 ‘배신’인가. 아니면 지지기반의 신뢰를 윤 대통령이 배신한 건가. 당장 윤 대통령은 영부인에 대한 국민 의혹을 어떻게 풀 생각인가. 이대로 뭉개면 해결될 거라고 믿는 건가. 김 여사에 대한 의혹은 이제 열거하기도 힘들다. 물론 시중에서 제기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김 여사의 개인적 억울함이야 죽을 때까지 지고 가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국정이 흔들리고, 여권이 신뢰를 잃고, 사분오열해 차기 정권 재창출이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서로 짖으며, 사법 질서가 신뢰를 잃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까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빌미를 만들고 있다. 김 여사가 명품 가방을 받는 모습은 온 국민이 자기 눈으로 봤다. 믿지 못할 사람들과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천박한 언어로 대통령을 폄훼하고, 국정을 자기 손으로 주무르는 듯이 떠드는 오만한 언사를 귀로 들었다. 적어도 이미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앞에 해명하고, 백배사죄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보수세력의 미래를 무너뜨리고, 국정을 혼란에 빠뜨렸으면 어떻게든 빨리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게 지도자가 할 일이다. 그런데 치졸한 방법으로 고립시키고, 부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하게 된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집권당 대표치고, 온전히 성해서 나간 사람이 없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치고, 협량한 보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너도 나도 비위나 맞추며 사리를 도모하니 집권당 꼴이 말이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27

여론조사가 항상 민심은 아니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여론조사가 나왔다. ‘여론조사 꽃’의 10월 둘째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가 19.2%였다. ‘잘못하고 있다’는 무려 4배가 더 많은 80%였다. 지난주 한국갤럽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2%로 나왔으니, 큰 차이가 없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꽃’ 발표는 표본오차가 ±3.1%다. 6% 정도 차이는 차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10%대’라는 상징이 주는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여당에서조차 “10%대면 심리적 탄핵 상태”라는 말이 나온다. 여론조사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차 범위를 명시해 놓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 그게 ‘여론조사 꽃’이어서 뒷말이 나온다. ‘여론조사꽃’은 김어준 씨가 TBS(교통방송) 뉴스 진행을 그만두고,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면서 만든 여론조사 업체다.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총선 때 부산 해운대 갑 여론조사를 해 민주당 홍순헌 후보가 50.9%, 국민의힘 주진우 후보가 41.8% 나왔다며, 홍 후보와 전화를 연결해 응원했다. 일주일 뒤 선거 결과는 주 후보 53.7%, 홍 후보 44.61%였다. 일주일만에 뒤집힌 걸까. 지난 16일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론조사꽃’은 민주당 김경지 후보가 40.9%로 국민의힘 윤일현 후보(37.7%)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 윤 후보가 61%를 얻어 김 후보를 무려 22%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열흘 사이에 이렇게 뒤집혔을까. 영부인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문자를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명태균 씨도 여론조사를 무기로 삼았다. 그가 여직원에게 전화로 여론조사 수치 조작을 지시하는 듯한 녹음이 공개됐다. 그는 선거 때 수시로 윤 대통령 부부와 전화와 문자를 했다고 주장했다. “(나를 구속하면) 한 달이면 (윤 대통령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 감당되면 하라고 할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김 여사가 보낸 문자를 공개했다. “우리 오빠 용서해 줘, 무식하면 원래 그래, 지가 뭘 안다고”. 그러면서 김 최고위원이 방송에 나오면 매일 새로운 문자를 공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김 최고위원은 바로 방송출연을 중단했다. 이 명 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접근하고, 귀를 잡은 수단도 여론조사다. 여론조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오늘 만난다. 가장 큰 논점이 김건희 여사 특검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63%가 찬성했다. 이게 여론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원전을 할 건지 말건지, 국민연금을 몇 %나 올릴 건지, 온갖 사회적 이슈를 여론조사로 물어본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조사한 여론인가. 심지어 명 씨는 “나한테오면 3개월이면 대통령 만든다”라고 큰소리쳤다. 정당 공천도 여론조사로 결정한다. 다른 요소가 있어도 여론조사가 결정적 힘이다. 오차 범위 안의 차이라도 승패가 갈라진다. 총선 때 여론조사는커녕 가장 정확하다는 출구조사도 맞힌 적이 없다. 그런데도 정확한지 여부는 불문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는 여론조사로 단일화했다. 국회의원 후보는 물론 대통령 후보까지 여론조사가 결정하는 세상이다. 후보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 사람은 다수에 잘 휩쓸린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나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명품 가방을 다른 나라보다 비싸게 팔아도 오픈런 하는 이유다. 선거 때는 여론조사에만 관심이다.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보이면 ‘밴드웨건 효과’가 나타난다. 열세 후보 지지자는 지레 투표를 포기하기도 한다. 사표(死票)를 만들지 않으려는 심리다. 그럴수록 여론조사가 엄정해야 한다. 낮은 응답률, 균형이 맞지 않은 표본은 가중치를 조정한다. 이걸 ‘마사지’라고 부른다. ‘마사지’가 조작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석 달이면 대통령을 만드는 바람몰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런 조작술에 민주주의를, 나라의 운명을 맡겨놓을 수는 없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20

김건희, 윤석열, 혹은 보수정권

김진국 고문 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하라고 하면 복장이 터질 법도 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명태균 씨 문제에 대한 대통령실 언급을 들어 보면 억울하다는 심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명 씨가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뛰었다는 것 이외에 아직 확인된 사실은 없다. 명 씨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뛴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왜 점점 더 꼬이게 만드는 걸까. 명 씨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의원은 명 씨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잘 짜는 사람”이고, “아이디어가 많다”라고 한다. 또 “자기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일을 한 다음 성과를 주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저런 가능성이나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라고 말했다. 명 씨가 많은 정치인들을 만난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학생 시절 이후 검사로서 수사밖에 해보지 못했다. 김 여사는 미술 기획 일을 해 인맥이 넓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을 만난 건 아니다. 명 씨의 조언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모르지만, 이준석 의원이 저렇게 평가할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는 건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다 자기 잇속을 챙기는 계산이 있다. 자신의 운명을 그런 사람에게 완전히 맡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럴 때 알려지지 않은, 감추어진 비밀 무기로 명 씨가 적임자였을 수 있다. 이준석 의원은 “윤 대통령 당선을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명 씨를 졸(卒)로 쓰고 버리려고 하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좋게 생각하면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선거 때 도와줬다고 자리를 챙겨주고, 공천 지분을 나눠주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필요한 사람과 국정을 운영할 때 필요한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선거 공신들이 전리품 잔치를 벌인다느니, 낙하산 공천을 한다느니 하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니 칭찬만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쉽게 넘어갈 일이 커지는 것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혹은 영부인이, ‘저런 허접해 보이는 사람’의 훈수를 들었다는 게 창피한 건가. 왜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해 의심을 사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2021년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명 씨가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 정치인과 자택을 찾아와 두 번 만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하지 않으니만 못한 해명이 됐다. 의혹은 의혹을 불러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명 씨와 김 여사가 문자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얘기를 나눈 것도 확인됐다. 대통령실 해명이 하루도 안 지나 논박당하니 이런 망신이 없다. 사실은 인정했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감추고, 도망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된다. 주변에서 사과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그들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과해서 망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사과하지 않았으면 온전했을까. 문제는 사과가 때를 놓쳤고, 번번이 기대에 못미치는 뒷북이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하루 만에 뒤집히는 대통령의 권위를 누가 지키나.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는 암세포보다 더 넓게 잘라내야 한다. 생살이 아깝다고 환부에 바투 자르면 전이를 막지 못한다. 종국에는 환자를 죽이는 길이다. 그런 건의를 하는 사람은 환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첨꾼이다. 윤 대통령은 ‘사랑꾼’으로 소문나 있다. 김 여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단계는 지났다. 민심이 점점 더 흉흉하다. 서투른 해명으로 덧나게 할 이유가 뭔가. 김 여사에서 끝낼 건가,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처를 입을 건가. 그도 아니면 정권을 내주더라도, 김 여사만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기필코 지킬 건가. 결국은 게도 구럭도 다 잃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13

정치인부터 법의 코뚜레를 꿰어야 한다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여론이 분분하다. 검찰이 2일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고위공직자 부인이 수백만 원짜리 선물을 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법이 그렇다. 남편인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물을 준 최재영 목사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의 국정자문위원 임명, 사후 국립묘지 안장, 통일TV 송출 재개 등을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모두 윤 대통령의 직무에 속하는 문제들이다. 최 목사는 2022년 6∼9월 사이에 300만 원짜리 디올백, 179만 원어치 샤넬 화장품 세트, 40만 원 상당의 양주를 김 여사에게 줬다고 했다. ‘뇌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많은 돈을 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지만 부인은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게 검찰 결론이다. 그 직무를 하는 대통령은 남편이지, 김 여사가 아니다. 검찰은 “수사팀이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검사의 ‘양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난타했으니 차치하자. 법을 어떻게 만들어놨길래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나. 시장에게 인사 민원이 있으면 시장 부인에게 비싼 선물을 하면 된다는 말이 된다. 청탁할 일이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 부인을 찾아가 ‘선의’이고, ‘친교’를 하기 위해서라며 뇌물을 먹이면 대가성이 없는 게 된다. 부패하고 망조가 든 나라가 떠오르지 않나. 사실 청탁금지법을 만들 때부터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었다. 가장 부패 위험이 큰 직군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들어주는 것은 예외로 했다. 국회의원이 민원은 들어야 한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규정은 모호한 고무줄이다. 엄격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가장 부패하고, 가장 불신받는 정치인은 제외됐다.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이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한 규제는 느슨하다.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액수의 금품을 수수·요구·약속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다. 김 여사도 처벌할 수 없다. 민주당은 김 여사 문제를 연일 공격한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윤 대통령 부부를 공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런 일을 반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법은 손 보지 않을까.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특혜를 누리려는 걸까. 의원 신분인 지금도 같은 처지여서인가. 민주당은 2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탄핵 청문회’를 열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앉혀놓고, 해명을 들었다.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를 엄호하는 청문회다. 민주당은 이 밖에도 이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 소추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들의 직무가 정지된다.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어떻게든 대법원판결을 늦추려는 지연전술에는 특효약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변호해 온 사람들을 대거 공천해 의원으로 만들었다. 의원 신분으로 검사와 판사를 겁박한다. 국회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해 이들을 국회로 소환해 압박한다. 국회의원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국회의원이라도 재판을 두고 사법부를 좌지우지하려는 이런 일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운동권 대부라는 장기표 씨가 타계했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180여 개의 엄청난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내각제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걱정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부패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국정을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만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헌정체제이건 정치 부패를 방지하려면 사법제도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대통령은 부인 문제로, 야당은 당대표 문제로 검찰과 법원을 마구 흔들어대니 걱정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06

윤석열과 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김진국 고문 김건희 여사는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 단골메뉴다. 27일 전현희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 무속 논란에 휩싸이자, 배우자가 구약성경을 다 외운다고 거짓말했다”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서 그는 “당선 목적의 허위 사실 유포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김 여사가 39권 929장, 2만3천145절 방대한 양의 구약성경을 외우는지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재명 대표는 “이런 거짓말은 죄가 안 되는 것”이라며 “제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 징역 5년쯤 구형받았을 것”이라고 빈정댔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11월 15일 선고 예정이다. 이 대표가 재판받고 있는 7개 사건 4개 재판 가운데 가장 먼저 선고가 나온다. 이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이 전전긍긍이다.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한다. 민주당은 사생결단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의 탄핵을 추진했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할 거라는 걸 민주당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동안 검사는 직무가 정지되고, 수사도, 재판도 지연된다. 국회에 검사들을 불러 호통치고, 모욕한다. 검사도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했다. 그것도 모자라 ‘법 왜곡죄’ 입법을 추진한다. “검사 등이 피의자·피고인을 처벌하거나, 처벌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증거 해석·법률 적용 등을 왜곡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용이다.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를 법 왜곡 혐의로 쫓아내고, 처벌하겠다는 위협이다. 법사위에 관련 증인들을 불러 추궁한다. 법원 역할까지 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대표를 방탄하는 이런 피나는 노력에서 빠지지 않는 게 ‘김건희 여사’다. 27일 최고위원회의도 그 중 하나다. 여론에 잘 먹히기 때문이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은 끝도 없다. 명품백 사건은 가장 비난받는다. 고위공직자가 부인을 통해 뇌물을 받으면 문제가 없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있다. 2020년 수사가 시작될 때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와 40여 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이 나왔다. ‘선수’였던 김 모씨가 쓴 편지에 “김건희만 빠지고 우리만 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종호 전 대표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에서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여사가 개입해 사건이 꼬였다는 주장이다. 공천 개입 의혹도 있다. 김영선 전 의원과 브로커 역할을 한 명태균 씨의 통화에 김 여사가 나온다. 2022년 경남 창원 의창 보궐선거에 김 전 의원을 공천한 것도 김 여사라고 주장한다. 한동훈 대표와의 문자, 서울의 소리 기자와의 장시간 통화, 최재영 목사와의 문자 등을 생각하면 이런 문자나 통화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터져 나올지 위태위태하다. 명품백처럼 명백히 드러난 사건에도 김 여사는 사과를 거부한다.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괘씸죄까지 얹혔다. 민주당은 김 여사 관련 8가지 의혹을 특검 수사 대상에 올렸다. 당내에 TF·조사단을 꾸린다. 민주노총 등은 28일 전국 주요도시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를 열었다.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 박탈은 사형과도 같다. 최고의 방어막은 김 여사다. 마지막 카드는 ‘탄핵’이다. 어이없는 ‘계엄설’을 계속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 덕에 연명하듯, 윤 대통령도 이 대표 덕에 버틴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하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8%다. 보름 전 20%를 찍은 뒤 10%대로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런데도 버틴다. 이 대표 덕이다. 적대적 공생이다. 발 벗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범죄 혐의로 적대적 공생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29

통일정책은 국민 합의가 먼저다

김진국 고문 “통일 하지 말자”라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이 파문을 던졌다. 그는 19일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라면서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전대협 의장 시절 임수경을 북한에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는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통일 하지 말자”라고 외치니 많은 사람이 놀랐다. 지난 연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북한은 통일 관련 구호나 조직을 모두 없앴다. 동포가 아니라 ‘원쑤’가 된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과 연관 짓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보수진영은 일제히 김정은 주장에 장단 맞춘다고 비난했다. 해방 정국에서 통일은 절대 가치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비한 역사전쟁은 지금도 뜨겁다. 우파인 백범까지 내세우며 통일을 강조하던 진보 진영이 갑자기 통일하지 말자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2 국가론에는 여러 가지 전략적 암수(暗數)가 숨어 있다. 분명한 것은 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진 통일’을 주장했다. ‘평화통일’은 금기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7.4 남북 공동선언을 하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구체적인 통일정책을 처음 만든 것은 노태우 정부다. 이홍구 통일부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 야당 총재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녹여냈다. 이것을 김영삼 정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다. 자주·평화·민주 원칙과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이라는 3단계 통일 방안이다. 찬찬히 따져보면 여건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교류 협력하고, 통일을 미루자는 얘기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여정이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두 개의 나라는 아니지만, 서로의 실체를 인정했다. 유엔에 동시 가입해 국제적으로 두 나라로 인정받았다. 특수관계를 내세워 관세 등에서 국제사회의 특혜를 요구했다. 임 전 실장 발언에 놀랄 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감춘 비수와 그에 휘둘릴 가능성이 위험하다. 북한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6·25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남쪽의 좌파 단체와 학생운동권도 이에 동조했다. 전대협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 통일 한반도’는 자유의 이념으로 북한을 통일하겠다는 구상이다. 남쪽의 젊은이들은 이념 전쟁에 회의적이다. 통일을 반대한다기보다, 굳이 통일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바른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4월 20·30대 남녀를 조사한 결과 ‘통일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61%, ‘꼭 필요하다’는 응답은 24%였다. 통일부와 교육부의 22년 통일교육실 태조사에서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초·중·고생은 16.2%에 불과했다. 지난해 민주평통의 청소년 대상 조사에서는 통일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은 10명 중 1명,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7명이었다.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를 52.0%가, ‘단일국가 통일 모델’를 28.5%가 꼽았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다. 잘못된 안보 전략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적을 앞에 두고 분열하면 자멸(自滅)뿐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초당적인 노력 덕분이다. 통일·안보·외교를 다루는 자세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초당(超黨)적 대처는커녕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핵무기에 맨몸으로 노출된 위기 상황에서도 그러고 싶은지 참담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22

실행력 없으면 외고집 된다

김진국 고문 “저는 쉬운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4대(연금·의료·교육·노동)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는 것이 소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온다”라는 윤 대통령의 말은 일리가 있다. “정치적 유불리만 따진다면,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편한 길”이라는 말도 이해가 간다. 저항을 돌파해 개혁에 성공하라고 응원하고 싶다. 힘든 길에 국민의 동참을 요구할 수도 있다. 영국의 처칠이나 미국의 링컨도 고난의 길에 함께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려면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나 대국민 브리핑을 한 뒤에는 지지율이 더 떨어진다. 결기에 찬 그의 연설을 들을 때 왜 ‘역사와 대화하겠다’는 과거 대통령들의 말이 생각날까. 그들은 임기 말 우군마저 등을 돌려 고립됐을 때 ‘역사와의 대화’를 꺼내곤 했다. 국민 여론도, 같은 당 동지도 돌아서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역사’다. 동지는 ‘배신’했지만 역사는 내가 옳았다고 평가해 줄 것이라는 오기(傲氣)다.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감수하고 밀어붙일 줄도 알아야 한다. 윤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대 정부가 실패한 개혁 과제들은 저항이 만만치 않다. 박수를 보내고, 응원한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안 된다.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1일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의대 증원을 지지하던 여론이 오히려 나빠졌다. 4·11 총선 패배의 중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6월 3일 윤 대통령은 또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라고 직접 발표했다. 1975년의 비슷한 촌극이 오버랩됐다.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는데, 여론이 시큰둥했다. 사람들은 그걸 대통령이 왜 직접 발표했나 갸우뚱했다. 윤 대통령은 ‘상식’과 ‘공정’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시중의 ‘상식’과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번 국정 브리핑과 이어진 기자회견은 굉장히 낙관적이다. 언론 반응은 냉랭하다. 한겨레가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인식 드러낸 윤 대통령 회견”, “‘김건희 의혹’ 국민 의구심에 철저히 눈감은 윤 대통령”, 경향신문이 “‘뉴라이트·채 상병’ 궤변 연발한 윤 대통령, 국민이 바보인가”라고 비판적 사설을 쓴 것을 논외로 하자. 보수성향의 조선일보도 “대통령은 ‘블록버스터급’으로 경제가 좋다고 했는데”라는 사설에서 “대통령의 경제 발언은 이런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판단하고, 정책 대응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의 상황 인식, 민심과는 거리 멀다”고 지적했고, 동아일보는 기명칼럼에서 “다수 국민의 인식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인식”이라며 “구름속에 묻힌 구중궁궐이냐”라고 물었다. 다른 신문도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이 거의 일치한다. “국민과 동떨어진 대통령 인식 재확인한 국정브리핑”(한국일보) 대통령이 한번 결론을 내리면 뒤집기 어렵다. 대통령이 귀가 얇아 오락가락하면 안 되지만, 귀를 닫고, 입만 열어도 큰일이다. 대표적 친윤인 권성동 의원 말대로 대통령의 권력이 더 강하다. 설득하지 못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어쨌든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윤 대통령이다. 방향이 좋고, 의지가 굳건해도, 거대 야당 협조가 없으면 공수표다. 집권당 대표, 그것도 최측근으로 알려졌던 한 대표 한사람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야당 협조는 끌어낼 수 있나.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다. 역사가 평가할 훌륭한 국정 방향을 세상 사람이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다고 한탄할 수도 있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또 추락하는 지지율을 애써 외면해도, 그게 현실이다. 한탄만 하며 임기를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 더 궁금한 게 있다. 차기 정권 재창출은 할 수 있나. 다음 총선에서는 다수당을 차지할 비책이 있는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01

누구에게 맡겨도 더 좋아진다는 희망 줘야

김진국 고문 정치가 없는 시대다. 대통령의 축하난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연임을 축하하는 난(蘭) 화분을 보내기로 했다. 속마음으로 정말 축하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제1야당 대표가 선출되면 대통령이 축하해주는 게 관행이다. 그런데 축하와 감사를 전달하며 훈훈해야 할 축하난 전달이 정쟁의 불씨가 됐다.그게 정치력의 최고수여야 할 대통령 정무수석과 야당 대표의 수준이다. 난초 화분 하나 전달하는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려운 정치 쟁점들을 어떻게 풀겠다는 것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입씨름 내용도 한심하다. “아침부터 연락했으나 답을 못 받았다.”, “정무수석 예방 일자를 조율했으나, 축하난과 관련해 어떤 대화도 나눈 적이 없다.”축하난 하나 전달하는데 문자를 남기고, 답이 없다고 발표하는 건 뭔가. 대통령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답을 주지 않는 건 또 뭔가.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그게 축하난 전달인지, 뭔지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는 게 어이가 없다. 김명연 대통령 정무1비서관과 이해식 민주당 당 대표 비서실장이 전화 통화로 축하 난 공방을 멈추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축하난 전달을 위해 그렇게 바로 통화할 수는 없었는가.물론 양측이 의심할 수는 있다. 불신이 쌓여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이 보낸 난 화분을 돌려보냈고, 다른 소속 의원들은 ‘버립니다’라는 쪽지를 붙여 SNS에 올렸다. 그래도 민주당은 수권 정당이 아닌가. “지금 당장이라도 오라. 만나자”라고 전화하지 못하나. 윤 대통령도 직접 전화해 “축하한다”라고 말했으면, 더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정치 초보도하지 않을 오해와 갈등을 왜 방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대표가 코로나19에 걸려 입원했을 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쾌유를 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다. 조문 외교에는 전세계 정상들이 나선다. 핑계 김에 많은 정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문안도 마찬가지다. 난 화분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 운영이 어렵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절박하지 않은 것 같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담도 시간을 끌고 있다. 정치는 갈등을 푸는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범부가 보기에는 도저히 풀릴 수 없는 문제를 풀고, 해답을 내놓는 게 정치다.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게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다. 국정을 잘 운영해야 한다. 야당도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정권을 잡고, 국력을 낭비하며, 자기 주머니만 채운다면 ‘큰 도둑’에 불과하다.한 대표 측에서는 회담을 생중계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 측은 ‘정치 쇼’라고 의심했다. 밀실 회담은 오해를 낳는 일이 많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다반사다. 국민이 판단하도록 하자는 생각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정치는 설득과 타협이다. 윈-윈하는 상생 정치는 서로 명분을 얻어야 가능하다. 모든 것을 국민에게 알리겠다는 생각은 이해하지만 결국 양쪽의 강경 세력만 기세를 얻고,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상대 주장을 이해하기는 하나도 어렵지만, 꼬투리를 잡을 일은 수백 가지다.의제도 서로 생색낼 생각만 가득하다. 한 대표는 금융투자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등을, 이 대표는 채상병 특검법과 25만 원 민생지원금 등을 꺼낼 예정이다. 물론 이런 쟁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신은 생색이 나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정치 협상은 승패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크게 이기면 오히려 실패다. 당장 의대 증원으로 응급실이 무너지고 있다. 여야가 손을 잡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문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이 대표가 코로나로 입원하면서 실무 협상이 중단됐다. 기회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 정치를 복원하고, 두 사람 누구에게 맡겨도 나라가 발전하겠다는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25

인사 시스템에 문제 있다

김진국 고문 광복절에 낯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절 행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데, 같은 시각 효창공원의 백범기념관에서는 또 다른 기념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통일이 숙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남북통일은커녕 남쪽마저 두 쪽이 난 광복절 경축식을 치렀다. 광복회 기념식 맨 앞줄에 민주당을 비롯해 야당 대표들이 앉았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만 정부 행사에 참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독립기념관장 인사 문제가 온 나라를 해방 정국으로 되돌려놓았다. 광복회 행사 발언은 더 고약하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는 없다”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야당은 기념식장에 입장하기 직전 ‘친일·반민족 윤석열 정권 규탄 대회’를 열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3년이 지긋지긋하게 길다. 혁신당은 야당·시민사회와 함께 친일 밀정 정권 축출에 온 힘을 다하겠다”라고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이 이종찬 광복회장의 반발에서 비롯했다. 이 회장은 백범의 장손자인 김진 광복회 부회장을 추천했으나 탈락했다. 이 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뉴라이트’다, 건국절을 만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건국절을 제정할 의사도, 검토한 적도 없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김 관장을 사퇴시키라고 요구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 회장의 조부 우당 이회영과 종조부 성재 이시영 전 부통령 형제는 전 가산을 팔고, 온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명문가다. 이 회장은 과거 언론인터뷰에서 “작은할아버지(성재)께서는 정부 수립 전후로 사이가 틀어진 백범(김구)과 우남(이승만) 사이에서 두 분을 화해시키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라고 말했다. 단독정부수립에는 우남 노선을 따라 부통령이 되었다. 더구나 이 회장은 지난해 “이승만 기념관 설립에 대찬성”이라고 말했다. 이제 와 ‘이승만 우상화’라고 주장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광복을 위해 모두 바친 선조를 생각하면 개탄스럽다. 김형석 관장은 “건국절에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뉴 라이트’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광복회나 야당이 밝힌 그의 발언을 봐도 딱히 문제 삼을 내용이 아니다. 광복절 행사는 특정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축식이다. 인사에 이견이 있다고, 오물을 뿌릴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 경영 능력에 아쉬움이 남는다. 노무현 정부 때 한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관이 인사할 자리가 많다. 부처 내에는 물론 산하 단체 임원도 인사한다. 이것을 장관이 모두 임명하면 안 되고, 산하단체는 물론 부처 내 인사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실의 의견, 국·과장 재량권도 일정 비율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야 국장도 부하직원들을 지휘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종찬 회장은 대통령에게 세 번이나 사신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윤 대통령이 아들 친구다. “모욕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인사를 들어주든 말든, 성의를 다했으면 이 지경이 됐을까 싶다. 더구나 임기가 절반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공공기관장·감사 자리 39%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은 52%, 나머지는 공석이다. 임기가 끝난 사람들도 후임 인사가 오지 않아 1년 넘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비어 있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미루자 “총선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에게 줄자리인가 보다”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총선이 지나도 그대로다. 낙선자 배려가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꼭 챙겨야 할 자리 외에는 위임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다 쥐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는 자리에 집착해 분란을 일으킨다.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의 관심사인 경우다.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정권 창출 기여에 대한 보상도, 검증도 모두 문제가 있다. 임기가 절반이 다 가도록 이 모양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2024-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