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도 거리는 소란했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를 비롯한 서울의 거리 곳곳은 물론 구미 등 지방 도시에서도 수만, 수십만 인파가 몰려 아우성쳤다.
이번 주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하거나, 업무로 복귀하거나. 양단간에 결정이 난다.
그러고 나면 조용히 끝날까. 탄핵당하면 60일 내 다음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 경쟁으로 관심이 쏠릴까. 탄핵이 기각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까. 지금 거리에 쏟아져 나온 군중은 집으로 돌아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진 군중이 더 흥분하지 않을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건, 그 결정을 반대하는 군중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파괴적으로 흥분하지 않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보지 못한 일이다. 그때도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도록 시위가 이어졌다. 토요일마다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서울 시청과 광화문에서 집회하고, 행진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보다 혐의가 작았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책임졌다.
그런데 왜 지금 더 폭발했을까. 흥분한 보수 인사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보수세력은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비상계엄보다 더 두려워한다. 이런 식이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바로 공산화된다”, “빨갱이 세상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나”….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논리를 비약하고, 비약해서 쏟아내는 억지를 일일이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이 대표가 뿌린 씨앗들이다. 이 대표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적대적 공생 관계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이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지금도 누구를 더 싫어하느냐로 세력을 끌어모은다. 탄핵 반대 세력을 모아준 1등 공신이 이 대표다. 뒤늦게 놀란 이 대표가 광화문 앞에서 연 최고위원 회의에도 빠졌다.
이 대표는 수시로 말을 뒤집었다. 최근 대선이 가깝다고 생각해선지, 우클릭 행보를 했다. 그러고는 여론의 눈치를 보며 다시 좌클릭했다. 이 대표는 과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했다. 가벼운 말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최근 사법 리스크를 대처하면서도 상식과 다른 해명들이 신뢰를 흔들었다.
지난주 헌재는 민주당이 소추한 탄핵 건을 줄줄이 기각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밀어붙인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반부패2부장에 대한 탄핵 심판이다.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탄핵 근거들을 모두 배척했다. 민주당의 무리한 탄핵소추였음을 확인시켜준 판결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탄핵소추안을 29번 발의했다. 13건을 강행 처리했다. 역대 모두 합쳐서 16건인 탄핵소추 가운데 3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이 정부에서 민주당이 한 것이다. 지난주까지 그중에 8건이 기각됐다. 탄핵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탄핵을 기각한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탄핵 심판하는 동안 해당 고위공직자의 손발을 일하지 못하게 묶어놓게 된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이유로 지적했을 정도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쫓는다고 한다. 너무 궁지에 몰지 말라는 경구다. 그런데 이 대표는 권력을 너무 휘둘렀다. 이 대표는 대통령 관심 예산을 모조리 칼질했다. 윤 정부의 국정 방향과 충돌하는 법안을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윤 대통령 내외를 특검으로 몰아세웠다.
당내 정치도 그렇게 했다. 지난 총선 공천이 전형적이다. ‘비명횡사’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박용진 전 의원 낙천 과정은 드라마보다 극적이었다. 이 대표와 갈등을 빚은 사람들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집권하면 상대 정당에도 같은 보복을 할 것 같은 공포를 심었다. 탄핵 반대 여론이 높아진 책임의 상당 부분을 이 대표가 떠안아야 하는 이유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