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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을 따라가라

등록일 2024-12-08 20:11 게재일 2024-12-0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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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무산됐다.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에 부쳤으나,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퇴장해 ‘투표 불성립’으로 처리됐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한때 탄핵안이 통과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일단 탄핵을 저지하는데 힘을 모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비상계엄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정권이 민주당에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결과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대통령 선거가 촉박하게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앞으로 5개월 정도면 확정판결이 나온다. 벌금 100만원 이상 형만 확정되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못한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피선거권이 박탈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재판도 줄줄이 걸려 있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연이어 탄핵당하는 기록을 남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 염치가 없다. 표를 달라고 해봐야 이런 분위기에서는 백전백패다. 국민의힘 계산으로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하는 처지다. 그렇지만 버텨서 해결될 일인가.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은 정치인의 당리당략에 있지 않다. 국민의 이익, 국민의 눈높이에 있다. 국민의힘이 아닌 국민의 손익으로 따져보면 윤 대통령의 명분이 너무 밀린다. 북한 위협이라느니, 야당의 폭주라느니 하는 건, 국회를 봉쇄할 핑계가 되지 못한다. 헌법이 그렇게 막아 놨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 ‘비상계엄’은 너무 즉흥적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비밀 유지를 해온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격노’, ‘폭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듣는다. 정신적 불안만이 아니다. 비상계엄이란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면서 일을 도모하는 수준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위험’하면서 ‘무능’하기까지 하다.

군 통수권자의 심리적 불안은 정말 위험하다. 순간적인 판단 실수는 나라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늘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다. 미국 학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과거 독재자들이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잘 써먹던 수단이다.

윤 대통령은 국제적 신뢰를 잃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윤 대통령이 미국에 사전 통보도 없이 계엄을 발동한 데 불쾌해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흔들린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내년 1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방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최저치인 16%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계엄 발령 뒤 조사한 표본은 지지도가 13%에 불과했다. 국내외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통치력과 신뢰를 잃어버렸다. 의회를 총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후진국 독재자에게나 있는 행태다. 민주주의 진영의 지도자로서는 자폭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는 언감생심이다. 가뜩이나 민주당은 법과 예산을 틀어쥐고, 발목을 잡아 왔다. 이제 민주당의 그런 무리수가 국민의 박수를 받는 기가 막힌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라를 이런 꼴로 2년 5개월 방치해야 하나. 국민의힘이 정권을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를 망쳐야하나. 무슨 낯으로 다음 정권을 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멍청한 사람은 남 탓만 한다. 집무실 책상 위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명패를 놓아두었다. 야당이 반대해도 설득해 국정을 이끌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설득 노력 한번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건 핑계다.

잠시 탄핵을 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할건가. 왜, 무엇을 위해. 나라를 생각한다면 이 혼란을 끝내야 한다. 탄핵에 앞서 스스로 진퇴를 결정한 닉슨의 길도 있다. 그렇게 해서 사면받았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마지막 충성이다. 국회도 함께 조기 수습할 길을 찾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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