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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법 왜곡죄’가 아니라 ‘왜곡 입법죄’가 필요하다

김진국 고문 낯선 변호사들이 줄줄이 공천받을 때부터 알아봤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박용진 전 의원을 밀어내고, 낯선 30대 변호사가 공천받았다. 박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64.45%)을 얻었다. 이 대표도 “(자신과 대표 경선한) 박 의원 같은 사람이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런 박 전 의원을 밀어내고 공천받은 사람이 김동아 의원 이다.그는 이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비서실장의 변호인이다. 소위 ‘대장동 변호사’의 한 사람이다. 이렇게 당선된 ‘대장동 변호사’만 5명이다. 이들은 이제 검사와 대등하게 법리를 다투는 위치가 아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검사는 물론 판사까지 불러 호통치게 됐다. 정상적인 재판이 되겠나.쌍방울 대북 송금과 관련해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중형을 선고받자, 민주당은 검찰과 법원을 일제히 때렸다. 특검으로 ‘왜곡 수사’를 밝히겠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하면 수사 검사들을 탄핵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또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해도 소용없도록 이미 시행 중인 상설 특검법을 개정하려 한다. 국회(사실상 민주당)가 추천한 후보를 대통령이 3일 내 임명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임명되도록 고치겠다고 한다.판사도 손아귀에 쥐려고 한다. 법관 탄핵을 거론하고, 형법에 ‘법 왜곡죄’를 신설하려 한다. ‘판·검사가 증거나 사실관계를 조작하고, 공소권을 남용’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왜곡이지, 누가 봐도 이재명 대표를 털끝도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다. 이 대표는 연일 자신에 대한 수사가 ‘소설’(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김동아 의원은 “사법부에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라는 말도 했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원 판결까지 통제하겠다는 말이다. 삼권 분립을 전제로 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허물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구체적으로 ‘판사 선출론’이 나온다. 기존의 판사들이 하는 판결을 믿지 못하겠으니, 판사를 직접 뽑자는 것이다.대장동 변호사 출신인 이건태 의원은 ‘표적 수사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영장 청구를 기각하도록 한 ‘표적 수사 금지법안’을 제출했다.이 대표를 변호한 양부남 의원은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있는 범위를 대폭 줄인 ‘피의 사실 공표 금지법안’을 냈다.김용민 당 검찰개혁TF팀장은 ‘법 왜곡죄’ 형법 개정안과 별도로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위증을 강요하는 경우 처벌’하는 ‘수사기관 무고죄’ 신설법안도 내놨다.얼마나 화려한가.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비난에도 꿋꿋이 밀어붙인 공천이 빛을 내고 있다. 기상천외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법안들이다. ‘법비(法匪)’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표현이다. 조국 사태로 검찰 수사권을 박탈한 ‘검수완박’은 애교다.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수사에서는 피의자의 변호사들이 판사의 판결까지 좌우하려 한다.물론 검찰이 모두 잘하는 건 아니다. 검찰의 잘못된 수사로 고통을 받은 사람이 없지 않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대법원장부터 정치적으로 몰아내고, 권력자의 입맛대로 임명해 법관 인사를 휘저으면서 엉망이다.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판사들이 늘어나면서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게 됐다.그러나 그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다고 사법부의 독립을 묵살하고, 법원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면 혼란을 부채질하고, 신뢰를 더 허물게 된다. 왜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고 했겠나. 대놓고 ‘입법질’이다. 의원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이 대표 재판에 항의한다. 그런 판에 낸 이런 법안은 아무리 변명해도 ‘방탄용’이다.22대 국회를 민주당 단독 개원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여당에 개원 압박을 할 때는 “(국민의힘이) 산적한 민생 법안을 인질로 잡는다”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국회를 열고는 민생이 안중에 없다. 이 대표 한 사람을 위한 국회다. ‘법 왜곡죄’가 아니라 ‘왜곡 입법죄’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제발 자중자애(自重自愛)하기를 바란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6-16

이러고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까

김진국 고문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야당이 단독으로 의장을 선출한 것은 의회 사상 처음이다. 11개 상임위원장도 10일 단독으로 선출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과 논란을 벌인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겠다고 한다.국민의힘이 합의를 거부하지만 일사천리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까지 뺏기면 국민의힘은 견제할 수단이 없어진다. 두 가지를 나눠서 맡는 게 관행이었다. 국회 의석 비율이 비슷했던 21대에서도 후반기에는 법사위를 국민의힘에 돌려줬다. 관행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협상할 생각이 아예 없다.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4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임기 2년 만에 벌써 일곱 번째, 법안으로는 14번째 거부권 행사다. 현행 헌법이 개정된 1987년 이후 가장 많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7번, 노무현 전 대통령이 4번으로 모두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45건으로 가장 많다. 그때는 건국 초기와 전쟁의 혼란이 있어 그렇다 해도, 윤 대통령은 다르다. 물론 그 책임을 윤 대통령이 혼자 떠안을 순 없다. 민주당도 협상이나 타협 가능성에 문을 닫아걸었다. 22대 국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탄핵’을 떠드는 형편이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특검법만 줄줄이 내밀었다. 그것도 윤 대통령 내외를 겨냥한 특검법이다. 결국 대통령 흔들기나 궁극적으로 탄핵을 겨냥한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국회는 제1당이 폭주하고, 대통령은 방치하다 거부권을 휘두른다. 양쪽 모두 합의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장 선출은 국민의힘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도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이재명 대표는 “법대로 하자”라고 말했다. ‘어차피 합의는 어렵다. 시간을 끌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의도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민주당은 밀어붙이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22대 국회는 이런 외통수 정치를 반복할 게 뻔하다.다수결이 민주주의 원리다. 그렇지만 다수결에만 의존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 다수의 횡포 속에 다양한 의견들이 다 죽는다. 오직 하나의 의견만 존중받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 협상하는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소수파의 의견을 끌어안는 포용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서구 민주주의의 기초가 다원주의인 이유다.윤 대통령도 외골수다. 총선 직후 이재명 대표를 만나고는 끝이다. 대통령은 권력자다. 그런데도 야당을 설득하지도, 국민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다시 총선 전의 모습이다. 심지어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에게는 대통령 거부권을 협상카드로 써먹으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제1야당도, 대결만 생각한다. 지지세력만 믿고 정치한다.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하는 팬덤 정치다. 선거 때마다 ‘비호감’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민주당은 의사 증원을 주장해 왔다. 국민의힘이 자기 지지기반인 의사들의 기득권을 허물고 개혁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극 지원할 만하다. 하지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야당 협조를 고려도 안 했다. 선거에 이용한다는 오해만 불렀다. 초당 외교는 불문율이다. 요즘은 완전히 어깃장이다. 주변 강대국에 줄을 댄 대신들이 서로 싸우던 구한말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정말 저 정치인이 저런 생각이었는지, 경쟁 정당에 반대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이런 상황에서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국정 표류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양보하고, 설득해야 마땅하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무조건 양보가 능사는 아니지만 일이 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 야당도 국정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정치를 왜 하는가. 명분과 염치를 팽개쳐서는 안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6-09

특검이 인민재판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표는 많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국민이 뽑았다. 각자 자기 역할이 있다. 대통령은 가장 많은 사람의 지지로 선출됐다. 그렇지만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든다. 그렇다고 아무 법이나 만들 수는 없다.흔히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론은 대통령이 자기 권한을 넘어서지 않도록 날을 세워 견제한다. 원로원 중심의 로마에서 권력을 집중하던 시저는 암살당했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서로 다른 분점(分占)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대립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임기 중에 하는 의회 선거는 일종의 중간평가다. 그러니 감내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그런데 요즘 일부 야당 의원은 선을 넘어선다. 대통령 선거는 과거이고, 국회의원 선거는 최근이라고 해서, 대통령 선거를 무효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대통령의 권한까지 접수한다고 착각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의원도 있다.특검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의혹을 묻어놓고, 두고두고 정치적 갈등을 빚는 것보다 특검으로 진실을 밝히는 게 오히려 오해를 덜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너무 예민하다. 그것이 오히려 김 여사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킨다. 윤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람조차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조언을 피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내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사이가 멀어진 원인도 김 여사다.그렇지만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김건희 종합 특검법안’은 어이가 없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전시 군사정부를 운영하는 점령군이 된 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수단을 다 끌어다 붙였다. 상상을 뛰어넘는다. 민주당이 모든 권한을 쥐고, 김 여사를 심판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다.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김 여사를 수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래서 지휘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윤 총장을 털어서 몰아내기 위해 임명된 지검장이었다. 그런데도 아무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검찰수사로는 먼지까지 털어도 안 되니, 이제 ‘정치수사’를 해보겠다는 건가.그는 사법 체계를 잘 아는 전문가다. 그런데도 사법 체계를 파괴하며 자기 편할 대로 일방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법을 짰다. 특검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도록 했다. 이제까지 여야 정당이 합의해 추천하던 관례를 버렸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추천하려다 비난을 받자, 겨우 선심을 쓴 게 조국혁신당도 추천하라는 것이다.특검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수사와 기소는 행정부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가 추천한다. 그런데 이 법은 국회가 특검을 추천했는데도 대통령이 3일 이내에 임명하지 않으면, 두 명 가운데 연장자가 자동 임명된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민주당이 임명하겠다는 말이다.행정부만 무시하는 게 아니다. 특별검사는 관할 법원장에게 영장을 심사하고 발부할 전담판사를 지정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특검이 기소한 재판은 전담재판부가 신속하게 집중심리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영장 발부는 물론 재판까지 입맛에 맞는 판사를 지정하겠다는 뜻이다.특검은 검사 10명, 검사 아닌 공무원 20명을 파견받아, 특별검사보 10명, 특별수사관 70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100명의 수사 인력이 최대 170일까지 수사를 벌인다. 관련 범죄 혐의를 자수·자백·제보하는 사람은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플리바게닝’까지 도입했다. 우리 법체계에는 없는 제도다. 이런 법을 던져놓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꽃놀이패다.박근혜 대통령 특검에서조차 없던 무소불위의 특검이 9개월 동안 대통령실을 휘저으면 국정이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면 국민은 더 큰 권력을 주었을 때를 두려워하게 된다. 권력 행사는 넘치지 말아야 한다.

2024-06-02

진실은 진실이고, 거짓은 거짓이다

김진국 고문 여의도에서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옳고, 그르고, 잘잘못을 칼로 가르듯 나누는 서초동과는 다르다. 정치에서는 완승이 아니라 타협과 상생을 도모하고, 지향한다. 그런데 타협과 상생은 사라지고, 진실을 감추는 탈진실만 남았다.고(故) 장자연 씨의 동료로 알려진 윤지오 씨는 거액을 모금해 캐나다로 달아났다. 윤 씨의 말에 권위와 신뢰를 얹어준 건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다. 재판 중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고,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당선인은 당에서 거들어 줄 수 없을 정도로 논란에 휩싸였지만 너끈하게 당선됐다. 유권자에게도 진실보다 정치적으로 누구 편이냐가 중요하다.정보가 전달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변화가 가속됐다. 숙고하고, 사실을 확인해 전달하는 전통 미디어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인터넷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줄었다. 사실을 확인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는 일인 미디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기자회견이나, KBS나 MBC 같은 공영 방송도 아니고, 유튜브 개인 방송을 불러 인터뷰하고, 억울함을 호소했겠는가.현직 대통령이 공영 방송보다 유튜브를 찾은 것은 일대 사건이다.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을 잃었다는 간접증거고, 전통 미디어가 신뢰는 물론 영향력도 잃어버렸다는 선언이다. 이미 팩트 체크는 의미가 없고, 미디어도 우리 편이냐, 아니냐부터 따진다는 말이다.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8년 전 후보로 나왔을 때 뉴욕타임스나 CNN 같은 전통적인 대표 미디어들을 ‘가짜 뉴스’라고 낙인찍었다. 그러고는 트위터(현재 X)를 통해 자기주장을 공개했다. 트럼프의 복잡한 사생활은 지금도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모두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몰아세웠다. 성공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다.지지자들은 열광했다. 심지어 2021년 1월에는 트럼프가 대통령 연임에 실패한 뒤, 의회가 이를 인증하지 못하도록 의회를 점령하는 난동까지 부렸다. 미국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군중을 자제시키기는커녕 자극한 트럼프 책임이 크다.진실은 묻혔다. ‘트럼피언’(트럼프 지지자)의 진실과 일반 미국인의 진실이 달랐다.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인 ‘MAGA’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노골적인 거짓말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진실도, 거짓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사회로 변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2016년 올해의 단어로 ‘post-truth(탈진실)’를 선정했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사람들은 추측을 쏟아내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책임은 지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제 다시 재선을 노린다.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의 탈진실 상황은 세계 시민을 경악하게 했다. 미국이 저 지경인데, 우리는…. 그해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겪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민주당 의원들은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싫어”라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수산물시장이 된서리를 맞았다.조국 대표의 법무부 장관 임명 검증을 계기로 불거진 갈등은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각각 촛불 군중집회로 세 대결을 벌였다. 대한민국이 서로 다른 세상으로 쪼개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분열의 틈바구니에서 ‘공정’이라는 시대 정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그 역시 부인 문제에서는 진실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정치는 억지를 부린다. 결코 승복하는 법이 없다. 정치권이 논란을 벌이면 끝까지 평행선이다. 언론도 정리하지 못한다. 진실을 알아도 반론권을 줘야 한다. 정치적 적대자들에게 기계적으로 공평한 기회를 준다. 진실이나 거짓이나 꼭 같은 시간과 지면을 준다. 심지어 스스로 어느 한 진영에 서는 미디어도 있다. 이런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허상을 깬다는 게 명분이다. 정말 혼돈의 시대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26

한국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는 튼튼한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졌다. 민주주의는 발전만 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으로 그렇게 배웠다. 후퇴나 파괴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우리가 민주주의의 교본처럼 생각하는 미국 민주주의의 죽음에 관해 연구한 학자들이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시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다. 이들은 뉴욕 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칼럼을 기고해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것을 발전시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책에 이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Tyranny of the Minority)라는 책을 냈다.이들의 지적이 주목받는 건 민주주의 파괴가 군대 같은 무력이 아니라 투표장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미국 같은 민주주의의 선진국에서. 그것도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극렬한 소수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당연한 체제로 생각하고, 우리가 아무리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으로 생각한 민주주의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이들은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원래 불안하다고 한다. 선거 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않으면 균열이 생긴다고 한다. 이들의 지적을 새겨보면 한국은 더 위험한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87년 직선제 이후 가장 큰 득표율 차(22.6%p)로 당선됐다. 그러나 야당은 승복하지 않았다. 취임 초부터 촛불집회로 흔들었다. 그것도 전임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해 놓은 한미FTA의 마무리가 꼬투리였다. ‘뇌송송 구멍 탁’이라는 선동 문구가 SNS를 타고 전파됐고, 어린 학생들부터 거리로 나섰다. 동력을 받지 못하고 임기를 보냈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여파로 대통령직은 거저 줍다시피 했다. 역대 최대 득표 차(557만951표)다. 그러나 임기 내내 주말마다 서울 중심거리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세력대결을 벌였다. 반대 진영에 비해 동원 능력과 전파, 설득 능력이 떨어져 힘이 없었을 뿐,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복과 비난은 계속됐다.윤석열 대통령도 반대 진영이 인정하지 않는다. 임기 절반도 지나지 않고 치른 총선에서 ‘탄핵’, ‘임기 단축’을 공공연히 공약으로 내걸 정도다. 국회는 국정을 논하는 곳이 아니라 전쟁터다. 선의의 비판은 없다. 전자오락처럼 오로지 상대의 힘을 빼앗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심지어 자기가 먼저 주장한 정책조차 상대측 정부가 추진하면 시비를 걸고, 방해한다.래비츠키 교수의 지적대로 민주주의는 승복해야 굴러간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승복과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다시 경쟁하는 선의의 경쟁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지금처럼 누구도 승복하지 않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선거를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중단없는 정쟁 구도에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더구나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전파 속도가 빨라졌다. 극단적인 소수가 여론을 좌지우지한다. 전체 국민에서 차지하는 실제 비율보다 몇 배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팟캐스트에서 시작해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소수파의 확성기가 점점 더 커졌다. 이 확성기들은 극단 세력의 자극적인 포퓰리즘에 더 열광한다는 특징이 있다.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킹크랩’에서 실제 세력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길을 찾았다. 그 전에 유시민의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은 온라인 대화방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전투적 소수세력의 효용성을 입증한 원조격이다. NL계열이 민주노동당을 장악하는 과정은 소수파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줬다.이제 강력한 ‘전투적 소수’는 ‘노빠’(노무현 지지세력)에서 ‘문빠’(문재인 지지세력)로, ‘개딸’(이재명 지지세력)로 진화하면서 정치권의 공식이 됐다. 지난 총선에서는 조국신당이 새로운 ‘강력한 소수집단’으로 등장했다. 보수는 경쟁력이 비교가 안 된다. 설득력도, 확장성도 없다. 문제는 전투의 승패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존립이다. 지블랫 교수의 걱정거리가 미국보다 한국에 먼저 와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19

모든 문제는 영부인으로 통한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꼬이기 시작한 건 ‘마리앙투아네트’ 때문이다. 한 전 위원장과 가까운 김경률 회계사가 ‘명품백’ 사건에 대한 대통령 내외의 사과를 요구하며 마리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이 발언에 대통령이, 특히 영부인이 격노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한 위원장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했을 정도다.마리앙투아네트는 정말 악녀였을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이라”라고 말한 걸로 알려졌다. 브리오슈는 계란과 버터가 많이 들어간, 귀족들만 먹는 빵이다.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고귀한 공주’가 했다는 이 말이 인용됐다.그 책이 나왔을 때 마리앙투아네트는 어린아이였다. 혁명 당시 파리의 팜플렛에는 온갖 악성 루머들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악성 루머는 진실보다 더 잘 퍼지고, 감정을 자극한다.모든 길이 영부인으로 통하고 있다. 선거 때부터 야당은 김건희 여사를 집중하여 공격했다. 윤 대통령의 약한 고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본인은 물론 윤 대통령도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날지 짐작이 간다. 김 여사 얘기만 꺼내면 윤 대통령이 화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참모들이 정작 해야 할 말도 못 하는 것 아닌가.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윤 대통령 내외가 오해하는 건 법이 모든 진실을 밝힌다는 믿음이다. 정치는 진실보다 국민의 믿음이 중요하다.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공개됐다. 소송에서 이겨 1000만 원을 배상받았다. 그래서 해결됐나. 명품백 수수를 몰래 촬영한 최재영 목사를 사법적으로 처벌하면 국민이 “모든 오해가 다 풀렸다”라고 납득할까.국민은 이 기자·최 목사는 보지 않는다. 잘해서가 아니다. 관심이 없다. 김 여사만큼 중요한 공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테이프에서 김 여사가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낸 데 대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실망이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마구 만난다는 불안이고, 국정에 개입하려는 언행에 걱정이다.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윤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 정서에 얼추 다가왔다. 그런데 너무 느리다.최근에 논란된 문제도 한둘이 아니다. 오해일 수도 있다. 국무총리 물망에 오른 박영선 전 장관의 영부인 인연설이 보도됐다. 같은 대통령실 내에서 공식라인은 부인하고, 담당이 아닌 사람은 다시 번복하는 혼선을 빚었다. 여기서도 영부인 라인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 관저와 윤 대통령 손바닥의 왕(王)자와 관련해 천공이니 무속이니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천공이 최재영 목사와 만나 자기가 대통령실을 움직이는 듯이 말하는 유튜브가 공개됐다.이런 논란들이 재판으로 해결될 일인가. 왜 오해의 근거를 제거하지 못하나. 왜 이런 오해와 잡음에 아까운 시간과 국력을 낭비해야 하나. 사실이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화만 낼 게 아니다. 과감한 조치로 국민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윤 대통령은 물론 영부인에게도 결국 도움이 된다.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을 외국에 보내라는 참모의 건의를 듣지 않았다가 결국 자기 임기 중 감옥에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형님을 물리치지 못해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탄압받던 시절 고생한 아들들에게 매정하게 관리하지 못해 임기 중 모두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정리한 것은 현명했다.국민이 감동해야 해결된다. 과감하게 던지면 국민도 감동하고, 오히려 동정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아내와 헤어져야 합니까”라는 감성적 접근으로 장인의 부역 논란을 뒤집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옷 로비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사과하고, 특검을 도입했다.뒷북을 치면 하고도 욕을 먹는다. 이종섭 전 주 호주대사,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문제는 결국 사퇴시켰지만, 그만한 효과가 없었다.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보다 먼저 나가야 한다. 흥정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는 건 최악이다. 특별감찰관이나 특검이나 사과를 끝내 피할 수 있겠나. 언제까지 이런 소모적 논란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야 하나. 순애보를 찍을 때가 아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12

보수 정당은 어떻게 정권 재창출할까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 홈페이지를 열면 “국민의 회초리 겸허히 받겠습니다”라는 큰 글자가 뜬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받들겠다는 뜻이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은 무엇일까. 국민은 무엇을 나무라며 회초리를 든 것일까.선거는 유권자가 갖고 있는 개인 성향과 각 정당의 활동, 시대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이다. 더구나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집중돼 있고, 아주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소선거구제라 조금만 민심이 흔들려도 결과는 천양지차가 된다. 그러니 표를 찍었건 아니건, 국민 전체가 회초리를 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그러면 무엇에 회초리를 들었나. 선거운동을 시작할 무렵 국민의힘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비명횡사’ 공천으로 민주당이 혼란스러웠다. 이낙연 전 대표와 비주류 의원들이 나가고, 박용진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파문으로 절정에 달했다. 연합공천과정에 진보당, 시민단체가 공천한 인물들이 파문을 일으켰다.민주당이 공천 파문을 수습할 무렵 국민의힘에서 계속 사고가 터졌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동영상이 폭로됐다.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하자는 의견을 야당 프레임에 말렸다고 생각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로까지 번졌다.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한 달만 기다리면 될 것을 굳이 선거기간에 출국금지까지 풀고 내보냈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기자들 앞에서 “MBC 잘들어”라며 1988년 정보사 군인들의 언론인 회칼 테러를 들먹였다. 누가 봐도 협박이다. 그런데 뭉개다 뒤늦게 경질했다. 이 과정에도 윤-한 갈등이 있었다.의정 갈등이 길어지자, 대통령 담화를 준비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말한 내용은 비서실이 준비한 것과 달랐다. 강경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정책실장이 급하게 TV에 출연해 “그게 아니고요”라며 ‘번역기’를 돌렸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담화가 됐다.윤 대통령이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갔다. 대파를 들고, 가격표를 보며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선거의 상징이 됐다. 권장 소비자가격은 4250원. 정부 지원금 두 가지와 자체 지원금까지 붙어 할인됐다. 가뜩이나 고물가에 지친 국민이 분개했다.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야당의 프레임에 말려든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한 전 위원장이 ‘대통령이 잘못했다’라고 인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바람에 여론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차기를 노린 이미지 전략이라고 비난한다. 눈만 감으면 이미 벌어진 일이 사라질까. 그나마 선거 막판 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후보의 몰염치한 전력이 드러나 국민의힘이 개헌선은 지켜냈다.홍준표 대구 시장 인식도 비슷하다.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 뒤 한 전 위원장을 저격했다. 그는 “우리에게 (총선 참패의) 지옥을 맛보게 했던 정치검사였고, 윤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이라며 “더 이상 우리 당에 얼씬거리면 안 된다”라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과 홍 시장의 4시간 술자리에 한 전 위원장이 안주였다는 말이 나온다. 개 목걸이 소문도 나돈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의 냉랭한 관계가 이어진다.윤 대통령은 많은 사람을 버렸다. 대통령 선거 직후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냈고, 대표 경선 과정에는 초선의원들의 연판장까지 돌려 나경원 의원을 궁지에 몰았다. 안철수 의원에게 ‘이념 정체성이 없다’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라고 비난했다. 김기현 전 대표도 ‘격노’해 강제로 끌어내리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세웠다. 양파처럼 계속 갈라내 무엇을 남기려는 걸까.윤 대통령은 무엇을 지키려 할까. 보수 이념에 충성하는 걸까. 검사로서 그는 이념을 가리지 않는 전문 칼잡이였다. 그는 여주 지청장 시절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기용설은 중도 확장을 노린 걸까. 아니면 이념과 상관없는 지인 챙기기일까. 보수정권 재창출을 고민하는 걸까. 총선 참패로 식물 정권이 됐다. 보수 유권자들마저 편을 갈라 책임론 공방을 벌이는 동안 집권당은 회복될 수 없게 무너져 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28

윤석열·이재명은 협력할 부분이 많다

김진국 고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총선 중에 “3년은 너무 길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을 다 채우기가 지겹다는 말이다. 임기 중간에 탄핵하든지,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어 야당이 국정을 휘젓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로 홍역을 치렀다. 가장 힘있게 임기 중 할 일을 기획할 중요한 시기를 날려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해 맥없이 정권을 넘겨줬다.이미 윤 대통령은 날개가 꺾였다. 법이고, 예산이고, 야당의 승인 없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전공의 파업도 야당 태도가 큰 변수다. 의사 증원은 원래 민주당이 추진한 정책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어깃장을 놓으면 증원 계획을 백지화할 때까지 의사단체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을 바랄까. 총선의 기세를 몰아 바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비명횡사’로 민주당을 완전히 ‘이재명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윤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기 위해 탄핵이든 개헌이든 하려면 결국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건 큰 모험이다. 빨리 대통령이 되고 싶어 헌정질서를 중단시켰다는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아무리 윤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이라도 후폭풍을 각오해야 한다.인기가 바닥을 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만 탄핵소추 이후 후폭풍이 거셌다. 심지어 대구·경북에도 역풍이 불었다. 탄핵안이 발의된 날 한국갤럽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의견이 60.6%(필요 없다 30.1%)였지만, 탄핵 반대는 65.2%(찬성 30.9%)였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천막당사를 치고, 사과를 거듭하며 겨우 선거를 치렀다. 더구나 국회에서 다수의 힘으로 탄핵소추를 한들 헌법재판소 통과가 쉽지 않다.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 대표 재판이 더 빠를 수 있다.야권 사정도 만만하지 않다. 이 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몰빵’을 강조했다.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도 더불어민주연합(민주당 위성정당)’이라는 말이다. 조국혁신당의 ‘비조지민’(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지역구는 민주당) 주장을 누르려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금버금하다. 위성정당이 26.69%를 얻어, 지역구 후보도 없고, 번호도 뒤쪽에 있는 조국혁신당(24.25%)과 비슷했다. 더 심각한 대목은 민주당의 대권 향방을 결정하는 호남(광주·전남·북)에서 모두 조국혁신당에 밀렸다는 점이다. 광주에서는 47.72% 대 36.26%, 전북에서는 45.53% 대 37.63%, 전남에서는 43.97% 대 39.88%로 확실하게 졌다. 공무원들이 많은 세종시와 조국 대표의 고향인 부산에서도 민주당이 졌다.그러니 야권 후보 단일화 경쟁을 벌이면 거저먹을 상황이 아니다. 막상 대선 국면이 되면 공천 과정에 불만이 많은 비명 세력이 조국혁신당으로 뭉칠 수 있다. 그렇다고 당내 세력 구도를 고려해 민주당에 유리한 단일화를 요구하다가는 과거 김영삼·김대중 씨처럼 쪼개질 수도 있다. 당대의 선거공작 전문가인 엄창록 씨가 1988년 노태우 후보 측의 영입 제안을 받고, “어차피 이긴 선거이니 내가 필요 없다”라며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양김 단일화가 안 된다고 확신한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주말 이재명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주중 만나자고 제의했다. 사실 두 사람은 ‘너만 아니면 돼’(Anything but You)라며 사생결단으로 싸울 이유가 없다. 선거 때 공격하는 것은 정치인의 일상사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여러 가지 수사도 사실 민주당 내부에서 시작된 것들이다. 윤 대통령이 수사해 감옥에 넣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세 번이나 만나 화해했다.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것은 문재인 정부다.이 대표도 정치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 정치권에는 “대통령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순 없어도, 안 되게 할 힘은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면 국리민복을 위해 협력할 일이 많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21

보수가 살려면 좀 더 참을 줄 알아야 한다

김진국 고문 김효원의 집이 동쪽에 있어 동인이라 하고, 심의겸의 집이 서쪽에 있어 서인이라 했다. 남인도 서애 류성룡의 집이 남산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렇게 쪼개진 붕당은 권력과 자리를 둘러싸고 분열과 갈등을 반복했다. 이름은 여러 가지여도 결국 두 개의 큰 당파 사이의 갈등이 이어졌다.1천 명이 넘는 동인을 학살한 ‘동인 백정’이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아름답게 불렀지만, 결국 임금이 다시 불러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심(邪心)이라 비난받지 않았는가.기축옥사 이후 당쟁은 서로 죽고 죽이는 혈전으로 치달았다. 당파가 다르면 혼인은 물론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다. 지금 우리 정치가 꼭 그 짝이다.이번 선거 결과를 표시한 지도를 보면 동쪽은 빨간색, 서쪽은 파란색이다. 동서 분열이 선명하다.한동안 경상도에 기반한 정권은 영원할 줄 알았다. 대구·경북 인구가 호남 전체 인구와 비슷하다. 부산·울산·경남은 호남 전체 인구의 1.5배다. 영남 전체 인구는 호남의 2배 반이라는 말이다.그러니 대통령 선거에서 영호남 대결이 벌어지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영남 후보가 이긴다고 생각했다. 오죽하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영남 출신 대통령 후보를 양자로 들이는 전통까지 생겼겠는가. 그렇게 해서 노무현·문재인 정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지원하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는 게 이번 투표에서 보인다. 심지어 전남지사까지 지낸 함평 출신 이낙연 후보의 날개를 꺾어버렸다.계산에서 빠진 게 수도권이다. 서울(48)·인천(14)·경기(60)를 합쳐 122석이다. 전체 지역구 의석 254석의 절반에 가깝다. 인구는 50.8%다. 이곳을 장악하면 정권을 차지한다. 수도권도 선거구마다 특색이 있다. 국민의힘이 유리한 선거구도 있고, 민주당이 유리한 지역도 있다. 그렇지만 영호남과는 분명히 다르다. 양대 정당의 경합이 박빙이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대부분 지역이 한꺼번에 영향을 받아 쏠림 현상을 보인다.민주당은 이번 총선의 서울 지역구 투표에서 52.2%를 얻었다. 그런데 의석은 77.1%(37석)를 가져갔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유효투표의 46.3%를 받았지만, 의석은 절반도 안 되는 22.9%(11석)를 가져갔다. 가장 많은 의석 60석이 걸린 경기도에서는 민주당은 54.7%를 득표해 88.3%(53석)의 의석을, 국민의힘은 42.8%의 득표로 10%의 의석(6석)을 차지했다.민주당 위성정당과 관계없이 의석을 차지한 군소정당은 개혁신당(3석), 새로운미래(1석), 진보당(1석)이다. 이 5석을 제외하고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대로 전체의석을 나누면 민주당(50.5%)에 156석, 국민의힘(45.1%)에 139석이 돌아간다. 민의(民意)라고 할 수 있는 투표를 같은 가치로 환산한 의석이다.사실 이것은 정치공학적 분석이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새겨보아야 할 수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무엇보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조선시대 당쟁에서는 반대 당파를 완전히 밀어내고,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독재 국가도 유일사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정치하면 민주주의는 죽는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품는 관용(톨레랑스) 없이 정당정치는 불가능하다.배타적인 당파주의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라고 오기 부릴 거라면 중앙정치에 관심은 왜 두나. 이제 수도권이 민주당 우세로 고정돼 간다. 산업화 이전에는 영호남 인구가 큰 차이가 없었다. 지금 호남 인구가 영남의 절반 이하인 건 수도권으로, 영남 산업도시로 이동한 인구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반대편 같아도 끌어안으면 내 편이다. 내 목소리가 클수록 상대정당 지지자는 더 똘똘 뭉친다.노론과는 결혼도 하지 않는다는 고집보다 함께 잘 사는 나라를 고민하는 세력이 국정을 맡아야 한다. 낯선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경계하는 것이 인간 본능이다. 위험을 피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지나치면 차별과 편견과 혐오주의자가 된다. 나치도 그렇게 등장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14

정치인의 범죄까지 감싸줄 건가

김진국 고문 지난달 한 걸그룹 멤버가 팬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에스파의 카리나(24·본명 유지민)다. 배우 이재욱(26)과 교제한 일 때문이다. 처음 이 사실이 알려진 뒤 팬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소속사 앞에서 트럭 시위까지 벌였다. 트럭 전광판에는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한가”라고 적혀 있었다.팬은 연예인의 힘이 되지만 사생팬은 골칫거리다. 연예인과 팬의 관계를 넘어서 마치 현실 세계에서 연애한다는 착각에 빠져 선을 넘는다. 공연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함께 소리치고, 춤추는 잔치마당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연예인의 집안으로 몰래 들어간다든지, 스토킹과 범죄 수준으로 발전하기까지 한다.우리 정치가 이렇게 돼 간다. 나와 공동체, 나라를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지 걱정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런 정책을 추진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를 가리는 일은 포기했다. 아이돌을 사랑하듯 내가 좋아하는 영웅을 정하고, “네가 하는 일은 뭐든 다 좋아”라고 외친다.문재인 전 대통령이 후보로 나섰을 때 열성 지지자 그룹을 ‘문빠’라고 불렀다. 아이돌 열성 팬처럼 ‘빠’를 붙였다. 문빠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라고 외쳤다. 무슨 일을 하건, 지지하겠다는 말이다. 그만큼 신뢰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건전한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까. 나치도 그렇게 시작했다.형법 151조 2항에 “친족·호주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은닉·도피시켜 준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친족간의 정의(情誼)를 고려해 형을 면제하는 것이다. 또 범인의 자수나 타인의 고소·고발을 막는다든지 진범을 대신해 범인인 것처럼 신고하는 행위도 면책한다. 요즘 정치인과 지지자의 관계는 마치 현실 세계의 친족처럼 ‘무조건’이다.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후보는 민주당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다. 김부겸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당에서도 여러 가지 유감스럽다는 것하고, 또 후보도 여러 가지 사과를 했으니까요. 이것은 국민 심판을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민주당이 책임을 지지는 않겠다. 공천은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두 후보에 대한 여론이 매우 나쁘다는 건 안다. 하지만 국회 의석은 차지해야겠다. 그로 인해 다른 후보가 영향을 받지 않게 막겠다는 것이다. 당직자들도 방송에 나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국민에게는 그런 후보에게 표를 찍어달라고 하나.민주당이야 그렇다 치자. 유권자는 더 문제다. 한병도 민주당 전략본부장은 지난 3일 두 후보와 관련한 수도권 판세에 대해 “큰 변화는 감지되고 있지 않다. 유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이 판단하게 하겠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범죄를 저질러도, 막말해도, 무조건 지지다. 사생팬과 다를 바 없는 덕질이다.양문석 후보(안산갑)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유사 불량품’, ‘매국노’라며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당내 반대파를 향해서도 ‘수박’, ‘쓰레기’, ‘바퀴벌레’, ‘똥파리’ 등 자극적인 혐오 표현을 퍼부었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잡는다며 임기 중 27번이나 고강도 규제책을 발표했다. 15억원이 넘는 아파트 담보 대출도 막았다. 그런데 정권 핵심 인사는 허위 문서로 돈을 빌려 핵심 규제 지역 아파트에 투기했다. 본인이 말한 내용만으로도 범죄 혐의가 분명하다. 공천 당시 공천 취소를 요구하던 친노·친문 인사들도 이제 침묵으로 돌아섰다. 사생팬의 항의에 겁을 먹었다.민주당 김준혁 후보(수원 정)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부끄럽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위안부, 초등학생과 성관계했을 거라고 말했다. 김활란 초대 이화여대 총장은 여대생을 미군들에게 성상납했다고 말했다. 연산군은 사대부 부인들을 궁으로 불러 스와핑했다며, 윤석열도 “유사하다”라고 비난했다. 그런데도 무조건 지지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을 따라간다. 국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정치는 부패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는지 걱정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07

민주당의 미래는 이재명인가, 조국인가

김진국 고문 22대 총선 최대 변수는 조국이다. 그의 출마로 전체 판세가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기울었다. 국민의힘이 상승할 때도 잘해서라기보다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진 탓이다. 이재명 대표가 비명계를 숙청하고, 친명계를 심으려 무리했다.민주당 주류였던 호남계와 친노, 친문들이 치명상을 입었다.이 대표는 민주당 주류가 아니었다. 꼬리가 몸통을 집어 먹으려니 소음이 났다. ‘비명횡사’와 함께 민주당 지지율도 추락했다. 충성도만 보고 자객들을 뽑았다. 검증에 소홀했다. 문제 후보가 속출했다. 서울 강북을에서 줄줄이 낙마한 정봉주·조수진 후보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계속 점수를 잃었지만,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과반은 최대 목표로나 삼을 만했다. 그런데 보수 진영은 압승할 것이라며 긴장을 늦췄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 호주대사로 보냈다. 굳이 선거를 앞두고 서두른 이유를 알 수 없다. 황상무 대통령 시민사회수석 말이 발등을 찍었다. 평생 언론사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오만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이 무렵 조국혁신당이 출범했다. ‘비명횡사’로 등산이나 가려던 비명계 야당 지지자들이 투표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이재명 대표에게 실망해도, 투표할 이유를 찾았다.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후보만 냈다. 조국혁신당을 찍으러 투표장에 나가면, 지역구 후보는 민주당 후보를 찍게 된다. 국민의힘 후보를 찍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지금 여론조사에서 예측하는 것보다 국민의힘이 더 어려운 형편이라고 봐야 한다.야권 내부에도 새로운 긴장이 생겼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3월 셋째 주 33%이던 민주당 지지율이 넷째 주 29%로 떨어졌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8%에서 12%로 올랐다. ‘비례대표의원 투표 의향’은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이 22%로 같았다. 조국혁신당이 앞서는 조사도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조국 대표는 창당 직후 민주당을 찾아가 이 대표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이 대표는 현재 20명으로 돼 있는 교섭단체 기준을 낮춰주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이 상승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역구, 비례, ‘몰빵’을 외친다. 박지원 후보가 조국혁신당 명예당원 하겠다고 덕담했다가 경고받았다. 소셜네트워크에는 조국 대표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가 조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 경쟁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호남 지지가 절대조건이다. 광주 경선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예상하는 사람이 적었다. 이인재 전 의원이 오랫동안 ‘황태자’로 행세했다. 그러나 광주의 선택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호남 유권자들은 다른 지역보다 전략적이고, 집단적이다. 감정과 투표를 절제할 줄 안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호남 출신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고 인정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39만 표 차이로 겨우 이겼다. 이때 이인재 후보가 492만여 표를 가져갔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아 충청지역의 지원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 정도이니, 다시 호남 출신 대통령 만들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영남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계자로 찾아냈다.비호남 출신 후보를 지원할 때 조건이 있다. 호남을 배려해달라는 것이다. 민주당 정부마다 호남 인물과 기업이 호조를 보였다. 쉽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 때도 친노와 호남 세력이 주도권을 다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앙금으로 호남 표를 얻는데 고생했다. 안철수 의원에게 밀리기도 했다.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을 친명 일색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 호남 세력도 많이 밀어냈다. 이낙연·임종석·박용진…. 과거 야당 총재들도 비주류에 조금의 공간은 나눠줬다. 이번에는 주류를 바꿨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력을 모두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했다. 조국 대표도 공천을 안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조 대표가 당을 따로 만들어 돌아왔다. 특히 호남에서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높다. 선거 이후가 궁금해진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31

“내가 이렇게 공천한다는데 뭐 어쩔래”

김진국 고문 민주당 박용진 의원 공천 탈락은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오래도록 남을 사건이다. 지역구민의 뜻과 다르게, 국민 여론을 거슬러, 당권을 쥔 권력자 한 사람이 국회의원을 만들 수도 제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독자 출마할 수도, 주민이 그 사람에게 표를 던질 수도 없다. 민주주의가 살아 있나.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왜 박 의원을 쫓아냈을까.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또 당 대표 경선에서 박 의원은 이 대표의 눈엣가시였다. 박 의원은 이 대표의 약점을 아프게 공격했다. 그는 대장동 사건이 터지자 “‘부패세력 발본색원, 온갖 비리 일망타진’으로 밀고 가야지, 정치적으로 여당한테 유리할지 야당한테 유리할지 이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 대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세계를 여행하도록 1천만원씩 주자고 즉석 공약했다. TV 토론에서 박 의원이 이 공약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이 대표는 “그건 공약이 아니고요…”라고 발을 뺐다. 그러자 박 의원은 “그럼 뭐가 공약이냐”며 비웃어 망신을 줬다.다른 사람은 잊어도 이 대표는 모두 치부책에 적어둔 모양이다. 지난해 9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할 때, 민주당 내에서 최소 39표의 이탈표가 생겼다. 이후 명단이 여의도에 떠돌았다. 그 명단에 오른 의원은 이번에 모두 제거됐다.이 대표는 ‘시스템 공천’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무줄이었다. 특히 박 의원 제거는 끈질겼다. 4달 전 의정활동을 잘못한 하위 10%에게 감점을 20%에서 30%로 올렸다. 거기에 박 의원을 집어넣었다. 재심 요청은 기각했다. 해마다 우수의원으로 뽑혔던 박 의원이 왜 하위 10%인지 설명이 없었다.1차 경선에서 이긴 정봉주 전 의원이 사퇴했지만, 차점자인 박 의원을 공천하지 않았다. 전남 순천과 다르게 적용했다. 2차 경선에서는 규칙을 다시 바꿨다. 강북을 권리당원 50%, 주민 여론 50%에서 전국 권리당원 70%, 지역 권리당원 30%로 조정했다. 지역 연고 없는 조수진 변호사를 위한 규칙이다.2차 경선에서 이긴 조수진 변호사마저 사퇴했다. 그러자 한민수 대변인을 ‘전략공천’했다. 한 후보는 박 의원·조 변호사와 2차 경선을 신청했지만 컷오프됐다. 예비심사에서 박 의원·조 변호사보다 못하다고 판단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박 의원을 배제하고, 한 대변인을 선택했다.‘자객’들의 자질도 기가 막힌다. 먼저 박 의원을 누르기 위해 입이 거칠기로 소문난 정봉주 전 의원을 투입했다. 정 전 의원은 이혼한 전 부인을 폭행한 전과가 있다. 그는 팟케스트에서 ‘발목지뢰 경품’ 망언을 했다. 그는 피해 군인들에게 사과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났다. 팟케스트에서 조국 사태에 바른말을 한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신문에 적을 수 없는 욕설을 쏟아내기도 했다.조수진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미성년자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자들을 여러 차례 변호했다. 변호 과정에 2차 가해를 한 과거도 드러났다. 성범죄자가 감형받는 요령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관련 범죄자들이 자신에게 의뢰하도록 홍보한 것이다. 일종의 전문변호사다.이 대표는 당 대표 경선 때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정반대다. 그는 과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며 조롱한 일이 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을까.이재명 대표는 “이번 정권은 아예 대놓고 ‘내가 한다는데 뭐 어쩔래’ 이런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 대표의 공천이야말로 ‘어쩔래 공천’ 아닌가.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파괴되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정치 경쟁자를 부정하는 행동을 전체주의의 위험신호라고 지적했다. 정치인에 대한 맹신적인 지지, 가치 규범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게임으로 환원해 생각하는 정치적 몰가치성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상식이 있는 시민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24

자만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김진국 고문 얼마 전 대구에 사는 지인이 전화했다. 국민의힘이 과반을 차지한다고 믿었는데, 그 많던 표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선거 초반 국민의힘이 기세였다. 민주당이 비명계를 몰아내고, 친명계 일색으로 공천하느라 비난을 많이 받았다.거기와 비교하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아이돌처럼 인기를 누렸다. 가는 곳마다 사진을 함께 찍으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성급한 보수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과반 확보가 당연한 듯이 예측했다. 그런데 민주당 한병도 전략기획위원장은 15일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130~140석을 얻는다고 전망했다. 현재 지역구 의석은 254석, 비례대표 의석은 46석이다. 지역구 절반은 127석. 결국 민주당 계열이 과반을 차지한다는 의미다.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를 보자. 비례대표 투표 정당을 묻는 설문에 국민의미래(국민의힘 위성정당) 34%, 더불어민주연합(민주당 위성정당) 24%, 조국혁신당 19%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4%인 개혁신당을 포함해 3% 문턱을 넘은 정당에 비례의석을 나누면 국민의미래 19석,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1석, 개혁신당 2석이 된다. 민주당이 최소치로 전망한 130석만 얻어도 단독 제1당이다. 조국혁신당을 합치면 과반인 155석. 개혁신당도 윤석열 정부에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지역구로 가면 더 어렵다. 같은 조사에서 ‘여당이 더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서울에서 31%, ‘야당이 더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8%다. 인천·경기에서는 32% 대 55%로 역시 민주당이 유리했다. 지역구 의석은 서울 48석, 인천 14석, 경기 60석으로 수도권만 모두 122석이다. 그 지인 말처럼 며칠 사이에 왜 흐름이 바뀌었나. 수도권은 미풍에도 판세가 뒤집힌다. 1천표 이내로 당락이 결정되는 곳이 많다. 그런데도 여권이 긴장의 끈을 놓았다.수험생이 있는 집에서는 걸을 때도 조심한다. 선거를 앞두고 출국금지 상태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왜 굳이 이 시점에 출국시키려 했을까. 한덕수 총리는 안보 협력이 긴요해 빨리 내보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최대 안보 협력국인 일본 주재 대사를 2년 반 만에 내보냈다. 당연히 의회청문회 등 절차를 모두 거쳤다. 주한 미 대사도 1년 반 만에 부임했다.영남권 민심만 따진다면 도태우·장예찬 후보를 공천하는 게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선거 전체 판세를 보고, 판단하고, 책임져야 한다. 선거는 자만하면 진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재검토를 지시하고, 공관위는 이를 뒤집고, 여론이 비등하니 다시 뒤집었다. 중도층뿐 아니라 지지층에서도 불만이 터지는 계기를 만들었다.명품백 사건도 영부인이 빨리 사과하고 털었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오히려 한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전략공천하려던 김경률 비대위원만 찍어냈다. 한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선거 구도가 이재명 대 한동훈 대결로 바뀌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지방으로 다니며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로 만드는 게 국민의힘에 유리한 걸까.의대 증원 문제도 불안하다. 의사들 주장대로 선거를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노림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이 있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초반의 높던 증원 지지율이 점점 내려간다. 피로감이 쌓인다. 선거와 얽히면 야당 지지자들이 돌아설 수 있다. 진료 공백으로 인해 사고가 터지면 불만 여론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로 향하게 된다. 자칫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황상무 대통령 시민사회수석의 폭언도 해이해진 대통령실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는 “MBC는 들어”라면서 군인이 비판적 기자를 칼로 테러한 사건을 들먹였다고 한다. 황 수석은 농담이었다고 하지만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다. 이러고도 선거에서 이긴다면 기적이다. “대통령실에 야당 프락치가 있는 것 같다”라는 한 보수 인사의 개탄이 실감 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17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

김진국 고문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7일 별세했다. 오늘 발인한다. 3김 내외가 모두 떠났다. 정치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손 여사의 내조(內助)를 모범 사례로 꼽는다.손 여사는 YS 재임 기간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의 다른 영부인들과 달리 고위직 부인들 모임을 모두 없애버렸다. 옷의 상표도 모두 떼고 입었다. 대신 청와대 수행원과 운전기사, 여직원들을 눈에 띄지 않게 챙겼다.손 여사는 1951년 결혼 이후 평생 YS의 정치 인생을 함께했다. 필요할 때는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1983년 YS가 목숨을 걸고 23일간 단식할 때 외신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상황을 전파한 사람이 손 여사다. 90년 3당 합당 때는 최형우 전 의원 등이 합류를 거부하자 설득한 사람도 손 여사다. 그런 위기를 제외하면 상도동 집에서 매일 100명 가까운 비서와 방문객에게 밥과 시래깃국을 대접하며 조용히 내조했다.‘김영삼 회고록’에는 93년 2월 24일, 청와대로 들어가기 하루 전 가족회의 이야기가 나온다. YS는 “가장 큰 걱정이 친·인척”이라며 “이상한 사람들이 속을 다 내어줄 듯이 접근해서 너희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한다. 절대 이권이나 인사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개석 대만 총통의 일화를 소개했다. 장 총통이 대만으로 쫓겨났을 때 며느리가 밀수와 사치를 일삼자 보석상자 하나를 주면서 집에 가서 열어보라고 했다. 며느리가 집에 가서 열어보니, 그 안에 권총이 들어 있었다. 며느리는 자살했다.그런 YS도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아들 현철씨와 관련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임기 중 아들을 구속했다. 그렇지만 손 여사는 한 번도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다.‘위대한 퍼스트레이디, 끔찍한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은 미국 시민이 좋아하는 영부인도 내조형에서 전문가형으로 바뀌어왔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건 사적 욕망을 드러내는 영부인을 좋아하는 시민은 없다. 민심을 거스르는 영부인은 성공할 수 없다.이 책이 최악의 영부인으로 꼽은 매리 링컨(16대)은 장갑을 사 모으는데 몰두했다. ‘대통령 부인’(Mrs. President)이라는 서명으로 명령하기도 했다. 줄리아 그랜트(18대)는 사치스러운 오락과 환대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고 음성적인 자금을 모았고, 영부인의 권력을 이용해 부패 방지조사를 막았다. 제인 피어스(14대)는 사고로 죽은 아들과 대화한다며 백악관에서 강신(降神)회를 열기도 했다. 낸시 레이건은 백악관의 정치적 운영을 공개적으로 간섭해 영부인의 활동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았다.우리는 아직 영부인이 설치면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씨로부터 13억 원을 받아 수사받자 “자기 잘못을 아내한테 떠넘긴 못난 남편이 되어 있었다”고 자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해외여행 버킷리스트, 라오스에서 대통령을 앞질러 행진한 것 등으로 비난받았다.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민주당은 특검을 추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양평을 방문해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공격했다. 명품백을 받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가 총선 최대 악재가 될뻔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사과 대신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해 파문이 일었다. 그대로 한 위원장이 물러났으면 어떻게 됐을까.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 여사는 경기지사 시절부터 ‘혜경궁김씨’ 논란이 있었다. 경기도 법인카드로 당직자에게 음식을 대접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공무원을 개인비서처럼 부리고, 법인카드로 생활비를 썼다는 폭로도 있었다. 당에 ‘배우자실’이란 조직을 만들고, 부실장을 단수 공천했다 번복하는 소동도 있었다.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았다. 선출된 배우자를 돕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남편의 공적 활동을 간섭하거나, 자기가 선출됐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모범을 보여야 다른 부인의 일탈도 막을 수 있다. 여사님들, 제발 자중하시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10

선거법을 의원들에게 맡겨놓아야 하나

김진국 고문 참 어이가 없다. 공천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지난달 29일에야 선거구가 정해졌다. 4·10 총선을 겨우 41일 앞둔 시점이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 2 ①항에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해 놓았다. 바로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다.워낙 선거법 개정이 늦어 문제가 생기자 2015년 이 조항을 집어넣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 18대 총선(2008년) 때는 선거 47일 전, 19대 총선(2012년) 때는 선거 44일 전에 선거구가 정해졌다. 이 조항을 만든 뒤, 20대 총선(2016년)에는 42일 전, 21대 총선(2020년)에는 39일 전으로 더 늦어졌다.선거구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중대선거구제로 갈지, 소선거구제로 갈지, 비례대표 선출을 준연동형으로 할지, 병립형으로 할지, 선거법의 근본 틀부터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현역 의원들은 어떻게 되든 지난 선거를 기준으로 준비하면 된다. 지역구를 옮기든지, 없어져도, 변명할 여지가 있다.정치 신인은 그렇지 못하다. 온갖 연고를 끌어대 예비후보로 등록했는데, 지역구가 바뀌면 의도하지 않게 ‘철새’ 꼴이 된다. 처음부터 지역 유권자에게 점수를 잃는다.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데 선거구로 바뀌면, 돈만 들여 헛고생한 게 된다. 그렇다고 인지도가 낮은 신인이 가만히 기다릴 수도 없다. 현역 의원들만 유리하다.가장 비겁한 것이 위성정당이다. 4년 전에는 촉박한 시간에, 처음 도입한 제도를 놓고 당황해 잘못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흉악한 짓인지 잘 알면서 저질렀다. 시간도 충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위성정당을 막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어떤 선거제도로 갈지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위성정당보다 더 위험한 선택을 했다.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할 때는 봉쇄조항이라는 게 있다. 이해하기 쉽게 ‘문턱조항’이라고도 한다. 일정 정도의 표를 얻지 못하면 의석을 주지 않는다. 극단주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선거를 하는 독일은 문턱이 5%로 높다. 나치를 경험해 극우정당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우리는 3%, 혹은 지역구 의석 5석이다. 2%를 넘으면 한 석 줘야 하지만 3%로 막아놓았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정책보다 훨씬 강경 좌파들을 끌어모아 위성정당을 만들고, 비례 의석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지역구도 단일화로 밀어준다. 민주당이 보증은 섰지만 어떤 후보가 나오든 상관하지 않고, 책임도 안 진다. 애플에서 조악한 휴대폰에 아이폰이란 이름을 붙여 아이폰과 함께 팔아놓고, 성능도, 에프터서비스도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것과 같다.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다. 그런데 이건 무책임정치 아닌가.선거구 획정 과정도 기가 막힌다. 중앙선관위에 설치된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은 서울·전북에서 1석씩 줄이고, 인천·경기에서 각 1석씩 늘리게 돼 있었다. 나머지는 해당 시·도 안에서 조정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하는 전북 대신 부산에서 1석을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버텼다. 결국 만만한 비례대표 의석을 하나 떼 전북에 붙여주는 것으로 끝났다.지역구 국회의원 254명을 시·도별 인구 비율로 나눠보면 경기(-7석)·인천(-1)에서 8석을 빼 서울(+2석)·부산(+2석)·울산(+1석)·광주(+1)·전남(+1)·전북(+1석)에 나눠준 모양새다. 서울이 인구 19만5507명 당 의원 1명이다. 이것을 지수 100이라고 할 때, 경기는 116.2, 대구·경북은 100.8(19만7009명), 광주·전남·북은 90.9(17만7637명)이다. 서울이나 대구·경북보다 의원 10%를 더 받았다는 의미다. 특히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줄이면서까지 지역구를 지킨 전북은 89.7(17만5292명)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적은 인구로 의원을 만든다. 서울보다 지수가 높은 건 경기(116.2)·인천(109.6)·제주(115.0)와 충청(101.4), 대구·경북(100.8)이다. 선거법을 의원들이 주무르게 하는 건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꼴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3-03

국민을 버리면 의사도 없다

김진국 고문 살아가면서 의사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본인이나 가족이 병으로 고통받을 때 의사는 천사와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의사가 고맙기 짝이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의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오죽하면 나이가 들어 첫 번째 주거 조건으로 병원을 꼽겠는가.필자도 그동안 많은 의사를 만났다. 환자로서는 물론이고, 이웃으로, 친구로, 여러 가지 인연으로 만났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훌륭했다. 어려운 사람을 잘 돕고, 보이지 않게 기부하시는 분이 많다. 매년 해외로 의료 봉사 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분들은 하나 같이 합리적이고, 친절하다. 특정 직업을 싸잡아 개념화하는 것은 무리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그렇다.그런데 최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과 그 배후로 보이는 의사들의 발언은 내가 알고 있는 의사 이미지와 너무 달라 당혹스럽다. 의사들은 대한민국에서 머리가 가장 좋다는 인재들의 집합체다. 요즘은 대학 입학 때 성적순으로 전국의 의대 정원부터 먼저 다 채운다고 한다. 그렇게 특별히 선발된 인재들이 다른 어떤 과정보다 오래, 힘들게 공부한다. 그런데 특권 의식에 절어 있는 집단으로 모니 얼마나 섭섭할까 싶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의사 증원에는 민주당이 더 강경하다. 보수 정권과 합리적 대화가 필요했다. 적어도 국민 여론을 살폈어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일반 국민과는 다른 사람, 다른 집단으로 고립시켰다. 폐쇄된 엘리트 과정만 걸어와서 그런지 공감이 부족하다. 의사의 높은 소득을 질투하는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사 스스로 여론과 멀어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국민은 의사에게 최고 엘리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의사 대표들이 쏟아낸 말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유치한 수재의 이미지만 남겼다.김택우 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면허 정지 경고에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에게 도전했다니, “버릇없이 감히 의사에게 대드느냐”는 말로 들린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民度)”라고 막말하더니, “아주 급하면 외국 의사를 수입하라”라는 말도 했다. 그는 자신들을 ‘매 맞는 아내’로 정부를 ‘폭력 남편’으로 비유하기도 했다.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좌훈정 서울시 의사회 정책이사는 박민수 제2차관을 겨냥해 “나이가 비슷하니 말을 놓겠다”라면서 “야, 우리가 언제 의대 정원 늘리자고 동의했냐”, “네 말대로라면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력 해도 되느냐”고 폭언했다. 전공의 발언은 더 나갔다. 원광대 산본병원 전공의는 “의사가 있어야 환자가 있다”, “내 밥그릇을 위해 사직했다”라고 주장했다.전공의들이 주 80시간씩 일하며 힘들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안다. 그런데 힘들다면 인원을 늘려달라는 게 정상 아닌가. 대학병원에 전공의 아닌 교수를 더 늘리려 해도 의사가 더 있어야 하고, 전공의를 늘려 일을 나누려 해도 증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힘든데 몰라주느냐. 증원하지 마라”라고 한다. 머리 좋은 의사들이 하는 논리적인 말이라고 이해되나. 국민은 “우리가 힘들게 이 자리에 왔으니 이제 충분히 보상받도록 의사 수를 늘리지 마라”는 요구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다 그런 건 아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대학병원에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데 주 80시간씩 일하느냐”면서 “4~5억 벌다가 3억 벌면 죽느냐”고 꼬집었다. 천은미 교수도 “국민을 설득하려면 환자 곁에 남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사단체 지도부가 문제다.사회 지도층은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 발전을 고려하고, 추구해야 한다. 힘이 세다고 사회적 가치를 독점하거나, 머리가 좋다고 다른 사람 몫까지 뺏어가면 야만 사회다. 힘이 있어도 자제하고, 배려할 때 인정하고, 존경한다. 국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정부를 이길 수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25

‘이재명의 민주당’이 총선 목표인가

김진국 고문 공천 작업이 한창이다. 52일 뒤면 총선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마음이 급한지 급발진한다. 그는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란다”라고 말했다. 물갈이에 대한 여론은 나쁘지 않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워낙 깊어서다. 혁신하겠다는 것이니 박수를 받을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가깝지 않은 사람은 자르고, 자기 계파를 내리꽂아 당을 장악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된다면 다르다. ‘비명’(非이재명)계는 그렇게 의심한다.민주당이 대선에서 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책임은 후보자 본인 몫이다. 국민은 후보를 보고 표를 찍었다. 민주당에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런데 이 대표 책임론은 없다. 몰래 만든 대선 백서에도 이 대표의 책임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후보를 제외하면 전임 정부 책임도 크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투표에큰 영향을 미쳤다. 국정을 잘 운영했으면 국민의 다시 표를 줬을 테고, 정권을 재창출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그런데 최근 거론된 책임론은 그것과 전혀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후보가 될 기회를 왜 주었느냐고 따진다. 왜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고, 임기 중 파면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한다. 부동산 정책 실패나, 불공정, ‘내로남불’로 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책임을 따지는 게 아니다.윤 대통령이 여론 지지를 받았던 건 검찰총장이어서가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불공정·내로남불과 대비돼 ‘공정’ 아이콘이 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을 만든 ‘공로’ 내지 ‘책임’은 전 정부 인사 가운데 조국·추미애 전 장관에게 가장 많다. 유인태 전 의원이 지적한 대로다.그런데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먼저 꺼낸 사람은 바로 추 전 장관이다. 그는“석고대죄해야 할 문재인 정부의 두 비서실장(임종석·노영민)이 총선을 나온다고 한다”라면서 “책임감과 정치적 양심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출마하지 말라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문 전 대통령 책임까지 거론했다.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도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라고 맞장구쳤다. ‘친명’ 진영의 의견인 셈이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을 방문해 “우리는 명·문(이재명·문재인)정당”이라는 말을 끌어냈다. 그러나 인사치레에 그쳤다. 공천은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가고 있다.‘올드보이’를 밀어낸다고 한다. 그런데 올드보이는 누구를 말하나. 임종석 전비서실장은 올드보이고, 박지원·정동영·추미애 전 장관은 ‘영보이’냐고 묻는다.여론조사도 의심받고 있다. 이 대표는 당 공식 조사 결과라며 문학진 전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문 전 의원은 “당 후보 측근을 점찍기 위한 조작”이라며 경선을 요구하고 있다. 여론조사라는 것이 워낙 미덥지 않지만, 조사기관 자체도 불투명하다. 하필 곳곳에서 이 대표의 측근들이 내리꽂히고 있다. 이 대표가 여기저기 직접 전화해 사퇴시킨 것도 말썽이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처신이다.도덕성 문제는 더 큰 걸림돌이다. ‘새 술’을 찾는 명분은 혁신이다. 도덕성이다. 그러나 집에서 돈다발이 발견돼 재판 중인 노웅래 의원은 출마 의지를 밝혔다. 이 대표도 재판 중인데 출마한다. 노 의원을 포기하라고 설득할 명분이 없다.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에게도 할 말이 없다.이언주 의원은 7년 전 친문 패권을 비판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갔다. 한때 극우성향까지 보였다. 이제 “함께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하자 이 대표가 받아들였다. 기준이 모호하다. 친문 부활을 막자는 건지, 경쟁자의 싹을 자르겠다는 건지.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한국 선거에서 양당의 공천은 당선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당선 보증수표다. 진영대립 탓이다. 한 사람의 방탄, 대권욕을 위해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18

결정장애인가, 노회한 전략인가

김진국 고문 총선이 65일 앞으로 다가왔다. 두 달 남짓이다. 그런데 선거법도 선거구도 준비가 안 돼 있다. 어디로 갈지 아직 모른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저울질만 하기 때문이다.공직선거법에는 “국회는 국회의원 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해놨다. 당연히 그 틀인 선거제도도 그 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 다 이유가 있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이해관계가 분명해진다. 반발도 크다.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을 때 규칙을 정리해놓으라는 뜻이다.더구나 이번에는 개정 이유가 분명하다. 2020년 총선은 사기극이었다. 이유야 어떻건 법에서 정한 규칙의 취지를 거꾸로 뒤집었다. ‘준연동형’은 국민이 준 표의 비율에 가깝게 국회 의석을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원이 많으면 비례대표는 적게 주고, 반대의 경우 비례대표를 더 주는 제도다. 그런데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내세워 작은 정당들이 가져갈 의석까지 싹쓸이했다.21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고쳤어야 했다. 연동형이 살아나도록 위성정당을 막든지, 아니면 연동형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임기가 끝나도록 방치했다. 무엇이 유리한지 계산기만 두드렸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을 고수했다. 병립형(竝立形)이라는 뜻은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따로 간다는 말이다. 지역구에서 의석을 얼마를 얻었건 비례대표를 결정하는 데는 영향이 없다. 정당투표에서 얻은 비율만큼 비례 의석을 배분한다. 연동형(連動型)은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서 지역구 의석만큼 빼고 비례 의석을 나누는 방식이다.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비례 의석을 적게 받고,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적으면 비례 의석을 더 받는다.21대 총선에서 서울지역을 예로 들어 보자. 민주당 지역구 후보가 얻은 표는 53.63%,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는 42.08%였다. 득표율대로라면 각각 26석과 21석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41석(83.7%)과 8석(16.3%)을 얻었다. 민주당은 15석을 더 가져갔고, 국민의힘은 13석이나 손해를 본 셈이다.서울의 비례 의석을 20석이라고 가정하면 전체의석은 49석. 득표 비율대로라면 민주당은 37석, 국민의힘은 29석이다. 연동형으로 비례 의석을 나누면 민주당은 이미 41석을 얻었으니 한 석도 못 받고, 국민의힘은 20석을 모두 가져간다. 결과는 41대 28이 된다.문제는 위성정당이다. 위성정당 때문에 이런 의도가 빗나갔다. 국민이 투표한 결과에 가까운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게 된다.연동형>준연동형>병립형>위성정당을 못 막는 연동형.그러니 준연동형을 도입한 명분이 오히려 후퇴했다. 병립형보다 못하다. 위 순서에서 뒤로 갈수록 거대 양당이 가져갈 의석이 많아진다. 개정 방향은 분명하다. 위성정당을 막는 조항을 추가해 연동형의 취지를 살리거나,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국민의힘은 처음부터 병립형을 고수한다. 군소정당에 의석을 나눠주면 결국 정의당 같은 민주당의 우당(友黨)만 생긴다는 생각이다. 이준석 신당도 반갑지 않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때 위성정당을 막아 준연동형을 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병립형으로 돌아가거나 위성정당이 가능한 현행법을 방치하는 것이다.사실 위성정당을 금지해도 비례 의석을 받을 민주당 우당(友黨)이 많다. 야권비례연합정당 제안도 있다. 군소정당과 비례연합을 하면 수도권 선거 등에서 공조해 진보 표를 결집할 수도 있다. 비례에서 양보하는 이상으로 지역구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보수진영과는 다르다. 그런데도 이 대표가 고민한다. 대선만 생각한다. 이낙연당이나 지난 대선에서 당락을 바꾸는 표를 잠식한 정의당에 의석이 가는 게 싫은 모양이다.선거법은 합의 처리가 불문율이다. 패스트트랙에 태울 시간도 없다. 국민의힘이 병립형을 고수하는 한 법 개정이 어렵다. 이 대표가 책임지고 결단해야 한다. 결정 장애인지, 못 이긴 척 더 많은 의석을 노리는 욕심인지 알 수가 없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2-04

선거를 치르려면 돌팔매라도 맞아라

김진국 고문 국민 10명 중 7명(69%)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엠브레인 퍼블릭 조사다. 윤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도 63%가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윤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는 뉴스가 터지자 보수층이 경악했다. 이러다 총선이 쫄딱 망하게 생겼다는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도 되는 일이 없었다. 국회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총선을 기대했는데, 그것마저 말아먹을 분위기다.바둑을 둘 때 훈수꾼이 되면 자기 급수보다 2, 3급은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막상 돌을 쥐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욕심이 앞선다. 실수로 놓은 돌에 집착하게 된다. 이미 저질러놓은 실수를 인정하기 싫다. 어린아이는 본성에 따라 움직인다. 철이 든다는 건 감정을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 9단이 별 건가. 욕심과 집착, 사적 인연에 얽매여 사리 판단을 흐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면 9단이다.이번 사태에서 가장 노발대발한 사람은 누구일까.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KBS에 나와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고 다니느냐는 말을 할 사람은 김 여사뿐”이라고 말했다. 친윤계 의원들이 “피해자에게 왜 사과하라고 하느냐”, “사과하면 민주당 공격을 받아 선거에서 불리해진다”라는 말을 흘릴 때도 김 여사가 떠올랐다. 이 바람에 그동안 사사건건 거론된 영부인 국정 개입설을 더 많은 사람이 사실이라고 믿게 됐다.윤 대통령은 조만간 KBS와 대담하면서 ‘명품 백’에 대해 해명할 생각인 모양이다. 최순실 사태로 궁지에 몰려 있던 2017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규재TV’ 인터뷰가 생각난다. 박 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은 하지 않고 유튜브 방송과 대담한 건 참으로 엉뚱했다. 스스로 조롱거리가 됐다.기자회견을 거부한 것은 대통령의 답변이 궁색하다고 인정한 꼴이다. 유튜브 방송을 선택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고립됐음을 보여주고, 상황을 편협하게 왜곡되게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런 지경에서도 귀를 열지 못하고, 극단적 지지자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던 셈이다. 그러니 사과를 제대로 못 했고, 그것도 여러 번 실기(失期)했다.문재인 전 대통령도 기자회견 대신 방송 대담을 선택했다. 2019년 5월 KBS와 임기 2년을 정리했다. 그것마저 찬양 일변도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문빠’들은 인터뷰 기자를 공격했다. 퇴임 직전에도 JTBC의 손석희 사장과 대담했다. 그것을 본 시청자들은 문 전 대통령을 ‘별에서 온 사람’ 같다고 했다. 여론과 동떨어진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탓이다.기자회견으로 정면 돌파하는 게 옳다. 현실에 눈감고, 칭찬만 들으면 행복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명한 대통령이라면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옷 로비’ 때 ‘마녀사냥’이라며 화를 냈다. 그러다 보궐선거를 망쳤다.‘명품 백’ 사건은 대통령실이 지적한 대로 비열한 공작이다. 아버지까지 들먹이며 명품 백을 선물해놓고, 그걸 몰래 찍어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하니 복장이 터질 일이다. 그러나 불법이냐 아니냐,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는 법정이 아니다. 지극히 공적인 대통령 부부와 국민 사이의 문제다.더구나 이 폭로가 없었다면 영부인은 최재영 목사에게 대북 강연도 시키고, 대북사업도 도와주었을 것 아닌가. 대통령 부인이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과 그렇게 긴밀히 접촉하고, 수상한 사람이 몰카를 들고 대통령 부인을 만나도, 방송할 때까지 몇 개월을 모르고 있어도 괜찮은 건가. 아니면 더 큰 일이 터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대담이 아닌 기자회견이어야 한다. 그와 별도로 김 여사까지 직접 사과하면 더 좋다. 선거 이후를 생각한다면 무엇이 두려운가. 돌팔매를 맞지는 못하더라도, 진심을 담아 설명하고, 사과해야 국민의힘이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자신을 비우고 양보할 줄 아는 그런 영부인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28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김진국 고문 자기가 잘해 이기는 선거는 별로 없다. 경쟁상대가 실수해 당선되는 후보가 많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봐도 누가 더 비호감인가를 다투는 선거였다. 그러니 실수를 안 하는 게 중요하다. 말 한마디가 전체 판도를 뒤집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입단속을 한다.4월 총선 결과는 어떨 것 같으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수도권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한쪽으로 쏠린다. 조그만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곳이 많다. 그런데 전체 의석의 절반이 몰려 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바람 방향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바람 방향은 늘 바뀐다. 가장 큰 변수는 실수로 만든 악재(惡材)다.슬픈 일이지만 지금 민심을 움직이는 변수도 이런 악재다. 지금 드러난 최대 악재는 ‘영부인 리스크’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명품 가방’도 그중 하나다. 그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게 ‘이재명 리스크’다. ‘응급의료 헬기’가 특히 아프다.선거에는 언제나 악재가 따른다. 중요한 것은 그런 악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악재도 잘 대처하면 오히려 호재(好材)가 되는 일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장인의 좌익 전력을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는 말로 뒤집어버렸다. 사상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기회로 만들었다.거꾸로 악재를 덮고, 만회하려다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을 드러내 마음을 얻을 수도 있고, 거짓으로 거짓을 덮으려다 점점 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성경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면 반전(反轉)이 없다. 노 전 대통령도 사실을 인정했기에 뒤집기가 가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2년 뒤 당선됐다.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테러당한 건 큰 사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처가 잘못돼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테러의 배후에 현 집권 여당이 있다는 틀을 짜놓고 몰아간다. 민주당은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선생 이후 초유의 암살 미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너무 성급하다.더구나 이 대표가 응급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간 것이 악재가 됐다. 한국은 ‘특권’을 정말 싫어하는 사회다. 조그만 차별도 못 참는다. 보통 사람은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받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대표는 응급실을 쇼핑하는 모양을 보여줬다. ‘피해자’가 순식간에 ‘특권층’이 됐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이 그대로 보여준다.민주당은 이것을 다시 반전시키려고 무리한다. 일반 국민은 이번 사건에서 백범이나 몽양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커트 칼 테러를 떠올린다. 민주당은 “경찰은 무엇이 두려워 정치테러 범죄의 진상을 축소하고, 은폐하느냐”고 주장했다. 혹시라도 다른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하지만 억지로 몰아가면 역풍만 일으킨다. 민주당은 ‘당대표정치테러대책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다.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단정했다. 사건 직후 문자로 사건 보고를 한 대테러종합상황실 공무원을 고발했다. 소방본부 보고 문서에 ‘목 부위 1.5센티미터 열상’이라고 적혀있는데 ‘1센티미터’로 축소했다는 것이다. 무슨 큰 차이인지…. 피의자의 당적과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따지다 직접 공개했다. 공공장소인 현장을 물청소한것, 피습 당시 입었던 와이셔츠가 수술 폐기물과 함께 버려진 것도 은폐라고 의혹을 제기했으나 해프닝으로 끝났다.이재명 대표는 당무 복귀 직후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주어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를 지목한 말이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도 이번 테러와 연결해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응급헬기 비난 여론을 포함해 자기 잘못으로 야기된 여론도 ‘펜으로도 죽여보려는’ 정권의 의도라고몰아간다. 열성 지지자라면 몰라도 일반 민심은 따라가기 힘든 비약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