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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건희, 윤석열, 혹은 보수정권

김진국 고문 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하라고 하면 복장이 터질 법도 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명태균 씨 문제에 대한 대통령실 언급을 들어 보면 억울하다는 심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명 씨가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뛰었다는 것 이외에 아직 확인된 사실은 없다. 명 씨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뛴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왜 점점 더 꼬이게 만드는 걸까. 명 씨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의원은 명 씨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잘 짜는 사람”이고, “아이디어가 많다”라고 한다. 또 “자기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일을 한 다음 성과를 주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저런 가능성이나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라고 말했다. 명 씨가 많은 정치인들을 만난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학생 시절 이후 검사로서 수사밖에 해보지 못했다. 김 여사는 미술 기획 일을 해 인맥이 넓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을 만난 건 아니다. 명 씨의 조언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모르지만, 이준석 의원이 저렇게 평가할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는 건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다 자기 잇속을 챙기는 계산이 있다. 자신의 운명을 그런 사람에게 완전히 맡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럴 때 알려지지 않은, 감추어진 비밀 무기로 명 씨가 적임자였을 수 있다. 이준석 의원은 “윤 대통령 당선을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명 씨를 졸(卒)로 쓰고 버리려고 하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좋게 생각하면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선거 때 도와줬다고 자리를 챙겨주고, 공천 지분을 나눠주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필요한 사람과 국정을 운영할 때 필요한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선거 공신들이 전리품 잔치를 벌인다느니, 낙하산 공천을 한다느니 하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니 칭찬만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쉽게 넘어갈 일이 커지는 것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혹은 영부인이, ‘저런 허접해 보이는 사람’의 훈수를 들었다는 게 창피한 건가. 왜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해 의심을 사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2021년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명 씨가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 정치인과 자택을 찾아와 두 번 만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하지 않으니만 못한 해명이 됐다. 의혹은 의혹을 불러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명 씨와 김 여사가 문자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얘기를 나눈 것도 확인됐다. 대통령실 해명이 하루도 안 지나 논박당하니 이런 망신이 없다. 사실은 인정했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감추고, 도망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된다. 주변에서 사과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그들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과해서 망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사과하지 않았으면 온전했을까. 문제는 사과가 때를 놓쳤고, 번번이 기대에 못미치는 뒷북이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하루 만에 뒤집히는 대통령의 권위를 누가 지키나.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는 암세포보다 더 넓게 잘라내야 한다. 생살이 아깝다고 환부에 바투 자르면 전이를 막지 못한다. 종국에는 환자를 죽이는 길이다. 그런 건의를 하는 사람은 환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첨꾼이다. 윤 대통령은 ‘사랑꾼’으로 소문나 있다. 김 여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단계는 지났다. 민심이 점점 더 흉흉하다. 서투른 해명으로 덧나게 할 이유가 뭔가. 김 여사에서 끝낼 건가,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처를 입을 건가. 그도 아니면 정권을 내주더라도, 김 여사만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기필코 지킬 건가. 결국은 게도 구럭도 다 잃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13

정치인부터 법의 코뚜레를 꿰어야 한다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여론이 분분하다. 검찰이 2일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고위공직자 부인이 수백만 원짜리 선물을 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법이 그렇다. 남편인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물을 준 최재영 목사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의 국정자문위원 임명, 사후 국립묘지 안장, 통일TV 송출 재개 등을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모두 윤 대통령의 직무에 속하는 문제들이다. 최 목사는 2022년 6∼9월 사이에 300만 원짜리 디올백, 179만 원어치 샤넬 화장품 세트, 40만 원 상당의 양주를 김 여사에게 줬다고 했다. ‘뇌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많은 돈을 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지만 부인은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게 검찰 결론이다. 그 직무를 하는 대통령은 남편이지, 김 여사가 아니다. 검찰은 “수사팀이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검사의 ‘양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난타했으니 차치하자. 법을 어떻게 만들어놨길래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나. 시장에게 인사 민원이 있으면 시장 부인에게 비싼 선물을 하면 된다는 말이 된다. 청탁할 일이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 부인을 찾아가 ‘선의’이고, ‘친교’를 하기 위해서라며 뇌물을 먹이면 대가성이 없는 게 된다. 부패하고 망조가 든 나라가 떠오르지 않나. 사실 청탁금지법을 만들 때부터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었다. 가장 부패 위험이 큰 직군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들어주는 것은 예외로 했다. 국회의원이 민원은 들어야 한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규정은 모호한 고무줄이다. 엄격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가장 부패하고, 가장 불신받는 정치인은 제외됐다.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이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한 규제는 느슨하다.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액수의 금품을 수수·요구·약속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다. 김 여사도 처벌할 수 없다. 민주당은 김 여사 문제를 연일 공격한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윤 대통령 부부를 공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런 일을 반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법은 손 보지 않을까.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특혜를 누리려는 걸까. 의원 신분인 지금도 같은 처지여서인가. 민주당은 2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탄핵 청문회’를 열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앉혀놓고, 해명을 들었다.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를 엄호하는 청문회다. 민주당은 이 밖에도 이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 소추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들의 직무가 정지된다.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어떻게든 대법원판결을 늦추려는 지연전술에는 특효약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변호해 온 사람들을 대거 공천해 의원으로 만들었다. 의원 신분으로 검사와 판사를 겁박한다. 국회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해 이들을 국회로 소환해 압박한다. 국회의원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국회의원이라도 재판을 두고 사법부를 좌지우지하려는 이런 일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운동권 대부라는 장기표 씨가 타계했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180여 개의 엄청난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내각제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걱정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부패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국정을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만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헌정체제이건 정치 부패를 방지하려면 사법제도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대통령은 부인 문제로, 야당은 당대표 문제로 검찰과 법원을 마구 흔들어대니 걱정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10-06

윤석열과 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김진국 고문 김건희 여사는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 단골메뉴다. 27일 전현희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 무속 논란에 휩싸이자, 배우자가 구약성경을 다 외운다고 거짓말했다”라는 말을 꺼냈다. 이어서 그는 “당선 목적의 허위 사실 유포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김 여사가 39권 929장, 2만3천145절 방대한 양의 구약성경을 외우는지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이재명 대표는 “이런 거짓말은 죄가 안 되는 것”이라며 “제가 이런 얘기를 했다면 징역 5년쯤 구형받았을 것”이라고 빈정댔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11월 15일 선고 예정이다. 이 대표가 재판받고 있는 7개 사건 4개 재판 가운데 가장 먼저 선고가 나온다. 이 대표뿐 아니라 민주당이 전전긍긍이다.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을 잃고,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한다. 민주당은 사생결단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의 탄핵을 추진했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할 거라는 걸 민주당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동안 검사는 직무가 정지되고, 수사도, 재판도 지연된다. 국회에 검사들을 불러 호통치고, 모욕한다. 검사도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했다. 그것도 모자라 ‘법 왜곡죄’ 입법을 추진한다. “검사 등이 피의자·피고인을 처벌하거나, 처벌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증거 해석·법률 적용 등을 왜곡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용이다. 이 대표를 수사한 검사를 법 왜곡 혐의로 쫓아내고, 처벌하겠다는 위협이다. 법사위에 관련 증인들을 불러 추궁한다. 법원 역할까지 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대표를 방탄하는 이런 피나는 노력에서 빠지지 않는 게 ‘김건희 여사’다. 27일 최고위원회의도 그 중 하나다. 여론에 잘 먹히기 때문이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은 끝도 없다. 명품백 사건은 가장 비난받는다. 고위공직자가 부인을 통해 뇌물을 받으면 문제가 없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있다. 2020년 수사가 시작될 때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와 40여 차례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이 나왔다. ‘선수’였던 김 모씨가 쓴 편지에 “김건희만 빠지고 우리만 달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이종호 전 대표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에서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여사가 개입해 사건이 꼬였다는 주장이다. 공천 개입 의혹도 있다. 김영선 전 의원과 브로커 역할을 한 명태균 씨의 통화에 김 여사가 나온다. 2022년 경남 창원 의창 보궐선거에 김 전 의원을 공천한 것도 김 여사라고 주장한다. 한동훈 대표와의 문자, 서울의 소리 기자와의 장시간 통화, 최재영 목사와의 문자 등을 생각하면 이런 문자나 통화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터져 나올지 위태위태하다. 명품백처럼 명백히 드러난 사건에도 김 여사는 사과를 거부한다. 공개 활동을 재개했다. 괘씸죄까지 얹혔다. 민주당은 김 여사 관련 8가지 의혹을 특검 수사 대상에 올렸다. 당내에 TF·조사단을 꾸린다. 민주노총 등은 28일 전국 주요도시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시국대회’를 열었다.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 박탈은 사형과도 같다. 최고의 방어막은 김 여사다. 마지막 카드는 ‘탄핵’이다. 어이없는 ‘계엄설’을 계속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 덕에 연명하듯, 윤 대통령도 이 대표 덕에 버틴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하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8%다. 보름 전 20%를 찍은 뒤 10%대로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런데도 버틴다. 이 대표 덕이다. 적대적 공생이다. 발 벗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범죄 혐의로 적대적 공생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29

통일정책은 국민 합의가 먼저다

김진국 고문 “통일 하지 말자”라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이 파문을 던졌다. 그는 19일 ‘9·19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라면서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전대협 의장 시절 임수경을 북한에 보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는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통일 하지 말자”라고 외치니 많은 사람이 놀랐다. 지난 연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북한은 통일 관련 구호나 조직을 모두 없앴다. 동포가 아니라 ‘원쑤’가 된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김정은이 통일 거부 선언을 한 것과 연관 짓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보수진영은 일제히 김정은 주장에 장단 맞춘다고 비난했다. 해방 정국에서 통일은 절대 가치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비한 역사전쟁은 지금도 뜨겁다. 우파인 백범까지 내세우며 통일을 강조하던 진보 진영이 갑자기 통일하지 말자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2 국가론에는 여러 가지 전략적 암수(暗數)가 숨어 있다. 분명한 것은 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진 통일’을 주장했다. ‘평화통일’은 금기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7.4 남북 공동선언을 하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구체적인 통일정책을 처음 만든 것은 노태우 정부다. 이홍구 통일부 장관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 야당 총재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녹여냈다. 이것을 김영삼 정부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발전시켰다.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다. 자주·평화·민주 원칙과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 완성이라는 3단계 통일 방안이다. 찬찬히 따져보면 여건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교류 협력하고, 통일을 미루자는 얘기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여정이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했다. 두 개의 나라는 아니지만, 서로의 실체를 인정했다. 유엔에 동시 가입해 국제적으로 두 나라로 인정받았다. 특수관계를 내세워 관세 등에서 국제사회의 특혜를 요구했다. 임 전 실장 발언에 놀랄 일이 아니다. 김정은이 감춘 비수와 그에 휘둘릴 가능성이 위험하다. 북한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6·25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주장했다. 남쪽의 좌파 단체와 학생운동권도 이에 동조했다. 전대협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 통일 한반도’는 자유의 이념으로 북한을 통일하겠다는 구상이다. 남쪽의 젊은이들은 이념 전쟁에 회의적이다. 통일을 반대한다기보다, 굳이 통일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느냐고 생각한다. 바른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4월 20·30대 남녀를 조사한 결과 ‘통일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응답이 61%, ‘꼭 필요하다’는 응답은 24%였다. 통일부와 교육부의 22년 통일교육실 태조사에서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초·중·고생은 16.2%에 불과했다. 지난해 민주평통의 청소년 대상 조사에서는 통일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은 10명 중 1명,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7명이었다.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를 52.0%가, ‘단일국가 통일 모델’를 28.5%가 꼽았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다. 잘못된 안보 전략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적을 앞에 두고 분열하면 자멸(自滅)뿐이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초당적인 노력 덕분이다. 통일·안보·외교를 다루는 자세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초당(超黨)적 대처는커녕 정략적으로 이용한다. 핵무기에 맨몸으로 노출된 위기 상황에서도 그러고 싶은지 참담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22

실행력 없으면 외고집 된다

김진국 고문 “저는 쉬운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4대(연금·의료·교육·노동)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는 것이 소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온다”라는 윤 대통령의 말은 일리가 있다. “정치적 유불리만 따진다면,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편한 길”이라는 말도 이해가 간다. 저항을 돌파해 개혁에 성공하라고 응원하고 싶다. 힘든 길에 국민의 동참을 요구할 수도 있다. 영국의 처칠이나 미국의 링컨도 고난의 길에 함께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려면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나 대국민 브리핑을 한 뒤에는 지지율이 더 떨어진다. 결기에 찬 그의 연설을 들을 때 왜 ‘역사와 대화하겠다’는 과거 대통령들의 말이 생각날까. 그들은 임기 말 우군마저 등을 돌려 고립됐을 때 ‘역사와의 대화’를 꺼내곤 했다. 국민 여론도, 같은 당 동지도 돌아서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역사’다. 동지는 ‘배신’했지만 역사는 내가 옳았다고 평가해 줄 것이라는 오기(傲氣)다.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감수하고 밀어붙일 줄도 알아야 한다. 윤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대 정부가 실패한 개혁 과제들은 저항이 만만치 않다. 박수를 보내고, 응원한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안 된다.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1일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의대 증원을 지지하던 여론이 오히려 나빠졌다. 4·11 총선 패배의 중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6월 3일 윤 대통령은 또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라고 직접 발표했다. 1975년의 비슷한 촌극이 오버랩됐다.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는데, 여론이 시큰둥했다. 사람들은 그걸 대통령이 왜 직접 발표했나 갸우뚱했다. 윤 대통령은 ‘상식’과 ‘공정’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시중의 ‘상식’과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번 국정 브리핑과 이어진 기자회견은 굉장히 낙관적이다. 언론 반응은 냉랭하다. 한겨레가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인식 드러낸 윤 대통령 회견”, “‘김건희 의혹’ 국민 의구심에 철저히 눈감은 윤 대통령”, 경향신문이 “‘뉴라이트·채 상병’ 궤변 연발한 윤 대통령, 국민이 바보인가”라고 비판적 사설을 쓴 것을 논외로 하자. 보수성향의 조선일보도 “대통령은 ‘블록버스터급’으로 경제가 좋다고 했는데”라는 사설에서 “대통령의 경제 발언은 이런 현실을 얼마나 정확히 판단하고, 정책 대응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의 상황 인식, 민심과는 거리 멀다”고 지적했고, 동아일보는 기명칼럼에서 “다수 국민의 인식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인식”이라며 “구름속에 묻힌 구중궁궐이냐”라고 물었다. 다른 신문도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이 거의 일치한다. “국민과 동떨어진 대통령 인식 재확인한 국정브리핑”(한국일보) 대통령이 한번 결론을 내리면 뒤집기 어렵다. 대통령이 귀가 얇아 오락가락하면 안 되지만, 귀를 닫고, 입만 열어도 큰일이다. 대표적 친윤인 권성동 의원 말대로 대통령의 권력이 더 강하다. 설득하지 못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어쨌든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윤 대통령이다. 방향이 좋고, 의지가 굳건해도, 거대 야당 협조가 없으면 공수표다. 집권당 대표, 그것도 최측근으로 알려졌던 한 대표 한사람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야당 협조는 끌어낼 수 있나.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다. 역사가 평가할 훌륭한 국정 방향을 세상 사람이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다고 한탄할 수도 있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또 추락하는 지지율을 애써 외면해도, 그게 현실이다. 한탄만 하며 임기를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 더 궁금한 게 있다. 차기 정권 재창출은 할 수 있나. 다음 총선에서는 다수당을 차지할 비책이 있는가.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9-01

누구에게 맡겨도 더 좋아진다는 희망 줘야

김진국 고문 정치가 없는 시대다. 대통령의 축하난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연임을 축하하는 난(蘭) 화분을 보내기로 했다. 속마음으로 정말 축하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제1야당 대표가 선출되면 대통령이 축하해주는 게 관행이다. 그런데 축하와 감사를 전달하며 훈훈해야 할 축하난 전달이 정쟁의 불씨가 됐다.그게 정치력의 최고수여야 할 대통령 정무수석과 야당 대표의 수준이다. 난초 화분 하나 전달하는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려운 정치 쟁점들을 어떻게 풀겠다는 것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입씨름 내용도 한심하다. “아침부터 연락했으나 답을 못 받았다.”, “정무수석 예방 일자를 조율했으나, 축하난과 관련해 어떤 대화도 나눈 적이 없다.”축하난 하나 전달하는데 문자를 남기고, 답이 없다고 발표하는 건 뭔가. 대통령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답을 주지 않는 건 또 뭔가.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그게 축하난 전달인지, 뭔지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는 게 어이가 없다. 김명연 대통령 정무1비서관과 이해식 민주당 당 대표 비서실장이 전화 통화로 축하 난 공방을 멈추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축하난 전달을 위해 그렇게 바로 통화할 수는 없었는가.물론 양측이 의심할 수는 있다. 불신이 쌓여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이 보낸 난 화분을 돌려보냈고, 다른 소속 의원들은 ‘버립니다’라는 쪽지를 붙여 SNS에 올렸다. 그래도 민주당은 수권 정당이 아닌가. “지금 당장이라도 오라. 만나자”라고 전화하지 못하나. 윤 대통령도 직접 전화해 “축하한다”라고 말했으면, 더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정치 초보도하지 않을 오해와 갈등을 왜 방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대표가 코로나19에 걸려 입원했을 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쾌유를 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다. 조문 외교에는 전세계 정상들이 나선다. 핑계 김에 많은 정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문안도 마찬가지다. 난 화분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 운영이 어렵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절박하지 않은 것 같다.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담도 시간을 끌고 있다. 정치는 갈등을 푸는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범부가 보기에는 도저히 풀릴 수 없는 문제를 풀고, 해답을 내놓는 게 정치다.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게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다. 국정을 잘 운영해야 한다. 야당도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정권을 잡고, 국력을 낭비하며, 자기 주머니만 채운다면 ‘큰 도둑’에 불과하다.한 대표 측에서는 회담을 생중계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 측은 ‘정치 쇼’라고 의심했다. 밀실 회담은 오해를 낳는 일이 많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다반사다. 국민이 판단하도록 하자는 생각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정치는 설득과 타협이다. 윈-윈하는 상생 정치는 서로 명분을 얻어야 가능하다. 모든 것을 국민에게 알리겠다는 생각은 이해하지만 결국 양쪽의 강경 세력만 기세를 얻고,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상대 주장을 이해하기는 하나도 어렵지만, 꼬투리를 잡을 일은 수백 가지다.의제도 서로 생색낼 생각만 가득하다. 한 대표는 금융투자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등을, 이 대표는 채상병 특검법과 25만 원 민생지원금 등을 꺼낼 예정이다. 물론 이런 쟁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신은 생색이 나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정치 협상은 승패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크게 이기면 오히려 실패다. 당장 의대 증원으로 응급실이 무너지고 있다. 여야가 손을 잡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문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이 대표가 코로나로 입원하면서 실무 협상이 중단됐다. 기회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 정치를 복원하고, 두 사람 누구에게 맡겨도 나라가 발전하겠다는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25

인사 시스템에 문제 있다

김진국 고문 광복절에 낯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절 행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데, 같은 시각 효창공원의 백범기념관에서는 또 다른 기념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통일이 숙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남북통일은커녕 남쪽마저 두 쪽이 난 광복절 경축식을 치렀다. 광복회 기념식 맨 앞줄에 민주당을 비롯해 야당 대표들이 앉았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만 정부 행사에 참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독립기념관장 인사 문제가 온 나라를 해방 정국으로 되돌려놓았다. 광복회 행사 발언은 더 고약하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는 없다”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야당은 기념식장에 입장하기 직전 ‘친일·반민족 윤석열 정권 규탄 대회’를 열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3년이 지긋지긋하게 길다. 혁신당은 야당·시민사회와 함께 친일 밀정 정권 축출에 온 힘을 다하겠다”라고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이 이종찬 광복회장의 반발에서 비롯했다. 이 회장은 백범의 장손자인 김진 광복회 부회장을 추천했으나 탈락했다. 이 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뉴라이트’다, 건국절을 만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건국절을 제정할 의사도, 검토한 적도 없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김 관장을 사퇴시키라고 요구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 회장의 조부 우당 이회영과 종조부 성재 이시영 전 부통령 형제는 전 가산을 팔고, 온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명문가다. 이 회장은 과거 언론인터뷰에서 “작은할아버지(성재)께서는 정부 수립 전후로 사이가 틀어진 백범(김구)과 우남(이승만) 사이에서 두 분을 화해시키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라고 말했다. 단독정부수립에는 우남 노선을 따라 부통령이 되었다. 더구나 이 회장은 지난해 “이승만 기념관 설립에 대찬성”이라고 말했다. 이제 와 ‘이승만 우상화’라고 주장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광복을 위해 모두 바친 선조를 생각하면 개탄스럽다. 김형석 관장은 “건국절에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뉴 라이트’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광복회나 야당이 밝힌 그의 발언을 봐도 딱히 문제 삼을 내용이 아니다. 광복절 행사는 특정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축식이다. 인사에 이견이 있다고, 오물을 뿌릴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 경영 능력에 아쉬움이 남는다. 노무현 정부 때 한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관이 인사할 자리가 많다. 부처 내에는 물론 산하 단체 임원도 인사한다. 이것을 장관이 모두 임명하면 안 되고, 산하단체는 물론 부처 내 인사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실의 의견, 국·과장 재량권도 일정 비율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야 국장도 부하직원들을 지휘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종찬 회장은 대통령에게 세 번이나 사신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윤 대통령이 아들 친구다. “모욕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인사를 들어주든 말든, 성의를 다했으면 이 지경이 됐을까 싶다. 더구나 임기가 절반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공공기관장·감사 자리 39%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은 52%, 나머지는 공석이다. 임기가 끝난 사람들도 후임 인사가 오지 않아 1년 넘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비어 있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미루자 “총선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에게 줄자리인가 보다”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총선이 지나도 그대로다. 낙선자 배려가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꼭 챙겨야 할 자리 외에는 위임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다 쥐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는 자리에 집착해 분란을 일으킨다.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의 관심사인 경우다.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정권 창출 기여에 대한 보상도, 검증도 모두 문제가 있다. 임기가 절반이 다 가도록 이 모양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2024-08-18

파리의 스포츠맨십, 서울의 스테이츠맨십

김진국 고문 파리 올림픽이 어제 막을 내렸다. 올림픽에서 우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많이 봤다. 여자 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을 딴 레베카 안드리드(브라질)가 양팔을 들고 승리의 기쁨을 표시하자, 은메달리스트 시몬 바일스(미국)와 동메달리스트 조던 차일스(미국)가 레베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뻗어 존경을 표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관중들이 환호했다.바일스는 체조의 전설이다. 넷플릭스가 ‘시몬 바일스, 더 높이 날아올라’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정도다. 8년 전 리우올림픽 4관왕인 바일스는 이번에 금 3, 은 1개를 땄다. 그런 바일스가 마루 종목에서 0.033점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활짝 웃으며 차일스를 꽉 안아줬다. 시상대에서는 레베카를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기자회견에서도 “레베카는 정말 대단하고 여왕 같다”라고 칭찬했다.# ‘삐약이’ 신유빈은 탁구 여자 개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역전패했다. 5세트까지 가는 힘겨운 시합이었다. 그러나 신유빈은 드러누워 있는 하야타 히나(일본)에게 다가가 미소로 포옹하며 축하했다. 일본 감독에게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나를 이긴 상대들은 나보다 더 오랜 기간 열심히 묵묵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유빈이 경기장을 떠날 때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본 언론들도 찬사를 보냈다.# 양궁 남자 개인 결승전은 슛오프 끝에 김우진이 브레디 엘리슨(미국)을 이겼다. 슛오프에서도 동점이었지만 4.9㎜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그럼에도 엘리슨은 승복하고, 축하했다. 양국 감독까지 손을 잡고, 만세를 불렀다. 엘리슨은 “그와 동시에 화살을 쏜다는 건 인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태권도의 박태준은 결승전에서 이긴 뒤 승리의 세리머니 대신 쓰러진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상태를 살피며, 위로했다. 시상식에는 그를 부축하고 나타났고, 끝난 뒤에도 부축해 줬다.# 남자 유도 100㎏ 이상급 결승전에서 테디 리네르(프랑스)는 김민종을 매트에 꽂아 한판승으로 이겼다. 리네르는 김민종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김민종의 왼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관중의 환호를 유도했다. 이유를 묻자, 리네르는 “여기 있는 선수들 모두 잘 싸웠다. 강한 상대였다. 아름다운 경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일 남자 높이뛰기 예선에서 무타즈 바르심(카타르)이 2m27 1차 시도를 하다 다리 근육경련으로 쓰러졌다. 지안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는 바로 직전 2m27에 1차 시도해 실패했는데도 바르심에게 달려가 다리를 뻗게 도와주고, 종아리를 주물러 풀어줬다. 두 사람은 4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공동 수상했다. 파리에서는 바르심이 동메달을 땄다.# 10일 오후 7시 35분(한국 시각) 파리의 르부르제 클라이밍 경기장. 스포츠클라이밍 마지막 대회가 열렸다. 여자 콤바인 결선 리드 종목. 완등자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도전자로 얀야 간브렛(슬로베니아)이 나섰다. 경쟁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관중이 일제히 리듬박수를 치며 완등을 축원했다. 금메달 포인트까지 따자 환호가 더 커졌다. 더 올라가 완등 직전에 떨어졌지만, 경쟁자와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우리가 이미 본 장면들이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우리 정치권이다. 경쟁을 끝내고도 승복할 줄 모른다. 내 능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끌어내린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커녕 예의도 없다.국회 연설에서 다른 의원들을 향해 ‘존경하는…’이라고 발언을 시작하는 것을 자주 본다. 영국의 전통을 흉내 냈다. 상대의 의견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말마저 ‘존경하고 싶은…’이라고 비튼다. 야유와 조롱과 욕설이 난무한다.열거한 사례 대부분은 한국 청년이다. 그 앞 세대인 정치권은 왜 그 모양일까. 그러면서 정치꾼(politician)이 아닌 정치가(statesman) 행세를 한다. 오히려 남들에게 “올림픽처럼 하라”며 하늘 보고 침을 뱉는다. 제발 미래세대에 걸림돌, 부끄러움이 되지 말아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11

변변치 못하게 선거 불복까지 따라하나

김진국 고문 ‘탄핵’이 시대의 명제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에는 ‘탄핵’이라는 단어가 금기어였다.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이라 생각했다.요즘은 유행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이후로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이 소추됐다. 또 안동완·이정섭·손준성·이희동·임홍석·강백신·김영철·박상용·엄희준 무려 9명의 검사 탄핵안이 발의됐다. 언론과 검찰을 야당 손에 쥐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청원에 143만 명이 찬성했다. 이를 핑계로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청문회까지 열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문회…. 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 대통령이라고 생각할 법하다. “청원이 있어서…”가 이유다.143만 명이 찬성 서명했다는 것도 놀랄 일이다. 하지만 증오의 정치 시대에 반대자를 모으자면 100만 명이 어려운 숫자가 아니다. 다른 정치인인들 반대서명을 하면 못 모을까. 탄핵 청문회에서 듣도 보도 못한 기행들이 벌어졌다.이런 이벤트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권위를 잃고, 신뢰도 잃어간다. 윤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 나서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건, 아니면 다른 누가 나선다고 해도 경쟁할 상대에서 윤 대통령은 제외된다. 그렇다고 분명한 탄핵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탄핵 놀이’를 즐기는 인상을 준다. 취임 이전부터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민주당만 그런 게 아니다.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통해 한동훈 대표를 선출했다. 당원도, 일반 국민도 63%가 한 대표를 선택했다. 대통령실이 원희룡 후보를 적극 지원한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압도적 승리다. 일반 국민뿐 아니라 당원들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분명히 표시했다.그런데 전당대회가 끝난 바로 다음 날 김재원 최고위원은 방송에 출연해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의사가 다를 때는 원내대표의 의사가 우선”이라고 말했다.김민전 최고위원도 “(채 상병 특검법은) 당대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얘기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당대표 생각이라 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 그렇게 토론을 통해 더 좋은 전략을 세워가는 게 최고위원회의다. 하지만, 이 발언은 한 대표를 허수아비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전당대회 중에도 ‘김옥균 프로젝트’가 나돌았다. 김옥균의 개화당이 갑신정변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삼일 천하로 끝난 것에 비유한 구상이다. 한 대표가 당선되더라도, 단기간에 낙마시키겠다는 뜻이다. 그 이후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텼다. 과정을 구체적으로 복기하지는 않겠다. 최고위원회의 구성에서 정 의장이 버티면 반(反) 한동훈 성향이 과반수가 된다. 한 대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결국 한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찾아가 만남으로써 해결했다. 그런데도 아직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았다. 여전히 한 대표를 국민의힘 대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력이 많다. 윤 대통령이 ‘당무 개입’이라는 탄핵 핑계를 만들지 않으면서 최대한 의견을 밝혔지만 선뜻 수용하지 않는다.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만남에 대해서도 ‘10분만 만났다’라는 조작한 정보를 흘리며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를 반대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기존 당 간부들이 대통령을 핑계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비친다. 63% 대 19%로 세 배가 넘게 득표했지만, 불복하려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한 대표도 망하는 길이다. 민주당 행태와 다르지 않다. 아니, 집권 2년을 지켜본 민주당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선거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회로 진격하라고 지지자들을 부추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92년 선거 직후 ‘컴퓨터 부정’을 주장하며 백서를 내고, 보라매 집회를 열었다. 최근에는 보수 세력 일부도 선거 부정을 주장한다. 선거가 잘못됐으면 정상 절차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하지만, 무한정 의혹을 확산하고, 불복하는 행태는 민주주의에 독(毒)이다. 집권당이 하다 하다 변변치 못하게 선거 불복까지 따라 하려는 건지 한심하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8-04

노태우, 김영삼, 이회창… 그리고 한동훈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국민의힘 새 지도부를 초청해 삼겹살 파티를 했다. 대표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들도 함께 불렀다.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가 화합하라고 삼겹살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앞으로 하나가 돼 우리 한동훈 대표를 잘 도와줘야 된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러브샷도 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풀려나갈까.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분당(分黨)대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감정싸움이 심각했다. 윤 대통령이 원희룡 후보를 내세워 한 후보를 저격했다. 영부인과 한 대표 사이에 오간 문자까지 공개됐다. 24일 만찬에서 윤 대통령은 “당내 선거는, 선거가 끝나면 다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할까, 그것만 생각하자”라고 말했다.그런데 전당대회 바로 다음 날 친윤계 최고위원들은 한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은 각각 방송에서 채 상병 특검법은 “당대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얘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표의 권한을 축소해 허수아비로 만드는 발언이다. 민주당이 기존의 특검법을 밀어붙이고, 한 대표가 반드시 막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일단 한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한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팬덤을 형성한 첫 번째 보수 정치인이라고 한다. 전당대회에서 당심과 민심이 모두 63%의 지지를 보냈다. ‘윤심’에 들지 않은 대표와 대표 후보들을 쳐낸 것과 같은 방법으로는 누를 수 없었다. 하지만 원외인 한 대표는 한계가 있다. 윤 대통령과 등지면 국회와 따로 움직여야 한다. 치명적 상처를 각오해야 한다. 한 대표만 그런 게 아니다.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 퇴임 후가 걱정이다. 경쟁력 있는 후보를 모두 버릴 순 없다.윤 대통령은 저조한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을 표로 모아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비서실에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신영복 씨 글을 내려 보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줄임말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春風)처럼 너그럽게 하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는 가을 서리(秋霜)처럼 엄하게 하라’는 채근담의 경구다. 그러나 거꾸로 행동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유행어가 됐다. 불공정의 상징이었던 조국 법무부 장관을 수사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뜻하지 않게 횡재했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최순실의 자식 사랑에 분노한 민심이 조국 사태에 분개했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지지율이 바닥이다. 영부인 문제에 너무 ‘춘풍’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내로남불’을 부숴달라는 기대에 못미친다. ‘격노’라는 말이 너무 자주 들린다. 말을 듣기보다 하기를 좋아한다. 선거 국면 언행이 여론을 역류했다. 의대 증원 문제에서 무능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차기 후보라면 윤 대통령의 지지 세력을 넘겨받기보다, 거부감을 덜어내는 게 관건이다. 검사가 법 적용을 자의적으로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타격이다. 윤 정부가 실패하면 정권 재창출이 아예 어렵다. 더구나 임기가 반도 지나지 않았다.2인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김종필(JP)·이회창은 실패했다. 노태우·김영삼(YS)은 성공했다. 차별화가 성패를 가르지는 않았다. JP는 ‘증언록’에 노태우 보안사령관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썼다. “첫째,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보지 마라.… 둘째, 있는 성의를 다해서 일관되게 1인자를 보좌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해라.”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JP의 조언대로 2인자의 자세를 지켜 대권을 잡았다.이회창 후보는 YS와 차별화했다. 극적으로 총리를 사퇴했다. 대통령 탈당을 요구했다. 지지자들이 YS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떼놓은 당상이라던 판세에서 연거푸 실패했다. YS는 노태우 대통령을 몰아세우며 차별화해 성공한 경우다. 차별화하더라도 상처가 크면 안 된다. 도움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건 민심이고, 타이밍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28

미친놈들의 시대

김진국 고문 ‘미친놈 전략’(madman strategy)이라는 게 있다. 미친놈처럼 보여 상대가 합리적 대응을 못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미친놈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바둑에도 ‘정석’이라는 게 있다.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대응 수순이 정해진 경우다. 고수들도 그 정석을 벗어나면 손해본다고 믿는다.미친놈은 정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음 수순을 예측하기 어렵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장기 전략을 짜기는 더욱 어렵다. 미친놈의 착수를 보고서야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크게 손해보고 들어가는 셈이다. 또 미친놈은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만큼 무서운 놈이 없다. 결국 그런 미친놈을 만나면 공포를 느낀다. 처음부터 지고 시작한다.미친놈 전략은 헨리 키신저가 베트남 전쟁에서 써먹었다.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북베트남에 화가 난 미치광이라 핵무기를 쓰려고 한다는 가짜정보를 흘렸다. 소련이 북베트남에 협상을 종용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다. 결과는 실패였다. 협상의 대가라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성공했다. 트럼프의 선택은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미치광이는 정말 미친놈이라고 인식될 때 효과가 있다. 핵무기가 종이호랑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용하기 어렵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자 전 세계가 두려워했다. 푸틴이니까 사용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가장 잘 써먹는 사람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고모부를 고사포로 처형할 정도로 미친놈임을 보여줬다. 어리다고 얕보던 북한 고위층이 모두 납작 엎드렸다. 김정은이 어떤 어떤 이유로 숙청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사소한 지적이라도 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핵무기도 김정은이라면 쓸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도 걱정한다. 전쟁 결심도 없이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남한의 민간인 지역을 포격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그는 연평도에 포탄을 170여 발이나 퍼부었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법사위를 전무후무하게 자기 방식으로 진행한다. 상임위는 여야 간사 합의로 진행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여당 간사 선출 없이 밀어붙였다. 관례는 무시하고, 국회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했다. 청원을 구실로 탄핵청문회를 열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청원에서 제외하게 돼 있는 국회법은 무시했다. 필요한 법만 인용한다.증인들에게 갖은 온갖 모욕을 줬다.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 “귀신 잡는 해병이 부하 잡는 해병이 됐다”라고 압박했다. 증인 선서와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는 증인들에게 ‘10분간 퇴장’ 명령을 내렸다. 회의장 밖에서 10분간 벌을 서고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퇴장당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퇴장하면 뭐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쉬고. 한 발 두 손 들고 서 있으라 해야지”라고 조롱했다. 대한민국을 지킨 예비역 장군들을 그렇게까지 모욕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위원장석으로 나와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퇴거 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퇴장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의원님 성함이 뭡니까”,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세요”라며 여당 의원들의 발언을 뭉개버렸다. 곽규택 의원에게는 “계속 저를 째려보고 있다. 의사를 진행하는데 상당히 불편하다”라면서 발언권을 박탈했다. 법사위 직원에게 “계속 째려보는지 안 보는지 촬영하라”는 지시도 했다. 코미디 같은 진행이 연일 주목받는다.국민의힘 의원들은 무대책이다. 항의하다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정 위원장 페이스에 말려들어 끌려간다. 청문회 증인들도 국민의힘 의원들을 보며 적응해 간다. 증인 선서를 거부하다 선서하고, 답변도 적극적으로 한다. 정청래 위원장의 미친놈 전략이 통한 것이다. 트럼프, 김정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정청래 위원장, 게다가 자폭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정석, 예의를 찾으려는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21

쪽팔리는 짓은 하지 말자

김진국 고문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역을 한 황정민이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가진 것이 없어도 자존심은 있다는 말이다. 형사로서 자존심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범죄자 잡는 책무를 잊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범죄자가 돈으로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는 게 자존심이다. 범죄자가 돈으로 형사를 우롱하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기다.다른 직업에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이런 자존심이 있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자존심을 지키면 존경받는다. 장인(匠人)으로 높이 평가된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자존심을 버리는 순간 ‘쓰레기’가 된다. 그런 쓰레기는 지위가 높은 계층에 오히려 더 많다.‘가오’(顔)는 일본말로 얼굴이라는 뜻이다. 일종의 ‘체면’ 같은 건데, ‘자존심’이 가장 가까운 말일 듯하다. 속된 표현으로 ‘쪽팔린다’라는 말이 있다. 부끄러워 체면이 깎인다는 뜻이다. 이때 ‘쪽’도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니, ‘쪽’을 파는 건 ‘가오’를 잃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속된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건달이다. 건달조차 지키고 싶어 하는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 그런데 사회 지도층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불량배도 지키려는 그 선을 넘어 창피한 짓을 거리낌 없이 하고 다니는 걸 본다. 특히 우리 정치권이 그렇다.요즘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보면 낯이 뜨겁다. 부끄러워서 보수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오죽할까. 어디 가서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당내 경쟁이라도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당내 총질이라서 문제가 아니다. 공격하더라도 합리적이고,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억지 의혹을 막무가내로 쏟아낸다. 저 정치인이 저런 사람이었나,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평소 가졌던 좋은 이미지와 전혀 다른 언행에 보는 사람마저 ‘멘붕’에 빠지게 한다. 곧 비슷한 근거라도 내놓으려나. 나중에 경쟁 정당과 대결할 때를 대비한 예방주사인가. 온갖 상상을 다 해봐도, 그 사람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악몽 같다. 더 힘있는 권력자가 꼼짝 못 할 약점을 쥐고 사주하나. 어떤 거절 못할 선물로 유혹했나…. 아무리 그래도 평생 쌓아온 ‘가오’, 자기 이름을 버려야 할 정도일까.야당으로 고개를 돌려도 다르지 않다. 국회 법사위는 정청래 위원장은 기상천외하게 독주한다. 대한민국을 지켜온 장군들을 불러놓고, 조롱하고, 모욕했다. 국민의힘이 무어라 하건 듣지 않는다. 간사도 필요 없고, 여당 추천 인사는 마음대로 잘라버린다. 저러고도 ‘법대로’를 외치면 대통령의 ‘법대로’를 무슨 낯으로 비난할까 싶다.민주당 강민구 최고위원은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 대표”라며,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최고위원으로 발탁해 줘 아무리 감읍했다 해도 그런 말이 나오나. 민주당 김준혁 의원은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과 퇴계 선생 등을 성적으로 모욕했다. 양문석 의원은 편법 대출 논란으로 선거 때 민주당 지도부조차 버린 카드 취급했다. 그런데도 당선됐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워낙 큰 탓이라고는 해도, 유권자도 ‘가오’가 있는 것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상당수 유권자가 ‘묻지마 지지’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잘해도, 못해도, 내 편만 든다. ‘가오’를 버린 유권자 탓에 정치인만 오만해진다.가수 김호중 씨가 음주 운전으로 논란을 빚었지만, 열성팬은 지지하고, 안타까워했다. 연예인은 예술적 재능이 ‘가오’다. 도덕적 결함이 있어도 응원하는 팬심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왜 하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인가. 거창하게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지 않나. 더러운 행동과 속임수를 써서라도 자리만 얻으면 명예는 저절로 굴러들어 오나. 얼굴에 철판을 깔고, 허공을 쳐다 보며, 성공을 위한 주문을 왼다. 체면을 내던지고, 눈을 질끈 감고, 부끄러운 말을 쏟아내는 정치인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까지 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가. 그게 영원히 갈 것 같은가. 아무리 욕심이 나도 쪽팔리는 짓은 하지마라.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14

도둑이 몽둥이를 들면 말세다

김진국 고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이렇게 절묘하게 들어맞은 일이 없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들었다.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과장된 비유가 아니라, 이 말 그대로의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비리 혐의를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탄핵당하게 생겼다. 탄핵 전에 그 검사들을 국회로 불러 청문회도 하겠다고 한다. 국회 청문회란 게 어떤가. 호통치고, 모욕주고, 윽박지르고, 사과와 번복을 강요하는 자리다.이 검사들을 불러 추궁하는 법사위원들이 이재명 대표와 그 측근들을 변호하던 변호사들이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일인가. 피의자의 범죄를 변호하던 변호사들이 검사를 불러 앉혀놓고, 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라 수사 자료를 내놓으라 호통친다. 왜 집요하게 파고들어 범죄자를 괴롭히느냐고 따지고, 설렁설렁 수사하라고 강요한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복도에 나가 두 팔과 한 발을 들고, 10분간 벌을 서라고 조롱한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고도 공정한 수사가 가능하겠는가.탄핵안이 제출된 4명은 모두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다. 소문까지 끌어다 붙여 탄핵안을 만들었다. 강백신 성남지청 차장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사건을 수사하며 불법 압수수색을 했다는 혐의를 걸었다.지난 대선 때 대장동 사건 주범인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대장동 사건의 주범은 윤석열’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인터뷰 조작 기사를 수사했다. 이 범죄 혐의가 사실이라면 부당한 이익을 본 사람은 이 대표다.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는 김건희 여사에게 봐주기 수사를 하고, 수사권이 없는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수사하고, 최순실 씨의 딸 장시호 씨에게 위증하게 했다는 혐의다.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는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에게 위증을 강요한 혐의, 엄희준 부천지청장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위증시킨 혐의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건이다. 어느 것 하나 사상 첫 검사 탄핵의 대상이 될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이 모두 이 대표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이라는 사실에서 ‘적반하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미국에서 사법 방해는 중범죄다. 아무리 정치적 경쟁자끼리 이전투구하더라도 시시비비를 가릴 마지막 보루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정글이 된다. 사기협잡꾼만 살아남는다. 누가 승복하고, 다툼을 끝낼 수 있겠는가. 국회 의석을 많이 차지한 것을 기회로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사법부까지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이다.최근 넷플릭스에 ‘돌풍’이라는 시리즈물이 인기를 얻고 있다. 운동권을 희화화한다는 둥 반응들이 다양하다. 드라마에서 범죄자가 자기들 범죄를 덮기 위해 ‘검찰개혁’을 선거 구호로 내세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상되는 첫 사건 전개도 진보 진영 눈에 거슬릴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검찰 수사가 정치적 이해에 휘둘린다는 설정 자체가 검찰 불신을 담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사회, 진실과 거짓이 서로 뒤섞인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다. 그렇더라도 노골적으로 수사 검사를 국회로 불러 수사를 압박하고, 판사에게도 ‘탄핵’과 ‘선출제’를 흔들며 위협하는 것까지 용납되어선 안 된다.탄핵을 추진하면 먼저 수사가 중단된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검사와 판사에게는 압력이다. 야당을 잘못 건드리면 탄핵당할 수 있다는 위협이다. 아무리 강골이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회로 불러 윽박지르면 누가 범죄자인지, 누가 검사인지 헷갈리게 된다. 다른 검사가 사건을 넘겨받아도 시간이 지연된다.총리 측과 부총리 측이 시간 싸움을 벌이는 드라마 ‘돌풍’의 수싸움이 연상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은 헌법 84조 적용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이미 기소된 사건 재판도 중단되느냐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다. 여당의 주장대로라도 선거 전에 기소하지 못하면 수사도, 재판도 끝난다. 정말 드라마 같은 세상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7-07

대통령은 왜 자꾸 적을 만들까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요지경이다. 축제가 되어야 할 전당대회가 대통령 편과 반대 편으로 갈라 싸우니 모두 불안하다. 특정 정당이 누구를 대표로 선택하건, 어떻게 뽑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좌충우돌해 국정이 표류하면 그 피해가 곱다시 국민에게 돌아온다.윤석열 대통령은 왜 번번이 이인자를 칠까. 이인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생각인가. 아니면 인기가 있다 싶으면 대통령에게 기어오르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문제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2개월가량 흘렀다. 그동안 국민의힘 대표들은 대부분 윤 대통령과 유쾌하지 않게 헤어졌다.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라는 말로 윤 대통령을 띄우며 손을 잡았다. 그러나 윤 후보가 잇단 실수를 하자 “우리가 해주는 대로 연기만 좀 해달라”고 말했다가 ‘상왕론’이 불거지며 결별했다.이준석 의원과의 갈등은 요란했다. 이준석 당시 대표는 “8월에는 버스가 떠난다”면서 윤 후보의 입당을 압박했다. 신당까지 고려한 윤 후보는 기분이 상했을 수 있다. 이준석 대표가 지방에 간 틈을 타 윤 후보가 입당하면서 ‘패싱입당’ 논란이 불거졌다. 선거 과정에 두 사람은 갈등과 화해를 거듭했다. 결국 선거 이후 ‘윤핵관’들이 ‘내부 총질’한 이 대표를 끌어내리고, 쫓아냈다.유승민 전 의원과는 후보 경선부터 감정이 많이 상했다. 유 전 의원은 천공문제 등을 제기하며 윤 후보를 몰아세웠다.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안철수 의원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단일화하고, ‘공동정부’에 합의했다. 하지만 선거 이후 유 전 의원과 안 의원은 항상 견제와 배제 대상이었다.이준석 대표가 물러난 뒤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그런데 초선의원들까지 동원해 연판장을 돌리고, 나 의원을 ‘이지메(집단 괴롭힘)’해 지지율이 가장 낮았던 김기현 의원 손을 들어주게 했다. 김기현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이 총선 불출마 를 요구했지만, 대표직 던지며 겨우 공천을 건진 경우다.그렇게 곡절을 거쳐 윤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발탁했다.그러나 총선이 한창일 때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대처 문제를 놓고 또 갈등을 빚었다. 윤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보내 사퇴를 요구하고, 한 전 위원장은 거부했다. 눈 속에서 화해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 앙금이 한동훈 몰아내기 전당대회로 이어졌다. 그 대타가 나경원 의원인가 했더니, 역시 이번에도 아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윤 대통령이 지원하는 후보라고 알려져 있다.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하겠다는 걸 굳이 나무랄 생각은 없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견제보다는 협력이 더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윤 대통령이 걸어온 행적을 보면 의문이 남는다.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을 쳐내면 누가 남을까. 더구나 왜 쳐냈는지, 꼭 쳐내야 했는지,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대통령의 그동안 선택은 누구를 좋아해서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를 죽이기 위해 무리하게 나선다. 타깃을 먼저 정하고, 저격수를 찾는 방식이다. 쪼개기 정치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더구나 국민의힘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최약체 집권당이다. 108명의 의원 가운데 8명만 빠지면 개헌 저지선이 무너진다. 탄핵 저지선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걷잡을 수 없이 탄핵 국면으로 밀려간 것을 ‘최순실 사태’로만 설명할 수 없다. ‘레이저’ 쏘기, ‘진박 감별’, ‘배신자 프레임’, ‘옥쇄 들고 나르샤’로 알려진 공천 파동 등 여러 악재가 겹쳐 전혀 예상 못 한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무려 집권당 소속 의원 62명이 탄핵안에 찬성했다.윤 대통령 지지도는 20%대 초반이다. 집권당은 물론 지지세를 더 넓히지 못하면 남은 3년도 편하지 않다. 거대 야당을 상대하기 위해서도 지지율을 끌어 올려야 한다.굳이 집권당 대표 경선에 적대적으로 개입하는 이유가 뭘까. 누가 집권당 대표가 된들 대통령에게 협조하지 않을까. 대통령 가족을 보호하는 일도 꼭두각시 대표가 더 잘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6-30

‘법 왜곡죄’가 아니라 ‘왜곡 입법죄’가 필요하다

김진국 고문 낯선 변호사들이 줄줄이 공천받을 때부터 알아봤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박용진 전 의원을 밀어내고, 낯선 30대 변호사가 공천받았다. 박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64.45%)을 얻었다. 이 대표도 “(자신과 대표 경선한) 박 의원 같은 사람이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런 박 전 의원을 밀어내고 공천받은 사람이 김동아 의원 이다.그는 이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비서실장의 변호인이다. 소위 ‘대장동 변호사’의 한 사람이다. 이렇게 당선된 ‘대장동 변호사’만 5명이다. 이들은 이제 검사와 대등하게 법리를 다투는 위치가 아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검사는 물론 판사까지 불러 호통치게 됐다. 정상적인 재판이 되겠나.쌍방울 대북 송금과 관련해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중형을 선고받자, 민주당은 검찰과 법원을 일제히 때렸다. 특검으로 ‘왜곡 수사’를 밝히겠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하면 수사 검사들을 탄핵하는 방안도 검토한다.또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해도 소용없도록 이미 시행 중인 상설 특검법을 개정하려 한다. 국회(사실상 민주당)가 추천한 후보를 대통령이 3일 내 임명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임명되도록 고치겠다고 한다.판사도 손아귀에 쥐려고 한다. 법관 탄핵을 거론하고, 형법에 ‘법 왜곡죄’를 신설하려 한다. ‘판·검사가 증거나 사실관계를 조작하고, 공소권을 남용’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왜곡이지, 누가 봐도 이재명 대표를 털끝도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다. 이 대표는 연일 자신에 대한 수사가 ‘소설’(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김동아 의원은 “사법부에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라는 말도 했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원 판결까지 통제하겠다는 말이다. 삼권 분립을 전제로 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허물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구체적으로 ‘판사 선출론’이 나온다. 기존의 판사들이 하는 판결을 믿지 못하겠으니, 판사를 직접 뽑자는 것이다.대장동 변호사 출신인 이건태 의원은 ‘표적 수사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영장 청구를 기각하도록 한 ‘표적 수사 금지법안’을 제출했다.이 대표를 변호한 양부남 의원은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있는 범위를 대폭 줄인 ‘피의 사실 공표 금지법안’을 냈다.김용민 당 검찰개혁TF팀장은 ‘법 왜곡죄’ 형법 개정안과 별도로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위증을 강요하는 경우 처벌’하는 ‘수사기관 무고죄’ 신설법안도 내놨다.얼마나 화려한가.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비난에도 꿋꿋이 밀어붙인 공천이 빛을 내고 있다. 기상천외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법안들이다. ‘법비(法匪)’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표현이다. 조국 사태로 검찰 수사권을 박탈한 ‘검수완박’은 애교다.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수사에서는 피의자의 변호사들이 판사의 판결까지 좌우하려 한다.물론 검찰이 모두 잘하는 건 아니다. 검찰의 잘못된 수사로 고통을 받은 사람이 없지 않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대법원장부터 정치적으로 몰아내고, 권력자의 입맛대로 임명해 법관 인사를 휘저으면서 엉망이다.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판사들이 늘어나면서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게 됐다.그러나 그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다고 사법부의 독립을 묵살하고, 법원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면 혼란을 부채질하고, 신뢰를 더 허물게 된다. 왜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고 했겠나. 대놓고 ‘입법질’이다. 의원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이 대표 재판에 항의한다. 그런 판에 낸 이런 법안은 아무리 변명해도 ‘방탄용’이다.22대 국회를 민주당 단독 개원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다. 여당에 개원 압박을 할 때는 “(국민의힘이) 산적한 민생 법안을 인질로 잡는다”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국회를 열고는 민생이 안중에 없다. 이 대표 한 사람을 위한 국회다. ‘법 왜곡죄’가 아니라 ‘왜곡 입법죄’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제발 자중자애(自重自愛)하기를 바란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6-16

이러고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까

김진국 고문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야당이 단독으로 의장을 선출한 것은 의회 사상 처음이다. 11개 상임위원장도 10일 단독으로 선출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과 논란을 벌인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겠다고 한다.국민의힘이 합의를 거부하지만 일사천리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까지 뺏기면 국민의힘은 견제할 수단이 없어진다. 두 가지를 나눠서 맡는 게 관행이었다. 국회 의석 비율이 비슷했던 21대에서도 후반기에는 법사위를 국민의힘에 돌려줬다. 관행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협상할 생각이 아예 없다.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4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임기 2년 만에 벌써 일곱 번째, 법안으로는 14번째 거부권 행사다. 현행 헌법이 개정된 1987년 이후 가장 많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7번, 노무현 전 대통령이 4번으로 모두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45건으로 가장 많다. 그때는 건국 초기와 전쟁의 혼란이 있어 그렇다 해도, 윤 대통령은 다르다. 물론 그 책임을 윤 대통령이 혼자 떠안을 순 없다. 민주당도 협상이나 타협 가능성에 문을 닫아걸었다. 22대 국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탄핵’을 떠드는 형편이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특검법만 줄줄이 내밀었다. 그것도 윤 대통령 내외를 겨냥한 특검법이다. 결국 대통령 흔들기나 궁극적으로 탄핵을 겨냥한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국회는 제1당이 폭주하고, 대통령은 방치하다 거부권을 휘두른다. 양쪽 모두 합의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장 선출은 국민의힘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도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이재명 대표는 “법대로 하자”라고 말했다. ‘어차피 합의는 어렵다. 시간을 끌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의도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민주당은 밀어붙이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22대 국회는 이런 외통수 정치를 반복할 게 뻔하다.다수결이 민주주의 원리다. 그렇지만 다수결에만 의존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 다수의 횡포 속에 다양한 의견들이 다 죽는다. 오직 하나의 의견만 존중받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 협상하는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소수파의 의견을 끌어안는 포용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서구 민주주의의 기초가 다원주의인 이유다.윤 대통령도 외골수다. 총선 직후 이재명 대표를 만나고는 끝이다. 대통령은 권력자다. 그런데도 야당을 설득하지도, 국민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다시 총선 전의 모습이다. 심지어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에게는 대통령 거부권을 협상카드로 써먹으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제1야당도, 대결만 생각한다. 지지세력만 믿고 정치한다.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하는 팬덤 정치다. 선거 때마다 ‘비호감’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민주당은 의사 증원을 주장해 왔다. 국민의힘이 자기 지지기반인 의사들의 기득권을 허물고 개혁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극 지원할 만하다. 하지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야당 협조를 고려도 안 했다. 선거에 이용한다는 오해만 불렀다. 초당 외교는 불문율이다. 요즘은 완전히 어깃장이다. 주변 강대국에 줄을 댄 대신들이 서로 싸우던 구한말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정말 저 정치인이 저런 생각이었는지, 경쟁 정당에 반대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이런 상황에서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국정 표류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양보하고, 설득해야 마땅하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무조건 양보가 능사는 아니지만 일이 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 야당도 국정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정치를 왜 하는가. 명분과 염치를 팽개쳐서는 안 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6-09

특검이 인민재판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표는 많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국민이 뽑았다. 각자 자기 역할이 있다. 대통령은 가장 많은 사람의 지지로 선출됐다. 그렇지만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든다. 그렇다고 아무 법이나 만들 수는 없다.흔히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론은 대통령이 자기 권한을 넘어서지 않도록 날을 세워 견제한다. 원로원 중심의 로마에서 권력을 집중하던 시저는 암살당했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서로 다른 분점(分占)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대립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임기 중에 하는 의회 선거는 일종의 중간평가다. 그러니 감내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그런데 요즘 일부 야당 의원은 선을 넘어선다. 대통령 선거는 과거이고, 국회의원 선거는 최근이라고 해서, 대통령 선거를 무효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대통령의 권한까지 접수한다고 착각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의원도 있다.특검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의혹을 묻어놓고, 두고두고 정치적 갈등을 빚는 것보다 특검으로 진실을 밝히는 게 오히려 오해를 덜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너무 예민하다. 그것이 오히려 김 여사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킨다. 윤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람조차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조언을 피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내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사이가 멀어진 원인도 김 여사다.그렇지만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김건희 종합 특검법안’은 어이가 없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전시 군사정부를 운영하는 점령군이 된 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수단을 다 끌어다 붙였다. 상상을 뛰어넘는다. 민주당이 모든 권한을 쥐고, 김 여사를 심판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다.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김 여사를 수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래서 지휘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윤 총장을 털어서 몰아내기 위해 임명된 지검장이었다. 그런데도 아무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검찰수사로는 먼지까지 털어도 안 되니, 이제 ‘정치수사’를 해보겠다는 건가.그는 사법 체계를 잘 아는 전문가다. 그런데도 사법 체계를 파괴하며 자기 편할 대로 일방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법을 짰다. 특검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도록 했다. 이제까지 여야 정당이 합의해 추천하던 관례를 버렸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추천하려다 비난을 받자, 겨우 선심을 쓴 게 조국혁신당도 추천하라는 것이다.특검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수사와 기소는 행정부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가 추천한다. 그런데 이 법은 국회가 특검을 추천했는데도 대통령이 3일 이내에 임명하지 않으면, 두 명 가운데 연장자가 자동 임명된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민주당이 임명하겠다는 말이다.행정부만 무시하는 게 아니다. 특별검사는 관할 법원장에게 영장을 심사하고 발부할 전담판사를 지정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특검이 기소한 재판은 전담재판부가 신속하게 집중심리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영장 발부는 물론 재판까지 입맛에 맞는 판사를 지정하겠다는 뜻이다.특검은 검사 10명, 검사 아닌 공무원 20명을 파견받아, 특별검사보 10명, 특별수사관 70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100명의 수사 인력이 최대 170일까지 수사를 벌인다. 관련 범죄 혐의를 자수·자백·제보하는 사람은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플리바게닝’까지 도입했다. 우리 법체계에는 없는 제도다. 이런 법을 던져놓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꽃놀이패다.박근혜 대통령 특검에서조차 없던 무소불위의 특검이 9개월 동안 대통령실을 휘저으면 국정이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면 국민은 더 큰 권력을 주었을 때를 두려워하게 된다. 권력 행사는 넘치지 말아야 한다.

2024-06-02

진실은 진실이고, 거짓은 거짓이다

김진국 고문 여의도에서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옳고, 그르고, 잘잘못을 칼로 가르듯 나누는 서초동과는 다르다. 정치에서는 완승이 아니라 타협과 상생을 도모하고, 지향한다. 그런데 타협과 상생은 사라지고, 진실을 감추는 탈진실만 남았다.고(故) 장자연 씨의 동료로 알려진 윤지오 씨는 거액을 모금해 캐나다로 달아났다. 윤 씨의 말에 권위와 신뢰를 얹어준 건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다. 재판 중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고,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당선인은 당에서 거들어 줄 수 없을 정도로 논란에 휩싸였지만 너끈하게 당선됐다. 유권자에게도 진실보다 정치적으로 누구 편이냐가 중요하다.정보가 전달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런 변화가 가속됐다. 숙고하고, 사실을 확인해 전달하는 전통 미디어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인터넷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줄었다. 사실을 확인하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는 일인 미디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기자회견이나, KBS나 MBC 같은 공영 방송도 아니고, 유튜브 개인 방송을 불러 인터뷰하고, 억울함을 호소했겠는가.현직 대통령이 공영 방송보다 유튜브를 찾은 것은 일대 사건이다.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을 잃었다는 간접증거고, 전통 미디어가 신뢰는 물론 영향력도 잃어버렸다는 선언이다. 이미 팩트 체크는 의미가 없고, 미디어도 우리 편이냐, 아니냐부터 따진다는 말이다.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8년 전 후보로 나왔을 때 뉴욕타임스나 CNN 같은 전통적인 대표 미디어들을 ‘가짜 뉴스’라고 낙인찍었다. 그러고는 트위터(현재 X)를 통해 자기주장을 공개했다. 트럼프의 복잡한 사생활은 지금도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모두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몰아세웠다. 성공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됐다.지지자들은 열광했다. 심지어 2021년 1월에는 트럼프가 대통령 연임에 실패한 뒤, 의회가 이를 인증하지 못하도록 의회를 점령하는 난동까지 부렸다. 미국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군중을 자제시키기는커녕 자극한 트럼프 책임이 크다.진실은 묻혔다. ‘트럼피언’(트럼프 지지자)의 진실과 일반 미국인의 진실이 달랐다.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인 ‘MAGA’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노골적인 거짓말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진실도, 거짓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사회로 변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2016년 올해의 단어로 ‘post-truth(탈진실)’를 선정했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사람들은 추측을 쏟아내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책임은 지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제 다시 재선을 노린다.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의 탈진실 상황은 세계 시민을 경악하게 했다. 미국이 저 지경인데, 우리는…. 그해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겪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민주당 의원들은 “강력한 전자파 밑에서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아, 싫어”라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수산물시장이 된서리를 맞았다.조국 대표의 법무부 장관 임명 검증을 계기로 불거진 갈등은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각각 촛불 군중집회로 세 대결을 벌였다. 대한민국이 서로 다른 세상으로 쪼개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분열의 틈바구니에서 ‘공정’이라는 시대 정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그 역시 부인 문제에서는 진실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정치는 억지를 부린다. 결코 승복하는 법이 없다. 정치권이 논란을 벌이면 끝까지 평행선이다. 언론도 정리하지 못한다. 진실을 알아도 반론권을 줘야 한다. 정치적 적대자들에게 기계적으로 공평한 기회를 준다. 진실이나 거짓이나 꼭 같은 시간과 지면을 준다. 심지어 스스로 어느 한 진영에 서는 미디어도 있다. 이런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허상을 깬다는 게 명분이다. 정말 혼돈의 시대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26

한국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는 튼튼한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졌다. 민주주의는 발전만 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으로 그렇게 배웠다. 후퇴나 파괴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우리가 민주주의의 교본처럼 생각하는 미국 민주주의의 죽음에 관해 연구한 학자들이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시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다. 이들은 뉴욕 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칼럼을 기고해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것을 발전시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책에 이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Tyranny of the Minority)라는 책을 냈다.이들의 지적이 주목받는 건 민주주의 파괴가 군대 같은 무력이 아니라 투표장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미국 같은 민주주의의 선진국에서. 그것도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극렬한 소수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당연한 체제로 생각하고, 우리가 아무리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으로 생각한 민주주의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이들은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원래 불안하다고 한다. 선거 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않으면 균열이 생긴다고 한다. 이들의 지적을 새겨보면 한국은 더 위험한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87년 직선제 이후 가장 큰 득표율 차(22.6%p)로 당선됐다. 그러나 야당은 승복하지 않았다. 취임 초부터 촛불집회로 흔들었다. 그것도 전임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해 놓은 한미FTA의 마무리가 꼬투리였다. ‘뇌송송 구멍 탁’이라는 선동 문구가 SNS를 타고 전파됐고, 어린 학생들부터 거리로 나섰다. 동력을 받지 못하고 임기를 보냈다.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여파로 대통령직은 거저 줍다시피 했다. 역대 최대 득표 차(557만951표)다. 그러나 임기 내내 주말마다 서울 중심거리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세력대결을 벌였다. 반대 진영에 비해 동원 능력과 전파, 설득 능력이 떨어져 힘이 없었을 뿐,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복과 비난은 계속됐다.윤석열 대통령도 반대 진영이 인정하지 않는다. 임기 절반도 지나지 않고 치른 총선에서 ‘탄핵’, ‘임기 단축’을 공공연히 공약으로 내걸 정도다. 국회는 국정을 논하는 곳이 아니라 전쟁터다. 선의의 비판은 없다. 전자오락처럼 오로지 상대의 힘을 빼앗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심지어 자기가 먼저 주장한 정책조차 상대측 정부가 추진하면 시비를 걸고, 방해한다.래비츠키 교수의 지적대로 민주주의는 승복해야 굴러간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승복과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다시 경쟁하는 선의의 경쟁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지금처럼 누구도 승복하지 않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음 선거를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중단없는 정쟁 구도에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더구나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전파 속도가 빨라졌다. 극단적인 소수가 여론을 좌지우지한다. 전체 국민에서 차지하는 실제 비율보다 몇 배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팟캐스트에서 시작해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소수파의 확성기가 점점 더 커졌다. 이 확성기들은 극단 세력의 자극적인 포퓰리즘에 더 열광한다는 특징이 있다.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킹크랩’에서 실제 세력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길을 찾았다. 그 전에 유시민의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은 온라인 대화방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전투적 소수세력의 효용성을 입증한 원조격이다. NL계열이 민주노동당을 장악하는 과정은 소수파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줬다.이제 강력한 ‘전투적 소수’는 ‘노빠’(노무현 지지세력)에서 ‘문빠’(문재인 지지세력)로, ‘개딸’(이재명 지지세력)로 진화하면서 정치권의 공식이 됐다. 지난 총선에서는 조국신당이 새로운 ‘강력한 소수집단’으로 등장했다. 보수는 경쟁력이 비교가 안 된다. 설득력도, 확장성도 없다. 문제는 전투의 승패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존립이다. 지블랫 교수의 걱정거리가 미국보다 한국에 먼저 와 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19

모든 문제는 영부인으로 통한다

김진국 고문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꼬이기 시작한 건 ‘마리앙투아네트’ 때문이다. 한 전 위원장과 가까운 김경률 회계사가 ‘명품백’ 사건에 대한 대통령 내외의 사과를 요구하며 마리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이 발언에 대통령이, 특히 영부인이 격노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한 위원장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했을 정도다.마리앙투아네트는 정말 악녀였을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이라”라고 말한 걸로 알려졌다. 브리오슈는 계란과 버터가 많이 들어간, 귀족들만 먹는 빵이다.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고귀한 공주’가 했다는 이 말이 인용됐다.그 책이 나왔을 때 마리앙투아네트는 어린아이였다. 혁명 당시 파리의 팜플렛에는 온갖 악성 루머들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악성 루머는 진실보다 더 잘 퍼지고, 감정을 자극한다.모든 길이 영부인으로 통하고 있다. 선거 때부터 야당은 김건희 여사를 집중하여 공격했다. 윤 대통령의 약한 고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본인은 물론 윤 대통령도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날지 짐작이 간다. 김 여사 얘기만 꺼내면 윤 대통령이 화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참모들이 정작 해야 할 말도 못 하는 것 아닌가.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윤 대통령 내외가 오해하는 건 법이 모든 진실을 밝힌다는 믿음이다. 정치는 진실보다 국민의 믿음이 중요하다.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공개됐다. 소송에서 이겨 1000만 원을 배상받았다. 그래서 해결됐나. 명품백 수수를 몰래 촬영한 최재영 목사를 사법적으로 처벌하면 국민이 “모든 오해가 다 풀렸다”라고 납득할까.국민은 이 기자·최 목사는 보지 않는다. 잘해서가 아니다. 관심이 없다. 김 여사만큼 중요한 공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테이프에서 김 여사가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낸 데 대해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실망이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마구 만난다는 불안이고, 국정에 개입하려는 언행에 걱정이다.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윤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 정서에 얼추 다가왔다. 그런데 너무 느리다.최근에 논란된 문제도 한둘이 아니다. 오해일 수도 있다. 국무총리 물망에 오른 박영선 전 장관의 영부인 인연설이 보도됐다. 같은 대통령실 내에서 공식라인은 부인하고, 담당이 아닌 사람은 다시 번복하는 혼선을 빚었다. 여기서도 영부인 라인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 관저와 윤 대통령 손바닥의 왕(王)자와 관련해 천공이니 무속이니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천공이 최재영 목사와 만나 자기가 대통령실을 움직이는 듯이 말하는 유튜브가 공개됐다.이런 논란들이 재판으로 해결될 일인가. 왜 오해의 근거를 제거하지 못하나. 왜 이런 오해와 잡음에 아까운 시간과 국력을 낭비해야 하나. 사실이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화만 낼 게 아니다. 과감한 조치로 국민이 공감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윤 대통령은 물론 영부인에게도 결국 도움이 된다.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을 외국에 보내라는 참모의 건의를 듣지 않았다가 결국 자기 임기 중 감옥에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형님을 물리치지 못해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탄압받던 시절 고생한 아들들에게 매정하게 관리하지 못해 임기 중 모두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기 손으로 정리한 것은 현명했다.국민이 감동해야 해결된다. 과감하게 던지면 국민도 감동하고, 오히려 동정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아내와 헤어져야 합니까”라는 감성적 접근으로 장인의 부역 논란을 뒤집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옷 로비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사과하고, 특검을 도입했다.뒷북을 치면 하고도 욕을 먹는다. 이종섭 전 주 호주대사,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문제는 결국 사퇴시켰지만, 그만한 효과가 없었다.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보다 먼저 나가야 한다. 흥정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는 건 최악이다. 특별감찰관이나 특검이나 사과를 끝내 피할 수 있겠나. 언제까지 이런 소모적 논란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야 하나. 순애보를 찍을 때가 아니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