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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부터 법의 코뚜레를 꿰어야 한다

등록일 2024-10-06 20:10 게재일 2024-10-0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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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여론이 분분하다. 검찰이 2일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니라며 ‘무혐의’ 처분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다. 고위공직자 부인이 수백만 원짜리 선물을 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법이 그렇다.

남편인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물을 준 최재영 목사는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의 국정자문위원 임명, 사후 국립묘지 안장, 통일TV 송출 재개 등을 청탁했다고 주장했다. 모두 윤 대통령의 직무에 속하는 문제들이다.

최 목사는 2022년 6∼9월 사이에 300만 원짜리 디올백, 179만 원어치 샤넬 화장품 세트, 40만 원 상당의 양주를 김 여사에게 줬다고 했다. ‘뇌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많은 돈을 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지만 부인은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게 검찰 결론이다. 그 직무를 하는 대통령은 남편이지, 김 여사가 아니다. 검찰은 “수사팀이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검사의 ‘양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난타했으니 차치하자. 법을 어떻게 만들어놨길래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나. 시장에게 인사 민원이 있으면 시장 부인에게 비싼 선물을 하면 된다는 말이 된다. 청탁할 일이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 부인을 찾아가 ‘선의’이고, ‘친교’를 하기 위해서라며 뇌물을 먹이면 대가성이 없는 게 된다. 부패하고 망조가 든 나라가 떠오르지 않나.

사실 청탁금지법을 만들 때부터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 시비가 있었다. 가장 부패 위험이 큰 직군은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선출직 공직자가 공익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들어주는 것은 예외로 했다. 국회의원이 민원은 들어야 한다. 하지만 ‘공익’이라는 규정은 모호한 고무줄이다. 엄격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 가장 부패하고, 가장 불신받는 정치인은 제외됐다.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이 국회의원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직자의 배우자에 대한 규제는 느슨하다.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은 액수의 금품을 수수·요구·약속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 조항이 없다. 김 여사도 처벌할 수 없다.

민주당은 김 여사 문제를 연일 공격한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윤 대통령 부부를 공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런 일을 반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법은 손 보지 않을까.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특혜를 누리려는 걸까. 의원 신분인 지금도 같은 처지여서인가.

민주당은 2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탄핵 청문회’를 열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앉혀놓고, 해명을 들었다.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이 대표를 엄호하는 청문회다.

민주당은 이 밖에도 이 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 소추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들의 직무가 정지된다.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어떻게든 대법원판결을 늦추려는 지연전술에는 특효약이다.

이 대표 관련 사건을 변호해 온 사람들을 대거 공천해 의원으로 만들었다. 의원 신분으로 검사와 판사를 겁박한다. 국회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해 이들을 국회로 소환해 압박한다. 국회의원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국회의원이라도 재판을 두고 사법부를 좌지우지하려는 이런 일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

얼마 전 운동권 대부라는 장기표 씨가 타계했다. 그는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180여 개의 엄청난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내각제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걱정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부패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국정을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만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헌정체제이건 정치 부패를 방지하려면 사법제도가 정치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대통령은 부인 문제로, 야당은 당대표 문제로 검찰과 법원을 마구 흔들어대니 걱정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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