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이 어제 막을 내렸다. 올림픽에서 우리는 감동적인 장면을 많이 봤다. 여자 마루운동에서 금메달을 딴 레베카 안드리드(브라질)가 양팔을 들고 승리의 기쁨을 표시하자, 은메달리스트 시몬 바일스(미국)와 동메달리스트 조던 차일스(미국)가 레베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뻗어 존경을 표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관중들이 환호했다.
바일스는 체조의 전설이다. 넷플릭스가 ‘시몬 바일스, 더 높이 날아올라’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정도다. 8년 전 리우올림픽 4관왕인 바일스는 이번에 금 3, 은 1개를 땄다. 그런 바일스가 마루 종목에서 0.033점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활짝 웃으며 차일스를 꽉 안아줬다. 시상대에서는 레베카를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기자회견에서도 “레베카는 정말 대단하고 여왕 같다”라고 칭찬했다.
# ‘삐약이’ 신유빈은 탁구 여자 개인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역전패했다. 5세트까지 가는 힘겨운 시합이었다. 그러나 신유빈은 드러누워 있는 하야타 히나(일본)에게 다가가 미소로 포옹하며 축하했다. 일본 감독에게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나를 이긴 상대들은 나보다 더 오랜 기간 열심히 묵묵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신유빈이 경기장을 떠날 때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본 언론들도 찬사를 보냈다.
# 양궁 남자 개인 결승전은 슛오프 끝에 김우진이 브레디 엘리슨(미국)을 이겼다. 슛오프에서도 동점이었지만 4.9㎜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그럼에도 엘리슨은 승복하고, 축하했다. 양국 감독까지 손을 잡고, 만세를 불렀다. 엘리슨은 “그와 동시에 화살을 쏜다는 건 인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 태권도의 박태준은 결승전에서 이긴 뒤 승리의 세리머니 대신 쓰러진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상태를 살피며, 위로했다. 시상식에는 그를 부축하고 나타났고, 끝난 뒤에도 부축해 줬다.
# 남자 유도 100㎏ 이상급 결승전에서 테디 리네르(프랑스)는 김민종을 매트에 꽂아 한판승으로 이겼다. 리네르는 김민종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김민종의 왼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관중의 환호를 유도했다. 이유를 묻자, 리네르는 “여기 있는 선수들 모두 잘 싸웠다. 강한 상대였다. 아름다운 경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7일 남자 높이뛰기 예선에서 무타즈 바르심(카타르)이 2m27 1차 시도를 하다 다리 근육경련으로 쓰러졌다. 지안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는 바로 직전 2m27에 1차 시도해 실패했는데도 바르심에게 달려가 다리를 뻗게 도와주고, 종아리를 주물러 풀어줬다. 두 사람은 4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공동 수상했다. 파리에서는 바르심이 동메달을 땄다.
# 10일 오후 7시 35분(한국 시각) 파리의 르부르제 클라이밍 경기장. 스포츠클라이밍 마지막 대회가 열렸다. 여자 콤바인 결선 리드 종목. 완등자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도전자로 얀야 간브렛(슬로베니아)이 나섰다. 경쟁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관중이 일제히 리듬박수를 치며 완등을 축원했다. 금메달 포인트까지 따자 환호가 더 커졌다. 더 올라가 완등 직전에 떨어졌지만, 경쟁자와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우리가 이미 본 장면들이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다. 우리 정치권이다. 경쟁을 끝내고도 승복할 줄 모른다. 내 능력을 키우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끌어내린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커녕 예의도 없다.
국회 연설에서 다른 의원들을 향해 ‘존경하는…’이라고 발언을 시작하는 것을 자주 본다. 영국의 전통을 흉내 냈다. 상대의 의견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말마저 ‘존경하고 싶은…’이라고 비튼다. 야유와 조롱과 욕설이 난무한다.
열거한 사례 대부분은 한국 청년이다. 그 앞 세대인 정치권은 왜 그 모양일까. 그러면서 정치꾼(politician)이 아닌 정치가(statesman) 행세를 한다. 오히려 남들에게 “올림픽처럼 하라”며 하늘 보고 침을 뱉는다. 제발 미래세대에 걸림돌, 부끄러움이 되지 말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