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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들의 시대

등록일 2024-07-21 20:05 게재일 2024-07-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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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미친놈 전략’(madman strategy)이라는 게 있다. 미친놈처럼 보여 상대가 합리적 대응을 못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미친놈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바둑에도 ‘정석’이라는 게 있다. 오랜 세월 경험을 통해 대응 수순이 정해진 경우다. 고수들도 그 정석을 벗어나면 손해본다고 믿는다.

미친놈은 정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음 수순을 예측하기 어렵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장기 전략을 짜기는 더욱 어렵다. 미친놈의 착수를 보고서야 다음 수를 준비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크게 손해보고 들어가는 셈이다. 또 미친놈은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사람만큼 무서운 놈이 없다. 결국 그런 미친놈을 만나면 공포를 느낀다. 처음부터 지고 시작한다.

미친놈 전략은 헨리 키신저가 베트남 전쟁에서 써먹었다.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북베트남에 화가 난 미치광이라 핵무기를 쓰려고 한다는 가짜정보를 흘렸다. 소련이 북베트남에 협상을 종용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이다. 결과는 실패였다. 협상의 대가라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성공했다. 트럼프의 선택은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미치광이는 정말 미친놈이라고 인식될 때 효과가 있다. 핵무기가 종이호랑이라는 평가도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용하기 어렵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자 전 세계가 두려워했다. 푸틴이니까 사용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가장 잘 써먹는 사람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고모부를 고사포로 처형할 정도로 미친놈임을 보여줬다. 어리다고 얕보던 북한 고위층이 모두 납작 엎드렸다. 김정은이 어떤 어떤 이유로 숙청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사소한 지적이라도 당할까 봐 두려워했다. 핵무기도 김정은이라면 쓸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도 걱정한다. 전쟁 결심도 없이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남한의 민간인 지역을 포격하리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그는 연평도에 포탄을 170여 발이나 퍼부었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법사위를 전무후무하게 자기 방식으로 진행한다. 상임위는 여야 간사 합의로 진행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여당 간사 선출 없이 밀어붙였다. 관례는 무시하고, 국회법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적용했다. 청원을 구실로 탄핵청문회를 열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청원에서 제외하게 돼 있는 국회법은 무시했다. 필요한 법만 인용한다.

증인들에게 갖은 온갖 모욕을 줬다. “가훈이 정직하지 말자인가”, “귀신 잡는 해병이 부하 잡는 해병이 됐다”라고 압박했다. 증인 선서와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는 증인들에게 ‘10분간 퇴장’ 명령을 내렸다. 회의장 밖에서 10분간 벌을 서고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퇴장당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퇴장하면 뭐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쉬고. 한 발 두 손 들고 서 있으라 해야지”라고 조롱했다. 대한민국을 지킨 예비역 장군들을 그렇게까지 모욕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위원장석으로 나와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는 ‘퇴거 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퇴장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의원님 성함이 뭡니까”, “국회법 공부 좀 하고 오세요”라며 여당 의원들의 발언을 뭉개버렸다. 곽규택 의원에게는 “계속 저를 째려보고 있다. 의사를 진행하는데 상당히 불편하다”라면서 발언권을 박탈했다. 법사위 직원에게 “계속 째려보는지 안 보는지 촬영하라”는 지시도 했다. 코미디 같은 진행이 연일 주목받는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대책이다. 항의하다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정 위원장 페이스에 말려들어 끌려간다. 청문회 증인들도 국민의힘 의원들을 보며 적응해 간다. 증인 선서를 거부하다 선서하고, 답변도 적극적으로 한다. 정청래 위원장의 미친놈 전략이 통한 것이다. 트럼프, 김정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정청래 위원장, 게다가 자폭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정석, 예의를 찾으려는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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