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없는 시대다. 대통령의 축하난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연임을 축하하는 난(蘭) 화분을 보내기로 했다. 속마음으로 정말 축하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제1야당 대표가 선출되면 대통령이 축하해주는 게 관행이다. 그런데 축하와 감사를 전달하며 훈훈해야 할 축하난 전달이 정쟁의 불씨가 됐다.
그게 정치력의 최고수여야 할 대통령 정무수석과 야당 대표의 수준이다. 난초 화분 하나 전달하는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려운 정치 쟁점들을 어떻게 풀겠다는 것인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입씨름 내용도 한심하다. “아침부터 연락했으나 답을 못 받았다.”, “정무수석 예방 일자를 조율했으나, 축하난과 관련해 어떤 대화도 나눈 적이 없다.”
축하난 하나 전달하는데 문자를 남기고, 답이 없다고 발표하는 건 뭔가. 대통령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답을 주지 않는 건 또 뭔가. 정무수석이 연락했는데, 그게 축하난 전달인지, 뭔지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는 게 어이가 없다. 김명연 대통령 정무1비서관과 이해식 민주당 당 대표 비서실장이 전화 통화로 축하 난 공방을 멈추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축하난 전달을 위해 그렇게 바로 통화할 수는 없었는가.
물론 양측이 의심할 수는 있다. 불신이 쌓여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윤 대통령이 보낸 난 화분을 돌려보냈고, 다른 소속 의원들은 ‘버립니다’라는 쪽지를 붙여 SNS에 올렸다. 그래도 민주당은 수권 정당이 아닌가. “지금 당장이라도 오라. 만나자”라고 전화하지 못하나. 윤 대통령도 직접 전화해 “축하한다”라고 말했으면, 더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정치 초보도하지 않을 오해와 갈등을 왜 방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대표가 코로나19에 걸려 입원했을 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쾌유를 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다. 조문 외교에는 전세계 정상들이 나선다. 핑계 김에 많은 정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문안도 마찬가지다. 난 화분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 운영이 어렵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절박하지 않은 것 같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담도 시간을 끌고 있다. 정치는 갈등을 푸는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말했다. 범부가 보기에는 도저히 풀릴 수 없는 문제를 풀고, 해답을 내놓는 게 정치다. 정치는 권력을 잡는 게 끝이 아니다. 그때부터다. 국정을 잘 운영해야 한다. 야당도 국정 운영 능력을 보여줘야 정권을 잡을 수 있다. 정권을 잡고, 국력을 낭비하며, 자기 주머니만 채운다면 ‘큰 도둑’에 불과하다.
한 대표 측에서는 회담을 생중계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 측은 ‘정치 쇼’라고 의심했다. 밀실 회담은 오해를 낳는 일이 많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일이 다반사다. 국민이 판단하도록 하자는 생각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정치는 설득과 타협이다. 윈-윈하는 상생 정치는 서로 명분을 얻어야 가능하다. 모든 것을 국민에게 알리겠다는 생각은 이해하지만 결국 양쪽의 강경 세력만 기세를 얻고,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상대 주장을 이해하기는 하나도 어렵지만, 꼬투리를 잡을 일은 수백 가지다.
의제도 서로 생색낼 생각만 가득하다. 한 대표는 금융투자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 등을, 이 대표는 채상병 특검법과 25만 원 민생지원금 등을 꺼낼 예정이다. 물론 이런 쟁점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신은 생색이 나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정치 협상은 승패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크게 이기면 오히려 실패다. 당장 의대 증원으로 응급실이 무너지고 있다. 여야가 손을 잡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문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 대표가 코로나로 입원하면서 실무 협상이 중단됐다. 기회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상생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 정치를 복원하고, 두 사람 누구에게 맡겨도 나라가 발전하겠다는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