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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 몽둥이를 들면 말세다

등록일 2024-07-07 20:05 게재일 2024-07-0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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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이렇게 절묘하게 들어맞은 일이 없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들었다.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과장된 비유가 아니라, 이 말 그대로의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비리 혐의를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탄핵당하게 생겼다. 탄핵 전에 그 검사들을 국회로 불러 청문회도 하겠다고 한다. 국회 청문회란 게 어떤가. 호통치고, 모욕주고, 윽박지르고, 사과와 번복을 강요하는 자리다.

이 검사들을 불러 추궁하는 법사위원들이 이재명 대표와 그 측근들을 변호하던 변호사들이다.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일인가. 피의자의 범죄를 변호하던 변호사들이 검사를 불러 앉혀놓고, 국회 증언·감정법에 따라 수사 자료를 내놓으라 호통친다. 왜 집요하게 파고들어 범죄자를 괴롭히느냐고 따지고, 설렁설렁 수사하라고 강요한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복도에 나가 두 팔과 한 발을 들고, 10분간 벌을 서라고 조롱한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고도 공정한 수사가 가능하겠는가.

탄핵안이 제출된 4명은 모두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검사다. 소문까지 끌어다 붙여 탄핵안을 만들었다. 강백신 성남지청 차장은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사건을 수사하며 불법 압수수색을 했다는 혐의를 걸었다.

지난 대선 때 대장동 사건 주범인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대장동 사건의 주범은 윤석열’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인터뷰 조작 기사를 수사했다. 이 범죄 혐의가 사실이라면 부당한 이익을 본 사람은 이 대표다.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는 김건희 여사에게 봐주기 수사를 하고, 수사권이 없는 민주당 돈봉투 사건을 수사하고, 최순실 씨의 딸 장시호 씨에게 위증하게 했다는 혐의다.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검사는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에게 위증을 강요한 혐의, 엄희준 부천지청장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위증시킨 혐의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건이다. 어느 것 하나 사상 첫 검사 탄핵의 대상이 될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이 모두 이 대표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이라는 사실에서 ‘적반하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사법 방해는 중범죄다. 아무리 정치적 경쟁자끼리 이전투구하더라도 시시비비를 가릴 마지막 보루는 남겨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 전체가 정글이 된다. 사기협잡꾼만 살아남는다. 누가 승복하고, 다툼을 끝낼 수 있겠는가. 국회 의석을 많이 차지한 것을 기회로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사법부까지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국정농단이다.

최근 넷플릭스에 ‘돌풍’이라는 시리즈물이 인기를 얻고 있다. 운동권을 희화화한다는 둥 반응들이 다양하다. 드라마에서 범죄자가 자기들 범죄를 덮기 위해 ‘검찰개혁’을 선거 구호로 내세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상되는 첫 사건 전개도 진보 진영 눈에 거슬릴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검찰 수사가 정치적 이해에 휘둘린다는 설정 자체가 검찰 불신을 담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사회, 진실과 거짓이 서로 뒤섞인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다. 그렇더라도 노골적으로 수사 검사를 국회로 불러 수사를 압박하고, 판사에게도 ‘탄핵’과 ‘선출제’를 흔들며 위협하는 것까지 용납되어선 안 된다.

탄핵을 추진하면 먼저 수사가 중단된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검사와 판사에게는 압력이다. 야당을 잘못 건드리면 탄핵당할 수 있다는 위협이다. 아무리 강골이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회로 불러 윽박지르면 누가 범죄자인지, 누가 검사인지 헷갈리게 된다. 다른 검사가 사건을 넘겨받아도 시간이 지연된다.

총리 측과 부총리 측이 시간 싸움을 벌이는 드라마 ‘돌풍’의 수싸움이 연상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은 헌법 84조 적용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이미 기소된 사건 재판도 중단되느냐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다. 여당의 주장대로라도 선거 전에 기소하지 못하면 수사도, 재판도 끝난다. 정말 드라마 같은 세상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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