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김건희, 윤석열, 혹은 보수정권

등록일 2024-10-13 20:00 게재일 2024-10-14 4면
스크랩버튼
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하라고 하면 복장이 터질 법도 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명태균 씨 문제에 대한 대통령실 언급을 들어 보면 억울하다는 심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명 씨가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뛰었다는 것 이외에 아직 확인된 사실은 없다. 명 씨가 김 전 의원 공천을 위해 뛴 것은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왜 점점 더 꼬이게 만드는 걸까.

명 씨를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의원은 명 씨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잘 짜는 사람”이고, “아이디어가 많다”라고 한다. 또 “자기가 능동적으로 움직여 일을 한 다음 성과를 주장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 의원은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저런 가능성이나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쁘지 않은 대화 상대”라고 말했다. 명 씨가 많은 정치인들을 만난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학생 시절 이후 검사로서 수사밖에 해보지 못했다. 김 여사는 미술 기획 일을 해 인맥이 넓다고 하지만 정치인들을 만난 건 아니다. 명 씨의 조언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모르지만, 이준석 의원이 저렇게 평가할 정도로 솔깃한 이야기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는 건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에게는 다 자기 잇속을 챙기는 계산이 있다. 자신의 운명을 그런 사람에게 완전히 맡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럴 때 알려지지 않은, 감추어진 비밀 무기로 명 씨가 적임자였을 수 있다.

이준석 의원은 “윤 대통령 당선을 위해 이리저리 뛰었던 명 씨를 졸(卒)로 쓰고 버리려고 하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좋게 생각하면 잘한 일이라고 칭찬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선거 때 도와줬다고 자리를 챙겨주고, 공천 지분을 나눠주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필요한 사람과 국정을 운영할 때 필요한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선거 공신들이 전리품 잔치를 벌인다느니, 낙하산 공천을 한다느니 하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니 칭찬만 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쉽게 넘어갈 일이 커지는 것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혹은 영부인이, ‘저런 허접해 보이는 사람’의 훈수를 들었다는 게 창피한 건가. 왜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해 의심을 사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2021년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명 씨가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 정치인과 자택을 찾아와 두 번 만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 하지 않으니만 못한 해명이 됐다. 의혹은 의혹을 불러 눈덩이처럼 커졌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명 씨와 김 여사가 문자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다. 김영선 전 의원 공천 얘기를 나눈 것도 확인됐다. 대통령실 해명이 하루도 안 지나 논박당하니 이런 망신이 없다. 사실은 인정했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면 된다. 감추고, 도망치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된다.

주변에서 사과를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다. 그들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과해서 망했다”고 주장한다. 정말 사과하지 않았으면 온전했을까. 문제는 사과가 때를 놓쳤고, 번번이 기대에 못미치는 뒷북이었기 때문이다. 해명이 하루 만에 뒤집히는 대통령의 권위를 누가 지키나.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는 암세포보다 더 넓게 잘라내야 한다. 생살이 아깝다고 환부에 바투 자르면 전이를 막지 못한다. 종국에는 환자를 죽이는 길이다. 그런 건의를 하는 사람은 환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첨꾼이다.

윤 대통령은 ‘사랑꾼’으로 소문나 있다. 김 여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고 해결될 단계는 지났다. 민심이 점점 더 흉흉하다. 서투른 해명으로 덧나게 할 이유가 뭔가. 김 여사에서 끝낼 건가,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상처를 입을 건가. 그도 아니면 정권을 내주더라도, 김 여사만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기필코 지킬 건가. 결국은 게도 구럭도 다 잃겠지만.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김진국의 ‘정치 풍향계’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