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야당이 단독으로 의장을 선출한 것은 의회 사상 처음이다. 11개 상임위원장도 10일 단독으로 선출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과 논란을 벌인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모두 민주당이 차지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이 합의를 거부하지만 일사천리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까지 뺏기면 국민의힘은 견제할 수단이 없어진다. 두 가지를 나눠서 맡는 게 관행이었다. 국회 의석 비율이 비슷했던 21대에서도 후반기에는 법사위를 국민의힘에 돌려줬다. 관행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협상할 생각이 아예 없다.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4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법…. 임기 2년 만에 벌써 일곱 번째, 법안으로는 14번째 거부권 행사다. 현행 헌법이 개정된 1987년 이후 가장 많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7번, 노무현 전 대통령이 4번으로 모두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45건으로 가장 많다. 그때는 건국 초기와 전쟁의 혼란이 있어 그렇다 해도, 윤 대통령은 다르다. 물론 그 책임을 윤 대통령이 혼자 떠안을 순 없다. 민주당도 협상이나 타협 가능성에 문을 닫아걸었다. 22대 국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탄핵’을 떠드는 형편이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특검법만 줄줄이 내밀었다. 그것도 윤 대통령 내외를 겨냥한 특검법이다. 결국 대통령 흔들기나 궁극적으로 탄핵을 겨냥한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제1당이 폭주하고, 대통령은 방치하다 거부권을 휘두른다. 양쪽 모두 합의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장 선출은 국민의힘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도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이재명 대표는 “법대로 하자”라고 말했다. ‘어차피 합의는 어렵다. 시간을 끌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의도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민주당은 밀어붙이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22대 국회는 이런 외통수 정치를 반복할 게 뻔하다.
다수결이 민주주의 원리다. 그렇지만 다수결에만 의존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 다수의 횡포 속에 다양한 의견들이 다 죽는다. 오직 하나의 의견만 존중받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 협상하는 숙성 과정이 필요하다. 소수파의 의견을 끌어안는 포용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서구 민주주의의 기초가 다원주의인 이유다.
윤 대통령도 외골수다. 총선 직후 이재명 대표를 만나고는 끝이다. 대통령은 권력자다. 그런데도 야당을 설득하지도, 국민을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다시 총선 전의 모습이다. 심지어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에게는 대통령 거부권을 협상카드로 써먹으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제1야당도, 대결만 생각한다. 지지세력만 믿고 정치한다. 무슨 일을 해도, 지지하는 팬덤 정치다. 선거 때마다 ‘비호감’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민주당은 의사 증원을 주장해 왔다. 국민의힘이 자기 지지기반인 의사들의 기득권을 허물고 개혁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적극 지원할 만하다. 하지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야당 협조를 고려도 안 했다. 선거에 이용한다는 오해만 불렀다. 초당 외교는 불문율이다. 요즘은 완전히 어깃장이다. 주변 강대국에 줄을 댄 대신들이 서로 싸우던 구한말을 보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정말 저 정치인이 저런 생각이었는지, 경쟁 정당에 반대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국정 표류의 책임을 상대에 떠넘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있다면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양보하고, 설득해야 마땅하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무조건 양보가 능사는 아니지만 일이 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 야당도 국정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정치를 왜 하는가. 명분과 염치를 팽개쳐서는 안 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