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낯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절 행사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데, 같은 시각 효창공원의 백범기념관에서는 또 다른 기념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통일이 숙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남북통일은커녕 남쪽마저 두 쪽이 난 광복절 경축식을 치렀다.
광복회 기념식 맨 앞줄에 민주당을 비롯해 야당 대표들이 앉았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만 정부 행사에 참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독립기념관장 인사 문제가 온 나라를 해방 정국으로 되돌려놓았다. 광복회 행사 발언은 더 고약하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는 없다”라고 정부를 비난했다. 야당은 기념식장에 입장하기 직전 ‘친일·반민족 윤석열 정권 규탄 대회’를 열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3년이 지긋지긋하게 길다. 혁신당은 야당·시민사회와 함께 친일 밀정 정권 축출에 온 힘을 다하겠다”라고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이 이종찬 광복회장의 반발에서 비롯했다. 이 회장은 백범의 장손자인 김진 광복회 부회장을 추천했으나 탈락했다. 이 회장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뉴라이트’다, 건국절을 만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건국절을 제정할 의사도, 검토한 적도 없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김 관장을 사퇴시키라고 요구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 회장의 조부 우당 이회영과 종조부 성재 이시영 전 부통령 형제는 전 가산을 팔고, 온가족이 만주로 이주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명문가다. 이 회장은 과거 언론인터뷰에서 “작은할아버지(성재)께서는 정부 수립 전후로 사이가 틀어진 백범(김구)과 우남(이승만) 사이에서 두 분을 화해시키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라고 말했다. 단독정부수립에는 우남 노선을 따라 부통령이 되었다. 더구나 이 회장은 지난해 “이승만 기념관 설립에 대찬성”이라고 말했다. 이제 와 ‘이승만 우상화’라고 주장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광복을 위해 모두 바친 선조를 생각하면 개탄스럽다. 김형석 관장은 “건국절에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뉴 라이트’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광복회나 야당이 밝힌 그의 발언을 봐도 딱히 문제 삼을 내용이 아니다. 광복절 행사는 특정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축식이다. 인사에 이견이 있다고, 오물을 뿌릴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 경영 능력에 아쉬움이 남는다. 노무현 정부 때 한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관이 인사할 자리가 많다. 부처 내에는 물론 산하 단체 임원도 인사한다. 이것을 장관이 모두 임명하면 안 되고, 산하단체는 물론 부처 내 인사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실의 의견, 국·과장 재량권도 일정 비율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야 국장도 부하직원들을 지휘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종찬 회장은 대통령에게 세 번이나 사신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윤 대통령이 아들 친구다. “모욕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인사를 들어주든 말든, 성의를 다했으면 이 지경이 됐을까 싶다. 더구나 임기가 절반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공공기관장·감사 자리 39%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은 52%, 나머지는 공석이다. 임기가 끝난 사람들도 후임 인사가 오지 않아 1년 넘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비어 있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미루자 “총선에서 떨어진 정치인들에게 줄자리인가 보다”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총선이 지나도 그대로다. 낙선자 배려가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꼭 챙겨야 할 자리 외에는 위임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다 쥐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작고, 보잘것없는 자리에 집착해 분란을 일으킨다.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의 관심사인 경우다.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정권 창출 기여에 대한 보상도, 검증도 모두 문제가 있다. 임기가 절반이 다 가도록 이 모양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