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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J. 심슨은 돈도 명예도 다 잃었다

등록일 2025-01-05 20:10 게재일 2025-01-0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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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는데 1차 실패했다. 윤 대통령이 경호처와 경호부대를 동원해 철벽을 쳤기 때문이다. 계엄이나 마찬가지로 TV로,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해외에도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한남동 일대를 시위군중이 점령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나라 망신이다.

1994년 미국 LA 경찰이 한 살인 혐의자가 차로 도주하는 것을 추격하는 상황이 중계됐다. 뉴스 전문 채널인 CNN은 물론 지상파 방송들도 생중계했다. 방송국은 헬기까지 동원했다. 한국 TV도 CNN을 그대로 보여줬다. 고속도로로 달아나는 차를 보면서 곧 그를 체포해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인 O. J. 심슨이다. 그와 이혼한 전처와 식당 종업원이 피살된 채 발견됐고, 혈흔을 비롯한 여러 증거가 그를 지목하고 있었다. 검찰이 소환한 날 친구에게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는 편지를 남기고 잠적했다. 이틀 뒤 경찰이 그를 찾아냈으나 도주극을 펼쳤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 건 그가 무죄 평결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는 300만~600만 달러(약 44억~88억 원)로 쟁쟁한 변호인들을 고용했다. 통계와 확률까지 동원해 그를 무죄로 만들었다.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사건이다. 뒤에 그는 탈세로 체포되기도 하고, 강도 혐의로 33년 형을 받아 수감되기도 했다.

심슨이 떠오른 것은 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의 말 때문이다. 그때 비싼 수임료를 챙긴 변호인들이 온갖 요설로 배심원을 헷갈리게 했다. 이번 사건은 온국민이 TV로 지켜봤다. 수사당국이 발표한 것이라면 조작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국회를 포위하고, 정치인을 체포하기 위해 나섰던 특수부대 사령관들이 직접 TV에서 증언했다.

변호사들의 현란한 법 논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상식으로 판단할 때 헌법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분명하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위기 시 나라를 보호하라고 계엄령을 발동할 권한을 부여했다. 국회에는 해제권을 주어 대통령의 독단을 견제하도록 했다. 그런데 무력으로 국회를 무력화해 헌법상 권한인 해제를 막았다.

헌법 질서를 파괴했고, 무력으로 국민이 위임한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쥐려 했다. 명백한 친위쿠데타다. 그런데도 물리력에 막혀 법을 집행하지 못한다면, 심슨보다 더한 사례로 인용될 게 뻔하다. 당당하다면 법정에서 다투는 게 옳다. 부하를 희생시키고, 국론과 국민을 쪼개고, 국정과 국법 질서를 마비시키고… 그런다고 없는 일이 될 수 있나.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를 보는 것같아 낯이 뜨겁다.

수사 주체를 둘러싼 논란도 어이가 없다. 특정인을 위해 졸속으로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다 이런 꼴이 됐다. 그렇지만 혼선이 생기면 결국 누가 정리해야 하나. 법원이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도 법원의 영장마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물리력으로 집행을 막았다.

형사소송법 110조, 111조의 예외로 했다는 부분이다. 보안시설 책임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항이다. 관저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 본인이다. 법원이 영장에 예외를 명시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스스로 걸어 나오지 않는 한 영원히 체포할 수 없다. 말장난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출두해 조사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힘없고, 불쌍한 국민만 법을 지켜야 하나. 그게 나라냐.

기묘사화 때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을 써놓고, 조광조를 모함했다. 말도 안 되는 주장도 반복하면, 믿고 싶은 사람은 빠져든다. 총선 민심은 윤 대통령이 뒤집어놨다. 이제 와 부정선거 탓으로 돌려 그때의 행동을 칭찬이라도 받을 건가. 부정이라는 핑계로 선거 결과를 투표가 아닌 총칼로 뒤집으려는 건가.

선거 부정이 있었다면 법 절차로 해결해야 한다.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 더 큰 불법행위를 한다는 건 명분이 되지 못한다. 전직 검찰총장이 법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불법으로 무장 군인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믿어야 하나. 이번 사태도 숨어서 큰소리칠 게 아니라 법정에서, 헌법재판소에서 따지면 될 일이다. 합법적 절차를 포기하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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