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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등록일 2025-02-02 19:52 게재일 2025-02-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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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아직도 진실이 살아 있을까.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가 어려운 시대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가 2017년에 쓴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라는 책은 한국에서까지 큰 공감을 일으켰다. 그때 이미 미국에서도, 진실이 위기에 처했다. 한국도 그렇다.

매킨타이어는 “과거에도 진실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는 존재”했지만, “현실을 정치적 상황에 끼워 맞추기 위해 그런 위기를 대놓고 전략처럼 이용하는 경우는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진실 문제가 심각한 진짜 이유는…정치적 우위를 공고히 하려는 매커니즘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렵고, 복잡한 주장이 아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정치꾼은 허위사실을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지지자들은 그것을 믿는 상황이 고착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는 진실을 찾기보다 우리 편이 이기는 게 관심이다. 정말 진실을 찾아내고, 말하는 게 아니라,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거짓’(대안적 진실)을 진실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주장한다.

이런 ‘자기기만과 망상’에 빠진 사회에서는 진영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보수건 진보건, 모든 주장이 진실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라도 자기 진영과 다른 말을 하는 순간 ‘반대편’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린다. 모두 홍길동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심지어 그렇게 믿어버린다.

조국 사태가 그랬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대안의 진실’ 속에 살았다. ‘나’라는 인간의 본질이 왜 조국을 기준으로 평가돼야 하나. 조국 수호(혹은 타도)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역사적 사명이라도 된다는 건가. 정말 고약한 세상이다. 요즘 기준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친윤’ 아니면 ‘반윤’이다. 윤 대통령이 언제부터 보수의 중심이었나.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가 기준이다. 그에게 유리한 말을 해야 진보고, 개혁이다.

윤 대통령은 관저를 찾은 손님들에게 “요즘 신문과 방송은 너무 편향돼 있다. 유튜브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저 주변에서 시위하는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 언론 대신 유튜브에 빠져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확신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그의 말에서도 유튜브 냄새가 난다.

개인 미디어가 전통 미디어를 뒤집기 시작한 것은 팟캐스트 ‘나꼼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이던 2007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조롱으로 반이명박 세력의 배설 욕구를 만족시켰다. 이제 진보 진영을 쥐고 흔들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민주당 총선 예비후보들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가 큰절을 했다.

보수 유튜버들의 영향력도 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인데도 개인 유튜버만 골라 인터뷰했다. 김건희 여사가 유튜버에게 그렇게 당했는데도, 윤 대통령도 유튜브만 본다. 부정선거에 대해서도 정부의 공식 보고보다 극단적인 일부 유튜버의 주장을 더 믿는다.

기자 활동을 시작할 때 복잡한 문제는 돈의 흐름을 보라는 말을 들었다. 복잡한 민·형사 사건뿐만 아니다. 일본이나 한국의 과거 복잡한 파벌정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도 돈이었다. 탄핵 국면에서 한 유튜버는 ‘슈퍼챗’으로 하루 만에 3천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자극적인 말을 할수록 돈이 쏟아진다. 서부지원 난동 때도 유튜버가 앞장서서 돌격했다. 갈등이 심하고, 민주주의가 무너질수록 흥분한 구독자가 돈을 쏜다.

진영마다 다른 ‘대안의 세상’에 산다. 민주주의가 위기다. 답이 없다. 유튜버는 돈을 벌려고 떠들어도, 유권자는 냉정해야 한다. 대안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알 일이다. 이재명 대표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윤 대통령이 재판받는다고 상상해 보라. ‘춘풍추상(春風秋霜)’과 ‘내로남불’은 상대편이 아니라 나를 경계하는 거울로 써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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