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가 이상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뒤집혔다. 오차 범위 안이니까 뒤집혔다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이후 당장 망할 것 같았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한 건 의외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9%, 민주당은 36%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 탄핵 직후인 지난해 12월 셋째 주에 국민의힘이 24%로 바닥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15%포인트가 올랐다. 48%였던 민주당은 12%포인트가 떨어졌다. 여론조사에는 오차가 있다. 그렇지만 큰 흐름은 틀리지 않는다. 다른 조사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지난주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국민의힘은 35%, 민주당은 33%였다.
“내가 잘해서 당선되기보다, 상대방의 실수로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0가지를 잘하기는 어려워도, 한 가지 실수는 순식간에 저지른다. 선거는 그 한번의 실수가 결정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도 다르지 않다. 거부감이 여론의 흐름을 주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를 찍은 유권자도 많지만, 결국 승부를 가른 건 비호감을 피하려고 떠도는 표다. 윤석열 후보가 좋아서 찍은 사람보다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 선택한 유권자가 많다.
비상계엄의 중심은 윤 대통령이다. 그를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됐다. 비상계엄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뚱딴지같이 터졌다. 법리 다툼을 벌이고는 있지만, 국민 마음속에서는 일찌감치 판결이 내려졌다. 생중계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어렵게 쌓은 민주화 성과를 한꺼번에 허물었다. 한 사람이 잘못 판단하면,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민의 분노는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뒤 윤석열의 시간이 지나간다. 이재명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주목 대상이 옮겨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동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지지율이 압도적 1위다. ‘이재명 포비아’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조급한 언행, 절제하지 않는 발언, 집권당이 다 된 것 같은 오만함이 그런 우려를 부채질했다.
지지 정당을 선택할 때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이 대표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계엄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혹은 탄핵을 찬성하느냐, 반대느냐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 시대가 좋으냐 싫으냐로 여론이 나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열성 지지자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어느쪽도 잘한다고 칭찬받는 상황이 아니다. 상대방의 실수로 얻은 지지율을 호감도로 착각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탄핵의 강’을 건너느라 고생했다. 민주당은‘조국의 강’을 넘어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의리’, ‘배신’ 논란도 있었다. 조국혁신당이 성공해 조국의 강이 옳은 길인지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의 결집은 강력하지만, 강성 지지자만으로는 큰 판에서 이길 수 없다. 국민의힘은 반성과 혁신보다 ‘의리’를 선택했다.
책임을 따지고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몫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여야가 협력해 가능했다. 보수·진보가 함께 촛불을 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말과 행동이 달랐다.
그는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를 쓰겠다”고 선전했지만, 가장 폐쇄적으로 인선했다. 함께 촛불혁명에 성공했는데, 보수 세력에게 돌아온 것은, 포상이 아니라 ‘적폐 청산’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리품을 독식했다.
모든 분야에서 반대 세력은 몰아냈다. 대법원장까지 ‘적폐’로 몰았지만 모두 무죄였다. 진영정치의 골을 깊이 팠다.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정치는 사라지고, 보복만 남았다. 검찰총장 대통령의 길을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의 행동이 이번 탄핵 과정에서 보수 세력이 주저하게 했다. 이 대표에 대한 두려움은 문재인 후보 때보다 더 크다. 남의 실수로 얻은 표는 내 표가 아니다. 여도 야도 돌아보고, 반성할 줄을 모른다. 남의 실수로 얻은 득점에 자만할 때가 아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