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끝나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일 10차 변론기일을 한 번 더 열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을 증인으로 부른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 요구해 열리는 추가 변론기일이다.
더 이상 변론기일을 지정하지 않으면 3월 15일 전후 탄핵 심판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모두 마지막 변론기일 2주일 뒤에 이루어졌다. 법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전례에 따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으로선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고 보는 법학자가 많다. 옳고 그르고는 잠시 옆으로 밀어놓자. 탄핵을 찬성하건, 반대하건 예측은 냉정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물러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파 진영에서부터 윤 대통령의 자진 사퇴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쪽이 오히려 자진 사퇴를 반대한다. 탄핵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자진 사퇴 의견이 있었다. 사과 요구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탄핵으로 갔다. 사과했지만 별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일부 강경파가 사과하면 오히려 손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됐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사과에 인색했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 적기를 놓치면 진정성을 의심받고, 효과도 보지 못한다. 박 전 대통령은 번번이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야당에 총리 추천을 제안하는 것도, 대국민 사과도 언제나 뒷북을 쳤다. 자진 사퇴는 엄두도 못 내보고 탄핵으로 끝났다.
윤 대통령에게는 아직 스스로 물러날 기회가 있다. 가장 좋은 선택은 비상계엄이 실패했을 때 사퇴해야 했다. 그게 국가 지도자다운 처신이다.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대통령 부재는 국정 마비를 의미한다. 더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국제 관계가 격랑 속이다. 우리만 손 놓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는 좋은 기회다. 여론 흐름이 좋아졌다. 보수가 결집했다. 비상계엄 전 20%대에 머물렀던 윤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에는 50%를 넘긴 조사까지 나왔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호전이다.
이런 결집 현상이 국민의힘에는 딱히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중도 확장에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개인에게는 무척 고무적이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바닥을 치던 윤 대통령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 앞으로도 이런 지지율이 계속되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 물러나는 게 지도자의 품격에도 맞는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원인이 야당 횡포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싸우더라도 법의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벗어난 사람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명령에 따랐을 뿐인 부하들과 그 책임을 다투는 모습은 너무 군색하고, 애처롭다. 스스로 물러난다면, 그동안의 언행을 모두 정리하고, 지도자답게 책임을 안고 갈 수 있다. 마지막 기회다.
윤 대통령은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면 생각이 가벼워지고, 설득력도 커진다. 탄핵이 끝이 아니다. 최근 민주당은 다시 ‘명태균 특검’을 꺼냈다. 형사재판과 특검이 차기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윤 대통령 내외에게는 고통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탄핵 직전 사퇴했다. 제럴드 포드 부통령은 대통령직을 승계한 직후 “대통령이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혐의에 대해 기소 전 특별사면한다”라고 선언했다. 닉슨은 형사처벌을 면했다. 포드는 이 일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사임해도 닉슨처럼 곧바로 사면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정상참작은 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심과 역사의 심판이다.
국민의힘은 더 문제다. 당 공식 입장이 아니라지만, 윤 대통령과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보수 결집 효과는 있겠지만, 중도 확장을 포기해야 한다. 이대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 이제 돌아서기도 어렵다. 가능성은 작지만, 윤 대통령의 결단이 가장 쉬운 길이다. 지도자다운 뒷모습은 국민의힘과 보수 유권자에게 최소한의 보답이 될 수 있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