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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고 악착같은 정치인은 위험하다

등록일 2025-03-23 20:15 게재일 2025-03-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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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고문
김진국 고문

정치는 욕을 많이 먹는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서로 다른 주장을 절충하는 게 본질이다. 소리가 크건 작건 다툼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권력을 두고 경쟁할 때는 시끄럽지 않을 리 없다.

그렇더라도 그럴듯한 모양을 갖추는 건 명분 덕분이다. 이제는 달라졌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과학자뿐 아니라 정치인이 되겠다는 대답이 많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분이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그런 명분에 걸맞게 짐짓 점잔을 빼는 정치인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겉치레조차 던져버렸다. ‘동물 국회’가 심하게 싸울 때 잠시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일상적인 여의도 문법이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들어 30번째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다. 탄핵 사유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 내란 상설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미룬 것, 비상계엄을 묵인·방조하고, 윤 대통령 지시를 하급자에게 전달했다는 문제를 제시했다.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니 이를 무시한 조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게 탄핵사유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비상계엄과 관련해서는 두드러진 행동이 없었다. 다른 국무위원과 차이가 없다. 이것으로 탄핵한다면 ‘대행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 국무위원을 모두 탄핵해야 한다.

더군다나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인용 여부가 오늘(24일) 결정된다. 기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기각이 되건, 인용이 되건 한 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불과 며칠 앞두고 최 대행을 탄핵 소추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과잉대응이다.

그뿐 아니다. 그동안 민주당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을 보면 참담하다. 정말 탄핵할 필요를 느껴서 발의한 건지, 집권당을 겁박하고, 국정 운영을 방해하려는 건지 헷갈린다. 발의했다가 스스로 철회하거나, 본회의에 상정하지도 않고 대부분 폐기했다. 그나마 헌재로 보낸 탄핵소추안도 결정이 난 8건 가운데 8건 모두 기각됐다. 탄핵이 목적이 아니라 탄핵 소추가 목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탄핵 소추하면 우선 피청구인의 직무가 정지된다. 일을 할 수 없다. 가뜩이나 대통령이 탄핵 소추당해 직무가 정지된 처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적 부담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대표적으로 손봐야 할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과의 친분까지 자랑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게 국내 정치상황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국무총리에 이어 경제 사령탑까지 직무가 정지당하게 됐다. 대통령 부재라는 국가적 위기를 넘어가는 데 힘을 모아도 부족한 마당에 이게 무슨 짓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도구가 있다. 압정을 박으려고 망치를 쓸 수는 없다. 화분에 물을 주려고 살수차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는 정말 악착같다. 가장 독한 방법, 상상도 못 할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에 불을 지른다. 이렇게 몰아치면 타협의 여지가 없다. 정치는 없고, 송사(訟事)만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다. 탄핵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걸 어떻게 막느냐를 걱정했다. 탄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탄핵 심판보다 가장 빨리 결론을 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계엄 직후에 비해 탄핵 반대 여론이 아주 거세졌다.

왜 그럴까. ‘이재명 포비아’ 탓이다. 계엄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이재명은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 본인의 재판과 탄핵 심판을 묶었다. 시간 싸움을 벌였다. 조급하게 몰아치는 모습이 거부감을 일으켰다. 지난 총선 공천의 잔인한 숙청을 대선 이후에 투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민주당만 모르는 것 같다. 조급하고, 몰아칠수록 신뢰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줄탄핵’과 ‘줄기각’이 윤 대통령 탄핵마저 그르칠까 두렵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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