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지난 금요일 선거법 위반 1심 재판 결과다. 집행유예라고 가벼운 처벌이 아니다. 선거법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으면 10년간,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5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제266조) 대법원에서 이대로 형이 확정되면 이 대표가 앞으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와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현역 의원이 피선거권을 잃으면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국회법 제136조 제2항) 이 대표가 국회의원직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또 당선무효의 형이 확정되면, 그 사람이 선거 때 보전받은 비용을 모두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65조의2 제1항)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은 434억 원을 보전받았다. 이 대표가 못 내면 민주당이 물어내야 한다.
징역형은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여권도 마찬가지다. 여당 의원이 100만 원 이하 벌금을 예측해 비난받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형량일까. 아니다. 허위 사실 공표는 엄중하게 처벌해 왔다. 국민의 선택을 방해하고, 민주주의의 기초인 선거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1야당의 대표이니 봐주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관측이 퍼져 있었다. 정치권에 불러올 엄청난 파장이 부담스러울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우리는 정치를 욕한다. 해마다 신뢰도 조사를 하면 언제나 정치 분야가 꼴찌다. 욕을 하면서도 정치인에 대한 특별 대우는 묵인한다. 정치인을 보는 자세가 ‘팬덤’으로 변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기준이 너무 감정적이다. ‘내로남불’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은 무엇을 해도 응원한다. 음주 운전을 한 연예인을 두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빠’(문 전 대통령 극렬 지지자들)만 ‘우리이니(문재인 전 대통령)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외치는 게 아니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이 법을 조롱하면 그 법을 누가 지키나. 지지 정치인을 무조건 응원하는 유권자도 책임이다. 민주당 김동아 의원은 대장동 사건 변호를 하고 벼락 공천받았다. 그는 선거 직후 “4·10 총선 전날 이 대표를 굳이 재판에 불러 세워 놓은 것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며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적’이라는 말만 붙였지,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사법부까지 좌지우지하겠다는 말이다.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민주당 독재’다.
민주주의가 건강해지려면 정치권력이 사법 권력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사법 권력이 정치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민주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부패다. 그냥 두면 돈과 자리를 나눠 먹는다. 어느 나라에서나 다나카 총리, 닉슨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사람을 구속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무지막지한 정치권력을 견제할 마지막 보루가 사법부다.
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을 두고 ‘정치의 사법화’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로 풀 것을 사법부로 떠넘기는 걸 의미한다.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권 내에서 풀어야 할 것을 재판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승자와 패자로 가르는 것은 최악의 정치다. 불법행위를 사법부가 심판하는 것과는 다르다. 불법행위를 사법부가 아닌 정치권이 어물쩍 처리하는 것은 ‘사법의 정치화’다. 정치의 ‘사법 방해’다. 무법 사회를 만든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라고 외쳤다. “손가락 하나라도 놀리고, 전화라도 한 통 하고, 댓글이라도 쓰고…” “손을 잡고 싸우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의 변호사들에게 공천을 줘 민주당을 로펌처럼 만들었다. 모든 당력을 방탄에 모았다. 재판을 지연하고, 위증했다. 수사 검사를 탄핵하고, 검찰 예산을 깎았다. 이제 법원과 판사를 협박한다. 대선 불복을 넘어 재판 불복이다. ‘사법의 민주적 통제’가 이런 건가. 정치가 사법을 쥐고 흔들면 사악한 정치인만 살아남는다. 정치의 사법 방해를 방치하면 불법과 사기가 지배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우둔하지만, 정치의 사법 통제는 훨씬 더 위험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