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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떻게 살 것인가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자기 인식 능력이다. 인류학자들은 초기인류의 등장을 대략 200만 년 전으로 보는데, 그 시점부터 어느 정도는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직립보행 같은 신체적 구조의 변화와 함께 두뇌의 용량이 커지면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기능도 발달했을 것이다. 인간의 자기인식 능력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본질적 요소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실존적인 질문도 거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물음이야말로 인간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요 종교와 철학과 문학과 예술이 태어난 원천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고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완결된 해답을 제시해온 것은 종교였다. 기독교와 이슬람, 불교와 유교 등 인류의 고등종교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인생의 본질을 규정하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런 종교의 영향력도 많이 약화되고, 과학과 기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인간은 편리함과 풍요를 누리는 대신 본질적인 질문에서는 멀어져 갔다. 아무리 문명과 문화가 발달해도 인류가 자연의 일부인 것을 부인할 수 없을 터이다.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가야 할진대 자연생태계가 살아있는 교과서요 경전일 수밖에 없다. 눈만 뜨면 보게 되는 나무와 풀, 주잠비복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답과 길이 있는 것이다. 일찍이 공자가 말한 성(誠)이 바로 자연의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거짓이나 나태, 사악함이 없는, 오로지 참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 자연의 모습이 아니던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개인적인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인 만큼 그 삶의 터전이 바로 사회인 것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삶의 실현인 것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상태에 따라 개인의 삶도 좌우되게 마련이다. 아무리 올곧게 살고자 해도 사회가 부패하고 혼란하다면, 그 속의 개인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신의 지식과 양심과 성의(誠意)를 다하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사람이 추구하는 인의예지 같은 덕목들도 모두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사회를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불의한 일을 자행하거나, 그릇된 판단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 그것을 보고도 방관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다. 그런 개인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병들고, 나라는 쇠락한다. 결국 그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간다. 사회의 도덕이 무너지고 공동체의 신뢰가 깨어지면, 개인의 삶도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물음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묻는 것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0-27

10억원 짜리 웰니스, 정작 지역은 치유하지 못했다

도비와 군비 등 총 10억 원이 투입된 ‘영덕 국제 H 웰니스 페스타 2025’가 곧 막을 올린다. 영덕군은 15개국 65명의 해외 전문가, 86개 부스라는 숫자를 내세우며 ‘국제행사’임을 강조하지만 그 화려한 규모 뒤에는 지역민의 자리는 없다. 올해 열린 영덕대게축제는 8억 5000만 원의 예산으로 10만 명이 방문해 153억 원의 직접경제효과를 거뒀다. 행사 후 지역 상권의 매출이 늘고 지역 이미지와 위상도 높아졌다. 반면 4년째 이어지는 웰니스 페스타는 ‘치유’라는 이름과 달리 지역민이 철저히 소외된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영덕에서 한방·치유 체험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스마트폰 기반의 QR 입장 시스템, 외국어 중심의 안내, 고가의 체험 프로그램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군민 다수는 이 행사가 왜 필요한지, 무엇을 위한 행사인지 조차 모른다. “지역 주민은 구경꾼, 외부 전문가가 주인공”이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10억 원의 혈세가 어디에, 왜 쓰이는지에 대한 설명 조차 부족하다는 점이다. 해외 전문가 초청과 부스 운영을 위해 항공권·숙박·통역·요리사 초청까지 부담하는 이유에 대한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다. 행정당국이 말하는 ‘국제행사’의 실체가 실질적 교류인지, 단순한 외형 부풀리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덕군은 이번 행사를 ‘국제 H 웰니스 엑스포’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다. 행사의 성공적 평가를 통해 미래의 대형 국제행사를 준비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엑스포도 지역민의 공감과 참여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축제의 중심은 외국 전문가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어야 한다. ‘지역을 치유한다’는 웰니스의 본뜻은 화려한 개막식이 아니라 주민 한 사람의 삶 속에 변화를 남기는 것이다. 행사장의 불빛이 꺼진 뒤에도 지역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치유가 아니라 10억 원짜리 행정 쇼에 불과하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10-27

다수결로만 처리하려면, 국회가 왜 필요하나

매주 여론조사가 발표된다. 지난주에는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조사가 많았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이 대책이 ‘적절하다’라는 응답이 37%, ‘부적절하다’라는 응답이 44%였다. 여론조사 공정의 조사에서는 김현지 부속실장이 국정 감사에 출석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출석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56.3%로‘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응답 28.2%보다 갑절이나 많았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렇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모든 문제를 다수결로 처리한다. 그게 민주주의라고 한다. 법사위에서 추미애 위원장은 야당 의원의 발언을 중단시키고, 야당을 대변할 간사 선임도 민주당 뜻대로 강요한다. 국회 운영에서 야당이 없다. 민주당의 일방 독주다. 그런데도 ‘다수결’이라며,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란 것이다. 정말 그런가. 플라톤은 다수결이 대중의 어리석음을 낳는 ‘중우(衆愚)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굳이 고대 철학자나 저명한 정치학자를 소환할 것도 없다. 여론조사는 어떤가. 여론조사에서 다수가 김현지 실장에게 국회에 출석하라면 출석할 것인가. 부동산 대책은 어쩔 건가.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훨씬 많으니, 취소할 건가. 다수결이 민주주의라면 그게 옳다. 국민의 다수보다 국회 의석의 다수가 더 우선이라고 주장할 건가. 아무리 따져봐도 국민 다수가 더 존중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국민은 주권 그 자체이지만, 국회의원은 위임받은 권력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참여 민주주 의’를 강조해 왔다. 요즘처럼 사회적 소통망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국회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국민에게 바로 물어보고, ‘다수결’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무 엇 하러 ‘국회’를 만드나. 수많은 혈세를 낭비하며, 저질 막말 경연을 참고 들어야 하나.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전부라면 국회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발상지에서부터 모범국들이 모두 의회를 중요한 제도적 장치로 삼는 것은 다수결만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다수가 소수의 권리를 억압하고 희생시키는 ‘다수의 횡포’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한나 아렌트도 다수의 지배는 “소수자를 제거해 버리는 것”으로 다수결의 타락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비판했 다. 다수결은 분명히 효율적인 의사결정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토론과 타협이다. 다수결이 오히려 이를 잠식하고, 훼손하고 있다.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가 충돌하는 공간이다. 이질적인 의견들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최근 한국의 정치에서는, 이러한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 강조된다. 다수의 표를 확보한 쪽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소수의 목소리는 묵살된다. 다수결이 절대적인 기준인 양 착각하고, 정당성의 근거로 악용되면서, 정치는 점점 더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전쟁터로 변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나 세력이 ‘국민의 뜻’을 내세워 모든 결정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인다. 과연 그 ‘국민’은 누구인가? 선거에서 승리한 다수는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승자가 모든 권한을 독식한다. 패자는 철저히 배제된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포용’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학자 월터 리프만은 “소수파의 합의를 얻지 못한 민주주의적 결의는 위선과 무법상태를 가져올 따름”이라고 경고했다. 다수결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 서는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정치는 이러한 ‘합의의 정치’를 외면한 채, 수의 우위를 앞세운 ‘힘의 정치’로 변질됐다. 다수결은 최종적인 결정 방식일 수는 있어도, 그 이전의 과정—즉, 충분한 토론과 소수 의견의 존중—없이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된 독단에 불과하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숫자의 힘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는 데서 출발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10-26

청송~ 다시 푸르게, 다시 붉게

청송은 언제나 푸르고, 가을이면 사과로 붉다. 하지만 올해의 붉음은 조금 다르다. 불길이 스치고 간 산자락은 아직 회복의 길 위에 있지만, 사과는 어느 때보다 붉고 단단하게 익어가고 있다. 잿빛이던 땅 위에 다시 숨결이 돌고, 그 위에 맺힌 열매가 희망의 빛을 머금고 있다. 그 빛깔이 바로 올해 청송의 색이다. 지난 봄, 우리는 큰 시련을 겪었다. 산불이 산과 삶의 터전을 태웠다. 그러나 청송의 마음까지는 태우지 못했다. 군민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묵묵히 일어섰고, 그 손길이 이어지며 상처 입은 곳에도 서서히 새 숨결이 퍼지고 있다. 아직 완전한 복구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사과밭은 여전히 꿋꿋이 제 열매를 맺고 있다. 그 속에는 서로를 믿고 지켜온 이웃의 온기와, 다시 일어서는 청송의 굳은 의지가 스며 있다. 이번 축제는 그 건재함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다시 힘차게 일어서겠다는 우리의 다짐이 될 것이다. ‘청송~ 다시 푸르게, 다시 붉게’를 주제로 열리는 제19회 청송사과축제는 오는 10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용전천 현비암 일원에서 다섯 날 동안 펼쳐진다. 청송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일군 회복의 이야기이자 새로운 도약의 선언이다. 청송사과는 이미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13년 연속 수상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 그 영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기후의 변덕과 노동의 한계를 이겨내며 품질을 지켜온 농민의 땀, 그리고 군민 모두의 자부심이 만든 결과다. 이제 우리는 그 땀방울 위에 글로벌 브랜드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그리고 있다. 이번 축제는 그 여정을 세상에 알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올해 축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어우러지는 하이브리드 축제로 열린다. 대면 축제의 한계를 벗어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글로벌 축제로 도약을 준비한다. 사과축제장의 생동감과 온라인 축제의 지속적인 확대를 통해 축제 형태를 다양화함으로써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현장에서는 ‘꿀잼–사과난타’, ‘도전–사과선별 로또’, ‘황금사과를 찾아라’ 등 웃음이 넘치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온라인에서는 세대와 공간을 초월한 참여형 콘텐츠가 펼쳐진다. 멀리 있는 사람도 화면을 통해 청송의 가을을 느끼고, 현장을 찾은 이들은 직접 사과 향기 속을 걸으며 진짜 청송을 만날 수 있다. 또 용전천 섶다리 주변에는 하류부인 수변공간에 기존 조형물과는 별개로 청송과 사과축제를 상징하는 대표조형물을 설치해 사과축제를 더욱더 부각시켜 관광객들에게 사과를 형상화한 청송의 자연과 사람을 잇는 감성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불공정 상행위에 대해서도 특별 대책도 마련했다. 파트별 파트장 선임과 구성원을 편성해 평가기준표에 의해 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사과축제 입점 선정시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부여해 입점자들에게 부스 운영의 책임감 부여와 경각심도 고취시킨다. 따라서 사과축제장 내에 축제현장 불편 신고센터 2개소를 설치해 공무원이 전담 상주하고 바가지요금 자체를 근절, 관람객들에게 축제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시켜 준다. 축제의 밤은 노래와 불빛으로 물든다. 이찬원, 마이진, 황윤성 등이 출연하는 청송문화제 축하공연, 손태진·남진·린·환희 등이 함께하는 개막 공연, 김희재·진해성·천록담이 꾸미는 사과축제 축하공연, 박지현·장민호·김다현 등이 참여하는 세계유교문화축전 공연까지 청송의 가을밤은 별빛보다 뜨겁고, 사람들의 환호로 가득할 것이다. 청송의 사과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그 안에는 기다림이 있고, 견딤이 있으며 끝내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힘이 있다. 올해의 청송사과축제는 그 붉은 열매에 담긴 ‘회복의 이야기’와 ‘도약의 의지’를 세상과 나누는 자리다. 산불의 상처를 넘어, 다시 푸르게 살아나는 숲처럼 우리의 마음도 더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다시 붉게 물든 사과처럼, 청송은 오늘도 새 희망을 익혀가고 있다. 그 희망의 향기가 이번 축제의 곳곳에 퍼져 청송의 가을을 더욱 깊고 따뜻하게 물들이길 바란다. /윤경희 청송군수

2025-10-26

명성황후와 김건희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는 지난해 3월 경복궁 곤녕합을 비공식 방문했다. 곤녕합은 중전 침소로 1895년 일본 자객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참혹하게 살해된 을미사변의 종착점이다.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 부부는 10분간 오롯이 둘이서만 ‘모종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윤 대통령 측은 “문화유산 홍보를 위한 현장 사전 점검”이라는 명분을 세웠다. 하지만 명성황후 원혼이 가득 서렸을 법한 곤녕합에서, 배석자를 모두 물리치고 둘이서만 문화유산 홍보 고민을 했으리라고 믿을 국민은 없다. 더욱이 무속과 주술의 그림자가 덧씌워진 이들 부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한때 곤녕합의 주인이었던 비운의 명성황후도 그러했다. 명성황후는 일개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벼슬까지 내리고, 무속에 심취해 수많은 국고를 탕진했다. 곤녕합에 깔려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48마리 분량의 표범 카펫은 명성황후의 사치 행적을 비판하는 소재로 종종 회자된다. 명성황후의 무속 심취·사치 취향은 윤 대통령 부부의 행적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김건희씨는 풍수전문가 백재권, 도사 천공, 건진법사와 수시로 소통해왔다. 또 서희건설의 1억1000여만원 어치의 목걸이 브로치 귀걸이, 사업가 김모씨의 3500만원의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 통일교 6200만원 그라프 목걸이 등 김씨가 받은 뇌물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쯤이면 명성황후의 표범카펫 취향을 훨씬 뛰어넘는다. 무속과 사치, 사적권한 남용에 집착하면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러시아제국 비선 실세 라스푸친이 그러했고, 3000켤레 구두를 소장했다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 이멜다가 그러했고,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 부부가 그러했다. /류승완(중부본부장)

2025-10-26

李대통령 “TK 신공항·취수원 해법 찾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대구경북(TK) 신공항 건설과 대구취수원 이전 등 이 지역 핵심 현안을 거론하며 해법을 찾아 보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이 TK지역을 찾은 것은 지난 추석 개인 일정으로 고향 안동을 찾은 것을 제외하면 취임 후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지역 정책 토론을 통해 신공항 건설과 취수원 이전 문제 등 대구의 숙원사업에 대해 시민들과 집중적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이 대통령은 우선 TK지역 최대현안인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대구 도심의 군공항은 옮기는 게 맞다”고 전제하면서 “정부 지원이 가능하도록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정부 재정지원과 관련해선, “후적지에 아파트 주거단지가 아니라 산업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사업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어쨌든 국방은 국가사무다. 정부가 대구에만 혜택을 주는 게 쉽지 않겠지만, 적정하게 검토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신공항 건설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 해법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대구 취수원 문제와 관련해선 “안 그래도 대구경북 지역의 중요한 현안 중의 하나라서 환경부에 지시해 꽤 오랫동안 점검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비용도 적고 깨끗한 원수를 취할 방안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언급할 텐데 아직은 검토 중”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결론을 내겠다고 했다. 정부도 현재 대구만 유일하게 낙동강 표면수를 수돗물로 사용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지하수를 취수하는 시스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메디시티·인공지능(AI)로봇수도·모빌리티 산업 같은 대구의 미래 발전 방안을 제시하면서, “대구에 오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대구시민을 뵈니 옛 생각도 새록새록 나고 감회가 새롭다“며 TK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질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경청하면서 가능한 한 성의있게 답변하려는 태도도 보였다. 이날 이 대통령의 약속이 반드시 성사돼 대구지역 숙원사업이 조속히 해결되길 기대한다.

2025-10-26

‘덴탈시티 대구’가 국립치의학硏의 최적지

대구지역 치과의료계의 최대현안인 국립치의학연구원 입지선정이 정부의 일방적인 ‘지정’이 아니라 ‘공모’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대구 타운홀 미팅에서 박세호 대구치과의사회장이 “대구는 12년 동안 국립치의학 연구원 유치를 추진해오고 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최적지가 선정되기를 바란다”고 밝히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4개 시·도가 유치 의사를 밝힌 상황이라 내년에 ‘공모’를 통해 선정할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국민의힘 이인선 대구시당위원장은 국회 보건복지위 박주민 위원장을 만나 국립치의학연구원 입지 선정을 ‘지정’이 아닌 ‘공모’ 방식으로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치의학연구원은 치과산업 연구개발의 핵심 기관인 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공모 절차를 통해 입지를 선정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치의학연구원 유치전에는 대구 외에도 부산·광주·천안이 참여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2023년 8월 유치추진단을 꾸리고, 지속적으로 복지부에 대구입지의 타당성을 주장해 왔다. 작년에는 전국 4개 시·도 치과의사회 공동성명, 12개 치과대학·치과병원 지지선언, 국회 토론회 개최를 통해 유치활동을 펼쳤다. 대구시의회는 지난 7월 ‘대구시 치의학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도 제정해 집행부에 힘을 보탰다. 현재 국내에는 의학·약학·한의학 연구원은 다수 있지만 치의학 연구원은 전무하다. 치의학연구원은 단순히 관련 산업 발전 외에도 학문적 발전, 연구개발 인재 육성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감안해서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된 지역에 설립돼야 한다. 대구는 치의학연구원 설립 최적지의 조건을 갖춘 도시로 평가받는다. 경북대 치과대학과 병원,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수성알파시티, 한국뇌연구원과 연계할 경우 기초연구부터 임상, 산업화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덴탈시티’라는 소리도 듣는다. 정부는 공정하고 투명한 공모 절차를 통해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입지선정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2025-10-26

말의 범람과 솔개의 침묵

21세기 20년대는 말의 홍수 시대가 아닌가 한다. 기존의 언론매체 이외에도 숱한 개인 유튜브가 횡행함으로써 왜곡된 지식과 정보의 지독한 오남용이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식당에서 비행기에서 사람들은 넋을 놓고 휴대전화 화면에 빠져든다. 문자 그대로 유튜브 삼매경이 지구촌 전역을 휩쓸고 있다. 시간대를 뒤로 돌리면 전혀 다른 풍경과 만난다. 1980년 11월 학살자 전두환은 ‘언론 통폐합’이란 미명으로 극악무도한 언론통제를 감행한다. 5공에 반대하는 언론인들을 해직함으로써 체제 순응적인 언론을 양성하고, 광주 학살 은폐와 확고한 권력 장악이 언론 통폐합의 목적이었다. 아직도 떠도는 5.18 폭동설이나 북한 개입설은 언론 통폐합의 직접적인 폐해 사례다. ‘1도(道) 1지(紙) 원칙’에 따라 지방 신문사들이 대거 통폐합되었고, 그에 앞서 ‘창작과 비평’, ‘씨알의 소리’,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정기간행물 등록이 취소되었다. 동양 텔레비전(TBC)을 필두로 한 민영 방송사가 한국방송공사에 강제로 편입되어 거대 공룡 방송사로 거듭남으로써 5.18 학살 권력 집단 주도의 언론지형이 일상화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학살자 무리에 저항하는 반체제 지식인들은 지하로 잠적하고, 저항의 중심축인 대학 또한 기나긴 겨울잠에 빠져든다. 이와 같은 참혹하고 무기력한 시기에 이태원의 노래 ‘솔개’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기현상(奇現象)이 발생한다. 1982년 4월에 발매된 ‘솔개’는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으로 시작한다. 절실하게 필요한 말을 아예 꺼낼 수도 없던 참담한 시대에 말하지 말고 살아가자는 ‘솔개’는 사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이태원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 혹은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 또는 “수많은 농담과 진실 속에 멀어져 간 나의 솔개”를 수없이 안타까워한다. 인간이 진화 사다리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말(언어)에 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말로써 인간은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대물림함으로써 여타 생물종보다 확연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말은 훗날 문자로 체계화됨으로써 불확실한 기억의 한계를 털어버리고 비상(飛翔)할 수 있었다. 언어를 통한 지식과 정보의 확산이 지구 전역에서 일어난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가 무지막지하게 확대 재생산되어 나라 곳곳을 떠돌고 있다.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에서 구현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라쇼몽 효과’라 부른다. 선택적 기억과 발화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약점은 최대한 감추고, 선하고 거룩한 면은 최대한 부각하려 애쓴다. 문제는 개개인이 소소한 일상을 왜곡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이득을 위해 특정 집단이 분명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곡해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의 영혼과 육신을 피폐케 하는 것에 있다. 정말 ‘솔개’처럼 침묵하면서 사태의 핵심을 새삼 확인할 때가 온 것인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0-26

포항 지진소송의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하며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포항 지진 관련 정책 포럼에 패널로 참석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포항 촉발 지진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에 정의롭고 현명한 판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른 새벽부터 국회까지 한걸음에 달려오신 포항 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국회와 대법원에 전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은 지열발전소의 촉발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날의 충격은 단순히 건물의 균열을 넘어 시민들의 일상과 공동체의 기반까지 무너졌다. 8년이 지난 지금도 포항은 지진복구와 피해 배상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서 지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2019년 정부조사연구단은 포항 지진이 국책사업인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으로 발생한 ‘유발 지진’임을 공식 확인했다. 이후 2023년 1심에서는 피해 주민 1인당 200만~ 300만 원의 정부 배상을 인정했지만, 올해 5월 2심에서 일부 패소 판결이 내려지면서 시민들은 또다시 지진으로 혼란과 분노에 휩싸였다. 그 충격은 5.4 강진만큼이나 시민들의 삶을 흔들고 있다. 왜 포항 시민들은 지진 이후에도 ‘손해배상 소송’이라는 또 다른 재난에 흔들려야만 하는가? 이제 포항 지진 손해배상은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 대법원이 손해배상 상고심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한번 시민들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다.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포항 지진은 국책사업으로 인한 촉발 지진이다. 촉발 지진으로 국민의 재산과 안전이 침해받은 만큼 국책사업에 대한 책임소재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손해배상에 대한 증명책임은 포항 시민에게 있지 않다. 포항 시민들은 이미 재난으로 오랜 시간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왔다. 포항은 지진 이후에 힌남노라는 대형재난까지 겪으면서 안전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도시보다 높다. 대법원의 정의롭고 현명한 판결은 포항 시민들이 안전하게 일상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둘째, 이번 판결은 포항 지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일본이나 대만, 뉴질랜드의 경우 지진 이후에 지진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박물관이나 문화적 자산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에 반해 포항은 지진복구나 배상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서 패러다임 전환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포항도 손해배상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다면 지진을 치유와 성장의 역사로 전환하고 문화적 자산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포항 지진 손해배상 소송은 단순히 금전적 차원을 넘어 국책사업을 안전하게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에 제대로 판결한다면 향후 진행되는 국책사업은 더 안전하게 추진될 것이며 제2의 포항 지진과 같은 사태를 예방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갖출 수 있다. 무엇보다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결을 통해 포항 지진 손해배상 소송이 원만히 마무리 되길 바란다. 이번 판결이 지진으로 8년간 흔들렸던 포항 시민들의 삶과 일상이 안전하게 회복되는 이정표가 되길 다시 한번 기대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0-26

싸울 것인가 화해할 것인가

얼마 전 주택조합 조합장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결원이 된 감사 보궐선거 과정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로 입후보하려면 추천인 서명이 필요한데 조합장은 외국에서 보낸 서명은 인정할 수 없고 한국에서 대리인이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나는 그 조항은 총회 때 대리인에게 위임하여 찬반 투표하는 경우라고 반박한 것이다. 작년에 그 조합장과 이사들이 불법 셀프 유임한 전적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런데 의견 차이가 곧 싸움으로 번졌다. 내가 ‘이 조항의 의미를 이해 못하시네요’라고 한마디 하자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에 담지 못할 비난을 하는 등 개싸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를 잘 아는 지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조합장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해 못 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 지인의 말을 들으면서 정은혜의 ‘싸움의 기술’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도 급소를 건드리면 개싸움이 된다면서 개싸움이 되게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역시 내가 부주의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싸움이 되지 않게 하라는 싸움의 기술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인 간 갈등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만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고단수인 것 같다. 지난 22일 미국 백악관의 역대 최연소 대변인 캐럴라인 레빗의 이름이 온 매스컴을 장식했다. 허핑턴포스트 기자 S.V.데이트가 ‘부다페스트는 1994년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장소인데 미·러 정상회담 장소를 부다페스트로 정한 건 누구냐’고 질문하자 레빗이 “느그 엄마”(Your mom did)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느그 엄마’는 미국 청소년들이 말싸움할 때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레빗의 이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여러 언론이 대서특필했지만 백악관의 다른 대변인 테릴러 로저스가 ‘적절함 그 이상’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 이것은 한 대변인의 돌발적인 발언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전략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이보다 며칠 앞서 18일, 트럼프는 700만 명의 ‘노 킹스’ 시위대를 향해 왕관을 쓰고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 ‘똥’을 투척하는 AI(인공지능)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다. 이런 전략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환호를 보내는 것을 보면, 이들의 개싸움 전략은 잘 작동하는 것 같다. 주택조합의 이사회는 결국 스스로 물러났던 전임 조합장을 새 감사로 선택했다. 조합장을 비롯한 이사들은 까다롭게 따지는 A 후보가 감사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A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을 믿는 일부 조합원들의 암묵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이기고 지는 것을 판가름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부당한 도발에 대해서만큼은’ 맞받아치는 전략도 필요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개인 차원에서는 개싸움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0-26

“우리는 모두 난장이다”

한낮에도 어둡고 햇살이 먼저 떠나는 곳에 살면서도 오늘 하루는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납작하게 바위에 붙어서 안개 이슬을 머금고 추위를 견디는 난쟁이바위솔 같은 사람들 (중략)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은 사람 속에 살다 가는 사람이다 사람보다 높은 벼슬이 있을까 세상 어디를 떠돌더라도 ‘사람’이란 단어를 잊지 말라던 사람 생각나 (중략) 그런데 왜 안개처럼 자욱한 사람은 되지 못하나 세상의 모든 외로움이 밥을 먹을 시간* (중략) 나에게 남은 최근의 생각은 허름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천양희, ‘사람에 대한 최근의 생각’ 전문 (‘문학과 사회’ 2025. 가을호) 천양희 시인의 ‘안개 자욱한 사람’을 읊조리며 “난쟁이바위솔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일명 ‘난쏘공’이라 지칭되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고, 그 씌어진 것(écrit)은 작품이다. 그런 면에서 쓰는 사람의 사명과 씌어진 것 사이 운명은 아이러니하다. 이에 대한 손정수 비평가의 리뷰는 서늘한 울림을 담고 있다. “1978년 출간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96년 100쇄를 찍게 된다. 이 일을 기념하여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한 작품이 100쇄를 돌파했다는 것은 작가에겐 큰 기쁨이긴 하지만 아직도 이 소설이 읽혀야 하는 시대인가. 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더 이상 이 소설이 필요치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손정수, ‘작가의 사명과 작품의 운명 사이의 아이러니, 고전의 사계’ p.289) “한 시대를 대표하면서 한국소설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 소설”을 말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이런 일화들일 것이다. 조세희 작가가 오징어를 파는 난장이 아저씨의 분노를 목격한 일과. 식당에서 뱅어포를 먹던 꼬마의 “난장이 바다에서 온 난장이 고기”라는 발화는 우연하게도 겹치며 써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의 독해처럼 “난쏘공의 한 겹은 동시대의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삶의 일상적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형성된 체험의 순간이 놓여있다.”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천양희 시인의 “허름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라는 언술은 인용된 신용목 시인의 시구 “세상의 모든 외로움이 밥을 먹을 시간”에서의 인상이 일상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두 난장이다’라는 명제는 새삼, ‘우리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불러온다. 이때 “내게 고전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위대한 작품이기 이전에 진지한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의 문제에 언어와 이야기로 대응하고자 했던 의지의 결과로 보였다.”라는 ‘고전의 사계’에서 저자의 서문은 뭉클하다. 이는 양심과 신념을 저버리지 않은 작가들에게 비평가가 쓰는 최상급 경의의 표현일 것이기에. “사람 속에 살다 가는 사람, ‘사람’이란 단어를 잊지 말라던 사람” /이희정 시인

2025-10-26

보이스피싱, 한 통의 전화가평생의 재산을 앗아갑니다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경찰, 검찰, 금융기관을 사칭하거나 대출을 미끼로 개인정보를 빼내는 수법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전화 한 통에 평생 모은 돈을 잃어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보이스피싱의 핵심은 공포심 조장과 신뢰 조작이다. 범죄자들은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 등 긴급한 상황을 만들어 피해자가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도록 한다. 최근에는 경찰로 위장해서 영상통화까지 악용하며, AI 기술을 이용해 가족이나 공공공기관 직원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보이스 클로닝’까지 등장하는 등 더욱 치밀해지고 있다. 그리고 ‘노쇼(NO-show) 사기’와 ‘로맨스스캠(연애·결혼빙자사기)’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노쇼 사기는 거래나 예약을 미끼로 신뢰를 쌓은 뒤 금전을 편취하는 수법이고, 로맨스스캠은 외국인, 교포 등을 사칭해 장기간 교제하는 척하며 ‘귀국 비용’, ‘선물통관세’ 명목으로 돈을 송금받는 신종사기 수법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감정과 신뢰’를 악용한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심과 확인이다. 공공기관은 절대 전화로 돈을 요구하지 않으며, 가족이나 지인이 급히 송금을부탁하더라도 반드시 직접 통화로 본인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의심되는 전화나 문자를 받았다면 즉시 전화를 끊고 112로 신고해야 한다. 경찰은 지역 금융기관과 협력해 보이스피싱 예방 홍보와 교육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경각심을 갖고 항상 주의를 해야 한다. 작은 의심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경찰은 언제나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25-10-23

이례적인 ‘가을 雨期’로 비상 걸린 건설현장

잦은 가을장마로 인해 건설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반복적인 작업중단으로 공사비용 부담이 커지는데다 공기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건설경기 침체, 자재비 상승 등 3중고를 겪으며 경영난에 시달리는 건설업계는 “올 가을이 유난히 잔인하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가을은 원래 건조한 기후로 인해 공사 진행의 ‘적기’로 꼽힌다. 그러나 올 가을은 맑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업계 관계자는 “건축이건 토목이건 비가 많이 내리면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제는 불규칙한 날씨 앞에서는 마땅히 취할만한 선제적인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포항시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공사의 경우, 최근 잦은 비로 공사 진행과 중단을 반복하고 있다. 하천 정비와 구조물 시공 과정에서 토사 유실 위험이 커 비가 오면 작업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주민 불편이 가중되고, 공사비 부담도 늘고 있다. 포항 도심 곳곳의 아파트 건축 현장도 비상이다. 골조 공사 단계는 흙을 다루고 콘크리트를 타설해야 하는 작업이 주류여서 비에 가장 취약하다. 강우 시 장비 투입이 어렵고, 구조물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포항 북구의 한 아파트 현장 소장은 “지난주에도 5일 연속 비가 내려 타설을 전면 중단했다”고 말했다. 특히 하도급업체의 경우 비가 오는 날에도 장비 임대료, 인력 대기비용 등 간접비가 발생하지만, 계약상 기상 악화를 이유로 보상을 받을 길은 없다. ‘가을 우기(雨期)’ 현상은 올해 기상 데이터 분석으로 처음 확인됐다. 여름 장마철에 집중됐던 태풍 발생 패턴 변화로 초가을까지 강수가 분산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기후위기로 이 같은 경향이 계속 강화될 수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자연재해에 따른 건설공정 지연은 전국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공공 공사 발주를 할 때 ‘기후변수를 반영한 공기 산정 제도’를 도입하는 등 하도급 업체의 부도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2025-10-23

전공의 부족···의사양성 사다리 무너진다

올 하반기에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1년 6개월 만에 돌아왔지만, 수련병원의 전공의 부족 현상은 여전하다. 국회 교육위 소속 백승아 민주당 의원이 전국 15개 국립대병원에서 받은 전공의 현황 자료를 보면, 정원 2861명 중 현재 68.3%인 1955명만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병원(본원)과 전북대 병원은 각각 80.4%, 71.7%로 충원율이 비교적 높지만, 경북대병원(칠곡)은 52.8%, 전남대병원(화순)은 55.3%, 충북대병원은 60.0%로 절반이 조금 넘는 정도만 복귀했다. 필수의료 8개 과목(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심장혈관흉부외과·신경과·신경외과)의 전공의 충원율은 15개 병원 중 10개 병원이 50%를 밑돈다. 예를 들어 올 하반기 대구 지역 수련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61명을 모집했지만 합격자가 한 명도 없었다. 충북·충남·강원 지역은 각각 34명의 외과 전공의를 모집했지만 아무도 뽑지 못했다. 필수의료 과목의 공동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전공의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 결국 전공의, 전임의, 전문의로 이어지는 의사 양성 사다리가 무너지게 된다. 전공의 수련을 거치지 않은 일반의는 바로 개원가로 직행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들어 신규 개설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대폭 늘어난 것이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백승아 의원은 22일 대구교육청에서 경북대병원 등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 “지역·필수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 원인이 분명하다. 의료 분쟁 부담이 크고 밤샘 근무 등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보상이 적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수련병원에서 필수과목 의사를 배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술하는 의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수련병원은 필수의료는 물론 의학교육, 임상 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정부는 의료체계의 골격을 유지하는 수련병원들이 망가지지 않도록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2025-10-23

세기의 이혼과 불법원인급여

재산분할 1조3808억원, 위자료 20억원으로 세기의 이혼이라 불리우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지난 16일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대법원은 이혼과 위자료 20억원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불법원인급여의 법리를 들어 재산분할에 관한 항소심의 판단을 파기하며 다시 판단하라고 돌려 보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태원 회장이 소유한 SK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볼 것이지 여부였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부터 개인이 소유하거나 증여 상속 받은 재산으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는 재산을 말한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회사의 주식은 1297만5472주로 가치가 2조800억원에 달했고, 당연히 이 주식이 재산분할대상이냐 아니냐는 재산분할금을 정하는 핵심 쟁점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SK 주식을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보아 재산분할에서 제외하면서 지급할 재산분할금을 665억원만 인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 회장의 부친에게 300억원 상당의 돈이 유입된 것을 인정하며 이 자금이 지금의 SK그룹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면서 SK 주식을 특유재산이 아닌 부부공동재산으로 인정했다. 다만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도를 고려해 최 회장의 재산분할 비율을 65%, 노 관장은 35%로 인정했다. 이렇게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할 재산분할금이 1조3808억원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돈 측에 지원했던 300억원이 불법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이기 때문에 재산분할 산정에 반영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300억원은 뇌물이라는 ‘불법적인 원인’으로 만들어진 돈이고, 우리 법질서는 불법적인 행위로부터 파생된 이익이나 권리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적 돈을 가지고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의 법리는 불법적인 원인으로 재산과 노무를 제공한 때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박 자금으로 쓰라고 빌려준 돈을 갚으라거나 뇌물을 준 사람이 마음을 바꾸어 줬던 뇌물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재판은 불법원인급여 자체를 돌려달라는 소송이 아닌 30년에 걸쳐 이루어진 재산형성의 기여도를 주장하는 소송이었음에도 대법원은 불법원인급여 법리를 적용한 것이다. 대법원은 민법상 불법원인급여의 법리를 처음으로 재산분할에 적용했다. 앞으로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을 따질 땐 과거 재산 형성의 출처와 그 불법성까지 입증해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론 의문이 생긴다. 배우자 한쪽이 재산형성을 하며 저지른 불법성 때문에 재산분할 요구를 못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재산형성 과정은 적법하더라도 수십 년 전 제공된 종잣돈의 출처까지 범죄인지 아닌지를 따져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가능할까. 또한 제공한 쪽의 불법성 때문에 불법적 돈을 지원 받은 쪽은 그로 인해 증가된 어마어마한 반사적 경제이익을 누리게 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여러모로 의문이 든다. /김세라 변호사

2025-10-23

지구촌 Z세대의 반항

지구촌 곳곳에서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Z세대의 대규모 시위가 연쇄적으로 벌어져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네팔과 마다가스카르 정부는 Z세대의 반정부 시위로 정권이 무너지고, 대통령이 추방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달 네팔정부가 유튜브, 페이스북 등 26개 소셜미디어 접촉을 차단하면서 일어난 Z세대에 의한 시위는 실상은 수십 년간 누적된 정치권의 부정 부패에 대한 Z세대의 항거로 해석이 된다. 1인당 GDP 500달러를 45년째 유지하는 마다가스카르는 최근 실업률이 40%로 올라서자 청년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대통령 교체를 넘어 지금은 그들의 요구가 반영된 체제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네팔과 마다가스카르의 Z세대 시위가 성공을 거두자 모로코, 케냐, 이란, 인도네시아 등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지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Z세대의 반정부 시위가 번지면서 Z세대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Z세대란 1990년 후반에서 2010년 후반에 태어난 세대로 어릴 때부터 인터넷과 휴대폰 디지털 기술에 능숙한 인류 최초의 디지털 세대다. 나라마다 조금 다르지만 혁신과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 세대다. 기존의 사회질서와 관행을 깨고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만들어 갈 미래세대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어떤 정파에 치우치기보다 정치적 이슈에 집중하는 유동적 사고를 가진 세대다. 경제적 불평등이나 부정부패에 매우 부정적인 특징이 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가 기성세대에 대한 Z세대의 일시적 도전일까. 아니면 세대교체란 큰 흐름으로 이어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23

문학의 불편

대학에서 문학 수업을 하다 보면 작품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을 만날 때가 꽤 있다. “주인공이 부도덕한 것 같아요.”, “이건 패륜 아닌가요?”, “너무 암울해요.” 등등. 가령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만 해도, 명성에 비해 막상 읽어보니 심히 충격적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작품을 볼 때 마치 재판관이 된 듯 보지 좀 말라”라고 말을 하곤 하는데, 납득시키기까지 매해 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문학을 읽는다는 행위는 근본적인 위험을 안고 있다. 살면서 형성해 온 나름의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며, ‘세계 내 존재’인 자기의 한계를 마주하는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은 사회에 강한 규정력을 행사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의 한계를 지시하며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대체로 읽고 싶은 것만 읽는다. 물론 이는 요즘의 우리가 ‘듣고 싶은 것’만 듣거나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과 상통하는 행위이다. 보기 싫은 것은 그저 못 본 척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는 지적 태만에 다름 아니다. 알고리즘과 추천 시스템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복컨대 문학을 읽는다는 건 읽을 생각이 없었던 내용과의 조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内田樹) 역시 텍스트 읽기의 본연을 여기서 찾은 바 있다. 즉 진정으로 읽는다는 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아닌 ‘무엇을 보고 있지 않은가’ 혹은 ‘무엇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지’를 전경화하는 실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에서 ‘읽으려고 하는 것’과 애써 ‘읽지 않으려는 것’ 사이의 긴장과 알력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텍스트 독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주체적 읽기를 수행하면 텍스트는 ‘자기 일탈’을 한다고 한다. 이때 텍스트의 자기 일탈이란 마치 독자가 독서를 통해 ‘읽을 생각이 없었던 말’과 만나듯이 텍스트는 ‘말할 생각이 없었던 말’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독자가 읽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 텍스트에 노출되고 텍스트가 말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독자에게 감지된다. 이런 만남의 방식으로 텍스트의 자기 일탈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물론 텍스트의 자기 일탈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굳이 모험적인 읽기를 시도하는 독자로부터 말 걸기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텍스트의 자기 일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 읽기에 관한 신비로운 해석이 아니다. 우리는 똑같은 작품을 보아도 똑같이 보지 않는다. 이런 편차는 왜 발생하나? 당연히 배경지식의 농도에 따라 감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텍스트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에 따라 상이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따라서 가끔은 ‘불편한 문학’을 주체적으로 읽으며,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이념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길 권한다. 이런 성찰이야말로 요즘 들어 더 필요해진 ‘능력’ 아닌가 싶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10-23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

나의 이상한 증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뭘 버리지를 못한다. 부모님에게 받은 유전적 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집구석마다 쟁여놓은 물건이 산더미라 늘 아내로부터 꾸지람을 듣는다.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늘 내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은 몇 년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고 구석에 늘 처박혀 있다. 독하게 마음먹고 버리려고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가도 다시 끄집어내기를 반복한다. 이건 분명 ‘병’이다. 의학 쪽에서 말하는 강박장애가 아닌가 싶다. 강박장애는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멈추지 못하고 반복하는 정신질환이다. 입에 늘 청결제를 가지고 헹구면서 손을 자주 씻는 것과 냄새가 날까 싶어 옷을 자주 빨아 입는 것을 결벽증이라고 몰아붙이는 친구들에게 제발 담배 좀 끊고 냄새나는 옷 좀 입고 다니지 말라고 되려 역정을 내고 있지만, 이 또한 오염 강박증의 한 증세일지도 모르겠다. 집사람은 뭔가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확인 강박증이 있다. 냄비를 태워 먹고 약속을 몇 번 ‘빵구’를 내더니 늘 확인한다. 하지만 병이 워낙 독한지라 늘 사고는 친다. 부모님 제사까지 잊어버린다. “난 저런 인간들과 같이하기가 너무 싫다.”라며 혼자 고고한 척하는 완벽주의자 친구가 있다. 정말 반듯한 생활을 하는 친구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례를 들춰 봐도 그 친구의 논리가 맞다. 그렇게 살아야만 제대로 산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가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끔은 정떨어질 때가 있고 재수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런 친구도 강박 증세가 있다고 본다. 완벽주의자로 포장된 인간의 대부분이 강박적 성격이 있거나 강박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학적 견해도 있으니 말이다. 땅이 무너질까 두렵다는 생각,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렵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분명 환자다. 남의 호의나 선의를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무시하거나 심지어 경멸하는 사람 또한 환자이다. 늘 불평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험담하는 것을 자기 주장의 정당화로 억지 강변하는 사람도 분명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것을 먹으면 뭐가 나빠지고 저것을 복용하면 이것이 좋지 않다는 식의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도 정상은 아니다. 병원을 수십 군데 돌아다니는 사람이 “병은 소문내야 한다.”라는 이상 한 논리로 말할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을 넘어 너무 오래 살아 자식에게 짐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된다. “그 나라는 지금 전쟁 중인데 잘못 가다간 큰일 난다.” 이 정도 수준이면 그래도 이유가 확실하니 들어 줄 만은 하다. 하지만, 해외여행 가자는데 그 나라는 잘못하면 강도가 많아 물건 빼앗기고 살해당한다고 가지 싫어하고 어떤 나라는 납치된다고 싫어하고 또 어떤 나라는 물이 좋지 않아 안 간다고 할 땐 말문이 막힌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반대하는 친구가 이번엔 같이 가는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여행을 반대한다. 같이 어울리기 정말 힘든 사람을 가만히 보면 전부 강박 환자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만 눈에 보이는 나도 강박 환자임이 분명하다. /노병철 수필가

2025-10-23

축의금의 크기와 축하의 크기

사회 전 분야에서의 가파른 물가 상승이 서민의 삶을 갈수록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결혼식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하객에게 대접하는 식사와 신부 드레스, 메이크업 등 결혼식을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평균 2160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경우엔 그 비용이 3509만원이었다. 고비용 결혼식이 일상화되면서 친척이나 친구의 결혼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한 한국소비자원의 조사는 2025년 8월 현재 결혼식 하객 식대의 중간 가격이 6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친구 결혼식에 가서 5만원짜리 한 장을 봉투에 넣으려면 어쩐지 낯이 뜨거워진다. 내가 먹은 밥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란 사회 초년생의 푸념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결혼식이 많은 봄·가을마다 축의금 고민이 커진다는 중년 남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궁여지책으로 축하 메시지와 축의금만 보내고 결혼식엔 가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얼굴을 마주하고 제2의 삶을 설계할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주려면 두둑한 축의금부터 마련해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일까?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결혼식 기사를 보면 수백만 원을 넘어 수천만 원, 심지어 억대의 축의금을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무슨 미담인양 담겨 있다. 이런 기사는 5만원의 축의금도 준비하기 힘든 이들을 한없이 주눅 들게 만든다. 축의금의 크기가 축하의 마음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닐 텐데. 어쨌건 없이 사는 사람들은 청첩장이 무서울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0-22

한국과 중국의 전통 교육 현장을 보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손주들과 고택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한국인성예절교육원에서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초중등학생을 포함한 가족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체험프로그램이었다. 작년에 서울의 사촌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올랐던지 올해도 참가하고 싶어했다. 한 달여 전쯤 낸 공고를 보고 미리 신청했다. 작년에는 하빈의 육신사 수당정에서, 올해는 달서구의 병암서원에서 이루어졌다. 프로그램명은 ‘선비의 하루’,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첫 시간은 서원의 역사와 서원의 가능에 대한 설명과 함께 서원 탐방을 한다. 자유 복장에 자유로운 수업 분위기가 이후의 수업을 들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두 번 째 시간은 선비복 체험. 선비의 옷인 유복을 입고 선비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배운다. 어린 남자아이는 한복에 쾌자를 입고 복건을 쓰고, 여자아이는 치마저고리에 배씨댕기를 머리에 얹거나 족두리를 쓴다. 어른들은 남녀없이 유복을 입고 유관을 쓴다. 입고 벗기가 쉽지 않지만 한복을 입히면 일단 아이들의 처신이 달라짐을 단번에 알게 된다. 옷을 갖춰 입힌 후 공수를 가르치고 나면 앞선 시간에서와 달리 어느새 남자아이는 의젓하고 여자아이는 조신해진다. 절하는 법도 남녀가 다르다는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배우고 익힌다. 한 아이를 앞자리에 불러서 시범적으로 선비의 일생을 가르친다. 붓, 벼루, 먹, 종이, 문방사우를 곁에 두고, 책가도 병풍을 두른 방에서 열심히 공부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할 때 입는 앵삼을 입혀 주기도 한다. 세 번째 시간에는 민화문자도 그리기를 한다. 충효의 의미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목판에 한자 ‘충(忠)’과 ‘효(孝)’자가 그려진 문자 그림에 색칠하는 시간이다. 같은 그림판이지만 색칠은 한 것은 제각각인 게 재밌다. 마지막 차 명상 시간에는 차를 마시며 심신을 정화하기도 한다. 네 시간이 순식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참여자들이 모두 흥미로워한다. 수업 후 나올 때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조용하고 음전해졌다.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경내를 둘러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른의 웃는 얼굴을 보게 된다. 며칠 전 중국 복건성의 남평시에 가서 이와 대단히 유사한 광경을 봤다. 남평시는 주자학의 창시자인 주자가 나고 자라, 공부하며 거의 일생을 보낸 곳이다. 현재 그를 배향하는 서원들이 곳곳에 복원돼 있고, 그를 기리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뤄지는 도시다. 주자의 사상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로 정한 시범유치원 행사에 초대받았다. 유치원 곳곳에 배치된 어린 유치원생들이 저마다의 몫을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소화해 내고 있었다. 뜰에서는 차를 재배하여 말리고 덖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무대에서는 각종 기예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마지막에는 차 마시는 모습을 연극처럼 보여주었고, 가장 마지막엔 주자가훈을 외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행사였다. 과장적 분장에 일사불란하게 잘 훈련되어 정돈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와는 좀 다른 체제와 문화의 향기를 느꼈다. 그러나 전통을 익혀 전승하려는 노력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0-22

스트레스가 위를 망친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장기는 위장이다. 입맛이 떨어지고 밥을 먹으면 잘 체하고 항상 속이 답답하고 트림이 자주 나오거나 속이 쓰린 느낌이 생긴다.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을 해도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기능적 장애로 위의 운동과 분비를 조절하는 자율신경이 불균형해진 것이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뉘는데 스트레스가 심하면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위의 움직임이 억제되고 혈류 공급이 줄어든다. 위산이 과도하게 분비되기도 하고 반대로 위의 연동이 떨어져 음식이 오래 머물면서 더부룩함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 느껴지는 속의 답답함은 단순히 소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의 긴장 반응이 위를 조이고 있는 상태다.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어도 마음이 불안하면 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불면, 어깨 결림, 손발 냉증, 두통 같은 증상들이 함께 나타나면 자율신경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교감신경은 몸을 싸움 모드로 부교감신경은 휴식 모드로 만든다. 스트레스 상황이 반복되면 몸은 항상 ‘전투 태세’를 유지한 채로 살게 된다. 혈압이 오르고 위산이 과다해지며 위 점막이 손상되고 염증이 생긴다. 심지어 심한 경우는 위벽이 예민해져서 음식만 들어가도 통증을 느끼거나 공복에도 쓰린 증상이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단순한 위장병이 아니라 간과 비위장의 복합 문제로 본다. 간은 기운의 흐름을 조절하는 장기인데 스트레스에 즉각 반응하는 것으로 본다. 스트레스로 간의 기운이 막히면 위장의 소화력도 함께 떨어진다. 기가 울체되면 명치가 답답하고 트림이 나며 배가 더부룩하며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비위가 약해져 입맛이 떨어지고 체중이 줄거나 대변이 묽어지는 등 전신적인 허증으로 번진다. 치료의 핵심은 단순히 위를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한의학에서는 침, 약침, 한약 등을 통해 교감신경의 긴장을 풀고 부교감신경의 회복을 돕는다. 특히 성상신경절 부위나 복부 자율신경총 주변의 약침은 스트레스에 긴장된 신경을 안정시켜 위장의 운동성을 회복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한약은 체질과 증상에 따라 다르지만 비위장의 소화기와 간 기능을 조절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약재들이 쓰인다. 시호, 향부자, 백출, 감초, 반하 같은 약재들이 대표적이다. 식사는 규칙적으로, 천천히, 조용한 환경에서 하는 것이 좋다. 과식이나 늦은 야식은 자율신경의 회복을 방해한다. 커피, 에너지음료, 자극적인 음식은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므로 피하는 게 좋다. 잠을 충분히 자고 짧은 명상이나 심호흡으로 신경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몸이 이완되면 위도 자연스럽게 따뜻해지고 소화력이 살아난다. 결국 위장은 마음의 거울이다. 마음이 긴장하면 위도 움츠러들고 마음이 편안하면 위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래서 위장병을 치료할 때는 스트레스를 함께 다스려야 한다. 위를 치료한다는 건 단지 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과 감정 몸의 전체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위를 편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약은 결국 이완된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0-22

대구 타운홀미팅에 거는 시민 기대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대구에서 시민들과 만나 지역 현안을 논의하는 ‘타운홀미팅’을 연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광주를 시작으로 대전·부산·강원에서 타운홀 미팅을 열었다. 취임 4개월을 맞은 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대구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대구시민들은 그동안 타 지역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을 보면서 이 행사가 하루빨리 열리길 기대했다. 대통령의 결단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현안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1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타운홀 미팅 참석을 희망하는 대구 시민은 대통령 페이스북에 게시된 온라인 설문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고 공지하면서 “첨단기술 융합 메디시티 실현, AI 로봇 수도 조성,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도시 구축 등 대구의 성장 전략을 시민과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타운홀미팅의 주요 의제를 예고한 것이다. 현재 대구에서는 이 대통령이 언급한 부분 말고도 긴박한 현안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게 TK 신공항 건설이다. 대구시가 모든 재정을 책임져야 하는 TK신공항 건설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정부가 건설비용 모두를 부담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자금지원을 해줘야 한다. 광주처럼 대통령실 주관 TF가 조속히 구성될 필요가 있다.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도 대통령이 나서줘야 한다. 지금까지 대구 취수원을 안동댐으로 이전하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었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돌연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대구시민은 지금까지 구미공단을 거쳐 흐르는 낙동강물을 취수해 수돗물로 사용하면서 항상 불안에 떨고 있다. 식수문제는 대구시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이번 타운홀미팅에서 결론이 나오길 기대한다. 타운홀미팅은 대통령이 민심을 읽는 자리다. 이 대통령은 정제된 목소리뿐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가감 없이 들을 필요가 있다. 대구시민들도 이 기회를 ‘민원 나열식’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대구의 백년대계가 걸린 현안 해결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2025-10-22

경주 APEC, ‘경북 경쟁력’ 세계에 알릴 기회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가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이번 주부터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경북도는 21일 경주엑스포 대공원에서 이철우 도지사 주재로 최종 점검 회의를 열고 마지막까지 챙겨야 할 부분들을 살폈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긴장을 늦추지 말고, 체크리스트를 꼼꼼하게 재점검해 한 치의 빈틈도 없게하라”고 지시했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이날부터 정부와는 별도로 9개반(총괄, 문화, 봉사, 환경, 안전, 경제, 의료, 홍보, 교통·숙박) 76명으로 구성된 자체 종합상황실 운영에 들어갔다. 이 지사는 이날 회의에서 특히 경제 성과를 극대화할 것을 주문했다. 예를 들어 ‘산업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APEC 참가국 간의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 그리고 안동 ‘퀸스 로드’ 같은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도정 성과로 연결해 보라는 아이디어다. ‘퀸스 로드’는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안동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당시 여왕이 관람한 코스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번 APEC 회의에서도 정상 배우자들이 불국사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APEC 정상회의 기간에는 세계 경제·산업계의 시선이 경주로 쏠린다. APEC 경제포럼인 ‘CEO 서밋’이 28일부터 나흘간 경주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CEO 서밋’ 의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맡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도 참석한다. 글로벌 빅테크 거물들도 자리를 같이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참석이 유력하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도 참석할 예정이다. 글로벌 경제인들은 이 자리에서 일대일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투자·협력 기회를 구체화할 가능성이 높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CEO 서밋’에 참가하는 경제인들을 대상으로 경북의 저력을 담은 콘텐츠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 경제 활성화의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2025-10-22

다문화는 다른 문화일까

‘선생님, 제 이름은 세라예요. 근데 집에서는 ‘사라’라고 불러요.‘ 지역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한 아이가 자기소개를 한다. 엄마는 필리핀 출신, 아빠는 한국인이다. 한국어는 제법 유창하지만, 교과서 속 단어 몇 개는 여전히 낯설다. 점심시간이 되자 친구들은 자연스레 무리를 지어 놀지만, 세라는 머뭇거리게 된다. 언어보다 더 높은 벽은 ‘섞이지 못하는 낯선 분위기’다. 이런 장면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 아동은 2006년 5천 명 수준에서 지난해 18만 명을 넘어섰다. 20년 사이에 30배 이상 늘어났다. 전국 학생 100명 중 3명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며, 특히 농어촌과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높다. 한국 사회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다인종·다민족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경북의 교실도 예외가 아니다. 포항, 구미, 영천 등지의 초등학교에는 베트남·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 출신 어머니를 둔 아이들이 한 반에 서너 명씩 있다. 한 교사는 ‘아이들이 처음 입학했을 때는 한국말을 거의 못해 교실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며 ‘같이 놀고 싶지만 말이 안 통해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경상북도교육청은 이런 학생들을 위해 ‘다문화학생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포항교육지원청은 언어지도 강사를 파견한다. 하지만 현실은 턱없이 부족하다. 포항의 한 언어지도사는 ‘5개 학교를 돌며 하루 한 시간씩만 수업한다’며 ‘담임교사와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아 개별 맞춤지도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역 간 편차도 심하다. 대도시인 대구나 수도권에는 다문화 예비학교가 여럿 있지만, 경북 농촌지역에서는 찾기 어렵다. 문제는 정책의 시각이 ‘적응지원’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다문화 교육을 ‘결손을 보완하는 복지사업’으로 본다. 필요한 것은 ‘통합 교육’이다. 이주배경 학생이 한국 사회의 주변부가 아니라, 뉴노멀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제도적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은 언어교육과 문화이해 교육, 교사 집중연수, 학부모 지원을 통합적으로 운영한다. 한국은 부처별 사업이 따로 놀고, 현장 교사는 행정보고에 쫓긴다. 교사 양성과정에서 다문화 이해교육을 의무화하고, 전문 상담교사와 통역인력을 상시 배치하는 국가 차원의 통합적 시스템이 절실하다. 이주배경 아동의 교육권은 복지의 일부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미등록 체류아동은 여전히 입학조차 어려운 경우도 있다. 출입국관리법상 부모신분 노출을 꺼리는 탓에 학교 문턱에서 돌아서는 아이들이 생긴다. ‘교육은 인간의 권리’라는 원칙이 서류 한 장에 막히는 현실은 부끄럽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주배경 아동이 차별없이 배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교실이 ‘침묵의 공간’으로 남는다면 한국사회의 미래가 그만큼 닫혀버리지 않을까. 다문화는 더 이상 다른 문화가 아니다. 다문화를 우리 문화로 적극 포용하는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선진국의 힘은 배려와 공감에서 나온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0-22

가을 하늘

살다보면 흐린 날 속에 가끔 무지개가 뜨는 날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누군가에게라도 얘기하고 싶어 입이 저절로 달싹입니다. 얼마 전에 딸네에 다녀왔거든요. 현관문을 들어서자, 사위가 요리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을 음식을 해 주고 싶었다고 하네요. 외국여행지에서나 맛볼만한 음식입니다. 이름이 낯설어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마음이 담긴 그것은 특별했습니다. 와인까지 준비했더군요. 식사가 끝나자, 꼬맹이 손자가 피아노 실력을 보여주려 한껏 폼을 잡습니다. 음표에 몰두할수록 아이의 입이 자꾸만 벌어집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박수소리에 한 살 터울의 형아가 일어나 태권도 시범을 보입니다. 제법 진지합니다. 쳇지피티와도 대화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제 다 컸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옵니다. 집안을 둘러봅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펜트리도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이젠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거실이 아닙니다. 딸의 마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연년생 아기를 끌어안고 울던 딸이 조금은 여유롭게 보여 안심입니다. 딸과 사위의 찌그럭거림도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아갈 거라 여겼지만, 그 과정을 보는 내 마음은 늘 무거웠거든요.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자연스럽게 딸네 다녀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위가 차려준 밥상 얘기가 나오다 목에 걸립니다. 사위가 실직해 걱정이라는 친구의 말이 퍼뜩 떠올라서입니다. 이야기가 설렁설렁 겉돕니다. 이제 조금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더라는 말로 얼버무립니다. 길에서 친한 언니를 만났습니다. 딸네 잘 다녀왔냐고 묻습니다. “손자들 많이 컸지?” 라는 언니에게 나는 장난기가 심할 나이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언니는 꽤나 잘 나가는 아들이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았거든요. 지인들이 손자 얘기에 열을 올릴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던 언니입니다. 내 마음이 흐린 날, 눈물 콧물 닦으면서 풀어놓아도 좋을 친구와 언니들. 미주알고주알 내 놓으면 마음을 안아주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좋은 일은 내 놓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요즘 자주 느낍니다. 슬픔은 들어주면서 내 위안도 되기에 조금 더 쉬운 걸까요. 나 또한 자랑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했습니다. 이제 직장인이 된 아들이 용돈 주더라는 동생의 전화에 그때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요. 그런데 그 화살이 제 살기에 급급한 아들 녀석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생의 자랑이 은근히 아들에게 비난의 잔소리가 되었던 거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기쁨을 진심으로 받아주는 일도 마음의 여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요.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딸네의 얘기를 마음 놓고 얘기해도 되는 나의 대나무 숲은 누구일까. 문득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아이가 첫 걸음을 떼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백점 맞은 시험지도, 상장도 엄마 앞에서는 마음껏 떠들 수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마치 천재 인 냥 자랑해도 엄마는 당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맞장구쳤습니다. 엄마는 나의 자랑꺼리가 더 있기를 바라셨지요. 그랬던 나의 대나무 숲은 이제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대나무 숲도 화를 낼 때가 있더라고요. 예전, 여동생이 아기를 업고 친정 왔을 때였습니다. 동생은 가끔 시어머니 얘기를 했습니다. 농사지은 것들을 챙겨주신답니다. 뒷손이 가지 않게 파를 다듬어서 신문지에 싸 아래 위를 노끈으로 묶어 한 가닥씩 빼 먹기 쉽게 해서요. 그 얘기를 몇 번 들었던가봅니다. 엄마가 벌컥 화를 내셨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요. 동생과 나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는 뜻이었는데 왜 화를 내셨는지, 그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함이 화로 번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압니다. 자식들의 무지개가 내 하늘입니다. 대나무 숲에 자랑하던 나는 이제 자식들의 대나무 숲입니다. 그들의 자랑으로 내 하늘은 무지개가 가득합니다. 주변인들의 무지개까지 다 품을 수 있는 나의 하늘을 가졌으면 합니다. 가을 하늘은 참 넓습니다. /윤명희 수필가

2025-10-22

경주 APEC 손님 감동시킬 준비 돼 있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드디어 다음 주말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개막한다. 개막식이 9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보문단지와 경주 일대 신라 문화 유적지 등이 벌써부터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정상회의장소인 HICO와 35개의 PRS(정상급 숙소), 국제 미디어센터, 만찬장 등이 집중된 경주 보문단지 주변은 지난 추석연휴부터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가장 인기를 모으는 곳은 21개국 정상들의 만찬장인 라한셀렉트호텔(옛 현대호텔)이었다. 현대호텔은 지난 2005년 11월 열린 부산 APEC 때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했던 곳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국빈 방한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는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부시 대통령과는 경주 현대호텔에서 만났다. 두 대통령은 경주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한 후, 부부 동반으로 약 30분간 불국사 경내를 산책하며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2009년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방한한 시진핑 현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를 찾았을 때 환영 연회를 개최한 곳도 현대호텔이다. 이번 경주 APEC 때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이곳에 여장을 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APEC 정상의 배우자들은 불국사를 비롯해 경주 문화재 관람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지만, 정상들의 경주 관광 스케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져 아쉽긴 하다. 이번 경주행사 성공의 핵심은 주요국 정상들의 참석 여부다. 경주 APEC 회의 때는 미·중 정상 모두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경주에서 펼쳐질 국제 외교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됐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29일부터 30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APEC 부대행사인 ‘CEO 서밋’ 기간에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이 연달아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 주석은 29일 혹은 30일에 방한해 미중, 한중 정상회담과 APEC 정상회의 등을 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 APEC회의는 신라 삼국통일 이후 가장 큰 국제행사”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경북도와 경주시는 ‘역대 가장 완벽한 APEC’을 목표로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면서 마지막까지 손님맞이 준비에 전 행정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20년 전 부산 APEC회의 때 주회의장으로 이용된 해운대 누리마루는 당시 최첨단 회의 시스템과 고품격 서비스, 한국 전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모두 겸비한 최고의 회의장이라고 극찬을 받았었다. 이번 경주 APEC회의에서 두드러진 성과가 나오게 되면 경북도와 경주시의 글로벌 위상도 그만큼 격상된다. 경주 APEC회의는 경제파급 효과만 2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있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아태지역 정상 부부를 비롯해 수 만명 규모의 국내외 손님들이 경주를 다시 찾고 싶은 감동적인 도시로 인식하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하며 준비해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0-21

농어촌 기본소득, 자치단체 재정은 문제없나

농림축산부는 농어촌기본소득 사업 시범지역으로 경북 영양군 등 전국 7개군을 선정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시범사업지역은 내년부터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매월 15만원의 지역상품권을 지급한다. 소득기준이나 연령제한은 두지 않는다. 내국민으로 구성된 4인 가구는 매월 60만원의 가본소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재명 정부는 지방소멸 극복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을 실시키로 하고 성과에 따라 이를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전체 사업비 중 국비 분담 비율을 40%로 하고 나머지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분담토록 했다. 가뜩이나 허약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시범지역 사업 이후 다수의 기초단체가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을 희망할 것으로 보여 재정은 생각않고 돈만 풀겠다는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도 거론된다. 시범사업 지역에 선정된 기초단체의 재정자립도는 대개 15~21% 정도로 매우 미약하다. 그중 전남 신안군은 8.2%다. 경북에서 유일하게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영양군은 15.4% 재정자립도에 그치고 있다. 영양군은 기본소득 이외 군 자체부담금 5만원을 추가해 매월 20만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군의 연간예산 5400억원의 약 7.8% 수준이 기본소득으로 나간다. 영양군이 원전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되면서 지방세 일부가 늘어난다고 하나 그것이 지방재정 자립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관할하는 광역단체가 재정 여건을 고려, 기초단체 지원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도 문제다. 광역단체의 소극적 태도로 시범지역 대부분이 광역 30%, 기초 70%의 재정 분담을 한다고 한다. 어렵게 시작한 농어촌 기본소득사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정책의 효과를 잘 검증하고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게 해야 한다. 농어촌 인구 감소지역 62개군으로 사업을 확대할 경우 6조원 이상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사전에 충분한 예산 대책부터 세워야 성공할 수 있다.

2025-10-21

포스트 APEC 준비, ‘경주의 변신’ 기대된다

경북도와 경주시가 다음 주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포스트 APEC 전략’을 준비하고 있어 주목된다. APEC 행사의 다양한 산물(産物)인 물적·정신적 자산들을 토대로 해서 경주를 ‘세계 10대 문화역사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기대가 크다. 대표적인 전략이 ‘세계경주포럼’ 운영이다. 세계경주포럼이 플랫폼 역할을 해서 국제적인 역사문화 분야의 의제를 리드하겠다는 생각이다. 경북도는 지난주 이미 외교, 정책, 문화, 학술, 과학기술(AI) 등 각 분야별 포럼 자문위원을 선정했으며, 포럼 운영방향에 대한 논의도 시작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세계경주포럼이 세계적 흐름인 한류산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경주보문단지를 세계적인 복합관광단지로 새롭게 리모델링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첨단 교통 인프라(모노레일·자율주행차·노면전차 등)를 도입하고 특급호텔도 유치해 50년 역사를 가진 보문단지를 세계적인 복합 관광지구로 부상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문화유산과 첨단 기술을 결합한 경주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확립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해외여행을 해보면 알겠지만, 특정도시의 정체성은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 경주시의회도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산학협력단과 함께 경주 브랜드 가치와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어 ‘포스트 APEC 전략’ 수립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31일 개막하는 경주 APEC 행사에는 세계 21개국 정상 부부와 거물급 기업인, 언론인 등 해외 귀빈만 2만여 명이 찾아온다. 세계의 이목이 경주의 저력과 잠재력을 확인하는 자리인 것이다. 천년고도(古都) 경주로서는 다시없는 찬스다. APEC 행사는 비록 정부 주도로 열리지만, ‘포스트 APEC’의 성과는 경북도와 경주시의 역량에 달렸다. 경주가 세계인의 ‘일회성 추억’으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포스트 APEC 전략’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2025-10-21

금테크 경계령

방송인 김구라씨의 금테크가 화제다. 그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5년 전 “금이 나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1억원 정도를 샀는데 지금은 3억 5000만원이 됐다며 금테크 과정을 자랑스럽게 말해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금테크가 공개되면서 한국은행이 김구라보다 금테크를 못했다는 국정감사에서의 질책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현재까지 금을 사들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최근들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을 사들이는 것과 비교해 한국은행이 금테크에 소홀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는 세계 10위권에 있으면서도 금 보유량은 38위에 머물러 있는 현실 사정을 국회가 지적한 것. 올들어 금값은 연초보다 50% 넘게 급등했다. 미국의 금리인하 전망과 달러화 약세, 지정학적 긴장감 등이 작용하면서 안전자산으로서 가치가 급부상한데 따른 영향이다. 김구라씨 보다 앞서 영화배우 전원주씨의 금테크도 방송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전씨는 2022년 당시 한 방송에서 ‘아껴서 부자된 스타’ 1위에 등극되면서 주식 30억원, 금 10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소개됐다. 당시 금값이 30만원 하던 때여서 지금 시세로 따지면 그녀는 금값만 약 27억원을 보유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고 한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최근 시중에는 금 품귀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국내 금값이 국제시세보다 13.2%나 높게 형성되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인다”며 일물일가 원칙에 따른 단기 급등 후 조정을 경계하라 했다. 금테크도 좋으나 모든 것이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 교훈도 새겨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