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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 철강·알루미늄 관세 시작, 위기를 기회로

미국 트럼프 정부의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부과가 현지시간 12일부터 개시됐다. 이번에 관세부과 대상은 볼트, 너트 스프링 등 철강제품 155개, 알루미늄제품 11개 품목 등 모두 166개 품목이며 이는 예외국가 없이 25% 관세가 부과된다. 한국으로선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관세가 부과되는 첫번째 사례가 된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부과가 미리 예고되면서 관련업계는 서둘러 대응책 마련에 나섰지만 사실상 현재까지 뾰족한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관련업계는 이제 시작한 관세부과가 글로벌시장에서 어떤 파급력을 미칠지를 예의주시하면서 정부와 대책을 협의해 나가야 한다. 트럼프 정부 1기인 2018년에도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가 부과됐으나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대미 수출물량의 70%로 제한받는 쿼터를 배정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조항이 폐지되면서 철강과 알루미늄의 대미 수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미국 내 한국 철강 점유율은 약 10%에 이른다. 경제전문기관에서는 이번 관세부과로 한국철강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최소 1조원 이상 수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산업이 중심인 포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짐작이 된다. 특히 관세부과의 영향이 오래갈 경우 포항지역 산업기반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쿼터제 폐지가 오히려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어 마냥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쿼터없이 무관세 혜택을 누렸던 캐나다, 멕시코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은 기회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쿼터제 폐지로 미국으로의 수출물량을 더 늘릴 수 있게 된 것과 미국이 생산하지 못하는 철강제품에 집중해 수출하는 방법도 미 관세정책에 대응하는 수단이 된다. 다만 자본력이 약한 영세기업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관세전쟁은 이젠 한국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미 관세정책이 시장경제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분석해 돌파구를 찾도록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2025-03-12

남자도 ‘황혼 이혼’을 꿈꾼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주변을 둘러보라. 퇴직한 60~70대 남성들의 푸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젊었을 땐 죽어라 일만 하며 월급 다 가져다주고 살았는데, 직장에서 나오니 이제 아침저녁 밥 얻어먹는 것도 아내에게 눈치가 보인다.” 하루 세 끼를 모두 집에서 먹는 퇴직 남성들이 ‘삼식이 남편’이라 불리는 세태를 부정할 수 없다. 변화한 세상이 만든 서글픈 풍경. 이런 현실을 감안한 것일까? 오랜 세월을 함께 산 부부가 나이 들어 헤어지는 ‘황혼 이혼’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혼을 원하는 건 대부분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최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내놓은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상담소를 찾은 5065명(여성 4054명·남성 1011명) 중 60대 이상 여성의 비율은 22%로 2004년 6.2%에 비해 3배가 늘었고, 같은 기간 60대 이상 남성의 상담 비율은 8.4%에서 43.6%로 5배 이상 폭증했다. 황혼 이혼을 원하는 남성이 여성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것. 이혼 상담자의 연령대도 여성은 40대가 가장 많았지만, 남성의 경우엔 60대 이상이 43.6%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심상찮은 일이다. 더 이상 아내와 살고 싶지 않다는 60대 이상 남성이 갈수록 늘어난다. 60대 이상 남성들이 이혼하려는 건 장기 별거, 성격 차이, 아내의 가출이나 폭력이 주요 이유였다. 맞고 사는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아내의 막말과 폭력을 고민하는 남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결혼을 꺼리고, 노년층은 이혼을 꿈꾸는 21세기. ‘해로하는 부부’는 이제 소설 속에서나 만나게 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12

무방수날 장담그기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장담그기는 김장 문화와 함께 한국만의 독창적 문화로 2018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고, 작년 2024년 12월 3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콩을 발효해 먹는 문화권 안에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장 제조법이기에 중국과 일본보다 먼저 등재되었다. 장담그기는 콩을 주재료로 메주를 만든 뒤 이를 발효시켜 된장과 간장 등을 만드는 전통적인 과정을 이르는 것으로, 한국 음식의 기본양념인 장을 만들고 관리·이용하는 과정의 지식과 신념·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장’은 한국인의 일상음식에 큰 비중을 차지해 왔으며, 가족 구성원이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문화가 세대 간에 전승돼 왔다는 게 등재 사유였다. 우리나라의 장 문화는 거의 1년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슬로푸드의 끝판왕이다. 초여름에 콩을 심고,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에 거두어 말린 뒤 입동 무렵에 메주를 쑨다. 콩을 불려 충분히 무르게 삶아 으깬다. 메주틀로 네모 반듯한 메주를 만들어 볏짚으로 묶어 두면 곰팡이균이 만들어지는데 겨우내 처마 끝에 매달아 바싹 말린다. 이월 좋은날을 가려 장담그기를 한다. 먼저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린 뒤 속에서 볏짚을 태워 살균소독한다. 메주를 씻어 말리고 소금물을 계량해 준비한다. 메주를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붓고, 말린 고추와, 말린 대추, 옻나무, 숯을 적당히 넣고 가늘게 자른 대나무를 항아리 안에 걸쳐 떠오르는 메주를 눌러둔다. 볕 좋은 장독대에서 두세 달이 지나면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는 장 가르기를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에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내려와 오래 묵힐수록 좋다고 했다. 몇 백년 묵은 간장을 간직한 종가도 있다고 들었다. 작년 흰머리소녀 모임, 유복혜 선생님께서 ‘장은 무방수날에 담근다.’고 하셨다. 무방수날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월의 ‘손없는 날’이었다. 귀신이 날마다 동서남북 4방위로 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코지를 하는데, 9와 0으로 끝나는 날짜에는 하늘로 가서 어디에도 없다고 믿었고 그날이 바로 ‘손없는 날’이다. 따라서 ‘손이 없는 날‘은 무슨 일을 하여도 탈이 없어 꺼리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고, 결혼, 이사, 개업 등 인간의 중요한 행사 날짜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중 특히 이월의 초아흐레와 열흘을 무방수날이라고 하는 거였다. 세시풍속사전에 의하면 특히 무방수날에 담근 장은 맛이 좋다고 했다. 지난 주말이 무방수날이었고 내 생애 첫 장담근 날이었다. 청도의 유복혜 선생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소금으로 소금물을 만들어, 잘 소독하신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붓는 참 짧은 공정만이었지만 첫 시도는 설레고 값졌다. 함께한 이솔희 선생님은 이 의미있는 행사를 유튜브에 올렸고, 같이 간 손녀는 일기에 적을 거라고 했다. 매일 햇볕을 가려 받는 유 선생님의 수고가 맛난 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석 달 뒤 장가르기를 위한 또 한 번의 청도나들이가 기대된다. 평생 여기저기서 된장을 얻어먹던 내가 어쩌면 올해부터는 된장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5-03-12

손목 통증의 원인과 효과적인 치료 방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손목 통증은 흔한 증상 중 하나이다. 손목은 사용 빈도가 높고 구조적으로 섬세하기 때문에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손목 통증의 주요 원인으로는 반복적인 사용으로 인한 과사용 증후군, 손목을 짚고 넘어지는 등의 외상, 힘줄 염증으로 발생하는 드퀘르뱅 병, 그리고 손목의 안정성을 담당하는 삼각섬유연골 복합체(TFCC) 손상 등이 있다. 이러한 원인들은 손목에 무리를 주어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며 심한 경우 손목 기능에 제한을 초래할 수 있다. 손목 통증의 치료 방법으로는 보존적 치료와 한의학적 접근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침 치료를 통해 손목 주변 경혈을 자극해 염증을 줄이고 기혈 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부항 요법으로 근육과 인대의 긴장을 풀어주고 어혈을 제거해 통증을 감소시킨다. 또한 뜸 치료는 온열 자극을 통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조직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하며, 초음파 가이딩 약침을 사용하여 손상 부위를 정밀하게 확인한 후 약침을 주입함으로써 염증 완화와 조직 재생을 유도할 수 있다. 경추와 팔꿈치 손목의 정렬을 조정하고 관절 기능을 개선하는 추나요법도 손목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보존적 치료 방법으로는 손목 사용을 줄이고 보호대를 착용하여 추가적인 손상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냉찜질과 온찜질을 적절히 활용하여 염증과 통증을 조절하고 손목을 지지하는 근육을 강화하는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재발을 예방할 수 있다. 손목 통증은 생활습관과 연관이 깊으므로 예방이 중요하며 무리한 힘을 가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거나 테이핑 요법을 활용하여 부담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의학적 치료와 함께 손목의 유연성을 높이는 운동을 병행하면 통증 완화와 재발 방지에 더욱 효과적이다. 손목 통증은 단순한 근육 피로에서부터 만성적인 염증, 인대 손상까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에는 간단한 생활습관 교정과 보존적 치료로 충분히 호전될 수 있지만 방치할 경우 만성화되거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단계로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경미하더라도 손목을 보호하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손목을 사용할 때는 꼭 중간 중간 스트레칭과 휴식을 취해주고 반복적인 손목 사용이 불가피한 직업을 가진 경우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정기적인 손목 관리 및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전반적으로 손목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올바른 자세와 적절한 휴식 근력 강화 운동을 병행하면 손목의 부담을 줄이고 통증을 예방할 수 있다. 만약 손목 통증이 지속되거나 악화된다면 한의학적 치료를 포함한 전문가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침, 부항, 뜸, 약침, 추나요법, 초음파 가이딩 약침 등 다양한 치료법을 활용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손목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손목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책이며 평소 손목 사용 습관을 점검하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2025-03-12

대릉원 뒷골목

윤명희 수필가 오가는 관광객들 사이로 황남파출소가 눈에 띈다. 예전에 놀란 가슴으로 파출소 문을 열던 기억이 뇌리를 스친다. 친구와 황리단길을 걷던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파출소에서 보호자 찾는 전화가 왔었다. 아버지가 뙤약볕 아래 종일 헤맨 것 같다고 했다. 경찰에게 파출소 위치를 물은 나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그곳으로 내달렸다. 백발노인의 지친 몸이 소파에 처져있었다. 대릉원 뒷골목에서 발견했다는 말에 의아했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는 몇 번이나 더 그 곳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러 갈 때마다 왜 연고도 없는 여기서 길을 헤매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 없었다. 오래된 그날, 속이 더부룩하다고 병원에 간 엄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엄마만 두고 우리는 집으로 왔다. 병원에 가져갈 생필품을 챙기는 내 뒤로 아버지는 안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작은 방으로 옮겼다. 울음을 삼키는 아버지 뒤로 효자손도 물병과 컵도 따라갔다. 말리는 내 손을 내치는 아버지를 바라만 보았다. 닫힌 안방은 가족사진이 대신 지키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누웠던 병원 침대마저 내 놓았다.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엄마의 흔적을 못 견뎌 했다. 아버지는 집을 버린 듯 했다. 아들의 학사모를 쓰고 웃는 엄마의 사진을 거실 벽에서 떼어 내렸다. 남은 사진들을 자식들에게 나눠주며, 엄마가 아끼느라 넣어 둔 것들을 다 가져가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집을 팔고, 당신이 누우면 세간이 다 보이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그 집은 멀리서 자식들이 와도 자고 갈 공간이 없었다. 이젠 집이 아니라 아버지만의 거처였다. 줄어든 살림만큼 아버지의 뒷모습은 작아져갔다. 경주로 이사 오던 날, 아버지를 혼자 두고 올 수 없었다. 함께 이사하자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자, 아버지는 어디에 가서 살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아버지가 부르시면 한달음에 내가 찾아 올 수 있는 거리에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낯선 곳에서도 아버지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생활하기에 불편한 일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가 찾아뵐 때마다, 겨우 얼굴만 봤을 뿐인데도 빨리 집에 가라고 등 떠미는 것 또한 변함이 없었다. 자꾸만 밖으로 도는 아버지는 집이 없는 듯 했다. 눈만 뜨면 하릴없는 사람처럼 여명의 산길을 따라 김유신 장군 묘에 올랐다. 다음날엔 첨성대를 한 바퀴 돌고, 그 다음 날에는 중앙시장을 찾아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종일 어딘가를 다니다 해거름해지면 지친 몸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집 대신 우리 집에 형제들이 모이는 날이 많았다. 즐거운 시간도 잠시, 하룻밤만 지나면 당신의 거처로 돌아가려했다. 아직 남아있는 형제들이 조금만 더 있다 가시라고 붙잡아도 막무가내였다. 자식들의 집이 당신의 집은 아니라는 것을 매번 보여주는데 은근히 화가 났다. 그 빈 마음은 우리가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얼른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버지의 팔순 생신날, 대릉원 근처에 숙소를 빌렸다. 기와지붕이 반듯한 한옥 독채에 형제들이 모였다. 건넌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안방에는 음식상이 푸짐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혼자서 집 둘레를 몇 바퀴나 돌아보았다. 나는 창 너머로 한참동안 나무 기둥을 쓰다듬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제 아버지도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몇 년 만에 황남 파출소 앞에 서 있는 나는 당신이 왜 매번 그 골목을 헤매고 다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하룻밤을 보냈던 그 집이 아버지에게는 엄마와 함께 잃어버린 옛집으로 보였나보다. 나도 쉽게 다시 찾아가지 못하는 그 집을 흐린 눈으로 찾아 다녔을 거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기억들이 날아다니는, 아버지가 찾아 헤맸던 기억의 집. 대릉원 뒷골목은 아버지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파출소 창문 너머에 낯익은 얼굴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자꾸 눈앞이 침침해 고개 숙인다.

2025-03-12

장기(長鬐) 읍성1

우암(尤菴)과 다산(茶山)이 잠시 머물렀다고 그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 영일만(迎日灣)은 저리 푸른데, 결국엔 촌구석이란 이야기지 그러나 사람의, 그리고 아주 먼 일별(一別)의, 꿍쳐놓고 싶은 공간, 지금도 유효한 지도 몰라 반성은 습관으로 반복적이었을까 역모(逆謀)는, 분노는 꿈도 꾸지 못하고 서울을 향하는 삶, 그 농밀하고 내면적인 지향(志向), 그렇게 팽개쳐진 삶 그래도 구룡포(九龍浦)와 모포(牟浦)와 하정리(河停里)의 바다는 고요하고 무심하며 여전히 생기발랄 그래서 우리는 뇌록지(磊綠地)2를 관찰하고 날물치3의 시원(始元)을 본다 외지(外地)여도 보석인 땅이 곳곳에 있더라 뭉개고 자빠져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음의 즐겁고 처절한 마스터베이션, 유림만보(儒林漫步)4한들 세상이 움직일까, 나의 용도폐기 뒤엔 세상이 있었다 비로소 고운 모래밭을 걸으며 받들어야 할 백성들의 생활을 기웃거리며 배워야 할 것들, 먹거리를 생각함 끝내 청보리밭 끝 모퉁이에서 오줌을 누고 비로소 세상과 결별하고 다시 세상과 조우(遭遇)함. 타박타박 걷고 싶으면 장기읍성에 가면 된다.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나는 나에게로부터 유배(流配)를 받았기 때문이다. 1. 경북 포항시 장기면 읍내리에 있는 고려, 조선시대의 읍성터. 2. 뇌록은 중간 명도의 탁한 녹색의 돌로 단청의 바탕칠에 사용되는 전통안료가 추출, 장기면이 국내 유일의 산출지로 인정되었다. 3. 생수암(生水岩), 바위 사이로 생수가 나오는 곳의 지명. 4. 愉를 儒로 바꾸어 보았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12

정전 예방, 주민 안전을 위한 한전의 노력

박경수 한국전력 경북본부장 한국전력공사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정전사고 예방과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아파트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변압기 설치 후 15년 이상 경과된 아파트를 대상으로 △아파트 노후도 △가격(저가 아파트 우대) △세대당 전력용량(소용량 우대) △전용면적(소형 평형 우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원 대상을 선정한다. 최근 여름철 폭염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정전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5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의 수전설비 고장 중 변압기와 저압 차단기 고장이 전체의 3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전은 2005년부터 해당 지원사업을 추진해 아파트 단지의 노후설비 교체를 지원했다. 지난해 연말 기준 경북본부 관할 아파트 중 15년이 지난 아파트는 총 246단지로 전체 아파트의 56.5%를 점유하고 있으며, 25년 이상된 아파트도 109단지에 이른다. 아파트 고객은 구내에 설치한 변압기 등의 수전설비를 아파트에서 소유·관리하고 있어, 한전에서 고장원인 파악과 정전 예방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파트 정전예방을 위해 올해 아파트 노후변압기를 교체할 경우 변압기 및 변압기부 저압차단기 자재가격의 최대 80%까지 지원할 예정이며, 특히 UVR(저전압 계전기) 위치변경시 공사비의 100%를 한전이 부담한다. 또한, 노후 변압기를 고효율 변압기로 교체할 경우 용량에 따라 최소 160만 원에서 590만 원까지 추가 지원을 제공한다. 이번 사업을 통해 아파트 노후 설비를 조기에 교체함으로써 정전 위험을 줄이고 입주민의 안전과 편의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박경수 한국전력 경북본부장

2025-03-12

(울릉기자 김두한의 시선) 6명 식사비를 1인 분으로 둔갑시켜 울릉도를 멍들게 한 일부 미디어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도의 한 식당에서 시킨 7만 원어치 백반 정식을 두고 “이게 다냐”고 항의하자, 식당주인이 “여긴 울릉도”라며 대답했다는 일부 보도가 울릉지역 바가지요금으로 비쳐져 관광지 이미지를 크게 흐리고 있다. 심지어 어느 매체는 제목을 “기가 막히네! 평생 갈일 무(無)” 를 달아 네티즌들에게 당연히 1인분 7만 원을 착각하게 했다.  관광시즌을 앞두고 있는 울릉에 치명상을 입힌 악의적 횡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논란을 촉발시킨 첫 영상에는 울릉군을 여행하며 식당에 간 에피소드가 담겼다고 했는데도 불구,  일부 네티즌들은 울릉도는 바가지요금으로 못 갈 곳으로 낙인찍었다. 또 실제 내용은 알려진 것과는 천차만별이다.  몇달 전 6명이 모 식당에 들어가 정식을 시켰고 나온 밑반찬은 어묵, 김치, 메추리알, 멸치볶음, 미역무침, 나물, 버섯볶음, 오징어 내장 등 다양했다.  가격도 인당 1만 2000원이라고 메뉴표에 분명 적혀 있었다.  식당 주인은 6명 식사 값으로 총 7만 2000원을 받았다.   이게 바가지 요금으로 둔갑됐으니 울릉군민들이나 식당 관계자들은 속이 뒤집혀질 일이다. 특히 수년전 부터 울릉도에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오징어내장을 구하기도 어려운 마당이다.  선술집에서 오징어 내장 합 접시에 2~3만원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판임에도 일부 기사의 제목은 “이게 7만 원” 항의에 식당주인은 “여기는 울릉도야.” 고 적시했다.  다행히 같은 영상에 대구에서 관광을 왔다는 A씨(50)는 댓글을 통해  “가족들과 관광 오기 전 바가지 섬이라는 말들이 많아 걱정했는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 육지보다 렌터카 가격이 오히려 저렴해 놀랐고, 소고기도 육지보다 싸고 맛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한 평도 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런 것들은 무시하고 자극적인 것만,  부풀려 공격해 대 울릉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돌을 던지는 사람을 장난삼아 던지지만, 개구리는 목숨이 달렸다는 말이 있다. 간단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울릉군은 몇 년 전에도 바가지요금과 1인분은 판매하지 않는다는 유튜브 방송 때문에 곤욕을 치른바 있다.  요즘 울릉군은 물가 관리 정책 등으로 지역 물가 안정에 힘쓰고, 관광지, 식당, 숙박, 렌터카 등 관계자들과 주민 모두에게  바가지요금에 대해 관광객들의 원성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튜버는 왜 하필이면 6개월이 지난 울릉도 관광시즌에 이 같은 내용을  올렸을까, 의문이 든다. 잘못은 당연히 지적해야하지만 허구를 구독자 널리기 위한 얄팍한 수단으로 사용하면 더욱 안 될터다. 울릉군의 대처도 한심하다. 유튜버에게만 항의할 것이 아니다. 보도 자료를 내고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물가는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싸면 왜 비싼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울릉도가 전국 유명관광지라고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수 없는 않는가. 울릉군은 물가를 잡기 위해 지원도 하고 안간힘을 쓰지만, 사건이 발생하면 대처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관광업 종사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울릉도는 관광을 갈 곳이 못 된다“고 한다면, 그래도 참야햐 하는가.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5-03-12

野 30번째 탄핵추진, 이게 정상적인 나라냐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석방 책임을 묻겠다며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을 이번 주 중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13일로 예정된 본회의에 탄핵안이 제출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회 본회의에 탄핵안이 제출되면 24∼72시간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 만약, 국회가 민주당 주도로 심 총장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 이 정부 들어 30번째 고위공직자 탄핵이 된다. 그야말로 ‘탄핵중독증’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민주당은 현재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보류하고 있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민주당은 심 총장이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에 즉시항고하지 않은 데 대해 “특혜를 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검찰이 해괴한 잔꾀로 내란 수괴를 석방해 줬다. 아마 한패라서 그럴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야5당 명의로 심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당내에선 심 총장이 자진사퇴를 거부한 만큼 탄핵 카드를 쓸 수밖에 없다는 강경론이 커지고 있는 모양이다. 심 총장은 이와 관련 “수사팀과 대검 부장회의 등 여러 의견을 종합해 적법절차의 원칙에 따라 소신껏 결정을 한 것”이라며 “탄핵은 국회의 권한인 만큼 앞으로 절차가 진행된다면 대응하겠다”고 했다. 심 총장이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항고하지 않은 것은 윤 대통령을 석방하지 않을 경우 위헌소지가 큰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판례에도 검찰의 즉시항고 규정에 대해 두 차례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탄핵은 공직자의 위법 행위와 직무 수행 능력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국회가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탄핵이라는 수단을 남용하는 것은 사법체계를 붕괴시키는 행위일 뿐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혼란도 가져온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무책임한 줄 탄핵으로 인해 국정이 마비되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2025-03-11

尹 석방후 더 심각해지는 ‘이념전쟁’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된 후 온 나라가 두 동강 난듯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임박하면서 여야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보수·진보 ‘진지전(陣地戰)’을 진두지휘하는 모양새다. 아마 두 진영 모두 세력을 최대한 결집시켜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니 정치권이 탄핵 선고에 대한 불복을 부추기고 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야의 진지전은 지난 10일 수사 기관에 대한 고발전으로 비화했다. 여당은 윤 대통령 구속 과정에서, 야당은 석방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각각 공수처장과 검찰총장을 고발했다. 앞으로 탄핵 찬반집회를 등에 업은 여야의 정쟁 수위는 매일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관저정치’도 진지전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실이 말로는 “헌법재판소 선고를 앞두고 대통령이 외부 활동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강경 보수층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내놓거나, 탄핵 반대 집회에 직접 참석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일이 생기면 가뜩이나 위험 수위로 치닫는 진지전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도가 오차 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도 진지전이 격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천507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42.7%, 민주당 41.0%로 나타났다. 차기 대선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에서도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 의견(50.4%)과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 의견(44.0%)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구·경북(정권연장 55.4%, 정권교체 36.4%)의 경우 정권 연장론이 19%포인트나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진지전이 폭동수준으로 격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보수·진보 어느 한 쪽도 헌재의 심판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반발할 게 뻔하다. 만약 탄핵이 인용돼 조기대선 정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진영 대결은 걷잡을 수 없는 단계까지 갈 것이다. 지난 6일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 유형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이념 갈등(4점 만점에 3.1점)이었다. 이 조사는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전에 이뤄졌다. 같은 조사를 지금 한다면 이념 갈등 수치는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국민 대부분이 걱정할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이 이 상태까지 이른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지금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지지세력에 편승해 내 편을 집결시키고 세를 불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런 극단적인 당리당략이 완충장치 없이 가속하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의 한국사회 통합은 요원해질 수 있다. 국가미래를 참담하게 하는 정치권의 뼈저린 각성이 요구된다.

2025-03-11

고용 창출없는 ‘주 52시간 근로제’ 완화가 답

대구상공회의소가 400여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밝힌 결과, 응답기업의 절반 이상(53.1%)이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대답을 했다. 특히 법 개정 당시 기대했던 고용창출 효과에 대해 응답기업의 66%가 신규 채용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최근에 여야간 대립을 벌이고 있는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해 산업·직종별 특성에 따른 예외 적용에 대해서는 응답기업의 76%가 찬성한다고 대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근로자의 휴식 있는 삶과 일, 생활 균형 유지를 목적으로 문재인 정부시절인 2017년 시행한 제도다. 그러나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서 기업은 기업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불만을 토로해 왔다. 일을 더해도 임금을 더 받을 수 없는가 하면 연장근로를 하지 못해 줄어든 임금을 보존하기 위해 투잡을 뛰는 근로자도 늘었다. 기업은 정해진 시간에 일을 마감해야 해 늘어난 일감은 추가로 인력을 들여 소화시켜야 했다. 대구상의의 이번 조사에서 부정적 이유로 손꼽힌 근로시간 관리 부담, 추가 인건비 부담과 실질임금 감소로 인한 근로자의 불만 등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된 지 벌써 7년이 됐다. 그러나 제도 시행의 성과보단 잘못 만들어진 법이란 평가가 훨씬 더 많다. 일각에서는 경직된 주 52시간 근무제를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반기업 정책으로 꼽는다. 최근에는 반도체 산업 부흥과 관련해 반도체 연구인력의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였지만 법 제정은 무산되고 말았다.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은 별다른 제약없이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마당에 아직 법 개정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급변하는 AI시대에 연구개발이 필요한 분야가 반도체 뿐이겠나. 조선. 자동차, 바이오 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넘친다. 지금은 경제와 민생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나. 여야는 기업 발목잡는 법부터 빨리 고쳐야 한다.

2025-03-11

결혼 필수 아니다 60%

우정구 논설위원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가수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의 일부 내용이다. 아모르 파티란 라틴어로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뜻이다. 고통과 상처, 좋고 나쁜 것을 포함하여 내 인생에 발생하는 모든 것은 운명이며, 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랑하라는 매우 심오하고 철학적인 뜻이 담긴 용어다. 독일의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말로도 설명되기도 한다.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 파티’는 또 다른 구절에서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대로 가면 돼” 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구절에 가면 세상이 정말로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나 하는 느낌이 든다. 노래 가사의 영향을 받았을까 아니면 우리 시대의 가치관이 바뀌어가서일까. 최근 인력자원관리 회사인 리쿠르트가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결혼관에 대한 조사를 해보았더니 응답자의 60%가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남녀별로 보면 남성은 49.7%가 필수가 아니라고 답한 반면 여성은 75.3%가 필수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 인식이 넓게 퍼져가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또 기업 규모에 따라서도 약간의 차이가 보였다. 대기업 근무자는 56.2%가 필수가 아니라고 답한 반면 중소기업 근무자는 그보다 높은 61.3%가 필수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급변하는 사회와 여성들의 사회진출 등 과거와 달리 결혼관이 바뀔 요인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0명 중 6명이 결혼이 필수 아니라고 한다면 결혼관의 심각한 변화 아닌가. 저출산 국가에서 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11

빈 둥지

겨우내 텅 빈 둥지를 품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다시 연둣빛 잎을 피워 올리는 3월이다. 올해는 무척 바쁜 겨울의 끝자락을 보냈다. 내 둥지를 비워내기 위해 인생의 한 챕터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분주한 봄을 맞는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거실에 앉아 짐을 쌌다. 한 가득 꺼내놓은 아이들의 흔적들이 어느새 집 안 구석구석에서 옅어졌다. 한 달 전 잘 다니던 직장을 부모와 동의 한 마디 없이 사직서를 내고 온 아들이 이직의 기회를 얻어 다시 타지로 가게 되었고,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된 딸도 독립을 하여 같은 날 남매가 둥지를 떠났다. 평생 맞벌이를 하며 아이들의 일상을 챙기며 바삐 움직였던 나는, 오늘 아침 처음으로 느긋하게 커피를 내렸다. 식탁에 마주 앉아 친구들 이야기며 진로 이야기며 깔깔대며 나누던 자리도, 현관문을 다다다다 쫓아가던 발소리도 사라졌는데 습관처럼 그 쪽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대화에 맞장구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래전,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이 날을 꿈꾸었던 것 같다. 알람소리에 잠을 깨지 않아도 되고 아침마다 서둘러 밥상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날, 숙제를 챙기고 학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느라 허둥대지 않아도 되는 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며 언젠가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조용하고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막상 그 시간이 오고 보니 익숙했던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깊은 고요로 가득 찼다. 텅 빈 방엔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을 것 같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시간 맞춰 들릴 것만 같다. 매일매일 움직이며 아이들을 챙기던 그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묶어두고 있었던 줄 몰랐다. 자유로울 줄 알았던 이 시간이 어쩐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침묵 속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둥지가 빈다는 것은 새들이 이제 자신의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임을. 그토록 바라고 응원했던 순간이 아닌가. 어미새가 언제까지나 둥지에 머물며 새끼를 품을 수는 없다. 충분히 그 시간을 준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아이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미흡한 어미새를 본다. 날아오를 준비를 시킨다고 했지만 정작 떠나보낼 준비는 내게 부족했나 보다. 아이들은 새로운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날개짓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아직도 둥지 근처를 맴돌고 있는 듯 하다. 시간이 지나면 어미새도 알려나. 둥지는 언제까지나 새를 붙잡아두는 곳이 아니라 떠날 수 있도록 힘을 길러 주는 곳이라는 걸. 아이들이 각자의 하늘을 날고 다시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나는 더이상 외로운 어미새가 아니라 따뜻한 미소로 맞이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 있겠지. 김경아 작가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던 시간과 에너지를 이제 나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오랫동안 미뤄뒀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젊은 시절 묵혀 두었던 외국어도 배우며 나를 설레게 하는 일들을 찾아볼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둥지를 만들 것이고 언젠가는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빈 둥지는 텅 비어 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채워질 순간을 기다리며 그 사이 나 자신을 채우는 시간이다. 이제는 나도 나의 날개짓을 연습하려 한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미뤄 두었던 일들, 마음 한구석에만 담아두었던 소망들을 하나씩 펼쳐본 것이다. 천천히, 꾸준히, 아이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듯 나도 내 몫을 살아가야 한다. 빈 둥지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또 다른 쉼표일 뿐이다. 아이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하루를 기다리는 대신 나를 채우며 하루를 살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나도, 아이들도 각자의 하늘을 더 넓게 날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작가

2025-03-11

‘악마의 채찍’ 아틸라 ②유럽의 지도를 바꾼 영웅의 최후

비잔티움제국 테오도시우스 2세는 아틸라가 강요했던 상거래 기준을 지키지 않았고, 훈에서 도망친 자들을 받아들이면서 아틸라를 또 한 번 자극했다. 아틸라로선 용서할 수 없었다. 447년, 제2차 발칸원정을 일으킨 아틸라는 군사를 둘로 나누어 비잔틴을 공격해 들어갔다. 소피아와 마르키아노 폴리스 등 성채를 정복하고, 도시를 약탈하면서 진군을 이어갔다. 그리스 중북부의 테살로니키를 지나 이스탄불 외곽에 군사를 주둔해 비잔티움을 포위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그때서야 자신의 성급함을 깨달았다. 급하게 정무관을 아틸라에게 보내 협상하게 했다. 아틸라는 이들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인다. 대신 ‘아나톨리아 협정’을 보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다. ‘비잔티움은 전쟁 배상금으로 금 6000리브레(약 2700kg)를 물리는 것은 물론, 매년 연공을 3배 인상하여 2100리브레(약 945kg)로 올려 바칠 것.’ 테오도시우스 2세는 경악했다. 이대로라면 비잔티움제국의 허리는 휘어질 대로 휘어져 신권마저 날아갈 판이었다. 테오도시우스는 아틸라의 암살을 계획한다. 그러나 이도 내부 배신자에 의해 실패로 끝나자 치욕적인 결과만 가져왔다. 해결책이라곤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수밖에 없었다. 아틸라가 이처럼 관대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비잔티움을 둘러싼 견고한 테오도시우스 성벽 난공불락의 요새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제국을 장악하는 황제와 신민들과의 탄탄한 결속력, 목숨을 불사할 비잔티움 군과 시민의 항전의지를 읽었다. 자신들의 군대도 얼마간 피해를 보아야 할 것은 자명했다. 아틸라는 비잔티움을 넘어 서로마로 향했다. 내분과 이민족의 침략으로 허약한 로마였다고는 하지만, 한 때 유럽을 호령했던 도시였다. 서로마는 아틸라에게 조공을 바치면서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총사령관 아에티우스가 있었고, 주변 민족들과 우호 관계를 맺으면서 용병을 충원했다. 훈족의 군사체제를 모방해 기병을 양성하면서 새로운 전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451년 헝가리에서 서쪽을 향해 진군을 시작한 것은 훈제국의 군대만이 아니었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등 훈제국의 복속민 군대가 연합해 무려 20만 대군을 형성했다. 3월 중순이 되면서 세 곳으로 나눠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로 향했다. 서로마 역시 아에티우스를 필두로 프랑크족과 서고트족 등이 합세해 연합군을 형성했다. 그들 역시 20만 대군이 조직되면서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451년 4월 초순, 결전의 날이 밝았다.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두 진영이 마주했다. 40만 명의 병사가 어우러진 싸움은 막상막하, 승패가 쉽게 나지 않았다. 아틸라도 놀랐다. 그해 6월 중순이 되면서 양 진영은 더 물러서지 않았다. 더위에 질병, 군량미마저 바닥을 보였다. 마지막 전투는 꼬박 하루 동안 계속되었다. 아비규환과 하늘을 울리는 비명이 뒤섞이고,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성,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요동쳤다. 결국 로마 아에티우스는 훈제국의 군대에 포위당해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고, 서고트 테오도리크 1세가 전사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흘러 강이 되면서 쌍방 16만 5천 명이 죽고 나서야 싸움을 멈췄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서유럽 사가들은 이 전쟁을 서로마의 대승으로 본다. 로마군대가 궤멸을 면했고, 아틸라 스스로 물러났다는 이유였다. 아틸라는 지친 몸을 이끌고 남은 병사들을 독려해 한 달 가까운 긴 여정 끝에 제국의 수도 헝가리로 돌아갔다. 아틸라가 이를 갈며 인내하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훈제국의 병사들은 사기를 되찾았다. 일 년 전의 전투를 잊지 않았다. 452년 봄이 되면서 아틸라는 정예 기병 10만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드리아해 연안 이탈리아 북부를 정복하면서 서로마 황제에 오른 호노리우스가 수도로 정한 라벤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민중을 달래기 위해 교황 레오 1세의 건의를 받아들인 황제는 사절단을 급조했다. 사절단 대표 레오 1세 교황이 아틸라를 만나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아틸라는 철군을 결심했다. 군에 질병이 돌았고, 식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제국으로 돌아온 아틸라의 다음 정복 대상은 사산조 페르시아였다. 그러나 그 꿈은 요원해졌다. 서로마원정에서 돌아온 후 일 년을 채 넘기기도 전인 453년 봄, 새로운 여인을 맞은 결혼식 날 밤에 피를 쏟으며 죽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60세였다. 신의 채찍 아틸라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 훈족이 유럽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어쩌면 유럽은 이슬람의 천국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역사를 토대로 상상을 발휘해 스토리를 꾸며보시길 바란다. 보는 방향에 따라 무척 재미있는 역사가 전개될지 누가 아는가? ‘History If!’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3-11

사람이 새로운 미래를 연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지구촌의 미래는 기술 혁신, 기후 변화, 글로벌 협력, 인구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미래 사회는 인공 지능(AI)의 시대, 과학 기술 문명이 꽃을 피우는 시대라고 한다. 가정과 직장, 사회 생활은 인공지능 로봇이 주도하는 세상이 온다고 한다. AI 의사, 법률, 통신, 과학 기술 등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결국 설계자인 사람이 하는 일이다. 지구촌의 큰 변화와 새로운 미래는 그에 맞는 인재가 필요하다. 변화되는 세상과 그에 필요한 인재상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지구촌의 미래는 AI, 로봇공학, 바이오 기술, 양자 컴퓨터 등의 발전으로 사회 문화와 산업 구조가 크게 변화 될 것이다. 스마트 폰으로 연결 된 워치가 사람의 수면 상태와 질을 분석하여 의견을 주고, AI가 방송 앵커로 뉴스를 전하게 되는 등 우리 생활 주변을 변화시키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배출되는 탄소가 오존층을 뚫으며 기후변화로 40도가 넘는 폭염과 폭우가 매년 속출하고 있다. 국내로 보면, 제주 감귤 농사가 추운 북부지방까지 옮겨 가고 열대 식물이 국내에서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한다. 고령화, 도시화로 노동력 감소 등 인구 변화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제도가 바뀌기도 한다. 원격 근무, 자동생산시스템, 생산과 품질의 모니터링 시스템화 등 산업과 경제적 구조도 변화를 가져 온다. 미래 인재의 조건은 첫째,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해결책과 창의적 설계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이다. AI, 데이터 분석, 프로그래밍 등 기본적인 기술 활용 능력이다. 셋째, 적응력과 유연성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학습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다양한 문화와 협력하는 글로벌 마인드 셋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변화의 시대에 선입견을 갖거나 내 판단이 옳다고 하는 자만은 좋은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미래 인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성공하는 기업들을 보면 인적자원관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구글(Google)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근무 환경도 창의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창의 공간도 만들어 근무 중 일정 시간 자유롭게 해주고 창의적 사고로 생산성을 높여 나간다. 테슬라는 강력한 미션 중심 기업 문화로 빠른 실행과 유연한 조직구조를 통해 신기술 개발에 앞서 간 덕에 글로벌 선두 자리를 만들었고, 인재영입프로그램을 통해 반도체 기술자를 제 때에 영입해 오늘날 삼성전자의 시대를 만들기도 했다. 성공한 기업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유연한 조직문화, 지속적인 학습 기회, 강력한 비전을 제공하며 인재를 적재 적소에 활용하는 기업이었다. 구성원 각 한사람의 생각이 창의를 이끌어 내고 미래를 만들어 간다. 지구촌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이상 기후변화와 ESG 경영, AI 시대 대응 등 창의적 사고와 유연성을 갖춘 인재가 미래를 만들어간다.

2025-03-11

옛것을 보듬는 손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저만치 다가오는 봄을 맞이라도 하듯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겨울 내내 아니, 몇 년째 방치되다시피 한 자전거의 먼지를 털어내고 정말 모처럼만에 두 바퀴를 굴렸다. 강변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로 접어들자 약간 쌀쌀한 듯했지만 아침 공기는 신선했고, 오리떼들이 가볍게 날거나 물 위에 떠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들이 활기차게 보였다. 간간이 물 흐르는 소리와 경쾌한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한 시간 여 페달을 밟다 보니 어느새 양동마을을 지나 기계면 문성리에 위치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에 당도했다.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고 봄날이 가까워지니 이쪽저쪽에서 열리는 주말의 봉사활동 횟수도 늘어나고 있다. 환호공원과 포항운하 일대의 공공시설물을 돌보거나 가꾸고, 취약계층·복지시설의 낡은 방충망 교체와 수목 전정 조경관리 활동을 비롯, 자전거 무료 수리, 해안가 비치코밍, 수중 정화, 도배 장판 교체, 전기시설 수리 등의 다양한 재능봉사활동이 봄보다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자원봉사활동은 포스코에서 십 수년 전부터 기획, 추진해온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재능봉사활동이다. 임직원들의 재능과 특기, 기술과 전문성을 발휘하여 지역사회의 취약·배려 계층과 공공에 작으나마 도움과 공익을 주는 맞춤형 밀착 봉사활동인 셈이다. 그러한 취지에서 열리게 되는 포스코 문화유산 돌봄봉사단의 당일 기계면 일대의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돌봄과 환경정화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애써 달려간 것이다. 봉사활동 참여를 구실로 자전거 타기 운동을 하며 문화재 답사와 반가운 사람들까지 만날 수 있었으니 나름 일거양득의 루틴(?)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운동에도 한몫 한 셈이니 그야말로 일석다조(一石多鳥)라 해야 할까? 어쨌든 버스를 타거나 개별 출발한 봉사단원들과 집결장소에 합류하여,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바로 옆의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과 팽나무 보호수 탐방을 시작으로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홍보영상 시청, 전시관 관람 등을 마치고는 작년 8월에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된 포항의 대표적인 정자 분옥정으로 향했다. ‘옥구슬을 뿜어낸다’는 의미의 분옥정(噴玉亭) 입구의 노후된 봉좌산 숲길 안내판을 봉사단원들과 함께 새것으로 교체하고, 정자 뒤편의 세이탄(洗耳灘) 개울 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문화재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했다. 그런 다음 파평윤씨 시조 사당 봉강재 일대를 둘러보면서 문화재 해설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세월의 더께 속엔/켜켜이 지층 같은//시간이 박제되고 사연이 스며들어//한줄기 바람결조차/소리되어 머무네//고색이 창연할수록/숨막히는 아련함//심원의 절규인가/메아리쳐 맴도는데//무연히 사그라 드는/천만 갈피 실마리” - 拙시조 ‘옛것에 대하여’전문 가까운 곳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을 비롯, 조선후기 전통가옥과 정자, 정원, 노거수, 사당 등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돌봄으로 잘 보전해야 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뜻있는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자연을 삶의 일부로 여기며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서 시문을 짓고 강학을 하며 풍류와 운치 속에 유유자적을 즐기던 선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하루였다.

2025-03-11

불씨 하나가 숲을 삼키듯 부주의가 삶을 태운다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봄은 따뜻한 햇살과 함께 찾아오지만, 그 따뜻함이 때론 위협이 되기도 한다. 건조한 공기와 강한 바람이 불길을 키우는 계절, 우리는 크고 작은 화재 소식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화목보일러와 아궁이로 인한 화재가 급증하면서 그 위험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불씨 하나가 집을 태우고, 나아가 산불로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1~2월, 포항을 포함한 전국에서 화목보일러 화재가 전년 대비 840% 증가했다. 주택과 창고, 음식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고, 특히 오후부터 저녁 시간대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부주의가 원인이 된 경우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점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화목보일러 주변에 가연성 물질을 방치하거나, 연통 청소를 소홀히 하면 작은 불씨가 큰불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특히 송진이 많은 나무나 비닐 같은 부적절한 연료를 사용하면 불길이 예측할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또한, 한꺼번에 많은 연료를 넣거나, 타고 남은 재 속 불씨가 바람에 날려 화재가 발생하는 사례도 많다. 이제는 더 이상 ‘설마 내 집에서 불이 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화목보일러나 아궁이를 사용할 때는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가연물은 보일러에서 최소 2m 이상 떨어진 곳에 보관하고, 연료 투입구는 꼭 닫아야 한다. 연통은 3개월에 한 번씩 청소하고, 지정된 연료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소화기를 가까운 곳에 비치하는 것도 기억하자. 포항북부소방서에서는 봄철 화재 예방을 위해 마을 단위 현장 지도를 강화하고 있다. 의용소방대와 함께 주택을 직접 방문해 안전 점검과 예방 지도를 하고, 마을 방송과 SNS 등을 활용해 화재 예방수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실천이다. 봄철 화재는 한순간의 부주의에서 시작된다. 작은 불씨를 가벼이 여기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가족의 안전이자 삶의 터전이다.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 모두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불씨 하나가 숲을 삼키듯, 부주의가 순식간에 삶을 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각심을 갖고 대비한다면, 올봄은 더 안전하고 평온할 것이다.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실천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화재 예방, 지금 바로 나부터 실천하자.

2025-03-10

헌재, ‘수사 적법성’ 논란에도 선고 강행하나

윤석열 대통령의 석방이 헌재의 탄핵심판에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헌법재판소는 “구속 취소와 탄핵 심판은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지만, 윤 대통령 측이 탄핵심판 과정에서의 수사적법성과 절차적 흠결을 문제 삼고 있어 이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측은 최근 절차적 하자와 관련한 헌법학자 7명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해둔 상태다. 헌법학자들은 ‘내란죄 철회 등 10가지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헌재는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을 마친 이후 매일 평의를 열고 있다. 과거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변론 종결 후 2주가 지난 이번 주 내로 선고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지만, 윤 대통령 석방으로 돌발변수가 생겨 곧바로 선고하기가 어려워졌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자, 여야 정쟁도 치열하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9일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헌재에 탄핵심판 변론재개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파면될 때까지 장외집회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석방이 탄핵심판 일정을 늦출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9일부터 매일 의원총회를 소집하고 국회에서 농성하기로 하는 등 24시간 비상대기 상태다. 법원이 윤 대통령을 석방한 결정적인 이유는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적법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헌재도 법원의 이러한 판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헌재는 법원이 문제삼은 ‘공수처의 수사기록’을 증거로 채택해 심리를 한 상태다. 헌재가 그동안 탄핵 심판을 진행하면서 여러 절차적 논란을 일으킨 점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증인 신문시간 제한, 윤 대통령의 직접 신문 금지, 선별적 증인 채택 등 재판 절차를 둘러싼 잡음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헌재는 선고에 앞서 공수처의 수사적법성과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선고 후 예상되는 사회적 혼란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2025-03-10

1억원이 높인 출산율?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큰 액수의 돈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면 곤두박질치는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관해 섣불리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가 특정 도시에서 확인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언론사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1년간 서울시와 6대 광역시 중 한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는 인구가 모두 줄었다. 그렇다면 인구나 늘어난 곳은 어딜까? 인천이다. 10일 발표된 인천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인천시의 주민등록인구는 302만7854명. 전월과 비교해 4205명이 증가한 수치다. 이는 전국 17개 시·도 중 인구 증가 1위의 기록. 뿐 아니라 인천은 작년 출생아 수 증가율도 전국 1위였다. 지난해 인천의 출생아 수는 1만5242명으로 전년보다 11.6%가 늘었다. 전국 평균 3.6%를 3배 이상 웃돈다. 그렇다면 한국 대다수의 지자체가 고민하는 ‘인구 증가’와 ‘출산율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인천시의 묘수’는 뭐였을까. 전문가들은 ‘아이플러스 1억 드림’과 ‘천원주택’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플러스 1억드림은 인천에서 태어나는 아이에게 18세까지 1억원을 지원하는 정책. 인천시 천원주택은 월 3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신혼부부 등에게 최대 6년간 주택을 임대하는 사업이다. 출산율을 높여 인구를 증가시키려는 인천의 통 큰 지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일까? 금전 지원이 출산율을 높인 사례는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 1억원 지급’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어쨌거나 어떤 방법을 사용하건 아기들의 환한 웃음을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10

섬유 메카 명성 회복 나선 대구섬유패션산업

지난해 11월 대구정책연구원이 내놓은 대구섬유패션 르네상스 전략안은 대구의 전통산업인 섬유패션의 재도약을 이끌기 위한 새로운 방향 제시란 측면에서 관련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안에 따르면 대구시는 섬유산업을 대구시가 중점 육성 중인 5대 미래신산업과 연계해 섬유테크산업으로 대전환하고, 쇠약해지는 섬유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어 옛 명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특히 대구시의 신산업 육성과 대구경북신공항 건립과 맞물려 지금 시기가 대구섬유패션산업을 혁신할 골든타임이라고 분석했다. 대구정책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대구의 섬유산업은 전체 제조업의 16.6%를 차지하고 있고, 부가가치 1조3300억 원, 종업원 수 2만6300여 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섬유패션산업의 중심성 순위를 따져보았더니 서울에 이어 대구가 전국 2위로 여전히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매년 섬유패션산업 관련 기능이 약화되고 있고 특히 노동생산성 부문에 있어 서울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분석이 됐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대구의 섬유패션산업은 취약한 부분만 잘 보완하면 인프라 등을 감안할 때 재건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충분하다는 뜻이다. 대구는 한때 아시아의 밀라노란 이름이 붙을만큼 섬유산업의 중심도시였다. 한국의 섬유산업은 대구와 경북이 중심지였으며 이곳이 주축이 돼 단일업종 사상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기도 했다. 외환위기와 중국산 저가제품의 공세로 지금은 지역의 섬유산업이 침체기를 맞고는 있으나 섬유관련 인프라는 여전히 전국 최고다. 섬유개발연구원과 다이텍연구소 등 연구기관과 섬유관련조합 등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하고 활동하고 있는 곳이 대구다. 대구시가 섬유패션산업의 침체를 극복하고 첨단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섬유패션산업 르네상스 실행 계획을 어제 발표했다. 2035년까지 총 3000억 원을 투입해 대구를 첨단 섬유패션테크산업의 글로벌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생각이다. 시의 이번 계획이 대구가 섬유산업 메카로 또다시 부상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2025-03-10

정치를 문학적으로 생각함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때로 나는 문학주의자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긴다. 나는 현실 정치보다 삶 전체 또는 근본적인 삶에 집념을 발휘하는 문학주의자의 길을 귀하게 여긴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사람의 삶은 노동하고 예술 작품을 ‘제작’하고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라 한다. 문학주의자는 예술적인 작업에 집념을 품은 자다. 이 예술의 기억 행위는 삶 전체에 걸쳐 있어 사회적 결정에 ‘집단’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정치적 결정 행위와 다르다. 그리하여, 문학이 정치에 관여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는 어느 파당에 들어 그 파당의 목소리를 ‘문학적으로’ 내는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그 단적인 사례다. 이때 문학은 문학 아닌 것, 정치적이다 못해 정치주의적인 차원의 것에 떨어질 수 있다. 해방공간 때 프롤레타리아 시인 임화는 바로 이 함정에 빠져 비극적인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당원’의 시를 썼고 그 ‘당원’의 실천에 뛰어들었고, 자신의 문학을 싸우는 ‘전선’의 문학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정치에 관여하는 다른 방식의 문학이 있다. 그 좋은 사례들로 작가 최인훈과 손창섭이 있다. 최인훈과 손창섭의 정치는 ‘파당’의 정치가 아니라 단독자의, 곧 ‘한 사람’의 ‘정치’였다. 자기 한 사람으로 ‘1인 정당’의 당원 또는 ‘1인 공화국’의 주권자가 되어 자신만의 목소리를 추구한 것이다. 최인훈은 6·25 전쟁 중 ‘원산철수’ 직전까지 북한의 회령과 원산에서 살았고,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손창섭은 평양 태생이지만 일본에 일찍 건너가 대학까지 다녔고, 한국사회를 ‘방법론적’ 외부자의 시선으로 냉연하게 관조할 수 있는 ‘거리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최인훈과 손창섭은 1950~1970년대의 한국 사회를 누구보다 비판적으로 해부해 본 작가들이었다. 그들은 좌익·우익 또는 보수와 진보라는 ‘낡디 낡은’ 진부한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자신들만의 사유능력을 발휘해 한국인들의 삶의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자 했다. 나는 그들의 문학의 길에서 작가는 얼마나 고독해야 하는가를 깨닫곤 한다. 문학은 정치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 걸까? 나는 정치를 넓게 보는 방법을 찾는다. 정치를 넓게 보는 것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우선 정치를, 그것을 둘러싼 더 넓은 맥락에서 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넓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는가? 그것은 정치를 현실에 결부된 파당 대결만의 차원에서 벗어나 보다 문명론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단지 옳고 그름, 단지 사실에 부합하거나 왜곡되어 있음을 떠나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해결해 가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를 묻고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적 투쟁에 골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흔히 권력투쟁, 계급투쟁의 차원에서 논의되곤 한다. 사회를 갈등과 반목의 차원에서 보는 이들에게 정치는 집단적 투쟁 그 자체이고 상대편을 ‘쳐서’ 내 편을 살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런 정치에서는 ‘적’이라는 관념이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 작동한다. 나는 세력과 파당의 대결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더 낫게 해 줄 수 있는 삶의 길을 찾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정치를 문학적으로 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2025-03-10

폐지 리어카, 기다리다

강길수 수필가 인도 한쪽, 가로등 지주 곁에 지날 때마다 쳐다보는 리어카가 있다. 폐지가 가득 실렸다. 바퀴엔 숫자 다이얼식 자물쇠도 잠겨있다. 한데, 리어카는 지난 겨우내 이 자리에서 기다린다. 짐 실은 모습이 다른 폐지 리어카들보다 깔끔해 처음부터 눈여겨보았다. 폐 골판지 상자를 접어 바닥에서부터 바퀴 보호대 한 뼘 정도 위까지 차곡차곡 실었다. 그 위에 접은 장난감 포장 상자 같은 작은 폐지들을 가득 담은 커다란 골판지 상자 너댓 개를 싣고, 고무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폐지들은 긴 시간 햇빛에 색이 바래고, 비도 맞고, 바람과 공기에 부대껴 제법 상했다. 이 리어카의 주인, 폐지 줍던 분은 어찌 되어 어디로 간 걸까. 아마도 지나치는 길에 한두 번은 만났을 연로한 분이리라. 지난 늦가을, 환절기에 건강에 이상이라도 온 것일까. 바퀴에 자물쇠를 채우고 간 것을 보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자리보전은 아닌 듯하다. 자녀들이 폐지수집 그만하라고 종용이라도 한 것인가. 그렇다면, 리어카가 여기 있지도 않았을 터다. 아무래도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 같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요즈음은 어찌 된 일인지, 폐짓값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가끔 집에 모아 둔 신문지를 묶어 고물상에 가져가는 날, 아내는 옛날의 반값밖에 안 된다고 구시렁거리곤 했다. 웹에서 폐짓값을 찾아보았다. 2025년 2월 전국평균 폐지 가격은 ㎏당 신문지가 135.1원, 골판지는 91.0원이었다. 이러니 실제 폐지 수집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골판지의 경우, 50원/㎏ 정도나 될까. 폐지 줍는 분이 하루에 얼마큼 줍고, 얼마를 버는지 모른다. 하루에 골판지 300㎏을 주워 50원/㎏에 판다면, 그 벌이는 1만5000원에 불과하다. 매일 같은 양을 줍는다는 보장도 없다. 리어카 주인이 올 기초연금 평균 월 34만 3000원과 폐지 주워 받는 돈으로만 산다면, 뼈 빠지게 일해도 최저생활 하기가 어려움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 저변의 절실한 민생문제의 하나다. 그 많은 지자체 의원과 국회 의원 나리들과 보좌관들, 관련 공무원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제대로 쳐다보기나 할까. 정치꾼들은 자신과 정파의 이익에 필요할 때만 ‘국민, 민생’을 들먹이고, 실제는 안중에도 없음을 국민은 다 안다. 폐지뿐만 아니라, 사람이 배출하는 폐기물은 대부분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자원 재활용은 제2, 3, 4의 광산이자 석유요, 천연자원이다. 자원 순환시스템의 활용률을 올리는 일은, 인류의 생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민생문제들을 이슈화하는 정치인의 보도를 요즈음엔 본 바가 없다, 가로등 지주 곁에서 리어카는 폐지를 가득 실은 채, 오늘도 주인을 기다리며 기도한다. 그가 돌아와 녹슬어가는 뼈대를 닦아주고, 함께 고물상에 가 무거운 짐도 내려주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몰라도, 리어카는 텔레파시로라도 소통해 주인의 행방과 처지를 알 터. 그러니 올 한겨울을 오롯이 턱 버티고 서서 주인을 기다린 게지…. 오는 봄 어느 날, 주인장이 쨍하고 나타나 자물쇠 풀면 리어카도 덩달아 하늘을 나는 기분이리라.

2025-03-10

기후변화와 반려동물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완연한 봄이 찾아오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많이 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반려동물들이 꼬리를 흔들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1500만 명을 넘어섰으며, 많은 가정에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족처럼 여기고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늘어날수록 사료 생산, 배변 처리, 용품 소비 등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려동물과 인간이 함께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식에 대해 고민할 때다. 반려동물의 주요 탄소 배출 요인은 사료와 배변 처리다. 반려동물 사료는 대부분 육류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가축 사육과 관련되어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킨다. 소고기와 닭고기 생산에서 나오는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으며, 반려동물의 소비량이 많을수록 온실가스 총 발생량 증가로 인한 환경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또한 반려동물의 배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메탄가스가 발생하며, 비닐봉투나 플라스틱 배변 패드 사용은 환경 오염을 가중시킨다. 이에 따라 친환경적인 반려동물 사료 개발, 배변 처리 방식 개선, 지속가능한 반려동물 용품 사용 등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일부 사료 회사들은 곤충 단백질을 활용한 친환경 사료를 개발하고 있으며, 천연 성분으로 만든 배변 봉투나 재사용 가능한 패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이 아직 일반 소비자들에게 널리 퍼지지 않은 만큼 더 적극적인 홍보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반려동물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곤충 단백질 기반 사료가 상용화되었고, 미국에서는 반려동물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도시도 있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재생 가능한 소재로 만든 반려동물 용품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으며, 친환경적인 반려동물 카페와 호텔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친환경 반려동물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반려동물 배변을 분해하여 퇴비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몇몇 스타트업 기업들은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한 반려동물 용품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제로 웨이스트 반려동물 양육’이 점점 인기를 끌며, 친환경 사료와 재사용 가능한 용품을 선택하는 보호자들이 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지속가능한 반려동물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친환경 반려동물 사료와 용품의 접근성을 높이고, 배변 처리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보호자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확대하고, 관련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한다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작은 실천을 할 수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반려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친환경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2025-03-10

모두 원하는데 왜 개헌 못하나

김진국 고문 난리다. 비상계엄령에, 탄핵에, 내란죄까지…. 21세기의 한복판,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왜 연이어 터졌을까. 대통령과 의회 권력의 충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포고령 1호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라고 명령했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의회 권력까지 장악하겠다는 말이다. 물론 비상계엄은 특별한 환경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를 상정한 대목이다. 법원의 일부 권한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헌법은 의회에 대해서만은 어떤 조치도 허용하지 않았다. 독재자를 막는 안전장치다. 재적 국회의원 과반수가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즉시 해제해야 한다. (헌법 제77조 제5항)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뒤집으려 했다. 윤 대통령의 불만도 이해는 간다. 이 정부 들어 민주당은 29번이나 탄핵안을 발의해 13건을 헌법재판소에 보냈다. 헌정사상 탄핵 심판이 모두 16건인데, 13건이 이 정부에서 벌어졌다. 대통령 관심 예산은 무조건 깎였다.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특검법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관심 법안, 예산안은 반복해서 밀어붙였다. 대통령이 됐지만 아무일도 못 하는 신세다. 극단적인 수단이라도 동원하고 싶었을 법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처음도 아니다. 총선을 망친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권위주의 시절의 군인 출신 대통령도 여소야대에 이렇게 대응하지는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통일방안을 만들면서 세 야당 총재가 모두 자기 의견대로 만들었다고 믿을 정도로 의견을 수렴했다. 그랬기에 아직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으로 남아 있다. 취임하고 나면 모든 국정이 대통령 책임이다. 야당이 치어리더가 되는 건 일당독재나 가능하다. 의견이 달라도 대통령이 야당을 달래고, 설득해야 한다. 양보할 건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게 정치다. 아무리 정치 초보라도 윤 대통령은 너무 정치와 담을 쌓았다. 윤 대통령만큼 야당을 무시하는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 제도보다 운용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게 정치인이다. 그래도 제대로 굴러가는 제도여야 한다. 윤 대통령 사태를 봐도 제도가 중요하다. 개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일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정당 대표 등 정치 원로들이 서울대에 모여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을 분산할 수 있도록 통치 구조를 개편할 개헌 적기”라고 입을 모았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민주화의 상징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데만 집중했다. 3김 씨와 같은 정치력이 사라지면서 피로가 누적됐다. 대통령과 의회가 극단으로 대립했다. 한쪽은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고, 다른 쪽은 ‘의회 독재’라고 한다. 권력의 분산과 효율적인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정치인도, 학자도 공감한다. 그런데도 개헌론이 제기된 지 20년이 넘도록 번번이 실패했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개헌 논의가 자신의 임기를 허비한다고 싫어한다. 임기 후반에는 차기 경쟁에서 앞선 후보가 반대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말 위기를 맞아서야 개헌을 제안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여야가 모두 개헌하자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 침묵이다. 사실상 반대다. 탄핵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핑계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개헌할 수 있다. 대통령 자리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대세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이다.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는 거북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장을 포용하는 제도다. 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하는 제도다. 한 사람, 많은 사람이 메시아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편일 때 메시아다. 반대 경우는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제도도 마찬가지다. 지역구 투표에서 50.56%를 얻은 민주당이 175석(58.3%), 45.08%를 얻은 국민의힘이 108석(36%)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이 고집한 승자독식 탓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답이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09

성실과 농담

유영희 작가 몇 년 전 작고한 고려대 황현산 교수가 ‘푸른 양’의 해를 맞아 쓴 에세이 ‘변화 없다면 푸른 양이 무슨 소용인가’를 읽었다. 이 에세이에서 황현산은, 양이 푸를 수는 없으니 ‘푸른’이라는 수식어는 농담이라고 하면서도 새로운 농담은 변화를 위한 상상력이므로 푸른 양의 해에 변화를 꼭 이루자고 다짐하고 있다. 새로운 농담은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게 기적을 일으킨다는 대목에서는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라는 행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에세이에 눈길이 간 것은 올해가 마침 푸른 뱀의 해이기 때문이다. 10간은 다섯 가지 색으로 분류되고 각각의 색은 2년씩 계속되어 작년에는 푸른 용이었던 데다 새해가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난 터라 새삼스럽다고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푸른 양은 존재하지 않아도 푸른 뱀은 세상에 실재하니, ‘푸른 뱀’을 들먹이는 것은 의미 없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푸른 뱀과 육십갑자의 푸른 뱀은 같은 것이 아니고, ‘푸른’이 가지고 있는 변화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의 상징이라는 의미에서는 푸른 양보다 허물을 벗는 푸른 뱀이 ‘푸른’의 이미지에 더 적절하다. 최근 2, 3년 간 우리 사회 중요 지표는 연속 하락하고 있다. 민생과 직결된 경제 지표를 보면 특수한 상황 세 번을 제외하고 1961년 이래 우리 경제 성장률은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항상 높았다. 그러나 2023년에는 우리가 1.4% 성장하고 세계는 2.8% 성장하는 역전이 일어난다. 2024년에는 조금 올라 2% 성장했지만 세계 경제는 3% 이상 성장했으리라고 하니 나아진 것은 아니다. 2024년 폐업한 자영업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다는 소식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내가 사는 곳은 지난 30년간 상가 공실이 전혀 없었는데 작년부터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셔터문이 내려진 상가가 여럿 보인다. 정치는 더 심각하다. 3월 3일 한국기자협회 신문에 의하면, 지난 2월 27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Democracy index 2024)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총점 순위가 작년보다 10단계 하락하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 지표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지금은 황현산이 저 에세이를 썼던 2015년보다 더 절실하게 새로운 농담이 필요한 때다. 마침 코미디언 이경규가 최근 발간한 책 제목이 ‘삶이라는 완벽한 농담’이다. 그가 45년 동안 활동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추어 시청자를 위해 새로운 농담을 꾸준히 계발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덕목으로 성실을 꼽는 인터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폭력배와 손잡는 정치인들, 부자만을 위한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더 이상 새로운 농담을 기대하기 어렵다. 푸른 뱀처럼 우리 사회가 성장과 변화를 이루려렴 지도층의 성실이 필수다. 그런 정치인을 보고 싶다.

2025-03-09

시급한 것이 연금개혁 뿐일까

김규인수필가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5~2072년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서 재정 전망이 어둡다며 경고했다. 2025년 우리나라 GDP 성장률은 2.2%에서 2072년에 0.3%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2072년 국가채무는 7,303조 6,000억 원으로 현재의 5.7배 수준으로 크게 늘어난다. 경제성장 엔진은 힘을 잃고 국가 지출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2072년에는 나랏빚이 7,303조 원, 국민연금 재정수지 적자도 2,9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연금 재정적자 규모가 60%를 넘어선다. 연금 개혁이 시급한 이유이다. 시기를 놓치면 빚은 눈덩이로 불어나고 연금 재정은 파탄 나고 더 이상 연금 지급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에 비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5년 3,591만 명에서 2072년 1,658만 명으로 크게 떨어진다. 반면에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같은 기간 1,051만 명에서 1,727만 명으로 늘어난다.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부양이 필요한 노령인구는 늘어나 국민연금 부족을 더 부추기게 된다. 정치권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아직 적절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3월 이후 대선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연금 개혁은 시급하다고 말한다. 여야는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4%로 하는 것은 합의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자동조정장치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금개혁은 10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짜야 한다. 누가 더 손해를 보거나 더 이득을 보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 된다. 공평한 법안이 만들어질 때 온 국민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모두가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표를 의식하여 선심 쓰듯이 계획을 세워서도 안 된다. 다음 세대가 빚을 떠안거나 하는 일도 생기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다수의 사람이 만족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외적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이 많은데 국내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시간을 허비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문제는 산적하고 세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모두가 발 벗고 나서는데 우리만 뒤처지는 것 같다. 미국의 영향으로 오늘도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언제까지 세상의 흐름을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만 갈 것인가. 차곡차곡 준비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에게 기회는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시기에 무엇이 있어야 할까. 정치도 협의도 양보도 없는 사회에서 이루어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사는 어려워도 데모는 계속하고 내 것만을 차지하면 그만이란 말인가. 모든 것을 잃고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단결하고 힘을 모아도 헤쳐 나갈지 걱정스러운데 자기만을 내세울 때 얻는 것이 있을까. 시급한 것이 어디 연금개혁 뿐일까. 세계의 흐름에 편승하여 살아남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살아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2025-03-09

‘尹 석방’이 헌재 탄핵심판에 어떤 변수될까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가 내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취소하라고 결정한 후, 검찰이 항고하지 않음에 따라 윤 대통령이 8일 석방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 48분쯤 구치소 정문을 걸어 나와, 지지자들을 향해 감사인사를 하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들어갔다. 검찰이 석방지휘 절차를 거치는데 ‘28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은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대검 간부들의 석방지시 결정에 반발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대검 간부들은 ‘검찰의 즉시항고’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반면, 특수본은 “구속기간을 ‘시간’으로 계산한 것은 관례에 반하는 것”이라며 즉시항고를 주장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밝혔지만, 서울중앙지법은 대통령에 대한 구속이 만기를 9시간 45분 초과한 불법 감금이라는 점과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을 포함해 수사과정의 적법성에 다툼의 여지가 많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대통령의 구속이 절차적, 실체적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앞으로 공수처의 불법수사와 서울중앙지법의 체포·구속영장 발부는 윤 대통령 형사재판 과정에서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제 관저로 복귀하면서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윤 대통령은 권한이 정지된 탓에 대통령실로부터 공식적인 보고를 받기는 어렵지만, 참고 자료를 통해 국정현안은 파악할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할 경우 바로 업무에 복귀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석방은 ‘탄핵정국’에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11일을 전후해 선고기일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원이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을 문제삼은 만큼, 헌재도 탄핵소추안의 적합성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섣부른 구속이 엄청난 국론분열을 가져온 점을 감안해, 헌재의 탄핵심판은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2025-03-09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저녁 산책길에 나섰다가 홀연 찾아든 생각이 있다. ‘전도서’ 1장 2절이다.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사노라면 누구나 몇 번씩 겪는 허망함이 불쑥 고개를 내민 것이다. 허망함의 원인은 개별자에게 고유한 것이어서, 그것을 특정 영역이나 대상으로 한정함은 불가능하다. 하기야 아까 낮에 보았던 싸움 장면도 원인 제공자 가운데 하나일 터다. 어제 내가 정리한 옆집 공터에서 두 마리 고양이와 두 자 남짓한 뱀 사이에 치열한 투쟁이 있었던 게다. 어지러운 낙엽과 작은 나뭇가지들 때문에 뱀의 형상은 잘 보이지 않았으되, 고양이가 보여주는 날카롭고 치명적인 발놀림에서 공격 대상이 뱀이라는 사실은 지극히 자명한 것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뱀에게 들이닥친 고양이의 급습은 가공(可恐)할 만한 것이었으리라.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한 채 30여 분만에 뱀은 축 늘어져 버렸다. 뱀의 사체를 장난감처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고양이는 전리품을 한껏 자랑하는 눈치였다. 경칩 지난 지 사흘 만에 불귀의 객이 된 뱀에게 불시에 찾아든 사신(死神)을 어찌하겠는가?! 지난주 개강한 대학의 교정은 활기에 넘쳤으나, 반갑게 대면한 교수의 전언(傳言)은 우울했다. 2월 한 달 새에 세 분의 집안 어른을 잃었다는 것이다. 친가와 외가의 두 삼촌과 부친을 연이어 멀리 떠나보냈으니, 그 심사를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20대 청춘들의 활기와 명랑한 태도를 노년과 상가(喪家)의 우울하고 처연한 분위기와 병립시키기 자못 어려웠다. 한쪽에는 생을 구가하는 살아남은 자들이 있고, 맞은 편에는 죽음과 대면하는 자들이 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행운과 불운, 얻음과 잃음, 건강과 질병, 웃음과 눈물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음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단맛만 추구하는 인간의 심사에는 쓰고 거친 맛은 자리하지 못한다. 단선적이고 단편적인 주관에 저 스스로 갇혀버리는 까닭이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타자들과 맺은 관계와 인연 안에서만 존립 근거를 가질 뿐이다. 이탈리아 양자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나가르주나(용수)를 인용한 대목을 보자. “사물은 자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덕분에, 다른 것의 결과로서, 다른 것과 관련하여, 다른 것의 관점에서 존재한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178쪽) 여기서 용수가 말하는 사물의 범주는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에 확대 적용할 수 있다. 인간이 애지중지하는 자아와 그를 둘러싼 인간들과 그 관계를 들여다보면 사태의 핵심이 분명해진다. ‘나’를 독자적이며 지극히 가치 있는 유일자(唯一者)로 규정할 방도가 어디 있는가?! 내가 존재하도록 원인을 제공해준 부모와 형제와 아내와 남편과 자식을 잠시 돌이켜 보시라! 허망하고 쓸쓸하며 괴로운 지경에 처해 있다면, 그 배후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을 대척적인 존재와 가치를 깊이 묵상했으면 한다. 빛과 그림자, 있음과 없음, 길고 짧음, 선과 악의 상호 보완성에 우리의 사유와 인식이 미친다면, 삶은 그렇게 허망하거나 헛되지 않을 것 같다.

2025-03-09

의대증원 원상복귀, 의대생도 복귀를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2026학년도 의과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는 학생복귀 및 의대교육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이날 발표문에서 2027년 이후 정원은 앞으로 구성될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서 정하겠다고 밝히면서 다만 “의대생들이 3월말까지 전원 복귀하지 않으면 이를 백지화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작년 2월부터 시작된 의정갈등으로 의료현장의 혼란과 환자들이 겪은 고통은 실로 다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래도 불편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의료개혁이 달성되기를 바랐던 다수 국민의 염원이 실패로 끝난 것 같아 실망과 허탈감도 없지 않다. 과거 정부에서도 몇 차례 시도했던 의료개혁이 이번에도 똑같은 전철을 밟자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대정원 동결은 의사에 대한 백기투항”이라며 “고통과 희생으로 감내한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로 국정 공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의정갈등이 계속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내년도 정원동결을 요청한 전국 의대학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도 이런 시국 상황을 반영한 결정이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의정갈등을 더 끌어봐야 서로가 실익이 없음을 인식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 2024학번과 2025학번이 한꺼번에 수업을 받아야 하는 파행적 학업과정이 또다시 되풀이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사회적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입생과 중도에 이탈한 학생들이 되돌아올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이번 결정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의료계의 요구대로 내년도 의대 정원을 동결키로 했으면 지금부터는 의료계가 이에 화답을 할 차례다. 의대생들의 3월 복귀를 서둘러 의료와 교육을 빠른 시간에 정상화시켜야 한다. 더이상 머뭇할 시간이 없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탄핵정국으로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의정갈등만이라도 해법을 찾는다면 국민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5-03-09

빵과 장미의 날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주말인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올해로 117주년 되는 기념일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기리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1만5000여 명이 참여한 시위대는 정치적 평등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임금인상 등을 요구했다. 당시 미국 여성들은 먼지가 가득한 최악의 작업 환경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을 했지만 노동조합 결성권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남녀차별 철폐와 여성 지위향상 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1977년 유엔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하게 된다. 1908년 시위에 나선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여기서 빵은 남성과 비교해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의 생존권을 의미하고 장미꽃은 참정권을 뜻하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한국은 1985년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날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일부 단체는 지역의 근로자, 시민을 대상으로 빵과 장미꽃을 나눠주는 행사를 벌인다. 빵과 장미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양성평등의 상징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권익은 경제 대국이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많이 미흡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61.4%로 OECD 38개국 중 31위다. 20년째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성별 격차 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146개국 중 94위로 조사됐다. 한국의 양성평등 문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