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선거란 모름지기 새로운 비전과 일꾼을 뽑는 축제여야 하건만, 지금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광역행정구역 통합 논의 과정을 보고 있자면, 본말(本末)이 전도됐다는 탄식을 지울 수 없다. 행정 효율화라는 시대적 과제는 간데없고, 오로지 ‘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최근 민주당은 광주·전남 통합법은 일사천리로 처리하면서, 대구·경북(TK)과 대전·충남 통합은 미뤄뒀다. 정치권 안팎에서 “민주당의 선거 전략에 따른 선택적 통합”이라는 냉소적 추측이 나오는 이유가 무언가.
선거를 앞두고 행정구역을 정비하는 것은 단체장의 관할 구역을 확정 짓는다는 점에서 적기(適期)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특정 정당의 유불리에 따라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는’ 식의 격전지 관리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이는 명백한 주권 기만이다.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국가적 대사를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광역 체제는 그야말로 ‘누더기’다.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6도, 3특별자치도라는 복잡한 구조에 광주·전남 통합특별시까지 더해지면 16개 광역단체가 무려 6가지 형태를 띠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내부의 부조화다. 통합특별시라는 이름 아래 시·군과 자치구를 한데 섞어놨지만, 이들 간의 사무와 재정 권한은 전혀 다르다. 자치구가 처리하지 못해 광역단체가 떠맡는 업무만 14개 분야 42개에 달하고, 지방세 징수 비율 역시 광역시와 도의 기준이 제각각이다. 이런 불균형과 부조화를 방치한 채 ‘특별’이라는 수식어만 붙여 즉흥적으로 조합하는 것이 과연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처사인가. 법과 제도는 간단하고, 명료해야 한다.
야당의 ‘갈라치기’ 전술을 탓하기 전에, 과연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제 역할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광주·전남 통합법이 민주당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국회 문턱을 넘는 동안, 국민의힘은 무엇을 했는가. 대구·경북(TK) 통합이라는 지상 과제를 앞에 두고도 지역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은 각자의 셈법에 빠져 중구난방 목소리만 냈다.
경북 북부 지역의 소외론과 기초의회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그런데도 당내 이견 하나 제대로 조율하지 못해 법사위에서 “내부 합의부터 먼저 해오라”라는 굴욕적인 훈수를 들은 책임은 전적으로 국민의힘에 있다. 뒤늦게 찬반 투표를 거쳐 당론을 정했다고는 하나, 이미 실기(失期)한 뒤의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천권’에는 민감하면서 지역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에는 이토록 굼뜨고 무기력해서야 되겠는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통합의 본질이 ‘미래형 행정 혁신’이 아닌 ‘예산 따내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화 시대에 맞춰 행정 조직을 슬림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근본적 처방은 뒷전이다. 선거를 앞두고 수십조 원의 지원금을 정파적 이익에 맞춰 집행하려 하고, 선거를 겨냥해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으니 답답하다.
금융기관조차 창구 업무를 줄이며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거는 시대다. 행정수요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앉아서 증명서나 떼어주던 시절이 아니다. 정보 소통이나 교통수단이 과거와 다르다. 그런데 국가 행정 체제는 낡은 외투에 ‘특별’이라는 이름의 누더기 조각만 덧대고 있다. 특정 지역에 특혜를 주고, 선거를 앞두고 예산을 쏟아부어 표를 사려는 행태는 결국 다음 세대에게 막대한 갈등 비용과 부채만 떠넘기는 꼴이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특별’이라는 예외 뒤에 숨지 말고, 대한민국 전체의 행정 지도를 단순·명료하게 재설계하는 백년대계(百年大計)에 임해야 한다. 예외 없는 원칙과 보편적 기준이야말로 껍데기만 화려한 ‘특별’보다 훨씬 강력한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꼼수와 사심이 가득한 행정 체제는 결국 큰 부작용을 낳고,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된다. 표 계산기를 던지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다시 그려야 할 때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