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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소리

등록일 2026-03-08 15:25 게재일 2026-03-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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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밤은 사물의 시간이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 나온다. 화양(華陽)에 이사 온 처음 몇몇 해에는 한밤중에도 여러 번 일어나야 했다. 아래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내려가 보면 사위가 돌연 고요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사물들의 고요한 합창이거나 독주 혹은 교향곡임을 알게 되었다. 침묵하던 사물이 느닷없이 살아나 소리를 내는 신비한 밤.

만화영화의 귀재(鬼才)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天空)의 성 라퓨타’(1986)에서 영웅적인 소년 주인공 파즈가 동굴에서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파즈에게 밤은 사물의 시간임을 일깨워준다. 고요하게 침묵하던 사물이 밤이면 제각각 소리를 내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인은 방해석(方解石)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파즈에게 들려준다.

밤에 담긴 소리의 세계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각인한 이는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한밤중에 요하(遼河)를 건너던 기억을 반추하면서 밤과 소리의 상호성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인간의 감각이 낮에는 눈으로 쏠리지만, 어둠이 장악하는 칠흑의 밤에는 귀가 감각의 중추가 된다. 그런 까닭에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밤에는 훤히 들리는 게다.  

도회의 밤에는 어둠이 깃들만한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야성(不夜城)처럼 환한 공간에서 인간의 감각기관은 퇴행 일로를 걷는다. 밤과 낮의 분별이 불명확한 21세기 20년대 아파트와 아스팔트와 대중교통은 태곳적 감촉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고작해야 층간소음으로 인한 민원 때문에 낯을 붉혀야 하는 이웃 아닌 이웃들의 갈등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밤에 들리는 게 어디 사물의 소리뿐이랴?! 우리 내부에서 요동치는 내면의 소리도 낮이 아니라, 밤 시각에 활성화된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자신의 내면과 만나지 못하는 현대인이 자기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각은 짜장 밤이기 때문이다. 창에 기대거나, 벽을 향하거나, 가부좌를 틀거나 우리는 깊은 밤에 고요히 내면을 응시한다.  

그때 들려오는 아련한 소리에 귀 기울이면, 오래전에 잊힌 얼굴과 사건과 인연이 살아 나온다. 때로는 환하게 때론 흐릿하게, 혹은 강렬한 음악과 함께, 더러는 애틋한 연가(戀歌)와 함께. 그때의 그들은 모두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잠시 생각한다. 입가에 미소가 머물기도 하고, 낮은 한숨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제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이 사라져버린 날들.

하지만 우리는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억마저 퇴색한 시점에 감상(感傷)에 젖어 정신을 흐느적거리게 방치하면 아니 된다. 모든 떠나간 것은 그리운 법이지만, 떠나간 것들이 있기에 지금과 여기의 우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립고 아쉬운 정념이 우리를 휘감고 돈다 해도 이젠 어쩔 도리없이 고개 흔들어야 한다. 오지 않은 날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찻잔이 달그락거리고, 기둥 모퉁이가 쩍, 소리 내며 갈라지고, 냉장고가 윙, 하며 갑자기 돌기 시작하고, 보일러가 힘차게 돌아가는 밤이다. 겨울밤이 사물의 소리와 함께 시나브로 작별하려 한다. 화사한 봄날 사물은 어떤 소리를 우리에게 보낼 것인지, 궁금한 아침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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