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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지아와 군맹무상(群盲撫象)

어떤 대상을 제대로 알고자 하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절실하다. 제한된 경험과 불충분한 시간은 대상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가져오기 쉽다. 이런 이유로 ‘수박 겉핥기’라든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경구가 나온 것이다. 후자는 불가(佛家)의 경전인 ‘열반경’에서 유래하는데, 좁은 식견과 안목 없이 대상을 주관적으로 잘못 판단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카프카스산맥 남부에 자리한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로 남한 면적의 63% 정도다. 인구는 370만 정도니까 부산과 구미의 인구를 합한 규모다. 오랜 세월 정교(正敎)를 신봉해온 정통 기독교 국가로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나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4박 5일 체류했다. 125만 인구의 트빌리시에는 곳곳에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고, 버스 카드로도 탈 수 있다. 조지아가 본디 산악국가인 까닭에 조금만 올라가도 시내 전경(全景)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손자를 안고 나온 중년 여인네가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풍경을 보노라니 우리 어머니들의 예전 모습이 겹쳐져 마음이 적잖게 애잔했다. 트빌리시에서 북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작은 도시 므츠헤타(Mtskheta)를 택시로 찾아간다. 12살에 운전을 배워 33년째 차를 몰고 다닌다는 45세 운전사와 김 이사가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왕복 80라리로 다녀오기로 했지만, 멀리 산 정상에 솟아있는 즈바리 수도원에 마음이 가기로 50라리를 더 주고 방문을 결정한다.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이 아름답게 만나는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서 잠시 묵상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서기 337년에 기독교를 공인할 정도로 조지아 정교회는 그 역사가 남달리 깊다. 즈바리 수도원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차도로 이어진 종점에 자리한다. 저 높은 곳까지 도달해야 했을 그들의 돈독한 신앙심을 새삼 돌이킨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신은 어느 편이냐, 하는 김 이사 질문에 택시 기사가 잠시 난감한 얼굴이다. 하되, 조지아 정부와 정치인들은 러시아 편이지만, 일반 국민은 우크라이나 편이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디서나 강자는 강자의 편에, 약자는 약자의 편에 서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 공자는 이것을 일컬어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 했다. 트빌리시 시내 곳곳에 마련된 수많은 동상은 조지아를 빛낸 시인과 문사(文士) 혹은 화가를 기리는 것이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동상으로 제 나라의 영웅들을 기념하는 습속을 이어왔고, 한때는 그루지야로 불린 조지아 역시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럴진대, 우리는 이런 문화에 이질적이며, 시인과 묵객(墨客)을 위한 동상 건립은 여전히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주인 없는 수많은 개가 길거리에서 낮잠을 자고, 택시들이 곡예(曲藝) 하듯 미끄러지지만, 교통질서가 유지되는 트빌리시. 서둘지 않는 시민들의 발걸음과 대학생들의 여유로운 미소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환하게 열려있다는 인상을 받고 능소화 붉게 피어있는 조지아를 떠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9-28

시그나기를 아시나요?!

귀국을 하루 앞둔 8월 27일 오전 8시 20분 나와 김 이사는 호텔 로비에서 김 영사 가족과 대면한다. 오늘은 트빌리시에서 남동쪽으로 113km 떨어진 유서 깊은 도시 시그나기(Signagi)를 찾아가는 날이다. 어젯밤 늦도록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다 함께 뜻깊은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가 소형 버스를 이용한 시그나기 왕복 여행이었다. 9시에 불콰한 얼굴의 안내자와 함께 시그나기 여정이 시작된다. 환한 얼굴에 유창하게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안내자는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쉬지 않는 끈기를 선물한다. 도중에 포도주와 차차 그리고 코냑을 시음하기도 했지만, 내게 인상적인 장소는 빵 굽는 곳이다. 노년을 바라보는 아낙이 바게트 크기의 빵을 굽고 그것을 500원 정도의 가격에 파는 것이다. 식료품 가격이 안정돼있는 나라는 정치가 엉망이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조지아는 카프카스산맥 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산악 국가지만, 곳곳에 드넓은 평원이 자리한다. 그리하여 포도를 비롯한 각종 과일과 밀 생산이 제법 풍족하다. 목축과 그에 따른 육류 가공이 충실하여 국민의 식생활이 어렵지 않다. 서너 시간을 거쳐 마침내 시그나기에 도착한다. 시그나기는 ‘백만 송이 장미’의 주인공 니코 피로스마니 (1862-1918) 덕분에 우리에게 기억되는 도시다. 가난뱅이 화가 피로스마니는 프랑스에서 온 어여쁜 여배우에게 반해서 수많은 장미를 바쳤다는 일화가 아직도 전해진다. 러시아 여가수 알라 푸가초바(1949-)가 1982년에 ‘백만 송이 장미’를 불러 크게 유행한다. 나는 피로스마니를 이미 모스크바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것도 22년 전에, 그리고 얼마 전에 말이다. 모스크바 문화원의 박 원장 가족과 삼성 지사장으로 일하는 99학번 졸업생 병창과 어울려 피로스마니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다. 오래된 피로스마니 식당은 고색창연했고,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다녀간 곳으로 예전 명맥을 근근이 잇고 있었다. 그런 내력이 있는 도시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시그나기는 오다가다 만난 여행객들이 쉽게 결혼할 수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24시간 결혼이 가능한 교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시그나기는 튀르키예 말로 ‘피난처’를 뜻하는 ‘시기나크(siginak)’에서 이름이 만들어졌다는데, 사랑의 도시란 수식어와 어긋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시그나기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크고 작은 노점이 성업한다. 조지아 국기가 들어간 초록색 모자와 자그마한 양탄자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양탄자와 모자를 산다. 김 영사 가족과 김 이사가 나의 구매에 찬동을 표해 주었기로 힘이 솟는다. 얼마 뒤에 우리 일행은 1,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보드베 수도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텔라비를 경유하는 귀로는 생각보다 멀고 지루했다. 하지만 평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의 거대한 십자가 아래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김 이사 사진을 찍으면서 뭉클한 느낌이 찾아든다. 삶은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만한 것이라는 자명한 명제가 뇌리를 스친 까닭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9-21

신산한 귀로의 상념

언젠가 고교 동창이 ‘주역’에 나오는 기막힌 구절로 나를 감동케 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무평불피(无平不陂) 무왕불복(无往不復)’ 여덟 글자였다. 언덕배기 없는 평지는 없으며,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세상 살면서 만나는 길흉화복은 어디나 있으며, 인과율로 작동하는 인간관계 역시 일방통행은 없다는 의미다. 어떤 방향으로 길을 시작했다면, 되돌아오거나 혹은 그 길로 끝까지 가면 출발 지점과 만나게 된다. 사람은 대개 전자(前者)를 택한다. 열차표든 비행기표든 우리는 편도가 아닌 왕복으로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런 연유로 출발지는 종착지가 되는 것이다. 스무 살 남짓했던 윤동주 시인이 “시(始)는 종(終)이요, 종은 시”라고 썼던 데에는 까닭이 있는 셈이다. 현지 시각 8월 29일 새벽 3시 반에 숙소에서 일어난다. 4시에 호텔 로비에서 조지아의 김 영사를 만나기로 한 때문이다. 그가 예약한 택시를 타고 4시 20분 무렵 트빌리시 공항에 도착한다. 적잖은 승객들이 ‘아지무트’ 항공사의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려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탑승객 통로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김 영사는 자리를 지킨다. “영사 업무 수행 중입니다!” 6시 40분 트빌리시를 이륙한 비행기는 러시아 시각 오전 9시 40분에 모스크바 브누코보 비행장에 안착한다. 여기서 다시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것은 모스크바의 관문(關門) 격인 세르메치예보 공항을 거쳐 입국하던 때의 스산한 경험 때문이다. 나와 동행한 89학번 김 이사가 여권 검색대원에게 억류되어 1시간 40분 동안 하릴없이 붙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하는 러시아는 불의하고 무도한 지난 정권의 미국 일변도 외교에 단단히 분노한 듯 보인다. 우리처럼 나이 지긋한 여행객을 아무 이유 없이 붙잡아두기 때문이다. 심지어 러시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직원의 동생 가족도 2시간 남짓 억류되는 일마저 일어나는 현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새로 출범한 국민 주권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일 터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몰려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으로 북새통인 브누코보 공항에서 2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마침내 검색대를 통과한다. 공항에는 92 졸업생인 남 사장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의 승용차 편으로 한국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그가 모스크바에서 겪은 여러 애환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22년 넘게 모스크바에서 현지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한식당에는 모스크바 문화원의 박 원장이 기다리고 있다. 그의 제안에 따라 내장탕(內臟湯)을 주문한다. 벌써 보름 가까이 매콤하고 얼큰한 맛과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나의 맹맹한 내장 속으로 붉은 색깔의 칼칼한 내장탕 국물이 밥과 함께 넘어가자 비로소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 곧 귀국이구나!’ 하는 따사로운 심사가 나를 찾아든다. 모스크바 시각 밤 8시 35분에 이륙한 에어 차이나 비행기가 8월 30일 오전 8시 북경에 도착한다. 거기서 다시 997km를 날아서 서울 시각 오후 1시에 김포 공항에 이른다. 빠른 입국심사를 거쳐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안착한 것이다. 역시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최고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9-14

여로(旅路)의 끝

세상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생성과 소멸에 내재한 숙명 같은 것이다.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자연적인 대상이든 인위적인 존재든, 크든 작든,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자리한다. 안톤 체호프는 단편소설 ‘사랑에 관하여’에서 “세상에서 가장 적절하게 끝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쓴다. 최고로 적당한 시점에 세상일이 끝난다는 주장이다. 13박 14일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지 일주일이 흘러간다. 시차 적응도 문제려니와 언어로 형언하기 어려운 지나친 더위와 습기로 육신의 정기(精氣)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다. 어느새 찾아온 노화(老化)의 위력을 절감하기도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솟구치는 아련한 우수(憂愁)가 일상의 순조로운 운용을 막아선다. 어쩌면 이것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유품인지도 모른다. 여정을 시작하면서 나는 휴대전화에 내장된 메모 기능을 활용하기로 작심한다. 그것의 대체재로 두툼한 필기용 공책을 가져갔는데, 무겁고도 쓸모없는 공책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지나친 준비는 때로 과도한 피로를 수반한다. 어느 때는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혹은 다음 날이나 그다음 날에 미진한 내용을 휴대전화에 기록하고, 사진을 동봉하기도 했다. 이번에 실현한 여행은 사실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북대 노문학과 졸업생들의 유쾌한 성화(?)가 사건의 발단이다. 모스크바 한국문화원 원장으로 재직하는 94학번 졸업생은 청도 이서 출신 촌놈이다. 그는 틈나는 대로 내게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여행을 권하곤 했다. 연극과 오페라, 발레와 함께하는 문화 기행을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그가 잠시 들른 청도 이서의 허름한 식당에서 광복 80주년 기념행사를 설명한다. 모스크바가 아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구현하는 의미심장한 행사의 주빈(主賓)으로 나를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89 졸업생의 현황 파악에 따르면, 경색(梗塞)된 한러 관계 때문에 러시아 직항은 없었다. 그런 연유로 블라디보스토크 일정은 날려 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일단 발화(發話)된 여행 기획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짧지 않은 여정으로 실현되기에 이른다. 벌써 일주일 전에 종결된 일정의 후유증이 아직도 나의 몸과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그 사이에 있은 두 차례의 학부 강의가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작년부터 시작한 대중 강연을 어떤 양상으로 마쳤는지도 알쏭달쏭할 지경이다. 저녁놀이 내릴 무렵이면 휴대전화기를 들고 허위단심 들길로 나서서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산과 들과 내 마음을 사진기에 담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상념은 날개를 타고 모스크바로 페테르부르크로 트빌리시로 소리 없이 날아가곤 하는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함께했던 사람들과 풍광, 술과 음식 그리고 사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나서 부드럽게 나를 감싼다. 이번 여정을 역순(逆順)으로 기록함으로써 기억을 환기하고자 한다. 기록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인간과 사건과 인연일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벌써 정신 차리고 치열한 일상의 모퉁이로 귀환했을 터다. 삶은 때로 순서가 무용(無用)할 수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9-07

두려워하지 말라!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사람은 딱 한 번 살다 간다. 이것은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필연적인 공통 운명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숱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여러 차례 경험했거나, 안정적이고 익숙한 상황이라면 비슷한 실패와 좌절과 만나지 않을 터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런 특혜나 행운을 거머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아주 젊었던 시절 나는 학생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던 모양이다. 이번 여름에 오랜만에 만나게 된 졸업생들이 학창 시절 나한테 들었던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인생살이에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런저런 실망과 실패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 말이 적잖은 위로가 되어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들의 전언에 귀 기울이다가 당시 정황이 떠올라 잠시 뭉클했다. 인생도 학문도 깊지 못한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어느 날 문득 교수가 되고 보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세상과 인간, 우주와 자연, 문학과 예술에 얕은 지식과 재주만 가지고 있던 터여서 감당이 불감당이던 시절. 그리하여 내게 닥친 시련과 고난을 어찌할 바 몰랐던 시절의 치기(稚氣)가 떠오른 게다. 천방지축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면서 전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았던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어리석은 자화상에 새삼 낯이 뜨거워진 것이다. 내가 그 시절 ‘두려워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은 실상 나한테 던진 말이었을 공산(公算)이 크다. 물어볼 사람도 조언을 청할 사람도 하나 없는 천애고아(天涯孤兒) 같은 처지에서 실상 자기를 위로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항용 내뱉는 모든 말의 첫 번째 수신자는 우리 자신이다. 나의 입에서 발화(發話)되는 말을 가장 먼저 내가 듣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지하게 혹은 서둘러서 상대방에게 던지는 말은 거의 예외 없이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터를 잡고 있거나, 잠재의식 근저(根底)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평소에 그나 그 여자가 무슨 말을 자주 하는지 경청해 보면 그나 그 여자의 관심사를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했다면, 분명 당시에 나는 두려워하고 있던 사정이나 사람, 혹은 헤쳐 나가기 어려운 지경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자기를 위로하고자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복잡다단하고 막연하며 어쩔 줄 모른 채 20대와 30대를 살아가야 했던 청춘들이 그 말에서 위로를 찾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가장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지경의 젊은 시절을 통과하는 방편의 하나로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경구를 골랐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 역시 마음이 푸근해지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어언 50줄에 접어들어 귀밑머리가 조금씩 하얘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따스해지는 것이다. 그들과 울고 웃으며 함께 건너온 세월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적신다. 이젠 동료나 친구처럼 여겨지는 그들과 함께할 앞날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화사한 아침나절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31

‘시절 인연’에 대하여

살면서 문득 돌이키는 한 가지가 시절 인연이다. 시절 인연은 불교의 업설(業說)과 인과응보설에 따른 것으로, 사물과 관계는 특정한 시공간 환경이 만들어져야 일어남을 뜻한다. 하필 그런 때와 장소에서 그 사람과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시절 인연이다. 정해진 장소와 시기에 누군가와 운명처럼 인연을 맺게 되는 근본 동인이 시절 인연인 셈이다. 시절 인연의 근간으로 작동하는 것이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라는 업설이다. 전생과 현생에서 내가 지은 업이 선과 악으로 나뉘면서 그것의 결과로 작용하는 것이 인연이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적-사회적 환경에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에게는 좋은 인연이 찾아오고, 그 반대의 경우엔 나쁜 인연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업설을 달리 말하면, 인과응보설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할 수 있다. 인과응보는 우리의 행위에 담긴 선과 악이 그 결과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자연물을 포함한 타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언젠가 명백한 결과를 잉태하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사자성어도 인과응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맺는 인연의 배후에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필연의 불문율(不文律)이 작동한다. 오늘의 행복과 고뇌의 근저에는 그에 합당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 불가(佛家)의 해석이다. 나이 들수록 얼굴이 환하고 걸음걸이가 반듯하며 언어에 품격이 넘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되는 사람도 적잖다. 그가 지은 현업(現業)이나 지난날의 업장(業障) 때문이다. 루소는 1762년 출간한 ‘에밀’에서 인간이 당면하는 괴로움의 두 가지 근원을 밝힌다. 그 하나는 육체적 고통이고, 그 둘은 양심의 가책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숱한 질환이 불러오는 육신의 고통과 정신적 통증을 유발하는 후회의 상념이 인간을 촘촘하게 옭아맨다는 얘기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1869)에서 이것을 질병과 양심의 가책으로 변용하여 표현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육체적 고통의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는 우리 자신일 경우가 많다. 우리의 생활 습관이 장시간 축적된 결과가 만성적인 고질병이나 급성질환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번민과 고뇌의 낮과 밤을 불러오는 양심의 가책도 알게 모르게 우리가 저지르는 파괴적인 악행과 폭언에 근거한다. 모든 것의 원인은 결국 ‘나 자신’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나 역시 수많은 인간적인 결함과 실수를 저질렀다. 누군가는 나의 폭력적인 언사와 행위로 인해 분명 괴로웠을 것이다. 그때그때 사과하면서 살아왔지만, 성에 차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윤동주 시인처럼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지 못한 인간이다. 그것이 오늘날 내가 경험하는 쓰라린 양심의 가책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경이로움으로 전율한다. 정말 대단한 인생 행로를 걸어왔구나, 하는 찬탄의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 줄이고자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창밖에 매미가 맹렬하게 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24

‘광복 80주년’을 맞으며

찌는 듯한 무더위와 날 선 칼날처럼 쏟아지는 폭우가 반복되는 대단한 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장마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다. 이런 여름이 앞으로도 계속되고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형편이다. 살아있는 거대 유기체 지구가 내지르는 고통의 소리를 더욱 확대하는 최악의 생명체가 인류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하기 어렵다. 2025년 8월 15일 아침도 매우 무덥고 습하다. 하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태극기를 들고 나가 대문에 게양한다. 산들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태극기가 산뜻한 얼굴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나는 태극기 게양에 인색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와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을 기억하면서 아픈 마음의 조기(弔旗)를 다는 것에 한정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금요일 오전 빛나는 태양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내걸린 태극기는 얼마나 아름답고 당당한가?! 국기에 담긴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과 가슴 아픈 날을 온 국민이 함께 돌아보고 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소중한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 운명체의 구성원이란 명징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에는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과 슬픔과 절망으로 점철된 사건이 훨씬 많았다. 해마다 4월과 5월이면 교정을 물들이던 최루탄의 하얀 비말(飛沫)과 눈물로 범벅된 선후배들의 얼굴이 오늘도 삼삼하게 떠오른다. 유난히 행복하고 건강해야 할 20대의 10년 세월을 한숨과 탄식, 절망과 우울로 보내야 했던 세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이런 정황은 최근 몇 년 동안 달라진다.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한국 문화의 힘이 바탕이 되어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와 춤, 드라마와 노래에서 시작된 한국 문화의 정점을 찍은 것은 2024년 12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진정 축하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대 사변(事變)이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언제부턴가 나는 ‘국뽕’에 취하기 시작했다. 나이 서른에 서독일로 유학 나갔다가 경험한 쓰라린 통증이 시나브로 해소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명시적이고 암묵적인 혐오와 멸시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셈이다. 무엇인가 많이 부족하고, 창피하고, 당당하지 못한 한국 사회가 어느 날 문득 선진 사회로 진입했다는 뿌듯한 감동! 나의 ‘국뽕’을 완전히 날려버린 참혹한 비상계엄과 엄중한 내란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면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80주년 광복절을 맞이하고 있다. 내란 세력의 근본적이고 조속한 척결과 건강하고 행복한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국민의 열망이 합쳐지고 있다. 하나둘씩 밝혀지는 계엄과 내란의 본질을 확인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생각한다. 이승만의 부당한 ‘반민특위’ 해체로 흐려진 민족정기를 이참에 완벽하게 다시 세움으로써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의 미래를 광명으로 빛나게 해야 할 일이다. 이 땅에 더는 계엄과 내란이 없는, 자유-평등-형제애가 넘치는 대한민국 건설이 광복 80주년의 가슴 벅찬 교훈일 것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17

산업재해 없는 나라

길을 걷다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수가 있다. 수많은 개미가 사람들의 발밑을 태평하게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은 운동화나 구두가 언제 생명을 앗아갈지 모를 판국인데 개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간다. 이런 일은 어제도 한 달 전에도 10년 전에도 일어났으리라. 어떻게 개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유유자적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일까?! 개미를 들여다보다 문득 인간의 생명과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만일 우리 머리 위로 거대한 공룡 무리나 매머드 코끼리가 지나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혹은 사악한 악마나 잔인한 운명의 소용돌이가 우리를 덮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고 싶다. 개미와 인간, 인간과 초자연적이고 숙명적인 존재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것이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인간은 문명을 일구었고, 그 결과 자연과 대립하는 담장을 만들었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담장 안의 안온한 사회와 담장 밖의 황막한 자연이 구별되기 시작한다. 자연에서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 법칙이 진행되었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유소년과 노인 그리고 병자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와 실천방안이 마련되기 시작한다. 산업혁명과 궤를 함께한 19세기의 악랄하고 병리적인 자본주의와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들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코난 도일(1859-1930)의 추리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런던의 끔찍한 스모그와 그 속에 방치된 시민들의 일상은 당대의 가혹한 사회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도록 한다. 최소한의 치안과 국방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보장한 사회·경제정책에 따른 폐해를 사람들은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최우선에 두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국가가 나타난다. 이것은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국민 개개인이 돈과 권력을 위한 일회용 소모품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대형사고의 그늘에 자리한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기억만이 또 다른 참사를 예방하는 토대로 작용한다. 대형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좀먹는 것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다. 해마다 반복되는 산재를 예방하는 것이 중차대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최근 3년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2년 2223명, 2023년 2016명, 2024년 2098명이다.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하루 평균 5~6명의 귀한 생명이 노동 현장에서 덧없이 스러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 주권 정부’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를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참 좋은 일이다. 빨리빨리 문화와 안전 불감증을 산재 원인으로 보았던 언론도 사태의 핵심을 치밀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볼 때다. 광고 수주를 위해 재벌과 대기업 고용주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노동자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깊이 있는 접근과 인간적인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10

폭염(暴炎)과 자연

날마다 이어지는 폭염경보가 언제 수그러질지 궁금한 시점이다. 내가 경험한 가장 극심한 더위는 1994년 7월 21일 낮 최고기온 39.4도를 기록한 대구에서다. 그해 대구의 7월 평균기온은 30.2도로 우리나라 역대 최고기온으로 기록돼 있다. 가구마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았기로 한밤중에 잠을 깨는 것이 시민들의 다반사(茶飯事)였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우리가 겪고 있는 폭염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40도를 넘는 지역이 날마다 속출하고 있다. 일본 중부지역의 효고현과 교토부 그리고 오카야마현 같은 지역에서는 40도를 넘어서는 고온이 기록되고 있다 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같은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이 일상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낮에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저녁 어스름 무렵 산책을 하노라면 경이로운 장면에 걸음이 절로 멈춰지곤 한다. 불같은 땡볕을 자양분 삼아 날마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로 왕성하게 성장해나가는 초목이 그 주인공이다. 한두 달 전에 모내기한 논을 진초록색으로 장식하는 벼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현저하다. 어제와 그제 오늘이 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는 학(鶴)과 왜가리를 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벼가 어른 허벅지 높이까지 자란 탓에 그들이 즐겨 먹는 개구리며 미꾸라지, 붕어 같은 먹잇감을 구하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이제 녀석들은 무릎 높이까지 낮아진 청도천 인근에서 잠행하고 있다. 거의 삼 미터 높이까지 자라난 달맞이꽃은 마치 관목처럼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며 거리를 수호한다. 이따금 만나는 주황색 능소화(凌霄花)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계절이란 표정이 역력하다. 한낮의 살인적인 열기를 무색하게 하면서 능소화는 지상으로 천상으로 세력을 확장한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에서 심었다는 능소화의 기상과 인내를 보면서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지독한 혹서(酷暑)와 혹한(酷寒)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선사하는 자연이 놀랍기만 하다. 한여름 폭염과 폭우 그리고 태풍을 뚫고 풀과 나무는 생장을 거듭한다. 젊은 시절 내가 여름을 가장 좋아했던 까닭도 거기 있었다. 여름은 약한 것은 모질게 죽여버리고, 강한 것은 지극하게 살려낸다. 노자는 이것을 일컬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천지자연은 인하지 않아서 만물을 종이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도덕경' 5장)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자연과 인간이 다른 점은 약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인간은 아무리 모질어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와 실천궁행을 근본이념으로 삼는다. 가족과 사회를 대행하는 강력한 조직으로 근대국가가 등장한 이후 이런 상황은 날로 개선돼 가고 있다. 자연도태와 문명사회의 이율배반적인 공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자연의 폭력적인 양상을 가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가혹한 역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망각하지 말아야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03

이런 제안 어떻습니까?!

퇴임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대구에 나간다. 경북대 인문대학 퇴임 교수들을 주축으로 ‘인문 세상’이란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 세상’은 ‘법인으로 보는 단체’로 설립되어 인문학의 확산과 보급을 목표로 1년 정도 연륜을 지닌다. 월 1회 이사회에 나가서 ‘인문 세상’의 현황과 우리가 견디는 일상과 세상사를 화제로 두어 시간 환담한다. 지난번 이사회에서 감사를 맡은 분이 솔깃한 제안을 했기로 독자 제현의 고견을 청하고자 한다. 그분은 한국 사회에 넘쳐나는 퇴직 고급 인력의 활용방안을 고민해보자고 운을 뗐다. 해마다 교직을 떠나는 초중등 교사들과 대학교수들 숫자가 상당할 것인데, 그들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문제 제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를 잠시 돌이켜보았다. 나는 퇴임 이후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단에 서고 있다. 4학기 가운데 3학기 동안 교양 교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강사료는 둘째치고 삶의 규칙성과 활력이 이어지고 있기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여유 시간이 늘어난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수업을 준비한다. 열렬하되 여유롭게, 단단하되 유연하게 학생들을 대하는 기쁨이 자못 크다. 작년 2월 18일부터 청도와 대구 시민들을 대상으로 3학기째 주 1회 무료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지식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리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첫 번째 주제는 ‘문명과 인간’으로 고대문명의 발생에서 시작하여 21세기와 4차 산업혁명에 이르는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 강의는 작년 10월 하순에 종료되었다. ‘문명과 인간’ 강의에 이어 공자의 ‘논어’를 원문으로 읽고 있는데, 지금까지 네 번째 장(章)인 ‘이인편(里仁篇)’을 마무리했다. 강연 시작할 당시에는 적당한 공간이 없어서 청도에 자리한 카페에서 강의를 진행했는데, 작년 말부터 ‘청도 도서관’의 도움으로 동아리방을 강의실로 활용하고 있다. 세상에는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여기 더해 경북대 인문 학술원에서 행하는 시민 인문학 프로그램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그러나 다수 퇴임 교수들은 등산이나 도서관 혹은 취미생활로 차고 넘치는 시간을 축내고 있다. 아울러 그들이 가진 고도의 전문지식도 시나브로 사장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감사의 제안이 솔깃하게 다가온 게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가 발전된 나라의 복된 시민으로 살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회가 없음은 애석한 노릇이다.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이나 혹은 무상으로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사회 구성원들과 공유한다면 매우 유익하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지식인 양성을 위해 가족과 사회, 국가가 기울인 노력을 공염불로 만드는 것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때마침 새로 출범한 ‘국민 주권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기획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참에 녹슬지 않은 지식과 혜안, 미래기획과 통찰을 지닌 퇴임 교수들의 활용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보는 것도 우리 사회를 위한 긍정적인 방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27

고(故) 안철택 교수 영전에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이란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 따라 사라진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인연이 있으면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오는 일도, 세상과 작별하는 일도 모두 인연의 생겨남과 사라짐에 달려있다는 말이니 새삼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7월 6일 한낮의 땡볕이 내리비치는 순천만 국가정원을 허위허위 걷다가 숨이 턱에 차는 느낌과 만난다. ‘인문 여행’이란 이름을 가진 전남대-경북대 교수들이 오랜만에 순천에서 만난 것이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장 순천(順天)의 대표적인 명소 국가정원을 걷는 것은 고역이었으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었다. 그리고 여수로 옮긴 저녁 자리에서 가슴 서늘한 전화가 불쑥 나를 찾는다. 아끼던 대학 후배 교수가 세상을 등졌다는 비보(悲報)였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경북대 교수들에게 안타까운 상황을 말한다. 일순 아연실색하는 동료들의 표정이 어둡다. 지난 4월 초부터 몸과 마음의 고통을 호소했던 후배 교수의 부음에 망연자실한 얼굴이 역력하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봄 연구실에서다. 전화 통화로 미리 통성명은 했던 터였고, 따라서 낯설지 않은 대면이었다. 더욱이 그는 마주 대하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였다. 오랜 유학 생활을 경험한 그였기로, 나는 자연스레 이런저런 분야의 서책에 관한 이야기를 그와 함께했다. 넓고도 깊은 그의 독서 편력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 후로 여러 차례 만남으로 그와 자연스레 교분을 키울 수 있었다. 특히 전태일 열사 기념관 신축 기금 모집에 열렬하게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자기에게 맡겨진 과업을 뚝심 있게 추진하는 열정과 헌신적인 활동성은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실천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용기 있는 지식인의 자세를 견지(堅持)했다. 그의 열망은 한국 사회의 공적 인식과 실천적 지평을 도이칠란트 수준까지 고양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주권자들의 앎과 실천의 영역을 더 넓고 깊게 확장-심화하는 것을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로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분단과 전쟁, 빈곤과 독재, 장기간에 걸친 군사 쿠데타로 얼룩진 우리나라를 멋진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에 불탔던 인물이 그였다. 그 문제에 관해 그와 심도(深度) 있는 논의를 진척하지 못한 아쉬움이 내겐 남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각각의 개인이나 사회 혹은 국가는 나름의 역사적-문화적 차이를 가지고 있기에 그에 따른 발전과 변화 양상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통일 도이칠란트는 우리의 참고서는 될지언정 교과서는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던 터다. 이런 이야기를 뒤로 미뤄야 하는 작별의 시각이 너무도 불시에 찾아왔다. 여수의 저녁놀이 아름다웠지만, 쓸쓸해진 마음에 좋아하는 술도 마다하고 눈길이 자꾸만 헛헛해진다. 이튿날 아침 소주로 그의 명복을 빌면서 작별 고한다. ‘안 선생, 부디 평안하게 영면(永眠)하시게!’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20

한강과 의성 교육청 도서관

대중 강연을 한다는 것은 유쾌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2007년 하반기부터 전국 곳곳의 대중을 상대로 강연해 왔으니, 어언 18년 세월이 흘렀다. 오산 시청에서 ‘공자와 논어’를 강연한 기억도 새롭고, 부산진 경찰서의 ‘혜원에게 조선의 풍속을 묻다’ 강연도 떠오른다. 한 마디로 격세지감이다. 강연은 어쩌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서도 불러주는 곳이 있음은 고맙고도 행복한 일이다. 나는 ‘명예교수’보다 ‘초빙교수’라 불리는 게 좋다. 명예교수는 연구와 교육에서 멀어진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생과 작별하는 최후의 시각까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대중과 함께하는 작업을 해나가려고 한다. 평생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한 것이다. 각설하고, 지난 7월 9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의성 교육청 도서관에서 ‘한강의 문학 세계와 우리의 삶’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소서(小暑) 지난 사흘째 무더위 속에도 적잖은 군민들이 모였다. 강연 시작 전에 도서관장과 인사 나누고 내 생각을 전달한다. 그것은 강연자가 자기검열을 해서는 온전한 강연이 성립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대구·경북에서는 다소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아를 억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청주나 전주, 포항이나 부산, 광주에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묘한 곳이 이른바 ‘티케이’ 지역이다. 이 점에서 포항은 예외적인 곳이다. 강연 첫머리에 나는 문학을 말하는 자리에서 자기검열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청중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강연 중에 듣기 거북하거나 괴로운 청중은 조용히 나가달라고 부탁한다. 40-50명 청중 가운데 두 사람이 나간다. 절대다수 청중은 진지한 태도와 눈빛으로 강연을 경청한다. ‘검은 사슴’ (1998), ‘채식주의자’(2007), ‘소년이 온다’(2014), ‘작별하지 않는다’(2021) 같은 소설을 중심에 두고 한강의 창작과 거기서 우리가 생각할 골자를 말한다. 첫 번째 장편소설 ‘검은 사슴’부터 한강은 생명에 관한 묵직한 문제의식을 전달한다. 한강은 탄광에서 빈발하는 매몰사고와 속절없이 죽어가야 했던 광산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그려낸다. 그런 정황을 한강은 성수대교 붕괴 (1994), 대구(大邱) 상인동 가스 폭발과 삼풍 백화점 붕괴(1995)처럼 차마 있을 법하지 않은 대형참사와 자연스레 연결한다. 한강은 생명 존중 사유를 제주 4·3 항쟁과 5·18 광주항쟁으로 넓혀 나간다.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수많은 생명을 기리면서 그것이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토록 자명하고 지고지순한 생각을 전달하는 강연에서 자기검열이 들어설 자리는 당연히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18년의 티케이 강연은 자발적인 검열을 요구해 왔으니 참 애석한 노릇이다. 의성 교육청 도서관에서 한강의 문학 강연은 유쾌하게 끝났고, 도서관장과 담당자들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어 흐뭇한 심사였다. 학살자를 학살자라 부르고, 독재자를 독재자라 규정하는 것이 당연한 민주 평등 사회가 속히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13

천재와 범재(凡才)

얼마 전에 밀로스 포만 감독의 ‘아마데우스’를 다시 보면서 상념에 잠긴다. ‘아마데우스’는 1984년 제작되어 한국에서는 1985년에 개봉되었다. 당시 나는 음악에 문외한(門外漢)이었는데, 동생이 입장권을 구해준 덕에 난생처음 음악영화를 보는 귀한 경험을 하였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실은 16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영화에 몰입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불세출(不世出)의 천재 작곡가다. 그의 적대자로 설정된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는 모차르트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재능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영화 전편(全篇)에 깔린 살리에리의 절망적인 한탄과 출구 없는 상황은 마침내 그를 치매 수준의 노인으로까지 몰고 가는 극적인 결말로 우리를 인도한다. 40년 전 ‘아마데우스’를 처음 보았을 때나, 이번에 다시 보고 나서도 나를 사로잡는 문제의식은 천재와 범재에 관한 것이다. 천재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어떤 특별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남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를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밀로스 포만은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면모를 여러 각도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모차르트는 집 안에 있는 당구대에서 공을 굴리면서, 아내와 잡담을 해가면서 능수능란하게 작곡한다. 반면에 살리에리는 오직 작곡에만 몰두하면서 하나하나의 음을 직접 피아노로 확인해야 근근이 작곡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저한 대조가 영화 전편에서 두드러지게 그려진다. 남달리 엄격하고 까다로운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아주 어릴 적부터 자식에게 가혹할 정도로 음악 훈련을 시켰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에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재능을 시기하고 선망하는 살리에리의 신을 향한 분노와 바닥 모를 절망이 강조된다. 그런 까닭에 관객은 천재 모차르트와 범재 살리에리 사이의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간극(間隙)을 곳곳에서 확인한다. 천재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는 만화가 이현세 선생의 일화로 들었다. 타고난 만화가의 자질을 가진 동료의 아스라한 높이에 전혀 미칠 수 없었던 이현세는 하루에 100장씩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30년 동안 그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이현세는 천재 동료가 넘을 수 없던 절망과 탄식의 관문을 먼저 통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리에리와 이현세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소회는 단출하다. 그것은 거대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 해도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자명한 이치다. 사람들은 피눈물 나는 처절한 연습과 반복으로 자유자재한 경지에 이르는 초인적인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그것은 딴사람 이야기일 뿐이다. 세상은 소수의 천재와 다수의 범재로 이뤄져 있다. 양자의 조화로운 공존과 협력으로 세상은 전진해왔다. 다수 범재가 소수 천재를 겁박(劫迫)하는 21세기 정치지형은 우리에게 ‘아마데우스’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속삭인다. 다수와 소수가 공영하는 세상을 꿈꾸는 아침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7-06

의사와 판검사

책을 읽노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때가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인생의 심오한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내는 지은이와 만날 때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무리 나이 먹고 공부 많이 했다는 이유로 고개를 빳빳하게 하고 다니는 짓은 최대한 피할 일이다. 오래 살았다거나 남달리 긴 가방끈이 무슨 대단한 훈장은 전연 아니기 때문이다. 도이칠란트의 작가 크리스티네 브뤼크너(1921~1996)의 서책 ‘데스데모나, 당신이 말을 했다라면!···.’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거려진 일이 있었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서도이칠란트 펜(PEN)클럽 부회장을 지낸 브뤼크너는 생의 원숙기인 60대에 ‘데스데모나’를 집필한다. 서양의 실존-가상 여성 11인이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을 엮은 책이 ‘데스데모나’다. 그녀가 3장에 등장시키는 카타리나 폰 보라의 일갈은 특히 인상적이다.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의 아내였던 카타리나가 식탁 담화 형식으로 남편을 질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녀는 끼니마다 3~40명의 식객을 앞에 두고 ‘엄근진’으로 일관하며 거룩한 설교를 퍼붓는 철부지 루터를 참교육한다. 올바르다 못해 신랄하기까지 한 카타리나의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사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부족한 면을 채우면서 먹고살아요. 구두 뒤축이 닳아 없어지니까 구두 수선공이 먹고살고, 옷을 수선해야 하니까 재단사도 먹고사는 거잖아요···. 의사는 우리 질병 덕을 보고, 무덤 파는 사람은 우리 죽음 덕에 살지요. 목사도 마찬가지예요. 목사는 사람들이 죄를 짓기에 먹고사는 거예요.” ('데스데모나', 69쪽) 인간이 타자의 결함(缺陷)에 의지해 먹고산다는 논지는 매우 통렬하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다면, 루터 같은 목사는 오갈 데가 없으며, 사람이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의사는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다. 한국 사회가 그토록 숭상하는 판검사 무리도 우리가 저지르는 크고 작은 범죄 덕분에 자기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 명쾌한가?! 그런데 우리 사회 면면은 어떤가?! 서울대 의대에 학생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이 서울 공대라는 우스개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공계 기피 현상과 의대 과열 풍조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마저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몰아 넣었다. 더욱이 소수 극렬한 정치 검사들의 행악질이 드러나고 있는 이 시점의 한국 사회는 치유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평생을 씨름해야 하는 의사가 사회의 각광(脚光)을 받고, 범죄자들을 반려(伴侶) 삼아 인생을 함께하는 판검사가 드높은 사회적 지위에 자리한다는 병리적인 현상!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지식인과 용기 있는 기업가 유형의 인물을 존중하는 사회풍토가 선결되어야 우리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 사회와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을 터다. 때마침 터져 나오는 정치검찰의 부패와 타락, 무도한 권력욕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참혹한 나락으로 몰고 가는지 일목요연하게 입증한다. 새로운 정부 출범과 더불어 우리 교육과 바람직한 인간상 정립을 위한 기성세대의 통절한 자기반성과 자정(自淨)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29

‘국뽕’은 즐거워?!

12·3 내란 전에 내가 즐겨 보고 들었던 유튜브는 ‘국뽕’과 관련된 것이었다. 근현대 문학 작품과 이름난 무협지 낭독을 듣기도 하고, 영화도 더러 보았지만, 역시 주류는 국뽕이었다. 나처럼 나이 먹은 자들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성향이 어느 정도 체화돼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라와 민족, 역사와 위인들에 관한 내용을 반강제로 읽고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힘을 보탠 원인 제공자는 내가 다닌 대학의 분위기였다. 모든 사안에 ‘민족’을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기묘한 대학에서 나는 10년 동안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 시간강사와 연구소 간사로 살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의 깊은 곳에는 민족혼이나 강렬한 자주적 역사의식이 자리한다. 혹자는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민족주의자를 자처하고 살아간다. 각설하고, 얼마 전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25년 세계 10대 강대국 순위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국의 국민총생산과 군사력, 외교적 영향력, 기술력, 문화 파급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순위를 매겼다고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도이칠란트의 뒤를 이어 세계 6위 강대국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뒤를 이어 프랑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이 7위부터 10위까지 이름을 올렸다. 언론 보도를 보다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야, 이게 정말 실화냐’,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방력이 세계 5위라는 사실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국방력 이외의 주요 요소를 고려해서 선정한 강대국 6위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던 터다. 1965년 1인당 국민소득 105달러로 세계 최하위 수준의 대한민국이 60년 뒤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군사력, 문화와 예술의 나라가 된 것이다. 정말 경이로운 사변(事變)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경제적인 성공만이 아니라,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한 민주주의 성장도 현저하다. 항상 우리를 얕잡아본 일본도 우리보다 12년이나 늦은 2009년에서야 정권교체에 도달했다. 1951년 10월 1일 영국 ‘더타임스’에 실린 ‘한국의 전쟁과 평화’ 기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의 폐허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자라나는 것보다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성장하는 걸 기대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 우리의 저력에 새삼 가슴 뻐근하고 어깨가 절로 으쓱한다. 역시 나는 민족주의자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내란수괴를 비롯한 내란 잔당과 그 수하 떨거지들의 협잡과 망발이 아직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수구 삼류 언론과 정치검찰, 극우에 기대서 생명줄을 연장하려는 얍삽한 정치인들과 그 세력이 한여름 독버섯처럼 기생하고 있다. 사적(私的)인 이익과 대물림, 편법과 불법, 무법과 탈법, 초법(超法)과 무소불위로 무장한 자들의 약탈 만행! 만약 반민특위가 성공했다면, 5·16 군사쿠데타와 1980년 광주학살과 1990년 3당 야합이 없었다면, 716호의 부패와 타락, 503호의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12월 3일 계엄과 내란이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높이 날아올랐을 것이다. 국뽕의 기억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22

‘리박 스쿨’을 생각한다

낯선 이름의 단체가 눈과 귀를 자극한다. 듣도 보도 못한 ‘리박 스쿨 Rhee Park School’이다. ‘리박 스쿨’은 ‘이승만 박정희 학교’를 어설픈 영어로 단순화한 것이다. 2023년 7월에 개설된 그들의 홈페이지에는 ‘대한민국 역사 지킴이’라는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대상이 역사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을 예고하는 부제다. 이 조직의 본질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배우라.” 이 구절 바로 다음에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근대화와 자유 정신,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박정희 부국 대통령의 산업화를 연구하는 아카데미 단체입니다.” 하는 설명이 뒤따른다. ‘리박 스쿨’은 부패하고 타락한 전직 대통령들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단체다. 그들이 설립한 연구소와 협회는 역사 체험을 바탕으로 한 조직적인 이념 전파, 한국과 일본의 친교와 상생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과업 수행을 위해 그자들은 주니어 역사 교실, 바로 보는 현대사 같은 사업에 매진해 왔다. 이승만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친일 극우 이념을 역사로 포장하여 나이 든 세대는 물론이려니와 어린 세대까지 세뇌하려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탐사 전문 매체에 따르면, ‘리박 스쿨’은 국민의 힘 같은 보수 정치권을 지지하는 ‘자손군(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 손가락 군대)’을 운영해 왔다. ‘리박 스쿨’은 최소 4년 전부터 다수 보수단체에 ‘자손군’ 양성 방법을 강의함으로써 조직적인 댓글 공작원들을 길러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부 언론 매체는 ‘리박 스쿨’을 ‘자손군’ 양성 사관학교로 규정한다. 이와 아울러 ‘리박 스쿨’은 늘봄학교 강사 자격증을 발급해 초등학교에서 왜곡된 친일 극우 역사관을 전파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선 댓글 조작 의혹을 받는 ‘리박 스쿨’ 손효숙 대표는 여러 가지 이름의 보수단체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뉴라이트 역사관을 전파해 왔다고 한다. 내란 수괴가 즐겨 사용한 용어 ‘자유’가 ‘리박 스쿨’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자유 정신, 자유 손가락, 자유 대한민국 같은 표현에 담긴 ‘자유’를 다시 생각한다. 자유의 대전제는 책임과 의무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한도 내에서 우리는 자유를 선언하고, 실천하며 살아간다. 특정 집단과 조직만을 위한 자유는 정신적 폭력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승만이 건국한 나라가 아니라, 3·1 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가 세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를 일으켰다가 시민들에게 쫓겨난 독재자에 불과하다. 그들이 부국 대통령 운운하는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획책하다가 부하에게 사살된 타락한 권력자다.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의 피땀 어린 희생 덕분에 우리는 가난과 후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유 대한을 부르짖는 자들이 내세우는 한국과 일본의 상생과 친교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무장한 자들의 최종목표를 드러낸다. 일본의 일개 신민(臣民)으로 살고 싶은 친일 부역 극우 맹동주의자들의 망발과 망언과 책동이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란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15

통합을 위하여

2024년 12월 3일 치욕적인 내란의 밤, 광란으로 촉발된 계엄의 밤에서 꼭 6개월 지나서야 제대로 된 정권과 정부가 탄생했다.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다수 국민은 내란과 비상계엄 증후군 때문에 불면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북풍한설을 견디며 부도덕한 공권력에 대항하여 민주 시민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사악한 권력자와 부역자들의 탄핵을 요구했다. 2025년 4월 4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내란수괴의 파면이 선포됨으로써 대선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재명 정부 혹은 ‘국민 주권 정부’에 막중한 시대적 책무가 부여되고 있다. 피폐(疲弊) 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 회생, 트럼프가 촉발한 자국중심주의 문제, 실추된 대한민국의 위상 제고, 국민 모두의 안전과 평안, 다자간 외교 무대의 복귀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최우선 순위로 꼽히는 사안은 사회통합이다. 예상보다 한참 늦어진 헌법재판소의 내란수괴 파면 선고와 얼빠진 재판부의 초법적인 수괴 석방, 수괴를 정점으로 하는 반민족적-반국가적 정당의 반역사적 저항 등으로 우리 사회는 분열 직전이다. 그래선지 적잖은 인사들이 사회통합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사회나 국가 혹은 문명의 성립과 발전에서 통합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구성원들의 생각이 어떤 방향을 취하는지에 따라 사회나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문명의 붕괴’에서 다이아몬드 교수는 기후변화, 환경파괴, 적대적인 이웃의 존재, 우호적인 이웃의 지원중단이나 지원감소와 함께 ‘구성원들의 생각’을 붕괴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다. 누구나 사회통합을 바란다. 하지만 살 떨리는 12·3 내란 사태를 경험한 우리는 이 시점에서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을 검토해야 한다. 친위 쿠데타를 통한 1인 독재와 장기 집권을 획책한 내란수괴와 그 하수인들을 철저하게 수사하여 법정에 세워야 한다. 치 떨리는 내란의 밤과 그 뒤를 이은 숱한 혼란과 엄혹한 상황의 조종자와 추종자들을 색출해야 한다. 그들이 지은 범죄에 준하는 형량으로 그자들을 단죄해야 한다. 내란수괴와 그 하수인들의 반헌법적이고 위법한 명령에 따르지 않은 충직한 군인과 경찰 그리고 관리들에게는 적절한 포상과 아울러 승진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죄를 지은 자에게는 형벌이, 위험을 무릅쓰고 의무를 다한 분에게는 포상이 있어야 국가와 공동체의 존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에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다행한 일이다. 범죄로 얼룩진 전직 대통령 부부가 나란히 법정에 서는 희유(稀有)한 상황이 목전에 있다. 정치보복을 주장하는 일부 몰염치하고 몰지각한 자들은 사회통합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통합은 진정한 사과와 반성 그리고 관용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국민을 겁박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당리당략에 몰두해 온 자들은 통합 아닌 봉합을 요구한다. 내란 같은 중대범죄를 척결하지 않고 뭉개는 것은 우리 사회와 미래를 파괴하는 반인륜적 행위다. 통합은 책임자 처벌과 사죄 그리고 진정한 화해에서 출발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08

대선 토론회 유감

인간이 여타 생물과 다른 점은 여러 면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 근간은 언어에 있다.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인간의 기초적인 생존과 문화, 고도로 발전된 문명의 요체(要諦)다. 아울러 언어는 개인과 집단 혹은 종족과 민족의 본질을 드러내는 지표로도 작용한다. 어떤 민족의 언어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원형과 지향하는 종착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대선 토론회를 보고 들으면서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네 사람의 식견을 국민이 생중계로 확인하는 면접 형식이 텔레비전 토론회다. 그런 자리에서 후보들의 지적-정신적-인격적 자양분과 밑천이 드러남으로써 많은 국민이 큰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토론회가 진행되었는지, 토론회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토론(討論)의 핵심은 ‘말’에 있다. 말의 다른 표기가 언어(言語)다. 개인이 활용하는 말과 표현은 그가 살아온 인생행로와 경험, 독서와 사유, 인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 까닭에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예악사어서수’로 요약되는 ‘육예(六藝)’를 지식인의 기본적인 자질로 여겼다. 중세 유럽에서 문법, 수사, 변증 세 과목을 대학 교양과목으로 설정한 것도 같은 이치다. 토론의 전제는 경청과 인내 그리고 설득이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그와 나의 차이가 명백하게 변별된다. 그와 나의 차이를 알아야 나의 견해를 제대로 피력할 수 있다. 이런 작업에는 인내가 수반된다. 남의 말, 그것도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듣는 일은 그야말로 고도의 집중력과 절제된 예의범절이 선행조건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의 견해를 가진다. 다수 대중이 지배하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모든 개개인은 고유한 입장과 태도로 견고하게 무장돼 있다. 그런 까닭에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설득함은 매우 어려운 과업이다. 그래서 최고 정치 지도자에게는 일반 대중보다 훨씬 많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고뇌의 경험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어느 대선 후보의 배설에 가까운 ‘젓가락’ 막말을 듣노라니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솟구친다. 툭하면 명문대 나왔다고 떠벌리는 자의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언어폭력이 끔찍하게 다가온다. 소크라테스는 말할 때 가져야 할 세 가지를 지적한다. “하려는 말이 사실인가,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필요한가, 필요한 말이라도 그 말이 선한가?!” 대선 토론회에 나선 후보자 가운데 누가 한 권의 시집,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를 진정으로 보았는지, 참 궁금하다. 그들의 빈곤한 언어와 의사 표현 방식과 그것을 강제한 엉성한 토론 규칙이 마음에 걸린다. 청소년들도 함께 본 토론회가 미래 세대의 자양분이 되려면 토론자들의 인격과 품위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것의 첫 번째 전제가 풍성한 독서와 인격이다. 정치 지도자는 분출하는 사적 욕망을 절제된 언어로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적-정신적-인격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정치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이 된 사람만이 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아닌 자가 저지른 내란으로 치르게 된 대선 토론회를 본 나의 쓰라린 소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01

남가일몽(南柯一夢)

교양 강의 ‘동서 고전의 만남’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소회가 적잖다. 학생들이 기초적인 한자마저 등한히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 아프게 다가온다. 한자어는 상당수 한국어의 근간으로 작용하기에 문해력을 늘리려면 한자어 실력 배양이 필수다. 하지만 실상을 살피면, 상황은 정반대임을 알게 된다. 한자어를 영어가 대체하는 요지경이 펼쳐지고 있다.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에는 읽기와 쓰기, 말하기가 있다. 타인이 쓴 글을 올바르게 독서하는 능력이 읽기다. 필자의 생각과 느낌을 적절하게 전달함이 쓰기이며, 말하기는 화자의 생각을 구두(口頭)로 발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자연스럽고 윤택하게 해주는 세 가지 능력의 바탕에는 우리 고유어와 더불어 한자어가 자리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다. 우리 언어생활에 굳건하게 뿌리내린 한자어를 버리고 영어로 대체함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노릇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중고등학교 교육에서 한자어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하다. 예전 세대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썼던 사자성어 혹은 고사성어를 알고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청년 세대는 거의 멸종된 것 같다. 그런 연유로 ‘동서 고전의 만남’에서 일주일에 하나 정도 고사성어를 소개하고 있다. ‘남가일몽’도 그런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고사성어다. 남가일몽은 당나라 덕종 치세의 선비 순우분이 한바탕 꿈을 꾸고 일어나 확인해 보니 홰나무 남쪽 가지 아래 개미굴이 있었다는 얘기에서 나왔다. 꿈속에서 흘러간 20년 세월이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던 셈이다. 나는 남가일몽을 고교 국어책에 실린 정비석 선생의 ‘산정무한’에서 만났다. 금강산을 두루 유람하고 소감을 글로 남긴 것이 ‘산정무한’이다. 글 끄트머리에서 선생은 쓴다. “천년 사직이 남가일몽이었고, 태자 가신 지 또다시 천년이 지났으니, 유구한 영겁(永劫)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須臾)던가.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愁愁)롭다.” 경순왕 김부(金傅)가 935년 나라를 들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바치고자 할 때 태자가 결연히 반대하지만, 김부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이에 태자가 베옷(마의)을 걸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신라의 천년 사직도, 태자가 세상을 버린 뒤 흘러간 천년도 영겁의 세월에 비춰보면 잠시의 일 아니겠는가, 하며 선생은 쓸쓸해한다. 남가일몽과 비슷한 뜻을 가진 고사성어가 있으니 ‘한단지몽(邯鄲之夢)’이다. 인간이 영위하는 지상의 삶이 유한함을 가리키는 고사성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길지 아니한 덧없는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진실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대상은 놓쳐버리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들에 몸과 마음을 탕진하고 있음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게 아닐까. 선거를 앞두고 내란 잔당의 해괴한 언사와 설익은 칼춤이 난무한다. 작은 권력과 돈푼에 육신과 영혼을 팔아넘기는 내란 잔당들을 본다면 지하의 마의태자는 무슨 말을 남길 것인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5-25

인간과 시간

날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으로 80억 인류는 오늘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지식과 정보가 인간을 자유롭게도 하지만, 확증편향으로 왜곡된 인간을 강철 족쇄로 압박하기도 한다. 남는 문제는 우리가 선택하는 정보와 지식이 얼마나 올바르고 유용한지, 확인할 정도의 지적-정신적 수준을 확보하는 작업이다. 지구 생명체 가운데 인간보다 더 많은 지적 호기심을 가진 존재는 없다. 알고 싶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인간은 심해(深海)를 탐사하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목숨 걸고 남극과 북극을 탐험했다. 사랑과 명예, 돈과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을 충족하겠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걸고 장정에 나선 탐험가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언제부턴가 ‘시간의 화살’이라는 자명해 보이는 이론에 대한 회의(懷疑)가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138억 년 전 이른바 ‘대폭발(빅뱅)’이 일어나 시공간이 생겨났고, 그 결과 우리은하와 태양계도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이론. 그것에 기초하여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과거의 어느 시점에 발생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질주한다는 것이 ‘시간의 화살’이다. 지질학자들은 시간의 화살 이론을 입증하는 유력한 근거로 지층(地層)을 거명한다. 오래된 지층이 아래쪽에 자리하고, 시간 연대기 순서로 층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 전개다. 실제로 이것은 우리가 맨눈(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나는 정반대되는 생각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달리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출발한 시간이 현재를 거쳐 과거로 향하는 게 아닐까?! 영원히 사라져 버린 과거는 되부를 수 없이 완전 소멸했지만, 현재를 향해 달려오는 미래는 오늘의 우리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란 시점은 내일이나 모레의 미래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간이역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의 뿌리는 과거의 심연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으며, 그것이 현재라는 중간 정거장을 통과한다는 게 내 생각의 요지다. 이런 생각에 기초한다면, 시간 기계(타임머신)로 갈 수 있는 곳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일 것이다. 영원히 사멸하여 무화(無化)되어 버린 과거가 아니라, 생성되고 있는 미래만이 우리가 도달할 시간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대면하는 지나간 역사의 근간도 실상은 미래에 기초한 현재를 만드는 과업이다. 현재의 시공간에서 지나간 시간과 사건과 인과율을 들여다보는 일의 함의(含意)는 오지 않은 미래를 예비하고 기획하는 데 있다. 철면피하고 극악무도한 인간 집단의 무수한 악행을 낱낱이 통찰하고, 그것에 유의함으로써 미래세대의 안녕과 복지를 준비하는 것이 역사다. 1980년 5월 18일 광주가 어언 45년 지나갔다. 지나간 45년은 오늘의 우리뿐 아니라, 다가올 세대까지 구원함으로써 시간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과거와 미래의 교차점인 현재에서 양자를 성찰하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는 위대한 발걸음의 하나로 5·18 광주항쟁을 예찬(禮讚)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