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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네모난’ 나사못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사노라면 뜻밖의 행운이 찾아들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을 가리켜 ‘망외(望外)의 소득’이라 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굴러들어온 행운이라고나 할까!똑똑한 전화기 ‘스마트폰’ 덕분에 나도 청춘들처럼 유튜브와 친해지고 있다. 양자역학과 천문학 같은 자연과학 분야와 영성(靈性)과 관련된 영상 그리고 인문학이 나를 끌어당긴다.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귓전을 때리며 지나가는 구절이 있다. “그는 동그란 구멍과 맞지 않는 네모난 나사못 같은 사람이었다.” 19세기 말 잉글랜드와 프랑스에 만연한 천편일률적인 사회 분위기를 ‘동그란’ 구멍으로 일반화하고,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를 ‘네모난’ 나사못으로 표현한 것이다.주지하듯이 서머셋 모옴(1874∼1965)은 ‘인간의 굴레’와 ‘달과 6펜스’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자전적 요소에 기댄 ‘인간의 굴레’와 달리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와 원시주의를 대표하는 폴 고갱(1848∼1903)의 삶에서 소재를 발굴했다고 알려져 있다. 40살 나이에 다섯 아이와 아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화가의 길에 들어선 낯선 사내 고갱.화가들이 대개 열여덟 살 나이에 그림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너무 늦은 시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인간. 그는 무엇 때문에 세간(世間)의 비웃음과 의혹을 뒤로 한 채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에 들어섰을까! 그를 인도한 등대는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재능이 아니라, 그림을 하고 싶다는, 그림을 해야 한다는 내면의 강렬한 목소리였다.불과 15년의 생을 그림에 투척한 고갱의 작업은 훗날 앙리 마티스를 대표로 삼는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를 선두주자로 보는 입체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그의 인생이 흥미로운 까닭은 머나먼 미지의 남태평양에 외롭게 떠 있는 섬 타히티에서 열렬하게 타올랐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지도를 보면 타히티는 호주의 시드니와 칠레의 산티아고,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삼각형 가운데에 자리한다.서머싯 몸은 타히티의 고갱을 그저 그런 유럽인들과 확연히 다른 인간으로 그려낸다.그는 내 남 할 것 없이 누구나 ‘거기서 거기’ 가는 삶을 살아간 유럽인들과 달리 자신만의 고유한 생을 천착한 특별한 인간으로 고갱을 묘사하고 있다. 당대를 풍미한 지배적인 삶의 풍조를 비웃으며 ‘마이 웨이’를 외친 인간이 고갱이라고 몸은 주장한 것이다.소설 제목이 주는 엇박자가 낯선 독자를 위한 몸의 친절한 서한(書翰)이 있다.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찾다 보면 하늘의 달을 보지 못한다.” 6펜스는 지상적(地上的)인 것,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 일상적인 것, 무상한 것 그리고 지금과 여기를 의미한다. 달은 천상적(天上的)인 것, 정신적인 것, 영원한 것, 추상적인 것, 불멸하는 것과 영원무궁한 것을 뜻한다.날이면 날마다 땅만 보고 사는 인간이 아니라, 천상의 달과 천체를 보며 영원을 꿈꾼 인간 폴 고갱이 ‘네모난’ 나사못이 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리라. 오늘 밤에는 무슨 달이 뜨려는가?!

2023-12-17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겨울인데 한낮 기온이 18℃까지 올라간다. 이래도 괜찮은가, 생각하며 커피나무를 마당에 내놓고 화분에 흙을 북돋우고 한껏 물을 준다. 일주일 내내 거실에 있어서 답답하기도 한 것처럼 너른 이파리를 한껏 흔들어댄다. 커피나무는 그나마 운이 좋아 잠시나마 밖에서 외기(外氣)와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만, 거대한 덩치의 길상천은 꼼짝할 수 없다. 남들보다 크고 무겁다는 게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닌 셈이다.얼마간 미뤄둔 마당 정리를 마치고 훌훌 들로 나선다. 어느새 다가온 해거름이어서 멀리 서녘으로 길지 않은 겨울 해가 꼴깍, 소리 내고 사라지고 있다. 여름의 태양은 오래도록 하늘가에 흔적을 남기는데, 겨울 햇빛은 인색하다 못해 심술궂은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체의 작동과 운동에 인간의 의지나 바람이 개입할 여지는 없으니 군소리 없이 바라보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따사로운 햇살과 달리 사납게 몰아닥치는 바람이 목덜미에 선선한 흔적을 남긴 후에야 미뤄둔 문제가 머리를 쳐든다.‘그대 마음은 어디 있는가?’ 가슴인가, 머리인가, 육신 어느 다른 곳인가! 어느 양자물리학자는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육신 밖에 있다고 주장한다.인간의 뇌에 고작 0.0001%의 마음이 있을 뿐, 나머지 99.999%의 마음은 우리의 육신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두 손을 휘휘 저으면서 바람 속을 걷다 속삭인다. 그래, 나의 마음아, 너는 지금 나의 육신과 함께 가고 있느냐?!그렇다면 마음아, 너는 나의 앞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옆이냐, 위냐, 좌냐 우냐, 너의 위치를 알려다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묵묵부답 고요하다. 마음은 그런 나의 질문이 귀찮은 것인지, 성에 차지 않아서 그런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냥하게 다시 묻는다. 나의 마음아, 나와 대화하는 게 귀찮지는 않은 것이냐?!그래도 마음은 대꾸하지 않는다. 이윽고 붉게 소멸해가는 햇살과 바람에 버티고 서서 태양과 작별하는 작은 구름장과 윙윙 소리 내며 질주하는 바람과 비어버린 들판과 대지의 수호신인 양 의연히 서 있는 전봇대를 사진기에 담는다. 세 장의 사진을 찍는 데 소요된 시간은 불과 10여 초, 하지만 사진에 담긴 풍경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그 사진을 찍는 나의 마음이 사진 영상에 비친 피사체인 겨울 풍경을 변화시킨 것이다.내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눈과 시각중추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전권은 오직 마음이 가지고 있다. 마음이 어디를 어떻게 볼 것인지 결정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양자물리학자들이 만들어낸 용어가 ‘관찰자 효과’다. 전자는 인간이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波動)으로, 관측하면 입자(粒子) 형태로 ‘슬릿(slit)’을 통과하는 이른바 ‘이중 슬릿 실험’에서 나온 용어가 관찰자 효과다.아주 미소한 입자인 전자가 관측 행위로 인해 빛의 영향을 받으면, 파동의 성질이 입자의 성질로 바뀌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나나 당신의 마음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2023-12-10

국립대 교수 봉급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얼마 전에 유쾌하기도 하고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이 ‘변리사(辨理士) 시험’에 합격했다는 글을 보내왔다. 참 잘 됐구나, 생각하면서 학생에게 답신을 보냈다. 12월 초부터 수업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 학생의 졸업을 막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 골자다. 더욱이 1년에 고작 200명 선발하는 어려운 시험에 붙었다는 말에 나 역시 힘이 솟고 기분도 좋아지는 것이다. ‘경북대 파이팅!’ 하고 속삭인다.나는 그에게 변리사와 변리사 시험에 관해 10분 정도 후배들에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백면서생(白面書生)인 나도 변리사가 어떤 직종인지 알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는 A4용지에 발표 자료를 빼곡하게 준비해왔다. 거기서 느낀바 가운데 한 가지 사실을 이 글에서 독자 제현께 전하고 싶다. 돈 얘기라서 유쾌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 독자들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는다.변리사 초임 연봉은 6천500만원에서 7천만원 사이라 한다. 해마다 1천만원 정도 연봉이 오르기 때문에 몇 년 안에 억대 연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 적잖은 청춘들의 욕망이 돈에 쏠려 있는 형편이어서 변리사 초봉 자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러다 문득 경북대 신임 교수들의 연봉이 떠올라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독자 여러분은 국립대 교수 초봉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지 모르겠다.주지하듯이 교수가 되려면 적어도 20년 가까이 공부해야 한다. 외국 어문학이나 철학 혹은 역사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해당 국가에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 것은 불문율(不文律)이다. 당연히 유학에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자부담이다. 유학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고 시간강사를 거쳐서 마침내 전임 자리를 얻기까지 몇 년 시간이 다시 흐른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경제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처음부터 교수직을 아예 포기하는 실정이다.40대 초중반에 교수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50이 넘어서 교수로 초빙되는 경우도 심심찮다. 문제는 그들이 받는 경제적 처우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사실이다. 경력이 많지 않고, 군에도 다녀오지 않은 여교수나 면제를 받은 교수 초봉은 연 4천에서 5천 사이가 대다수다. 실수령액이 월 350만 원 안팎이라는 얘기다. 이런 정도의 봉급을 받고 무리 없이 가정을 꾸리고, 연구와 강의,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교수는 많지 않다.교수와 교수직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책임 의식은 날로 강조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처우개선은 이뤄지지 않은 편이다. 31년 전인 1992년 도이칠란트의 중견 인문학 교수가 월봉 450만원을 받을 때, 나는 100만원이 되지 않는 봉급을 받았다. 당시 도이칠란트의 국민소득은 오늘날 대한민국보다 적었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의 장래를 짊어진 청년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에게 최고의 경제적 대우와 사회적 지위를 보장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모든 것을 미국 표준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게 우리나라지만, 선진국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려면, 이제라도 국립대 교수들의 경제적인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믿는다.

2023-12-03

자유에 관한 짧은 생각

김규종 경북대 교수 ‘자유(自由)’를 말할 때 나는 한자(漢字)를 가지고 먼저 생각한다.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말미암는다는 것은 원인 제공자가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유란 나로 인해 생겨나는 온갖 사건과 인연의 원인과 결과를 스스로 감당한다는 말을 뜻한다. 남에게 구속되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사전적인 의미의 자유는 좁고 단순하다. 그것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를 통찰하고 싶은 것이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말을 빌려서 자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원하는 만큼 처넣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조르바는 버찌가 무척 먹고 싶었다. 그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서 엄청난 분량의 버찌를 사다가 배가 터질 만큼 쑤셔 넣는다. 그리고 먹은 버찌를 모조리 게워낸다. 그리고 난 후에 그는 비로소 버찌로부터 놓여난다. 조르바에게 자유란 처넣고 토해낸 다음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만화의 주인공 같은 조르바는 시종일관 경험론자다. 그가 토로하는 뱀과 새의 비유는 민중과 지식인을 은유한다. 온몸을 대지에 밀착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뱀은 경험으로 배우고 실천하는 민중이다. 반면에 텅빈 공중을 휙, 하고 날아가는 지식인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다. 조르바는 그런 지식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대하는 20대 청춘에게 조르바는 경이로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나는 조르바와 생각이 다르다. 길지 않은 세월을 살아가는 인간이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21세기 과학기술문명이 불러온 혁명적 변화를 그 이전의 경험과 인식체계로 수용함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인이든 아니든 어느 정도 책을 읽음으로써 최소한의 지적·정신적 소양을 축적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에 관한 그의 경험칙은 어느 정도 교훈적이다. 자신의 한계치를 처절하게 극복함으로써 도달하는 경지!자유는 애착(愛着)을 버림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 인과율의 출발지점과 최종지점의 책임을 자신에게 부여하되, 인과율 자체의 성립을 원천 봉쇄한다면 더욱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속박되는 까닭은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원한다. 만일 그런 마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유나 속박, 원인 제공자나 결과 따위는 애초부터 무의미하다. 문제는 애착하고 욕망하는 마음이 언제나 우리를 사로잡는 데 있다.아끼고 사랑하며 갈망하는 마음과 작별하는 일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은산철벽(銀山鐵壁)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풍미하는 유튜브를 볼라치면 돈과 건강, 인생의 행복과 정신적 안녕에 관한 내용으로 차고 넘친다. 나이 든 사람치고 노후(老後) 자금과 육체적·정신적 건강 그리고 무병장수에 무심한 사람이 있는가?! 문제는 그런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돈과 건강과 장수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이다.나이 들어서도 품위 있고 우아하며 매력적인 인간으로 남고 싶다면, 애착과 거리 두면서 자신을 자유로운 경지에 노닐게 하는 여유로움을 가질 일이다.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다!

2023-11-26

길상천(吉祥天)을 아시나요?!

김규종 경북대 교수 며칠 전에 울산에 사는 친구가 단톡방에 낯선 식물 사진을 올린다. 단톡방 참가자들은 서울과 청도 그리고 울산에 산다. 궁금한 두 사람이 ‘뭐야?’ 했더니 ‘길상천’이란 답변이 돌아온다. 길상천이란 글자를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청송(靑松) 인근의 ‘길안천(吉安川)’이 떠오른다. 언젠가 청송에 살던 선배 교수를 찾았다가 만난 길안천이 기억난 것이다. 그래서 ‘청송’ 부근에 갔는지 물었더니, 친구에게는 대꾸가 없다.나와 서울에 사는 친구는 길상천이 당연히 어디 ‘지명(地名)’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꽤 늦게 돌아온 답변은 ‘용설란’이었다. “거대하고 보기 힘든 놈이라 사진으로 보낸 것”이란 해설이 추가된다. 폭과 높이가 각각 75에 40년 정도 묵었다는 설명도 보탠다. 나는 그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어디 있는 길상천인데?” 묻는다. ‘멕시코’라는 답변이 날아든다. “시방 멕시코 갔나?” 했더니 마음만 갔다 왔다는 전갈이 온다.다시 사진을 보니 두툼한 어른 손바닥 크기의 식물 이파리가 겹겹이 엉켜있고, 날카로운 가시가 하늘로 향해 있다. 어찌 보면 거대한 초록 연꽃이 하늘을 향해 벙그는 것 같기도 하다. 참, 이상하게도 생겼군, 하고 혼잣말하는데, 휴대전화가 ‘웅~’ 하고 울린다. 울산 친구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아는 화원(花園)에 2년 넘도록 방치된 길상천이 보기 좋아서 내게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다.실물로 보면 훨씬 더 대단한 녀석이어서 일찍이 보지 못한 ‘대물(代物)’이라는 말도 덧댄다. 울산에서 청도까지 어떻게 하려고, 했더니 마음만 정하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결국 지난 목요일(11월 16일)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뿌리는 가운데 문제의 길상천을 싣고 그의 거대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이 도착한다. 후진해서 가까스로 마당 안으로 들어온 차 안에서 길상천은 유유자적인 자태로 앉아 있었다.굵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1시간 반 넘도록 나와 친구는 길상천의 오랜 뿌리를 잘라내고, 거기 덕지덕지 달라붙은 낡은 흙을 털어내면서 악전고투를 거듭한다. 다행히 마당이 넓고, 작업하기에 편리하게 수도가 비치돼 있고, 두 사람의 손발이 착착 맞았기에 분갈이 작업은 착착 진행된다.젖어가는 청바지와 웃옷은 물론, 모자를 쓴 얼굴에도 빗물과 땀이 뒤섞인다. 마침내 길상천을 새 화분에 앉히고, 거실로 집어넣는 데 성공한다.이어지는 ‘은성(殷盛)’한 뒤풀이 자리에서 우리는 입을 모아 오늘의 성공적인 작업을 자축한다. 어떻게 그런 거대한 화분을 선물할 생각을 했느냐, 하는 내 물음에 그는 멋쩍게 웃으며 예술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 아니겠어, 화답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나 같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을 천연덕스럽게 해내는 그의 담대함과 실행력에 새삼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길하고 상서로운 식물, 길상천!죽기 전에 딱 한 번 꽃피우고, 행운과 복락을 가져다준다는 길상천을 우중(雨中)에 가져와 작업해준 친구의 말처럼 대운이 들어올 모양이다. 길상천과 나라의 안녕을 함께 기원한다!

2023-11-19

사마귀를 추모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입동(立冬)이었던 11월 8일 된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올해 들어 처음 내린 서리였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마당에 나선다. 휴대전화 사진기로 루드베키아 노란 꽃과 이파리, 망초와 머위 큰 잎에 내려앉은 서리를 담는다. 불과 며칠 전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청년들이 적잖았는데, 순식간에 일기(日氣)가 급변한 것이다.지구 온난화의 폐해가 세계 전역을 휘감고 있는 시절의 난맥상을 우리도 확연하게 경험하고 있다. 늦가을에도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오래전에 사라진 빈대까지 출몰한다. ‘팬데믹(pandemic)’에서 따온 ‘빈데믹’이란 신조어가 나왔으니, 한국인들의 응용력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다. 특허 능력은 없지만, 실용신안 면(面)에서는 명불허전(名不虛傳) 최고다.마침내 겨울이 오긴 온 것이다. 입동 당일에 된서리가 왔으니, 24절기 가운데 하나는 멋지게 맞췄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든다. 사흘이 지난 11일 아침에도 된서리가 내려 초록의 잔디가 하얗게 채색된다. 시절의 변화에 가속이 붙는 양상이다. 차가운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불원초(不願草)를 하나둘씩 뽑다가 아연 놀라고 만다.잔디 위에 사마귀가 잠자듯 고요하다. 미동도 없기에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본다. 그래도 움직임이 없기에 살펴보니 엎드린 채 죽어 있다. 간밤에 부쩍 내려간 냉기를 견디지 못해 이 세상과 작별한 것이다. 집이 없는지, 혹은 집으로 가는 길에 죽었는지 모르지만, 사마귀는 푸르른 하늘과 새털구름과 햇빛과 바람 아래서 생을 마감한 게다.사마귀의 마지막을 동행한 것은 무엇이며, 그 순간 사마귀를 찾은 상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고사성어로 친숙한 사마귀가 겨울 초입에 허무하게 세상과 작별하니 마음이 제법 쓸쓸하다. 한여름에 당당한 자세로 나를 향해 앞다리를 곧추세우던 녀석들의 자태가 눈에 밟힌다. 제 분수를 알게 되면 녀석들은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죽음과 소멸에는 허전함과 아쉬움과 쓸쓸함이 동반한다. 지금부터 53년 전 오늘 1970년 11월 13일 대구 출신의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이 청계천에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외치면서 분신(焚身)을 감행한다.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살면서 동료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하고자 싸웠던 전태일! 그는 자신의 외침에 아무런 반향도 보이지 않은 정부와 업주들에게 가장 처절한 형식의 죽음으로 항거함으로써 부당함을 고발한 것이다.그가 세상을 버린 지 반세기가 가까워진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숱한 정치적 격변과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1천1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엄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가까스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20:80의 사회에서 1:99의 부도덕한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사마귀의 죽음이 불러온 상념이 전태일과 노동자들 그리고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모순에 이른다. 언제나 우리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환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오면!

2023-11-12

안동 가는 길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10월 28일 노문과 졸업생 초대로 포항에서 하루 묵고 왔다. 포항에 간 김에 구룡포에 있는 일본인 거리와 구룡포항 그리고 횟집에 들렀다. 자연산 횟감과 신선한 안주를 푸짐하게 내오는 인심 좋은 주인을 졸업생이 잘 알고 있었다. 이래저래 눈도 마음도 육신도 풍요롭고 넉넉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귀로(歸路)에 오른 것이다.구룡포항과 포항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이어주는 신작로가 돌아오는 길을 상쾌하게 동반한다. 불과 25분 만에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달리다 보니 ‘안동’으로 연결되는 도로 표지판이 얼굴을 내민다. 그 순간 무엇인가 가슴을 ‘쿵’ 소리 나게 두드린 것 같다. 삽시간에 가슴이 아프고 곧이어 눈시울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대체 이건 뭔가?!그것은 지나간 날들의 상념과 장면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까닭이다. 큰아이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갈 것인가, 고민할 때 나는 안동대 민속학과를 추천했다. 21세기는 동아시아의 세기이며, 그 중심에 우리나라가 자리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것은 나의 확신이자 예감이며, 어떤 강렬한 계시 같은 확증이 심중을 관통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어리석고 무능한 군왕과 서글픈 사대부들과 한심한 신료(臣僚)들 때문에 숱한 고초를 겪어야 했던 조선 백성은 민주주의 시대에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한다. 신분 제약의 사악한 족쇄(足鎖)가 풀리자 민초(民草)들은 하늘로 비상(飛翔)했다.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의 등쌀을 뚫고 21세기 20년대 우리는 세계의 빛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하지만 16년 전 큰아이는 내 결정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다독여 민속학을 공부하도록 하면서 틈나는 대로 안동대를 찾았다. 언젠가 안동대 정문에서 아이를 만나서 즉시 영덕 강구항으로 차를 달렸다. 대게를 먹는 철도 아니었지만, 둘이 한 상 푸짐하게 받아들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했다.그 당시 나는 맛난 걸 먹게 되면 모친에게 택배로 부쳐드리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은 것보다 많은 양을 서울 모친댁으로 부쳤다. 그래야 속이 편하고 유쾌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와 출장을 가는 동료 교수들은 안절부절도 유만부동이다. 제주도에 가면 갈치나 돔, 여수에 가면 말린 생선을, 장흥에 들르면 돼지고기를 부친 까닭이다.그래봐야 10만원이면 충분하다. 그 정도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마음의 선물을 보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얘기를 동료들에게 하곤 했고, 몇몇 사람은 나와 함께 택배 행렬에 동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택배를 받아줄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시다. 그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안동 가는 도로 표지판을 보았을 때, 큰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16년 전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가 사라져간다. 그래서다. 내 마음과 눈시울이 순간 커다란 변화와 마주했던 까닭은 그래서다. 저 멀리 떠나간 시공간과 언어와 인연이 하얀 일광(日光)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2023-11-05

시간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23년이 두 달 정도 남아서 그런지 얼마 전부터 ‘시간’이란 어휘가 주위를 맴돈다. 몸도 생각도 자꾸 시간을 둘러싸고 돌아간다. 그러던 차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영화관에 도착한다. 무려 10년 만에 신작을 가지고 돌아온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원한 얼굴이자 노장(老壯) 미야자키 하야오의 투혼에 경의를 표한다.‘그대들은….’에서 다뤄지는 시간은 2차 대전 혹은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말기(末期)다. 당시 중학생 마히토가 겪는 신비로운 사건이 영화의 고갱이다. 마히토는 물론 하야오의 분신이다. 전화(戰禍)인지 또는 자연적인 발화(發火)인지 모르지만, 마히토는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나이 어린 마히토가 거대한 불길 앞에서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마히토의 내면에는 무기력한 자아를 향한 원망이 자리 잡는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장면이 이어진다. 독자 여러분이 몸소 ‘그대들은….’을 감상하시기 바란다.영화에서 흘러간 2년 동안의 시간이 의미심장하다는 사실은 덧붙이고 싶다. 마히토는 그 시간에 내면과 육신의 성장, 자신과 가족 그리고 현실 세계와 저승 세계 같은 복합적이고 추상적이며 비논리적인 것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마히토는 사람이 놓치고 살아가는 수많은 빛과 그림자, 그림자의 배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새로운 1년이 시작하고, 그 1년이 우리와 작별함으로써 또 다른 1년이 얼굴을 내밀면서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새해 전날 많은 사람이 승용차에 몸을 싣고 마치 전장(戰場)에라도 나가는 전사(戰士)처럼 비장한 얼굴로 해맞이를 하러 장도에 오른다. 왜 그러는지, 물어도 신통한 답변을 들은 적은 없다. 남들이 하니까, 뭔가 새로운 의지를 다지러,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군색한 대답 일색이다.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을 것이다. 사라진 1년에 조의를 표하고, 새로운 1년을 향한 굳은 각오와 결의를 다지기 위함이 해맞이 행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수많은 차량 행렬이 똑같은 목표와 방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고 경이로울 따름이다.요즘엔 시간 흐름이 예전과 달리 완만하고 여유로우며 넉넉하다는 느낌이 날로 강해진다. 평생 한 번도 감촉하지 못한 푸근하고 자유로운 감상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언제나 쫓기듯 열렬하게 살았던 지난날의 나와 그것을 조용히 반추하는 거울 바깥의 내가 서로 어색하여 남산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그래서 아주 좋다. 서둘지 않아서 좋고, 작은 일에도 진심이어서 좋고, 강연 준비도 차분하고 내실 있게 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 나직하게 속삭인다. ‘시간아, 정말 고맙구나!’

2023-10-29

길에서 길로 길을 떠돌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삶에는 더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난다. 어떤 필연성이나 치명적인 관련성이 없는 사건과 관계가 느닷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우리는 고단한 인생을 견딜 수 있을 터다. 지난 금요일 오전 경북대 인문한국진흥관 앞을 출발한 승용차가 신천대로를 거쳐 남대구 인터체인지를 지나 광주로 향하는 장도(長途)에 오른다.고령을 지나 가조를 거쳐 거창을 넘어설 무렵 운전 시간은 한 시간을 넘어선다. 이윽고 함양 간이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한다. 이윽고 다시 승용차는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한다. 남원을 거쳐 순창과 장수를 거쳐 목적한 담양 톨게이트를 바람처럼 달려 나간다. 우리가 목적한 1차 집결지에 도달하고 보니 약속한 시각보다 30분이나 일찍 당도한다.2019년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나는 광주에 자리한 전남대에서 교환교수로 생활한 바 있다. 그때 맺은 인연으로 경북대 인문대 교수 5인과 전남대 인문대 교수 3인이 광주와 대구를 오가며 세상과 인생과 역사와 미래를 토론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전남대 교수들이 우리를 초청하여 광주에 가기로 한 것인데, 점심을 담양 수북(水北)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대나무로 이름난 담양이지만,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에서는 돼지갈비가 유명한데, 돼지갈비를 손님이 굽는 게 아니라 식당에서 구워서 내오는 것이 여느 식당들과 다른 점이다. 풍성한 야채(野菜)와 잘 익어 풍미와 육즙이 넘치는 돼지갈비를 함께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담양의 막걸리도 맛에 일획(一劃)을 추가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소쇄원을 들르지 못한 게 다소 아쉬웠으나, 우리는 죽녹원으로 발길을 향한다. 굵은 대나무가 열병식이나 하는 것처럼 줄지어 선 공간에 사람들이 웃으며 걷고 있다. 요새 유행하는 맨발 걷기에 도전해 본다. 비가 온 다음이라 잘 다듬어진 진흙 길은 매우 차다. 그렇다. 이런 늦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나무랄 데 없지만, 몸이 찬 사람이 맨발로 걷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죽녹원에서 나와 ‘메타세쿼이아 랜드’로 걸음을 옮긴다.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길로 선정됐다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중심으로 놀이 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도중에 작은 미술관에 들러 수묵화(水墨畵) 몇 점을 감상하는 호기도 갖는다. 아스팔트 길을 흙길로 만들어낸 지자체에 박수를 보낸다. 청도 곳곳에 넘쳐나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길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군민을 생각하는 지자체장들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너르고 크다.무려 2만 보(步)를 넘게 걸은 우리는 광주의 한식당에 자리 잡는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식당이 있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해산물과 육류, 신선한 채마(菜麻) 반찬으로 차려진 식탁이 풍성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문학과 인간, 앞으로 펼쳐질 미래세대의 삶에 담길 향방에 대해, 지나간 날들의 아름다움과 환희에 대해 말을 주고받는다.잠자리에 들면서 상념에 젖는다. 길은 우리를 타자들과 이어주면서 삶의 신비와 의미를 반추하도록 인도한다. 길에서 길로 길을 떠돌며 우리는 오늘도 그 길을 간다. 환하게 웃으면서!

2023-10-22

공동 학술대회 참석 후기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해마다 가을이면 러시아학 전공자들은 공동 학술대회를 기다린다. 6·25 사변과 냉전, 베트남 파병과 1·21사건 그리고 10월 유신 같은 사건을 경험한 한국에서 러시아 관련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이 외교관계를 맺고, 1992년 11월 19일 문화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 러시아 연구는 난맥상 자체였다. 연구를 위한 도서(圖書)를 구하는 게 불가능했고, 전문가 양성은 언감생심이었으니 말이다.1990년대 이전 러시아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국내에서 연구하면서 해외의 지인을 통해 서적을 구하는 것이고, 그 둘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었다.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나 분단 도이칠란트 혹은 영국이 선호된 나라들이었다. 러시아학 전문가들은 크게는 국내파와 유학파, 유학파 가운데서도 미국파와 유럽파로 나뉜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그런데 33년 전 한러 수교로 오늘날 러시아학 전공자들 상당수는 러시아 유학파다. 얼마나 심도 있는 연구를 했는지, 하는 문제는 논문이나 학회에서 판가름 난다. 글이나 말은 연구자를 가장 잘 알려주는 도구다. 셰익스피어가 장막 비극 ‘햄릿’(1601)에서 일갈한 것처럼 “간결함은 지혜의 요체”이기 때문에 말하려는 핵심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연구자의 기본적인 덕목 가운데 첫 번째일 것이다.10월 14일 러시아학 관련 4개 공동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격변의 러시아-유라시아와 한국’이란 제목 아래 ‘러시아 어문학’과 ‘문화-역사’ 그리고 ‘사회과학’의 네 분야에서 온종일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러시아 희곡 연구자인 나는 생소한 ‘사회과학’ 분과 발표를 신청했다. 그리고 발표를 위해서 특별히 파워포인트 자료도 준비하여 열차 편으로 상경했다.‘동북아시아평화경제공동체 구상’이 나의 발표 제목이다. 21세기 대표적인 세계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2004)과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유럽적 보편주의’ 그리고 그들의 사상적 지주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1980) 같은 서책에서 단서를 얻은 발표문이다. 요약하자면, 남북한이 평화를 매개로 공존하여 마침내 통일 한국을 만들고, 이것에 기초하여 동북아에 새로운 평화경제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구상이다.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 나온 ‘동북아 허브’를 떠올리는 독자는 복 많이 받으시길!)유럽연합(유럽), 아프리카연합(아프리카), 아세안(동남아시아), 나프타(북미), 메로코수르(남미)가 입증하는 것처럼 블록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미-중-일-러 4강이 충돌하는 위험지대 동북아에는 이런 공동체가 없다. 그리고 공동체를 추동할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신과 의혹으로 얼룩진 중-러, 중-일, 러-일 관계 때문이다. 또한 남북한의 적대적 공존 역시 지역의 불화와 대립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나의 구상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몽환적이라 비웃는 사람에게 나는 말한다. “세계를 바꾸는 것은 현실주의자가 아니라 몽상가나 낭만주의자”라고. 별을 찾아 밤하늘을 볼 때다.

2023-10-15

가뭄에 단비

김규종 경북대 교수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 때문에 신문이고 라디오고 간에 새 소식을 보고 듣고 싶은 마음이 전연 들지 않는다. 누구를 찌르고, 죽이고, 도주하고, 자살하고, 사기 치고, 음해하고 등등 각종 사건 사고가 날마다 차고 넘친다. 참 흉악하고 무도한 세상이다. 6·25 한국동란이 끝난 지 어언 70년이니까 두 세대 이전에 전쟁으로 인한 살육(殺戮)이 멈춘 지 오래다. 그런데 흉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유는 무엇일까?!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배고프고 헐벗었던 1960∼70년대에도 흉악범죄와 자살 혹은‘묻지마 범죄’는 드물었다. 그런데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자 국민소득 3만 달러 넘는다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온갖 흉사(凶事)는 상상을 초월한다.일부 전문가들은 고도의 압축성장과 경제지상주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그 원인으로 제시한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고, 여기저기 쑤시는 정신의 통증을 제어하기 어렵다.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지식재산권 무역수지가 반기(半期) 기준으로 두 번째 많은 흑자(黑字)를 냈다는 것이다. 9월 22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수출 120억1천만 달러, 수입 116억9천만 달러로 3억2천만 달러 흑자를 냈다고 한다. 이번 흑자 규모는 2019년 하반기 3억5천만 달러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기록이라고 전한다.지식재산권은 산업재산권과 저작권으로 나뉜다. 산업재산권에는 특허와 실용-신안권, 상표와 프랜차이즈권, 디자인권이 있으며, 저작권에는 문화예술저작권과 연구개발 및 소프트웨어저작권이 있다. 올 상반기에 산업재산권은 10억 8천만 달러의 적자(赤字)를 기록했으나, 지식재산권은 15억2천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문화예술저작권은 한국 영화와 음악, 이른바 케이팝과 콘텐츠 수출 호조로 흑자기조를 도출했다. 연구개발 및 소프트웨어저작권 역시 컴퓨터 프로그램 수출 등이 호조세를 이뤄 흑자기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통적으로 산업재산권은 꾸준히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상황이 호전되고 있으며, 문학예술저작권은 흑자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지식재산권 분야의 도약이 목전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나는 오래전부터 지식재산권을 반대해왔다. 특히 노무현 정권 시절 타결된 ‘한미자유무역협정’에서 한국이 지식재산권 영역에서 지나치게 양보함으로써 ‘자유’라는 용어에 균열을 가져온 이후 반대하는 견해를 강화하게 되었다. 강대국이 도달한 지적-정신적 재산과 재화의 활용 기간을 50년에서 75년까지 인정해주는 협정은 너무도 폭력적이고 가진 자들의 입장만 고려하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후진국은 영원히 후진국을 벗어날 방도가 없는 것이다.승자는 영원히 승자로 남고, 패자는 만고불변 패자로 남아야 한다는 족쇄가 최소 50년에서 최대 75년에 이르는 지식재산권 보호 규정이다. 이런 악조건을 뚫고 이뤄낸 지식재산권의 흑자 소식은 통쾌함과 통렬함을 한꺼번에 선물해줌으로써 가뭄에 단비 같은 느낌이다.

2023-09-24

가을장마

김규종 경북대 교수 처서(處暑) 백로(白露) 지나 추분(秋分)이 코앞인데 날마다 비가 내린다.예년 이맘때면 가을바람 소슬하고 일기 쾌청하여 교외(郊外)로 나가기 제격이었는데, 요즘 날씨는 종잡기 어렵다. 언론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지구 자연환경을 파괴한 결과를 마주하는 듯하다. 그래선지 ‘인류세(人類世)’라는 어휘가 낯설지 않다.인류세는 1980년대 미국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와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들은 인류의 산업활동 때문에 지구 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런 사실을 지질시대에 포함하고자 인류세를 제안한 것이다. 명칭에 담긴 것처럼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자연에 유의미한 변화가 초래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지질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류는 약 1만1천700년 전 시작된 ‘홀로세’에 살고 있다.하지만 불과 250년 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의 결과 지구의 물리와 화학 시스템이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함으로써 지구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는 게 인류세 주창자들의 논거다.여러 주장이 난립하고 있지만, 1950년대를 인류세 기점으로 보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지질학적인 논의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혜로운 인간’이란 의미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가 초래한 자연생태의 가공할 파괴양상은 지구촌 곳곳을 덮치고 있다.칠레와 캐나다 산불, 버몬트, 르완다와 남수단 폭우, 인도의 몬순 홍수와 열대성 폭풍 마와르의 일본과 괌, 대만, 필리핀 강타 등 열거하기 어려운 지경이다.올해가 인류에게 가장 시원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뉴스까지 나왔다 한다. 언뜻 들어도 섬뜩하지만, 그럴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로 분망한 대중에게 지구촌의 과거와 미래는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직 지금과 여기에 함몰돼야 가까스로 삶의 터전과 가족의 생계가 보장되니 말이다.그러나 지식인 계층이나 상층권위를 가진 자들은 지구촌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된다. 인간이 하루살이로 전락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오직 돈과 권력과 명예에 목숨을 거는 짓은 식자층의 몫이 아니다. 그러하되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사를 보노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과 비탄을 자아내는 글로 도배되어 있다.그냥 넘어가기에는 안타깝고 답답한 이 나라 정치 현실, 완전히 실종된 미래기획, 젊은 세대를 위한 꿈과 희망의 실종, 끝없이 지속되는 남과 북의 대치와 대립…. 거명(擧名)하려면 한도 없고 끝도 없는 캄캄절벽의 연쇄가 우리 앞에 산적(山積)해 있다. 이런 난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로 풀어낼 희대의 영웅은 어디 있는가?!지루한 가을장마를 견디면서 언젠가 울려 퍼질 명랑하고 쾌활한 종소리를 기다린다.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탐진치 삼독(三毒)에 물든 남루하고 비루하며 거칠기 짝이 없는 양아치 정치를 일거에 소탕하여 창천(蒼天)의 밝은 태양을 누가 보여줄 것인가?!

2023-09-17

조각 이불을 보다가

김규종 경북대 교수 독자 여러분은 조각 이불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무늬와 색깔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조각 이불이 마음에 드시는지 궁금하다. 조각 이불은 어린아이를 위한 이불로 사랑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록달록한 무늬와 기하학적인 질서로 배열돼있는 조각 이불은 따스함과 질서정연함을 동시에 선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언제부턴가 나를 만들어온 여러 요인(要因)을 생각하게 된다. 퇴임을 앞두고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하라는 청을 들었을 때 그런 말을 했다.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해준 여러분의 인내와 너그러움에 감사한다는 뜻의 말을 전한 것이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누구나 그를 낳고 길러준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와 친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 덕분에 어제와 오늘의 나와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요즘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가슴 아픈 사건은 단연 교사들의 자살 행렬이다. 지난 7월 19일 스물세 살 먹은 서이초교의 어린 여교사 자살로 학부모와 학교장들의 온갖 행악질과 갑질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세상 살기가 쉬운 일이기만 하랴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대한 사명을 수행하는 교사들을 상대로 악행을 거듭한 자들에게 대를 이어 악운(惡運) 있기를?!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장편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에서 기인하는 ‘베르테르효과’로 간주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악행이 교사들에게 행해지고 있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학생들에게나 적용되는 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행사하는 저급하고 막돼먹은 폭력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있다.어떻게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막말과 폭언과 폭행을 거리낌 없이 자행할 수 있단 말인가?! 학교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놓는 승냥이만도 못한 인간들은 학교를 떠나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과 학부모들은 마냥 의기양양(意氣揚揚) 득의만면(得意滿面)하기 그지없는데, 교육부는 서이초 교사의 49재에 참석하느라 수업에 임하지 못한 교사들을 처벌하겠노라고 엄포나 놓았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교육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 삼주체(三主體)가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룰 때 성취될 수 있다. 교사의 권위와 교권을 무력화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단과 교권의 의미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교사가 있는 한, 교육은 만년 공염불(空念佛)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는 학생을,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과 지구와 우주가 돌아간다는 소아병적인 사고와 인식을 버려야 한다.조각 이불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개개의 조각은 고유한 색깔과 무늬가 있지만, 내가 잘났으니 나를 따르라고 우기지 않는다.하나의 조각은 모두를 위하여, 모든 조각은 하나의 조각을 존중하고 어울려 조화로운 전체를 완성한다. 세상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홀로 잘나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할 때 비로소 존재의의가 환해진다는 사실을 곰곰이 돌이켜보면 좋겠다.

2023-09-10

노화와 죽음을 넘어선다면?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브리 드 그레이의 ‘노화의 종말’(2007)에서 발원하여 데이비드 싱클레어와 매슈 러플랜트의 ‘노화의 종말’(2020)과 호세 코르데이로와 데이비드 우드의 ‘죽음의 죽음’(2023)으로 이어지는 노화의 종식과 불사(不死)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이런 논의 사이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5)가 자리한다.‘사피엔스’에서 하라리가 제시한 것은 ‘길가메시 프로젝트’였다. 사피엔스의 가능 최대수명인 125세의 네 배에 이르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기획이 길가메시 프로젝트다.그런 문장과 만났을 때 ‘농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그럴 법도 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현대의학과 약학, 여타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이 눈부신 것이다.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눈과 귀를 가장 자주 자극한 네 글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일 것이다.인간에게 숙명처럼 내장된,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비켜 갈 수 없는 필멸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불사의 신! 연역법과 귀납법의 단골 소재로도 쓰였던,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논리. 그런데 그것을 뒤집겠다는 과학적 도전이 진행되고 있다.죽음을 앞두고 10년 세월 병원을 들락거리고, 요양원과 요양병원 신세를 진 끝에 인생과 작별하는 요즘 세태에서 보면, 노화의 종말과 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40대에 찾아오는 노화의 첫 번째 제비를 20대나 30대로 돌려놓음으로써 건강과 활기를 유지하면서 노화와 작별하고, 마침내는 죽음을 망각하게 되리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2017년 가을학기에 디지스트에 출강하면서 만난 뇌 전공 대학원생과 이 문제를 생각해본 일이 있다. 20대 중반의 청춘인 그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500년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젊은 대학원생이 진지하게 제기하는 죽음의 공포에 나는 단출하게 대답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봤니?!”근자에 만난 고교 동창생이나 선배 교수들과 노화의 역전(逆轉)과 영생불사 혹은 최소 150년 200년 살아가는 인생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누구도 그렇게 긴 세월 살고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아버지와 어머니는 150살, 아들딸은 120살, 손자는 90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하지만 세태는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다반사(茶飯事) 아닌가?! 불과 한 세대 전에 남녀의 결혼 적령기는 모두 30살 이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산아제한 포스터 문구가 ‘둘도 많다’로 바뀐 게 4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지구촌 최악의 저출산 국가 운운하면서 나라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시대 아닌가 말이다!그래서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모르는 상황에 광속(光速)으로 다가오는 노화 역전과 무병장수 시대를 무작정 맞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사숙고(深思熟考)해보자는 게다.2천500년 전에 공자가 ‘인무원려(人無遠慮) 필유근우(必有近憂)’라 하지 않았던가?!

2023-09-03

‘오펜하이머’를 보는 하나의 시각

김규종 경북대 교수 관객이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인상과 미학적 인식, 그리고 감수성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호사가(好事家)는 그것을 취향(趣向)이라는 어휘 하나로 설명하고자 하지만, 실제로 그런 차이는 미학적 훈련의 결과에서 발원한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이고 계통적인 미학 훈련을 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화를 포함한 예술 전반을 수용하는 기본자세부터 다르다. 대상을 읽고 보고 느끼면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간파하는 능력 차이가 개인별로 크다.요즘 사람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생각할 거리가 풍성한 영화다.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일대기를 다룬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기저 텍스트로 삼은 영화가 ‘오펜하이머’다. 평전이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영화도 세 시간을 꽉 채운다.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원자력 위원회 의장인 루이스 스트라우스(1896∼1974) 제독과 관련된 청문회 장면이었다. 한편으로는 메카시 광풍에 휩쓸린 오펜하이머의 비공개 청문회가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관직에 내정된 스트라우스 제독의 공개적인 청문회가 진행된다. 전자는 오펜하이머의 수상쩍은 과거 행적을 추적하여 ‘미국의 프로메테우스’ 자리에서 그를 끌어내리는 것이 목적이다. 후자는 스트라우스 제독이 과연 상무장관직을 수행할 능력의 여부를 검증하는 자리였다. 오펜하이머도 스트라우스도 패배자로 기록된다.오펜하이머가 1953년 12월 기소되어 그 이듬해부터 보안 청문회에 소환된 최고의 원인 제공자를 평전 작가들과 놀란 감독은 스트라우스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오펜하이머의 정적(政敵)으로 등장하는 스트라우스의 내면세계를 인도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한다. 이를테면 오펜하이머가 원자력 위원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스트라우스는 최대한 친절을 베풀지만, 자부심 넘치는 오펜하이머의 머릿속은 전혀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위원회 건물 바깥에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서 있다. 아인슈타인을 향해 오펜하이머가 다가가서 몇 마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아인슈타인은 오펜하이머를 뒤따라오는 스트라우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냉정하게 지나쳐 버린다.문제는 오펜하이머의 자유분방하고 공격적이며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정치적인 성향이 스트라우스와 지극히 대극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민주 선거로 집권한 에스파냐 좌파 정부를 전복하고자 1936년 7월 프랑코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에스파냐 내전이 발생한다. 3년에 걸친 내전으로 무려 60만의 안타까운 인명이 희생되기에 이른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을 통해서 내전으로 발생한 수많은 고아와 난민을 위해 거액을 송금한다. 스트라우스는 오펜하이머의 이런 행적까지 추적하여 그를 청문회에 세운 것이다. 오해에서 시작된 불씨가 원한으로 발전하여 복수에까지 이르는 지점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리 의도와 무관하게 누군가는 우리를 오해하고 이를 갈며 음해한다는 사실을.

2023-08-27

자제(自制)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며칠 전 밤늦도록 잠이 찾아오지 않아 전전반측(輾轉反側)하다 급기야 일어나 앉는다. 평소 같으면 잠자리에 든 지 1∼2분이면 곯아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런 불면(不眠)의 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때 벗하라고 생겨난 것이 유튜브인 모양이다. 제법 오래전부터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혹은 ‘법성게(法性偈)’ 같은 불교 관련 경전이나 글을 찾아 읽곤 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도 자연 그런 쪽을 찾아서 듣게 되는 것이다.그날 설법의 요체는 ‘자제’에 관한 것이었다. 몸과 마음과 말의 세 가지를 자제하라는 게 요체였다. 몸과 마음과 말,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가 자음인 미음으로 시작한다. 참으로 소략한 발음을 가진 세 단어가 몸, 마음, 말이다. 그런데 이들 세 가지는 인생살이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다.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형이하(形而下)의 몸이고, 거기서 마음과 말이 발원한다. 몸이 전제되지 않는 마음과 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몸을 자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적용해보면 의미가 자명해진다. 우리의 오감(五感)으로 작동되는 다섯 가지 감촉, 즉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그리고 감촉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말이다. 오감을 작동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 예의와 법도를 벗어난 것들이 판치는 세상에 그와 같은 자제를 요구하거나 실천하는 일은 정녕 쉽지 않은 노릇이다.마음을 자제함은 무엇인가?! 우리가 죽을 때까지 통제하지 못하는 유일자(唯一者)가 필시 마음이리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신출귀몰하는 게 마음이다. 잠시 좋았다가 즉시 흐려지고, 안도했다가 근심 걱정으로 휩싸인다. 관대했다가 옹졸해지며, 자신만만하다가 일시에 위축(萎縮)되기도 한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손볼 수 있음은 가히 축복이리라.말을 자제한다는 것은 친숙한 표현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고픈 말을 전부 쏟아낸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폭망의 길로 접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지극한 수단이 말이지만, 말이 본령에서 어긋나면, 그 말은 인간을 죽이기까지 한다. 차라리 주먹으로 맞은 일은 잊을 수 있지만, 언어폭력은 대저 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극단의 양면성을 가진다.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대참사’ 이후 어떤 인간 말종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징글징글하게 해 처먹는다는 극악무도(極惡無道)한 말을 내질렀다. 나는 그것이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한 말인가, 귀를 의심했다. 대체 유가족들이 무엇을 그렇게 많이 먹었길래 저런 막말을 해대는가, 다시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시체 장사한다는 말을 내갈긴 야차(夜叉) 같은 족속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세상인 것은 분명하다.요즘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의 원인은 몸과 마음과 말의 자제가 사라진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말을 잠시나마 돌아보면 어떻겠는가?!

2023-08-20

‘시인의 저녁’, 종언을 고하다!

김규종 경북대 교수 금요일 점심 먹고 오는 길에 아, 그렇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경북대 교수회에서 퇴임의 변(辯)을 써달라는 시한이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길을 걷는 일은 그래서 유용하고 의미 있는 모양이다. 방송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얼핏 두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지나간 세월을 차분하게 반추하여 글로 옮겨야 한다. 원고매수 제한은 없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하면 된다.수요일에는 젊은 가수 박창근씨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진행했고, 목요일에는 학교 선생님 두 분과 함께 교육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봤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음유시인이자 참여 가객(歌客) 정태춘-박은옥 부부를 초대하여 두 시간 특집방송을 하기로 했다. 대구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시인의 저녁’이 청취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중이다. 금요일 저녁 6시 5분부터 8시까지 두 시간 방송을 마치면 ‘시인의 저녁’은 종방이다.지난 2020년 10월 5일 저녁 6시 15분에 시작하여 2년 10개월 1주일 동안 진행된 ‘시인의 저녁’이 막을 내린다는 소식은 지난 5월 중순에 알려졌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방송국의 의사결정과정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손님인 나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은퇴를 목전에 둔 연출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방송 중단 통보는 찜찜하고 아쉬운 것이었다.8월 11일 저녁 8시가 되면 2021년 ‘한국 방송 라디오 부문 대상’을 받은 전국 유일의 시사와 인문학 프로그램인 ‘시인의 저녁’이 끝난다. 그런 자명한 사실이 시간과 더불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의 사실로 굳어진 방송 중단! 수요일 박창근 가수는 여러 차례 부당함을 강조한다. 이렇게 좋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는 여러 차례 항변조로 말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말을 들었다.세상의 모든 것은 생명이 있든 없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교수질 30년 인생이 끝나가듯 ‘시인의 저녁’도 끝나는 것이다.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나오자 30명 정도의 방송국 관계자들이 잔칫상을 준비한다. 피디와 아나운서, 방송작가들이 십시일반 (十匙一飯) 정성스레 준비한 상이 펼쳐지고, 축하와 감사 인사가 이어진다. 여기저기 사진기가 소리를 내고, 환한 웃음과 예기치 못한 눈물이 터져 나온다.‘사랑에 관하여’에서 안톤 체호프는 모든 것은 가장 적절한 시간에 끝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남녀 주인공 알료힌과 안나 알렉세예브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마침내 종언(終焉)을 고할 때 작가가 남긴 말이다. ‘시인의 저녁’도 그러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시(始)는 종(終)이요, 종은 시다’라는 글을 남긴 윤동주 시인의 말에 더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1천일 동안 ‘시인의 저녁’에 관심과 애정을 쏟아준 대구경북 청취자들께 감사드린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그들과 만나고 싶다. 끝은 어차피 새로운 시작이기에!

2023-08-13

새만금 잼버리 대회 난맥상

김규종 경북대 교수 보름 넘게 이어지는 폭염(暴炎)과 열대야가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헤살놓고 있다. 강릉에서는 열대야도 모자라 초열대야까지 나타나는 걸 보니 지구 온난화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는데,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난맥상이 한국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선진국 타령을 해대던 수많은 언론매체에 빨간불이 켜진다.세계 전역 159개국 4만여 명이 참가하는 1천억원 규모의 세계적인 행사를 ‘배추 장사’ 문서 처리하듯 주먹구구식으로 치르려 했던 인사들의 난맥상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새만금이 자리한 전북 부안을 지역구로 둔 이원택 민주당 의원의 1년 전 문제 제기가 사태의 핵심을 찌른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그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잼버리 대회 준비상태를 디테일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보기 때문에 걱정돼서 말씀드리는데, 부처의 장관과 책임자가 혼선이 있는 조건에서 이 행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폭염이나 폭우 대책, 비산(飛散)먼지 대책, 해충 방역과 감염대책, 관광객 편의시설 대책, 영내-외 프로그램을 다 점검하셔야 합니다. 이런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세계의 청소년과 세계가 바라보는 이 대회가 어려운 역경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장관님이 좀 인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이런 문제 제기와 우려에 대해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시종일관 “문제없다, 이미 모든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답변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그녀는 “태풍이나 폭염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모두 준비해 두었다. 이에 대해 보고드리도록 하겠다”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1천명이 넘는 온열 환자가 발생하고, 영국과 미국, 싱가포르가 철수를 결정하는 등 잼버리 대회 난맥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새만금 잼버리에 가장 큰 규모인 4천500명의 참가자를 보낸 영국이 철수를 시작하고, 서울의 호텔로 이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1천200명의 참가자를 파견한 미국과 60명의 참가자를 보낸 싱가포르가 철수를 결정하여 퇴영(退營)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스카우트 연맹은 잼버리 행사 중단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총체적 난맥상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에 김현숙 여가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 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재, 김윤덕 국회의원이 포진하고 있는데, 이원택 의원이 정곡을 찌른 것처럼, 부처 장관과 책임자가 이미 혼선에 빠진 형국(形局)이다. 잼버리 대회를 최종적으로 지휘하고 책임지는 제도적 장치가 삐걱거리고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다.예컨대 지난 6월 초 잼버리 조직위는 배수시설 설치와 포장 공사 비용 56억원, 재난·재해 발생 대비 예비비 14억원, 폭염 대비 물과 얼음 구입 예산 2억4천500만원의 추가예산을 여가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여가부는 20억원 정도를 지원함으로써 파국을 방조한 꼴이 됐다. 어쨌든 이번 대회가 더 이상의 파국 없이 무탈하게 끝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2023-08-06

젊은이 죽이는 나의 조국 자유대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월요일 출근 후 업무 폭탄과 아이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인용문은 서울 교사노동조합이 7월 24일 유족의 동의를 받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초등교사의 일기장 일부다.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교사의 깊은 한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그녀를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낸 두 가지 근본 원인이 글에 담겨 있다.초등학교 담임교사에게 떨어지는 과중한 업무가 그 하나고, 아이로 인해 벌어진 난리 북새통이 그 둘이다.언제부턴가 대학에도 수많은 잡무가 부과되고 있다. 교육부가 강제하는 잡무 때문에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야 할 젊은 교수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예컨대 지난 5년 동안 교육부에 신고하지 않고 참가한 회의나 외부강연 자료를 제출하라는 것이다.무슨 수로 그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자료가 필요하다면 해마다 자료 제출하라고 요구할 것이지, 이 시점에 무슨 이유로 교수들을 들볶는가?!국립대학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초등학교 초임 교사에게 떨어지는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업무가 얼마나 많을 것인지, 가늠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초등교사의 가장 큰 소명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이지, 자잘하고 쓸모없는 잡무가 아니다.왜 그들에게 사무 관료의 사고방식을 강제하는가?! 아이 가르치는 것을 능가하는 숭고하고 중요한 일이 세상에 또 있는가.아이로 인해 생겨난 난리 때문에 경험도 없고 마음도 여린 교사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오늘날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교육부 장관, 교육감, 학교장, 교사, 학생, 학부모 가운데 누구인가?! 왜 서이초 어린 교사는 극단적인 선택에 홀로 내몰린 것일까?!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며, 어디에도 손들어 저항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할 길 없는 참혹한 현장으로 내몰린 것일까?!교육이란 미명(美名)으로 ‘사랑의 매’라는 허울로 포장된 폭력적인 교육을 받아온 나도 알 수 없는 게 학부모들의 온갖 분탕질이다.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 소중한 것쯤은 알아야 할 텐데, 요즘 학부모들 수준은 경이로운 지경이다.담임교사가 아이를 조금만 혼낼라치면 ‘아동학대’란 이름으로 협박하며 교사를 윽박지른다.이런 지경이니 교사가 마음 놓고 학생 지도에 나설 수 있겠느냐 말이다. ‘숨이 막혀 오고,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한’ 상황까지 교사를 몰고 간 교육 당국과 학부모가 이번 참사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세월호 대참사와 이태원 참사도 모자라 이제는 교사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에서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젊은이들을 비난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참담하고 암담하며 또다시 참혹한 내 조국 자유대한이여!

2023-07-30

넘치는 자식 사랑, 그만 멈추라!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대 초반 여교사가 학교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죽음을 둘러싸고 숱한 소문과 의혹과 추측이 난무한다. 죽음을 둘러싼 진영 사이의 대결과 충돌도 점입가경이다. 하지만 그들 목소리의 교집합이 있으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이런 주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멀리는 4·16 세월호 대참사와 가까이는 10·29 이태원 참사가 있다. 그런데 결론은 무엇인가?! 유야무야(有耶無耶), 꼬리 자르기,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인가?! 반짝하며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이나, 절망과 좌절과 탄식의 파고(波高)를 인내하면, 은근슬쩍 지나가게 돼 있음을 원인 제공자들은 잘 알고 있다.1862년 출간된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시민들의 짧은 기억력을 한탄한다. 불과 180일, 여섯 달만 지나면 모든 것을 망각하는 프랑스인들의 어리석음을 오래도록 한탄한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20년대 대한민국 시민들의 기억력은 여전히 40일의 벽을 넘지 못한다. 불과 38일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나, 하며 조용히 손사래 치며, 그만하라고 목소리 높인다.기억은 힘이 있다. 특히 그것이 경술국치(庚戌國恥) 같은 국가 중대사이거나 제주 4·3이나 여순사건 같은 비극적인 참변이거나, 광주항쟁 같은 위대한 투쟁이거나, 87년 평화 대행진 같은 민주항쟁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은 상실과 패배와 고난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일컬어 ‘고난 없이 영광 없다(No cross, no crown)’는 영어 속담도 있지 않은가?!그렇지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우리 한국인은 비관과 부정에 휩싸인 과거를 서둘러 잊어버리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환향녀(還鄕女)와 호로자식(胡虜子息)이라는 비감하고 쓰라리며 절망적인 단어를 만들어낸 병자호란을 영화관에서 돌이켜보는 자세가 그것을 웅변한다. 어찌 됐든 작은 승리에 도취하고 행복해하는 작은 인간들이 너무도 많다.2011년 개봉된 김한민 감독의 ‘최종 병기 활’에 747만 관객이 들었다. 그들은 조선 신궁(神宮) 남이의 활에서 크나큰 위로와 활로를 찾는다. 작고 여린 남이와 그의 애깃살이 크고 무시무시한 쥬신타의 강궁 육량시(六兩矢)의 대결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환호한다. 대국적인 견지의 처참을 극한 패배와 치욕은 사라지고, 남이의 작은 승리에 도취한 군중만 남는다.2017년 개봉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은 385만의 관객을 모았다.‘최종 병기 활’의 절반 수준이다.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의 치열한 논리 대결을 바탕으로 조선의 완벽한 패배를 조명하고 인조의 구차한 삼전도 굴욕을 재연한다. 시종일관 무겁고 출구 없는 조선의 암군(暗君) 인조와 그를 보필하는 신하들의 허망한 충성 대결. 그 고갱이를 들여다봐야 한다.낱낱이 파헤치고, 진실을 찾아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면 책임자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은 기억해야 한다. 추락한 교권을 일으켜 세우고,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자식 사랑을 억압해야 한다. 당신 자식만큼 교사의 생명과 인권도 소중하니까!

2023-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