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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승(童僧)의 경우

등록일 2024-06-30 18:13 게재일 2024-07-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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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첫 머리에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을 깊게 행하실 때 오온(五蘊)이 모두 공함을 밝게 보시고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셨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반야심경’ 전문의 의미는 크게 줄어든다. 여기서 ‘오온’이라 함은 인간의 실존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일컫는다.

수삼 년 전부터 나는 이 문구에 붙들려 헤어 나오지 못했다. 여러 해설서와 강의에서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대구 도심에 자리한 작은 사찰을 찾아 스님들의 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이탈리아의 양자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의‘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2023)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때 시작한 불교 공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즘엔 ‘천수경’ 강연을 청강하고 있다. 사찰 1층에 마련된 제법 큰 강의실 벽면에 인상적인 그림 한 점 걸려 있다.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동자승이 징검다리 위에서 무엇인가 응시하고 있다. 그것은 커다란 바위 위에 누군가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무더기, 아니 돌탑이다.

우리나라 산야에서 흔히 마주치는 돌무더기로 이뤄진, 소원을 기원하는 고졸한 탑이다. 그림의 동승은 간절한 눈으로 돌탑의 정수리를 쳐다본다.

그의 표정과 눈빛은 진지함을 넘어서 무엇인가 깊이 원망하거나 혹은 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자승을 휘감고 있는 저녁 햇살이 따사롭지만, 그는 그것을 전연 느끼지 못한다.

하얀 고무신에 자주색 바지 그리고 연푸른색 저고리를 입고 파르라니 깎은 작은 머리가 정갈하다. 어떻게 그는 이곳에 흘러들게 되었을까?! 그의 부모는 누구였으며, 왜 어린 그를 절에 맡겨두고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동승이 희구하는 혹은 원망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오래도록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나만 빼놓고 다 이상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얼마 전이다.

왜 그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기초적인 문제 하나를 두고도 우리 모두는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쳐 각자 고유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것을 단출하게 줄이는 방법은 독재와 전체주의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젊었던 시절에도,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나의 생각과 판단과 습속과 행위는 하나의 굳건한 표준이라고 확신했더랬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믿음이 신기루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누군가 그것을 공인한다 해도 쓸모없음을 깨우치게 되었다.

나의 눈에 비친 대상과 그것이 불러오는 느낌과, 그것에 기초한 생각과 행위, 그리고 그것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인식작용의 허망함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 셈이다.

오온의 작용에 담긴 무상과 상호관계, 거기서 파생하는 번뇌 망상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은 동승을 보면서 그가 하루속히 평정심과 무아에 도달하여 득도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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