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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暴炎)과 자연

등록일 2025-08-03 18:23 게재일 2025-08-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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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날마다 이어지는 폭염경보가 언제 수그러질지 궁금한 시점이다. 내가 경험한 가장 극심한 더위는 1994년 7월 21일 낮 최고기온 39.4도를 기록한 대구에서다. 그해 대구의 7월 평균기온은 30.2도로 우리나라 역대 최고기온으로 기록돼 있다. 가구마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았기로 한밤중에 잠을 깨는 것이 시민들의 다반사(茶飯事)였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우리가 겪고 있는 폭염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는 40도를 넘는 지역이 날마다 속출하고 있다. 일본 중부지역의 효고현과 교토부 그리고 오카야마현 같은 지역에서는 40도를 넘어서는 고온이 기록되고 있다 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같은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이 일상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낮에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저녁 어스름 무렵 산책을 하노라면 경이로운 장면에 걸음이 절로 멈춰지곤 한다. 불같은 땡볕을 자양분 삼아 날마다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로 왕성하게 성장해나가는 초목이 그 주인공이다. 한두 달 전에 모내기한 논을 진초록색으로 장식하는 벼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현저하다. 어제와 그제 오늘이 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는 학(鶴)과 왜가리를 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벼가 어른 허벅지 높이까지 자란 탓에 그들이 즐겨 먹는 개구리며 미꾸라지, 붕어 같은 먹잇감을 구하기 어려워진 까닭이다. 이제 녀석들은 무릎 높이까지 낮아진 청도천 인근에서 잠행하고 있다. 거의 삼 미터 높이까지 자라난 달맞이꽃은 마치 관목처럼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며 거리를 수호한다.

이따금 만나는 주황색 능소화(凌霄花)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계절이란 표정이 역력하다. 한낮의 살인적인 열기를 무색하게 하면서 능소화는 지상으로 천상으로 세력을 확장한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에서 심었다는 능소화의 기상과 인내를 보면서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지독한 혹서(酷暑)와 혹한(酷寒)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선사하는 자연이 놀랍기만 하다.

한여름 폭염과 폭우 그리고 태풍을 뚫고 풀과 나무는 생장을 거듭한다. 젊은 시절 내가 여름을 가장 좋아했던 까닭도 거기 있었다. 여름은 약한 것은 모질게 죽여버리고, 강한 것은 지극하게 살려낸다. 노자는 이것을 일컬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천지자연은 인하지 않아서 만물을 종이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도덕경' 5장)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자연과 인간이 다른 점은 약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인간은 아무리 모질어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와 실천궁행을 근본이념으로 삼는다. 가족과 사회를 대행하는 강력한 조직으로 근대국가가 등장한 이후 이런 상황은 날로 개선돼 가고 있다. 자연도태와 문명사회의 이율배반적인 공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자연의 폭력적인 양상을 가속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가혹한 역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망각하지 말아야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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